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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년 3월 24일 목요일

[책 소개] 2022 제45회 이상문학상 작품집

 


손보미 외, 2022 제45회 이상문학상작품집, 문학사상(2022)

오랜만에 소설들을 읽었습니다. 어렸을 때는 냉혹한 현실을 그리는 소설에 대해서 거부감이 있었는데, 이제는 그런 거부감이 옅어진 것을 보니 시간이 많이 흐르긴 흘렀구나 하는 생각도 소설들을 다 읽고 난 짤막한 소감 정도 되는 것 같습니다. 대상수상작의 문학적 성취에 공감 보다는 우수작들의 소재나 형식에서 느껴지는 새로움이 더 컸는데, 아무래도 기성세대가 갖게 되는 새로움에 대한 갈망 탓이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듭니다. 어쨌건 올해들어 처음 한권의 책을 독파했는데, 갈수록 책을 안 읽는 사람이 되어가는 차에 그래도 일년에 한번 어쩌다 서점에 가면 집어들 만한 소설들이었다고 생각합니다. 인상적인 구절들입니다(대상작에서는 인상적인 구절이 없다는 것도 특이하네요).

사람들은 기어코 사랑에 빠졌다. 상실한 이후의 고통을 조금도 알지 못하는 것처럼. 그리고 그렇게 되고 마는 데 나이를 먹는 일 따위는 아무런 소용이 없었다.

백수린, 아주 환한 날들, 209면.

아룬다티 로이의 소설 <작은 것들의 신> 이후 넉살의 <작은 것들의 신>이 있었고, 무라카미 하루키의 소설 <1Q84> 이후 넉살의 <1Q87>이 있었으니, 외국문학과 넉살 사이에는 어떤 연관성이 있지 않을까. 심훈의 시 <그날이 오면> 이후 화나의 <그날이 오면>이 있었고, 손창섭의 <잉여인간> 이후 화나의 <잉여인간>이 있었으니, 한국문학과 화나 사이에는 어떤 연관성이 있지 않을까. 버지니아 울프의 <3기니>와 원슈타인의 <3기니> 사이에는 어떤 연관성이 있을까.

-서이제, 벽과 선을 넘는 플로우, 230면.

생각이 많고 양면성을 강조하고 사태의 복합적 측면을 고려하며 아우르려는 사람들이야말로 무기력하다는 것을 공은 알고 있었다.

-이장욱, 잠수종과 독, 317면

2015년 3월 13일 금요일

[책 소개] 2014 제5회 젊은작가상 수상작품집


황정은 외, 2014 제5회 젊은작가상 수상작품집, 문학동네(2014)

몇년전인가 첫째 동생이 이상문학상 작품집을 읽고 있는 것을 보고, 저런 형태로 발표되는 소설을 읽는 사람이 있구나!! 하는 생각이 났던 기억이 납니다. 제가 소설을 선택의 기준이라고 해봤댔자 베스트셀러로 주위의 모든 사람이 다 알고 있어서 대화주제에 참견하려면 필요한 경우, 신문의 책소개 코너에 기자가 하는 평이 맘에 드는 경우 등에 한정되어 있었기 때문에 아직 대중의 선택을 받지 못한 소설의 모음집을 읽을 생각이 전혀 없었던 때이기도 했습니다.

왜 이상문학작품집을 읽느냐는 제 질문에 첫째 동생은 쿨하게 "재밌어~"라고 대답했던 걸로 기억나네요. 그리고 다 읽었다던 그 작품집을 -물론 하나하나의 소설의 내용이 기억나지 않지만- 훍어보면서 읽었던 기억이 납니다. 그 이후로 특별히 수상작품집을 읽어볼 기회나 생각이 특별히 없었습니다.

그러다 작년 겨울에 아들놈들에게 맨날 책 읽으라는 잔소리만 해대면서 아빠란 작자는 스마트폰만 들여다 본다는 와이프의 비난에 대한 방탄막으로 책을 사면서 특별히 손길을 끄는 책이 없던 차에 첫째 동생이 생각나 골랐던 것이 이 책입니다.

읽는데 거의 3-4개월 이상이 걸리긴 하였는데 의외로 재미있다고 느껴졌습니다. 전에는 평론가들의 평론이 소설을 읽으면 다 알 수 있는 내용을 현학적으로 페러프레이즈한 것에 불과하다는 생각이 들었었는데, 이 소설집의 평론들을 읽으면서 소설과 연관되면서도 그 소설과는 구별되는 하나의 작품으로서 평론도 충분히 가치가 있구나 하는 것을 느꼈습니다.

아무래도 소설을 읽는 눈이나, 소설 속에서 현실을 인식하는 방식 같은 것이 예전같지는 않은 것일 테지요. 매양 어둡고 불편한, 가족 중 누구는 병을 앓고 있거나 불편한 관계에 있고, 다른 사람과 맺는 관계도 삐걱대는 그런 현실을 묘사하는 것이 얼마 전까지만 해도 불쾌하기만 했는데, 이제는 그것도 우리가 부딪히는 생활의 일면일 수도 있겠다고 생각하니 거부감이 훨씬 덜하고 오히려 그것이 소설을 판타지가 아니게 하는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듭니다.

어쨌든 세월이 흘러간다는 것을 다른 방식으로 느끼게 해준 책입니다. 아직 생각대로 이루어지는 깔끔한 결말이 맘에 드는 젊은이 독자라면 조금 있다가, 넓은 세상에 이렇게도 저렇게도 살아가는 사람이 있고, 그들을 소설이라는 방식으로 묘사하는 것이 보고 싶어진 독자에게는 지금에라도 한번 읽어보시기를 추천해 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