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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년 6월 10일 수요일

한자어 中樞





지인의 페이스북 포스팅을 보다가 건물 관리사무소장님께서 붙여놓은 공고문이 한자투성이라 마치 고시공부 처음 시작할 당시 "곽서"를 보는 듯하였다는 소회가 문득 곽서에서 보았던 한 단어를 생각나게 하였습니다.

사실 초등학교 4-5학년때부터 신문을 탐독하였었기 때문에(당시는 국한문 혼용이라 한자를 모르면 신문을 읽을 수 없었음) 대학교 입학 당시 왠만한 한자는 다 읽을 수 있었는데, 1학년 겨울 곽서를 읽으면서 "앗 내가 모르는 한자가?" 하는 생각이 들게 만드는 한자를 발견하였습니다.

바로 中樞(중추)이 글자였던 것으로 생각되는데요. 민법총칙에서였을 텐데, 어떠한 제도 내지 개념이 "...에 있어서 中樞" 라는 취지의 문장이었습니다. 지금은 그 문장은 홀랑 기억이 안나고 단어만 어려웠기 때문에 바로 읽지 못하고 표시해 두었다가 옥편에서 찾아서 읽었던 기억이 납니다.  고시공부 이후 거의 방치하다가 이번에 큰맘먹고 장만한 "곽윤직/김재형 공저 민법총칙 9판, 물권법 8판"책은 갑, 을, 병을 제외한 모든 표현을 한글로 바꾸고 가끔 개념이나 중요용어만 괄호 안에 한자를 혼용하는 정도로 한자 사용이 줄어들었습니다. 어떠한 지식을 전달하는 도구 나아가 정보를 독점하였던 시대에서 모든 사람이 너무 많은 정보에 어쩔줄 몰라하는 시대로 너무도 빨리 숨가쁘게 변해왔구나 하는 소회가 듭니다.

2015년 1월 8일 목요일

법학 입문자에게


*사진은 "민법입문"이라는 책의 저자 이신 양창수 전 대법관님입니다.

지난 해 말 모교의 동기유발캠프라고 하는 행사에 법조직역을 소개하는 내용의 특강을 해 달라는 부탁을 받아 1시간 남짓한 시간동안 변호사 및 법조직역에 대해서 설명해 주는 시간이 있었습니다. 동기유발캠프는 명문대학에 교수로 재직하고 있는 동문 선배들이 고등학교 2학년인 후배들에게 학교 구경 및 대학생활에 대한 설명을,  각 직업 분야의 직역에 진출한 선배들이 자신에 직업에 대한 설명을 해 주는 프로그램들로 짜여 있었는데 그 중 일부를 맡은 것이었지요.

법조직역에 설명하다 보니 법학공부를 어떻게 시작하는 것이 좋은 것인지 누가 물어본다면 어떻게 대답해야 할 것인지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과거로 돌아가 대학 2학년 사법시험을 처음 시작할 당시에 무슨 책을 잡고 어떻게 공부를 시작하는 것이 좋을까 하는 제 의문에 대하여 지금의 나는 어떻게 대답할 것인가 하고 말입니다.

만약에 제가 20년 전의 저에게 대답한다면 양창수 전 대법관님의 "민법입문"[양창수, 민법입문, 박영사(1991), 현재 제6판(2015)이 나와 있습니다]을 그 지침에 따라 읽어보기를 권하고 싶습니다. 민법입문에서 양 전 대법관님께서 말씀하고 있는 바와 같이, 법전을 펴놓고 책에서 인용되는 법규정을 수시로 찾아보고, 책에서 뒤에 나올 것이나 앞에서 이미 나온 것을 참조하라는 지시가 있으면(예컨대 뒤의 [106] "둘째" 참조, 이와 같은 지시) 반드시 실행하면서 책을 읽는 것입니다. 법서는 그렇지 않아도 진도가 나가지 않는 책입니다. 이런 지시를 이행하면서 읽는 경우 1페이지에 10분 걸릴 것이 30분, 1시간이 걸리는 경우도  있어서 400페이지에 달하는 책을 읽는데 1달(또는 그 이상)이 걸릴 수도 있을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법학의 초심자로서 기초를 닦고 싶다면 초기에 많은 시간이 드는 것을 감수하는 것이 나중에 자신의 수준을 수월하게 높일 수 있는 지름길이라고 생각합니다.


물론 사법시험 공부를 시작하는 당시에 제가 양 전 대법관님의 민법입문을 읽으면서 공부를 시작하지는 않았습니다. 이미 민법총칙, 물권법, 채권총론, 채권각론 수업을 들으면서 민법 교과서들을 보고 있는 상태였기 때문에 완전한 법학공부 초심자와는 다른 입장이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법서를 처음 보면서 법조문과 참조지시를 이행하면서 읽는 원칙은 지켜서 책을 읽었습니다. 제가 당시에 민법입문을 읽지는 않았었던 것 같은데, 교과서도 모자라 책을 마구 사는  친구 옆에서 슬쩍 서문이라도 읽어보아서였을지 않을까 추측해 봅니다. 순서대로 책을 줄줄 읽는 것이 기본적인 용어와 이론을 모르는 상태에서 가능하지도 않았을 뿐더러 책을 왔다갔다 하면서 읽는 것이 지루함을 많이 덜어주기도 하였기 때문이었는데 결과적으로 법학에 익숙해지는데 더디지만 확실한 방법이었던 것 같습니다.

양창수 전 대법관님께서는 판사로 재직하다가 교수가 되신 당시로서는 특이한 경력의 교수님이셨는데(양 전 대법관님을 필두로, 판사 출신의 윤진수, 김재형 교수님 등이 대학으로 자리를 옮기시게 됩니다), 제가 학부 다닐 무렵(1995년-1998년) 서울대학교 법과대학에서 민법을 가르치고 계셨고, 강의가 매우 인기가 있었습니다. 무엇보다도 시원시원하게 맞으면 맞다 틀리면 틀리다 하시는 직설적인 화법이 매력적이었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책을 보아도 화통하신 성격이 잘 드러나는 것 같습니다. 퇴임하시면서 한 인터뷰에서도 기자들에게 엄하게 하셨던 모양이네요([법조라운지] 퇴임하는 양창수 대법관, 법률신문 2014. 9. 1.자).

민법입문에서 "들어가기 전에"라고 하여 자신의 책을 읽는 방법을 지시하시는 부분만 읽어도 법학을 어떤 자세로 공부해야 할 것인지 어느 정도 알 수 있을 것입니다. 개인적으로 저는 "그게 안되면 법 공부를 그만 두라"는 부분에서 양 전 대법관님 다우시다는 생각을 많이 했습니다. 관련 부분을 인용해 둡니다.

들어가기 전에

1. ...

2. 대부분의 법학 교과서에서도 그러하지마는, 이 책에서도 뒤에 나올 것이나 앞에 이미 나온 것들을 '참조하라'는 지시가 많이 등장한다. 이 지시는 반드시 실행되어야 한다. 다시 말하는데, 반드시 실행되어야 한다. 이 책을 포함하여 법학 교과서를 읽는 경우에는 읽어 넘긴 쪽수의 양에 집착하여서는 안 된다.

3. 앞으로 이 책에서, 일상생활에서 잘 쓰이지 않는 낯선 용어를 많이 보게 될 것이다. 이와 같이 새로운 용어가 빈번하게 나온다는 것 자체가 견딜 수 없는 것으로 느껴지는 사람은 애초에 법 공부를 그만 두는 것이 좋다.
모든 전문 분야가 그러하듯이, 법에서도 고유한 용어를 많이 사용하고 있다. 그 용어는 말하자면, 법을 전문으로 하는 사람들 사이에서 통용되는 공통의 교신부호와 같은 것으로서, 수학이나 컴퓨터프로그래밍 또는 기호논리학에서 쓰이는 숫자나 각종의 부호와 별로 다를 바 없는 것이다. 이것은 모름지기 애써 의미를 이해하고 익혀서 몸에 배게 할 일이다.
물론 우리나라의 법언어에 관하여는 개선하여야 할 점이 많이 있으나, 그렇다고 해서 그것 때문에 법이 도대체 불만스러워서 견딜 수 없다고 하면, 이는 법 공부가 적성에 맞지 않는 것이라고 말할 수밖에 없다.

4. 이상을 읽어보아도 알겠지만, 현재의 단계에서 법을 공부하는 데는 한자를 잘 알 필요가 있다. 헌법을 위시하여 민법이나 형법 기타 주요한 법률이 한자를 쓰고 있기 때문에, 이는 부득이한 일이다.

...

양창수, 민법입문 제6판, 박영사(2015), vii - viii

2014년 5월 30일 금요일

물권법 제8판 출간



우연히 곽윤직 저 물권법 제8판이 12년만에 출간된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더이상 새로운 곽서는 못보나 하였지만 김재형 교수님이 곽윤직-김재형 저로 출간을 하셨네요. 제 관심분야인 만큼 사 놓아야 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물권법 교과서 초판은 1963. 3. 30., 전정판 1975. 5. 20., 전정증보판 1980. 9. 20., 재전정판 1985. 6.15., 신정판 1992. 4. 20., 신정수정판 1999. 8. 10., 제7판 2002. 11. 15., 제8판 2014. 4. 15. 출간이니 제가 사서 공부하였던 것은 1992. 4. 20. 출간된 신정판이었겠네요.

김재형 교수님의 머리말을 옮겨봅니다. 50년을 이어온 교과서가 앞으로도 계속해서 출간되기를 바라마지 않습니다.

『물권법』 교과서 초판이 출간된 것은 1963년이다. 『민법강의』 시리즈 가운데 맨 처음 나온 책이다. 이 책은 그 어떤 책보다도 선생님의 학문적 열정이 오롯이 담겨있다고 할 수 있는데, 민법학계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교과서가 되었다. 특히 물권변동론은 학계와 실무계에 지대한 영향을 끼쳤다. 
이번에 내는 제8판(전면개정)에서는 12년 전 제7판이 나올 무렵부터 쌓여 있던 학설과 판례를 반영하고 그 동안 제·개정된 법률에 따라 내용을 수정하였다. 또한 새로운 세대의 학생들도 쉽게 읽을 수 있도록 한자를 모두 한글로 바꾸었으며 표현을 간결하고 이해하기 쉽게 하려고 노력하였다.
이 개정판을 내는 작업은 민법총칙 교과서와 동일한 방식으로 하였다. 그런데 물권법에는 수정해야 할 내용이 많았다. 그 이유는 무엇보다도 물권법에 관한 민사특별법이 크게 바뀌었기 때문이다. 부동산등기법이 전면적으로 개정되었고, 집합건물의 소유 및 관리에 관한 법률, 가등기담보 등에 관한 법률, 공장 및 광업재단 저당법, 자동차 등 특정동산 저당법 등 여러 법률이 개정되었다. 2010년에는 동산·채권 등의 담보에 관한 법률이 제정되어 동산담보권과 채권담보권이 새로운 물권으로 인정되었으며 담보등기제도가 새롭게 도입되었다. 1997년 금융위기를 겪은 이후 금융거래를 뒷받침하는 담보법에 관한 관심이 높아졌는데, 이것이 지난 10여 년 동안 담보법에 관한 각종 법률의 제·개정으로 이어졌다고 볼 수 있다. 그리고 전원합의체 판결이 가장 많이 나온 것도 물권법 분야이다. 그 밖에 물권법에 관한 중요한 판례가 많이 나왔다. 그리하여 이번 판에서는 제·개정된 법률과 새로운 판례를 대폭 보완해야 했다.
이제 독자의 몫이다. 이 책이 법을 이해하고 법적 사고를 명료하게 하는 데 조금이나마 도움이 된다면 더할 나위 없는 기쁨이 될 것이다. 미흡한 부분에 관해서는 다음 개정 작업을 기약하고자 한다. 

2014년 4월
김 재 형

2014년 3월 13일 목요일

위약금

계약을 체결할 때 계약을 위반할 경우 상대방에게 지급하기로 약정한 돈을 "위약금"이라고 합니다. 위약금에 대해서 우리 민법은 그 성질을 "손해배상액의 예정"과 "위약벌"로 나누어 규정하고 있습니다. 손해배상액의 예정은 배상적 기능을 위약벌은 제재적 기능을 가지고 있는 것인데, 그 구별기준이 명확하다고는 할 수 없으며 모호한 측면이 있습니다. 손해배상의 예정인 위약금에 대해서는 판사가 그 재량으로 감액을 하는 것이 가능하지만, 위약벌의 경우에는 판사의 재량감액이 불가능하다는 차이를 비롯하여 여러가지 차이점이 발생하므로 그 성질을 정하는 것은 실제 소송에서도 종종 중요한 쟁점이 되곤 합니다.


위약금의 성질과 관련하여 우리 판례는 이를 엄밀히 구별해서 판단해 오고 있었는데, 최근(2013년이긴 합니다만) 위약금을 손해배상의 예정과 위약벌의 성질을 함께 가진 것으로 보는 판결이 나왔습니다.


대법원 2013. 4. 11. 선고 2011다112032 판결이 "다수의 전기수용가와 사이에 체결되는 전기공급계약에 적용되는 약관 등에,계약종별외의 용도로 전기를 사용하면 그로 인한 전기요금 면탈금액의 2배에 해당하는 위약금을 부과한다고 되어 있지만,그와 별도로 면탈한 전기요금 자체 또는 손해배상을 청구할 수 있도록 하는 규정은 없고 면탈금액에 대해서만 부가가치세 상당을 가산하도록 되어 있는 등의 사정이 있는 경우,위 약관에 의한 위약금은 손해배상액의 예정과 위약벌의 성질을 함께 가지는 것으로 봄이 상당하다."라고 판시한 것입니다.


위약금약정은 배상적 기능과 제재적 기능을 함께 가지는 경우가 많으므로 이를 손해배상액의 예정과 위약벌로 엄밀하게 구분하여 이분법적으로 해결하려 하는 것은 당사자의 의사나 거래의 실체를 정확히 반영할 수 없는 경우도 있기 때문에 이러한 이분법적 구분을 재고할 필요가 있다는 것을 확인시켜 주는 판례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참고 : 김재형, 2013년 분야별 중요판례평석 : 민법 (하)


2014년 2월 5일 수요일

민법연구


대학에서 법학을 공부하면서 기본적으로 보게 되는 책들이 있습니다.
제가 공부할 당시(1990년대 중반부터 2000년대 초반까지) 기본삼법의 기본서로 보았던 것은
 헌법 권영성 교수님의 헌법학원론
 민법 곽윤직 교수님의 민법총칙, 물권법, 채권총론, 채권각론
 형법 이재상 교수님의 형법총론, 형법각론
이 책들이었습니다.

위 세 책들의 저자 가운데 권영성 교수님께서는 학교에 계셨기 때문에 직접 강의를 들을 수 있었지만, 곽윤직 교수님께서는 90년대 초반에 은퇴하셨고, 이재상 교수님은 이대에서 강의를 하셨기 때문에 직접 뵙지는 못했네요.

하지만 그 양의 방대함 때문에 기본서를 1회독 하는데 걸리는 시간이 만만찮아서, 특히 민법의 경우에는  곽윤직 교수님의 책들(줄여서 "곽서"라고 했습니다)을 요약 정리한 버전의 요약서가 나타나기 시작했습니다. 김준호 교수님의 민법강의가 시험용으로 각광을 받았죠. 몇년 후에 후배가 자신이 공부했다는 책을 가져왔는데 그 책은 지원림 교수님의 책이더라구요. 현재는 곽서를 별로 보지 않는 듯 했습니다.

학교에서 수업을 들을 당시 민법 교수님은 남효순, 양창수, 김재형, 윤진수 교수님이셨습니다. 저는 그 중 양창수, 김재형 교수님의 강의를 들었는데, 김재형 교수님이 조곤조곤하게 설명을 하시는 스타일이라면 양창수 교수님(현재 대법관으로 재직중이시죠)께서는 자신의 색깔이 분명하고, 다른 법학자들의 의견에 대해서 비판적으로 접근하셨는데, 학생들에게 인기가 높으셨습니다. 특히 곽윤직 교수님의 책으로 수업하시면서 곽교수님의 견해에 대해서 정중하게 자신은 다른 입장이라고 하시거나, 이은영 교수님의 견해를 사정없이 비판하시는 걸 은근히 재밌게 감상(?)할 수 있었습니다.

그런데 곽서라는 부동의 교과서가 있다보니 양교수님께서는 본인의 교과서를 내시지는 않으시고, "민법연구"라고 하여 본인이 교수로 재직하시면서 내는 연구물들을 묶어서 책으로 내시기 시작했습니다. 현재 9권까지 나와 있는 것 같습니다. 그런데 검색해 보니 2010년, 2011년, 2012년에 로스쿨 교재로 책을 내셨네요(계약법권리의 보전과 담보권리의 변동과 구제). 그 밖에 민법입문자들을 위해 쓰신 "민법입문"이라는 책이 있는데, 법학을 전공하지 않았거나 법학에 뜻이 있는 분들이 법학을 시작하면서 읽기에 좋은 책입니다(어설픈 법학개론 책보다 훨씬 낫다고 생각합니다).

어쩌다 일과 관련해서 찾아볼 논문이 있어 민법연구 8권을 사서 보게 되었는데, 그 서문에 양교수님께서 1권을 쓸때 서문을 다시 인용하시면서 아직도 우리 학계의 현실이 나아지지 않았다고 걱정하십니다. 민법학이 그럴진대, 형법, 헌법 그리고 제가 전공한 행정법학계는 어떻겠나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합니다. 그러나 이런 겸손한 마음으로 정진하시는 분들이 계셔서 어떻게든 세상에 지식이 쌓이고 더 좋아지고 있는게 아닐까요. 다음은 민법연구 8권에 인용되어 있는 민법연구 1권의 서문 중 일부입니다(한자는 한글로 고쳐서 옮깁니다).

"필자는 그야말로 민법학의 초심자에 지나지 않는다. 멀리 바라보며 나아갈 목표도 바로 눈 앞의 길도 뚜렷하지 아니한 채, 안개 속을 헤매는 암중모색의 단계를 벗어나지 못하였다. 그 과정에서 뼈저리게 느끼는 것은 우리에게 아직 [학문의 전통]이 없다는 것이다. 넓은 범위에서 양식 있는 분들의 동의를 얻고 있어 후학들이 일단 의지할 수 있는 방법이 수립되어 있는지 의문이고, 또한 학문적 훈련을 습득하여 가는 과정도 제도화되어 있지 않은 것으로 느껴진다. 그러므로 당연히 수많은 시행착오 그리고 불필요한 시간과 노력의 낭비가 행하여지고 있고, 더욱 중요한 것으로, 우리 나라에서의 민법학의 존재이유와 가치에 대한 회의가 은연 중에 팽배해 있어서 학문의 수행에 필수적인 인적 자원이 제대로 충원되지 못하고 있다. 법학을 일생을 걸만한 대업으로 여기는 유능한 젊은이들이 많이 있다는 것이 하나의 단위로서의 민법학계가 필수적으로 갖추어야 할 조건이 아니겠는가. 그리고 그러한 [전통의 부재]는 당연히 학문작업(그 성과는 일단 논문의 형태로 나타날 것이다)에 대한 자율적인 평가체계가 기능하지 아니하고 있다는 것으로 통한다.
이러한 상태에서 언필칭 [논문집]을 펴 낸다는 것이 어떠한 의미가 있는지 스스로 의심이 들기도 한다. 다만 여기저기서 [준거]의 획득을 위하여 고투를 계속하고 있는 동료들에게 이러한 글들이 조금이라도 동병상련의 위안이 되지 않을까 기대하여 보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