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년 12월 31일 일요일

[책 소개] 망내인(網內人)


찬호께이, 강초아 역, 망내인, 한스미디어(2017)

크리스마스 선물로 애들에게 책을 사주기 위해 갔다가 제 크리스마스 선물로 산 책입니다. 이전에 작가에 대해서 들었던 것도 아니고, 한스미디어라는 출판사를 알고 있었던 것도 아니었지만 표지를 보니 '인터넷과 네트워크를 이용한 자살사건을 해결하는 이야기이겠구나... 홍콩작가는 뭔가 다를까?' 라는 생각에 집어들게 되었고, 결과적으로는 재미있게 읽었습니다.

해커들이 사용하는 소위 '신상털기'가 어떤 방식으로 이루어지는지부터 시작해서, 인터넷에서 의도치 않은 게시물의 파장이 불러온 결과에 그에 대해서 대응하는 인물의 심리 등을 잘 그려냈다고 생각합니다. 기술적인 부분을 문외한인 여자주인공 '아이'를 등장시켜서 남자주인공 '아녜'가 설명해 주는 식으로 풀어간 부분도 맘에 든 부분입니다.

가장 맘에 든 부분은 나쁜 일을 저지른 사람을 용서할 수 없는 악인으로 설정하고, 피해자는 아무런 흠결없는 순수한 희생양으로 설정하는 것이 아니라, 희생양조차도 비난받을 만한 일을 저지른 적이 있는 불완전한 존재이고, 나쁜 일을 저지른 사람에게도 억울한 면이 있을 수 있으며, 심지어 자신의 행동이 가져올 결과를 명확히 알지 못하고 나쁜 행동을 저지른 사람이라도, 정상참작이라고는 전혀 할 필요도 없는 파렴치한은 아니라는 점을 보여주고 있는 것이었습니다.

추리소설이라 줄거리 소개는 부적절하고, 중간중간 인터넷이나 네트워크 관련 잘 정리된 설명과 인상깊은 구절들을 모아보았습니다. 나 자신에게 좋은 크리스마스 선물이었던 것 같습니다. 한 해가 마무리되는 날입니다. 올해 마지막 블로그 게시글이기도 하네요. 한해동안 제 블로그를 사랑해 주신 모든 분들께 감사드립니다.

새해로 잘 미끄러지시길(Guten Rutsch)!

2015년 2월 9일 재판이 정식으로 시작되었다. 샤오더핑은 홍콩법 제200장 제122-1조를 위반한 성추행으로 기소되었다. 그는 범행을 부인하였고, 변호인이 언론 매체가 부정적인 정보를 대거 폭로하여 불공정한 재판을 유도하였다고 주장하면서 '법정심문 영구금지' 처분을 신청했다(법정심문 영구금지 : 재판의 불공정성을 이유로 더 이상 이 안건을 수리하지 말 것을 요청하는 것으로 , 이것이 받아들여지면 사건은 그대로 종결된다). 샤오더핑의 신청은 기각되었다.
-찬호께이, 강초아 역, 망내인, 한스미디어(2017), 44-45면 : 홍콩에는 우리나라에 없는 제도가 있어 흥미로웠네요.


모든 게시판의 서버기에는 IP 기록이 남습니다. 나는 몇 분만 있으면 땅콩게시판의 백그라운드 프로세스를 열어서 그 기록을 추출할 수 있어요. 그러면 목표 IP 위치를 데이터베이스에 집어넣고 역방향으로 ISP를 검색하고 다시 ISP 접속 기록을 선별해서 클라이언트의 실제 위치를 찾아냅니다.
-찬호께이, 강초아 역, 망내인, 한스미디어(2017), 81면.

"그러나 이 글의 게시자는 자유주의자입니다. 분명히 나이도 젊을 겁니다. 지금 유행하는 저항적인 단어를 사용하는 걸 보면 알 수 있죠. '요즘 홍콩은 옳은 것과 잘못된 것이 뒤집혀버렸다. 힘으로 정당한 논리를 찍어누르고, 흰색이 검은색으로 둔갑한다.' 이런 말은 보수파가 쓸 리 없습니다. 적어도 힘으로 논리를 찍어누른다는 표현은 뺐을 겁니다.
-찬호께이, 강초아 역, 망내인, 한스미디어(2017), 129-130면.


용의자가 변호사를 선임해 변호받는 것 같은 느낌. 나쁜 점은 숨기고 좋은 점만 내세우며 자신에게 유리한 사실만 잔뜩 열거합니다. 부부관계 같은 증명하기 어려운 부분을 최대한 강조하죠. 샤오더핑의 아내가 '저희는 무척 사랑하고 있어요'라고 말한다면 검사 측에선 그에 반대되는 증명을 하기가 어렵습니다. 이거야말로 법정변호의 중요한 지점이죠. 내가 의심하는 것은 게시자가 샤오더핑의 변호사와 어느 정도 관계가 있지 않나 하는 겁니다.
-찬호께이, 강초아 역, 망내인, 한스미디어(2017), 133면.

요즘 열네댓살 여자아이들의 비밀은 어른들보다 많을 겁니다. 인간관계도 복잡하기 이를 데 없고요. 통신기술과 SNS의 발달로 십대 아이들은 쉽게 어른들 세계로 들어올 수 있게 되었어요. 예전애는 여자애들이 매춘을 하려면 포주 같은 놈들을 통해야 했지만, 지금은 애들이 각자 개인사업자처럼 일합니다. 앱이나 인터넷 사이트를 통해서 직접 '고객'과 연락할 수 있으니까요.
-찬호께이, 강초아 역, 망내인, 한스미디어(2017), 134면.

많은 나라가 선불 휴대폰 유심 구입 시 신분 증명을 요구하거나 신용카드로만 결제할 수 있게 하는 등 추적 장치가 있습니다. 반면에 홍콩에선 전혀 추적할 수 없죠. 선불카드가 대량으로 여러 소매점에 운송되고, 몇 십 홍콩달러의 현금만 내면 아무도 모르는 인터넷 입장권을 갖게 되는 겁니다. 미국에선 이런 식으로 선불 유심카드를 쓰는 휴대폰을 버너라고 부릅니다. 다 쓴 다음에는 바로 버리고 곧바로 불에 태운다는 뜻이죠. 마약상이나 범죄자, 테러범 등이 사용하고요.
-찬호께이, 강초아 역, 망내인, 한스미디어(2017), 183-184면.

우리는 이번에 그저 조사를 하러 가는 거고, 운이 따라줄지 시험해보는 것뿐이라는 말입니다. 나머지 열일곱, 아니 열여덟명의 용의자도 살펴봐야 합니다. 선입견은 탐정 일에서 금기예요. 가설을 세울 수는 있지만 그게 사실이 아니라는 점을 분명히 기억해야 합니다. 가설을 세운 뒤에는 그것이 틀렸음을 밝힐 증거를 찾으려고 노력해야 합니다. 그 가설이 맞는 것을 증명하는 게 아니라."
-찬호께이, 강초아 역, 망내인, 한스미디어(2017), 219-220면.

그런데 아녜의 말을 듣고 보니 현대인은 자신이 은밀한 방에 살고 있다고 여기지만 그 방의 벽이 유리로 되어 있는 꼴이다. 그 유리를 통해 몇 쌍의 눈이 자신을 들여다 보고 있는 줄도 모르고.
-찬호께이, 강초아 역, 망내인, 한스미디어(2017), 312면.

"남의 용서를 바라는 건 이기적인 소망이지. 용서를 얻고 나면 자기는 마음편히 앞으로 나아갈 수 있으니까. 하지만 솔직히 그건 위선이야. 샤오원이 너를 용서하지 않을 거라고 생각한다면, 평생 그 죄책감을 짊어지고 언제까지나 친구를 저버렸다는 사실을 기억하면서 살아. 이제 영원히 샤오원에게 지은 죄를 갚을 수 없으니까. 남은 인생을 영원히 그 죄책감을 안은채 그 때 왜 한 걸음 다가가지 못했을까, 왜 한마디 건네지 못했을까 후회하면서 살아. 하지만 후회하는 동시에 너는 잘 살아야할 책임이 있다는 것도 기억하렴. 네 마음에 귀 기울이고 올바른 선택을 하면서 살아야 해. 그것만이 네가 마음속의 후회를 줄이고 네 죄를 갚는 유일한 방법이니까. 지금 느끼는 죄책감은 피와 살이 되어 네가 좋은 사람이라는 걸 증명해줄 거다."
-찬호께이, 강초아 역, 망내인, 한스미디어(2017), 325-326면.



2017년 12월 27일 수요일

류재언의 실전협상스쿨



중앙일보를 읽다가 이런 칼럼을 발견했습니다([더, 오래] '이것' 해두면 구두합의도 법적 효력 생긴다, 중앙일보 2017. 12. 27.자 기사). 류재언의 실전협상스쿨 이라는 칼럼이군요.

일을 하면서 그렇게 하면 되겠다고 생각하지만 쉽게 실행에 옮기지 못하는 것을 해두면 분쟁시에도 큰 문제가 발생하지 않는데 그 중 하나가 바로 구두로 한 전화통화나 회의내용을 메모하고 통화나 회의가 끝난 후에 이메일로 다시 보내어 확인받는 일입니다. 칼럼 내용과 같이 수십통의 전화나 화상회의까지 있었는데 이를 나중에 뒤엎는 행동은 말처럼 쉽지는 않기 때문에, 대부분의 회사나 조직에서 빠짐없이 통화나 회의 이후에 이를 문서화-이메일 확인하는 절차는 생략합니다. 보통 통화나 회의에 진이 빠진 나머지 이를 이메일 등으로 문서화해서 남기는 것이 말처럼 쉽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후 메모회람, 이메일 확인 등이 자리잡고 있다면 정말 엄청난 회사나 조직일 가능성이 높습니다. 회의내용을 일일이 메모-문서화해서 참가자로부터 사후 확인을 받는 일처리가 확립되어 있는 대표적인 조직은 "삼성"을 들 수 있습니다.

어쨌든 칼럼의 내용이 새로운 것은 아니지만 알아두면 좋을 내용을 깔끔하게 정리하고 있네요. 아래 링크에 모아놓았습니다. 소소하게 도움이 될 만한 내용으로 추천합니다.

류재언의 실전협상스쿨

상대의 매도 동기부터 파악해야
제멋대로인 직원 휘어잡으려면...
프랜차이즈 본사 갑질 대처하는 5가지 행동강령
재취업 연봉 협상전략 10가지
아내와의 협상에서 절대 이길 수 없는 이유 5가지
협상에서 가장 덜 중요한 사람은 '나'
속이 부글부글 끓는다면 무조건 발코니로
협상은 디테일에서 승부가 갈린다
중고차 시장서 가격 흥정 잘하는 법
'이것' 해두면 구두합의도 법적 효력 생긴다 

2017년 12월 26일 화요일

[책 소개] 호모 데우스


유발 하라리, 김명주 역, 호모 데우스, 김영사(2017)

"사피엔스"([책 소개] 사피엔스)[라는 저작으로 인류사를 깔끔하게 정리했던 유발 하라리의 미래에 대한 예견서(?)입니다. 사피엔스에서 자신이 발견(내지 재구성)했던 인류의 현재까지의 번영원인이 급격하게 변하고 있는 현재를 거쳐 미래에도 계속될 것인지에 대한 나름의 대답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생물학계에서의 유기체 알고리즘 설을 극단으로 밀고가면 이런 결론이나 예측을 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특히 무릎을 치게 만드는 비유적인 표현도 많이 나오고, 미래를 전망하면서 "싸이코패스"(2012)라는 일본 애니메이션의 내용을 떠올리게 하는 부분도 나와서 흥미있었습니다. 특히 니체의 "신은 없다"는 선언의 의미에 대해서 이렇게 깔끔하게 정리한 것을 본 적이 있었나 하는 생각이 들 정도입니다. 두께에도 불구하고 크리스마스 연휴동안 훌쩍 다 읽을 수 있을 정도로 술술 잘 읽힙니다. 저자가 언급하는 기본적인 세계사적 사건을 알고 있다면 훨씬 더 의미심장하게 다가올 것입니다. 다음은 인상적인 구절들입니다.


그런데 미국독립선언문이 보장한 것은 행복을 누릴 권리가 아니라 행복을 추구할 권리였다는 점을 눈여겨볼 필요가 있다. 토머스 제퍼슨이 국민의 행복보장을 국가의 책임으로 규정하지 않았다는 사실은 중요하다. 그는 단지 국가권력에 제한을 두려 했을 뿐이다. 즉 국거의 감시를 받지 않는 사적 선택의 영역을 개인들에게 보장하려는 것이었다. 메리보다 존과 결혼해야 더 행복하다면, 솔트레이크시티보다 샌프란시스코에 살아야 더 행복하다면 그 사람은 자신의 방식으로 행복을 추구할 권리가 있으며, 국가는 그 사람이 잘못된 선택을 할지라도 간섭해서는 안된다.
-유발 하라리, 김명주 역, 호모 데우스, 김영사(2017), 54면.

에피쿠로스는 제자들에게 행복을 최고선으로 규정할 때 행복해지는 것은 힘든 일이라고 경고했다.
-유발 하라리, 김명주 역, 호모 데우스, 김영사(2017), 55면.

어쩌면 행복의 열쇠는 경기도 금메달도 아닌, 흥분과 평안의 황금배합일지도 모른다.
-유발 하라리, 김명주 역, 호모 데우스, 김영사(2017), 65면.

반면에 오늘날 한국은 경제강국이고, 국민들은 세계에서 가장 많이 교육받은 사람들이며, 안정된 상태에서 비교적 자유로운 민주정권을 누리고 있다. 하지만 1985년에 10만명당 9명 정도의 한국인이 자살한 반면, 현재 한국의 연간 자살률은 10만명당 서른여섯명이다.
-유발 하라리, 김명주 역, 호모 데우스, 김영사(2017), 56면.


지금까지 인간이 더 큰 힘을 갖기 위해 주로 외적 도구의 성능을 높였다면, 앞으로는 몸과 마음을 직접 업그레이드하거나 외적 도구와 직접 결합할 것이다.
-유발 하라리, 김명주 역, 호모 데우스, 김영사(2017), 69면.


획기적인 기술이 일단 생기면 그 기술을 치료 목적에만 한정하고 업그레이드 용도를 전면 금지하기는 불가능하다.
-유발 하라리, 김명주 역, 호모 데우스, 김영사(2017), 85면.


이 책의 예측은 예언이라기 보다 현재 우리 앞에 놓인 선택들에 대해 논의하는 한 가지 방식이라는 것이다. 이 논의로 인해 우리가 전혀 다른 선택을 하고 그래서 내 예측이 빗나간다면 오히려 잘된 일이다. 아무것도 바꿀 수 없는데 무엇하러 예측을 하겠는가?
-유발 하라리, 김명주 역, 호모 데우스, 김영사(2017), 87면.


이것이 역사지식의 역설이다. 행동을 바꾸지 못하는 지식은 무용지물이다. 하지만 행동을 바꾼 지식도 곧 용도 폐기된다. 우리가 데이터를 더 많이 보유할수록, 역사를 더 잘 이해할수록 역사는 그 경로를 빠르게 변경하고, 우리의 지식은 더 빨리 낡은 것이 된다.
-유발 하라리, 김명주 역, 호모 데우스, 김영사(2017), 89-90면.


당신이 추구하는 어떤 이상이 애초에 결함을 품고 있다면, 대개 그 이상의 실현단계에 와서야 그러한 결함을 알게 된다.
-유발 하라리, 김명주 역, 호모 데우스, 김영사(2017), 100면.


다른 동물들과 관련해서 말하자면 인간은 오래 전에 신이 되었다. 우리가 이 사실에 대해 깊이 생각하게 싫어하는 이유는 우리가 그다지 공정한 신도 자비로운 신도 아니었기 때문이다.
-유발 하라리, 김명주 역, 호모 데우스, 김영사(2017), 106면.


알고리즘은 계산을 하고 문제를 풀고 결정을 내리는 데 사용할 수 있는 일군의 방법론적 단계들이다.
-유발 하라리, 김명주 역, 호모 데우스, 김영사(2017), 122면.


하지만 생명과학이 영혼의 존재를 의심하는 것은 단지 증거가 없어서가 아니라, 영혼이라는 개념 자체가 진화의 기본원리에 모순되기 때문이다. 진화론이 독실한 신자들에게 고삐 풀린 증오를 불러일으키는 이유가 바로 이 모순에 있다.
-유발 하라리, 김명주 역, 호모 데우스, 김영사(2017), 147면.


당신이 진화론을 제대로 이해한다면 그것이 영혼은 없다는 이야기임을 알아차릴 것이다. 그것은 독실한 그리스도교도와 이슬람교도 뿐만 아니라 세속세계의 많은 사람들에게도 충격적인 이야기이다. 인간은, 비록 분명한 종교적 교의를 지지하지 않더라도, 저마다 일생동안 변하지 않고 자신이 죽어도 그대로인 개인적인 본질을 가졌다고 믿고 싶어 한다.
-유발 하라리, 김명주 역, 호모 데우스, 김영사(2017), 149면.


근대 과학은 종교와 어떤 관계일까? 그 동안 사람들은 이 질문에 대한 온갖 대답을 골백번 넘게 했다. 하지만 과학과 종교는 500면동안 부부상담을 받고도 여전히 서로를 잘 모르는 남편과 아내 같다. 남편은 여전히 신데렐라 같은 아내를 기대하고 아내는 계속 완벽한 남편을 갈망하면서, 쓰레기 버릴 차례가 누구냐를 놓고 싸운다.
-유발 하라리, 김명주 역, 호모 데우스, 김영사(2017), 250면.


우리는 내가 믿는 것은 언제나 '진리'이고 미신은 남들이나 믿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유발 하라리, 김명주 역, 호모 데우스, 김영사(2017), 251면.


철학의 우아한 영역에서 내려와 역사적 실제들을 보면, 모든 종교 이야기들이 거의 다 세 부분으로 이루어져 있음을 알 수 있다. 1. '인간의 생명은 신성하다' 같은 윤리적 판단 2. '인간의 생명은 수태되는 순간 시작한다' 같은 사실적 진술 3. '수태되고 단 하루가 지났어도 절대 낙태해서는 안된다'같은, 윤리적 판단과 사실적 진술을 융합해서 얻은 실질적 지침 -유발 하라리, 김명주 역, 호모 데우스, 김영사(2017), 264면.


해리스에 따르면, 이슬람 극단주의자, 자유주의자, 민족주의자 들은 윤리적 논쟁을 벌이는 것이 아니라 어떻게 하는 것이 공동의 목표를 실현하는 최선의 방법인가, 하는 사실적 문제에서 의견이 엇갈리는 것이다.
-유발 하라리, 김명주 역, 호모 데우스, 김영사(2017), 272면.


종교는 다른 무엇보다 질서에 관심이 있다. 종교의 목표는 사회구조를 만들고 유지하는 것이다. 한편 과학은 다른 무엇보다 힘에 관심이 있다. 과학의 목표는 연구를 통해 질병을 치료하고 전쟁을 하고 식량을 생산하는 힘을 획득하는 것이다.
-유발 하라리, 김명주 역, 호모 데우스, 김영사(2017), 275면.


하지만 사실 근대는 놀랍도록 간단한 계약이다. 계약 전체를 한 문장으로 요약할 수 있을 정도이다. 즉 인간은 힘을 가지는 대가로 의미를 포기하는 데 동의한다는 것이다.
-유발 하라리, 김명주 역, 호모 데우스, 김영사(2017), 277면.


과학의 가장 위대한 발견은 무지를 발견한 것이었다. 세상에 대해 아는 것이 얼마나 없는지 꺠달았을 때 비로소 인간에게 새 지식을 찾아나설 매우 타당한 이유가 생겼고, 이것은 진보를 향해 가는 과학의 길을 열었다.
-유발 하라리, 김명주 역, 호모 데우스, 김영사(2017), 295면.


윤리학에서 인본주의의 모토는 '좋게 느껴지면 해라'이다. 정치학에서 인본주의는 '유권자가 가장 잘 안다'고 가르친다. 미학에서 인본주의는 '아름다움은 보는 이의 눈에 달려 있다'고 말한다.
-유발 하라리, 김명주 역, 호모 데우스, 김영사(2017), 319면.


의미와 권위의 원천이 하늘에서 인간의 감정으로 옮겨오면서 우주 전체의 성질이 변했다. 신, 뮤즈, 요정, 악귀 들로 바글거리던 외부 우주는 텅 빈 공간이 되었다. 반면 지금까지는 날것의 감정들을 처박아두었던 별 볼일 없는 공간이던 내부세계는 이루 말할 수 없이 깊고 풍부해 졌다. 천사와 악마는 세상의 숲과 사막을 떠도는 실제하는 실체에서 우리 심리 안의 내적 힘으로 탈바꿈했다. 천국과 지옥도 구름 위 어딘가에 있고 화산 밑 어딘가에 있는 실제 장소에서 마음의 내적 상태로 해석이 달라졌다. 우리는 가슴 안에 분노와 증오가 불붙을 때마다 지옥을 경험하고, 적을 용서하고 잘못을 뉘우치고 가난한 사람들과 가진 것을 나눌 때마다 천상의 기쁨을 누린다.

니체가 신은 죽었다고 선언했을 때 하고 싶어 한 말이 바로 이것이다.
-유발 하라리, 김명주 역, 호모 데우스, 김영사(2017), 323면.


일반적으로 종교나 민족신화 같은 공동의 결속으로 묶인 집단 내에서만 민주적 투표가 효력을 발휘한다. 민주적 투표는 기본에 동의하는 사람들 사이의 의견 불일치를 해결하는 방법이다.
-유발 하라리, 김명주 역, 호모 데우스, 김영사(2017), 346면.


역사를 만들어가는 사람들은 뒤를 돌아보는 대중이 아니라 앞은 내다보는 소수의 혁신가들이다.
-유발 하라리, 김명주 역, 호모 데우스, 김영사(2017), 373면.


레닌은 공산주의를 한 문장으로 정의해 달라는 요청을 받았을 때 "공산주의는 소비에트 권력 더하기 국가 전체의 전기화"라고 말했다. 전기 없는, 철도 없는, 무선방송 없는 공산주의는 있을 수 없다는 것이다.

-유발 하라리, 김명주 역, 호모 데우스, 김영사(2017), 376면.

오늘날 세계는 개인주의, 인권, 민주주의, 자유시장이라는 자유주의 패키지가 지배하고 있다. 하지만 21세기 과학이 이 자유주의 질서의 근간을 흔들고 있다.
-유발 하라리, 김명주 역, 호모 데우스, 김영사(2017), 386면.


자유의지의 존재를 의심하는 것은 단순한 철학 훈련이 아니다. 그것은 실생활에 영향을 미친다. 유기체가 자유의지를 갖고 있지 않다면, 그것은 우리가 약물, 유전공학, 직접적인 뇌자극을 통해 그 유기체의 욕망을 조작하는 것은 물론 통제까지 할 수 있다는 뜻이다.
-유발 하라리, 김명주 역, 호모 데우스, 김영사(2017), 393면.


단 하나의 진정한 자아란 불멸의 영혼, 산타클로스, 부활절 토끼 같은 것이다.
-유발 하라리, 김명주 역, 호모 데우스, 김영사(2017), 399면.


다리를 잃은 상이군인이 '내가 어리석어서 자기 잇속만 차리는 정치인들을 믿은 탓에 다리를 잃었어'라고 생각하는 것보다는 차라리 '이탈리아의 영원한 영광을 위해 내 한몸을 희생했어!'라고 생각하는 편이 낫다. 환상을 갖고 사는 것이 훨씬 더 쉬운 것은 그것이 고통에 의미를 부여하기 때문이다.
-유발 하라리, 김명주 역, 호모 데우스, 김영사(2017), 415면.


실제로 리처드 도킨스와 스티븐 핑커, 그밖에 새로운 과학적 세계관을 옹호하는 사람들조차 자유주의를 포기할 생각은 하지 않는다. 그들은 수백페이지에 걸친 박식한 논증으로 자아와 자유의지를 해제한 뒤, 숨이 막힐 듯 놀라운 지적 공중제비를 넘어, 마치 진화생물학과 뇌 과학의 모든 경이로운 발견들은, 로크, 루소, 토머스 제퍼슨의 윤리적 정치이론들과는 아무 관련이 없다는 듯 18세기에 착지한다.
-유발 하라리, 김명주 역, 호모 데우스, 김영사(2017), 419면.


자유주의가 지배적인 이념이 된 것은 그 철학적 논증이 한치의 오류도 없었기 때문이 아니다. 자유주의가 성공한 것은 모든 인간 존재에 가치를 부여하는 것이 정치적, 경제적, 군사적으로 타당했기 때문이다.
-유발 하라리, 김명주 역, 호모 데우스, 김영사(2017), 421면.


영화와 TV 시리즈물을 보는 시청자들은 변호사들이 주로 법정에서 "이의 있습니다"라고 소리치고 열정적인 변론을 하면서 시간을 보내는 줄 알 것이다. 하지만 대부분의 평범한 변호사들은 서류를 끝도 없이 검토하면서, 판례, 법적 허점, 증거가 될 수 있는 정보들을 찾는 데 시간을 보낸다. 어떤 변호사들은 존도(소송 당사자의 본명을 모르거나 본명을 밝히고 싶지 않을 때 쓰는 가명- 옮긴이)가 살해당한 밤에 무슨 일이 있었는지 알아내느라, 또는 일어날 수 있는 모든 사건에 대해 의뢰인을 보호하는 대규모 사업계약을 작성하느라 바쁘다.
-유발 하라리, 김명주 역, 호모 데우스, 김영사(2017), 429면.


아직은 아니지만, 기능자기공명 영상 스캐너가 오류가 거의 없는 거짓말 탐지기로서 작동할 수 있는 날이 머지 않았다. 그 떄가 되면 수백만 명의 변호사, 판사, 경찰, 탐정들은 어디로 갈 것인가? 그들은 학교로 돌아가 새로운 직업교육을 받아야 할 것이다.
-유발 하라리, 김명주 역, 호모 데우스, 김영사(2017), 429면.


하지만 만일 당신이 20년 뒤 의사로 일할 생각으로 오늘 의대에 입학한다면 다시 생각해보는 게 좋을 것이다. 왓슨 같은 인공지능이 주변에 있는 한 진료실의 셜록은 필요없을 테니까.
-유발 하라리, 김명주 역, 호모 데우스, 김영사(2017), 431-432면.


인간이 언제까지나 비의식적 알고리즘의 능력을 뛰어넘는 특별한 능력을 가질 거라는 생각은 희망적 사고에 불과하다. 이런 몽상에 대한 현시점의 과학적 답변을 세가지 간단한 원리로 요약할 수 있다.

1. 유기체는 알고리즘이다. 호모 사피엔스를 포함한 모든 동물은 수백만 년의 진화를 거치며 자연선택된 유기적 알고리즘의 집합이다.
2. 알고리즘의 계산은 계산기를 어떤 물질로 만들든 아무런 영향을 받지 않는다. 주판을 나무로 만들든, 철로 만들든, 플라스틱으로 만들든, 두알 더하기 두알은 네 알이다.
3. 따라서 유기적 알고리즘이 비유기적 알고리즘이 절대 하지 못하거나 그보다 뛰어난 일을 할 수 있다고 생각할 이유가 전혀 없다. 계산만 정확하다면, 알고리즘이 탄소로 이루어지든 실리콘으로 이루어지든 무슨 상관인가?
-유발 하라리, 김명주 역, 호모 데우스, 김영사(2017), 437면.


알고리즘이 인간을 직업시장에서 몰아내면 전능한 알고리즘을 소유한 소수 엘리트 집단의 손에 부와 권력이 집중될 것이다. 전례없는 사회적 불평등이 발생할 것이다.
-유발 하라리, 김명주 역, 호모 데우스, 김영사(2017), 442면.


자유주의가 직면한 세번째 위협은, 일부 사람들은 업그레이드되어 필수불가결한 동시에 해독 불가능한 존재로 남아 소규모 특권집단을 이룰거라는 점이다.
-유발 하라리, 김명주 역, 호모 데우스, 김영사(2017), 474면.


미국 국가안보국이 당신이 하는 모든 말을 염탐하고 있을지도 모르지만, 미구의 외교정책이 거듭 실패하는 것으로 볼 때, 워싱턴에 있는 관료들 중 그 데이터로 뭘 해야할지 아는 사람은 아무도 없는 것 같다.
-유발 하라리, 김명주 역, 호모 데우스, 김영사(2017), 513면.

18세기에 인본주의는 신 중심적 세계관에서 인간 중심적 세계관으로 이동함으로써 신을 밀어냈다. 21세기에 데이터교는 인간 중심적 세계관에서 데이터 중심적 세계관으로 이동함으로써 인간을 밀어낼 것이다.
-유발 하라리, 김명주 역, 호모 데우스, 김영사(2017), 534면.



2017년 12월 18일 월요일

[책 소개] 힐빌리의 노래



JD 밴스, 김보람 역, 힐빌리의 노래, 흐름출판(2017)

조선일보 선정 올해의 책10 에 들지 않았다면 집어들지 않았을 책입니다. "엘레지"라니 "엘레지의 여왕" 패티김 에 열광하는 세대도 아니거니와 러스트벨트의 백인노동자의 자서전적 이야기라니, 안 읽어도 나올만한 내용이 연상되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굳이 문유석 판사님께서 올해의 책으로 선정하면서 추천사까지 쓰시는데 "잘났건 못났건 같이 살자" 백인 노동계층의 진솔한 고백 한 번 읽어보는 건 어떠랴 하는 생각이었습니다. 기본적으로 "미국 시골에 사는 사람들의 생각이나 우리나라 시골에 사는 사람이나 생각하는 건 비슷하네(총기자유화 덕에 조금 더 과격한 걸 제외하면)" 정도의 감상입니다. 그 의미에 대해서는 이미 서평으로 잘 나와 있으니 곱씹어보면 될 것 같습니다. 오히려 저는 미국 명문 로스쿨생의 입장에서 로클럭 지원에 대한 생각을 구체적으로 볼 수 있는 기회여서 흥미있기도 했습니다.

무엇보다 어렸을 때에는 크리스마스 선물, 심지어 생일선물이 다른 친구들과 달리 항상 책이었고, 그게 불만이기도 한 적이 있기도 했는데, 지금 생각해 보니 전형적인 화목한 가정에서 공부할 수 있는 환경을 마련해 주시는 것을 최우선으로 절 키워주셨던 부모님께서 마련해주신 환경이 당연한 것은 아니었다는 깨달음이 이 책의 가장 큰 감동 포인트라고 고백하고 싶습니다.

인상깊었던 구절 몇 개입니다.

과거 1970년대 누구의 말마따나 복지 제도에 기대 놀고 먹는 사람들이 "정부에서 돈을 받으며 사회를 비웃는다! 우리 같이 열심히 일하는 사람들은 매일 일터에 나간다는 이유로 조롱받고 있다!"라는 인식이 백인 노동계층 사이에 팽배해 지면서 공화당의 대선후보 리처드 닉슨을 지지하기 시작했다.

- JD 밴스, 김보람 역, 힐빌리의 노래, 흐름출판(2017), 234-235면.

아이비리그는 다양성에 집착한다는 특성이 있지만, 흑인이든 백인이든 유대인이든 이슬람교도든 사실상 학교의 거의 모든 학생이 돈걱정을 할 필요가 없는 온전한 가정에서 온 이들이었다.

- JD 밴스, 김보람 역, 힐빌리의 노래, 흐름출판(2017), 329면.

사회적 자본이란 친구에게 당신을 소개해 주거나 과거의 상사에게 당신의 이력서를 건내주는 사람과의 관계에서만 존재하는 게 아니다. 어쩌면 그에 앞서, 사회적 자본은 친구들이나 동료, 멘토에게서 얼마나 많이 배울 수 있는지를 측정하는 척도라고 할 수 있으리라.

-JD 밴스, 김보람 역, 힐빌리의 노래, 흐름출판(2017), 354면.

다음은 내가 예일대 로스쿨에 입학했을 때 알지 못했던 것들의 일부 목록이다.

구직 면접을 갈 때는 정장을 입어야 한다.
그러나 고릴라도 들어갈 만큼 펑퍼짐한 정장은 부적절하다.
버터 바르는 칼은 장식용이 아니다(버터 바르는 칼을 사용해야 하는 음식을 먹기에는 숟가락이나 집게손가락이 더 제격이긴 하지만)
피혁과 모조피혁은 서로 다른 재질이다
구두와 허리띠의 색깔은 서로 맞아야 한다
특정 도시 및 주의 취업전망이 더 밝다
좋은 대학에 가면 우쭐댈 권리 외에도 혜택이 따라온다
금융은 사람들이 종사하는 산업 분야다

JD 밴스, 김보람 역, 힐빌리의 노래, 흐름출판(2017), 356면.

우샤는 크리스마스 선물로 대개 책을 받았다. 보니는 열한 살 때 자기의 크리스마스 선물을 살 돈으로 미들타운의 불우한 이웃을 위해 기부해 달라고 부모에게 부탁했다. 놀랍게도 이모와 이모부는 보니의 뜻을 받아들였다. 이들은 크리스마스라는 명절의 가치를 딸이 받는 선물의 가격으로 매기지 않았다.

JD 밴스, 김보람 역, 힐빌리의 노래, 흐름출판(2017), 400면.


2017년 12월 13일 수요일

2017년 내맘대로 Movie Best Awards

아무도 기대하지 않으셨겠지만 올해도 돌아온 "내맘대로 Movie Best Awards" 입니다.
2014년 내맘대로 Movie Best Awards
2015년 내맘대로 Movie Best Awards
2016년 내맘대로 Movie Best Awards

일단 2016년 MBA 이후 1년동안 본 개봉영화는 33편, 한달에 한달에 2편 이상 보았으니, 영화광은 아니라도 영화애호가 정도는 되지 않을까 생각해 봅니다. 후보작 10편에 제가 매긴 별점 평점/메타크리틱 평점/ 짧은 평입니다(별 5개 기준) 메타크리틱 기준으로 47점부터 81점까지 고르게 분포되어 있네요.
너의 이름은 3.5 / 79 / 본격 기억상실 애니
히든 피겨스 3.5 / 74 / 전형적이지만 보아야 하는
분노의 질주 : 더 익스트림 4.0 / 56 / 잘만든 만화다!!! 폴워커에게 바치는 마지막까지 완벽!
가디언즈 오브 갤럭시 VOL.2 4.5 / 67 / 평범한게 어때서!!
스파이더맨 홈커밍 4.0 / 73 / 사고치고 수습하고 ㅎㅎㅎ
킬러의 보디가드 4.5 / 47 / ㅋㅋㅋㅋㅋㅋㅋ 클래식 B급 버디무비 빵빵터지는구나
아토믹 블론드 3.5 / 63 / Cocksucker, really?
윈드리버 4.0 / 73 / 군더더기가 없다!!!
블레이드러너 2049 3.5 / 81 / 살짝 지루하지만 깔끔한 스토리전개와 압도하는 영상
토르: 라그나로크 4.5 / 73 / 토르 시리즈 중 최고라 할만 하다!!

Best 5는 제가 매긴 별점순은 아닙니다. 영화보고 바로 별점을 매기는데, 영화에 대한 기대치에 대한 충족도가 별점에 가장 많은 영향을 끼쳐서 별점이 높다고 다른 영화와 비교해서 더 나은 영화였다고 판단하기가 어렵습니다. 전체적으로 10개의 후보작을 놓고 이글을 쓰면서 다시 판정하였다는 것을 알려드립니다.

5위는 드니 뷜네브 감독의 "블레이드 러너 2049" 입니다.


블레이드 러너는 원래 개봉당시 E.T.와 붙어서 참패를 한 실패작이다가, SF 팬들의 꾸준한 찾아보기로 명작의 반열에 오른 보기 드문 영화입니다. 30여년의 시간이 지난 후에 영화에서도 30여년의 시간차를 두고 속편으로 "블레이드 러너 2049"가 만들어졌고, 감독도 최근 할리우드에서 급부상하고 있는 드니 빌뇌브 감독이 맡아서 이 영화의 트레이드마크라고 할 수 있는 암울하고도 미래적인 도시배경에 드니 빌뇌브 감독의 독특한 분위기가 추가되었습니다. 배경스토리나 원작의 내용을 모른다면 지루하고 화면은 웅장한데 스토리 자체는 그리 복잡하지 않은 평범한 영화로 볼 수도 있지만, 전편과의 연결을 위한 여러 영상들도 참고하면서 빠져들어보면 볼수록 SF영화팬이라면 꼭 보아야할 영화라고 하기에 부족함이 없어 보입니다.

4위는 신카이 마코토 감독의 "너의 이름은" 입니다.


일본에서 이미 공전의 히트를 기록하였기 때문에 어느 정도 재미가 보장되어 있는 정통파 애니메이션 영화입니다. 어디선가 본듯한(시크릿가든?) 남녀학생의 신체-정신교환 스토리는 식상한 설정임에도 충분히 재미와 공감을 느낄 수 있습니다. 온가족이 함께 가서 특전선물인 포스터도 득템하였던 기억이 있네요.

3위는 패트릭 휴즈 감독의 "킬러의 보디가드"입니다.


앞서 짧은 평에서도 볼 수 있듯 전형적인 B급 버디무비입니다. 특이한 점이라면 배우가 A급 배우라는 점!! 어딜봐도 이럴 것 같은 줄거리에 나올 거라고 예상하면 나오는 액션신이었지만 클리셰는 클리셰대로, 액션신은 액션신대로 기대한 만큼의 만족을 줍니다. 라이언 레이놀즈와 사무엘 잭슨의 설전이 관전포인트!! 원래 남녀가 티격태격하는 스크류볼 코미디의 버디무비 버전이라고 할 만합니다(제가 스크류볼 코미디류를 좋아라 합니다 ㅎㅎㅎㅎ). 아쉬웠던 것은 주인공인 라이언 레이놀즈의 여친과의 관계 부분(?)이 설득력도 부족하고, 여친의 미모가 기대치에 미치지 못한 정도? 대신 사무엘 잭슨과 셀마 헤이엑이 이 부분도 채워줍니다. 기대치를 높이지 않고 보기에 딱 좋은 팝콘무비로 추천할 만 합니다.

2위는 테일러 쉐리던 감독의 "윈드리버"입니다.


범죄극, 암울한 분위기 이런 것은 원래 제 스타일은 아니긴 한데 와이오밍의 황량한 자연을 배경으로 벌어진 어처구니 없는 살인범죄와 그에 대한 수사-복수 뭐 그런 내용입니다. 사실 이야기 자체에 미스터리가 있다거나 천재적인 능력으로 해결한다거나 하는 것이라기 보다는 넓은 곳에 사람사는 곳이 너무 적어서 하나하나 조사하다 보면 범인이 뙇 하는 거라... 그냥 슬슬 따라가기만 하면 이야기도 술술 진행됩니다. 클라이막스에서 수사관이 문을 여는 장면에서 과거 범죄장면으로 이어지는 것이(스포일지도...) 참신했네요. 하지만 제 스타일은 아니라 1위는 못했습니다.

1위는 타이카 와이티티 감독의 "토르 라그나로크"입니다.


마블의 세계관이 지구의 어벤져스와 우주의 타노스, 가오갤 멤버와 이어지는 부분을 이어주는 역할을 수행할 뿐 아니라, 다른 어벤져스 영웅들의 단독 영화들보다 재미 부분이 떨어진다는 평가를 받았던 토르시리즈를 경쾌발랄하게 살려냈습니다. 아무래도 마블 영화는 대부분 보아 왔기 때문에 닥터 스트레인지, 헐크, 로키 등의 관계를 여러 에피소드를 통해서 만들어가는 모습에 더 큰 재미를 느낀게 아닐까 합니다. 머리 쓸어넘기는 헤어스타일 변하는 악역 누님도 매력만빵 입니다. 내년의 블랙팬서와 인피니티워까지 이야기가 이어질 예정이니 마블빠라면 놓쳐서는 안될 영화일 것입니다.

올 한해도 잘 마무리하시고, 챙겨보지 못한 영화가 있다면 즐길 수 있는 연말연시 되시기 바랍니다.



2017년 12월 8일 금요일

조선일보 선정 2017 올해의 책 10



한해동안 독서량이 부족했다는 증거는 올해의 책으로 선정한 작품 중에서 읽은 책이 얼마 안된다는 데에서 알 수 있습니다. 독서의 방향에 대한 뚜렷한 주관이 없다면 언론에서 추천해 준 양서 중에서 자신의 취향에 맞는 것을 고르는 방법이 제일 좋은 것 같습니다. 제 잡식상 취향에 따르면 언론에서 추천한 책들은 대부분 만족스러웠던 것 같네요. 크리스마스를 전후한 법원 휴정기간에 독파하는 계획도 즐거운 불금입니다. 조선일보의 정치적 논조를 맘에 들어하지 않으면서도 풍부한 기획과 읽을거리라는 미디어의 본령에서의 경쟁력을 인정할 수 밖에 없는 부분이라고 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다음주는 2017 올해의 저자 10 이라는데 이것도 기대되네요.

조선일보에서 선정한 올해의 책 10입니다.

1. 유발 하라리, 호모 데우스, 김영사, 18,000원
2. JD 밴스, 힐빌리의 노래, 흐름출판, 1만 4,800원
3. 안대회, 정민, 이종묵 외 편역, 한국 산문선(전 9권), 각권 2만 2천원
4. 톰 니콜스, 전문가와 강적들, 오르마, 1만 8천원
5. 신상목, 학교에서 가르쳐주지 않는 일본사, 뿌리와이파리, 1만 5천원
6. 캐시 오닐, 대량살상 수학무기, 흐름출판, 1만 6천원
7. 리처드 호프스태터, 미국의 반지성주의, 교유서가, 3만 5천원
8. 데이비드 색스, 아날로그의 반격, 어크로스, 1만 6,800원
9. 김애란, 바깥은 여름, 문학동네, 1만 3천원
10. 이기호, 세살 버릇 여름까지 간다, 마음산책, 1만 2,500원


2017년 12월 7일 목요일

고소사건 피고소인에게 고소장 보내준다



법무검찰개혁위원회의 인권보장 권고 관련 중앙일보의 기사를 보다가 실무상 바뀌는 점이 있게 될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어 메모를 남겨 봅니다.

"심야조사는 인권 침해... 검찰조사 밤 11시 이후 금지", 중앙일보 2017. 12. 7.자 기사

심야조사가 이루어지는 사건은 현재도 일반적이지는 않은데, 혐의가 중하고 조사내용이 많은 사건인 경우 종종 이루어지고 있는 것 같은데, 일률적으로 금지하는 것이 바람직한 것인지는 의문이네요.

헤드라인보다 눈에 띈 것은 오히려 이어 나온 "피고소인 '죄인취급' 않기로" 라는 내용이었습니다.

대검찰청에서 일반 고소사건에 휘말린 피고소인에게 고소장 사본을 보내주고 반박할 기회를 주기로 했다는 것입니다. 수사기관에서 피의자 신분으로 조사를 받을 때까지 경찰이 구두로 설명해 주는 외에는 고소인의 주장이 담긴 고소장은 수사기록이기 때문에 기소 전까지 피고소인측에서는 확인할 수 없는 것이 일반적이었는데, 혐의가 어느 정도 드러나기 전까지는 피고소인에게 방어기회를 보장하는 셈이 됩니다. 물론 검사에게 증거인멸의 우려, 사생활 비밀 노출, 고소인 등의 신체안전에 위협이 예상되는 사건 등에는 예외로 할 수 있도록 한다는데, "혐의가 드러나기 전"이라는 시점에 대해서 수사기관에 어떻게 판단할 것인지에 따라 사건별로 고소장을 받아볼 수 있는지 여부가 달라지는 문제가 있을 수는 있겠네요.

실제로 어떻게 운용이 될지 지켜봐야 할 것 같습니다.

2017년 12월 6일 수요일

자존감


인터넷에 돌아다니는 짤에서

박용천 한양대학교 정신건강의학과 교수

자기 존중감이 약하면 작은 지적에 민감하게 반응한다. 그것이 무너지면 '자기는 파멸'이라는 위기감에 심각하게 대응하는 것이다.

본인이 스스로 형편없다고 생각해왔고 억지로 숨기려 했는데 그게 남에게 드러난다면 너무 비참해진다고 생각하는게 주된 이유다. 사소한 일에 자존심 건드린다며 목숨 걸고 덤비는 사람과는 다투지 않는게 상책이다.

'자존심이 강하다'는 말은 튼튼하다는 표현이다. 만약 자기를 존중하는 마음이 강한 사람이라면 남에게 양보하거나 져주더라도 자신감이 있으니 별로 영향을 받지 않는다. 자기를 존중하는 마음이 강하고 성숙한 사람은 자기를 지키기에 급급하지 않으니 여유가 있다. 그래서 남에게 져주거나 양보할 여력이 있는 것이다.

누구나 상대방으로부터 '잘못이나 실수에 대한 지적이나 비난'을 들을 수 있다.

성숙한 사람은 일단 자신이 잘못했는지 검토부터 해본다. 만약 본인이 잘못했다면 잘못을 받아들이고 인정하며 '다음에 더 잘해야 겠다'고 생각한다.

반대로 자신의 잘못이 아니라면 상대방의 오해를 풀어주려고 한다. 혹시 그 오해를 상대방이 받아주지 않는다면 '상대방이 아직 그럴만한 여유가 없구나'라고 판단해 더이상 시비를 걸지 않는다. 받아들일 여유가 없는 사람과 다퉈봐야 서로 이로울 게 없기 때문이다. 이렇게 하면 자신이 상처를 받지 않고 남에게 상처주지 않는다.

2017년 12월 1일 금요일

영장실질심사와 구속적부심사


박근혜 정권 인사들이 탄핵인용이라는 일생에 한번 보기 힘든 결정에 이어 보기 드문 결정들을 많이 만들어 내고 있습니다. 영장실질심사에서 구속이 결정된 피의자가 구속적부심을 재차 신청해서 석방되는 사례를 신문에서 톱기사로 볼 수 있을 것이라고는 생각지 못한 것이 사실이기 때문입니다.

일반인들이 보기에 영장실질심사(구속전 피의자심문)와 구속적부심사는 뭐가 다른지 이해하기가 쉽지 않을 텐데요.  다음 기사에 잘 설명되어 있습니다. 김관진임관빈 줄 석방에 여야 대립각...영장실질심사와 구석적부심의 차이는? M이코놈미뉴스 2017. 12. 1.자 기사

간단히 설명하자면 다음과 같습니다.

영장실질심사는 구속영장 발부 전 판사가 피의자를 심문하고 영장발부를 결정하는 것을 절차를 말하고, 법원의 영장전담판사가 담당합니다(이 사건의 영장전담판사는 서울중앙지법의 강부영 판사님). 구속적부심사는 이미 발부된 구속영장에 대하여 구속이 부적법하거나 부당한 경우에 피의자를 석방하는 절차로 관할법원에 청구하며 형사신청사건입니다.

문제는 영장실질심사와 구속적부심에서 심리하는 내용이 같은 내용이라는 것입니다. 따라서 실무에서는 구속적부심사 청구는 영장실질심사에서 심리하는 내용과 다른 사정변경, 예컨대 구속 이후  피해회복사실 등이 있는 경우에나 청구하지, 아무런 사정변경이 없는데 구속적부심사를 청구하는 경우는 드물고, 청구한다고 해도 피의자를 석방하는 경우는 더욱 드뭅니다. 위 기사에서는 구속적부심사에서 석방률이 15% 정도 된다는데, 피해회복 등 사정변경으로 인한 것이 대부분이며, 구속사유에 대하여 영장전담판사와 의견을 달리 하면서 구속적부심사에서 피의자를 석방한 사례는 쉽게 찾아보기 어려울 것입니다(있다면 아마 손으로 꼽을 수 있지 않을까요). 물론 영장실질심사를 담당한 판사가 본 소명자료와 구속적부심사를 담당한 판사가 본 소명자료가 다르고 후자가 더 설득력있었을 가능성도 있기 때문에 정치인들처럼 쉽게 피의자를 석방한 판사를 비난하여서는 안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