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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년 8월 28일 화요일

존 매케인의 고별사[번역 : 윤진수 교수님]


윤진수 교수님께서 존 매케인의 고별사를 번역해 페이스북에 올리신 것을 퍼왔습니다. 개인적으로도 소장하고 보고 싶었기 때문입니다. [원문 John McCain's Farewell Statement] 윤교수님과 페이스북 친구는 아니지만 전체공개로 해 놓으셨기 때문에 널리 알리고 싶어하시는 의도인 것으로 보여 그대로 옮깁니다.

지난 24일 사망한 존 매케인 미국 상원의원의 고별성명이 어제 발표되었습니다. 상당히 감동적인 내용인데, 국내에서는 전문이 소개되지 않은 것 같아, 제가 번역하여 올립니다. 원문 출처는 아래 링크했습니다.
"제가 60년 동안 감사하게 봉사할 수 있었던 미국 시민 여러분, 그리고 특히 아리조나 주민 여러분께.
여러분들께 봉사할 수 있었던 특권과, 군인과 공직자로서의 봉사가 허락해 주었던 보람있었던 삶에 대해 감사드립니다. 저는 조국을 위하여 명예롭게 섬기려고 노력하였습니다. 저는 여러 실수를 하였지만, 미국에 대한 사랑이 그를 상쇄하였을 것을 바랍니다.
저는 종종 제가 세상에서 가장 운 좋은 사람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저는 제 삶의 끝에 대비하면서도 이와 같이 느낍니다. 저는 제 삶의 모든 것을 사랑했습니다. 저는 10번의 만족스러운 삶을 살기에 충분한 경험과 모험 그리고 우정을 누렸으며, 매우 감사합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처럼 저도 후회가 있습니다. 그러나 제 삶의 하루도 좋은 날이건 나쁜 날이건 다른 사람들의 가장 좋은 날과 바꾸지 않을 것입니다.
이러한 만족은 제 가족의 사랑 덕분입니다. 저보다 더 사랑스러운 아내나 자랑스러운 자녀를 가진 사람은 없을 것입니다. 그리고 이는 미국 덕분입니다. 미국의 대의 – 자유, 동등한 정의, 모든 사람들의 존엄성에 대한 존중 - 는 인생의 지나가는 즐거움보다 더 숭고한 행복을 가져다 줍니다. 우리의 정체성과 의미에 대한 느낌은 우리보다 더 큰 대의를 위해 봉사함으로써 제한되는 것이 아니라 확장됩니다.
‘동료 미국인’ - 이러한 관념은 다른 무엇보다 제게 많은 의미가 있습니다. 저는 자랑스러운 미국인으로서 살고 죽습니다. 우리는 세계에서 가장 위대한 공화국, 피와 땅의 나라가 아닌 이상의 나라의 시민입니다. 우리는 조국에서나 세계에서 이러한 이상을 유지하고 증진시킬 때 축복을 받고, 인간성을 지지합니다. 우리는 독재와 가난으로부터 역사상 그 누구보다 더 많은 사람이 해방되는 것을 도왔습니다. 그 과정에서 우리는 큰 부와 힘을 얻었습니다.
우리는 지구의 모든 곳에서 원한과 증오 그리고 폭력을 뿌린 부족간의 경쟁을 애국심과 혼동함으로써 우리의 위대함을 약화시켰습니다. 우리가 벽을 무너뜨리기보다 그 뒤에서 숨고, 우리가 우리의 이상의 힘이 항상 있어 왔던 변화의 큰 힘임을 신뢰하기보다는 이를 의심함으로써 위대함을 약화시켰습니다.
우리는 고집 세고 시끄러운 3억 2,500만의 개인입니다. 우리는 논쟁하고 경쟁하며, 때로는 소란한 공적 토론에서 서로를 비방합니다. 그러나 우리는 의견의 불일치보다는 서로간에 더 많은 공통점이 있습니다. 우리가 이를 기억하고, 우리 모두가 우리나라를 사랑한다는 추정의 이점을 서로에게 준다면, 우리는 이와 같은 어려운 시간을 헤쳐나갈 수 있을 것입니다. 우리는 이를 통하여 전보다 더 강해질 것입니다. 우리는 언제나 그래 왔습니다.
10년 전에, 저는 대통령 선거에서 패배를 인정하는 특권을 누렸습니다. 저는 제가 그날 저녁에 그와 같이 힘차게 느꼈던 미국인에 대한 마음으로부터의 믿음을 가지고 여러분에 대한 제 작별인사를 마치려고 합니다.
저는 여전히 이를 힘차게 느낍니다.
우리의 현재의 어려움에 절망하지 말고, 언제나 미국의 약속과 위대함을 믿으십시오. 여기 불가피한 것은 없기 때문입니다. 미국인은 절대 포기하지 않으며, 우리는 절대 항복하지 않습니다. 우리는 역사로부터 숨지 않습니다. 우리는 역사를 만듭니다.
동료 미국인 여러분 작별인사를 드립니다. 하나님 여러분을 축복하시고 미국을 축복하소서."




2018년 2월 1일 목요일

해지는 땅 형법이론의 비가



서울대학교 법학대학원 형법 과목의 이용식 교수님(가석방 포스팅 참조)께서 이번에 "형법총론" 교과서를 내시면서 쓰신 서문입니다.

로스쿨 도입시 가장 우려했던 것이 수험용 법학이 학문으로서의 법학을 침식하게 된다는 점이었는데, 로스쿨 도입 후 그러한 우려를 불식시키기에는 대학도 사회도 역부족이었던 것 같습니다. 점점 더 왜소해지는 법학에 대한 뼈아픈 반어법이라고 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일단 책은 사야 겠네요.

해지는 땅 형법이론의 비가
-이론형법학 만가, 그 상여를 메고 부르는 슬픈 노래-

로스쿨 시대의 표준적 형법 교과서 내지 기본서는 어떠한 형태의 것이어야 할까? 단언건대 그것은 가장 얇은 것이다. 기존의 형법교과서는 학생들에게 형법으로 가는 길을 안내하는 것이 아니었다. 오히려 형법학자와 형법전문가들이 자신이 아는 형법학과 형법판례를 과시하는 것이었다. 그래서 천 페이지 내외의 두꺼운 책들뿐이다. 이들은 지나간 시대의 교과서, 어제의 교과서, 학부시대의 교과서, 사법시험 시대의 교과서일 뿐이다. 이러한 두꺼운 교과서는 로스쿨 시대와 변호사 시험에는 전혀 맞지도 않고 불필요하고 오히려 해가 될 뿐이다. 백해무익하다. 기존의 교과서들은 정말로 수준 높은 학문적 연구서이다. 그러나 그것은 진정한 의미의 교과서가 아니며 기본서가 아니다. 로스쿨 학생들이 이러한 흘러간 시대의 형법교과서나 기본서를 본다는 것은 「똑똑한 학생들의 멍청한 선택」이다. 조금의 미련도 갖지 말고 던져버려라. 본서는 이를 되돌려 놓기 위한 것일 뿐이다. 따라서 본서의 학문적 가치는 전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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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학전문대학원 시대에 대응하는 형법공부는 어떤 것인가? 변호사시험을 위해서는 가장 얇은 교과서 한권과 가장 얇은 최근 3개년 판례정리집 한 권만 보면 그것으로 충분하다. 아니 그래야만 한다. 그 이상 보면 낙방한다. 변호사시험에서 답안을 작성하는 데 있어서는, 알고 있는 것을 쓸 시간도 없고 답안지공간도 없다. 그저 조문과 판례의 「결론」만을 쓸 수 있다. 그러니까 판례는 이해할 필요가 없다. 이해하면 오히려 손해다. 판례는 결론만 암기하면 된다. 판례의 논거를 이해해 보았자 답안지에 쓸 시간도 공간도 없다. 판례를 열심히 공부하여 이해한 논거를 쓰려고 하면 변호사시험에 떨어진다. 판례는 이해의 대상이 아니라, 암기의 대상이라는 것을 명심하여야 한다. 그것도 결론만. 그것도 최근 3개년 판례의 결론만. 변호사는 판례의 결론만 알면 되는 것이다. 판례형법이라는 이름하에 수백페이지에 달하는 두꺼운 책들은 거들떠보지도 말아야 한다. 판례는 해석을 하지 않는다. 판례는 규칙을 정한다. 정해진 규칙을 변경한다. 새로운 규칙을 정한다. 변호사시험은 정해진 규칙을 암기하는 것이다. 

형법이론은 닫혀진 텍스트를 열어, 거기에 감추어진 의미를 찾는 것이다(저자의 죽음-독자의 탄생)(입법자의 죽음-해석자의 탄생). 이론형법학은 말해진 것 속에서 아직 말해지지 않은 것을 찾는 작업이다. 사유 속에서 새로운 사유를 분만하는 것이다. 아직 사유되지 않은 것을 불러내는 것이다. 이론적 사유의 한계를 드러내고, 이론적 사유의 한계바깥을 사유하는 것이다. 형법이론학은 근본적으로 체계와 새로움에 대한 관심이다. 형법이론은 기존의 규칙을 근본적으로 다시 해석하고 새로운 법칙을 수립하도록 요구한다. 기존의 법칙의 전제에 대해, 그 법칙에 따른 추론과 결론에 대해 다시 생각하도록 주문하는 어떤 이의제기의 원천이다. 이론형법학의 사유를 향도하는 것은 “우리의 앎은 어떻게 새로워질 수 있는가? 얼마만큼 달라질 수 있는가?” 하는 문제이다. 새로워진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그것은 자신의 한계에 도달한다는 것이고, 그 한계를 넘어 새로운 자기를 획득한다는 것이다. 형법텍스트는 끊임없이 해석되어야 한다. 완결될 수 없는 것, 완결되지 않은 상태로 계속 움직이고 생동하는 것을 계속 논의하는 것이 이론형법학의 존재방식이다. 이러한 이론형법학이 사라졌을 때, 우리가 경험하는 것이 바로 위에서 말한 「최근 3개년 판례외우기」이다. 「죽은 형법이론에 바치는 애도의 노래」가 「판례외우기」이다. 새로운 로스쿨시대에서는 형법을 알려고 해서는 안 된다. 우리는 형법모르기를 선택해야 한다. 

옛날이야기이다. 법학도들에게는 “왜 법학을 전공하려 하는가?” 하는 질문이 항상 있어 왔고, “정의를 실현하기 위해서”라는 대답이 항상 있어 왔다. 법과대학 입학식장에는 “하늘이 무너져도 정의는 세워라”라는 라틴어 문구가 사람들의 마음에 감동과 충격을 준다. 그런데 정의란 무엇인가? 정의가 도대체 존재하는가? 단언건대 정의는 존재하지 않는다. 정의는 존재하는 것이 아니다. 「정의」는 「정의란 무엇인가를 묻는 것 자체」이기 때문이다. 이러한 의미에서 정의는 그것을 사는 것(living)이다. 결국 정의는 존재하는 것도 아니고, 존재하지 않는 것도 아니다. 그 경계선에 있다. 정의란 무엇인가를 묻는 것이 정의이다. 그런데 사람들은 죽으러 로스쿨에 온다. 

나의 형법교수로서의 경력은 그다지 화려하지 않다. 최상위대학에 근무하고 있지만, 전혀 어울리지 않는다. 최상위대학의 공기조차 낯설다. 내가 일류 형법교수라고는 말할 수 없다는 인식이 지배적이다. 그렇지만 나는 발전을 멈추지는 않았다. 형법공부를 계속했다. 형법을 배우는 게 좋다. 이 나이에도. 일생 일연구자(一生 一硏究者). 자신의 한계에 도달하고, 자신의 한계 너머를 사유하고, 자신과 달라지는 모습으로 거듭나기 위해서, 우리는 얼마만큼 많은 것을 견딜 수 있는가 얼마만큼 무거운 짐을 질 수 있는가. 이러한 형법아리랑을 나는 오늘도 부른다. 그것은 해지는 땅 형법이론의 비가이다. 이론형법학의 상여 그 죽은 시체를 메고 부르는 만가, 그 슬픈 노래이다. 이것이 새로운 로스쿨시대의 표준적 형법교과서이다. 


2018년 1월1일
독일 프라이부르그에서 
이 용 식

2016년 11월 24일 목요일

후디는 학교티로


학교 다닐 당시에는 학교 마크나 로고가 새겨진 티를 입고 다니는게 겸언쩍어서 그랬는지 학교 후드티를 사입은 적이 없었는데, 이번에 관악구에 일이 있어 다녀오는 길에 학교에 들러 후드티를 사봤습니다. 사무실에서 입던 가디건이 오래되기도, 작아지기도, 지퍼가 고장나기도 했기 때문이었는데 결과적으로 잘 했다는 생각이 듭니다. 겉옷을 벗고 와이셔츠만 입고 있기에는 춥고, 겉옷을 입고 있기에는 불편한 날씨에 딱인 것 같네요. 저렴한 가격이 가장 큰 경쟁력이기도 하였습니다. 학생회관 2층 기념품점에서 학생증검사 같은 것 없이 판매하니 생각 있으시면 부담없이 구매해도 좋은 아이템일 것 같습니다.

2016년 7월 30일 토요일

일본 민법과 우리 민법상 법정상속분 규정 차이


일본민법상 상속인들의 법정상속분에 관한 규정과 우리 민법의 법정상속분에 관한 규정들의 차이점 중 가장 중요한 것은 우리 민법은 배우자의 상속분을 다른 공동상속인들의 상속분에 5할을 가산하고 있음에 대하여, 일본민법은 배우자가 피상속인의 자와 공동으로 상속할 때에는 상속재산의 1/2를, 피상속인의 직계존속과 상속할 때에는 상속재산의 2/3을, 피상속인의 형제자매와 공동으로 상속할 때에는 상속재산의 3/4를 각 상속하도록 되어 있으며 다른 공동상속인들은 배우자가 상속한 나머지를 원칙적으로 균등한 비율로 상속한다는 것입니다.

예를 들어 상속인이 배우자와 2명의 자녀인 경우/상속인이 배우자와 부모인 경우/상속인이 배우자와 2명의 형제인 경우에 상속분은 다음과 같게 됩니다. 자녀와 부모가 없어서 3순위 상속인이 형제자매가 되지만, 배우자가 있는 경우, 우리나라는 배우자가 단독상속(민법 제1003조 제1항)을 합니다.

일본 : 배우자 1/2, 자녀 A 1/4, 자녀 B 1/4
우리나라 : 배우자 3/7, 자녀 A 2/7, 자녀 B 2/7

일본 : 배우자 2/3, 부 1/6, 모 1/6
우리나라 : 배우자 3/7, 부 2/7, 모 2/7

일본 : 배우자 3/4, 형제 A 1/8, 형제 B 1/8
우리나라 : 배우자 1, 형제 A, B 0

상속 관련 문헌[윤진수, 초과특별수익이 있는 경우 구체적 상속분의 산정방법, 서울대학교 법학 38권 2호(104호)(1997년), 106면]을 찾아보다가 알게 되었네요.

2015년 3월 17일 화요일

스탠포드 대학노트





사다 놓았던 몰스킨 노트 를 다 써서 지난 달 미국여행에서 사온 스탠포트 대학노트를 개시하였습니다.

스탠포트 대학 서점에 가서 골라온 것이라지요. 천조국다운 스케일을 제외하고는 서울대학교 서점과 별다를 바 없는 스탠포드 대학 구내 서점에 가서 집에서 뒹굴때와 집앞 가게에 가서 우유를 사올 때 편하게 입을 수 있는 후드티 또는 집업티를 사는 것도 생각해 보았는데, 노트를 사서 쓰고 보관하는 것도 기념이 될 것 같다는 생각에 대학노트를 2권 샀던 것을 드디어 사용하게 되네요.

100장짜리 강의노트로 몰스킨노트보다 약간 종이가 얇습니다. 약간 비치기는 하는데 메모 용도로 부족함이 없습니다. 다른 나라 여행 가서 유명한 대학에 들르게 되면 노트 한두권씩 사모으는 것도 좋은 취미가 될 것 같습니다. 도쿄에 가게 되면 동경대 노트도 한번 사오고, 중국에 가면 칭화대 노트도 몇권 사오고 하면 좋은 컬렉션이 될 것 같네요. 외국에 나갈 일이 별로 없다면 우리나라 유명 대학 노트도 괜찮을 것 같다는 생각도 듭니다.

2015년 1월 8일 목요일

법학 입문자에게


*사진은 "민법입문"이라는 책의 저자 이신 양창수 전 대법관님입니다.

지난 해 말 모교의 동기유발캠프라고 하는 행사에 법조직역을 소개하는 내용의 특강을 해 달라는 부탁을 받아 1시간 남짓한 시간동안 변호사 및 법조직역에 대해서 설명해 주는 시간이 있었습니다. 동기유발캠프는 명문대학에 교수로 재직하고 있는 동문 선배들이 고등학교 2학년인 후배들에게 학교 구경 및 대학생활에 대한 설명을,  각 직업 분야의 직역에 진출한 선배들이 자신에 직업에 대한 설명을 해 주는 프로그램들로 짜여 있었는데 그 중 일부를 맡은 것이었지요.

법조직역에 설명하다 보니 법학공부를 어떻게 시작하는 것이 좋은 것인지 누가 물어본다면 어떻게 대답해야 할 것인지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과거로 돌아가 대학 2학년 사법시험을 처음 시작할 당시에 무슨 책을 잡고 어떻게 공부를 시작하는 것이 좋을까 하는 제 의문에 대하여 지금의 나는 어떻게 대답할 것인가 하고 말입니다.

만약에 제가 20년 전의 저에게 대답한다면 양창수 전 대법관님의 "민법입문"[양창수, 민법입문, 박영사(1991), 현재 제6판(2015)이 나와 있습니다]을 그 지침에 따라 읽어보기를 권하고 싶습니다. 민법입문에서 양 전 대법관님께서 말씀하고 있는 바와 같이, 법전을 펴놓고 책에서 인용되는 법규정을 수시로 찾아보고, 책에서 뒤에 나올 것이나 앞에서 이미 나온 것을 참조하라는 지시가 있으면(예컨대 뒤의 [106] "둘째" 참조, 이와 같은 지시) 반드시 실행하면서 책을 읽는 것입니다. 법서는 그렇지 않아도 진도가 나가지 않는 책입니다. 이런 지시를 이행하면서 읽는 경우 1페이지에 10분 걸릴 것이 30분, 1시간이 걸리는 경우도  있어서 400페이지에 달하는 책을 읽는데 1달(또는 그 이상)이 걸릴 수도 있을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법학의 초심자로서 기초를 닦고 싶다면 초기에 많은 시간이 드는 것을 감수하는 것이 나중에 자신의 수준을 수월하게 높일 수 있는 지름길이라고 생각합니다.


물론 사법시험 공부를 시작하는 당시에 제가 양 전 대법관님의 민법입문을 읽으면서 공부를 시작하지는 않았습니다. 이미 민법총칙, 물권법, 채권총론, 채권각론 수업을 들으면서 민법 교과서들을 보고 있는 상태였기 때문에 완전한 법학공부 초심자와는 다른 입장이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법서를 처음 보면서 법조문과 참조지시를 이행하면서 읽는 원칙은 지켜서 책을 읽었습니다. 제가 당시에 민법입문을 읽지는 않았었던 것 같은데, 교과서도 모자라 책을 마구 사는  친구 옆에서 슬쩍 서문이라도 읽어보아서였을지 않을까 추측해 봅니다. 순서대로 책을 줄줄 읽는 것이 기본적인 용어와 이론을 모르는 상태에서 가능하지도 않았을 뿐더러 책을 왔다갔다 하면서 읽는 것이 지루함을 많이 덜어주기도 하였기 때문이었는데 결과적으로 법학에 익숙해지는데 더디지만 확실한 방법이었던 것 같습니다.

양창수 전 대법관님께서는 판사로 재직하다가 교수가 되신 당시로서는 특이한 경력의 교수님이셨는데(양 전 대법관님을 필두로, 판사 출신의 윤진수, 김재형 교수님 등이 대학으로 자리를 옮기시게 됩니다), 제가 학부 다닐 무렵(1995년-1998년) 서울대학교 법과대학에서 민법을 가르치고 계셨고, 강의가 매우 인기가 있었습니다. 무엇보다도 시원시원하게 맞으면 맞다 틀리면 틀리다 하시는 직설적인 화법이 매력적이었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책을 보아도 화통하신 성격이 잘 드러나는 것 같습니다. 퇴임하시면서 한 인터뷰에서도 기자들에게 엄하게 하셨던 모양이네요([법조라운지] 퇴임하는 양창수 대법관, 법률신문 2014. 9. 1.자).

민법입문에서 "들어가기 전에"라고 하여 자신의 책을 읽는 방법을 지시하시는 부분만 읽어도 법학을 어떤 자세로 공부해야 할 것인지 어느 정도 알 수 있을 것입니다. 개인적으로 저는 "그게 안되면 법 공부를 그만 두라"는 부분에서 양 전 대법관님 다우시다는 생각을 많이 했습니다. 관련 부분을 인용해 둡니다.

들어가기 전에

1. ...

2. 대부분의 법학 교과서에서도 그러하지마는, 이 책에서도 뒤에 나올 것이나 앞에 이미 나온 것들을 '참조하라'는 지시가 많이 등장한다. 이 지시는 반드시 실행되어야 한다. 다시 말하는데, 반드시 실행되어야 한다. 이 책을 포함하여 법학 교과서를 읽는 경우에는 읽어 넘긴 쪽수의 양에 집착하여서는 안 된다.

3. 앞으로 이 책에서, 일상생활에서 잘 쓰이지 않는 낯선 용어를 많이 보게 될 것이다. 이와 같이 새로운 용어가 빈번하게 나온다는 것 자체가 견딜 수 없는 것으로 느껴지는 사람은 애초에 법 공부를 그만 두는 것이 좋다.
모든 전문 분야가 그러하듯이, 법에서도 고유한 용어를 많이 사용하고 있다. 그 용어는 말하자면, 법을 전문으로 하는 사람들 사이에서 통용되는 공통의 교신부호와 같은 것으로서, 수학이나 컴퓨터프로그래밍 또는 기호논리학에서 쓰이는 숫자나 각종의 부호와 별로 다를 바 없는 것이다. 이것은 모름지기 애써 의미를 이해하고 익혀서 몸에 배게 할 일이다.
물론 우리나라의 법언어에 관하여는 개선하여야 할 점이 많이 있으나, 그렇다고 해서 그것 때문에 법이 도대체 불만스러워서 견딜 수 없다고 하면, 이는 법 공부가 적성에 맞지 않는 것이라고 말할 수밖에 없다.

4. 이상을 읽어보아도 알겠지만, 현재의 단계에서 법을 공부하는 데는 한자를 잘 알 필요가 있다. 헌법을 위시하여 민법이나 형법 기타 주요한 법률이 한자를 쓰고 있기 때문에, 이는 부득이한 일이다.

...

양창수, 민법입문 제6판, 박영사(2015), vii - viii

2014년 4월 17일 목요일

헌법재판소 연필과 대학원 첫 수업


와이프가 근무하는 고등학교에 각종 직업소개를 하는 프로그램이 있는 모양인데, 헌법재판소 를 소개하면서 헌법재판소 소개 팸플릿, 헌법, 헌법재판소 로고가 그려진 연필이 사은품으로 배포되었던 것 같습니다. 저 연필은 은근히 고급스러움이 느껴져서 저도 가지고 싶네요.

헌법재판소 연필을 보니 제 대학원 첫 수업이 떠올라 끄적여 봅니다. 헌법은 기본 삼법 중에 학부 재학시절 제가 가장 좋아하던 과목이었습니다. 일단 헌법이 나라의 근본이 되는 기본적인 사항을 정하고 있는 법이고, 어떠한 법률이 헌법에 위반되는 경우에는 헌법재판소가 당해 법률의 위헌여부를 심사하여 무효화할 수 있으므로 최상위법인 헌법을 깊이 공부해 보는 것도 재미있을 것 같았습니다. 대학교 4학년 당시 다른 친구들은 졸업학점을 채우지 않는 방법으로 졸업을 미루고 1년 정도 학교를 더 다니면서 사법시험을 준비하는 경우가 많았는데, 재수를 하여 무작정 졸업을 미룰 수 없었던 저는 졸업학점을 꼬박 채워 수업을 들으면서, 사법시험 공부를 병행해야 했습니다. 게다가 졸업을 하게 되면 바로 영장이 나오게 되므로 졸업 후를 안배하기 위하여 대학원에 입학해야 했기 때문에 대학원 입시를 위한 공부도 해야 했습니다. 법대 대학원 입학은 두가지 전형 특차/정시로 나뉘어 있었습니다. 특차는 졸업시 학점이 좋은 친구들이 지도교수님의 추천으로 대학원에 입학하는 것으로, 전공당 1-2명씩 할당되어 있어서 이미 지원 당시에 전공이 정해지는 전형이고, 정시는 전공을 정하지 않고 시험을 보는 전형이었습니다. 특별히 성적이 좋지도 않았을 뿐더러 전공을 정하고 지도교수님께 추천받는 것은 생각할 처지가 아니었으므로 저는 당연히 정시 전형을 준비하였는데 덕분에 4학년 1학기는 졸업학점을 채우느라 빡빡한 수업일정과 사법시험 준비를 위한 기본서를 읽는 데에, 여름방학기간에는 새벽부터 오전에 이르는 1차시험 모의고사반과 대학원 입시를 위한 준비로, 4학년 2학기는 역시 졸업학점을 채우기 위한 수업일정과 얼마 안남은 1차 시험 준비로 다 가버렸습니다. 재수를 한 1994년과 대학원입시 및 사법시험 1차 준비를 한 1998년이 아마도 제 인생 중 가장 빡빡했던 기간이었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대학원 입시는 외국어와 법학 두 부문으로 이루어져 있었습니다. 외국어는 기본적으로 영어 과목을 통과해야 하고, 독어/불어/일어 등 제2외국어 과목을 하나 더 통과해야 했습니다. 영어는 고등학교 때까지 웬만큼 했다고 생각했으므로 특별히 준비하지는 않고, 토플책을 하나 사서 보았는데 1/4도 안보고 시험장에 갔었고, 독일어는 사법시험 1차 과목으로 준비를 했으므로 그걸로 준비를 대신했습니다. 외국어는 두 과목 다 일정 점수를 넘겨야 합격이 되는데 그 일정 점수가 그리 높지 않아서 큰 실수를 하지 않으면 대부분 합격을 하는 분위기였습니다. 법학 과목은 기출문제가 족보로 돌아다니고 있었고, 교수님들께서는 기출문제 중에서 돌아가면서 문제를 내신다는 소문이었는데, 역시나 기출문제에서 문제가 출제되어 꾸역꾸역 답안지를 채워 4학년 졸업, 이듬해 대학원 입학을 할 수 있었습니다.

어쨌든 학부 때 가장 좋아했던 과목이 헌법이었으므로 대학원에서 원래는 헌법을 전공으로 택하려 했었습니다. 그래서 99년 1학기에 개설된 대학원 헌법과목을 수강하려고 하였죠. 특차가 아니었기 때문에 특별히 급하게 전공을 정할 것도 아니었고 일단 대학원 헌법수업은 뭐가 다를까 하고 첫 수업에 들어갔습니다. 당시 서울대 법대에는 헌법교수님이 권영성, 김철수(김철수 교수님은 98. 8.에 퇴임하셨지만 명예교수 자격으로 강의는 개설하고 계셨습니다), 최대권 이렇게 세 분이 계셨습니다. 그런데 권영성 교수님은 99. 8.에 퇴임을 앞두신 때문인지 강의가 개설되지 않았었고, 최대권 교수님만 강의를 개설하셨기 때문에 최대권 교수님 수업에 대한 수강신청을 할 수 밖에 없었습니다.  물론 헌법에 관심이 있었지만 첫시간이므로 분위기가 어떤지 탐색하려는 목적이 강했습니다. 그런데 이게 오산이었던 것이 강의 첫시간부터 분위기가 예상과 달리 흘러갔습니다. 강의 중 관련 주제를 할당하면서 자기소개를 하는 시간이 있었는데, 제가 이 과목을 수강신청한 것은 일단 분위기를 보기 위한 것이고 수강이 확정된 것은 아니라고 말씀드리니 최대권 교수님께서 노발대발하신 것입니다. 교수님께서 본인의 수업을 들으려고 작정하고 온 사람이 아니면 이 수업은 들을 수 없다고 하시며 "나가라"고 하시는 바람에 나누어주신 프린트물을 들고 나가려고 하였는데, 교수님께서 또 그걸 보시고는 프린트물은 놓고 나가라고 또 엄청 화를 내셨죠. 덕분에 전 대학원 첫학기 헌법수업에서 쫓겨나게 됩니다.

그래서 저는 그 다음시간에 있었던 "행정법" 수업에 들어가게 됩니다. 제가 수강신청했던 행정법 과목의 교수님은 학교에 부임하신지 2년 정도 밖에 안 되신 박정훈 교수님이셨는데, 최대권 교수님과는 너무나 다른 화기애애한 분위기와 전공/비전공자 관계없이 환영하신다는 말씀, 결정적으로 "나누어주신 프린트물은 이 과목을 수강하는지 여부와 관계없이 가져가라"는 말씀은 제 대학원 전공을 "행정법"으로 정하는 데 지대한 영향을 미치게 됩니다. 인생에는 우연이 참 많이 개입한다는 생각이 드는게, 대학원 첫 수업에서 쫓겨나지 않았다면 어쩌면 저는 헌법으로 먹고사는 사람이 되었을 수도 있었을 지도 모르는 일이니까요. 이상 헌법재판소 연필때문에 떠올린 제 대학원 첫 수업에 대한 이야기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