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년 8월 19일 토요일
[책 소개] 학교에서 가르쳐주지 않는 일본사
신상목, 학교에서 가르쳐주지 않는 일본사, 뿌리와이파리(2017)
외교관출신 우동집(강남역 부근에 위치한 '기리야마본진') 사장님이 열심히 장사하시는 틈틈이 집필하신 일본 에도시대 역사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같은 사무실의 황규경 변호사님의 페이스북 친구로 처음 알게 되었는데, 일본에 대한 타성에 젖은 비판에 대해 한번더 생각해 볼만한 글들을 페이스북에서 보고 저 또한 그분의 글에 즐겨 좋아요를 누르는 사람 중의 하나가 되었습니다.
지지난 주말엔가 고속터미널의 반디앤루니스에서 이 책을 구입하려고 보았더니 재고가 없어서 돌아섰었는데, 황변호사님께서 페이스북에서 좋은 글을 읽은 값을 해야 한다시며(이분 낭만적 자본주의자) 이 책을 20권 구입후 사무실에 나눠주셔서 다 읽었습니다. 제 돈내고 사 볼만한(두번 사볼만한) 책이라고 생각합니다.
실상으로는 일본의 거의 모든 제도를 베껴 왔으면서도, 겉으로는 일본을 무시하고 배격하는 태도를 취하는 이중적인 한국의 태도를 정면으로 비판하는 태도는, 일본의 실력을 직접 일본에서 경험하고 일본에 대해서 많이 공부한 사람이기 때문에 가질 수 있는 것이 아닌가 합니다. 책에서 소개하고 있는 내용 자체도 모르고 있던 것이 태반이고, "양체", "부도", "악화가 양화를 구축한다"와 같이 그 말 자체와 의미는 알고 있지만 그 유래에 관심이 없었던 말들에 대해서 더 잘 알게 된 것만으로도 이 책의 가치는 충분합니다. 게다가 에필로그에 한방 빵 터 트려주시는데, 사실 그 대목 쓰시기 위해서 이 책을 집필하시지 않았나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합니다. 일본은 유독 한국에서는 제대로 평가받지 못하는 나라이기 때문입니다. 다음은 인상깊은 대목입니다.
서세동점의 시기에 근대국가 수립이라는 시험대 앞에서 일본은 최우등생, 중국은 열등생, 조선은 낙제생이었다. 무엇이 그러한 차이를 만들었을까?
신상목, 학교에서 가르쳐주지 않는 일본사, 뿌리와이파리(2017), 13면.
한국인들의 일본 역사에 대한 관심은 [대망]으로 대표되는 일본 센고쿠 시대의 영웅군담 스토리, 막말 지사들의 네이션 빌딩 스토리, 러일전쟁에서 태평양전쟁 시기에 이르는 전쟁 스토리에 집중된다. 그나마 개인적 관심이 있는 사람들에 한해서 그렇다.
신상목, 학교에서 가르쳐주지 않는 일본사, 뿌리와이파리(2017), 14면.
(단재 신채호의 말이라고 잘못 알려져 있지만) 한국인들은 "역사를 잊은 민족에게 미래는 없다"는 말을 좋아한다.
신상목, 학교에서 가르쳐주지 않는 일본사, 뿌리와이파리(2017), 16면.
이 책은 일본에 나라를 빼앗긴 뼈아픈 역사를 갖고 있는 한국인들이 가장 주목해야 할 역사이지만 가장 '주목받지 못하는 역사'인 일본 근세에 대한 한국 내의 관심과 이해를 돕기 위한 목적으로 쓰였다.
신상목, 학교에서 가르쳐주지 않는 일본사, 뿌리와이파리(2017), 17면.
외교관의 세계에는 "유능한 외교관은 모든 분야에 대해 조금씩은 알아야 하고, 한 분야에 대해서는 모든 것을 알아야 한다"는 말이 있다.
신상목, 학교에서 가르쳐주지 않는 일본사, 뿌리와이파리(2017), 18면.
한국의 근대화에는 일본의 근대화가 투영되어 있다. 현대 한국 사회의 많은 부분은 조선의 근세가 아니라 일본 근세의 연속 또는 연장이다. 따라서 일본 근세에 대한 이해를 높이는 것은 한국 근대화의 부리를 찾는 과정으로서의 의미가 있다. 한국 근대화의 뿌리를 찾기 위해서라도 일본 근세를 진지하게 조망할 필요가 있다는 것이 이 책의 주장이다.
신상목, 학교에서 가르쳐주지 않는 일본사, 뿌리와이파리(2017), 21면.
참고로, 최초의 영한사전은 언더우드가 집필한 한영/영한자전이다. 조선에는 마땅한 인쇄시설이 없어 1890년 요코하마에서 발행되었다. 언더우드는 서문에서 영어에 대한 한국어사전에 없다는 것이 편찬의 동기가 되었다고 하면서, 한국에 온지 수개월 후부터 5년동안 단어를 수집하였으며, 한영사전은 게일의 도움으로, 영한사전은 헐버트의 도움으로 완성하였다고 편찬과정을 적고 있다.
신상목, 학교에서 가르쳐주지 않는 일본사, 뿌리와이파리(2017), 166-167면.
에도시대는 도시화의 시대였다. 심지어 수도도 하나가 아니었다. 막부 소재지 에도, 물산 집산지 오사카, 문화의 고도 교토가 모두 수도의 성격을 갖고 있었다. 이를 삼도라 한다.
신상목, 학교에서 가르쳐주지 않는 일본사, 뿌리와이파리(2017), 175면.
일본인들은 '이키'라는 말을 들으면 '심플함 속에서 풍겨져 나오는 세련됨', '내면의 절제와 태도의 여유', '모자람이나 과함이 없는 자연스러움' 등을 연상한다고 한다. 즉 드러내 보이는 화려함보다 소박하고 단아하지만 내면의 여유를 느낄 수 있는 멋이라는 것이다.
신상목, 학교에서 가르쳐주지 않는 일본사, 뿌리와이파리(2017), 188면.
일본 정부는 1873년 오스트리아 빈 만국박람회를 공식 대뷔 무대로 삼는다. 일본 정부는 1300평의 부지에 일본식 신사와 정원을 조성하고 일본 각지에서 엄선된 공예품과 물산을 전시하였다.
신상목, 학교에서 가르쳐주지 않는 일본사, 뿌리와이파리(2017), 204면.
에도 시대 일본 사회는 도시화, 자본화, 시장화의 진전으로 기존의 지식/사상으로는 더 이상 대응하기 어려운 한계상황에 직면하였고, 이러한 한계상황을 맞아 지식인들이 시대적 소명의식을 갖고 끊임없이 고민하는 과정에서 다양하고 견고한 지적 토대가 구축되었다.
신상목, 학교에서 가르쳐주지 않는 일본사, 뿌리와이파리(2017), 235면.
은화와 금화를 교환하는 서비스를 '료가에(兩替)', 그를 담당하는 상인들을 '료가에쇼'라고 한다.
신상목, 학교에서 가르쳐주지 않는 일본사, 뿌리와이파리(2017), 235면.
이를테면, 영국의 헨리 8세는 사치스런 생활과 프랑스, 스코틀랜드의 전쟁 등으로 왕실재정이 악화되자 1544년 순도를 대폭 낮춘 품위저하 금화와 은화를 비밀리에 주조하여 기존의 화폐와 섞어서 유통시킨다. 상인들에 의해 저질 주화가 유통되고 있다는 것이 곧 발각되자, 기존의 고품위 화폐는 시장에서 퇴출되고 저질 주화만 유통되는 결과가 초래된다. 이 때의 화폐개주를 'The Great Debasement'라고 하는데, '악화가 양화를 구축한다'는 그레셤의 법칙이 탄생하게 된 배경이다.
신상목, 학교에서 가르쳐주지 않는 일본사, 뿌리와이파리(2017), 247면.
후리데가카가 제시되었을 때 발행인의 잔고가 부족하면 료가에쇼가 '돈을 건네줄 수 없다'는 의미의 '후와타리(不渡/부도)' 처리를 한다. 이것이 '부도'의 유래이다.
신상목, 학교에서 가르쳐주지 않는 일본사, 뿌리와이파리(2017), 252면.
일본의 지방자치제는 민주주의적 자치의 원리도 중요하지만, 지역 사정에 맞는 자체적인 재정 운용을 이념의 기초로 하고 있다. 일본의 지자체가 고도의 재정자치 역량을 갖출 수 있었던 데에는 과거 직접 화폐를 발행하며 국고를 운용한 역사적 경험이 바탕에 있다.
신상목, 학교에서 가르쳐주지 않는 일본사, 뿌리와이파리(2017), 263면.
한국인들이 일상적으로 쓰는 '억울'이라는 말은 한자어로 '抑鬱'이라고 쓴다. 일본에도 같은 단어가 있다. 한국어와의 차이점은 일본어의 '억울'은 정신병리학상의 용어로 심하게 기분이 침체되어 있는 'deep-depression'의 심리상태를 말한다. 한일사전을 검색하면 '억울하다'의 대응어로 '구야시이'가 가장 많이 제시된다. 그러나 엄밀히 말하면 두 단어는 맥락과 뉘앙스가 다르다. 한국어의 '억울하다'는 '자신의 잘못이 아닌 남의 잘못으로 자신이 안 좋은 일을 당하거나 나쁜 처지에 빠져 화가 나거나 상심하는 것'을 의미하는 데 반해, 일본어의 '구야시이'는 '자신이 마음먹은 대로 일이 이루어지지 않거나, 남과의 경쟁에서 패하거나, 남이 자신에게 해코지를 하여 분하거나 유감의 심정이 되는 것'을 의미한다.
비슷한 것 아니냐고 반문하는 사람이 있을지 모르지만, 개인적으로는 많은 차이가 있다고 생각한다. '억울하다'고 느끼는 사람은 남을 원망하는 마음에 이르게 되지만, '구야시이'하다고 느끼는 사람은 자신을 책망하는 마음에 이르게 된다. 그래서 억울하다고 느끼는 사람은 남이 바뀌어야 한다고 생각하지만, 구야시이하다고 느끼는 사람은 자신을 바꿔야 한다고 생각한다. 억울함은 '한'으로 이어진다. 한국인에게 '한'은 복수심을 의미하기도 하지만 많은 경우 어쩔수 없음을 스스로 삭혀야 하는 속절없는 원망과 체념의 심정을 내포한다. 일본의 규야시이도 '한'으로 연결되지만, 이는 '통한'의 의미로서 자신을 바꿔 자신을 분하게 만든 상대에게 설욕하겠다는 '절치부심'의 결의를 내포한다. 그래서 한국의 '억울하다'에 비해서 일본의 '구야시이'가 더 강렬한 심리적 에너지장을 형성하고 현실의 변화를 수반할 가능성이 높은 심리이다. 지나친 단순화이지만, 한국과 일본 간에는 그러한 심리와 성향의 차이가 있고, 그것이 언어에 반영되어 있다고 생각한다.
신상목, 학교에서 가르쳐주지 않는 일본사, 뿌리와이파리(2017), 269-270면.
일본도 한국과 마찬가지로 구미 열강 세력에 당한 불평등에 대해 분개하고 분노한다. 그러나 일본의 역사 교육은 거기서 머무르지 않는다.
'유럽으로부터 불평등 조항을 강요당한 것은 일본의 사법제도가 그들로부터 인정받지 못한 탓이다. 그들로부터 인정을 받을 수 있는 사법제도를 구축하고 불평등을 해소해야 한다.' 당시 일본 위정자들은 그렇게 생각했다. ... 이러한 노력의 결과, 1880년 형법과 형사소송법 제정을 필두로 1889년 헌법, 1896년 민법 등 소위 '법전'이라 불리는 6법 체계가 완성되었다. 유럽의 법제를 철저히 연구하여 제정한 법률들이다. 유럽국들이 더 이상 법체계의 이질성, 미성숙성을 이유로 불평등을 강요할 수 없도록 준비를 단단히 한 일본은 당당하게 기존의 불평등조항의 파기와 개정을 요구한다.
일본 정부는 1892년 포르투갈의 영사재판권을 포기시키고, 1894년 청일전쟁의 승리를 기화로 영국을 강하게 몰아붙여 기존의 불평등조약을 개정한 '일영통상항해조약'을 체결하고 사법주권을 회복하였다. ... 불평등조약을 강요당한 분함을 계기로 대등한 관계를 인정받겠다는 집념이 기어코 불평등조항의 폐기를 이끌어냈고, 그러한 굴욕이 오히려 조기 근대화의 자극제로 작용한 것이다. 이러한 집단지성 축적의 스토리와 그 기틀을 닦은 지식인들의 고뇌와 성취의 에피소드가 후세에 전해져 일본인의 역사관과 세계관을 형성하였다.
일본인들은 그렇게 역사를 바라보고, 가르치고, 배운다. 그리고 그것이 가장 깨끗한 설욕이라고 생각한다. 스스로 강요당한 불평등을 조선에 다시 강요한 일본을 부도덕하고 악한 나라라고 비판하는 것은 자유이다. 그러나 일본은 스스로 주권을 회복하였고 조선은 회복하지 못하였다. 그 역사로부터 배워야 할 것은 없는가? 이것이 한국의 역사관이 답을 찾아야 할 올바른 질문이라고 생각한다.
신상목, 학교에서 가르쳐주지 않는 일본사, 뿌리와이파이(2017), 271-273면.
2017년 7월 26일 수요일
[책 소개] 기사단장 죽이기
무라카미 하루키(홍은주 역), 기사단장 죽이기 1/2, 문학동네(2017)
여름휴가시즌을 맞아 출간된 무라카미 하루키의 신작에 대한 임경선 작가님의 소개(신문기사 본문듣기 서비스 포스팅 참조)를 읽고 한 결심을 지난 주말 영풍문고 강남역점에서 기사단장 죽이기 2권을 할인가에 구입함으로써 반 정도 실현했고(뜻밖의 할인@영풍문고 강남역점 포스팅 참조), 이어 4일동안 틈틈이 읽어서 독서를 통한 여름휴가 즐기기가 조기 종료되었습니다.
물론 폭염과 찾아온 열대야도 수박과
술술 읽히는 페이지터너 라면 쉽게 넘어갈 수 있더군요.
이젠 20-30대에서 느끼던 하루키 소설에 대한 뭔가 생경하고 신비로움이 걷히고, 오히려 익숙해져 버린 듯한 느낌이라 아쉬움도 있기는 했지만, 역시나 재미있게 잘 읽었습니다. 화가나 그림의 느낌이 실제로 느껴지는 듯한 묘사는 역시 하루키라 할만 했고, 생각해 보면 정말 사건이랄 수 없는 것들로 독자를 쥐락펴락하는 것도 읽는 내내 쏠쏠한 재미였습니다. 간간히 소설과 직접 관련이 없는 듯한 인생의 경구(?!) 같은 것도 읽는 재미를 더해 주었구요. 여름휴가 때 읽을 만한 소설로 추천합니다. 다음은 인상깊은 구절들입니다.
깊숙이 들여다 보면 어떤 인간이든 저 안쪽에 반짝이는 무언가를 갖고 있기 마련이다. 그것을 잘 찾아내어, 혹시 표면이 뿌옇다면(뿌연 경우가 더 많은지도 모른다) 헝겊으로 말끔히 닦아준다. 그런 마음가짐이 으레 작품에 배어 나오기 때문이다.
-무라카미 하루키, 기사단장 죽이기 1, 문학동네(2017), 27면.
내가 '기사단장 죽이기'라는 제목의 야마다 도모히코의 그림을 발견한 것은 그 집에 오고 몇 달이 지났을 무렵이었다.
-무라카미 하루키, 기사단장 죽이기 1, 문학동네(2017), 75면.
아무리 의욕이 넘친다 한들, 가슴속 어딘가가 욱신거린다 한들 일에는 구체적인 시작이 필요한 법이다.
-무라카미 하루키, 기사단장 죽이기 1, 문학동네(2017), 78면.
사람에게 마흔이라는 나이는 하나의 분수령이다. 그 고개를 넘어가면 더는 예전과 같을 수 없다.
-무라카미 하루키, 기사단장 죽이기 1, 문학동네(2017), 84면 : 가슴아프네요. ㅡㅡ;
시간이 흐른 뒤 돌아켜보면 우리의 인생은 참으로 불가사의하게 느껴진다. 믿을 수 없이 갑작스러운 우연과 예측불가능한 굴곡진 전개가 넘쳐난다. 하지만 그것이 실제로 진행되는 동안에는 대부분 아무리 주의깊게 둘러보아도 불가해한 요소가 전혀 눈에 띄지 않는다.
-무라카미 하루키, 기사단장 죽이기 1, 문학동네(2017), 94-95면.
왜냐하면 그 그림의 본질이 우의에 있고, 비유에 있기 때문이지. 우의나 비유는 말로 설명할 것이 아니네. 그냥 이해해야지.
-무라카미 하루키, 기사단장 죽이기 1, 문학동네(2017), 504면.
마음이 가는 길은 관습이나 상식이나 법률로는 규제할 수 없다. 지극히 유동적이다. 그것은 자유로이 날갯짓하며 이동한다. 철새에게 국경의 개념이 없는 것과 마찬가지로.
-무라카미 하루키, 기사단장 죽이기 1, 문학동네(2017), 526면.
나이가 몇이든 모든 여자에게 모든 나이는 곧 미묘한 나이다. 마흔살이든 열세살이든 그녀들은 언제나 미묘한 나이에 놓여 있는 것이다.
-무라카미 하루키, 기사단장 죽이기 2, 문학동네(2017), 82면.
"넌 아마 모르겠지만, 골프란 정말 기묘한 게임이야. 그렇게 괴상한 스포츠는 또 없을걸. 다른 어떤 스포츠와도 비슷한 구석이 전혀 없어. 사실 그걸 스포츠라고 부르는 것조차 상당히 무리가 따르지 않아 싶어. 그런데 또 신기하게도, 한번 그 기묘함에 익숙해지면 발을 뺄 수 없어진단 말이야."
-무라카미 하루키, 기사단장 죽이기 2, 문학동네(2017),107면.
2017년 3월 10일 금요일
한글전용과 한자병용
1980년대만 하더라도 신문은 세로쓰기에 대부분의 중요한 단어들은 한자로 표기되어 있었습니다. 국민학교(네 저는 국민학교를 다닌 세대입니다) 입학전후로 읽을 거리에 목말랐던 저에게 하루에 한번씩 오는 신문은 꿩대신 닭같은 읽을거리였습니다. 1-2면에 나오는 기사는 글자가 크니 눈에 들어왔지만 3-4면 넘어가면서 나오는 사설과 정치경제 관련 기사는 지루하기 짝이 없어 빨리 뒤로 넘기고 증시상황표 뒤부터 나오는 스포츠기사와 사회면 기사를 탐독하곤 했습니다. 어린 눈에도 세상엔 벼라별 일도 많은 요지경이었다는 생각이 듭니다. 그러면서 왠만큼 자주 나오는 한자가 어떤 음을 가지고 있는지 정도의 한자실력은 갖게 되었습니다. 덕분에 한자공포증은 없어서 한자병용에 비교적 거부감이 없는 편에 속합니다.
그런데 1990년대와 2000년대를 지나면서 한글전용과 한자병용 문제가 불거졌고, 순우리말을 써서 일재의 잔재를 청산할 수 있다는 취지가 한글전용의 주된 논거 중의 하나였으며, 아직도 그런 것 같습니다. 하지만 일재 잔재의 청산은 우리말이 분명이 존재하는데, 일제시대 일본어를 사용하면서 우리말에 스며들어온 단어들을 되도록 사용하지 않으면 되는 것이지, 일본이 근대시대 번역을 통해서 서양의 문물, 개념 및 사상을 받아들여 한자화한 것을 새로운 단어로 바꾸는 식이 되어서는 안된다는 면에서 한자병용이 더 타당하다고 생각합니다. 페이스북에서 알게 된 전직 외교부 공무원인 우동집 사장님의 글이 매우 설득력있어서 퍼왔습니다.
우리나라가 일제에 주권을 빼앗겼다가 다시 회복한 것은 그 자체로 불행한 일이고, 일제가 우리나라에 저질렀던 만행에 대해서는 책임을 묻고 사과를 요구하는 것은 당연한 일입니다. 그러나 일본이 서양사상과 문물을 자신의 언어로 번역하고 한자로 새로운 조어를 만들어냈으며 심지어 중국에서도 일본이 번역한 한자어로 서양사상과 문물을 이해하게 되었다는 점까지 애써 무시할 이유가 없습니다. 비슷한(동일한) 한자어를 쓰고 어문구조를 비슷하다는 것을 이용해서 해방후 40년이상 한국은 일본의 번역한 결과물과 산물들을 엑기스만 한국어로 번역하여 사용했고, 이것이 자신의 힘으로 근대화와 광복을 이루지 못했던 우리나라가 세계의 경제/문화 수준을 놀랍도록 빠르게 따라잡은 원동력 중에 하나가 된 것도 사실입니다.
그래서 한글전용이나 일재청산이라는 구호로 이루어지는 일들이 과하게 되면 일본이 밉지만 일본이 해놓은 성과에 우리가 무임승차한 것을 잊어버리기 위한 것이 아닌지 자문해 보아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일본의 공과(功過)를 따질 때, 근대 서양의 사상과 문물과 관련된 용어를 한자화한 것을 공으로 인정하고, 한자병용의 좋은 점을 활용할 필요가 있을 것입니다(약간 다른 관점에서 쓴 글로 first mover와 fast follower 참조). 위에서 신상목 사장님께서 예로 든 단어들은 굳이 다시 풀어서 쓸 이유가 없는 단어들입니다. 고속터미널도 "고터"로 줄여부르고 "ㅋㅋ"라는 자음으로 의사소통이 되는 시대에 한자어로 뜻을 함축해서 나타낼 수 있으며 수십년간 자리잡은 단어들을 일본에서 쓰던 것이라고 배척할 합리적인 이유가 있는 것일까요(가타카나나 히라가나로 표기하는 것도 아닌데 말입니다). 일본에서 수입하기 이전에 그 단어들은 "조선"에서는 쓰이지 않았던 단어였기 때문에 그럴 필요성은 없지 않을까 개인적으로 생각해 봅니다.
2017년 2월 11일 토요일
오사카 여행
3주 정도 전에 가족여행으로 오사카-교토에 다녀왔습니다. 이 여행은 마눌님께서 첫째에게 과학고 진학시 특전으로 일본여행 약속을 제시한 데에서 시작되었습니다. 사실 특목고는 중학교 1학년 때부터 내신관리와 함께 전문학원을 보내면서 시작하는 것이 일반적입니다. 첫째는 아무 생각 없이 1학년을 보내고 2학년이 되고 나서야 특목고 준비를 시작하였는데, 어차피 준비과정에서 수학/과학은 열심히 하게 될테니 특목고에 입학하지 못한다고 하더라도 남는 것은 있을 것이고, 내신이 뛰어난 것도 아니었기 때문에 특목고에 입학하리라는 기대도 크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마눌님께서는 아마도 첫째가 특목고 입학을 하지 못할 가능성이 입학가능성보다 크다고 생각하고 작년 초 첫째에게 "과학고에 입학하면 일본여행을 가겠다"는 약속을 해 주었던 것입니다. 첫째는 러브라이브/아이돌마스터 리듬게임을 즐겨하고, 이 가상 그룹의 음악/캐릭터들을 보통 이상으로 좋아하며, 심지어 음반/책/굿즈도 사모으는 취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첫째가 일본여행을 가고자 하는 가장 큰 목적은 일본에 가면 음반/굿즈 등을 한국에서보다 싸게 살 수 있기 때문었습니다.
그리고 작년 말 첫째는 세종과학고(세종시에 있는 것처럼 보이는 네이밍인데, 서울 구로구에 위치하고 있습니다)에 최종합격하게 되었습니다. 나중에 다른 합격생들과 자신의 성적 등을 비교해 보니, 첫째는 수학/과학만 선발기준에 맞추고, 정보(컴퓨터) 관련 탐구 등으로 어필해서 입학이 가능하였다고 하네요. 어쨌든 약속은 약속이라 일본여행을 가기로 하였습니다.
특이한 점은 이전 여행과 달리 이번 여행은 마눌님/첫째가 일정/숙소/식사를 모두 사전에 협의/계획하여 진행되었다는 점입니다. 저는 말 그대로 숟가락만 얹고 따라다닌 여행이었습니다. 미리 A4용지 3장으로 빽빽히 담긴 여행사 스타일의 일정표가 사전에 제공되었을 뿐 아니라, 그 일정 중 2월 운휴를 미리 체크하지 못했던 "산타마리아 크루즈", 추운 날씨에 너무나 긴 줄을 예상하지 못했던 "규카츠"집을 제외하면 모든 일정이 소화된 점에서 보자면, 마눌님과 첫째의 계획은 꽤나 우리가족 맞춤형으로 잘 되었던 것 같습니다.
대략적인 일정은 다음과 같습니다.
첫째날은 오후 비행기라 숙소부근 회전초밥집에서 저녁 후 도톤보리 관광
*겐로쿠스시
*타코야끼
*글리코상
둘째날은 오사카성 천수각/역사박물관 관광 - 대관람차 탑승 - 덴덴타운 쇼핑
*오사카 역사박물관
*오사카성/천수각
*대관람차
*천수각 마그네틱
*덴덴타운 정글(중고샵)
세째날은 교토로 이동 - 은각사 관광 - 백식당 스테이크 덮밥 - 청수사 관광 - 오사카로 이동 - 동양정 함박스테이크 정식 - 헵파이브/오사카스카이빌딩 공중정원 관광
*은각사
*청수사
*기온 거리
*동양정 백년푸딩
*오사카 스카이빌딩 공중정원 야경
네째날은 오전 비행기 귀국이라 별다른 일정은 없었습니다.
이번 여행은 대중교통으로 이동하면서 오사카 주유패스로 무료입장이 가능한 시설을 최대한 둘러보았는데, 많이 걷긴 했어도 오랜만에 가족들이 함께 관광하고 쇼핑하고 일상을 함께 하니 좋은 추억이 되었던 것 같습니다. 사진을 많이 찍지 않았지만 제가 찍어서 제 사진은 하나도 없었는데 헵파이브 관람차 타기전에 찍어주는 사진 하나가 남아 있네요.
주유패스는 이렇게 생겼습니다.
*오사카 주유패스
*한큐패스(오사카-교토 이동시 이용)
*교토패스(교토 시내버스용)
부모의 기대를 뛰어넘어 목표를 이루고, 또 윗단계를 준비하는 첫째에게 수고했다는 말 전해주고 싶습니다.
2016년 7월 30일 토요일
일본 민법과 우리 민법상 법정상속분 규정 차이
일본민법상 상속인들의 법정상속분에 관한 규정과 우리 민법의 법정상속분에 관한 규정들의 차이점 중 가장 중요한 것은 우리 민법은 배우자의 상속분을 다른 공동상속인들의 상속분에 5할을 가산하고 있음에 대하여, 일본민법은 배우자가 피상속인의 자와 공동으로 상속할 때에는 상속재산의 1/2를, 피상속인의 직계존속과 상속할 때에는 상속재산의 2/3을, 피상속인의 형제자매와 공동으로 상속할 때에는 상속재산의 3/4를 각 상속하도록 되어 있으며 다른 공동상속인들은 배우자가 상속한 나머지를 원칙적으로 균등한 비율로 상속한다는 것입니다.
예를 들어 상속인이 배우자와 2명의 자녀인 경우/상속인이 배우자와 부모인 경우/상속인이 배우자와 2명의 형제인 경우에 상속분은 다음과 같게 됩니다. 자녀와 부모가 없어서 3순위 상속인이 형제자매가 되지만, 배우자가 있는 경우, 우리나라는 배우자가 단독상속(민법 제1003조 제1항)을 합니다.
일본 : 배우자 1/2, 자녀 A 1/4, 자녀 B 1/4
우리나라 : 배우자 3/7, 자녀 A 2/7, 자녀 B 2/7
일본 : 배우자 2/3, 부 1/6, 모 1/6
우리나라 : 배우자 3/7, 부 2/7, 모 2/7
일본 : 배우자 3/4, 형제 A 1/8, 형제 B 1/8
우리나라 : 배우자 1, 형제 A, B 0
상속 관련 문헌[윤진수, 초과특별수익이 있는 경우 구체적 상속분의 산정방법, 서울대학교 법학 38권 2호(104호)(1997년), 106면]을 찾아보다가 알게 되었네요.
2015년 12월 18일 금요일
재혼금지기간
트위터를 하다보니 다음과 같은 소식에 깜짝 놀라시는 분을 발견했습니다.
일본에 여성의 경우 이혼 후 6개월동안 재혼이 금지되는 조항이 남아 있었는데, 올해에야 그 조항이 삭제된 것을 알게 되자 우리나라에도 없는 제도를 일본이 유지하고 있었던 것에 충격을 받으신 모양입니다. 그러나 우리 민법도 일본법을 계수하여 만들어졌기 때문에 2005년까지는 일본법과 동일한 재혼금지조항이 존재하고 있었습니다. 다만 호주제도 폐지와 함께 일본보다 먼저 사라진 것 뿐입니다.
2005. 3. 31. 개정되기 전 민법 제811조가 바로 그것입니다.
여자는 혼인관계의 종료한 날로부터 6월을 경과하지 아니하면 혼인하지 못한다. 그러나 혼인관계의 종료후 해산한 때에는 그러하지 아니하다.
그러나 우리 민법은 2005. 3. 31. 개정으로 민법 제811조를 삭제합니다. 그 이유는 "부성추정의 충돌을 피할 목적으로 여성에 대하여 6개월의 재혼금지기간을 두고 있는 것은 여성에 대한 차별적인 규정으로 비쳐질 수 있고, 친자관계감정기법의 발달로 이러한 제한 규정을 필요성이 없어졌으므로 이를 삭제"한다는 것입니다.
재산법 분야의 개정에 비해 가족법 분야는 개정이 잦긴 하지만 실제 사건에서 문제되는 경우가 많지 않아 개정된 내용을 모르는 경우가 종종 발생하곤 합니다. 일본에서의 소식으로 우리 민법도 확인할 수 있는 좋은 기회가 되었네요.
日 117년 만에 족쇄 풀었다…"이혼 후 6개월 안 된 여성도 재혼가능" https://t.co/ZeptpjJC1Y pic.twitter.com/5lGS4v4Swa
— 연합뉴스 (@yonhaptweet) December 16, 2015
2005. 3. 31. 개정되기 전 민법 제811조가 바로 그것입니다.
여자는 혼인관계의 종료한 날로부터 6월을 경과하지 아니하면 혼인하지 못한다. 그러나 혼인관계의 종료후 해산한 때에는 그러하지 아니하다.
그러나 우리 민법은 2005. 3. 31. 개정으로 민법 제811조를 삭제합니다. 그 이유는 "부성추정의 충돌을 피할 목적으로 여성에 대하여 6개월의 재혼금지기간을 두고 있는 것은 여성에 대한 차별적인 규정으로 비쳐질 수 있고, 친자관계감정기법의 발달로 이러한 제한 규정을 필요성이 없어졌으므로 이를 삭제"한다는 것입니다.
재산법 분야의 개정에 비해 가족법 분야는 개정이 잦긴 하지만 실제 사건에서 문제되는 경우가 많지 않아 개정된 내용을 모르는 경우가 종종 발생하곤 합니다. 일본에서의 소식으로 우리 민법도 확인할 수 있는 좋은 기회가 되었네요.
2015년 8월 21일 금요일
[골프] 드라이버 커버
골프를 처음 시작하면 이것저것 마련할 것도 많고 골프장에 한번 가려면 챙겨야 할 것도 굉장히 많다는 생각이 듭니다. 초보티를 벗지 못했을 때에는 티박스에 서기 전에 장갑이 없다든지, 티가 없다든지, 모자에 달려있어야 할 마커가 없는 경우도 허다하고, 너무 볼을 많이 잃어버려 필드에서 주운 공을 친다든지 동반자에게 볼을 빌리는 것도 부지기수였습니다.
재작년쯤 되어서야 골프장을 1달에 1-2번 이상 나가면서 준비에 익숙해 져서 백에 넣어가야 할 옷과 양말, 파우치에 항상 들어 있어야 하는 골프용품들, 캐디백 안에 여벌의 골프화와 충분한 골프공 등 넣어두는 등 필드에 나가서 허둥지둥하는 일이 거의 없어졌습니다.
여유가 생기자 단순히 골프라는 운동을 즐기는 것을 넘어, 동반자가 입고온 골프복장도 유심히 살피게 되고, 동반자가 쓰는 채도 관심이 가게 되고, 제 채나 복장을 꾸미는 것도 하나의 재미가 되었습니다. 그 중 하나가 드라이버 커버를 구입할 때 제조사에서 주는 커버가 아닌 커버로 바꾸는 것이었습니다. 드라이버 커버를 독특한 것으로 쓰는 유명한 선수로는 타이거우즈와 로리맥길로이를 들 수 있는데요. 타이거우즈는 그 이름대로 호랑이 커버를, 로리맥길로이는 강아지 커버를 쓰고 있죠. 그래서 나이키에서는 드라이버를 출시하면서 타이거의 호랑이커버나 로리의 강아지커버를 함께 넣으면서 짱짱한 가격을 부르는 마케팅([프로모션] 타이거의 베이퍼 스피드 TW 드라이버 출시, [이벤트] 메이저 기념 로리 RZN 특별 패키지 이벤트)을 하고 있기도 합니다.
* 사진은 로리와 타이거의 드라이버 커버
제가 처음 샀던 드라이버 커버는 재작년 일본 골프여행에 가서 샀던 코끼리 헤드커버입니다. 색깔도 어둡고 해서 때도 잘 안타고 귀여워서 애용했었습니다.
그리고 올초에는 스크린골프를 자주 즐기다 보니 골프존에서 이벤트가 당첨되어 병아리 헤드커버가 와서 교체해서 쓰고 있었습니다.
지난 주에는 후배들과 춘천의 더플레이어스 GC에 라운딩을 나갔는데 그날따라 마음이 편했는지 큰 실수를 많이 하지 않아서 87타의 라이프베스트 기록을 세웠습니다. 생애 처음으로 보기플레이를 한 것이죠. 같이 갔던 후배가 8자를 그린 것을 축하한다며 드라이버커버를 선물해 주어 세번째로 드라이버커버를 바꿨습니다. 백호 드라이버커버인데, 이제 육식동물 커버로 바꾼 것이 실력향상에 더 효험이 있을 것으로 기대해 봅니다.
재작년쯤 되어서야 골프장을 1달에 1-2번 이상 나가면서 준비에 익숙해 져서 백에 넣어가야 할 옷과 양말, 파우치에 항상 들어 있어야 하는 골프용품들, 캐디백 안에 여벌의 골프화와 충분한 골프공 등 넣어두는 등 필드에 나가서 허둥지둥하는 일이 거의 없어졌습니다.
여유가 생기자 단순히 골프라는 운동을 즐기는 것을 넘어, 동반자가 입고온 골프복장도 유심히 살피게 되고, 동반자가 쓰는 채도 관심이 가게 되고, 제 채나 복장을 꾸미는 것도 하나의 재미가 되었습니다. 그 중 하나가 드라이버 커버를 구입할 때 제조사에서 주는 커버가 아닌 커버로 바꾸는 것이었습니다. 드라이버 커버를 독특한 것으로 쓰는 유명한 선수로는 타이거우즈와 로리맥길로이를 들 수 있는데요. 타이거우즈는 그 이름대로 호랑이 커버를, 로리맥길로이는 강아지 커버를 쓰고 있죠. 그래서 나이키에서는 드라이버를 출시하면서 타이거의 호랑이커버나 로리의 강아지커버를 함께 넣으면서 짱짱한 가격을 부르는 마케팅([프로모션] 타이거의 베이퍼 스피드 TW 드라이버 출시, [이벤트] 메이저 기념 로리 RZN 특별 패키지 이벤트)을 하고 있기도 합니다.
* 사진은 로리와 타이거의 드라이버 커버
제가 처음 샀던 드라이버 커버는 재작년 일본 골프여행에 가서 샀던 코끼리 헤드커버입니다. 색깔도 어둡고 해서 때도 잘 안타고 귀여워서 애용했었습니다.
그리고 올초에는 스크린골프를 자주 즐기다 보니 골프존에서 이벤트가 당첨되어 병아리 헤드커버가 와서 교체해서 쓰고 있었습니다.
지난 주에는 후배들과 춘천의 더플레이어스 GC에 라운딩을 나갔는데 그날따라 마음이 편했는지 큰 실수를 많이 하지 않아서 87타의 라이프베스트 기록을 세웠습니다. 생애 처음으로 보기플레이를 한 것이죠. 같이 갔던 후배가 8자를 그린 것을 축하한다며 드라이버커버를 선물해 주어 세번째로 드라이버커버를 바꿨습니다. 백호 드라이버커버인데, 이제 육식동물 커버로 바꾼 것이 실력향상에 더 효험이 있을 것으로 기대해 봅니다.
2015년 4월 21일 화요일
[책 소개] 가면산장 살인사건
히가시노 게이고/김난주 역, 가면산장 살인사건, 재인(2014)
400페이지 정도 밖에 안되는 분량, 한면에 씌인 양도 얼마 되지 않아 오후-저녁을 거쳐 새벽 1시 정도에 완독. "이런 반전은 없었다"고 할만큼 충격적이지는 않음.
(스포주의/책을 읽으시려거든 이 부분을 읽지 말고 페이지를 닫으세요) 엄밀하게 말하면 범인은 살인 예비음모 내지 살인미수에 해당한다고 할 수 있을 것이지만, 살인죄의 기수에 해당되지는 않음. 피해자가 죽은 것은 맞는데 범인의 행위가 피해자를 죽게 만든 것이 아니라, 피해자가 범인의 행위를 알아차리고 충격을 받아 자살한 것이어서 인과관계가 인정되지 않을 것이기 때문. 형법적 쟁점을 생각나게 하는 소설은 오랜만이라는 생각.
2014년 9월 12일 금요일
무라카미 하루키
무라카미 하루키는 1990년 중반에 대학생활을 보낸 사람들에게 특히 의미있는 소설가입니다. "상실의 시대"는 당시 대학생을 중심으로 센세이션을 일으켰고 하루키는 그 이후로도 꾸준히 베스트셀러를 내면서 소위 "하루키 스타일"이라는 것을 만들었다고 할 수 있지 않을까 합니다.
사실 "상실의 시대"의 줄거리나 내용은 이제 더이상 기억조차 나지 않지만, 사회과학서적 읽기와 교양을 동일시하는 은근한 대학의 분위기에서 제게 하루키의 소설은 "개인의 삶은 그 자체로도 의미가 있다"는 것을 일깨웠다는 느낌으로 남아 있습니다.
물론 그 이후로도 전부는 아니지만 하루키의 소설을 기회가 될 때마다 구입해서 읽어왔고, 적어도 책값이 아깝다는 생각은 들지 않을 정도의 재미 내지 퀄리티를 보여주는 작가였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의 저작 중 읽은 것들로는 이 정도네요. 적고 보니 베스트셀러 위주 ㅎㅎㅎ
세계의 끝과 하드보일드 원더랜드
노르웨이의 숲(상실의 시대)
해변의 카프카
1Q84
색채가 없는 다자키 쓰쿠루와 그가 순례를 떠난 해
여자없는 남자들
이번에 출간된 단편소설집 "여자 없는 남자들"은 어떻게 보면 사별, 불륜, 그리움(?) 등의 동일한 주제를 가지고 변주한 소설들이라고 할 수 있는데, 이제 청년이 아니라 장년이 된 작가의 입장이나 그와 함께 늙어가는 독자의 입장에서도 흥미있는 구석이 있어 보입니다. 하지만 청년 때 그의 소설이 보여주던 파괴력은 더이상 기대할 수 없겠구나 하는 아쉬움도 남습니다.
이번 추석연휴에 "여자 없는 남자들"을 읽으면서 인상깊었던 구절들입니다. 깔끔하게 반나절 정도면 기억속의 하루키 스타일을 되새김질해볼 수 있을 것입니다. 저로선 당연히 추천합니다.
사람과 사람이 관계를 맺는다는 건, 특히 남자와 여자가 관계를 맺는다는 건, 뭐랄까, 보다 총체적인 문제야. 더 애매하고, 더 제멋대로고, 더 서글픈거야.
무라카미 하루키, 드라이브 마이카(여자없는 남자들), 문학동네, 37면.
이 넓은 세상에는 자식과 부모가 시종 양호한 관계를 유지해 나가는 아름답고 행복한 가정도-대략 축구경기에서 해트트릭이 나오는 빈도로- 존재한다.
무라카미 하루키, 독립기관(여자없는 남자들), 문학동네, 126면.
"신사는 자기가 낸 세금액수, 그리고 같이 잔 여자에 대해 말을 아끼는 법이죠."
같은 책, 127-128면.
무리하게 서두르지 말 것, 같은 패턴을 반복하지 말 것, 꼭 거짓말을 해야 할 때는 되도록 단순한 거짓말을 할 것, 그 세가지가 조언의 요점이었다.
같은 책, 129면.
2014년 8월 4일 월요일
[책 소개] 관부연락선
지금까지 조정래의 "태백산맥", 박경리의 "토지" 등이 대표적인 대하역사소설이라고 알고 있었는데, 얼마 전 소설가 이병주 선생의 한국 현대사를 소설의 형식으로 기록해 놓았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이병주 선생이 한국의 발자크라고도 불린다는 것을 알게 되었지만 실상 저는 발자크(다작의 대명사로 불리고 있음에도 불구하고)의 작품을 읽은 경험이 없던 터라 이병주 선생의 소설을 접하지 못한 것도 뭐 신기한 일은 아닐 것입니다.
그래서 이번 여름에는 휴가동안 읽을 겸 한길사에서 2006년에 낸 이병주 전집 30권을 구매했습니다. 이병주 선생의 대표작인 "관부연락선"부터 시작하여 "지리산", "산하", "그해 5월", "행복어사전"의 중장편소설과, 단편소설들을 모은 "소설 알렉산드리아", "마술사", "그 테러리스트를 위한 만사" 총 30권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우리나라의 구한말을 거쳐, 일제시대, 해방, 남한단독정부수립, 625 전쟁, 이후의 정권교체로 이어지는 파란만장한 현대사를 겪는 개인들이 갈등을 진지하게 다루고 있는 작품들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저자 본인이 평소에 이런 말씀을 많이 하셨다고 하지요. "역사는 산맥을 기록하고 나의 문학은 골짜기를 기록한다."
그 중에서 이병주전집의 처음을 장식하고 있는 것이 바로 "관부연락선"이라는 작품입니다. 작가의 고향이기도 한 "진주"를 배경으로 하여 일제의 지배, 좌익과 우익으로 나뉘어 서로 적대하는 해방후 상황에 대한 지식인의 고뇌와 갈등, 비극을 담담히 써내려간 소설입니다.
우리 윗세대의 어르신들의 편집증이라고 할만한 "좌익혐오"가 어디에서 근원한 것인지에 대하여 시사하는 바가 매우 크다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저런 상황에 내가 처해 있다면 어떻게 처신을 하여야 할 것인지 매우 난감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어쨌든 어떤 상황에서 처한 사람의 행동이 어떤 식으로 정당화되는지 찬찬히 살펴보는 것은 좋은 간접경험이 되지 않을까 생각해 봅니다.
다음은 관부연락선에서 제가 인상깊었던 부분입니다.
일본이 불난 집에 부채질을 하는 격의 행동을 한것도 사실이고 날도둑을 방불케 한 짓을 한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영국이 인도를 먹고, 미국이 필리핀을 먹고 프랑스가 인도지나를 먹고, 네덜란드가 인도네시아를 먹고 그 위에 이들 열강이 지나대륙을 제각기 식민지화하려고 법석을 떨고 있는 세계 정세 속에서 일본에게만 도의적인 태도를 취하라고 요구할 순 없는 것이 아닌가. 그러니 일본의 태도를 고치게 하려면 힘으로써 할 일이지 이론으로써는 불가능한 일이다. 나쁘다고 욕을 할 수는 있다. 성패는 불문에 붙이고 반항할 수도 있다. 일한합병은 힘으로써 된 것이지 도의로써 된 것은 아니니 조선인은 일본을 책하기 전에 먼저 스스로를 책해야 한다.
이병주, 관부연락선 2, 한길사(2006), 22면.
더운 여름에 한번 진지하게 생각할 거리가 필요하다면, 그러나 술술 읽히는 소설속에서 쉽게 이를 접하고 싶은 분들께 추천해 봅니다.
2014년 5월 13일 화요일
불량노인구락부
요즈음 들어 하는 생각과 비슷한 생각을 하는 사람을 소개한 기사가 있어 소개합니다. 제가 이전에 올린 박카스유감 과도 상통하는 면이 있는 것 같습니다. 일본의 불량노인구락부 라는 단체(?)를 소개한 기사인데요.
일본의 불량노인 운동 - "왜 남의 눈치 보며 사나요?" 이코노미스트 1237호, 2014. 5. 19.자 기사
질풍노도의 시기를 지난 사람의 정신연령은 그대로인데, 공자가 괜히 이립, 불혹, 지천명, 이순 이런 말들 만들어서 사람이 변한다고 세뇌시킨게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듭니다.
젊게 사는게 남는 거 아닐까요.
2014년 5월 8일 목요일
[책 소개] 비명을 찾아서
복거일, 비명을 찾아서(경성, 쇼우와 62년), 문학과 지성사
어린이날, 부처님 오신날이 낀 연휴였는데, 특별히 준비성이 뛰어나지 않은 턱에 연휴에 놀러갈 계획을 잡아놓지 않아서 나들이 없이 집에서 대부분의 시간을 보냈습니다. 그러면서 골라잡은 책은 고종석 선생님이 스승이라고 하시는 복거일 씨의 초기 소설이었습니다. 원체 들어본 적은 많았으나, 그 제목이 우울해 보인다는 이유로, 폭망한 2009로스트메모리즈 라는 영화(장동건 주연)의 원작 소설이라는 것은 알고 있어서 '영화가 망했는데 소설이라고 다르겠어?'라는 생각에, 1987년에 나온 소설을 굳이 볼 생각을 하지 않았었습니다.
하지만 장편소설 치고는 그닥 두껍지 않은 분량, 고종석 선생님에게 영향을 미쳤고 영어공용화론으로 일대 센세이션을 일으켰던 복거일이라는 분에 대한 뒤늦은 호기심으로 연휴 내내 오랜만에 책읽는 즐거움과 함께 할 수 있었습니다.
제 감상평은 꽤나 괜찮은 소설이구나 하는 것입니다. 이미 20년도 넘은 소설의 내용이 지금 읽어도 별로 오래된 것 같지 않은 것 같은 느낌이라는 점이 매우 놀랍습니다. 그 아이디어를 따서 시나리오를 만들었다는 2009로스트메모리즈(복거일씨는 당시 이 영화사를 상대로 아이디어에 대한 저작권을 주장하며 소송을 제기하였지만 법원은 이를 인정하지 않았습니다)를 보지는 않았지만 영화 장르로 보아 "비명을 찾아서"라는 소설도 액션이 포함되었을 것으로 기대하였는데, 그와 달리 주인공은 약간 비범한 정도의 알루미늄 생산회사 유부남 과장으로 직속 후배에게 연정을 품지만 끝내 고백조차 하지 못하는 머릿속으로 생각이 엄청 많은 시인에 불과합니다. 안중근이 이토 히로부미 암살에 실패하여 일본이 조선을 병합하고 중국 일부까지 차지하면서 둘로 쪼개진 중국과 접경하고 있는 상황에서 우리 말글을 잃어버린지 40년이 지난 시점을 배경으로, 우연한 기회에 자신의 조선인으로서의 정체성을 각성하는 주인공이 상해 임시정부를 찾아 모험을 떠나려는 찰라에 소설이 끝나고 말죠.
개인적으로 이 소설에서 인상적이었던 것은 주인공이 정부로부터 합작투자 인허가를 받아내는 과정입니다. 로펌에 다닐 때 제가 했던 업무 중 외국환거래법상 기재부나 한국은행으로부터 인허가를 받는 것과 80년대와 2000년대의 차이에도 불구하고 매우 비슷했기 때문입니다. 아마도 복거일씨가 소설가로 데뷔하기 전의 직업상 정부 부처 공무원들에게 인허가를 받는 일이 꽤 있었던 것이 아닐까 추측해 봅니다. 또한 일제에 병합된 조선을 이야기하면서도 내지에서 쿠데타가 벌어지는 상황을 묘사하는 것은 1980년대 전두환 정권이 들어설 때의 우리나라의 상황을 경험한 작가가 이를 비틀어 묘사한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들었구요.
하지만 작가가 가장 중심적으로 다루었던 것은 우리 말글이 없어진 상태, 일제가 도서관에서 한글로 된 사전과 역사서도 모두 없애 버려 자료도 거의 찾을 수 없는 상황에서 우리 말글의 맥을 다시 찾는 것이 얼마나 지난한 일이 될 것인지 였습니다. 역사와 언어, 특히 일어와 우리 말에(업무의 내용상 다루어야 하는 영어까지) 상당한 지식과 경험이 없으면 나올 수 없는 소설이었을 것이라고 생각됩니다.
이 소설은 각 장을 가상의 소설이나 법령을 인용하는 방식으로 시작하고 있는데, 거기에 맘에 드는 몇 구절을 옮겨 봅니다. 그 아이디어의 참신성을 비롯해 꽤나 흥미로운 점이 많은 소설로, 아직 안 읽으셨다면 한번 읽어보실 것을 권합니다.
관료계급은 자신을 집권 계급에 없어서는 안될 존재로 만듦으로서 연명한다. 그래서 그들은 정치적으로 모호하며, 집권자가 누구인가 따지지 않는다. 심지어 그들은 적국에 정복되면, 새 주인을 옛 주인을 섬겼던 것과 같은 충성심으로 섬긴다. 그들은 통치권력을 충성스럽게 섬김으로써 인민들 위에 군림하는 자신의 권력을 유지하고 확장한다.
-복거일, 비명을 찾아서 경성, 쇼우와 62년(상), 문학과 지성사, 296-297면.
군사독재정권이 국내의 모든 반대자들을 힘으로 쉽사리 누를 수 있기 때문에 영속하리라고 생각하는 것은 그 정권 아래서 이득을 보는 자들의 기원에 지나지 않는다. 독재정권을 안정시키는 경직된 사회구조는 예기치 못한 상황에 유연하게 대처할 수 없다는 결정적 약점을 안고 있다. 내부적으로 강력하고 안정된 듯이 보이는 정권들이 외부의 압력에 허망하도록 쉽사리 굴복하는 것은 이 때문이다. 서양 열국의 개국요구 앞에 허둥대다가 무너진 도꾸가와 막부 정권이 그 좋은 예다.
복거일, 비명을 찾아서(상), 문학과 지성사, 322면.
정당하게 성립되지 않은 정권의 가장 큰 문제점은 그 정권의 존재 자체가 사회의 도적적 질서를 근본적으로 파괴한다는 점이다. 정치, 즉 권력의 배분행위는 어느 사회에서든지 가장 근본적인 일이다. 이러한 근본적인 차원에서 정의가 실현되지 않는데, 어떻게 다른 차원에서 도덕적 질서가 이루어지길 바라겠는가?
-복거일, 비명을 찾아서(상), 문학과지성사, 329면.
국가라는 배가 위기를 만나면, 국민들은 굳은 손길로 키를 잡을 사람을 찾는다. 그러나 배가 가야 할 목적지나 항로에 대해 생각하는 사람은 드물다. 국민들은 전제적 통제가 분분한 논란들을 종식시키고 그럭저럭 배를 조종해서 험한 물결을 해져나가기를 기원한다. 그러나 옳은 항로를 발견하는 일은 굳은 손길을 가진 사람을 발견하는 일보다 훨씬 어렵다는 것을 역사는 우리에게 보여준다.
-복거일, 비명을 찾아서(하), 문학과지성사, 100면.
2014년 3월 10일 월요일
First Mover 와 Fast Follower
흔히 스마트폰 시장에서 애플의 전략을 First Mover 전략이라 하고, 삼성의 전략을 Fast Follower 전략이라고 합니다. 애플은 이전에 없던 시장을 개척해서 고부가가치의 제품을 팔아 수익을 얻는 것을 전략으로 한다면, 삼성은 애플이 닦아 놓은 검증된 시장에서 애플과 같은 시장 선두의 제품의 퀄리티를 빨리 따라잡고 특유의 물량공세를 통하여 (1위를 제외한) 경쟁자를 제압하고 박리다매를 통해 수익을 얻는 것을 전략으로 하는 것입니다.
스마트폰이 처음 도입될 당시 애플이 하드웨어에 최적화된 소프트웨어와 앱마켓이라는 장점을 기반으로 스마트폰 시장을 만들어 나가기 시작할 때, 삼성은 노키아, 블랙베리, 소니에도 뒤쳐지는 후발사업자였습니다. 아이폰이 국내에 들어오기 전에 만든 "옴니아"는 아이폰이 들어온 이후 "옴레기"로 악명을 떨치며 사라져 갔던 기억이 생생합니다.
그러나 숱한 삽질에도 불구하고, 데스크탑시장에서 애플의 초반 우세를 뒤집은 IBM의 전략을 실행하기 위해서 구글 안드로이드 진영과 손잡은 삼성의 행보는 눈부시다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지난 4-5년간 삼성은 노키아, 블랙베리, 소니를 저멀리 앞서서 애플의 뒤를 바짝 쫒는 경쟁자라고 부를 만한 단 하나의 브랜드가 되었습니다.
삼성은 과연 어떻게 애플을 급속도로 따라잡을 수 있었을까 생각하다가 문득 우리나라의 특수성에 그 원인이 있는 건 아닐까 생각해 봅니다.
우리나라는 우리나라의 자력으로 근대화하여 서양문물을 수입한 것이 아닙니다. 쇄국정책이 끝나서 서양문물을 수입할 무렵 일제강점기가 도래하였고, 일본을 통해서 서양문물이 쏟아져 들어왔다고 하는 것이 서양문물 수입과정을 제대로 파악한 것이라고 할 것입니다. 그 과정에서 우리는 서양문물을 바로 우리의 언어로 번역하는 "수고"를 할 필요가 없었습니다. 한글이나 한국어와 유사한 구조를 가지고 있는 "일본어"만 한국어로 번역할 수 있다면 일본이 이미 시행착오를 거쳐 번역해 놓은 수많은 서양문물을 단시간 내에 흡수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이 과정에서 우리는 Fast Follower의 유전자를 새기게 되었는지도 모릅니다. 굳이 세계 각국을 따라잡을 필요 없이 일본을 바짝 뒤쫒는 것만으로도 어느 정도의 지식수준은 보장되었다고 할 수 있었을 것입니다.
해방 이후에도 이런 구조는 크게 바뀌지 않았습니다. 특히 법조계에서는 1990년대까지만 해도 어떠한 법적 쟁점에 대해서 조사를 한다고 하면 "일본 판례"는 어떻게 보고 있는지를 빼놓을 수 없었습니다. 실제로 우리 민법은 일본 민법을 의용하다가 해방 이후 "전세권"과 같이 우리나라에 특유한 제도를 추가하고, 부동산등기를 물권 성립의 "대항요건"에서 "성립요건"으로 바꾸는 등의 사항을 반영하여 변경되었을 뿐 일본 민법을 골간으로 하고 있다는 것은 부정할 수 없습니다. 결국 일본에서 우리나라보다 오랜 세월동안 축적된 법률이론과 판례들은 그와 유사한 법률규정과 제도를 가지고 있는 우리나라에 적용하기가 무척 쉬웠던 것입니다. 그 결과 우리는 옳다고 하는 결론을 빠르게 답습하는 능력은 출중하지만, 무엇을 궁리하여 창의적으로 만들어내는 데에는 약간 부족한 모습을 가지게 된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드는 것입니다.
하지만 2000년대에 들어서면서 상황이 서서히 바뀌어 가고 있는 것 같습니다. 우리 판례의 집적도도 높아져서 더이상 우리나라에는 그에 관한 판례가 없는데 일본 판례는 있는 상황은 많이 없어져서 비교법적인 관점이 아닌 논문에서 일본 판례를 인용하는 것은 서서히 부자연스러워져가고 있습니다. 또한 일본 법제 또한 그 자신의 고유한 법제도가 아니라 독일법이나 프랑스법을 계수한 것이기 때문에 일본을 통하지 않고 독일이나 프랑스의 법서를 직접 연구하고 그 결과를 한국법과 비교하는 경우도 꽤 늘어나고 있는 것 같습니다. 그리고 인터넷을 통하여 세계가 좁아져가고 있고, 통상문제 등을 통하여 법제도 자체가 다른 미국법도 우리 법제도나 판례에 영향을 미치고 있습니다.
이러한 상황들이 모두 한국인이나 삼성을 더 이상 "Fast Follower"에 머물러있을 것이 아니라 "First Mover"로 거듭날 것을 촉구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요.
스마트폰이 처음 도입될 당시 애플이 하드웨어에 최적화된 소프트웨어와 앱마켓이라는 장점을 기반으로 스마트폰 시장을 만들어 나가기 시작할 때, 삼성은 노키아, 블랙베리, 소니에도 뒤쳐지는 후발사업자였습니다. 아이폰이 국내에 들어오기 전에 만든 "옴니아"는 아이폰이 들어온 이후 "옴레기"로 악명을 떨치며 사라져 갔던 기억이 생생합니다.
그러나 숱한 삽질에도 불구하고, 데스크탑시장에서 애플의 초반 우세를 뒤집은 IBM의 전략을 실행하기 위해서 구글 안드로이드 진영과 손잡은 삼성의 행보는 눈부시다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지난 4-5년간 삼성은 노키아, 블랙베리, 소니를 저멀리 앞서서 애플의 뒤를 바짝 쫒는 경쟁자라고 부를 만한 단 하나의 브랜드가 되었습니다.
삼성은 과연 어떻게 애플을 급속도로 따라잡을 수 있었을까 생각하다가 문득 우리나라의 특수성에 그 원인이 있는 건 아닐까 생각해 봅니다.
우리나라는 우리나라의 자력으로 근대화하여 서양문물을 수입한 것이 아닙니다. 쇄국정책이 끝나서 서양문물을 수입할 무렵 일제강점기가 도래하였고, 일본을 통해서 서양문물이 쏟아져 들어왔다고 하는 것이 서양문물 수입과정을 제대로 파악한 것이라고 할 것입니다. 그 과정에서 우리는 서양문물을 바로 우리의 언어로 번역하는 "수고"를 할 필요가 없었습니다. 한글이나 한국어와 유사한 구조를 가지고 있는 "일본어"만 한국어로 번역할 수 있다면 일본이 이미 시행착오를 거쳐 번역해 놓은 수많은 서양문물을 단시간 내에 흡수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이 과정에서 우리는 Fast Follower의 유전자를 새기게 되었는지도 모릅니다. 굳이 세계 각국을 따라잡을 필요 없이 일본을 바짝 뒤쫒는 것만으로도 어느 정도의 지식수준은 보장되었다고 할 수 있었을 것입니다.
해방 이후에도 이런 구조는 크게 바뀌지 않았습니다. 특히 법조계에서는 1990년대까지만 해도 어떠한 법적 쟁점에 대해서 조사를 한다고 하면 "일본 판례"는 어떻게 보고 있는지를 빼놓을 수 없었습니다. 실제로 우리 민법은 일본 민법을 의용하다가 해방 이후 "전세권"과 같이 우리나라에 특유한 제도를 추가하고, 부동산등기를 물권 성립의 "대항요건"에서 "성립요건"으로 바꾸는 등의 사항을 반영하여 변경되었을 뿐 일본 민법을 골간으로 하고 있다는 것은 부정할 수 없습니다. 결국 일본에서 우리나라보다 오랜 세월동안 축적된 법률이론과 판례들은 그와 유사한 법률규정과 제도를 가지고 있는 우리나라에 적용하기가 무척 쉬웠던 것입니다. 그 결과 우리는 옳다고 하는 결론을 빠르게 답습하는 능력은 출중하지만, 무엇을 궁리하여 창의적으로 만들어내는 데에는 약간 부족한 모습을 가지게 된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드는 것입니다.
하지만 2000년대에 들어서면서 상황이 서서히 바뀌어 가고 있는 것 같습니다. 우리 판례의 집적도도 높아져서 더이상 우리나라에는 그에 관한 판례가 없는데 일본 판례는 있는 상황은 많이 없어져서 비교법적인 관점이 아닌 논문에서 일본 판례를 인용하는 것은 서서히 부자연스러워져가고 있습니다. 또한 일본 법제 또한 그 자신의 고유한 법제도가 아니라 독일법이나 프랑스법을 계수한 것이기 때문에 일본을 통하지 않고 독일이나 프랑스의 법서를 직접 연구하고 그 결과를 한국법과 비교하는 경우도 꽤 늘어나고 있는 것 같습니다. 그리고 인터넷을 통하여 세계가 좁아져가고 있고, 통상문제 등을 통하여 법제도 자체가 다른 미국법도 우리 법제도나 판례에 영향을 미치고 있습니다.
이러한 상황들이 모두 한국인이나 삼성을 더 이상 "Fast Follower"에 머물러있을 것이 아니라 "First Mover"로 거듭날 것을 촉구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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