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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년 3월 17일 수요일

[책 소개] 2021 제44회 이상문학상 작품집


이승우 외, 2021 제44회 이상문학상 작품집, 문학사상(2021)

한 5년 정도인가요... 딱히 가벼운 소설에는 손이 가지 않을 때 1년동안 우리나라에 나온 소설들을 모아서 읽을 수 있는 문학상 수상 소설집을 보기 시작했습니다. 이 블로그에 소개한 것만 해도

2019 제43회 이상문학상 작품집

2017 제41회 이상문학상 작품집

2016 제40회 이상문학상 작품집

2009 제33회 이상문학상 작품집

이렇게 되네요.

사실 올해 이상문학상 작품집을 볼 수 없을 수도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왜냐면 작년에 이상문학상 수상작에 대한 처우를 놓고 문학사상사의 처신이 문제가 되어 2020년 이상문학상은 건너뛰게 되었기 때문입니다. 논란이 된 것은 수상한 작가들의 저작권이나 출판권을 제한하는 규정들에 대해서 수상작가들이 문제를 삼았기 때문인데, 1년여동안 예심문제부터, 작가들의 저작권, 출판권 관련 조항을 정비하고, 수상작과 우수작 상금을 인상하면서 올해 다시 작품집을 내놓게 되었네요(경과에 대해서는 '다시 돌아온 이상문학상은 환영받을 수 있을까', 한국일보 2021. 1. 5.자 기사).

하지만 제가 구입하게 된 경위는 고속터미널 지하 주차장의 주차요금이 1시간에 5만원으로 인상된 것이 주된 원인이었습니다. 식사를 하고도 5만원 지출에 부족해서, 반디앤루니스 에 가서 5만원 이상 지출을 하기 위해서 고른 책이 이 책이었으니까요. 하... 그러고도 주차시간은 1시간 반을 훌쩍 넘어서 추가 주차요금을 지불했다는 건 비밀...

대상 수상작인 이승우 작가의 '마음의 부력'은 이렇다할 사건사고가 있기 보다는 주인공 내면의 (느끼지 않아도 될) 죄의식을 어머니를 통해 드러내는 방식에서 점수를 얻은 것이 아닌가 생각되었습니다. 대상수상자는 자천 대표작을 한편 실을 수 있는데, 그 작품도 비슷한 분위기여서 기억에 남네요. 수상소감에서 이청준 소설가의 작품을 많이 읽고 첫 소설을 썼다는 걸 읽고, 중학교 겨울방학 때 읽었던 이청준 작가의 소설이 떠오르기도 했습니다('매잡이' 라는 제목의 소설이었는데 내용은 역시나 기억에 없네요). 

우수상 작품들 중에서는 박형서 작가의 '97의 시간'이 재밌었습니다. 시간이 무한루프 되는 배경 속에서 자신의 아이를 살리려는 아버지의 이야기가 신선했습니다. 하지만 무한루프 그 자체는 정말 장치일 뿐, 그 주제의식은 삶이 아무런 관련 없게 보이는 타인과 밀접하게 얽혀있을 수 밖에 없다는 생각에 이르게 해 주었기 때문에 그랬던 것 같네요.

우여곡절 끝에 어쨌든 1년간의 한국소설의 단면을 보여주는 작품집이 다시 복귀한 것은 다행스러운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내년에도 이상문학상 작품집을 볼 수 있었으면 합니다.


2019년 12월 23일 월요일

[책소개] 2019 제43회 이상문학상 작품집

윤이형외, 2019 제43회 이상문학상 작품집, 문학사상(2019)

새삼 소설의 주제나 글감도 여성작가의 약진이 느껴지는 한해였던 것 같습니다. 무언가를 가르치는 식이 아니라 담담히 하는 이야기를 듣도록 만드는 소설의 힘은 어떤 논문이나 연설보다 더 강력한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드네요. 수상작들의 전반적인 특징이 우리 사회의 한 단면 같이 느껴지기도 합니다.

"심사위원들이 대상 후복작의 전반적인 특징을 놓고 토론하는 과정에서 언급했던 소설적 경향들은 다음의 네가지 정도로 요약된다. 첫째, 기존 소설에서 서사적 갈등의 핵심이 되었던 정치적/사상적 이념성이 대부분 제거되고 있다는 점, 둘째, 고통스러우며 견디기 힘든 각박한 현실과 삶의 조건을 문제삼고 있는 작품이 많은 점, 셋째, 개인의 주관성에 갇혀 있는 주체의 내적 고뇌를 통해 자기 존재를 확인하고자 하는 경향이 강하다는 점, 넷째, 한국 사회의 변화 가운데 주목되는 다문화사회의 특징을 흥미로운 관점에서 접근하고 있는 작품이 많은 점 등이다."
-2019 43회 이상문학상 작품집, 문학사상(2019), 343면.


소설 중 인상적인 부분입니다.

희은은 그 죽음을 객관화할 수 없었다. 그런 죽음이 실은 지상의 모든 생명에게 평등하게 일어나고, 특별할 것이 없으며, 타인의 애도는 언제나 충분하지 않고, 따라서 아무리 부족하다 한들 그 하나하나의 위로를 겸손하고 감사하게 받아들여야 한다는 당연한 이치를 떠올릴 수 없었다.
-윤이형, 그들의 첫번째와 두번째 고양이, 2019 43회 이상문학상 작품집, 문학사상(2019), 32면

정민은 그 옛날의 건너편 건물 사건과 비슷한 피해의 경험이 모든 여성에게 있다는 사실은 알았으나 그것이 그저 간단한 말 한마디, 표현 하나로도 헤집어져 심하게 뒤흔들릴 수 있다는 사실은 몰랐다. 자신이 원하던 곳에 있게 된 뒤에야, 삶이 한없이 버겁기만 하다는 감정에서 한발짝 벗어난 뒤에야 그 문제를 다르게 바라볼 수 있었다.
-윤이형, 그들의 첫번째와 두번째 고양이, 2019 43회 이상문학상 작품집, 문학사상(2019), 76면

아이 혼자키우기는 젊은 시절 이미 한 번 넘어본 산이었다. 그러나 그때는 젊음 특유의 회복력과 반드시 더 나은 날이 오리라는 대책없이 질기고 바보같은 기대, 그리고 어찌 됐든 이건 내가 선택한 길이라는 쇳덩어리 같은 각오들이 하루의 틈마다 빼곡히 들어차 있어 앞이 안 보이는 전쟁통에도 넘어지지 않을 수 있었다는 걸 나는 뒤늦게 깨달았다.
-윤이형, 대니, 2019 43회 이상문학상 작품집, 문학사상(2019), 103면

나는 과잉된 비장함을 장착한 전형적인 90년대 키드였다. 사랑이 세상과 싸우는 가장 적극적이고 정치적인 방식이라고 믿었다. 내게 시간과 공간은 대중문화의 필터를 통해서만 감각되고 기억되었다. 내용을 다 이해할 수 없었지만<키노>를 사랑해서 들고 다녔고, 시네필은 아니었으나 영화 한 편 때문에 며칠 동안 잠을 못 자기도 했다. 언론고시를 준비하고 있었지만, 졸업하면 영화 관련 일을 하고 싶다고 몰래 생각하고 있었다.
-윤이형, 나의 문학적 자서전, 2019 43회 이상문학상 작품집, 문학사항(2019), 139면

신뢰할 만한 작가의 젠더인식으로 소설은 결혼제도가 야기하는 억압을 문제삼지만, 그 문제제기가 성별 대결 구도에 갇히는 오류를 피하는 데에서 제도의 억압 자체에 대한 메타적 시야를 확보하는 데에로 나아간다. 소설은 성별과 젠더의 대결로 환원되지 않는 위태롭고도 좁은 틈을 비집고 결혼이 아니라 결혼제도를 서사적으로 문제삼는데 성공한다.
-소영현, 더 나은 세계를 위한 사유(그들의 첫 번째와 두 번째 고양이와 윤이형의 작품세계), 2019 43회 이상문학상 작품집, 문학사항(2019), 162-163면




2018년 2월 6일 화요일

소설가에게 부러운 점(feat. 2009년 이상문학상 작품집)


지난번 알라딘 중고서점 강남점에서 득템한 2009년 이상문학상 작품집(대상, 김연수, 산책하는 이들의 다섯가지 즐거움)을 읽으면서는, 소설가가 그리는 세상에 대해서 배우거나 나도 몰랐던 세상사에 대해서 알게 되었다기 보다는, 소설가로서 다른 사람의 인생, 또 하나의 세계를 구축하는 일을 하고 있는 김연수라는 소설가가 어떻게 해서 소설가가 되었는지를 담담하게 보여주는 김연수의 문학적 자서전(이 세상 그 누구도 대신 써주지 않는 15매)이 눈에 들어왔습니다.

자신이 쓴 글 중에서 가장 좋아하는 구절을 자신있게 보여줄 수 있다는 점이 이 김연수라는 소설가/작가에게 부러웠던 점이었달까요. 소설가 김연수([책소개] 소설가의 일 도 참조)가 2009년 현재 지금까지 자신이 쓴 글 중에서 가장 좋아하는 구절은 다음과 같습니다.

"어둠 속에 머물다가 단 한 번뿐이라고 하더라도 빛에 노출되어 본 경험이 있는 사람이라면 한평생 그 빛을 잊지 못하리라. 그런 순간에 그들은 자기 자신이 아닌 다른 존재가 됐으므로, 그 기억만으로 그들은 빛을 향한, 평생에 걸친 여행을 시작한다. 과거는 끊임없이 다시 찾아오면서 그들을 습격하고 복수하지만, 그리하여 때로 그들은 사기꾼이나 협잡꾼으로 죽어가지만 그들이 죽어가는 세계는 전과는 다른 세계다. 우리가 빠른 걸음으로 길모퉁이를 돌아갈 때, 침대에서 연인과 사랑을 나눈 뒤 식어가는 몸으로 누웠을 때, 눈을 감고 먼저 죽은 사람들을 생각하다가 다시 눈을 떴을 때, 몇 개의 문장으로 자신의 일생을 요약한 글을 다 썼을 때, 그럴 때마다 우리가 알고 있던 과거는 몇 번씩 그 모습을 바꾸었고, 그 결과 지금과 같은 모습의 세계가 탄생했다. 실망한 사람들은 새로운 시대, 거대한 변혁의 시대에 대해서는 아무것도 모르는 척 살아갈 뿐이다. 그들은 그렇게 살아가도록 내버려두자! 그들에게는 그들의 세계가 있고, 우리에게는 우리의 세계가 있다. 이 세계는 그렇게 여러 겹의 세계이며, 동시에 그 모든 세계는 단 하나뿐이라는 사실을 믿자! 설사 그 일이 온기를 한없이 그리워하게 만드는 사기꾼이자 협잡꾼으로 우리를 만든다고 하더라도, 그 세계가 바로 우리에게 남은 열망이므로."

변호사라서 남기는 것은 무죄판결에 변호인으로 나와 있는 제 이름 정도일까요. 그래도 제 직업은 어딘가에 제 이름이 남아있을 수 있는 직업이기는 하다는게 조금의 위안이 되는 것 같습니다. 그래도 자서전을 쓸 수 있는 이상문학상 수상 작가는 부럽습니다.

2015년 3월 13일 금요일

[책 소개] 2014 제5회 젊은작가상 수상작품집


황정은 외, 2014 제5회 젊은작가상 수상작품집, 문학동네(2014)

몇년전인가 첫째 동생이 이상문학상 작품집을 읽고 있는 것을 보고, 저런 형태로 발표되는 소설을 읽는 사람이 있구나!! 하는 생각이 났던 기억이 납니다. 제가 소설을 선택의 기준이라고 해봤댔자 베스트셀러로 주위의 모든 사람이 다 알고 있어서 대화주제에 참견하려면 필요한 경우, 신문의 책소개 코너에 기자가 하는 평이 맘에 드는 경우 등에 한정되어 있었기 때문에 아직 대중의 선택을 받지 못한 소설의 모음집을 읽을 생각이 전혀 없었던 때이기도 했습니다.

왜 이상문학작품집을 읽느냐는 제 질문에 첫째 동생은 쿨하게 "재밌어~"라고 대답했던 걸로 기억나네요. 그리고 다 읽었다던 그 작품집을 -물론 하나하나의 소설의 내용이 기억나지 않지만- 훍어보면서 읽었던 기억이 납니다. 그 이후로 특별히 수상작품집을 읽어볼 기회나 생각이 특별히 없었습니다.

그러다 작년 겨울에 아들놈들에게 맨날 책 읽으라는 잔소리만 해대면서 아빠란 작자는 스마트폰만 들여다 본다는 와이프의 비난에 대한 방탄막으로 책을 사면서 특별히 손길을 끄는 책이 없던 차에 첫째 동생이 생각나 골랐던 것이 이 책입니다.

읽는데 거의 3-4개월 이상이 걸리긴 하였는데 의외로 재미있다고 느껴졌습니다. 전에는 평론가들의 평론이 소설을 읽으면 다 알 수 있는 내용을 현학적으로 페러프레이즈한 것에 불과하다는 생각이 들었었는데, 이 소설집의 평론들을 읽으면서 소설과 연관되면서도 그 소설과는 구별되는 하나의 작품으로서 평론도 충분히 가치가 있구나 하는 것을 느꼈습니다.

아무래도 소설을 읽는 눈이나, 소설 속에서 현실을 인식하는 방식 같은 것이 예전같지는 않은 것일 테지요. 매양 어둡고 불편한, 가족 중 누구는 병을 앓고 있거나 불편한 관계에 있고, 다른 사람과 맺는 관계도 삐걱대는 그런 현실을 묘사하는 것이 얼마 전까지만 해도 불쾌하기만 했는데, 이제는 그것도 우리가 부딪히는 생활의 일면일 수도 있겠다고 생각하니 거부감이 훨씬 덜하고 오히려 그것이 소설을 판타지가 아니게 하는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듭니다.

어쨌든 세월이 흘러간다는 것을 다른 방식으로 느끼게 해준 책입니다. 아직 생각대로 이루어지는 깔끔한 결말이 맘에 드는 젊은이 독자라면 조금 있다가, 넓은 세상에 이렇게도 저렇게도 살아가는 사람이 있고, 그들을 소설이라는 방식으로 묘사하는 것이 보고 싶어진 독자에게는 지금에라도 한번 읽어보시기를 추천해 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