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년 4월 17일 목요일
헌법재판소 연필과 대학원 첫 수업
와이프가 근무하는 고등학교에 각종 직업소개를 하는 프로그램이 있는 모양인데, 헌법재판소 를 소개하면서 헌법재판소 소개 팸플릿, 헌법, 헌법재판소 로고가 그려진 연필이 사은품으로 배포되었던 것 같습니다. 저 연필은 은근히 고급스러움이 느껴져서 저도 가지고 싶네요.
헌법재판소 연필을 보니 제 대학원 첫 수업이 떠올라 끄적여 봅니다. 헌법은 기본 삼법 중에 학부 재학시절 제가 가장 좋아하던 과목이었습니다. 일단 헌법이 나라의 근본이 되는 기본적인 사항을 정하고 있는 법이고, 어떠한 법률이 헌법에 위반되는 경우에는 헌법재판소가 당해 법률의 위헌여부를 심사하여 무효화할 수 있으므로 최상위법인 헌법을 깊이 공부해 보는 것도 재미있을 것 같았습니다. 대학교 4학년 당시 다른 친구들은 졸업학점을 채우지 않는 방법으로 졸업을 미루고 1년 정도 학교를 더 다니면서 사법시험을 준비하는 경우가 많았는데, 재수를 하여 무작정 졸업을 미룰 수 없었던 저는 졸업학점을 꼬박 채워 수업을 들으면서, 사법시험 공부를 병행해야 했습니다. 게다가 졸업을 하게 되면 바로 영장이 나오게 되므로 졸업 후를 안배하기 위하여 대학원에 입학해야 했기 때문에 대학원 입시를 위한 공부도 해야 했습니다. 법대 대학원 입학은 두가지 전형 특차/정시로 나뉘어 있었습니다. 특차는 졸업시 학점이 좋은 친구들이 지도교수님의 추천으로 대학원에 입학하는 것으로, 전공당 1-2명씩 할당되어 있어서 이미 지원 당시에 전공이 정해지는 전형이고, 정시는 전공을 정하지 않고 시험을 보는 전형이었습니다. 특별히 성적이 좋지도 않았을 뿐더러 전공을 정하고 지도교수님께 추천받는 것은 생각할 처지가 아니었으므로 저는 당연히 정시 전형을 준비하였는데 덕분에 4학년 1학기는 졸업학점을 채우느라 빡빡한 수업일정과 사법시험 준비를 위한 기본서를 읽는 데에, 여름방학기간에는 새벽부터 오전에 이르는 1차시험 모의고사반과 대학원 입시를 위한 준비로, 4학년 2학기는 역시 졸업학점을 채우기 위한 수업일정과 얼마 안남은 1차 시험 준비로 다 가버렸습니다. 재수를 한 1994년과 대학원입시 및 사법시험 1차 준비를 한 1998년이 아마도 제 인생 중 가장 빡빡했던 기간이었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대학원 입시는 외국어와 법학 두 부문으로 이루어져 있었습니다. 외국어는 기본적으로 영어 과목을 통과해야 하고, 독어/불어/일어 등 제2외국어 과목을 하나 더 통과해야 했습니다. 영어는 고등학교 때까지 웬만큼 했다고 생각했으므로 특별히 준비하지는 않고, 토플책을 하나 사서 보았는데 1/4도 안보고 시험장에 갔었고, 독일어는 사법시험 1차 과목으로 준비를 했으므로 그걸로 준비를 대신했습니다. 외국어는 두 과목 다 일정 점수를 넘겨야 합격이 되는데 그 일정 점수가 그리 높지 않아서 큰 실수를 하지 않으면 대부분 합격을 하는 분위기였습니다. 법학 과목은 기출문제가 족보로 돌아다니고 있었고, 교수님들께서는 기출문제 중에서 돌아가면서 문제를 내신다는 소문이었는데, 역시나 기출문제에서 문제가 출제되어 꾸역꾸역 답안지를 채워 4학년 졸업, 이듬해 대학원 입학을 할 수 있었습니다.
어쨌든 학부 때 가장 좋아했던 과목이 헌법이었으므로 대학원에서 원래는 헌법을 전공으로 택하려 했었습니다. 그래서 99년 1학기에 개설된 대학원 헌법과목을 수강하려고 하였죠. 특차가 아니었기 때문에 특별히 급하게 전공을 정할 것도 아니었고 일단 대학원 헌법수업은 뭐가 다를까 하고 첫 수업에 들어갔습니다. 당시 서울대 법대에는 헌법교수님이 권영성, 김철수(김철수 교수님은 98. 8.에 퇴임하셨지만 명예교수 자격으로 강의는 개설하고 계셨습니다), 최대권 이렇게 세 분이 계셨습니다. 그런데 권영성 교수님은 99. 8.에 퇴임을 앞두신 때문인지 강의가 개설되지 않았었고, 최대권 교수님만 강의를 개설하셨기 때문에 최대권 교수님 수업에 대한 수강신청을 할 수 밖에 없었습니다. 물론 헌법에 관심이 있었지만 첫시간이므로 분위기가 어떤지 탐색하려는 목적이 강했습니다. 그런데 이게 오산이었던 것이 강의 첫시간부터 분위기가 예상과 달리 흘러갔습니다. 강의 중 관련 주제를 할당하면서 자기소개를 하는 시간이 있었는데, 제가 이 과목을 수강신청한 것은 일단 분위기를 보기 위한 것이고 수강이 확정된 것은 아니라고 말씀드리니 최대권 교수님께서 노발대발하신 것입니다. 교수님께서 본인의 수업을 들으려고 작정하고 온 사람이 아니면 이 수업은 들을 수 없다고 하시며 "나가라"고 하시는 바람에 나누어주신 프린트물을 들고 나가려고 하였는데, 교수님께서 또 그걸 보시고는 프린트물은 놓고 나가라고 또 엄청 화를 내셨죠. 덕분에 전 대학원 첫학기 헌법수업에서 쫓겨나게 됩니다.
그래서 저는 그 다음시간에 있었던 "행정법" 수업에 들어가게 됩니다. 제가 수강신청했던 행정법 과목의 교수님은 학교에 부임하신지 2년 정도 밖에 안 되신 박정훈 교수님이셨는데, 최대권 교수님과는 너무나 다른 화기애애한 분위기와 전공/비전공자 관계없이 환영하신다는 말씀, 결정적으로 "나누어주신 프린트물은 이 과목을 수강하는지 여부와 관계없이 가져가라"는 말씀은 제 대학원 전공을 "행정법"으로 정하는 데 지대한 영향을 미치게 됩니다. 인생에는 우연이 참 많이 개입한다는 생각이 드는게, 대학원 첫 수업에서 쫓겨나지 않았다면 어쩌면 저는 헌법으로 먹고사는 사람이 되었을 수도 있었을 지도 모르는 일이니까요. 이상 헌법재판소 연필때문에 떠올린 제 대학원 첫 수업에 대한 이야기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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