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년 4월 3일 목요일

[책 소개] 감염된 언어



고종석, 감염된 언어, 개마고원(2007)

요즈음 부쩍 고종석 선생님의 책을 읽게 되었는데 글들 중 많은 부분이 1990년대 후반에 씌어진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90년대 후반은 제 학부 3-4학년 때였는데 그 당 시에 저 는  사법시험 공부를 시작하고 정신없을 시기이기도 하였으려니와 그 때 위 책에 실려 있던 글들을 탐독하기에는 아직 생각이 여물지 않았을 것이어서 차라리 지금 저 책을 접한게 다행일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한글, 한국어, 한자, 일본어, 번역과 같은 우리 말글을 제대로 이해하는데 필수적인 개념의 뭉치들을 이처럼 쉽게 풀어놓을 수 있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을 것입니다. 저자가 한국어, 한자, 일본어, 프랑스어와 같은 언어를 상당히 능란하게 사용해본 경험이 있고, 그 언어들의 차이에 대하여 깊이 생각을 해보지 않았다면 결코 이런 글들을 설득력있게 쓸 수 없었을 것이구요. 아울러 2000년대 초반 조선일보에서 소개되었던 복거일의 영어공용화론에 대해서 당시 저는 복거일씨에게는 죄송하게도 "저런 생각을 무려 공개적으로 이야기하다니 *** 아니야?"라고 생각했었는데, 시간이 한참 흐르고 난 뒤에 우리 사회에서 정보습득의 도구로서 영어가 차지하는 위치를 몸으로 접해보고 나서야 새삼 그 의견에 대해서 다시 이해하게 되었다는 점을 고백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70-80년대를 지나쳐 왔던 사람에게 내면화되어 있던 반공주의, 자유주의, 개인주 에 대해서 젊은 시절부터 느꼈던 수치심으로부터의 해방이 고종석의 한국사회에서의 이데올로기적 위치를 결정했다는 사실을 알게 된 것은 개인적으로 제게 이 책의 가장 큰 수확입니다. 더불어 고종석 선생님이 스승으로 생각하시는 저에게는 로스트메모리스라는 폭망한 한국영화의 원작인 "묘비를 찾아서"의 원작자로 더 기억되는 복거일의 저작들을 한번 살펴보아야 겠다는 결심을 하게 했다는 점을 부기해 두고자 합니다.

다음은 이 책을 읽으면서 인상적이었던 구절들 입니다.

언어순결주의, 즉 외국어의 그림자와 메아리에 대한 두려움에서 외국인 노동자에 대한 박해, 혼혈인 혐오, 북벌, 정왜의 망상, 장애인 멸시까지는 그리 먼 걸음이 아니다. 우리가 잊지 말아야 할 것은 '순화'의 충동이란 흔히 '죽임'의 충동이란 사실이다. -30면.

그러나 자신을 객관화할 수 있을 만큼 성숙한 한국인이라면 제 언어를 가리킬 때도 (국어가 아니라) 한국어라고 부를 것이다. -79면.

일반적으로 한 언어와 한 문자체계의 결합이 필연적인 경우는 없다. 터키어는 오래도록 아랍문자로 적다가 제1차 세계대전 이후 터키에 공화제가 들어서면서 로마문자로 적기 시작했고, 오래도록 한자로 적었던 베트남어 역시 지금은 로마문자로 적고 있다. -82-83면.

한국어 텍스트가 오로지 한글로 표기된다고 하더라도, 그 한글의 외피 상당수 안에는 한자의 속옷이 있고, 이 속옷의 질감을 느끼지 못하는 한 한국어는 제대로 이해되지 않는다. -88면.

자유주의자를 자처하는 지식인들은 우리 사회에 수두록하지만, 그들 가운데 민중주의나 파시즘에 감염되지 않은 사람들은 아주 드물다. 그 드문 사람들 가운데서도, 자유주의라는 주제를 본격적으로 천착한 것은 복거일이 거의 처음이 아닌가 한다. 그렇게 된 사정은 우리 사회의 이념적 분위기가 아주 억압적이었다는 데 그 이유가 있겠지만, 바로 그 점이 복거일의 지적 독립성을 돋보이게 한다. -108면.

내가 이해하는 자유주의자는 만인이 파시즘을 옹호하고, 만인이 볼셰비즘을 지지해도 이를 수락하지 않는 정신의 이름이다. 그 자유주의자는 비판을 통해서, 그리고 그것만으로 충분치 않을 때는 폭력에 호소해서라도 전체주의를 분쇄할 각오가 돼 있는 사람이다. 그는 사상의 자유시장을 옹호하지만, 그 사상의 자유시장을 근본적으로 부정하는 사상에 대해서만은 너그러울 수 없는 사람이다. 그런 점에서 자유주의자는 때때로 반민주주의자다. 나는 복거일의 글에서 이따금씩 보이는 민주주의의 과잉이 곤혹스럽다. -110-111면.

일본인들의 위대함은 유럽문화의 전지구화를 마무리했다는 데에 있는 것이 아니라, 그 문화를 게걸스럽게 흡수하면서도 한자라는 동아시아 문명의 공통 유산 속에 완전히 녹여버렸다는 데에 있다. -125면.

공용어로서의 영어를 반대한다는 뜻은, 지식과 정보를 특정집단이 독점하는 걸 허락하겠다는 뜻이다. 라틴어와 한문을 읽고 쓸 수 있었던 중세의 엘리트들이 지식을 독점했듯이 말이다. 지식과 정보는 곧 권력이다. 영어가 공용어가 되든 안되든, 우리 사회의 지배계층은 자기 자식들에게 영어를 가르칠 것이다. 그리고 영어에 익숙해진 그들의 자식들은 영어에 익숙하지 못해 지식과 정보에서 소외된 일반 대중의 자식들 위에 다시 군림할 것이다. -206면.

복거일은 어느 자리에서 "자신이 틀릴 가능성을 아예 배제함으로써 자신이 태어난 세상의 철학적 틀 속에 갇히는 것이 모든 종교적 지식체계의 운명"이라고 말했다. -208면.

그렇다면 우리는 당연히 오오사카를 오오사카로 부르고, 타나카를 타나카로 불러야 한다. 타나카를 '전중'으로 불러야 한다면, 철학자 화이트헤드를 우리는 '백두'라고 불러야 할 것이다. -235면.

60년대에 박정희 정권의 중앙정보부가 유럽의 한국인 학자예술가들을 간첩으로 몰아 조작한 사건을 사람들은 '동베를린 사건'으로보다 '동백림 사건'으로 더 기억하고 있다.-255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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