2018년 2월 1일 목요일
해지는 땅 형법이론의 비가
서울대학교 법학대학원 형법 과목의 이용식 교수님(가석방 포스팅 참조)께서 이번에 "형법총론" 교과서를 내시면서 쓰신 서문입니다.
로스쿨 도입시 가장 우려했던 것이 수험용 법학이 학문으로서의 법학을 침식하게 된다는 점이었는데, 로스쿨 도입 후 그러한 우려를 불식시키기에는 대학도 사회도 역부족이었던 것 같습니다. 점점 더 왜소해지는 법학에 대한 뼈아픈 반어법이라고 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일단 책은 사야 겠네요.
해지는 땅 형법이론의 비가
-이론형법학 만가, 그 상여를 메고 부르는 슬픈 노래-
로스쿨 시대의 표준적 형법 교과서 내지 기본서는 어떠한 형태의 것이어야 할까? 단언건대 그것은 가장 얇은 것이다. 기존의 형법교과서는 학생들에게 형법으로 가는 길을 안내하는 것이 아니었다. 오히려 형법학자와 형법전문가들이 자신이 아는 형법학과 형법판례를 과시하는 것이었다. 그래서 천 페이지 내외의 두꺼운 책들뿐이다. 이들은 지나간 시대의 교과서, 어제의 교과서, 학부시대의 교과서, 사법시험 시대의 교과서일 뿐이다. 이러한 두꺼운 교과서는 로스쿨 시대와 변호사 시험에는 전혀 맞지도 않고 불필요하고 오히려 해가 될 뿐이다. 백해무익하다. 기존의 교과서들은 정말로 수준 높은 학문적 연구서이다. 그러나 그것은 진정한 의미의 교과서가 아니며 기본서가 아니다. 로스쿨 학생들이 이러한 흘러간 시대의 형법교과서나 기본서를 본다는 것은 「똑똑한 학생들의 멍청한 선택」이다. 조금의 미련도 갖지 말고 던져버려라. 본서는 이를 되돌려 놓기 위한 것일 뿐이다. 따라서 본서의 학문적 가치는 전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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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학전문대학원 시대에 대응하는 형법공부는 어떤 것인가? 변호사시험을 위해서는 가장 얇은 교과서 한권과 가장 얇은 최근 3개년 판례정리집 한 권만 보면 그것으로 충분하다. 아니 그래야만 한다. 그 이상 보면 낙방한다. 변호사시험에서 답안을 작성하는 데 있어서는, 알고 있는 것을 쓸 시간도 없고 답안지공간도 없다. 그저 조문과 판례의 「결론」만을 쓸 수 있다. 그러니까 판례는 이해할 필요가 없다. 이해하면 오히려 손해다. 판례는 결론만 암기하면 된다. 판례의 논거를 이해해 보았자 답안지에 쓸 시간도 공간도 없다. 판례를 열심히 공부하여 이해한 논거를 쓰려고 하면 변호사시험에 떨어진다. 판례는 이해의 대상이 아니라, 암기의 대상이라는 것을 명심하여야 한다. 그것도 결론만. 그것도 최근 3개년 판례의 결론만. 변호사는 판례의 결론만 알면 되는 것이다. 판례형법이라는 이름하에 수백페이지에 달하는 두꺼운 책들은 거들떠보지도 말아야 한다. 판례는 해석을 하지 않는다. 판례는 규칙을 정한다. 정해진 규칙을 변경한다. 새로운 규칙을 정한다. 변호사시험은 정해진 규칙을 암기하는 것이다.
형법이론은 닫혀진 텍스트를 열어, 거기에 감추어진 의미를 찾는 것이다(저자의 죽음-독자의 탄생)(입법자의 죽음-해석자의 탄생). 이론형법학은 말해진 것 속에서 아직 말해지지 않은 것을 찾는 작업이다. 사유 속에서 새로운 사유를 분만하는 것이다. 아직 사유되지 않은 것을 불러내는 것이다. 이론적 사유의 한계를 드러내고, 이론적 사유의 한계바깥을 사유하는 것이다. 형법이론학은 근본적으로 체계와 새로움에 대한 관심이다. 형법이론은 기존의 규칙을 근본적으로 다시 해석하고 새로운 법칙을 수립하도록 요구한다. 기존의 법칙의 전제에 대해, 그 법칙에 따른 추론과 결론에 대해 다시 생각하도록 주문하는 어떤 이의제기의 원천이다. 이론형법학의 사유를 향도하는 것은 “우리의 앎은 어떻게 새로워질 수 있는가? 얼마만큼 달라질 수 있는가?” 하는 문제이다. 새로워진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그것은 자신의 한계에 도달한다는 것이고, 그 한계를 넘어 새로운 자기를 획득한다는 것이다. 형법텍스트는 끊임없이 해석되어야 한다. 완결될 수 없는 것, 완결되지 않은 상태로 계속 움직이고 생동하는 것을 계속 논의하는 것이 이론형법학의 존재방식이다. 이러한 이론형법학이 사라졌을 때, 우리가 경험하는 것이 바로 위에서 말한 「최근 3개년 판례외우기」이다. 「죽은 형법이론에 바치는 애도의 노래」가 「판례외우기」이다. 새로운 로스쿨시대에서는 형법을 알려고 해서는 안 된다. 우리는 형법모르기를 선택해야 한다.
옛날이야기이다. 법학도들에게는 “왜 법학을 전공하려 하는가?” 하는 질문이 항상 있어 왔고, “정의를 실현하기 위해서”라는 대답이 항상 있어 왔다. 법과대학 입학식장에는 “하늘이 무너져도 정의는 세워라”라는 라틴어 문구가 사람들의 마음에 감동과 충격을 준다. 그런데 정의란 무엇인가? 정의가 도대체 존재하는가? 단언건대 정의는 존재하지 않는다. 정의는 존재하는 것이 아니다. 「정의」는 「정의란 무엇인가를 묻는 것 자체」이기 때문이다. 이러한 의미에서 정의는 그것을 사는 것(living)이다. 결국 정의는 존재하는 것도 아니고, 존재하지 않는 것도 아니다. 그 경계선에 있다. 정의란 무엇인가를 묻는 것이 정의이다. 그런데 사람들은 죽으러 로스쿨에 온다.
나의 형법교수로서의 경력은 그다지 화려하지 않다. 최상위대학에 근무하고 있지만, 전혀 어울리지 않는다. 최상위대학의 공기조차 낯설다. 내가 일류 형법교수라고는 말할 수 없다는 인식이 지배적이다. 그렇지만 나는 발전을 멈추지는 않았다. 형법공부를 계속했다. 형법을 배우는 게 좋다. 이 나이에도. 일생 일연구자(一生 一硏究者). 자신의 한계에 도달하고, 자신의 한계 너머를 사유하고, 자신과 달라지는 모습으로 거듭나기 위해서, 우리는 얼마만큼 많은 것을 견딜 수 있는가 얼마만큼 무거운 짐을 질 수 있는가. 이러한 형법아리랑을 나는 오늘도 부른다. 그것은 해지는 땅 형법이론의 비가이다. 이론형법학의 상여 그 죽은 시체를 메고 부르는 만가, 그 슬픈 노래이다. 이것이 새로운 로스쿨시대의 표준적 형법교과서이다.
2018년 1월1일
독일 프라이부르그에서
이 용 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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