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년 3월 23일 화요일

갱신요구거절의 주체는 종전 임대인


임차인이 기존 집주인(임대인)에게 임대차계약 갱신 의사를 밝혔다면 이후 주택을 매수한 새 주인이 실거주를 하겠다고 해도 임차인의 계약갱신요구를 거절할 수 없다는 1심 판결이 나왔습니다(수원지법 2020가단569230 판결)([판결] 임차인이 종전 임대인에게 전세계약 연장 의사 밝혔다면, 법률신문 2021. 3. 22.자 기사)

주택임대차보호법 개정으로 인하여 변경된 임차인의 갱신요구권 적용범위에 대한 유의미한 최초의 판결로 보입니다. 물론 대법원 확정판결이 아니기 때문에 일응 참고하면 될 것 같습니다.

관련조항은 주택임대차보호법 제6조의3 으로 지난 12월에 시행되었습니다.

제6조의3(계약갱신 요구 등) ① 제6조에도 불구하고 임대인은 임차인이 제6조제1항 전단의 기간 이내에 계약갱신을 요구할 경우 정당한 사유 없이 거절하지 못한다. 다만, 다음 각 호의 어느 하나에 해당하는 경우에는 그러하지 아니하다.

1. 임차인이 2기의 차임액에 해당하는 금액에 이르도록 차임을 연체한 사실이 있는 경우

2. 임차인이 거짓이나 그 밖의 부정한 방법으로 임차한 경우

3. 서로 합의하여 임대인이 임차인에게 상당한 보상을 제공한 경우

4. 임차인이 임대인의 동의 없이 목적 주택의 전부 또는 일부를 전대(轉貸)한 경우

5. 임차인이 임차한 주택의 전부 또는 일부를 고의나 중대한 과실로 파손한 경우

6. 임차한 주택의 전부 또는 일부가 멸실되어 임대차의 목적을 달성하지 못할 경우

7. 임대인이 다음 각 목의 어느 하나에 해당하는 사유로 목적 주택의 전부 또는 대부분을 철거하거나 재건축하기 위하여 목적 주택의 점유를 회복할 필요가 있는 경우

가. 임대차계약 체결 당시 공사시기 및 소요기간 등을 포함한 철거 또는 재건축 계획을 임차인에게 구체적으로 고지하고 그 계획에 따르는 경우

나. 건물이 노후ㆍ훼손 또는 일부 멸실되는 등 안전사고의 우려가 있는 경우

다. 다른 법령에 따라 철거 또는 재건축이 이루어지는 경우

8. 임대인(임대인의 직계존속ㆍ직계비속을 포함한다)이 목적 주택에 실제 거주하려는 경우

9. 그 밖에 임차인이 임차인으로서의 의무를 현저히 위반하거나 임대차를 계속하기 어려운 중대한 사유가 있는 경우

문제가 된 것은 주택임대차보호법 제6조의3 제1항 제8호로, 임차인이 계약갱신요구권을 행사한다고 하더라도, 임대인(임대인의 직계존속, 직계비속을 포함한다)이 목적 주택에 실제 거주하려는 경우 에는 임차인의 계약갱신요구를 거절할 수 있는데, 문제는 계약갱신을 할 수 있는 기간동안 임대인이 당해 주택을 매도하여 새 임대인은 목적 주택에 실제로 거주하려 한다는 이유로 계약갱신을 거절하였기 때문에 발생했습니다.

개정 법의 도입취지, 계약갱신요구권의 법적 성질, 실제 거주 사유라는 거절 사유의 특성을 고려하여 실제 거주를 이유로 한 갱신 거절 가능 여부는 임차인이 계약갱신을 요구할 당시 임대인을 기준으로 보아야 한다는 것인데요. 의문인 것은 법 제6조 제1항에 의할 때 주택을 양수한 새 임대인이 임대차기간이 끝나기 6개월 전부터 2개월 전까지의 기간에 (실거주를 이유로 한) 갱신거절의 통지를 하는 경우에는 갱신거절이 가능하지만, 그 기간이 지난 이후에 갱신거절을 하는 것은 받아들여지지 않는다고 보아야 하는 것 아닌가 하는 점입니다. 

실제 사안에서 신 임대인이 갱신거절의 통지를 한 시점이 법 제6조 제1항의 기간이 지난 상황이었다면 판결과 동일한 결론이 타당해 보이긴 합니다. 신 임대인의 실제거주 이유가 갱신거절 가능 기간 이후에 생긴 것이니까요. 이런 의문을 해소하기 위해서 실제 판결문을 구해서 읽어볼 수 있으면 좋겠네요.


2021년 3월 17일 수요일

[책 소개] 2021 제44회 이상문학상 작품집


이승우 외, 2021 제44회 이상문학상 작품집, 문학사상(2021)

한 5년 정도인가요... 딱히 가벼운 소설에는 손이 가지 않을 때 1년동안 우리나라에 나온 소설들을 모아서 읽을 수 있는 문학상 수상 소설집을 보기 시작했습니다. 이 블로그에 소개한 것만 해도

2019 제43회 이상문학상 작품집

2017 제41회 이상문학상 작품집

2016 제40회 이상문학상 작품집

2009 제33회 이상문학상 작품집

이렇게 되네요.

사실 올해 이상문학상 작품집을 볼 수 없을 수도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왜냐면 작년에 이상문학상 수상작에 대한 처우를 놓고 문학사상사의 처신이 문제가 되어 2020년 이상문학상은 건너뛰게 되었기 때문입니다. 논란이 된 것은 수상한 작가들의 저작권이나 출판권을 제한하는 규정들에 대해서 수상작가들이 문제를 삼았기 때문인데, 1년여동안 예심문제부터, 작가들의 저작권, 출판권 관련 조항을 정비하고, 수상작과 우수작 상금을 인상하면서 올해 다시 작품집을 내놓게 되었네요(경과에 대해서는 '다시 돌아온 이상문학상은 환영받을 수 있을까', 한국일보 2021. 1. 5.자 기사).

하지만 제가 구입하게 된 경위는 고속터미널 지하 주차장의 주차요금이 1시간에 5만원으로 인상된 것이 주된 원인이었습니다. 식사를 하고도 5만원 지출에 부족해서, 반디앤루니스 에 가서 5만원 이상 지출을 하기 위해서 고른 책이 이 책이었으니까요. 하... 그러고도 주차시간은 1시간 반을 훌쩍 넘어서 추가 주차요금을 지불했다는 건 비밀...

대상 수상작인 이승우 작가의 '마음의 부력'은 이렇다할 사건사고가 있기 보다는 주인공 내면의 (느끼지 않아도 될) 죄의식을 어머니를 통해 드러내는 방식에서 점수를 얻은 것이 아닌가 생각되었습니다. 대상수상자는 자천 대표작을 한편 실을 수 있는데, 그 작품도 비슷한 분위기여서 기억에 남네요. 수상소감에서 이청준 소설가의 작품을 많이 읽고 첫 소설을 썼다는 걸 읽고, 중학교 겨울방학 때 읽었던 이청준 작가의 소설이 떠오르기도 했습니다('매잡이' 라는 제목의 소설이었는데 내용은 역시나 기억에 없네요). 

우수상 작품들 중에서는 박형서 작가의 '97의 시간'이 재밌었습니다. 시간이 무한루프 되는 배경 속에서 자신의 아이를 살리려는 아버지의 이야기가 신선했습니다. 하지만 무한루프 그 자체는 정말 장치일 뿐, 그 주제의식은 삶이 아무런 관련 없게 보이는 타인과 밀접하게 얽혀있을 수 밖에 없다는 생각에 이르게 해 주었기 때문에 그랬던 것 같네요.

우여곡절 끝에 어쨌든 1년간의 한국소설의 단면을 보여주는 작품집이 다시 복귀한 것은 다행스러운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내년에도 이상문학상 작품집을 볼 수 있었으면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