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년 12월 31일 일요일
[책 소개] 망내인(網內人)
찬호께이, 강초아 역, 망내인, 한스미디어(2017)
크리스마스 선물로 애들에게 책을 사주기 위해 갔다가 제 크리스마스 선물로 산 책입니다. 이전에 작가에 대해서 들었던 것도 아니고, 한스미디어라는 출판사를 알고 있었던 것도 아니었지만 표지를 보니 '인터넷과 네트워크를 이용한 자살사건을 해결하는 이야기이겠구나... 홍콩작가는 뭔가 다를까?' 라는 생각에 집어들게 되었고, 결과적으로는 재미있게 읽었습니다.
해커들이 사용하는 소위 '신상털기'가 어떤 방식으로 이루어지는지부터 시작해서, 인터넷에서 의도치 않은 게시물의 파장이 불러온 결과에 그에 대해서 대응하는 인물의 심리 등을 잘 그려냈다고 생각합니다. 기술적인 부분을 문외한인 여자주인공 '아이'를 등장시켜서 남자주인공 '아녜'가 설명해 주는 식으로 풀어간 부분도 맘에 든 부분입니다.
가장 맘에 든 부분은 나쁜 일을 저지른 사람을 용서할 수 없는 악인으로 설정하고, 피해자는 아무런 흠결없는 순수한 희생양으로 설정하는 것이 아니라, 희생양조차도 비난받을 만한 일을 저지른 적이 있는 불완전한 존재이고, 나쁜 일을 저지른 사람에게도 억울한 면이 있을 수 있으며, 심지어 자신의 행동이 가져올 결과를 명확히 알지 못하고 나쁜 행동을 저지른 사람이라도, 정상참작이라고는 전혀 할 필요도 없는 파렴치한은 아니라는 점을 보여주고 있는 것이었습니다.
추리소설이라 줄거리 소개는 부적절하고, 중간중간 인터넷이나 네트워크 관련 잘 정리된 설명과 인상깊은 구절들을 모아보았습니다. 나 자신에게 좋은 크리스마스 선물이었던 것 같습니다. 한 해가 마무리되는 날입니다. 올해 마지막 블로그 게시글이기도 하네요. 한해동안 제 블로그를 사랑해 주신 모든 분들께 감사드립니다.
새해로 잘 미끄러지시길(Guten Rutsch)!
2015년 2월 9일 재판이 정식으로 시작되었다. 샤오더핑은 홍콩법 제200장 제122-1조를 위반한 성추행으로 기소되었다. 그는 범행을 부인하였고, 변호인이 언론 매체가 부정적인 정보를 대거 폭로하여 불공정한 재판을 유도하였다고 주장하면서 '법정심문 영구금지' 처분을 신청했다(법정심문 영구금지 : 재판의 불공정성을 이유로 더 이상 이 안건을 수리하지 말 것을 요청하는 것으로 , 이것이 받아들여지면 사건은 그대로 종결된다). 샤오더핑의 신청은 기각되었다.
-찬호께이, 강초아 역, 망내인, 한스미디어(2017), 44-45면 : 홍콩에는 우리나라에 없는 제도가 있어 흥미로웠네요.
모든 게시판의 서버기에는 IP 기록이 남습니다. 나는 몇 분만 있으면 땅콩게시판의 백그라운드 프로세스를 열어서 그 기록을 추출할 수 있어요. 그러면 목표 IP 위치를 데이터베이스에 집어넣고 역방향으로 ISP를 검색하고 다시 ISP 접속 기록을 선별해서 클라이언트의 실제 위치를 찾아냅니다.
-찬호께이, 강초아 역, 망내인, 한스미디어(2017), 81면.
"그러나 이 글의 게시자는 자유주의자입니다. 분명히 나이도 젊을 겁니다. 지금 유행하는 저항적인 단어를 사용하는 걸 보면 알 수 있죠. '요즘 홍콩은 옳은 것과 잘못된 것이 뒤집혀버렸다. 힘으로 정당한 논리를 찍어누르고, 흰색이 검은색으로 둔갑한다.' 이런 말은 보수파가 쓸 리 없습니다. 적어도 힘으로 논리를 찍어누른다는 표현은 뺐을 겁니다.
-찬호께이, 강초아 역, 망내인, 한스미디어(2017), 129-130면.
용의자가 변호사를 선임해 변호받는 것 같은 느낌. 나쁜 점은 숨기고 좋은 점만 내세우며 자신에게 유리한 사실만 잔뜩 열거합니다. 부부관계 같은 증명하기 어려운 부분을 최대한 강조하죠. 샤오더핑의 아내가 '저희는 무척 사랑하고 있어요'라고 말한다면 검사 측에선 그에 반대되는 증명을 하기가 어렵습니다. 이거야말로 법정변호의 중요한 지점이죠. 내가 의심하는 것은 게시자가 샤오더핑의 변호사와 어느 정도 관계가 있지 않나 하는 겁니다.
-찬호께이, 강초아 역, 망내인, 한스미디어(2017), 133면.
요즘 열네댓살 여자아이들의 비밀은 어른들보다 많을 겁니다. 인간관계도 복잡하기 이를 데 없고요. 통신기술과 SNS의 발달로 십대 아이들은 쉽게 어른들 세계로 들어올 수 있게 되었어요. 예전애는 여자애들이 매춘을 하려면 포주 같은 놈들을 통해야 했지만, 지금은 애들이 각자 개인사업자처럼 일합니다. 앱이나 인터넷 사이트를 통해서 직접 '고객'과 연락할 수 있으니까요.
-찬호께이, 강초아 역, 망내인, 한스미디어(2017), 134면.
많은 나라가 선불 휴대폰 유심 구입 시 신분 증명을 요구하거나 신용카드로만 결제할 수 있게 하는 등 추적 장치가 있습니다. 반면에 홍콩에선 전혀 추적할 수 없죠. 선불카드가 대량으로 여러 소매점에 운송되고, 몇 십 홍콩달러의 현금만 내면 아무도 모르는 인터넷 입장권을 갖게 되는 겁니다. 미국에선 이런 식으로 선불 유심카드를 쓰는 휴대폰을 버너라고 부릅니다. 다 쓴 다음에는 바로 버리고 곧바로 불에 태운다는 뜻이죠. 마약상이나 범죄자, 테러범 등이 사용하고요.
-찬호께이, 강초아 역, 망내인, 한스미디어(2017), 183-184면.
우리는 이번에 그저 조사를 하러 가는 거고, 운이 따라줄지 시험해보는 것뿐이라는 말입니다. 나머지 열일곱, 아니 열여덟명의 용의자도 살펴봐야 합니다. 선입견은 탐정 일에서 금기예요. 가설을 세울 수는 있지만 그게 사실이 아니라는 점을 분명히 기억해야 합니다. 가설을 세운 뒤에는 그것이 틀렸음을 밝힐 증거를 찾으려고 노력해야 합니다. 그 가설이 맞는 것을 증명하는 게 아니라."
-찬호께이, 강초아 역, 망내인, 한스미디어(2017), 219-220면.
그런데 아녜의 말을 듣고 보니 현대인은 자신이 은밀한 방에 살고 있다고 여기지만 그 방의 벽이 유리로 되어 있는 꼴이다. 그 유리를 통해 몇 쌍의 눈이 자신을 들여다 보고 있는 줄도 모르고.
-찬호께이, 강초아 역, 망내인, 한스미디어(2017), 312면.
"남의 용서를 바라는 건 이기적인 소망이지. 용서를 얻고 나면 자기는 마음편히 앞으로 나아갈 수 있으니까. 하지만 솔직히 그건 위선이야. 샤오원이 너를 용서하지 않을 거라고 생각한다면, 평생 그 죄책감을 짊어지고 언제까지나 친구를 저버렸다는 사실을 기억하면서 살아. 이제 영원히 샤오원에게 지은 죄를 갚을 수 없으니까. 남은 인생을 영원히 그 죄책감을 안은채 그 때 왜 한 걸음 다가가지 못했을까, 왜 한마디 건네지 못했을까 후회하면서 살아. 하지만 후회하는 동시에 너는 잘 살아야할 책임이 있다는 것도 기억하렴. 네 마음에 귀 기울이고 올바른 선택을 하면서 살아야 해. 그것만이 네가 마음속의 후회를 줄이고 네 죄를 갚는 유일한 방법이니까. 지금 느끼는 죄책감은 피와 살이 되어 네가 좋은 사람이라는 걸 증명해줄 거다."
-찬호께이, 강초아 역, 망내인, 한스미디어(2017), 325-326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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