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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년 8월 19일 토요일

[책 소개] 대법원, 이의 있습니다



권석천, 대법원, 이의 있습니다, 창비(2017)

이용훈 대법원장 재임기간 있었던 대법원 판결들과 그에 얽힌 뒷이야기들. 그래도 이슈가 되었던 대법원 판결들은 대부분 알고 있다고 자부하고 있었는데도, 이 책에서 요지를 처음 접하는 대법원 판결이 있을 정도로 많은 대법원 판결들이 내용으로 들어가 있습니다. 김영란 대법관님께서 집필하셨던 판결을 다시 생각한다 와 겹치는 판결들이 많지만, 아무래도 이용훈 대법원장과의 인터뷰를 기초로 하여 씌어진 책이니만큼 사건 수에서도, 그 뒷이야기도 더 많은 편입니다.

저자는 오랜기간 중앙일보-JTBC의 법조/사회 담당에 있었기 때문에 대법원의 구성변화와 대법원 판결의 변화를 생생히 전달합니다. 아무래도 소수의견을 대변하는 박시환 대법관과 노무현 대통령이 임명했기 때문에 적어도 진보적인 입장표명에 대해 관대했던 이용훈 대법원장의 시각을 반영하고 있다고 할 수 밖에 없지만, 대법원 다수의견의 입장은 그 자체로 규범력이 있어서 소홀히 다루어질 수 없기 때문에 대법원 다수의견에 동조하는 의견을 가진 사람이라고 하더라도 이 책을 읽을 만한 가치는 충분하다고 생각합니다.

일반인에게는 관심도 없고 생소한 대법원의 구성이나 임명절차, 그리고 그에 얽힌 법원 고위 판사들 사이 또는 그들과 청와대, 검찰과의 줄다리기가 대법원장/대법관 입장에서 그려지고 있는 것은 쉽게 접할 수 있는 형태나 내용이 아닙니다. 아마도 이 정도로 자세히 그려낸 것은 이 책이 처음이 아닐까 합니다(신동아나 월간조선에 분석기사로 실리는 글들 정도에 단편적으로 나타난 적이 있었을까요).

어쨌든 기본적인 법조 관련 경험과 지식이 있다면 "헉 이런 내용까지" 하면서 읽을 만한 내용임에는 틀림없습니다. 법사회학적으로 대법관들의 경향이나 판결내용을 하나하나 분석하는 책이나 기사가 미국 등에 비해 너무 부족한 우리 법조에 기념비적인 저작이 되지 않을까 싶습니다(물론 그럼에도 내용 때문에 선풍적인 인기는 어려울 것 같습니다 ^^). 하지만 이용훈 대법원장 시대에 우리 대법원의 주요 판례를 모르고 있었던 변호사/법조인은 꼭 읽어야 하지 않을까 합니다. 박시환/전수안 대법관이 대법원장 물망에 오르고 있는 지금 시점에서는 특히 그렇습니다.

다음은 인상깊었던 부분입니다.

양승태는 지방자치단체장의 위법행위에 대한 국가/상급 지방자치단체의 감독원 행사에 대해 "국법질서를 유지할 책임이 있는 국가 등의 당연한 의무"라고 강조했다. 그는 보충의견을 마무리하면서 "'나는' 이러한 사건에서 국가의 부당하 ㄴ간섭을 걱정하는 것보다는 오히려 지방자치단체장의 재량권 일탈/남용을 방지하는 것을 훨씬 더 걱정하여야 할 것으로 본다"고 못박았다. 이처럼 양승태의 법논리가 국법질서와 국가(중앙정부) 우위의 관점에 서 있다는 점은 이용훈 코트의 뒤를 잇는 양승태 코트의 방향성을 보여준다.

권석천, 대법원, 이의 있습니다, 창비(2017), 153면.

판사 출신의 한 변호사는 말한다. "요즘 법정에서 논리를 제시하면 '대법원 판례가 이렇다'고 제지하는 판사들이 있다. 대법원 판례만 따라간다면 전국에 그 많은 판사들이 왜 필요한가." 판사가 사건에 대한 열정과 고민 없이 대법원 판례를 기계적으로 적용하는 것만큼 위험한 일은 없다.

권석천, 대법원, 이의 있습니다, 창비(2017), 173면.


2007년 12월 2년만에 법원조직법을 재개정해서 다시 대법관이 법원행정처장을 겸임하도록 했다. 대법관회의 의결권이 없는 법원행정처장이 사법행정을 주도하기 힘들다는 지적도 있었지만, 그보다 대국회 창구가 비대법관출신 법원행정처장으로 바뀐 뒤 국회의원들의 불만이 계속됐다는 것이 상당한 영향을 미쳤다.

권석천, 대법원, 이의 있습니다, 창비(2017), 186면.


대법원의 공소장 일본주의 판결은 이후 재판에서 폭넓게 활용되지 않았다. 일부 재벌사건이나 정치인 사건에서 주장됐을 뿐이다. 변호사들도 공소장일본주의 위반 문제를 적극적으로 제기하지 앟았고, 판사들도 큰 관심을 두지 않았다. 대법원에서 획기적인 판례가 나오더라도 현장의 법조인들이 경각심을 갖고 분발하지 않는다면 '종이 호랑이'에 불과함을 다시 확인시켜주고 있다.

권석천, 대법원, 이의 있습니다, 창비(2017), 181면.


젊은 판사들의 장래 희망이 '공보담당판사 -> 법원행정처 심의관 -> 고등법원 부장판사 -> 법원행정처 차장 ->대법관' 이라는 말이 나오는 건 정상이 아니다. 법원행정처, 대법관을 목표로 재판하는 판사에게 자신의 운명을 맡기고 싶은 사람이 있을까. 중앙집권적인 관료사법을 수술하는 것을 검찰개혁과 함께 할 또 하나의 과제다.

권석천, 대법원, 이의 있습니다, 창비(2017), 191면.


이용훈은 강일원에 대해 "생각은 조금 보수적이지만 민주주의 원리나 법치주의, 법관의 품성에 있어 깊이를 가진 판사"라고 평가했다. "듣기 싫은 소리를 기분 나쁘지 않게 하는 사람"이라고 말하기도 했다. 강일원은 이광범-김종훈 팀이 사라진 이용훈 코트 후반기 사법행정을 이끌었다.

권석천, 대법원, 이의 있습니다, 창비(2017), 246면.


긴급조치 판결이 '박정희 시대'의 대표적 과오에 대한 것이라면 조봉암 재심 판결은 '이승만 시대'의 대표적 과오에 대한 것이다. 지체된 정의의 해악은 정의가 아니라는 데 그치지 않는다. 지체된 정의는 악을 조장하고 방치한다. 그 악을 바로잡는 데 몇 배, 몇십 배의 에너지가 소모된다.

권석천, 대법원, 이의 있습니다, 창비(2017), 276-277면.


"신영철은 자신 사퇴할 것"이라고 말했던 이들도 자신들의 말을 더이상 입에 올리지 않았다. 어떤 이는 그게 큰 일이냐고 했고, 어떤 이는 불가피한 선택이었다고 했다. 어떤 이는 속았다고 했다. 잘잘못을 가리고 책임을 묻는 일을 하는 법원과 판사들이 정작 자신들에게는 책임을 묻지 않았다. 모두가 부끄러워야 했지만 아무도 부끄러워하지 않았다.

권석천, 대법원, 이의 있습니다, 창비(2017), 315면.


법무법인 바른은 이명박 정부 출범 후 정동기 청와대 민정수석, 강훈 법무비서관 등 소속 변호사들이 정부에 들어가면서 각광을 받았다. '노무현 정부는 법무법인 화우, 이명박 정부는 법무법인 바른'이란 말이 나올 정도였다. 하지만 급성장의 배경을 이명박 정부의 출범에서만 찾는 것은 무리가 있다. 최종영 전 대법원장, 박재윤 전 대법관, 김동건 전 서울고법원장, 명로승 전 법무차관, 문성우 전 대검차장, 이인규 전 대검 중수부장 등 법원/검찰의 고위 전관들이 대거 영입돼 '송무로펌'으로 자리를 잡았다.

권석천, 대법원, 이의 있습니다, 창비(2017), 325면.


정의는 법논리와 법 감정, 머리와 가슴 사이에 있다. 맥락을 끊어낸 법리는 누구를 위한 것인가. 사법이 형식논리의 포로가 된다면 기득권의 편법과 탈법, 불법을 눈감아주는 결과를 낳는 것 아닌가. 재벌 사건에서 대형 로펌 변호사들이 벌이는 화려한 법 논리의 향연은 돈 없고 힘없는 시민들의 박탈감만 더할 뿐이다. 집행유예로 빠져나가는 재벌 회장들의 휠체어만큼 사법 신뢰를 위협하는 것은 없다.

권석천, 대법원, 이의 있습니다, 창비(2017), 355면.


그러나 이길 수 없었다고 해서 패배한 것은 아니다. 철수했다고 해서 포기한 것은 아니다. 시민들이 다시 세운 나라다. 패배할 수도, 포기할 수도 없다. 정의를 위해 스스로와의 싸움을 멈추지 않는 순간 우리는 정의롭다. 정의는 명사가 아니다. 살아 움직이는 동사다.

권석천, 대법원, 이의 있습니다, 창비(2017), 476면.













2015년 11월 23일 월요일

[책 소개] 판결을 다시 생각한다



김영란, 판결을 다시 생각한다: 한국사회를 움직인 대법원 10대 논쟁, 창비(2015)

변호사 생활을 하면서 담당 사건의 판사가 어떠한 생각을 하고 있는가 나아가 대법원을 구성하는 대법관들은 어떠한 생각을 하고 있는지 궁금해지곤 합니다. 특히 "판사는 판결로 말한다"는 격언은, 판결 이외에 언론 등을 이용해서 선고된 판결에 대해서 심지어 그 당해 판결의 판사 조차도 왈가왈부하는 것이 부적절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그렇지만 우리나라 최고 지성들의 상당 부분이 지망하여 근무하고 있는 판사라는 직역의 사람들의 생각은 판결문이라는 제한적인 형식과 내용만으로 담아 내기에는 부족한 측면이 있고(현직에 있는 판사님 중에는 문유석 부장님이 활발히 칼럼, 저서 등으로 활동중이신 편입니다 관련 포스팅은 [책 소개] 판사유감), 현직에서 물러난 분들의 말씀이라면 뒤늦게나마 경청할 가치가 있습니다. 변호사라는 직업인으로서는 더욱더 이미 지나간  사건이더라도 대법원 전원합의체 판결이 내려지게 된 배경이나 그 의미에 대해서 곱씹어 볼 시간을 갖는 것은 매우 중요합니다.

그런 점에서 김영란 전 대법관(김영란 대법관님의 종전 칼럼 내용으로 포스팅한 적도 있었네요. 제너럴리스트로서의 법조인)께서 자신이 관여한 중요 대법원 사건들에 대하여 서강대학교에서 강의하시면서 이를 토대로 쓰신 이 책은 읽어볼 만한 가치가 있습니다. 변화하는 사회에서 최고법원으로서의 법률해석이 어떠해야 하는지부터, 실제 대법원 판결이 내려지기까지 어떠한 근거와 자료들이 모아지는지, 실제 대법관들이 합의를 하고 판결을 내리는 과정까지 실제 대법관으로 근무하였던 사람이 아니라면 할 수 없는 이야기들을  이책은 비교적 쉽고 자세하게 설명하고 있습니다. 만약 로스쿨생이나 법조에 관심있는 사람이라면 인용된 판례들을 찾아서 읽어보는 것이 좋은 공부가 될 것입니다.

다음은 인상깊었던 부분들입니다.

다수의견과 반대의견을 결정적으로 가른 것은 실질과 형식의 문제였다. 죄형법정주의나 조세법률주의 등은 법이라는 엄격한 형식을 갖추지 않고 형사처벌을 하거나 조세를 부과하는 것을 막기 위한 원칙이다. 엄격한 형식주의가 개인의 기본권을 보호하는 데 중대한 역할을 해온 것이다. 형식을 무시하고 실질을 들여다 본다는 것은 법률의 자의적인 적용을 불러올 수 있으므로 그만큼 위험할 수도 있다. 그러나 형식을 가장해 추구하는 실질이 명백히 드러난 경우까지 형식주의만을 추구하는 것은 무슨 의미가 있는지에 따라 실질을 취하기도 하고 형식을 취하기도 하는 법률 해석의 전례로 보면 이는 전체적인 제도의 취지와 입법의 목적 등을 고려해 선택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김영란, 판결을 다시 생각한다, 창비(2015), 72-73면.


"나는 당신이 쓴 글을 혐오한다. 그러나 당신의 생각을 표현할 권리를 당신에게 보장해주기 위해 나는 기꺼이 죽을 준비가 되어 있다." 이것이 볼떼르의 말인지 아닌지는 여전히 논란거리지만 표현의 자유와 관련해 역사적으로 가장 유명한 말 중 하나이다.
-김영란, 판결을 다시 생각한다, 창비(2015), 79면.

명예훼손과 관련된 우리나라의 법제는 두가지 특징을 지니고 있다. 첫째는 민사상 책임 뿐 아니라 형사상 책임까지 함께 물을 수 있다는 것이다. 국제적으로는 명예훼손에 대해 형사상 책임을 묻는 제도는 거의 폐지되거나 사문화되었다. 다만 일본은 우리처럼 민형사상 책임을 함께 물을 수 있고, 독일은 진실임을 증명하지 못하는 비방에 대해서 형사처벌하는 규정을 가지고 있다.
-김영란, 판결을 다시 생각한다, 창비(2015), 86면.


사립학교의 설립 및 운영의 자유는 학교법인이 자신의 정체성을 외부의 간섭 없이 자율적으로 결정할 자유를 포함하며, 이는 학교법인의 정체성을 구체적으로 실현하는 이사들을 자율적으로 선임할 자유로 이어진다. 사립학교법에서 학교법인의 설립자가 설립 당초 이사를 정관에 정하도록 하고, 이사회가 다음 이사를 선임하도록 하여 이러한 자유를 법률로써 구체화한 것은 학교법인의 이러한 특수성에 기인한다는 것이다.
-김영란, 판결을 다시 생각한다, 창비(2015), 143면.


미국 하바드대학교 로스쿨 교수인 앨런 M. 더쇼위츠는 한 칼럼에서 ..."법률분야는 독창성을 보이면 오히려 실점을 당하고, 누군가 다른 사람이 먼저 이런저런 생각을 했다는 사실을 거론해야만 득점을 하는 직업이기 때문에 노벨상이 없다", "법분야에서 창의성은 주로 과거의 사건들을 분석하여 장애물을 우회하거나 법 자체를 확대 적용하는 것을 의미한다."라는 비꼬임 섞인 지적을 한 바 있다.
-김영란, 판결을 다시 생각한다, 창비(2015), 149면.


.. 대법원의 변론기일에 참고인으로 나온의사는 여성이냐 남성이냐의 문제는 더이상 염색체의 문제가 아니라 성적 분화를 일으키는 뇌의 특정 부위에서 일어나는 문제라고 설명했다. 
-김영란, 판결을 다시 생각한다, 창비(2015), 178-179면.


이 가운데 가장 유명한 이야기는 아리스토파네스의 사랑의 기원에 관한 것이다. 그에 따르면 원래 인간에게는 세가지 혼합된 성이 있었다고 한다. 남성-남성, 여성-여성, 그리고 남성-여성이 혼합된 성이 그것이다. 이들 혼합된 성의 인간은 팔과 다리가 각각 네개이고 얼굴은 두개이며 전체적으로 둥글게 생겼고, 빨리 달릴 때는 여덟개의 손발로 스스로를 지탱하면서 빙글빙글 움직였다고 한다. 이들은 힘과 활력이 엄청나고 자부심도 대단해서 신들을 공격하기도 했으므로, 신들은 인간들이 못된 짓을 하지 못하게 하기 위해서 그들을 반쪽으로 나누었다는 것이다. 그때부터 나누어진 반쪽들은 원래 자기자신이던 또다른 반쪽을 갈망해 하나가 되고 싶어하는데, 이전에 남녀 양성이 결합되었던 인간은 서로 다른 성에게 끌리지만 남성이나 여성끼리 결합되었던 인간은 같은 성에 끌리게 된다고 했다.
-김영란, 판결을 다시 생각한다, 창비(2015), 180-181면.


앤서니 케네디 대법관이 집필한 다수의견에서 내가 특히 공감한 부분은 "불의의 본질은 우리가 살고 있는 시기에 그것이 우리의 눈에 바로 보이지 않을 수도 있다는 점에 있다."...
-김영란, 판결을 다시 생각한다, 창비(2015), 185면.


사회 통념, 사회 질서, 경험칙은 조리를 다른 말로 표현한 것이다. 결국 조리란 법관들의 관점이 아니라 일반인들의 상식에 부합하는가의 관점을 말한다.
-김영란, 판결을 다시 생각한다, 창비(2015), 204면.


2015년 6월 30일 화요일

미 연방대법원의 동성결혼 합헌 결정



미 연방대법원이 5:4로 동성혼을 합법화하는 판결(판결문 전문 링크)을 했습니다. 역사적인 판결문이기도 하지만 전문을 읽어볼 생각은 들지 않고, 마지막 부분을 번역한 것을 인터넷에서 볼 수 있네요. 하지만 마음에 쏙 드는 것은 없어서 제가 한번 번역해보았습니다.

No union is more profound than marriage, for it embodies the highest ideals of love, fidelity, devotion, sacrifice, and family. In forming a marital union, two people become something greater than once they were. As some of the petitioners in these cases demonstrate, marriage embodies a love that may endure even past death. It would misunderstand these men and women to say they disrespect the idea of marriage. Their plea is that they do respect it, respect it so deeply that they seek to find its fulfillment for themselves. Their hope is not to be condemned to live in loneliness, excluded from one of civilization’s oldest institutions. They ask for equal dignity in the eyes of the law. The Constitution grants them that right. The judgment of the Court of Appeals for the Sixth Circuit is reversed. It is so ordered.

어떠한 결합도 결혼보다 더 심오하지는 않은데, 결혼은 사랑, 충실함, 헌신, 희생 그리고 가족이라는 최고의 이상들을 체화하기 때문이다. 결혼이라는 결합을 형성하면서, 두 사람은 한 때 그들이 그랬던 것보다 더 위대해진다. 이 사건들에서 일부 상고인들이 보여주는 바와 같이, 결혼은 심지어 과거의 죽음조차 견뎌내는 사랑을 체화한다. 이 남자들과 여자들이 결혼의 이상을 존중하지 않는다고 말하는 것은 그들을 오해하는 것이 될 것이다. 그들의 청구는 그들이 너무도 결혼을 존중하고, 너무나 깊게 그것을 존중한 나머지 그 자신들의 관계들이 결혼으로서 완성되기를 구한다는 것이다. 그들의 희망은, 우리 문명의 가장 오래된 제도들 중 하나로부터 배제되어, 외로움 속에서 살도록 운명지워지고 싶지 않다는 것이다. 그들은 법의 눈 앞에서 평등한 존엄을 요청하였다. 헌법은 그들에게 그러한 권리를 허용한다. 제6항소법원의 판결을 파기한다. 이상과 같이 판결한다.

로버츠 대법원장의 반대의견 마지막 부분도 옮겨봅니다. 사회에서 벌어지는 중요한 사건들을 모두 법원/헌법재판소의 판단에 의하여 해결하려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는 측면에서 사법소극주의의 입장도 경청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If you are among the many Americans—of whatever sexual orientation—who favor expanding same-sex mar- riage, by all means celebrate today’s decision. Celebrate the achievement of a desired goal. Celebrate the oppor- tunity for a new expression of commitment to a partner. Celebrate the availability of new benefits. But do not celebrate the Constitution. It had nothing to do with it.
I respectfully dissent. 

당신이 동성혼을 확대하는데 찬성하는 많은 미국인들 - 어떤 성적 지향을 가지고 있건 - 에 포함된다면, 무슨 일이 있어도 오늘의 결정을 축하하라. 의도한 목적의 달성을 축하하라. 상대방에 대한 서약의 새로운 표현할 기회를 축하하라. 새로운 이익의 가능성을 축하하라. 하지만 헌법을 축하하진 말라. 헌법은 그것과 전혀 관계없다. 나는 정중히 반대한다.

2015년 1월 8일 목요일

법학 입문자에게


*사진은 "민법입문"이라는 책의 저자 이신 양창수 전 대법관님입니다.

지난 해 말 모교의 동기유발캠프라고 하는 행사에 법조직역을 소개하는 내용의 특강을 해 달라는 부탁을 받아 1시간 남짓한 시간동안 변호사 및 법조직역에 대해서 설명해 주는 시간이 있었습니다. 동기유발캠프는 명문대학에 교수로 재직하고 있는 동문 선배들이 고등학교 2학년인 후배들에게 학교 구경 및 대학생활에 대한 설명을,  각 직업 분야의 직역에 진출한 선배들이 자신에 직업에 대한 설명을 해 주는 프로그램들로 짜여 있었는데 그 중 일부를 맡은 것이었지요.

법조직역에 설명하다 보니 법학공부를 어떻게 시작하는 것이 좋은 것인지 누가 물어본다면 어떻게 대답해야 할 것인지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과거로 돌아가 대학 2학년 사법시험을 처음 시작할 당시에 무슨 책을 잡고 어떻게 공부를 시작하는 것이 좋을까 하는 제 의문에 대하여 지금의 나는 어떻게 대답할 것인가 하고 말입니다.

만약에 제가 20년 전의 저에게 대답한다면 양창수 전 대법관님의 "민법입문"[양창수, 민법입문, 박영사(1991), 현재 제6판(2015)이 나와 있습니다]을 그 지침에 따라 읽어보기를 권하고 싶습니다. 민법입문에서 양 전 대법관님께서 말씀하고 있는 바와 같이, 법전을 펴놓고 책에서 인용되는 법규정을 수시로 찾아보고, 책에서 뒤에 나올 것이나 앞에서 이미 나온 것을 참조하라는 지시가 있으면(예컨대 뒤의 [106] "둘째" 참조, 이와 같은 지시) 반드시 실행하면서 책을 읽는 것입니다. 법서는 그렇지 않아도 진도가 나가지 않는 책입니다. 이런 지시를 이행하면서 읽는 경우 1페이지에 10분 걸릴 것이 30분, 1시간이 걸리는 경우도  있어서 400페이지에 달하는 책을 읽는데 1달(또는 그 이상)이 걸릴 수도 있을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법학의 초심자로서 기초를 닦고 싶다면 초기에 많은 시간이 드는 것을 감수하는 것이 나중에 자신의 수준을 수월하게 높일 수 있는 지름길이라고 생각합니다.


물론 사법시험 공부를 시작하는 당시에 제가 양 전 대법관님의 민법입문을 읽으면서 공부를 시작하지는 않았습니다. 이미 민법총칙, 물권법, 채권총론, 채권각론 수업을 들으면서 민법 교과서들을 보고 있는 상태였기 때문에 완전한 법학공부 초심자와는 다른 입장이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법서를 처음 보면서 법조문과 참조지시를 이행하면서 읽는 원칙은 지켜서 책을 읽었습니다. 제가 당시에 민법입문을 읽지는 않았었던 것 같은데, 교과서도 모자라 책을 마구 사는  친구 옆에서 슬쩍 서문이라도 읽어보아서였을지 않을까 추측해 봅니다. 순서대로 책을 줄줄 읽는 것이 기본적인 용어와 이론을 모르는 상태에서 가능하지도 않았을 뿐더러 책을 왔다갔다 하면서 읽는 것이 지루함을 많이 덜어주기도 하였기 때문이었는데 결과적으로 법학에 익숙해지는데 더디지만 확실한 방법이었던 것 같습니다.

양창수 전 대법관님께서는 판사로 재직하다가 교수가 되신 당시로서는 특이한 경력의 교수님이셨는데(양 전 대법관님을 필두로, 판사 출신의 윤진수, 김재형 교수님 등이 대학으로 자리를 옮기시게 됩니다), 제가 학부 다닐 무렵(1995년-1998년) 서울대학교 법과대학에서 민법을 가르치고 계셨고, 강의가 매우 인기가 있었습니다. 무엇보다도 시원시원하게 맞으면 맞다 틀리면 틀리다 하시는 직설적인 화법이 매력적이었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책을 보아도 화통하신 성격이 잘 드러나는 것 같습니다. 퇴임하시면서 한 인터뷰에서도 기자들에게 엄하게 하셨던 모양이네요([법조라운지] 퇴임하는 양창수 대법관, 법률신문 2014. 9. 1.자).

민법입문에서 "들어가기 전에"라고 하여 자신의 책을 읽는 방법을 지시하시는 부분만 읽어도 법학을 어떤 자세로 공부해야 할 것인지 어느 정도 알 수 있을 것입니다. 개인적으로 저는 "그게 안되면 법 공부를 그만 두라"는 부분에서 양 전 대법관님 다우시다는 생각을 많이 했습니다. 관련 부분을 인용해 둡니다.

들어가기 전에

1. ...

2. 대부분의 법학 교과서에서도 그러하지마는, 이 책에서도 뒤에 나올 것이나 앞에 이미 나온 것들을 '참조하라'는 지시가 많이 등장한다. 이 지시는 반드시 실행되어야 한다. 다시 말하는데, 반드시 실행되어야 한다. 이 책을 포함하여 법학 교과서를 읽는 경우에는 읽어 넘긴 쪽수의 양에 집착하여서는 안 된다.

3. 앞으로 이 책에서, 일상생활에서 잘 쓰이지 않는 낯선 용어를 많이 보게 될 것이다. 이와 같이 새로운 용어가 빈번하게 나온다는 것 자체가 견딜 수 없는 것으로 느껴지는 사람은 애초에 법 공부를 그만 두는 것이 좋다.
모든 전문 분야가 그러하듯이, 법에서도 고유한 용어를 많이 사용하고 있다. 그 용어는 말하자면, 법을 전문으로 하는 사람들 사이에서 통용되는 공통의 교신부호와 같은 것으로서, 수학이나 컴퓨터프로그래밍 또는 기호논리학에서 쓰이는 숫자나 각종의 부호와 별로 다를 바 없는 것이다. 이것은 모름지기 애써 의미를 이해하고 익혀서 몸에 배게 할 일이다.
물론 우리나라의 법언어에 관하여는 개선하여야 할 점이 많이 있으나, 그렇다고 해서 그것 때문에 법이 도대체 불만스러워서 견딜 수 없다고 하면, 이는 법 공부가 적성에 맞지 않는 것이라고 말할 수밖에 없다.

4. 이상을 읽어보아도 알겠지만, 현재의 단계에서 법을 공부하는 데는 한자를 잘 알 필요가 있다. 헌법을 위시하여 민법이나 형법 기타 주요한 법률이 한자를 쓰고 있기 때문에, 이는 부득이한 일이다.

...

양창수, 민법입문 제6판, 박영사(2015), vii - viii

2014년 3월 7일 금요일

심리불속행 제도




우리나라는 3심제를 택하고 있습니다. 즉, 법원에 판결을 구하는 사람은 적어도 3번의 재판이 보장되어 있다는 뜻입니다. 하지만 실질적으로 3번의 재판을 처음부터 새로 하듯 하는 것은 아닙니다. 만약 1심 판결이 정당하여 2, 3심이 동일한 결론을 내릴 수 밖에 없는 사건이라면 2, 3심에 드는 비용(당사자가 부담하는 소송비용에도 불구하고)은 사회적으로 불필요한 비용을 소모하는 것이라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이러한 사회적으로 불필요한 비용을 줄이는 제도 중 하나가 상고심의 심리불속행 제도 입니다.



대법원은 대법원장을 포함한 14명의 대법관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그 중 대법원장과 법원 행정처장을 제외한 12명이 3명씩 4개의 부를 구성하여 심리를 합니다(예외적으로 판례변경 이 필요한 경우 등에 대법관 전원이 심리하는 전원합의체 판결을 합니다). 그리고 그 범위는 전국 각지의 법원에서 올라오는 모든 상고사건입니다. 그리하여 소송을 제기할 때 붙이는 인지대보다 1심 판결에 항소할 때 붙이는 인지대가 비싸고, 1심 판결에 항소할 때 붙이는 인지대보다 2심 판결에 상고할 때 붙이는 인지대가 더 비쌉니다. "상급심에 판단을 구하려면 돈을 더 많이 내라"는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나라 사람들 기질상 소송에서 패소하는 경우, 경제적 이해득실도 따지지만 "최고법원의 판단을 받아보겠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의외로 많습니다. 그래서 상고사건이 폭주한다고 할 수 있고, 그 심리를 하는 대법관, 대법원 재판연구관들은 항상 과중한 업무에 시달린다고 합니다.



그래서 대법원에서는 모든 상고사건을 면밀히 심리하지 않고, 상고사건들 중 대법원이 면밀히 심리해야 할 사건과 심리하지 않을 사건을 나눠서 후자의 경우에는 심리불속행하겠다는 취지로 상고기각의 판결을 합니다. 이것을 소위 "심리불속행 기각"이라고 합니다.



이러한 심리불속행 제도의 취지를 알지만, 변호사가 의뢰인에게 심리불속행 기각 결정이 떨어졌다는 것을 알리는 것은 매우 난감한 것도 사실입니다. 한명 한명의 의뢰인에게 각 사건은 자신의 재산이 달린 너무나도 중요한 문제이기 때문입니다. 더욱이 심리불속행 기각 결정에는 사실상 판결의 이유가 없습니다. 변호사에게는 "대법원에서는 우리와 달리 이렇게 생각한다"라고 의뢰인에게 이야기해줄 거리가 없어지는 것입니다. 그래서 상고사건을 많이 해본 의뢰인은 굳이 대법관 출신 변호사를 선임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적어도 대법관 출신 변호사가 상고한 사건에 대해서 대법원이 함부로 심리불속행 기각을 하지 못할 것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