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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년 6월 10일 수요일

한자어 中樞





지인의 페이스북 포스팅을 보다가 건물 관리사무소장님께서 붙여놓은 공고문이 한자투성이라 마치 고시공부 처음 시작할 당시 "곽서"를 보는 듯하였다는 소회가 문득 곽서에서 보았던 한 단어를 생각나게 하였습니다.

사실 초등학교 4-5학년때부터 신문을 탐독하였었기 때문에(당시는 국한문 혼용이라 한자를 모르면 신문을 읽을 수 없었음) 대학교 입학 당시 왠만한 한자는 다 읽을 수 있었는데, 1학년 겨울 곽서를 읽으면서 "앗 내가 모르는 한자가?" 하는 생각이 들게 만드는 한자를 발견하였습니다.

바로 中樞(중추)이 글자였던 것으로 생각되는데요. 민법총칙에서였을 텐데, 어떠한 제도 내지 개념이 "...에 있어서 中樞" 라는 취지의 문장이었습니다. 지금은 그 문장은 홀랑 기억이 안나고 단어만 어려웠기 때문에 바로 읽지 못하고 표시해 두었다가 옥편에서 찾아서 읽었던 기억이 납니다.  고시공부 이후 거의 방치하다가 이번에 큰맘먹고 장만한 "곽윤직/김재형 공저 민법총칙 9판, 물권법 8판"책은 갑, 을, 병을 제외한 모든 표현을 한글로 바꾸고 가끔 개념이나 중요용어만 괄호 안에 한자를 혼용하는 정도로 한자 사용이 줄어들었습니다. 어떠한 지식을 전달하는 도구 나아가 정보를 독점하였던 시대에서 모든 사람이 너무 많은 정보에 어쩔줄 몰라하는 시대로 너무도 빨리 숨가쁘게 변해왔구나 하는 소회가 듭니다.

2015년 3월 24일 화요일

창의적인 맞춤법 오류


아마 다음 기사(충격적인 맞춤법 실수 1위, 교육뉴스 2014. 10. 9.자)를 다시 그래픽으로 정리한 것이 아닌가 싶은데 지금봐도 창의적인 맞춤법 실수가 아닌가 싶습니다. 저는 일해라절해라에서 빵 터졌습니다. 사실 그렇게 이해해도 전혀 뜻에 지장이 없으니 저렇게 쓰는 사람이 많아지면 표준어나 맞춤법 자체가 바뀌는 것도 불가능한 것은 아닐듯 싶네요.

감기 빨리 낳으세요. (나으세요)
어의가 없어요. (어이)
얼마 전에 들은 예기가 있는데요. (얘기)
저한테 일해라절해라 하지 마세요. (이래라저래라)
이 정도면 문안하죠. (무난)
구지 그렇게까지 해야 할까요? (굳이)
교수님이 오시래요. (오라셔요)
설앞장이 안 열려요. (서랍장)
무리를 일으켜서 죄송합니다. (물의)
에어컨 시래기가 고장났어요. (실외기)

아무래도 한자가 신문에서 사라지면서 한자단어가 왜 그렇게 발음되어야 하는 것인지 알지 못한 사람이 늘어난 탓도 큰 것 같습니다. 무난의 한자어가 無難이었다는 것을 알았다면 "문안"으로 읽을 수 없을 것이고, 물의의 한자어가 物議라는 것을 안다면 이것을 "무리"라고 읽을 수는 없었을 테니까요. 중국이 중요한 교역국으로 부상하고 거리에 중국사람을 쉽게 볼 수 있게 되고, 지하철역에 한글 옆에 병기되는 한자가 늘어나는 것을 보면 머지 않아 한자교육도 부활하게 되는게 아닌가 하는 생각을 들게 하는 요즘입니다.

2014년 4월 3일 목요일

[책 소개] 감염된 언어



고종석, 감염된 언어, 개마고원(2007)

요즈음 부쩍 고종석 선생님의 책을 읽게 되었는데 글들 중 많은 부분이 1990년대 후반에 씌어진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90년대 후반은 제 학부 3-4학년 때였는데 그 당 시에 저 는  사법시험 공부를 시작하고 정신없을 시기이기도 하였으려니와 그 때 위 책에 실려 있던 글들을 탐독하기에는 아직 생각이 여물지 않았을 것이어서 차라리 지금 저 책을 접한게 다행일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한글, 한국어, 한자, 일본어, 번역과 같은 우리 말글을 제대로 이해하는데 필수적인 개념의 뭉치들을 이처럼 쉽게 풀어놓을 수 있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을 것입니다. 저자가 한국어, 한자, 일본어, 프랑스어와 같은 언어를 상당히 능란하게 사용해본 경험이 있고, 그 언어들의 차이에 대하여 깊이 생각을 해보지 않았다면 결코 이런 글들을 설득력있게 쓸 수 없었을 것이구요. 아울러 2000년대 초반 조선일보에서 소개되었던 복거일의 영어공용화론에 대해서 당시 저는 복거일씨에게는 죄송하게도 "저런 생각을 무려 공개적으로 이야기하다니 *** 아니야?"라고 생각했었는데, 시간이 한참 흐르고 난 뒤에 우리 사회에서 정보습득의 도구로서 영어가 차지하는 위치를 몸으로 접해보고 나서야 새삼 그 의견에 대해서 다시 이해하게 되었다는 점을 고백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70-80년대를 지나쳐 왔던 사람에게 내면화되어 있던 반공주의, 자유주의, 개인주 에 대해서 젊은 시절부터 느꼈던 수치심으로부터의 해방이 고종석의 한국사회에서의 이데올로기적 위치를 결정했다는 사실을 알게 된 것은 개인적으로 제게 이 책의 가장 큰 수확입니다. 더불어 고종석 선생님이 스승으로 생각하시는 저에게는 로스트메모리스라는 폭망한 한국영화의 원작인 "묘비를 찾아서"의 원작자로 더 기억되는 복거일의 저작들을 한번 살펴보아야 겠다는 결심을 하게 했다는 점을 부기해 두고자 합니다.

다음은 이 책을 읽으면서 인상적이었던 구절들 입니다.

언어순결주의, 즉 외국어의 그림자와 메아리에 대한 두려움에서 외국인 노동자에 대한 박해, 혼혈인 혐오, 북벌, 정왜의 망상, 장애인 멸시까지는 그리 먼 걸음이 아니다. 우리가 잊지 말아야 할 것은 '순화'의 충동이란 흔히 '죽임'의 충동이란 사실이다. -30면.

그러나 자신을 객관화할 수 있을 만큼 성숙한 한국인이라면 제 언어를 가리킬 때도 (국어가 아니라) 한국어라고 부를 것이다. -79면.

일반적으로 한 언어와 한 문자체계의 결합이 필연적인 경우는 없다. 터키어는 오래도록 아랍문자로 적다가 제1차 세계대전 이후 터키에 공화제가 들어서면서 로마문자로 적기 시작했고, 오래도록 한자로 적었던 베트남어 역시 지금은 로마문자로 적고 있다. -82-83면.

한국어 텍스트가 오로지 한글로 표기된다고 하더라도, 그 한글의 외피 상당수 안에는 한자의 속옷이 있고, 이 속옷의 질감을 느끼지 못하는 한 한국어는 제대로 이해되지 않는다. -88면.

자유주의자를 자처하는 지식인들은 우리 사회에 수두록하지만, 그들 가운데 민중주의나 파시즘에 감염되지 않은 사람들은 아주 드물다. 그 드문 사람들 가운데서도, 자유주의라는 주제를 본격적으로 천착한 것은 복거일이 거의 처음이 아닌가 한다. 그렇게 된 사정은 우리 사회의 이념적 분위기가 아주 억압적이었다는 데 그 이유가 있겠지만, 바로 그 점이 복거일의 지적 독립성을 돋보이게 한다. -108면.

내가 이해하는 자유주의자는 만인이 파시즘을 옹호하고, 만인이 볼셰비즘을 지지해도 이를 수락하지 않는 정신의 이름이다. 그 자유주의자는 비판을 통해서, 그리고 그것만으로 충분치 않을 때는 폭력에 호소해서라도 전체주의를 분쇄할 각오가 돼 있는 사람이다. 그는 사상의 자유시장을 옹호하지만, 그 사상의 자유시장을 근본적으로 부정하는 사상에 대해서만은 너그러울 수 없는 사람이다. 그런 점에서 자유주의자는 때때로 반민주주의자다. 나는 복거일의 글에서 이따금씩 보이는 민주주의의 과잉이 곤혹스럽다. -110-111면.

일본인들의 위대함은 유럽문화의 전지구화를 마무리했다는 데에 있는 것이 아니라, 그 문화를 게걸스럽게 흡수하면서도 한자라는 동아시아 문명의 공통 유산 속에 완전히 녹여버렸다는 데에 있다. -125면.

공용어로서의 영어를 반대한다는 뜻은, 지식과 정보를 특정집단이 독점하는 걸 허락하겠다는 뜻이다. 라틴어와 한문을 읽고 쓸 수 있었던 중세의 엘리트들이 지식을 독점했듯이 말이다. 지식과 정보는 곧 권력이다. 영어가 공용어가 되든 안되든, 우리 사회의 지배계층은 자기 자식들에게 영어를 가르칠 것이다. 그리고 영어에 익숙해진 그들의 자식들은 영어에 익숙하지 못해 지식과 정보에서 소외된 일반 대중의 자식들 위에 다시 군림할 것이다. -206면.

복거일은 어느 자리에서 "자신이 틀릴 가능성을 아예 배제함으로써 자신이 태어난 세상의 철학적 틀 속에 갇히는 것이 모든 종교적 지식체계의 운명"이라고 말했다. -208면.

그렇다면 우리는 당연히 오오사카를 오오사카로 부르고, 타나카를 타나카로 불러야 한다. 타나카를 '전중'으로 불러야 한다면, 철학자 화이트헤드를 우리는 '백두'라고 불러야 할 것이다. -235면.

60년대에 박정희 정권의 중앙정보부가 유럽의 한국인 학자예술가들을 간첩으로 몰아 조작한 사건을 사람들은 '동베를린 사건'으로보다 '동백림 사건'으로 더 기억하고 있다.-255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