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년 3월 21일 금요일

후단 경합범

거의 10년만에 국선변호인으로 형사법정에 참석했었습니다. 약식명령을 선고받은 피고인 중 범죄사실을 인정하지 않고 다투는 경우에는 국가에서 국선변호인을 선임해 주기도 합니다. 국선변호인은 "너의 목소리가 들려"로 잘 알려진 국선전담변호사가 담당하기도 하지만, 일반 변호사들도 법원에 신청을 하여 국선변호인 목록에 들어가게 되면 목록 중에 있는 변호사가 국선변호인으로 선임되기도 합니다. 국선변호인과 달리 피고인 또는 피고인의 가족이 선임한 변호사는 "사선변호인"이라고 합니다.

어쨌든 10년만에 하는 국선변호라서 일주일 전에 법정참관도 하여 분위기도 익히고 하였지만 떨리긴 떨리더군요. 국선변호를 맡았던 사건 중 3건은 선고기일이 잡혔는데, 1건이 속행되었습니다. 판사님께서 관련사건 판결이 확정된 사실을 확인하시더니 "후단경합범"인데 관련 사건 판결 확정사실이 기록에 없다고 하시며 검사님께 관련 판결 확정과 관련한 내용 수사보고로 추가하라고 하시면서 한 기일을 더 잡으신 것입니다.

경합범은 판결이 확정되지 아니한 수개의 죄 또는 금고 이상의 형에 처한 판결이 확정된 죄와 그 판결이 확정되기 전에 범한 죄를 말합니다(형법 제37조). 한마디로 범죄를 여러개 저지른 사람을 어떻게 처벌해야 하는지를 결정하는 문제가 경합범의 문제라고 할 수 있습니다.

경합범은 동시적 경합범과 사후적 경합범으로 나뉘는데, 동시적 경합범은 판결이 확정되지 아니한 수개의 죄를 말합니다. 형법 제37조 전단에 규정되어 있는 경합범이라서 "전단 경합범"이라고도 합니다. 동시적 경합범의 경우, 1) 가장 중한 죄에 정한 형이 사형, 무기징역이나 무기금고인 경우에는 가장 중한 죄에 정한 형으로 처벌하고, 2) 가장 중한 죄에 정한 형이 사형, 무기징역이나 무기금고가 아닌 같은 종류의 죄인 경우에는 가장 중한 죄에 정한 장기 또는 가액의 2분의 1까지 가중하되, 각 죄에 정한 형의 장기 또는 다액을 합산한 형기 또는 액수를 초과할 수 없고, 3) 각 죄에 정한 형이 사형, 무기징역이나 무기금고가 아닌 다른 종류의 죄인 경우에는 병과합니다.

금고 이상의 형에 처한 판결이 확정된 죄와 그 판결확정 전에 범한 죄를 사후적 경합범이라고 하는데, 형법 제37조 후단에 규정되어 있는 경합범이라서 "후단 경합범"이라고 합니다. 사후적 경합범은 경합범 중 판결을 받지 아니한 죄가 있는 때로, 그 죄와 판결이 확정된 죄를 동시에 판결할 경우와 형평을 고려하여 그 죄에 대하여 형을 선고하되, 이 경우 그 형을 감경 또는 면제할 수 있습니다(형법 제39조). 원래 확정판결 전에 범한 죄가 법원에 알려진 경우에는 당연히 경합범의 예에 의하여 처벌되었을 것이므로 사후적 경합범이 동시적 경합범에 비하여 무겁게 처벌되는 불합리를 피하기 위한 것입니다.

사후적 경합범의 처분에 관하여는 종래 판결을 받지 아니한 죄에 대하여만 형을 선고하되 그 형의 집행은 (동시적) 경합범의 예에 의하도록 하다가, 2005. 7. 29. 시행된 개정법률에 의하여 판결을 받지 아니한 죄에 대하여만 형을 정하지만 동시적 경합범의 경우에 비하여 불리한 양형을 금지하는 방법으로 변경되었습니다.

참고: 이재상, 형법총론, 박영사(2008)

우리 피고인은 이번 재판 이전에 2개의 죄에 대해서 징역형이 확정되었는데, 이번 재판은 벌금형에 대한 정식재판청구 사건이라서 판사님은 약식명령이 나온 금액보다  감형을 하지 않아도 문제가 되지는 않습니다. 다만, 사후적 경합범이라는 사실을 형량에 고려하지 않게 되면 상급심에서 파기사유가 되므로 반드시 이전의 판결확정사실이 판결문에 들어가야 합니다. 어쨌든 판사님께서 수차례에 걸친 피고인의 탄원서를 보시고 무죄를 다투면 어쩌나 걱정을 하셨던 모양인데, 피고인이 번의하여 범죄사실을 인정하자 감형을 적극 고려하실 것으로 예상되어 기분은 좋았던 재판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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