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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년 6월 1일 월요일

자동차수색죄


"연인 차량 뒤졌다가…" 사랑도 잃고 범죄자 된 30대, 연합뉴스, 2015. 5. 31.자 기사

기사를 읽다가 "차량수색죄"는 벌금형이 없고 징역형만 정해져 있다는 부분을 읽다가 형법에 자동차수색죄가 있었나? 라는 생각이 문득 들어 찾아보았습니다.

 사람의 신체, 주거, 관리하는 건조물, 자동차, 선박이나 항공기 또는 점유하는 방실을 수색한 자는 3년 이하의 징역에 처한다.  <개정 1995.12.29.>

형법 제321조에 규정되어 있습니다. 제목도 (주거신체수색)으로 되어 있네요. 수색의 대상에 따라서 주거수색죄, 신체수색죄, 자동차수색죄라고 하는 것인데, 주거침입죄의 사안은 자주 보는 편이지만 주거신체수색죄 부분은 자주 보는 부분이 아니라서 형법조문에 있는지도 잊고 있었던 것입니다.

수색이란 "사람 또는 물건을 발견하기 위해서 사람의 신체 또는 일정한 장소를 조사하는 것"을 말합니다. 주거수색죄의 수색은 불법해야 하므로 형사소송법에 의한 수색(수색영장을 발부받은 경우)은 위법성이 조각되고, 피해자의 동의에 의하여 수색한 때에는 구성요건해당성이 조각됩니다[이재상, 형법각론(제9판), 박영사(2013), 247면]. 위 기사에서는 자동차를 수색한 것이 자동차의 소유자인 전 여친 남편의 의사에 반하는 것이 명백하므로 구성요건해당성이 조각될 여지가 없었다고 할 수 있겠네요.

2014년 11월 3일 월요일

마시던 찻물을 상대방의 얼굴에 끼얹는 행위는 폭행


막장 드라마(시크릿가든이 막장드라마는 아니었습니다만..)에 클리셰처럼 나오는 장면 중에 맘에 안드는 며느리감에게 예비시어머니가 또는 불륜녀에게 본처가 커피숍에서 물컵에 담긴 물을 상대방에게 끼얹는 경우가 있습니다. 시크릿가든에서는 하지원이 이걸 살짝 피하긴 합니다만, 어쨌든 현실에서 이러한 일이 일어나면 물을 끼얹은 사람은 형사처벌을 받을 수 있습니다("마시던 찻물 상대방에게 끼얹는 행위는 폭행에 해당", 연합뉴스).

이유는 형사처벌의 대상이 되는 폭행의 범위가 생각보다 넓기 때문입니다. 형법상 폭행죄는 "사람의 신체에 폭행을 가한 자는 2년 이하의 징역, 500만원 이하의 벌금, 구류, 과료에 처한다"라고 규정(형법 제260조 제1항)되어 있지만, 폭행의 범위는 학설과 판례에 의하여 정해지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개념상으로는 공무집행방해죄의 폭행은 "광의의 폭행"으로서 사람에 대한 직접, 간접의 유형력의 행사를 말하고, 폭행죄의 폭행은 "협의의 폭행"으로서 사람의 신체에 대한 유형력의 행사를 말하는 것으로 일응 구별이 가능합니다. 즉, 타인의 집 마당에 인분을 던지거나, 방문을 발로 차는 것만으로는 폭행죄의 폭행이 되지 않지만, 공무집행방해죄의 폭행에는 해당될 가능성이 있는 것이지요. 하지만 신체에 대한 유형력의 행사라고 볼 수 있는 경우 즉 "사람에게 돌을 던지거나, 뺨을 때리거나, 침을 뱉거나, 손이나 옷을 잡아당기거나 미는 경우는 물론 모발이나 수염을 자르는 것"도 폭행죄에서 말하는 폭행에 해당하게 됩니다.
- 이재상, 형법각론, 57-58면, 박영사(1998) 참조.

(사람에게) 침을 뱉는 것이 폭행에 해당된다면 마시던 찻물을 뿌리는 것 또한 폭행에 해당한다고 하는 것이 타당한 결론이겠지요. 특히, "시비가 붙어 멱살을 잡은 정도가 무슨 폭행이냐"고 하시는 분들이 종종 있는데... 멱살을 잡아 폭행하였다는 이유로 50-100만원의 벌금이 선고되는 일은 흔한 일이니 다른 사람과의 시비는 조심하는 게 좋습니다.

2014년 7월 22일 화요일

형사소송에서 소송비용의 부담



형사소송 재판에 들어갔다가 판사님께서 선고를 하시면서 소송비용을 피고인의 부담으로 한다는 판결을 하시길래, "형사소송에도 비용부담의 재판이 있었나?"라는 의문이 들었습니다. 형사재판에 대한 비용은 모두 국가가 부담하는 것이 당연한 것이 아닌가 생각하고 있었거든요(공부한지 너무 오래 되어서 잊어버린 듯 합니다 ㅡㅡ).

민사소송에서 판결이 선고될 경우 소송비용에 대한 재판도 함께 이루어지는 것이 통상적인데, 원고가 전부승소하게 되면 피고가 소송비용을 부담하도록 하고, 피고가 전부승소하게 되면 원고가 소송비용을 부담하도록 하게 됩니다(일부승소의 경우에는 승소비율에 따라 부담). 그런데 형사소송은 검사의 공소제기에 대하여 피고인의 유무죄에 대한 판단을 내리는 것이므로 소송비용을 누가 부담해야 하는지에 대하여 재판이 이루어지는 경우는 많지 않습니다(제 경험에 따르면 거의 없었습니다).

하지만 형사소송에서도 소송비용은 지출원인에 대하여 책임있는 자에게 부담시키는 것이 원칙이고, 다만 검사가 책임이 있는 경우에는 국가가 부담하여야 할 것이므로 형사소송법은 피고인 등이 소송비용을 부담하는 경우에 관한 규정을 두고 있습니다(이재상, 형사소송법, 박영사(2008), 683면).

형사소송법 제186조 제1항은 "형의 선고를 하는 때에는 피고인에게 소송비용의 전부 또는 일부를 부담하게 하여야 한다. 다만, 피고인의 경제적 사정으로 소송비용을 납부할 수 없는 때에는 그러하지 아니하다"라고 규정하고 있고, 여기서 소송비용은 형사소송비용 등에 관한 법률에 의하여 특히 소송비용으로 규정된 것 즉 "증인 감정인 통역인 또는 번역인의 일당 여비 숙박료, 감정인 통역인 번역인의 감정료 통역료 번역료 기타 비용, 국선변호인의 일당 여비 숙박료 및 보수"가 이에 해당합니다. 피고인이 고의적으로 소송절차를 지연하고, 불필요한 증인 등을 신청하는 등 피고인에게 지출원인이 있다면 형의 선고시 피고인에게 소송비용을 부담할 것을 명하는 판결이 내려지기도 합니다. 제가 재판에 들어갔다가 본 것은 여기에 해당하였던 것입니다.

소송비용의 부담을 명하는 재판을 하면서 그 금액을 산정하지 아니한 때에는 집행을 지휘하는 검사가 그 금액을 산정하게 되며(형사소송법 제194조), 소송비용부담을 명하는 재판에는 본안의 재판에 관하여 항소하는 경우에 한하여 불복할 수 있습니다(형사소송법 제191조).

형사재판 중에 약식명령에 불복하여 정식재판을 청구하는 경우(이에 대해서는 약식절차 포스팅 참조)에는 불이익변경금지 원칙이 적용되어, 피고인에게 약식명령에서 정한 것보다 중한 형을 선고할 수 없습니다. 따라서 정식재판을 청구하는 것은 "밑져야 본전"이라는 인식이 피고인에게 심어질 수 있을 것입니다. 하지만, 소송비용을 피고인에게 부담하게 하면, 형은 아니지만 경제적 부담이 될 수 있으므로 정식재판청구를 남용하는 극히 일부의 피고인에게 소송비용 부담의 재판이 이루어지는 것으로 보입니다. 어쨌든 약식명령에 대한 불복 또한 피고인의 권리이므로 이를 제한할 정도로 비용부담의 재판이 이루어져서는 안될 것입니다.

2014년 6월 24일 화요일

모욕죄나 명예훼손죄의 공연성

명예훼손죄는 공연히 사실을 적시하거나 허위사실을 적시하여 사람의 명예를 훼손함으로써 성립하는 죄(형법 제307조)이며, 모욕죄는 공연히 사람을 모욕함으로써 성립하는 죄(형법 제311조)입니다. 두 죄 모두 "공연성"을 구성요건으로 하고 있습니다. 공연성은 "불특정 또는 다수인이 인식할 수 있는 상태"를 의미합니다. 그렇다면 명예훼손이나 모욕을 들은 사람이 한사람인 경우에는 공연성이 없는 것이라고 할 수 있는가? 이에 대하여 판례는 전파성의 이론을 받아들여  "개별적으로 한 사람에 대하여 사실을 유포하였다고 하여도 이로써 불특정 또는 다수인에게 전파될 가능성이 있으면 공연성의 요건을 충족한다"고 합니다.

결국 특정한 사람에 대한 사실의 적시는 비밀이 보장되거나 전파될 가능성이 없는 특수한 경우에 공연성이 부정되는데, 그 예로 피해자의 친척 한사람에게 피해자의 불륜관계를 이야기한 경우, 피고인이 다른 사람에게 알려지지 않도록 감추려고 하면서 집안관계인 사람들 앞에서 사실을 적시한 경우, 피고인이 피해자와 동업관계에 있고 친한 사이인 사람에게만 피해자의 험담을 한 때 등에는 그것이 전파될 가능성이 없다는 이유로 공연성이 부정됩니다.

법률신문을 읽다가 공연성이 부정되는 사안을 발견하여 찾아본 것인데, 오늘 본 사안은 다음과 같습니다. 청주지방법원은 "현행범으로 체포된 피고인이 동료 경찰관 3명만이 있는 지구대에서 그 중 경찰관 1명에게 욕설을 하였다는 이유로 모욕죄로 기소된 사안에서, 나머지 경찰관 2명이 그 욕설을 전파할 것으로 기대되지 않는 점 등에 비추어 모욕죄의 구성요건인 공연성이 부정된다"고 판시하였습니다(청주지법 2014. 5. 23. 선고 2013노941 판결). 공연성이 부정되는 사안으로 "경찰관들만이 있을 때"를 추가해 놓아야 겠네요.

* 이재상, 형법각론, 박영사(1998), 171-172면 참조.

2014년 4월 14일 월요일

횡령죄의 불가벌적 사후행위

횡령죄는 다른 사람의 재물을 보관하는 사람이 그 재물을 처분하거나 반환을 거부하는 경우에 성립하는 범죄입니다. 불가분적 사후행위라 함은 범죄에 의하여 획득한 위법한 이익을 확보하거나 사용 처분하는 사후행위가 이미 주된 범죄에 의하여 완전히 평가된 것이기 때문에 별도의 죄를 구성하지 않는 경우를 말합니다. 예컨대, 도둑이 핸드폰을 훔친 다음, 훔친 핸드폰을 부숴버린 경우, 첫번째 행위는 절도죄를 구성하고 두번째 행위는 손괴죄를 구성하지만, 핸드폰을 훔치는 행위에 의하여 소유자(또는 점유자)의 소유권에 대한 침해가 이루어진 것이어서, 이를 부수는 행위로 인한 소유권에 대한 침해는 주된 범죄인 절도죄에 의하여 완전히 평가되는 것이므로, 핸드폰을 부수는 행위는 절도행위의 불가벌적 사후행위가 되는 것입니다. 따라서 이 도둑의 행위는 절도죄를 구성할 뿐이며, 손괴죄 부분은 불가벌적 사후행위로서 범죄를 구성하지 않습니다.

횡령죄에 있어서 특히 명의신탁을 받아 부동산을 보관하는 수탁자가 자신의 개인적 채무의 담보조로 부동산에 근저당권을 설정함으로써 횡령죄가 성립한 다음, 그 수탁자가 별도의 채무의 담보조로 당해 부동산에 다른 근저당권을 설정하거나, 당해 부동산을 다른 사람에게 매각하여 버린 경우 등과 관련하여 종래 우리 대법원은 두번째 근저당권 설정행위나 매각행위는 앞에서 살펴본 불가벌적 사후행위로서 처벌되지 않는다는 입장이었습니다(대법원 1999. 4. 27. 선고 99도5 판결, 대법원 1996. 11. 29. 선고 96도1755 판결, 대법원 2000. 3. 24. 선고 2000도310 판결 등). 그런데 대법원은 2013. 2. 21. 선고 2010도10500 판결로서, 불가벌적 사후행위라는 이유로 횡령죄의 성립을 부정하였던 종전 판례 8개를 폐기하고, 일단 첫번째 근저당권 설정행위로 횡령죄가 성립한 뒤에도 두번째 근저당권 설정행위나 매매행위에 대하여 횡령죄의 성립을 인정하는 것으로 입장을 변경하였습니다.

불가벌적 사후행위라고 하는 것이 주된 범죄와 보호법익을 같이하고 침해의 양을 초과하지 않아야 하는 것인데[이재상, 형법총론, 박영사(2008), 526면], 근저당권 설정행위 후에 다른 근저당권을 설정하는 것이나 매각하는 것은 적어도 침해의 양을 초과하는 것이므로 이를 사후행위로 보기 어렵다는 점을 판례로 확인하여 준 의미가 있는 것이라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작년 중요 판례들을 보면서 위 판례를 발견하였는데, 횡령죄의 불가벌적 사후행위와 관련하여 종전의 대법원 입장도 확실히 알고 있지 못했던 것을 반성하는 의미로 기록해 둡니다.

참고 :
이재상, 형법총론, 박영사(2008)
신동운, 판례평석 : 횡령 후의 횡령죄 성립 여부 -2013. 2. 21. 2010도10500 전원합의체 판결, 판례공보 2013상, 599-, 서울대학교 법학, 54권 4호(2013)

2014년 3월 18일 화요일

[책소개] 빠리의 기자들



고종석, 빠리의 기자들, 새움(2014)

기자 고종석이 소설가 고종석으로서 낸 첫번째 소설인 [기자들]을 수정하여 [빠리의 기자들]이란 제목으로 다시 펴냈습니다. 아무래도 저자의 첫번째 외국체류의 경험이 너무도 강렬했기 때문에 어떻게든 기록으로 남기고 싶었을 것이라고 추측되었고 그 기대대로 세계 각국에서 온 다양한 기자들과의 에피소드, 고종석 기자가 유럽에 나가서 취재활동을 하면서 [유럽]지에 실은 기사들, 동독의 붕괴이후 동독지역 지식인과의 인터뷰 등을 소설의 형식 안에서 살펴볼 수 있습니다.

저자가 법학도였다는 것을 아는 저로서는 저자가 법학을 어떻게 생각하는지를 나타내는 부분이 나와 재미있게 읽었는데, 다음에 인용해 보겠습니다.

"그 때 나는 인과적 행위론이니, 목적적 행위론이니, 사회적 행위론이니, 미필적 고의니, 인식있는 과실이니, 원인에 있어서 자유로운 행위니 하는 잡스러운 개념들로 가득 찬 형법 교과서를 생각했고..."

-고종석, 빠리의 기자들, 새움(2014), 158면.

법학을 공부하고 법조인이 되려는 사람들에게 두가지 진입장벽으로 종종 "한자"가 섞여 있는 법조문과 법서들 자체와, 형법의 수많은 행위론들을 들 수 있었습니다. 십년전만 해도 법서에 있는 한자들은 이공계의 수많은 두뇌들이 사법시험을 쳐다보지 않게 하는 진입장벽이 되었었는데, 어느 순간 법서에서 한자들이 괄호 안에 들어가기 시작하더니, 이제는 한자가 그 용어 이해에 도움이 되는 경우가 아니면 쓰이지 않는 경지에 이르러서 마침내 의사출신, 공학박사 출신 변호사를 주위에서 보는 것은 흔한 일이 되어 버렸습니다. 어쨌든 언어에 대해서 지대한 관심이 있었던 저자가 법학을 공부하는데 사실 한자는 큰 문제가 아니었을 것입니다.

다음으로 형법의 행위론이나 개념들인데, 이게 실제로 누가 어떠한 범죄를 저질렀는지 판단하는 데에는 전혀 직접적으로 도움이 되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형법교과서에 실려 있다는 이유로 문제로 출제되고 그것이 당락을 좌우하는 지라 엄청난 스트레스로 다가옵니다. 저자는 이를 "잡스러운 개념"이라고 표현하고 있는데, 그 잡스러운 개념이 무엇인지 간단히나마 알아보고 저자의 심정을 이해해 보기로 하겠습니다.

일단 개념들에 대해서 살펴보기 전에 왜 행위론이 문제가 되는지 알아야 할 것입니다. 형법은 범죄를 다루는 학문이고, 범죄는 [구성요건에 해당하는 위법하고 유책한 행위]를 의미합니다. 따라서 범죄는 행위의 존재를 요건으로 합니다. 형법적 평가의 대상이 되는 행위로서 범죄의 모든 발생형태에 보편타당하게 적용될 수 있는 행위개념은 가능한가, 이러한 행위개념을 존재론적으로 파악해야 하는가 또는 규범적으로 파악해야 하는가의 문제를 행위론 이라고 합니다.  행위론은 형법적 의미에서 행위와 비행위를 구별하여 처벌의 대상이 되지 않는 거동을 제외하는 기능(한계기능), 형법상 의미를 가질 수 있는 모든 종류의 인간의 행위를 통일개념으로 파악하게 하는 기능(분류기능), 행위-구성요건해당성-위법성-책임-형벌로 이어지는 형법체계를 구성하는  기능(결합기능)을 합니다.

인과적 행위론은 행위를 의사에 의하여 외부세계에 야기된 순수한 인과과정으로 이해한 것입니다. 인과적 행위론에 따르면 행위를 일정한 거동의 유의성으로 보게 되므로, 행위개념에 부작위를 포함시킬 수 없게 되고, 미수행위의 개념결정에 난점을 보이는 등의 문제점이 있습니다.

목적적 행위론은 행위를 본질적으로 목적활동성의 작용으로 봅니다. 그러나 목적적 행위론은 고의를 설명하는 데 뛰어나지만 과실행위나 부작위의 구조를 설명하는데 적합하지 못하다는 비판을 받습니다.

사회적 행위론은 인과적 행위론과 목적적 행위론이 존재론적 방법만으로 행위를 파악하려고 하였다면 여기에 규범적인 방법으로 행위를 규명하려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 안에서도 학자에 따라서 차이를 보이고 있으므로 슈미트의 사회적 행위론, 객관적 사회적 행위론, 주관적 사회적 행위론 등으로 나뉘어 설명됩니다.

미필적 고의는  구성요건적 결과에 대한 인식 또는 예견이 불명확한 경우 중 결과의 발생 자체가 불확실한 경우를 말합니다. 즉, 행위자가 구성요건적 결과의 발생을 확실하게 인식한 것이 아니라 그 가능성을 예견하고 행위한 경우를 말합니다.

미필적 고의는 인식있는 과실과 어떻게 구별할 것인가가 문제되는데, 미필적 고의는 말 그대로 "고의"인 만큼 미필적 고의를 가지고 범죄를 저지른 사람은 그 구성요건에 해당하는 범죄의 "고의범"으로 처벌되지만, 인식있는 과실을 가지고 범죄의 결과를 발생시킨 사람은 그 구성요건이 "고의범"만 처벌하고 있으면 처벌되지 않고, "과실범"을 처벌하고 있는 경우에 한하여 과실범으로 처벌되기 때문입니다.

그 구별기준과 관련하여 개연성설, 가능성설, 용인설, 감수설 등이 주장되고 있는데, 감수설에 따르면 결과발생의 가능성을 인식하고 이를 진지하게 고려하였을 뿐 아니라 구성요건 실현의 위험을 감수한 경우에는 미필적 고의이고, 이에 반하여 행위자가 구성요건적 결과발생을 회피할 수 있다고 신뢰한 경우가 인식있는 과실이라는 것입니다.

원인에 있어서 자유로운 행위는 행위자가 고의 또는 과실에 의하여 자기를 심신장애의 상태에 빠지게 한 후 이러한 상태에서 범죄를 실행하는 것을 말합니다. 즉 구성요건에 해당하는 불법의 실행은 책임무능력 상태에서 이루어지지만 그 결정적 원인이 책임능력상태에서 행위자에 의하여 자유롭게 설정되었다는 점에서 책임무능력 상태의 행위라도 처벌되고, 형이 감경되지 않게 됩니다.

사실 형법을 공부할 때 위와 같은 개념 하나 하나에 천착하게 되면 수많은 개념에 질식해 버릴지도 모릅니다. 아마도 독일의 형법과 범죄 관련 이론이 수입되면서 체계를 이루었기 때문에 그리고 번역투의 문구는 일반인에게 너무도 생소해서 당연히 "잡스럽"다고 생각될 수 있습니다. 또한 실제 문제가 되는 사안에서 위와 같은 개념이 도움이 되는 경우를 찾아보기는 매우 힘듭니다. 어쩌면 위의 이론들은 실무가 또는 학자 자신이 옳다고 느끼는 결론을 정당화하기 위한 말장난이라고 느껴질 수도 있을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위와 같은 개념들이 행위-구성요건해당성-위법성-책임-형벌이라는 형법의 체계를 이루는 토대가 된다는 점은 부정할 수 없을 것입니다. 그런 잡스러움을 뚫고 형법에 발을 들여놓고 마침내 실무가나 학자가 된 많은 분들을 위한 한마디 변명이었습니다.

참고 : 이재상, 형법총론, 박영사(2008)



2014년 2월 5일 수요일

민법연구


대학에서 법학을 공부하면서 기본적으로 보게 되는 책들이 있습니다.
제가 공부할 당시(1990년대 중반부터 2000년대 초반까지) 기본삼법의 기본서로 보았던 것은
 헌법 권영성 교수님의 헌법학원론
 민법 곽윤직 교수님의 민법총칙, 물권법, 채권총론, 채권각론
 형법 이재상 교수님의 형법총론, 형법각론
이 책들이었습니다.

위 세 책들의 저자 가운데 권영성 교수님께서는 학교에 계셨기 때문에 직접 강의를 들을 수 있었지만, 곽윤직 교수님께서는 90년대 초반에 은퇴하셨고, 이재상 교수님은 이대에서 강의를 하셨기 때문에 직접 뵙지는 못했네요.

하지만 그 양의 방대함 때문에 기본서를 1회독 하는데 걸리는 시간이 만만찮아서, 특히 민법의 경우에는  곽윤직 교수님의 책들(줄여서 "곽서"라고 했습니다)을 요약 정리한 버전의 요약서가 나타나기 시작했습니다. 김준호 교수님의 민법강의가 시험용으로 각광을 받았죠. 몇년 후에 후배가 자신이 공부했다는 책을 가져왔는데 그 책은 지원림 교수님의 책이더라구요. 현재는 곽서를 별로 보지 않는 듯 했습니다.

학교에서 수업을 들을 당시 민법 교수님은 남효순, 양창수, 김재형, 윤진수 교수님이셨습니다. 저는 그 중 양창수, 김재형 교수님의 강의를 들었는데, 김재형 교수님이 조곤조곤하게 설명을 하시는 스타일이라면 양창수 교수님(현재 대법관으로 재직중이시죠)께서는 자신의 색깔이 분명하고, 다른 법학자들의 의견에 대해서 비판적으로 접근하셨는데, 학생들에게 인기가 높으셨습니다. 특히 곽윤직 교수님의 책으로 수업하시면서 곽교수님의 견해에 대해서 정중하게 자신은 다른 입장이라고 하시거나, 이은영 교수님의 견해를 사정없이 비판하시는 걸 은근히 재밌게 감상(?)할 수 있었습니다.

그런데 곽서라는 부동의 교과서가 있다보니 양교수님께서는 본인의 교과서를 내시지는 않으시고, "민법연구"라고 하여 본인이 교수로 재직하시면서 내는 연구물들을 묶어서 책으로 내시기 시작했습니다. 현재 9권까지 나와 있는 것 같습니다. 그런데 검색해 보니 2010년, 2011년, 2012년에 로스쿨 교재로 책을 내셨네요(계약법, 권리의 보전과 담보, 권리의 변동과 구제). 그 밖에 민법입문자들을 위해 쓰신 "민법입문"이라는 책이 있는데, 법학을 전공하지 않았거나 법학에 뜻이 있는 분들이 법학을 시작하면서 읽기에 좋은 책입니다(어설픈 법학개론 책보다 훨씬 낫다고 생각합니다).

어쩌다 일과 관련해서 찾아볼 논문이 있어 민법연구 8권을 사서 보게 되었는데, 그 서문에 양교수님께서 1권을 쓸때 서문을 다시 인용하시면서 아직도 우리 학계의 현실이 나아지지 않았다고 걱정하십니다. 민법학이 그럴진대, 형법, 헌법 그리고 제가 전공한 행정법학계는 어떻겠나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합니다. 그러나 이런 겸손한 마음으로 정진하시는 분들이 계셔서 어떻게든 세상에 지식이 쌓이고 더 좋아지고 있는게 아닐까요. 다음은 민법연구 8권에 인용되어 있는 민법연구 1권의 서문 중 일부입니다(한자는 한글로 고쳐서 옮깁니다).

"필자는 그야말로 민법학의 초심자에 지나지 않는다. 멀리 바라보며 나아갈 목표도 바로 눈 앞의 길도 뚜렷하지 아니한 채, 안개 속을 헤매는 암중모색의 단계를 벗어나지 못하였다. 그 과정에서 뼈저리게 느끼는 것은 우리에게 아직 [학문의 전통]이 없다는 것이다. 넓은 범위에서 양식 있는 분들의 동의를 얻고 있어 후학들이 일단 의지할 수 있는 방법이 수립되어 있는지 의문이고, 또한 학문적 훈련을 습득하여 가는 과정도 제도화되어 있지 않은 것으로 느껴진다. 그러므로 당연히 수많은 시행착오 그리고 불필요한 시간과 노력의 낭비가 행하여지고 있고, 더욱 중요한 것으로, 우리 나라에서의 민법학의 존재이유와 가치에 대한 회의가 은연 중에 팽배해 있어서 학문의 수행에 필수적인 인적 자원이 제대로 충원되지 못하고 있다. 법학을 일생을 걸만한 대업으로 여기는 유능한 젊은이들이 많이 있다는 것이 하나의 단위로서의 민법학계가 필수적으로 갖추어야 할 조건이 아니겠는가. 그리고 그러한 [전통의 부재]는 당연히 학문작업(그 성과는 일단 논문의 형태로 나타날 것이다)에 대한 자율적인 평가체계가 기능하지 아니하고 있다는 것으로 통한다.
이러한 상태에서 언필칭 [논문집]을 펴 낸다는 것이 어떠한 의미가 있는지 스스로 의심이 들기도 한다. 다만 여기저기서 [준거]의 획득을 위하여 고투를 계속하고 있는 동료들에게 이러한 글들이 조금이라도 동병상련의 위안이 되지 않을까 기대하여 보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