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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년 1월 15일 금요일

[책 소개] 민법학의 기본원리



권영준, 민법학의 기본원리, 박영사(2020)

동료 변호사님의 페북을 보다가, 극찬을 하시는 법서(?)가 있어서 구입해 읽어보았습니다. 민법 관련해서는 워낙 기본 교과서(곽서 는 이미 구시대의 유물이 되었더군요)에서 기본원리에 대한 논쟁에 대한 내용이 상당히 들어있는 편이었고, 그에 기반해서 신진학자(양창수, 이은영 교수님이 비교적 신진학자였는데, 현재는 이분들도 원로급이 되어버리셨네요)들이 이에 대한 활발한 비판과 이론전개를 지켜보는 정도였는데, 민법을 관통하는 기본원리들을 여러 각도에서 분석하고, 실제 사안과도 연결하는 저서를 보게 되다니 놀랍다는 생각이 듭니다. 사안을 바라보는 시점을 이분법에 기반하여 명쾌하게 설명하면서도, 사전에 그 약점이나 부족한 점에 대해서도 충분히 고려를 하였다는 것을 보여주는 기술도 깔끔합니다. 전문적인 내용을 다루면서도 설명은 충분히 친절하다는 점도 높이 사고 싶습니다. 변호사를 비롯한 법조직역 종사자들에게 강력히 추천합니다. 다음은 인상적인 부분들입니다.

법관의 사실인정의 본질은 당사자들의 불완전한 주장과 증거를 소재로 하여 경험칙에 기초한 평가작용을 함으로써 사실을 규범적으로 형성해 나가는 데에 있다는 것이 더 솔직한 고백인지 모른다.-26면.

불법행위법에서의 법리는 다른 민법 영역의 법리에 비하여 그 강고함과 정교함이 떨어지는 대신 이익형량적 사고가 지배한다.- 29면.

영국에는 법의 수호자로서 법관을 신뢰하고 법관에게 절대적 권위를 부여하는 전통이 존재하였다. 독일에는 법관에 못지 않게 법학자의 권위가 높고 이들을 통해 법의 내용이 상당 부분 정리되어 나가는 전통이 존재하였다. 프랑스에는 법관에 대한 불신에 기초하여 법관을 "법률을 말하는 입"으로 바라보며 입법자를 우위에 두는 전통이 존재하였다.-44면.

가령 국제사회에서 중국의 경제력과 정치적 영향력은 매우 커졌지만 중국 법제는 보편성과 합리성이 떨어질 뿐 아니라 그 법제의 장점을 논리적으로 설명하여 다수 국가의 대표들을 설득시킬 수 있는 개인의 역량도 충분하지 못한 경우가 많다.-48면.

법률행위와 같이 매우 중요한 대륙법계 국가들의 법 개념이 영미법계 언어로는 쉽게 번역하기 어려운가 하면, 약인과 같이 매우 중요한 영미법계 국가들의 법 개념이 대륙법계의 언어로 완전히 정확하게 옮겨지기 어려운 현상이 발생하기도 한다.-72면.

이론은 법의 자양분을 제공하고, 법리는 법의 주된 모습을 형성하며, 실무는 사건과의 맥락 아래에서 법을 구체화한다.-75면.

민사재판에 있어서 이론, 법리, 실무의 기능을 요약하면 "안정화(이론)"-> "최적화(법리)"->"정당화(이론)"로 정리할 수 있다.-78면.

실무는 법리의 존중 위에서 행해지는 것이지만, 이는 맹목적 복종이 아니라 비판적 존중 내지 성찰적 추정이어야 한다.-78면.

민법의 3대 기본원리라고 일컬어지는 사유재산권 존중의 원칙, 사적 자치의 원칙, 과실책임의 원칙은 대체로 개인의 자유를 넓게 보장하려는 사상적 기초 위에 서 있다.-89면.

대법원은 부동산실명법 규정의 문언, 내용, 체계와 입법 목적 등을 종합하면, 부동산실명법을 위반하여 무효인 명의신탁약정에 따라 명의수탁자 명의로 등기를 하였다는 이유만으로 그것이 당연히 불법원인급여에 해당한다고 단정할 수 없다고 하여 종전 판례의 입장을 유지하였다.-134면.

뉴질랜드의 1972년 사고보상법은 국가는 모든 인신사고에 대하여 가해자의 과실 유무를 불문하고 피해자의 손해(의료비와 재활비, 일실이익의 80%, 27,000뉴질랜드 달러를 상한선으로 하는 비재산적 손해, 기타 필요비용 상당)를 보상해주는 제도를 그려내고 있다. 이는 공동체책임의 이념에 의거하여 국가의 재원에 의하여 손해를 전보해 주는 것이다. 한편 그 범위 내에서는 피해자의 가해자에 대한 손해배상청구소송이 금지된다. 이는 공적 부조제도가 불법행위법의 기능을 떠맡게 된 대표적인 예이다.-185면.

특히 형사재판이 민사재판보다 훨씬 엄껵한 절차와 원리에 따라 제재에 이르는 점을 감안한다면, 징벌적 손해배상을 통한 사적 제재의 용인은 민사재판을 통한 형사절차원리의 회피문제를 야기한다.-197면.

징벌적 손해배상제도는 불법행위의 효과로 손해의 전보만을 인정하는 우리 민사법 체계에서 인정되지 아니하는 형벌적 배상으로서 우리나라 공서양속에 반할 수 없어 승인할 수 없다는 취지의 하급심 판결로 서울지법 동부 판 1995. 2. 10., 93가합19609 참조. 이 사건의 항소심판결(서울고판 1996. 9. 18. 95나14840)과 상고심 판결(대판 1997. 9. 9., 96다47517)애서는 징벌적 손해배상에 대한 명시적 언급 없이 1심 판결을 그대로 지지하였다.-198면.

합리적인 법은 합리적으로 기대할 수 없는 것을 강제한 뒤 이를 지키지 못하였다고 하여 책임을 부과하지 않는다.-211면.

국가기관이 지키라고 한 것을 모두 지켰는데도 책임을 질 수 있다는 생각은 그 자체로 행위자를 위축시킨다.-212면.

위치정보의 보호 및 이용에 관한 법률 제15조는 소유자의 동의를 얻지 아니하고는 이동성이 있는 물건의 위치정보를 수집, 이용 또는 제공하여서는 아니된다고 규정하는데, 이는 소유권의 보호범위가 그 소유물의 위치정보 통제에까지 미친다는 것을 의미하는가?-236-237면.

저작권의 보호기간은 1710년 영국의 앤 여왕법에서 출판일로부터 14년간이었던 것이 지금은 우리나라를 비롯해 많은 나라에서 저작자 사후 70년으로 늘어났다.-238면.

오늘날의 독일의 소유권개념이 로마적 소유권관념과 게르만, 독일적 소유권관점이 서로 맞서는 긴장영역에서 성립하였다고 하는 점은 대체로 요즈음도 역시 학식 있는 법률가의 법사학적인 기초지식에 속한다.-257면[양창수 역, 게르만적 소유권개념의 이론에 대하여(칼 크로쉘) 중]

오히려 법률해석은 자연적인 상태의 법률 텍스트를 경쟁적인 여러가지 관점의 각축장 속에서 가장 설득력 있는 상태로 부활시키는 고도의 규범 가공 작용이다.-315면.

법관은 언어를 다루는 자로서 세상사의 이치와 운영 규칙을 담고 있는 문언의 해석을 통하여 인간의 법적 운명을 좌우한다. 법은 곧 말을 둘러싼 다툼이다.-317면.

조세법률주의 원칙상 조세법규는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 법문대로 해석하여야 하고, 합리적 이유 없이 이를 확장해석하거나 유추해석하는 것은 허용되지 않는다.-324면.

비유하여 이야기하자면, 민법은 앞마당에서 벌어지고 있는 숱한 일들에 흔들림없이 고고하게 안방에 앉아 있으면서 집안을 좌우하는 중대사에 대해서만 조언을 해주는 안주인 같은 법이다.-332면.

이 판결 이후인 2007. 5. 17. 신설된 자동차손해배상보장법 제11조의2는 교통사고 입원환자의 외출 또는 외박에 대한 의료기관의 관리(외출 등의 허가, 기록관리, 보험사업자 열람)에 관하여 규정하고 있는데, 이것도 그러한 노력의 일환으로 볼 수 있다.-397-398면.

사후적 관점은 구체적 타당성 있는 결론이 나쁜 선례가 될 위험성을 감수하고, 사전적 관점은 좋은 선례를 정립하기 위해 해당 사건에서의 불편한 결과를 감수한다.-403면.

미국의 한 연구에 따르면 상장회사들은 준거법으로 캘리포니아주의 법보다 뉴욕주의 법을 현저하게 선호하는데, 그 이유는 뉴욕주의 법은 구두증거 배제 법칙 및 명백성 원칙을 중시하여 사전에 예측가능한 계약해석을 선호하는 반면, 캘리포니아 주는 문언 이외의 다양한 맥락들을 참조하여 사후적으로 공평타당한 계약해석을 선호하기 떄문이라는 것이다.-408면.

법관은 해당 사건에 관한 한 어떤 정책가보다 많은 정보와 지식을 가지고 있다. 따라서 해당 사건의 재판에 관한 한 법관의 판단은 가장 높은 권위를 획득한다.-413면.

일반인들의 입장에서 판결은 먼 나라 이야기일 뿐이다. 관련 사건에 연루되었을 떄 비로소 관련 판결은 거인 같은 존재감을 드러낸다.-413-414면.

수많은 가치와 이익이 각축하는 규범의 전장에서 법관은 한편으로 법의 이상을, 다른 한편으로 국민의 목소리를 마주하며 양자를 연결시켜 주는 역할을 수행해야 한다.법관은 사회현실 속에서 벌어지는 전문적 분쟁을 실무적으로 능숙하게 '분석'하고 해결할 수 있는 스페셜리스트이면서도, 근본적인 이론이나 가치 체계, 일반적인 법리에 정통하여 세부 문제들을 하나로 '통합'해낼 수 있는 제너럴리스트라야 한다.-425면.


2016년 7월 30일 토요일

일본 민법과 우리 민법상 법정상속분 규정 차이


일본민법상 상속인들의 법정상속분에 관한 규정과 우리 민법의 법정상속분에 관한 규정들의 차이점 중 가장 중요한 것은 우리 민법은 배우자의 상속분을 다른 공동상속인들의 상속분에 5할을 가산하고 있음에 대하여, 일본민법은 배우자가 피상속인의 자와 공동으로 상속할 때에는 상속재산의 1/2를, 피상속인의 직계존속과 상속할 때에는 상속재산의 2/3을, 피상속인의 형제자매와 공동으로 상속할 때에는 상속재산의 3/4를 각 상속하도록 되어 있으며 다른 공동상속인들은 배우자가 상속한 나머지를 원칙적으로 균등한 비율로 상속한다는 것입니다.

예를 들어 상속인이 배우자와 2명의 자녀인 경우/상속인이 배우자와 부모인 경우/상속인이 배우자와 2명의 형제인 경우에 상속분은 다음과 같게 됩니다. 자녀와 부모가 없어서 3순위 상속인이 형제자매가 되지만, 배우자가 있는 경우, 우리나라는 배우자가 단독상속(민법 제1003조 제1항)을 합니다.

일본 : 배우자 1/2, 자녀 A 1/4, 자녀 B 1/4
우리나라 : 배우자 3/7, 자녀 A 2/7, 자녀 B 2/7

일본 : 배우자 2/3, 부 1/6, 모 1/6
우리나라 : 배우자 3/7, 부 2/7, 모 2/7

일본 : 배우자 3/4, 형제 A 1/8, 형제 B 1/8
우리나라 : 배우자 1, 형제 A, B 0

상속 관련 문헌[윤진수, 초과특별수익이 있는 경우 구체적 상속분의 산정방법, 서울대학교 법학 38권 2호(104호)(1997년), 106면]을 찾아보다가 알게 되었네요.

2015년 12월 18일 금요일

재혼금지기간

트위터를 하다보니 다음과 같은 소식에 깜짝 놀라시는 분을 발견했습니다.
일본에 여성의 경우 이혼 후 6개월동안 재혼이 금지되는 조항이 남아 있었는데, 올해에야 그 조항이 삭제된 것을 알게 되자 우리나라에도 없는 제도를 일본이 유지하고 있었던 것에 충격을 받으신 모양입니다.  그러나 우리 민법도 일본법을 계수하여 만들어졌기 때문에 2005년까지는 일본법과 동일한 재혼금지조항이 존재하고 있었습니다. 다만 호주제도 폐지와 함께 일본보다 먼저 사라진 것 뿐입니다.

2005. 3. 31. 개정되기 전 민법 제811조가 바로 그것입니다.
  여자는 혼인관계의 종료한 날로부터 6월을 경과하지 아니하면 혼인하지 못한다. 그러나 혼인관계의 종료후 해산한 때에는 그러하지 아니하다.

그러나 우리 민법은 2005. 3. 31. 개정으로 민법 제811조를 삭제합니다. 그 이유는 "부성추정의 충돌을 피할 목적으로 여성에 대하여 6개월의 재혼금지기간을 두고 있는 것은 여성에 대한 차별적인 규정으로 비쳐질 수 있고, 친자관계감정기법의 발달로 이러한 제한 규정을 필요성이 없어졌으므로 이를 삭제"한다는 것입니다.

재산법 분야의 개정에 비해 가족법 분야는 개정이 잦긴 하지만 실제 사건에서 문제되는 경우가 많지 않아 개정된 내용을 모르는 경우가 종종 발생하곤 합니다. 일본에서의 소식으로 우리 민법도 확인할 수 있는 좋은 기회가 되었네요.

2015년 6월 10일 수요일

한자어 中樞





지인의 페이스북 포스팅을 보다가 건물 관리사무소장님께서 붙여놓은 공고문이 한자투성이라 마치 고시공부 처음 시작할 당시 "곽서"를 보는 듯하였다는 소회가 문득 곽서에서 보았던 한 단어를 생각나게 하였습니다.

사실 초등학교 4-5학년때부터 신문을 탐독하였었기 때문에(당시는 국한문 혼용이라 한자를 모르면 신문을 읽을 수 없었음) 대학교 입학 당시 왠만한 한자는 다 읽을 수 있었는데, 1학년 겨울 곽서를 읽으면서 "앗 내가 모르는 한자가?" 하는 생각이 들게 만드는 한자를 발견하였습니다.

바로 中樞(중추)이 글자였던 것으로 생각되는데요. 민법총칙에서였을 텐데, 어떠한 제도 내지 개념이 "...에 있어서 中樞" 라는 취지의 문장이었습니다. 지금은 그 문장은 홀랑 기억이 안나고 단어만 어려웠기 때문에 바로 읽지 못하고 표시해 두었다가 옥편에서 찾아서 읽었던 기억이 납니다.  고시공부 이후 거의 방치하다가 이번에 큰맘먹고 장만한 "곽윤직/김재형 공저 민법총칙 9판, 물권법 8판"책은 갑, 을, 병을 제외한 모든 표현을 한글로 바꾸고 가끔 개념이나 중요용어만 괄호 안에 한자를 혼용하는 정도로 한자 사용이 줄어들었습니다. 어떠한 지식을 전달하는 도구 나아가 정보를 독점하였던 시대에서 모든 사람이 너무 많은 정보에 어쩔줄 몰라하는 시대로 너무도 빨리 숨가쁘게 변해왔구나 하는 소회가 듭니다.

2014년 12월 31일 수요일

변제자대위



대법원 이메일서비스(관련 포스팅)에서 날아온 판결(대법원 2014. 12. 18. 선고 2011다50233 판결)을 보고 변제자대위에 대해서 정리해 보았습니다.

채무자 대신에 채무를 변제함으로써 채권자를 대위한 자는 자기의 구상권의 범위 내에서 채권 및 그 담보에 관한 권리를 행사할 수 있(민법 제482조 제1항)는데, 이를 변제자대위라고 합니다. 대위변제가 있으면 채무자는 변제자에 변제에 의하여 채무를 면하지 못하고, 변제자를 새로운 채권자로 두게 됩니다. 민법은 이중 법정대위자(법에 의하여 당연히 채권자를 대위할 수 있는 사람)가 여럿일 때 그 상호간의 관계에 대하여 정하고 있습니다.

1. 보증인과 (담보목적물의) 제3취득자와의 관계(민법 제482조 제2항 제1호, 제2호)
보증인은 제3취득자에 대하여 채권자를 대위할 수 있음(단, 미리 전세권, 저당권에 대위의 부기등기 필요)
제3취득자는 보증인에 대하여 채권자를 대위할 수 없음
2. 제3취득자 상호간(민법 제482조 제2항 제3호)
각 부동산의 가액에 비례하여 다른 제3취득자에 대하여 채권자를 대위
3. 물상보증인 상호간(민법 제482조 제2항 제4호)
각 부동산의 가액에 비례하여 다른 제3취득자에 대하여 채권자를 대위
4. 보증인과 물상보증인 상호간(민법 제482조 제2항 제5호)
그 인원수에 비례하여 채권자를 대위

그런데 물상보증인과 제3취득자와의 사이의 관계에 대해서는 민법에서 명확히 규정하고 있지 않았고, 종전 판례(대법원 1974. 12. 10. 선고 74다1419 판결)는 제3취득자가 "보증인에 대하여는 대위할 수 없으나 물상보증인과는 각 담보재산의 가액에 비례하여 대위를 인정"하고 있었는데, 이번 대법원 전원합의체 판결(대법원 2014. 12. 18. 선고 2011다50233 판결)은 채무자로부터 담보부동산을 취득한 제3채무자는 "채무를 변제하거나 담보권의 실행으로 소유권을 잃더라도 물상보증인에 대하여 채권자를 대위할 수 없다"고 하여 종전 판례를 변경하였습니다. 그 이유는 우리 민법이 보증인과 제3채무자 사이에는 제3채무자가 보증인을 대위할 수 없도록 하고 있는 반면, 보증인과 물상보증인은 인원수에 비례하여 채권자를 대위할 수 있도록 우열없이 취급하고 있는 만큼, 물상보증인과 제3취득자와의 관계에서 물상보증인은 보증인과 동일하게 취급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물상보증인과 제3취득자와의 관계는 위 1.의 보증인과 제3취득자와의 관계의 경우와 같이 정리된 것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5. 물상보증인과 제3취득자와의 관계(민법 규정 없음)
물상보증인은 제3취득자에 대하여 채권자를 대위할 수 있음
제3채무자는 물상보증인에 대하여 채권자를 대위할 수 없음


한해동안 블로그에 올라오는 신변잡기적 글들을 읽어주신 분들께 감사드립니다.
새해 가정에 평안과 만복이 깃드시길 기원합니다.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2014년 3월 20일 목요일

소멸시효기간

소멸시효는 권리자가 그의 권리를 행사할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일정한 기간 동안 행사하지 않는 권리불행사의 상태가 계속된 경우에 그 자의 권리를 소멸시켜 버리는 제도입니다. 소멸시효의 존재이유에 대해서 사회질서의 안정, 입증곤란의 구제, 권리행사의 태만에 대한 제재 등이 거론됩니다.

소멸시효는 기본적으로 민법에서 규정하고 있지만, 특별한 청구권에 대해서는 그 권리를 다루는 개별법령에 별도로 소멸시효 관련 규정이 있는 경우가 많습니다. 민법은 채권의 소멸시효를 10년, 채권 및 소유권 이외의 재산권에 대해서는 20년으로 정하고 있습니다.이에 우선하는 예외규정 내지 개별법령으로 다음과 같은 것을 들 수 있습니다.

민법 제766조 : 불법행위로 인한 손해배상 청구권은 손해 및 가해자를 안 날로부터 3년, 불법행위가 있은 날로부터 10년
상법 제64조 : 상행위로 인한 채권 5년
국가재정법 제96조 : 국가의 권리 또는 국가에 대한 권리로서 다른 법률의 규정이 없는 것 5년
근로기준법 제49조 : 임금 3년

그리고 민법 제163조와 민법 제164조에 의한 채권들은 3년, 1년의 단기소멸시효에 걸립니다.

상담하다가 임금채권의 소멸시효가 3년이라는 것을 뒤늦게 재확인하게 되었네요.



2014년 3월 16일 일요일

찻주전자 우화와 입증책임



리처드 도킨스, 이한음 역, 만들어진 신, 김영사(2007)

"우리는 신의 존재 문제가 원칙적으로 대답할 수 없는 것이라는 전제로부터 그의 존재와 비존재가 동등한 확률을 갖는다는 결론으로 건너뛰는 오류를 흔히 접하게 된다.
그 오류를 표현하는 또 다른 방법은 거증책임을 이용하는 것이다. 버트런드 러셀의 찻주전자 우화가 그 방법을 제대로 보여준다.

많은 사람들은 이미 수용된 독단적 견해는 독단론자들이 아닌 회의론자들이 반증해야 하는 것처럼 말한다. 물론 그것은 잘못이다. 내가 지구와 화성 사이에 타원형 궤도를 따라 태양을 도는 중국 찻주전자가 하나 있다고 주장하면서 그 찻주전자가 우리의 가장 강력한 망원경으로도 보이지 않을 만큼 아주 작다는 단서를 신중하게 덧붙인다면, 아무도 내 주장을 반증할 수 없을 것이다. 그러나 내 주장이 반증될 수 없다고 해서 그것을 의심하는 것은 인간 이성에 대한 용납하기 어려운 억측이라고까지 내가 말한다면 그건 헛소리로 여겨져야 옳다. 하지만 그런 찻주전자가 존재한다고 옛 서적에 명확히 나와 있고, 일요일마다 그를 신성한 진리라고 가르치며, 학교에서도 그를 아이들의 정신에 주입시킨다면, 그 존재를 선뜻 믿지 못하는 것은 괴짜라는 표시가 될 것이고, 이를 의심하는 자는 계몽시대의 정신과의사나 그 이전의 종교 재판관의 이목을 끌게 될 것이다."

- 만들어진 신, 83면.

민법이나 민사소송법을 공부하면서 제대로 접하는 것은 처음인 개념 중에 하나가 "입증책임"입니다.  어떠한 권리가 자신에게 있다고 주장하는 자가 있다면 그 권리를 주장하는 자에게 "입증책임"이 있으므로, 입증에 실패하게 되면,  그는 자신이 주장하는 권리를 인정받지 못하게 될 것입니다.

교과서에 나오는 식으로 정리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증명을 요하는 사실(요증사실)의 존재여부에 대해 증거조사를 거쳤으나 그 사실이 결국은 진위불명인 경우에, 판결시에 그 사실이 존재하는 않는 것으로 취급받게 되는 당사자 일방의 위험 또는 불이익을 (객관적) 입증책임이라고 한다. 법규정은 법률요건과 법률효과로 이루어져 있는데, 당사자가 어떠한 법률효과를 주장하기 위해서는 그 사실의 존재여부가 불확실한 경우에는 그 사실이 없는 것으로 취급되어 결국 일방 당사자는 그에 따른 법률효과마저 부인당하게 되는데, 일방 당사자가 입는 위와 같은 불이익을 (객관적) 입증책임이라 부르는 것이다. 이는 형사소송법에서의 거증책임에 대응한다.

쉽게 말하면 법관이 누구 말이 맞는지 모르겠다고 생각되는 경우에는 입증책임이 있는 당사자에게 불이익하게 판단한다는 말입니다. 간단하게  A가 B에게 돈을 빌려주었는데, B가 돈을 갚지 않아 빌려준 돈을 갚으라고 하면서 소송을 제기하였다고 합시다. 그런데 A는 B에게 돈을 빌려주었다는 내용의 서면 예컨대 "차용증" 같은 증거는 없었습니다. 이때 "A가 B에게 돈을 빌려주었다는 사실"이 입증되면 그로부터 "A가 빌려준 돈을 소정의 이자와 함께 돌려받을 권리"가 인정됩니다.

우선 B는 A로부터 돈을 빌린 사실이 없다고 "부인"한다고 합시다. 법관으로서는 A가 적어도 B의 예금계좌로 돈이 이체되었다는 등의 증거도 제출되지 않는 경우에는 A의 주장이 맞는지 알 수가 없습니다. A의 주장이 사실일 수도 있지만 법관으로서는 상대방인 B가 부인하는 마당에 객관적 증거 없이 A의 주장을 받아들일 수 없을 것입니다. 소위 진위불명상태이므로 입증책임을 지는 A의 주장이 받아들여지지 않게 됩니다.

이와 달리 B가 A로부터 돈을 빌린 것은 맞는데, 이미 갚았다고 주장한다고 합시다. A의 주장 즉, A가 B에게 돈을 빌려주었다는 사실은 B가 인정하였으므로 증거가 없더라도 이것은 소위 "다툼없는 사실"로 정리됩니다. 다만, B가 갚았다는 주장은 "항변"으로서 B에게 "자신이 이미 돈을 갚았다는 사실"을 입증할 책임이 발생하게 됩니다. 따라서 B가 A에게 돈을 갚은 때 받은 "영수증"과 같은 증거를 제출하지 못하여 법관이 진위불명에 빠지게 되면, 입증책임을 지는 B에게 불리하게 B가 A에게 빌린 돈을 지급하라는 내용의 결론이 내려지는 것입니다.

입증책임은 소송에서는 대부분 법규정에서 법률요건을 주장하는 자에게 입증책임이 있는 것으로 정리되어 있는데, 모든 사항에 대하여 당연히 칼로 무자르듯 입증책임이 완벽히 분배되어 있는 것이라고 하기는 어렵습니다. 예컨대, 환경소송이나 공해소송의 경우에는 일반적인 입증책임 부담원칙에 의한다면 환경오염이나 공해의 존재사실, 피해자의 손해(건강의 악화 내지 재산의 손실), 환경오염이나 공해와 피해자의 손해 사이의 인과관계가 모두 원고가 입증책임을 지는 사항인데, 인과관계의 엄격한 입증을 요구하게 되면 거의 항상 원고에게 불리하므로, 예외적으로 입증책임의 증명정도가 완화되거나, 원인제공자에게 입증책임이 전환되는 경우도 있습니다.

신의 존재증명에 대해서는 신을 믿는 사람들에게 "신의 존재"에 대하여 입증책임이 있는 것인지, 신을 믿지 않는 사람들에게 "신의 부재"에 대한 입증책임이 있는 것인지와 관련하여 리처드도킨스는 당연히 유신론자에게 입증책임이 있고, 유신론자가 신의 존재를 입증하지 못하므로 신은 존재하지 않는다고 결론을 내리는 것이 합리적이라고 주장합니다. 신이 존재한다는 유신론자의 주장은 중국식 찻주전자가 존재한다는 주장과 같은 수준의 주장임을 쉽게 알 수 있기 때문입니다. 중국식 찻주전자와 달리 신의 존재에 대해서는 수많은 사람이 믿고 있고, 오래된 경전이 있고, 일요일마다 신성한 진리라고 가르쳐지고 있다는 다른 점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말입니다.

문제는 신의 존재에 대해서는 이를 판단할 법관이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따라서 신의 존재와 관련해서는 엄격한 의미의 입증책임이라는 개념이 의미가 없다고 할 수도 있을 것입니다.

자신이 논리적으로 설명할 수 없는 것을 "믿음"으로 합리화하고, 자신과 달리 이를 믿지 않는 사람에 대하여 적의를 드러내는 태도에 대한 저자의 거부감도 충분히 이해가 갑니다. 제 생각은 이렇습니다. 신념을 (그것이 종교이든 이념이든 취향이든) 다른 사람에게 강요하지만 않는다면 다른 사람의 신념은 존중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다양한 사람들이 공존하는 사회에서 이러한 기본적인 예의가 없는 "이념적 동지"보다는 기본적인 예의 갖추고 있는 "이념적 반대자"에게 호감이 가는 요즘입니다.

2014년 3월 13일 목요일

위약금

계약을 체결할 때 계약을 위반할 경우 상대방에게 지급하기로 약정한 돈을 "위약금"이라고 합니다. 위약금에 대해서 우리 민법은 그 성질을 "손해배상액의 예정"과 "위약벌"로 나누어 규정하고 있습니다. 손해배상액의 예정은 배상적 기능을 위약벌은 제재적 기능을 가지고 있는 것인데, 그 구별기준이 명확하다고는 할 수 없으며 모호한 측면이 있습니다. 손해배상의 예정인 위약금에 대해서는 판사가 그 재량으로 감액을 하는 것이 가능하지만, 위약벌의 경우에는 판사의 재량감액이 불가능하다는 차이를 비롯하여 여러가지 차이점이 발생하므로 그 성질을 정하는 것은 실제 소송에서도 종종 중요한 쟁점이 되곤 합니다.


위약금의 성질과 관련하여 우리 판례는 이를 엄밀히 구별해서 판단해 오고 있었는데, 최근(2013년이긴 합니다만) 위약금을 손해배상의 예정과 위약벌의 성질을 함께 가진 것으로 보는 판결이 나왔습니다.


대법원 2013. 4. 11. 선고 2011다112032 판결이 "다수의 전기수용가와 사이에 체결되는 전기공급계약에 적용되는 약관 등에,계약종별외의 용도로 전기를 사용하면 그로 인한 전기요금 면탈금액의 2배에 해당하는 위약금을 부과한다고 되어 있지만,그와 별도로 면탈한 전기요금 자체 또는 손해배상을 청구할 수 있도록 하는 규정은 없고 면탈금액에 대해서만 부가가치세 상당을 가산하도록 되어 있는 등의 사정이 있는 경우,위 약관에 의한 위약금은 손해배상액의 예정과 위약벌의 성질을 함께 가지는 것으로 봄이 상당하다."라고 판시한 것입니다.


위약금약정은 배상적 기능과 제재적 기능을 함께 가지는 경우가 많으므로 이를 손해배상액의 예정과 위약벌로 엄밀하게 구분하여 이분법적으로 해결하려 하는 것은 당사자의 의사나 거래의 실체를 정확히 반영할 수 없는 경우도 있기 때문에 이러한 이분법적 구분을 재고할 필요가 있다는 것을 확인시켜 주는 판례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참고 : 김재형, 2013년 분야별 중요판례평석 : 민법 (하)


2014년 2월 5일 수요일

민법연구


대학에서 법학을 공부하면서 기본적으로 보게 되는 책들이 있습니다.
제가 공부할 당시(1990년대 중반부터 2000년대 초반까지) 기본삼법의 기본서로 보았던 것은
 헌법 권영성 교수님의 헌법학원론
 민법 곽윤직 교수님의 민법총칙, 물권법, 채권총론, 채권각론
 형법 이재상 교수님의 형법총론, 형법각론
이 책들이었습니다.

위 세 책들의 저자 가운데 권영성 교수님께서는 학교에 계셨기 때문에 직접 강의를 들을 수 있었지만, 곽윤직 교수님께서는 90년대 초반에 은퇴하셨고, 이재상 교수님은 이대에서 강의를 하셨기 때문에 직접 뵙지는 못했네요.

하지만 그 양의 방대함 때문에 기본서를 1회독 하는데 걸리는 시간이 만만찮아서, 특히 민법의 경우에는  곽윤직 교수님의 책들(줄여서 "곽서"라고 했습니다)을 요약 정리한 버전의 요약서가 나타나기 시작했습니다. 김준호 교수님의 민법강의가 시험용으로 각광을 받았죠. 몇년 후에 후배가 자신이 공부했다는 책을 가져왔는데 그 책은 지원림 교수님의 책이더라구요. 현재는 곽서를 별로 보지 않는 듯 했습니다.

학교에서 수업을 들을 당시 민법 교수님은 남효순, 양창수, 김재형, 윤진수 교수님이셨습니다. 저는 그 중 양창수, 김재형 교수님의 강의를 들었는데, 김재형 교수님이 조곤조곤하게 설명을 하시는 스타일이라면 양창수 교수님(현재 대법관으로 재직중이시죠)께서는 자신의 색깔이 분명하고, 다른 법학자들의 의견에 대해서 비판적으로 접근하셨는데, 학생들에게 인기가 높으셨습니다. 특히 곽윤직 교수님의 책으로 수업하시면서 곽교수님의 견해에 대해서 정중하게 자신은 다른 입장이라고 하시거나, 이은영 교수님의 견해를 사정없이 비판하시는 걸 은근히 재밌게 감상(?)할 수 있었습니다.

그런데 곽서라는 부동의 교과서가 있다보니 양교수님께서는 본인의 교과서를 내시지는 않으시고, "민법연구"라고 하여 본인이 교수로 재직하시면서 내는 연구물들을 묶어서 책으로 내시기 시작했습니다. 현재 9권까지 나와 있는 것 같습니다. 그런데 검색해 보니 2010년, 2011년, 2012년에 로스쿨 교재로 책을 내셨네요(계약법권리의 보전과 담보권리의 변동과 구제). 그 밖에 민법입문자들을 위해 쓰신 "민법입문"이라는 책이 있는데, 법학을 전공하지 않았거나 법학에 뜻이 있는 분들이 법학을 시작하면서 읽기에 좋은 책입니다(어설픈 법학개론 책보다 훨씬 낫다고 생각합니다).

어쩌다 일과 관련해서 찾아볼 논문이 있어 민법연구 8권을 사서 보게 되었는데, 그 서문에 양교수님께서 1권을 쓸때 서문을 다시 인용하시면서 아직도 우리 학계의 현실이 나아지지 않았다고 걱정하십니다. 민법학이 그럴진대, 형법, 헌법 그리고 제가 전공한 행정법학계는 어떻겠나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합니다. 그러나 이런 겸손한 마음으로 정진하시는 분들이 계셔서 어떻게든 세상에 지식이 쌓이고 더 좋아지고 있는게 아닐까요. 다음은 민법연구 8권에 인용되어 있는 민법연구 1권의 서문 중 일부입니다(한자는 한글로 고쳐서 옮깁니다).

"필자는 그야말로 민법학의 초심자에 지나지 않는다. 멀리 바라보며 나아갈 목표도 바로 눈 앞의 길도 뚜렷하지 아니한 채, 안개 속을 헤매는 암중모색의 단계를 벗어나지 못하였다. 그 과정에서 뼈저리게 느끼는 것은 우리에게 아직 [학문의 전통]이 없다는 것이다. 넓은 범위에서 양식 있는 분들의 동의를 얻고 있어 후학들이 일단 의지할 수 있는 방법이 수립되어 있는지 의문이고, 또한 학문적 훈련을 습득하여 가는 과정도 제도화되어 있지 않은 것으로 느껴진다. 그러므로 당연히 수많은 시행착오 그리고 불필요한 시간과 노력의 낭비가 행하여지고 있고, 더욱 중요한 것으로, 우리 나라에서의 민법학의 존재이유와 가치에 대한 회의가 은연 중에 팽배해 있어서 학문의 수행에 필수적인 인적 자원이 제대로 충원되지 못하고 있다. 법학을 일생을 걸만한 대업으로 여기는 유능한 젊은이들이 많이 있다는 것이 하나의 단위로서의 민법학계가 필수적으로 갖추어야 할 조건이 아니겠는가. 그리고 그러한 [전통의 부재]는 당연히 학문작업(그 성과는 일단 논문의 형태로 나타날 것이다)에 대한 자율적인 평가체계가 기능하지 아니하고 있다는 것으로 통한다.
이러한 상태에서 언필칭 [논문집]을 펴 낸다는 것이 어떠한 의미가 있는지 스스로 의심이 들기도 한다. 다만 여기저기서 [준거]의 획득을 위하여 고투를 계속하고 있는 동료들에게 이러한 글들이 조금이라도 동병상련의 위안이 되지 않을까 기대하여 보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