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년 3월 22일 토요일

이부진 사장의 선행 관련 법조인의 반응

며칠 전 신라호텔의 이부진 사장이 호텔 문으로 돌진한 택시기사의 손해배상책임을 탕감해 주었다는 소식이 전해졌습니다.

이부진 사장, 수억대 호텔문 파손한 택시기사에게…‘훈훈’ 동아일보, 2014. 3. 19.자 기사

일반인이나 기자가 보기엔 택시기사의 딱한 사정을 알아보고 빚을 탕감해 준 것이어서 노블리스 오블리제의 실천이다, 사회적인 미담이다, 삼성의 이미지가 좋아질 것이다 등등의 관점에서 접근하고 있는 것으로 보입니다.

그러나 제 주위의 법조인들의 반응을 살펴보니 직업들이 직업인지라 이부진 사장의 행위의 법적 문제점에 대해서 지적하는 분들이 계셨습니다. 그도 그럴 것이 4억원이라는 돈이 (삼성가의 입장에서는 별것 아닌 돈일지 몰라도) 어느 정도 규모가 되는 회사에서도 처분하기에는 꽤 큰 돈입니다. 그런데 이부진 사장이 자신의 결정으로 회사가 가지고 있는 손해배상채권을 포기해 버린 셈이니 그로 인하여 회사가 손해를 입게 되는 것이므로, 이것이 업무상 배임죄에 해당하는 것이 아닌가 하는 의문이 들게 되는 것입니다.

일반인에게는 신라호텔은 이부진 사장 것인데 4억원 정도 포기하는 게 어때서? 라는 생각이 자연스럽게 들 수 있습니다. 하지만 신라호텔은 호텔신라 라는 상장사가 소유하는 것으로, 신라호텔의 주인은 호텔신라의 주주들이고(물론 삼성가가 대주주일 것이나 혼자 소유하는 회사가 아닙니다), 이부진 사장은 대표이사로서 회사를 대표하는 경영진일 뿐입니다. 따라서 회사의 재산인 손해배상채권을 이부진 사장이 자의적으로 포기하는 것이 문제가 될 소지가 있는 것입니다.

물론 실제로 이부진 사장의 행위가 업무상 배임죄에 해당한다고 판단될 가능성은 매우 낮아 보입니다. 우선, 택시기사에 대한 손해배상채권을 포기하지 않는다고 한들, 택시기사는 80세의 고령에 가진 재산이 거의 없으므로 집행해서 회수할 수 있는 금액은 소액에 그칠 것입니다. 그렇게 되면 결국 회사로서는 채권의 행사를 포기할 수 밖에 없게 됩니다. 어차피 시간이 지나면 결손처리하게 될 채권이라면 굳이 보유할 필요없이 포기하되, 다만 포기한 사실을 이용하여 회사의 이미지를 개선하는 것이 더 이익이라고 판단할 수 있을 것입니다. 회사의 이미지 개선은 이미지 광고에 수십억원을 때려부어도 쉽지 않은 일이므로, 수억원의 손해배상채권포기가 그 대가라면 오히려 싸게 먹힌 것이라고 할 수 있을테니까요. 이렇게 회사의 경영진이 일응 회사에 손해가 되는 것으로 보이는 행위를 결의하거나 실행하는 경우에, 여러가지 자료를 가지고 회사에 이익이 되는 것로 판단한 경우에는 그 결과가 회사에 손해가 된다고 하여도 경영진에게 민형사상 책임을 묻지 않습니다. 이를 "경영판단"이라고 합니다. 이건에서는 경영판단에 가기 전에, 주주들이 회사에 손해가 발생했다는 이유로 이부진 사장을 형사고소할 가능성은 별로 없으므로 실제로 형사문제화되지도 않을 것입니다.

법조인들이 업무상 배임에 민감한 것은 이러한 채권포기가 신라호텔과 같은 회사가 아니라 듣보잡 회사에서 일어난 경우에는 경영진이 회사의 자금을 빼돌리는 방편으로 사용되는 경우가 허다하여, 이를 업무상 배임죄로 처벌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입니다. 심지어 몇년 전 KBS의 정연주 사장의 경우에는 KBS가 법인세 환급소송 1심에서 승소판결을 받았는데, 2심에서 법원의 조정으로 1심 승소판결보다 적은 금액을 환급받은 일이 있었습니다. 검찰은  정연주 사장의 지시로  KBS가 1심보다 불리하게 조정에 응하여 법인세 환급금을 덜 지급받은 것은 회사에 손해를 입힌 것이라는 이유로  정연주 사장을 업무상 배임죄로 기소하고, 법원은 이는 경영판단이므로 업무상 배임에 해당하지 않는다고  판단(정연주 전 사장, '국가' 'KBS' 상대로 손배소)한 적이 있었던 것을 보면 업무상 배임죄 여부의 판단이 쉬운 것만은 아니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이부진 사장의 판단이 이렇게 이슈화된 것은 삼성의 반쯤은 의도된 언론플레이로 인한 것이고 성공한 것으로 보입니다. 이왕 발생한 좋지 않은 사건을 어떤 식으로든 좋은 쪽으로 반전시킬만한 능력을 갖춘 것도 매우 부럽네요. 재벌그룹의 선의나 미담, 기부도 좋은 사회를 만드는 데 좋은 밑거름이 될 수 있지만, 그에 앞서 그러한 선의나 미담, 기부가 없이도 유지될 수 있는 사회안전망과 제도를 갖추는 것에 대해서도 언론이나 국민들의 관심이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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