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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년 1월 15일 금요일

[책 소개] 민법학의 기본원리



권영준, 민법학의 기본원리, 박영사(2020)

동료 변호사님의 페북을 보다가, 극찬을 하시는 법서(?)가 있어서 구입해 읽어보았습니다. 민법 관련해서는 워낙 기본 교과서(곽서 는 이미 구시대의 유물이 되었더군요)에서 기본원리에 대한 논쟁에 대한 내용이 상당히 들어있는 편이었고, 그에 기반해서 신진학자(양창수, 이은영 교수님이 비교적 신진학자였는데, 현재는 이분들도 원로급이 되어버리셨네요)들이 이에 대한 활발한 비판과 이론전개를 지켜보는 정도였는데, 민법을 관통하는 기본원리들을 여러 각도에서 분석하고, 실제 사안과도 연결하는 저서를 보게 되다니 놀랍다는 생각이 듭니다. 사안을 바라보는 시점을 이분법에 기반하여 명쾌하게 설명하면서도, 사전에 그 약점이나 부족한 점에 대해서도 충분히 고려를 하였다는 것을 보여주는 기술도 깔끔합니다. 전문적인 내용을 다루면서도 설명은 충분히 친절하다는 점도 높이 사고 싶습니다. 변호사를 비롯한 법조직역 종사자들에게 강력히 추천합니다. 다음은 인상적인 부분들입니다.

법관의 사실인정의 본질은 당사자들의 불완전한 주장과 증거를 소재로 하여 경험칙에 기초한 평가작용을 함으로써 사실을 규범적으로 형성해 나가는 데에 있다는 것이 더 솔직한 고백인지 모른다.-26면.

불법행위법에서의 법리는 다른 민법 영역의 법리에 비하여 그 강고함과 정교함이 떨어지는 대신 이익형량적 사고가 지배한다.- 29면.

영국에는 법의 수호자로서 법관을 신뢰하고 법관에게 절대적 권위를 부여하는 전통이 존재하였다. 독일에는 법관에 못지 않게 법학자의 권위가 높고 이들을 통해 법의 내용이 상당 부분 정리되어 나가는 전통이 존재하였다. 프랑스에는 법관에 대한 불신에 기초하여 법관을 "법률을 말하는 입"으로 바라보며 입법자를 우위에 두는 전통이 존재하였다.-44면.

가령 국제사회에서 중국의 경제력과 정치적 영향력은 매우 커졌지만 중국 법제는 보편성과 합리성이 떨어질 뿐 아니라 그 법제의 장점을 논리적으로 설명하여 다수 국가의 대표들을 설득시킬 수 있는 개인의 역량도 충분하지 못한 경우가 많다.-48면.

법률행위와 같이 매우 중요한 대륙법계 국가들의 법 개념이 영미법계 언어로는 쉽게 번역하기 어려운가 하면, 약인과 같이 매우 중요한 영미법계 국가들의 법 개념이 대륙법계의 언어로 완전히 정확하게 옮겨지기 어려운 현상이 발생하기도 한다.-72면.

이론은 법의 자양분을 제공하고, 법리는 법의 주된 모습을 형성하며, 실무는 사건과의 맥락 아래에서 법을 구체화한다.-75면.

민사재판에 있어서 이론, 법리, 실무의 기능을 요약하면 "안정화(이론)"-> "최적화(법리)"->"정당화(이론)"로 정리할 수 있다.-78면.

실무는 법리의 존중 위에서 행해지는 것이지만, 이는 맹목적 복종이 아니라 비판적 존중 내지 성찰적 추정이어야 한다.-78면.

민법의 3대 기본원리라고 일컬어지는 사유재산권 존중의 원칙, 사적 자치의 원칙, 과실책임의 원칙은 대체로 개인의 자유를 넓게 보장하려는 사상적 기초 위에 서 있다.-89면.

대법원은 부동산실명법 규정의 문언, 내용, 체계와 입법 목적 등을 종합하면, 부동산실명법을 위반하여 무효인 명의신탁약정에 따라 명의수탁자 명의로 등기를 하였다는 이유만으로 그것이 당연히 불법원인급여에 해당한다고 단정할 수 없다고 하여 종전 판례의 입장을 유지하였다.-134면.

뉴질랜드의 1972년 사고보상법은 국가는 모든 인신사고에 대하여 가해자의 과실 유무를 불문하고 피해자의 손해(의료비와 재활비, 일실이익의 80%, 27,000뉴질랜드 달러를 상한선으로 하는 비재산적 손해, 기타 필요비용 상당)를 보상해주는 제도를 그려내고 있다. 이는 공동체책임의 이념에 의거하여 국가의 재원에 의하여 손해를 전보해 주는 것이다. 한편 그 범위 내에서는 피해자의 가해자에 대한 손해배상청구소송이 금지된다. 이는 공적 부조제도가 불법행위법의 기능을 떠맡게 된 대표적인 예이다.-185면.

특히 형사재판이 민사재판보다 훨씬 엄껵한 절차와 원리에 따라 제재에 이르는 점을 감안한다면, 징벌적 손해배상을 통한 사적 제재의 용인은 민사재판을 통한 형사절차원리의 회피문제를 야기한다.-197면.

징벌적 손해배상제도는 불법행위의 효과로 손해의 전보만을 인정하는 우리 민사법 체계에서 인정되지 아니하는 형벌적 배상으로서 우리나라 공서양속에 반할 수 없어 승인할 수 없다는 취지의 하급심 판결로 서울지법 동부 판 1995. 2. 10., 93가합19609 참조. 이 사건의 항소심판결(서울고판 1996. 9. 18. 95나14840)과 상고심 판결(대판 1997. 9. 9., 96다47517)애서는 징벌적 손해배상에 대한 명시적 언급 없이 1심 판결을 그대로 지지하였다.-198면.

합리적인 법은 합리적으로 기대할 수 없는 것을 강제한 뒤 이를 지키지 못하였다고 하여 책임을 부과하지 않는다.-211면.

국가기관이 지키라고 한 것을 모두 지켰는데도 책임을 질 수 있다는 생각은 그 자체로 행위자를 위축시킨다.-212면.

위치정보의 보호 및 이용에 관한 법률 제15조는 소유자의 동의를 얻지 아니하고는 이동성이 있는 물건의 위치정보를 수집, 이용 또는 제공하여서는 아니된다고 규정하는데, 이는 소유권의 보호범위가 그 소유물의 위치정보 통제에까지 미친다는 것을 의미하는가?-236-237면.

저작권의 보호기간은 1710년 영국의 앤 여왕법에서 출판일로부터 14년간이었던 것이 지금은 우리나라를 비롯해 많은 나라에서 저작자 사후 70년으로 늘어났다.-238면.

오늘날의 독일의 소유권개념이 로마적 소유권관념과 게르만, 독일적 소유권관점이 서로 맞서는 긴장영역에서 성립하였다고 하는 점은 대체로 요즈음도 역시 학식 있는 법률가의 법사학적인 기초지식에 속한다.-257면[양창수 역, 게르만적 소유권개념의 이론에 대하여(칼 크로쉘) 중]

오히려 법률해석은 자연적인 상태의 법률 텍스트를 경쟁적인 여러가지 관점의 각축장 속에서 가장 설득력 있는 상태로 부활시키는 고도의 규범 가공 작용이다.-315면.

법관은 언어를 다루는 자로서 세상사의 이치와 운영 규칙을 담고 있는 문언의 해석을 통하여 인간의 법적 운명을 좌우한다. 법은 곧 말을 둘러싼 다툼이다.-317면.

조세법률주의 원칙상 조세법규는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 법문대로 해석하여야 하고, 합리적 이유 없이 이를 확장해석하거나 유추해석하는 것은 허용되지 않는다.-324면.

비유하여 이야기하자면, 민법은 앞마당에서 벌어지고 있는 숱한 일들에 흔들림없이 고고하게 안방에 앉아 있으면서 집안을 좌우하는 중대사에 대해서만 조언을 해주는 안주인 같은 법이다.-332면.

이 판결 이후인 2007. 5. 17. 신설된 자동차손해배상보장법 제11조의2는 교통사고 입원환자의 외출 또는 외박에 대한 의료기관의 관리(외출 등의 허가, 기록관리, 보험사업자 열람)에 관하여 규정하고 있는데, 이것도 그러한 노력의 일환으로 볼 수 있다.-397-398면.

사후적 관점은 구체적 타당성 있는 결론이 나쁜 선례가 될 위험성을 감수하고, 사전적 관점은 좋은 선례를 정립하기 위해 해당 사건에서의 불편한 결과를 감수한다.-403면.

미국의 한 연구에 따르면 상장회사들은 준거법으로 캘리포니아주의 법보다 뉴욕주의 법을 현저하게 선호하는데, 그 이유는 뉴욕주의 법은 구두증거 배제 법칙 및 명백성 원칙을 중시하여 사전에 예측가능한 계약해석을 선호하는 반면, 캘리포니아 주는 문언 이외의 다양한 맥락들을 참조하여 사후적으로 공평타당한 계약해석을 선호하기 떄문이라는 것이다.-408면.

법관은 해당 사건에 관한 한 어떤 정책가보다 많은 정보와 지식을 가지고 있다. 따라서 해당 사건의 재판에 관한 한 법관의 판단은 가장 높은 권위를 획득한다.-413면.

일반인들의 입장에서 판결은 먼 나라 이야기일 뿐이다. 관련 사건에 연루되었을 떄 비로소 관련 판결은 거인 같은 존재감을 드러낸다.-413-414면.

수많은 가치와 이익이 각축하는 규범의 전장에서 법관은 한편으로 법의 이상을, 다른 한편으로 국민의 목소리를 마주하며 양자를 연결시켜 주는 역할을 수행해야 한다.법관은 사회현실 속에서 벌어지는 전문적 분쟁을 실무적으로 능숙하게 '분석'하고 해결할 수 있는 스페셜리스트이면서도, 근본적인 이론이나 가치 체계, 일반적인 법리에 정통하여 세부 문제들을 하나로 '통합'해낼 수 있는 제너럴리스트라야 한다.-425면.


2015년 1월 8일 목요일

법학 입문자에게


*사진은 "민법입문"이라는 책의 저자 이신 양창수 전 대법관님입니다.

지난 해 말 모교의 동기유발캠프라고 하는 행사에 법조직역을 소개하는 내용의 특강을 해 달라는 부탁을 받아 1시간 남짓한 시간동안 변호사 및 법조직역에 대해서 설명해 주는 시간이 있었습니다. 동기유발캠프는 명문대학에 교수로 재직하고 있는 동문 선배들이 고등학교 2학년인 후배들에게 학교 구경 및 대학생활에 대한 설명을,  각 직업 분야의 직역에 진출한 선배들이 자신에 직업에 대한 설명을 해 주는 프로그램들로 짜여 있었는데 그 중 일부를 맡은 것이었지요.

법조직역에 설명하다 보니 법학공부를 어떻게 시작하는 것이 좋은 것인지 누가 물어본다면 어떻게 대답해야 할 것인지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과거로 돌아가 대학 2학년 사법시험을 처음 시작할 당시에 무슨 책을 잡고 어떻게 공부를 시작하는 것이 좋을까 하는 제 의문에 대하여 지금의 나는 어떻게 대답할 것인가 하고 말입니다.

만약에 제가 20년 전의 저에게 대답한다면 양창수 전 대법관님의 "민법입문"[양창수, 민법입문, 박영사(1991), 현재 제6판(2015)이 나와 있습니다]을 그 지침에 따라 읽어보기를 권하고 싶습니다. 민법입문에서 양 전 대법관님께서 말씀하고 있는 바와 같이, 법전을 펴놓고 책에서 인용되는 법규정을 수시로 찾아보고, 책에서 뒤에 나올 것이나 앞에서 이미 나온 것을 참조하라는 지시가 있으면(예컨대 뒤의 [106] "둘째" 참조, 이와 같은 지시) 반드시 실행하면서 책을 읽는 것입니다. 법서는 그렇지 않아도 진도가 나가지 않는 책입니다. 이런 지시를 이행하면서 읽는 경우 1페이지에 10분 걸릴 것이 30분, 1시간이 걸리는 경우도  있어서 400페이지에 달하는 책을 읽는데 1달(또는 그 이상)이 걸릴 수도 있을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법학의 초심자로서 기초를 닦고 싶다면 초기에 많은 시간이 드는 것을 감수하는 것이 나중에 자신의 수준을 수월하게 높일 수 있는 지름길이라고 생각합니다.


물론 사법시험 공부를 시작하는 당시에 제가 양 전 대법관님의 민법입문을 읽으면서 공부를 시작하지는 않았습니다. 이미 민법총칙, 물권법, 채권총론, 채권각론 수업을 들으면서 민법 교과서들을 보고 있는 상태였기 때문에 완전한 법학공부 초심자와는 다른 입장이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법서를 처음 보면서 법조문과 참조지시를 이행하면서 읽는 원칙은 지켜서 책을 읽었습니다. 제가 당시에 민법입문을 읽지는 않았었던 것 같은데, 교과서도 모자라 책을 마구 사는  친구 옆에서 슬쩍 서문이라도 읽어보아서였을지 않을까 추측해 봅니다. 순서대로 책을 줄줄 읽는 것이 기본적인 용어와 이론을 모르는 상태에서 가능하지도 않았을 뿐더러 책을 왔다갔다 하면서 읽는 것이 지루함을 많이 덜어주기도 하였기 때문이었는데 결과적으로 법학에 익숙해지는데 더디지만 확실한 방법이었던 것 같습니다.

양창수 전 대법관님께서는 판사로 재직하다가 교수가 되신 당시로서는 특이한 경력의 교수님이셨는데(양 전 대법관님을 필두로, 판사 출신의 윤진수, 김재형 교수님 등이 대학으로 자리를 옮기시게 됩니다), 제가 학부 다닐 무렵(1995년-1998년) 서울대학교 법과대학에서 민법을 가르치고 계셨고, 강의가 매우 인기가 있었습니다. 무엇보다도 시원시원하게 맞으면 맞다 틀리면 틀리다 하시는 직설적인 화법이 매력적이었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책을 보아도 화통하신 성격이 잘 드러나는 것 같습니다. 퇴임하시면서 한 인터뷰에서도 기자들에게 엄하게 하셨던 모양이네요([법조라운지] 퇴임하는 양창수 대법관, 법률신문 2014. 9. 1.자).

민법입문에서 "들어가기 전에"라고 하여 자신의 책을 읽는 방법을 지시하시는 부분만 읽어도 법학을 어떤 자세로 공부해야 할 것인지 어느 정도 알 수 있을 것입니다. 개인적으로 저는 "그게 안되면 법 공부를 그만 두라"는 부분에서 양 전 대법관님 다우시다는 생각을 많이 했습니다. 관련 부분을 인용해 둡니다.

들어가기 전에

1. ...

2. 대부분의 법학 교과서에서도 그러하지마는, 이 책에서도 뒤에 나올 것이나 앞에 이미 나온 것들을 '참조하라'는 지시가 많이 등장한다. 이 지시는 반드시 실행되어야 한다. 다시 말하는데, 반드시 실행되어야 한다. 이 책을 포함하여 법학 교과서를 읽는 경우에는 읽어 넘긴 쪽수의 양에 집착하여서는 안 된다.

3. 앞으로 이 책에서, 일상생활에서 잘 쓰이지 않는 낯선 용어를 많이 보게 될 것이다. 이와 같이 새로운 용어가 빈번하게 나온다는 것 자체가 견딜 수 없는 것으로 느껴지는 사람은 애초에 법 공부를 그만 두는 것이 좋다.
모든 전문 분야가 그러하듯이, 법에서도 고유한 용어를 많이 사용하고 있다. 그 용어는 말하자면, 법을 전문으로 하는 사람들 사이에서 통용되는 공통의 교신부호와 같은 것으로서, 수학이나 컴퓨터프로그래밍 또는 기호논리학에서 쓰이는 숫자나 각종의 부호와 별로 다를 바 없는 것이다. 이것은 모름지기 애써 의미를 이해하고 익혀서 몸에 배게 할 일이다.
물론 우리나라의 법언어에 관하여는 개선하여야 할 점이 많이 있으나, 그렇다고 해서 그것 때문에 법이 도대체 불만스러워서 견딜 수 없다고 하면, 이는 법 공부가 적성에 맞지 않는 것이라고 말할 수밖에 없다.

4. 이상을 읽어보아도 알겠지만, 현재의 단계에서 법을 공부하는 데는 한자를 잘 알 필요가 있다. 헌법을 위시하여 민법이나 형법 기타 주요한 법률이 한자를 쓰고 있기 때문에, 이는 부득이한 일이다.

...

양창수, 민법입문 제6판, 박영사(2015), vii - viii

2014년 2월 5일 수요일

민법연구


대학에서 법학을 공부하면서 기본적으로 보게 되는 책들이 있습니다.
제가 공부할 당시(1990년대 중반부터 2000년대 초반까지) 기본삼법의 기본서로 보았던 것은
 헌법 권영성 교수님의 헌법학원론
 민법 곽윤직 교수님의 민법총칙, 물권법, 채권총론, 채권각론
 형법 이재상 교수님의 형법총론, 형법각론
이 책들이었습니다.

위 세 책들의 저자 가운데 권영성 교수님께서는 학교에 계셨기 때문에 직접 강의를 들을 수 있었지만, 곽윤직 교수님께서는 90년대 초반에 은퇴하셨고, 이재상 교수님은 이대에서 강의를 하셨기 때문에 직접 뵙지는 못했네요.

하지만 그 양의 방대함 때문에 기본서를 1회독 하는데 걸리는 시간이 만만찮아서, 특히 민법의 경우에는  곽윤직 교수님의 책들(줄여서 "곽서"라고 했습니다)을 요약 정리한 버전의 요약서가 나타나기 시작했습니다. 김준호 교수님의 민법강의가 시험용으로 각광을 받았죠. 몇년 후에 후배가 자신이 공부했다는 책을 가져왔는데 그 책은 지원림 교수님의 책이더라구요. 현재는 곽서를 별로 보지 않는 듯 했습니다.

학교에서 수업을 들을 당시 민법 교수님은 남효순, 양창수, 김재형, 윤진수 교수님이셨습니다. 저는 그 중 양창수, 김재형 교수님의 강의를 들었는데, 김재형 교수님이 조곤조곤하게 설명을 하시는 스타일이라면 양창수 교수님(현재 대법관으로 재직중이시죠)께서는 자신의 색깔이 분명하고, 다른 법학자들의 의견에 대해서 비판적으로 접근하셨는데, 학생들에게 인기가 높으셨습니다. 특히 곽윤직 교수님의 책으로 수업하시면서 곽교수님의 견해에 대해서 정중하게 자신은 다른 입장이라고 하시거나, 이은영 교수님의 견해를 사정없이 비판하시는 걸 은근히 재밌게 감상(?)할 수 있었습니다.

그런데 곽서라는 부동의 교과서가 있다보니 양교수님께서는 본인의 교과서를 내시지는 않으시고, "민법연구"라고 하여 본인이 교수로 재직하시면서 내는 연구물들을 묶어서 책으로 내시기 시작했습니다. 현재 9권까지 나와 있는 것 같습니다. 그런데 검색해 보니 2010년, 2011년, 2012년에 로스쿨 교재로 책을 내셨네요(계약법권리의 보전과 담보권리의 변동과 구제). 그 밖에 민법입문자들을 위해 쓰신 "민법입문"이라는 책이 있는데, 법학을 전공하지 않았거나 법학에 뜻이 있는 분들이 법학을 시작하면서 읽기에 좋은 책입니다(어설픈 법학개론 책보다 훨씬 낫다고 생각합니다).

어쩌다 일과 관련해서 찾아볼 논문이 있어 민법연구 8권을 사서 보게 되었는데, 그 서문에 양교수님께서 1권을 쓸때 서문을 다시 인용하시면서 아직도 우리 학계의 현실이 나아지지 않았다고 걱정하십니다. 민법학이 그럴진대, 형법, 헌법 그리고 제가 전공한 행정법학계는 어떻겠나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합니다. 그러나 이런 겸손한 마음으로 정진하시는 분들이 계셔서 어떻게든 세상에 지식이 쌓이고 더 좋아지고 있는게 아닐까요. 다음은 민법연구 8권에 인용되어 있는 민법연구 1권의 서문 중 일부입니다(한자는 한글로 고쳐서 옮깁니다).

"필자는 그야말로 민법학의 초심자에 지나지 않는다. 멀리 바라보며 나아갈 목표도 바로 눈 앞의 길도 뚜렷하지 아니한 채, 안개 속을 헤매는 암중모색의 단계를 벗어나지 못하였다. 그 과정에서 뼈저리게 느끼는 것은 우리에게 아직 [학문의 전통]이 없다는 것이다. 넓은 범위에서 양식 있는 분들의 동의를 얻고 있어 후학들이 일단 의지할 수 있는 방법이 수립되어 있는지 의문이고, 또한 학문적 훈련을 습득하여 가는 과정도 제도화되어 있지 않은 것으로 느껴진다. 그러므로 당연히 수많은 시행착오 그리고 불필요한 시간과 노력의 낭비가 행하여지고 있고, 더욱 중요한 것으로, 우리 나라에서의 민법학의 존재이유와 가치에 대한 회의가 은연 중에 팽배해 있어서 학문의 수행에 필수적인 인적 자원이 제대로 충원되지 못하고 있다. 법학을 일생을 걸만한 대업으로 여기는 유능한 젊은이들이 많이 있다는 것이 하나의 단위로서의 민법학계가 필수적으로 갖추어야 할 조건이 아니겠는가. 그리고 그러한 [전통의 부재]는 당연히 학문작업(그 성과는 일단 논문의 형태로 나타날 것이다)에 대한 자율적인 평가체계가 기능하지 아니하고 있다는 것으로 통한다.
이러한 상태에서 언필칭 [논문집]을 펴 낸다는 것이 어떠한 의미가 있는지 스스로 의심이 들기도 한다. 다만 여기저기서 [준거]의 획득을 위하여 고투를 계속하고 있는 동료들에게 이러한 글들이 조금이라도 동병상련의 위안이 되지 않을까 기대하여 보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