흔히 스마트폰 시장에서 애플의 전략을 First Mover 전략이라 하고, 삼성의 전략을 Fast Follower 전략이라고 합니다. 애플은 이전에 없던 시장을 개척해서 고부가가치의 제품을 팔아 수익을 얻는 것을 전략으로 한다면, 삼성은 애플이 닦아 놓은 검증된 시장에서 애플과 같은 시장 선두의 제품의 퀄리티를 빨리 따라잡고 특유의 물량공세를 통하여 (1위를 제외한) 경쟁자를 제압하고 박리다매를 통해 수익을 얻는 것을 전략으로 하는 것입니다.
스마트폰이 처음 도입될 당시 애플이 하드웨어에 최적화된 소프트웨어와 앱마켓이라는 장점을 기반으로 스마트폰 시장을 만들어 나가기 시작할 때, 삼성은 노키아, 블랙베리, 소니에도 뒤쳐지는 후발사업자였습니다. 아이폰이 국내에 들어오기 전에 만든 "옴니아"는 아이폰이 들어온 이후 "옴레기"로 악명을 떨치며 사라져 갔던 기억이 생생합니다.
그러나 숱한 삽질에도 불구하고, 데스크탑시장에서 애플의 초반 우세를 뒤집은 IBM의 전략을 실행하기 위해서 구글 안드로이드 진영과 손잡은 삼성의 행보는 눈부시다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지난 4-5년간 삼성은 노키아, 블랙베리, 소니를 저멀리 앞서서 애플의 뒤를 바짝 쫒는 경쟁자라고 부를 만한 단 하나의 브랜드가 되었습니다.
삼성은 과연 어떻게 애플을 급속도로 따라잡을 수 있었을까 생각하다가 문득 우리나라의 특수성에 그 원인이 있는 건 아닐까 생각해 봅니다.
우리나라는 우리나라의 자력으로 근대화하여 서양문물을 수입한 것이 아닙니다. 쇄국정책이 끝나서 서양문물을 수입할 무렵 일제강점기가 도래하였고, 일본을 통해서 서양문물이 쏟아져 들어왔다고 하는 것이 서양문물 수입과정을 제대로 파악한 것이라고 할 것입니다. 그 과정에서 우리는 서양문물을 바로 우리의 언어로 번역하는 "수고"를 할 필요가 없었습니다. 한글이나 한국어와 유사한 구조를 가지고 있는 "일본어"만 한국어로 번역할 수 있다면 일본이 이미 시행착오를 거쳐 번역해 놓은 수많은 서양문물을 단시간 내에 흡수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이 과정에서 우리는 Fast Follower의 유전자를 새기게 되었는지도 모릅니다. 굳이 세계 각국을 따라잡을 필요 없이 일본을 바짝 뒤쫒는 것만으로도 어느 정도의 지식수준은 보장되었다고 할 수 있었을 것입니다.
해방 이후에도 이런 구조는 크게 바뀌지 않았습니다. 특히 법조계에서는 1990년대까지만 해도 어떠한 법적 쟁점에 대해서 조사를 한다고 하면 "일본 판례"는 어떻게 보고 있는지를 빼놓을 수 없었습니다. 실제로 우리 민법은 일본 민법을 의용하다가 해방 이후 "전세권"과 같이 우리나라에 특유한 제도를 추가하고, 부동산등기를 물권 성립의 "대항요건"에서 "성립요건"으로 바꾸는 등의 사항을 반영하여 변경되었을 뿐 일본 민법을 골간으로 하고 있다는 것은 부정할 수 없습니다. 결국 일본에서 우리나라보다 오랜 세월동안 축적된 법률이론과 판례들은 그와 유사한 법률규정과 제도를 가지고 있는 우리나라에 적용하기가 무척 쉬웠던 것입니다. 그 결과 우리는 옳다고 하는 결론을 빠르게 답습하는 능력은 출중하지만, 무엇을 궁리하여 창의적으로 만들어내는 데에는 약간 부족한 모습을 가지게 된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드는 것입니다.
하지만 2000년대에 들어서면서 상황이 서서히 바뀌어 가고 있는 것 같습니다. 우리 판례의 집적도도 높아져서 더이상 우리나라에는 그에 관한 판례가 없는데 일본 판례는 있는 상황은 많이 없어져서 비교법적인 관점이 아닌 논문에서 일본 판례를 인용하는 것은 서서히 부자연스러워져가고 있습니다. 또한 일본 법제 또한 그 자신의 고유한 법제도가 아니라 독일법이나 프랑스법을 계수한 것이기 때문에 일본을 통하지 않고 독일이나 프랑스의 법서를 직접 연구하고 그 결과를 한국법과 비교하는 경우도 꽤 늘어나고 있는 것 같습니다. 그리고 인터넷을 통하여 세계가 좁아져가고 있고, 통상문제 등을 통하여 법제도 자체가 다른 미국법도 우리 법제도나 판례에 영향을 미치고 있습니다.
이러한 상황들이 모두 한국인이나 삼성을 더 이상 "Fast Follower"에 머물러있을 것이 아니라 "First Mover"로 거듭날 것을 촉구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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