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년 3월 5일 수요일

소설가 고종석


제가 어렸을 때 아버님께서는 "한국일보"를 보셨습니다. 처음 신문을 보게 되었을 때 꼭 찾아보았던 것은 방송편성표에서 오후 5:30에 어떤 만화가 하는지였고, 그 다음에는 일요일 오전 8:00에 어떤 만화가 하는지였던 걸로 기억합니다. 특이했던 것은 신문 1면에 있는 기사는 왠지 재미가 없었고, 중간에 경제 관련된 내용도 왜 있는 건지 몰랐지만, 맨 마지막 2-4면을 장식하던 사회면은 제가 거의 매일 즐겨 보던 내용이었습니다. 사회면은 대부분 "어디에 도둑이 들었다", "자식이 부모를 때리는 패륜을 저질렀다", "연예인 누구가 마약을 했다더라"와 같은 센세이셔널한 내용이었기 때문이 아니었을까 생각되기도 합니다. 초등학교, 중학교때를 거치면서 제가 가장 좋아하는 과목이 "사회"였던 것은 신문 사회면의 영향이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듭니다.

최근 아버지께 왜 "조선일보"나 "한겨레"가 아닌 한국일보를 구독하셨느냐고 여쭤 보았는데 아버지께서는 두 신문은 보수와 진보를 거의 대변하는 극단적인 논조를 가지고 있기 때문에 중도적 성향의 신문을 보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생각하셨다고 합니다. 덕분에 한국일보를 구독하게 된 우리 집에서 신문을 접하게 된 저는 한국일보 기자이자 논설위원이었던 "고종석"이라는 이름을 꽤나 자주 보게 되었습니다.

기자나 논설위원의 이름을 굳이 기억하는 경우는 많지 않은데 "고종석"이라는 이름을 제가 기억한 데에는 제 성이 "고"이기 때문인 이유가 가장 클 것입니다. 물론 제가 기억하지 않더라도 이미 "고종석"은 명사 내지 셀리브리티 라는 범주에 포함되는 분이라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아마도 대한민국의 고씨 중에 대중적 인지도가 가장 큰 사람은 바로 "고종석"일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어쨌든 아직 명사의 반열에 들어서기 전 상태인 한국일보 기자이자 논설위원으로 활동하였던 "고종석"은 일반적인 기자와 달리 "저술"을 하기 시작합니다.

"고종석"의 저술활동에서 특이했던 점은 "소설"들을 발표하기 시작하였던 것인데, 최근에는 지금까지 발표하였던 단편들을 묶어서 "플루트의 골짜기"라는 소설집을 발간하였습니다. 소설들의 내용은 유년시절 전주에 갔었던 자신의 경험, 파리에 체류하였던 자신의 경험 등이 묻어나 있어서 반은 소설이고 반은 실제인 것 같다는 생각을 들게 하고, 그 가운데서 인생의 아름다움, 덧없음, 인생에 대한 저자의 깨달음을 자연스럽게 알 수 있게 합니다. 저는 작가 고종석의 첫 소설집인 "제망매"부터 사보았는데, 처음 접했을 때보다 "플루트의 골짜기"로 1994년부터 2008년까지의 작품을 한번에 모아놓은 소설집을 읽을 때 훨씬 더 재미있게 읽었습니다. 아마도 20대에 읽는 것과 30대에 읽는 것은 느낌을 또 다르게 하는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얼마 전부터 "고종석"은 트위터를 활용하는 몇 안되는 문인 중 하나로서 더욱 유명세를 타게 됩니다. "절필"을 하였다고 하시면서 트위터로 매일 자신의 일상을 세상사에 대한 커멘트를 날리고 있습니다(고종석 트위터 계정). 그 이전에는 자신의 생각을 블로그의 형태로 기록해 놓았던 것 같습니다(고종석 블로그).

얼마 전에 친한 지인께서 소개를 해주셔서 "고종석" 선생님을 뵌 적이 있습니다. 담배를 매우 좋아하시고 소탈하시며, 기자 출신 답게 사소한 것까지 기억을 하고 계신 것(거의 1년전 쯤에 제 학력 등을 간단히 알려드린 적이 있었는데 그걸 기억하고 계시더라구요)이 매우 인상적이었습니다.

플루트의 골짜기 를 읽으면서 제가 가장 인상적이었던 부분은 다음 부분입니다. 덧붙여 이걸 읽고 기 파랑 이라는 프랑스 언어학자가 있었는지, 이름이 기 파랑이 아니었다고 하더라도 비슷한 사람이 있었던 것은 아닌지 생각할 정도로 빨려들어갔었다는 것을 고백하지 않을 수 없네요.

"옳은 것에 대한 신념이 때로는 옳지 않은 결과를 빚을 수도 있다는 것을 나는 스페인에서 알았다. 그것이 권력이든 도덕률이든 신앙이든 이념이든 국가든, 커다란 것에 대한 맹목적 사랑은 인간을 얼마나 왜소하게 하는가?" - 고종석, 플루트의 골짜기(찬 기 파랑), 300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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