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사회 전체적으로 너무나 힘든 분위기다 보니, 어떠한 사건에 대한 반응이 너무나 극단적으로 치닫고 있지 않은가 싶습니다. 오늘자 경향신문의 사설([사설]인터파크 회원정보 대량유출, 보안 실패 기업 문 닫게 해야, 경향신문 2016. 7. 27.자 사설)은 인터파크 개인정보유출사건에 대한 해결책을 제시하고 있는데, 그 해결책이라는 것이 손해배상을 충실히 하도록 해야 한다에서 그치지 않고 (소비자운동으로) 해당 기업을 "문 닫게 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사람으로 말하자면 직장을 잃게 해야 한다, 밥줄을 끊어야 한다, 해고/해임해야 한다는 방안이 그것입니다. 또 오늘자 기사([속보]평검사의 자살... 부장검사의 폭언 있었다. 대검찰청 '해임'요청, 2016. 7. 27.자 경향신문 기사)로 자신의 휘하에 있는 검사가 업무상 스트레스 등으로 자살한 남부지검의 부장검사에게 폭언이 있었다는 이유 등으로 대검찰청에서 해임요청을 했다는 내용이 보도되었습니다. 비근한 예로 교육부 관료인 나향욱씨의 '개돼지'발언이 보도된 이후, 교육부에서는 나향욱씨를 파면하기에 이르렀습니다(관련기사 '막말 파문' 나향욱 파면확정... 교육부는 내부 공직기강 단속돌입, 서울신문 2016. 7. 25.자). 넥슨의 게임에 참여했던 한 성우는 메갈리아(일베를 미러링하는 단체)를 후원하는 취지의 티셔츠를 SNS에 인증했던 것이 밝혀져 넥슨으로부터 계약종료를 당한 것이 밝혀졌고(관련기사 넥슨, '메갈리아'후원 티셔츠 입은 성우 퇴출 논란, 한겨레신문 2016. 7. 19.자 기사), 그로 인하여 넷상에서는 갑론을박이 아직 한창인 것으로 보입니다.
개인적으로 이러한 경향이 바람직해보이지 않는데, 회사의 문을 닫는다거나, 해고, 해임, 파면, 고용계약 종료 등의 조치는 그 당사자를 사회적으로 매장시키는 정도의 극단적인 처방이기 때문입니다. 물론 물의를 일으킨 사람/단체에게 어느 정도의 잘못이 있는지 따져볼 필요가 있고, 그에 따른 책임을 지게 하는 것은 당연하지만, 책임지는 방법에도 여러가지 단계와 방법을 생각할 수 있을 것인데, 하나같이 당사자의 밥줄을 끊는 방안만이 해결책으로 제시된다면, 그 사회는 실수를 하지 않는 것을 최우선으로 생각하는 공포스런 사회가 되어버리지 않을까 하는 우려도 드는 것이 솔직한 심정입니다. 물론 기업이 개인정보를 확실히 관리하지 못한 것이 중대한 과실이고, 부장검사가 휘하 검사에게 폭언을 한 것도 잘못된 행동이고, 나향욱씨가 '개돼지'와 같은 발언을 한 것이 사석에서 한 것이긴 하지만 국민의 공분을 불러일으킬만큼 기분나쁜 행동입니다(메갈리아 티셔츠를 인증한 것은 앞의 세가지 예와 동일시할만한 잘못인지에 대해서 개인적으로는 이것은 개인의 신조를 표명한 것이기 때문에 불이익을 당하는 것이 바람직하지 않다는 입장인데, 설사 잘못이라 해도 그로 인한 넥슨의 처사는 너무나 극단적이라는 점에서는 앞의 사례와 궤를 같이 합니다). 하지만 그것만으로 개인/단체를 사회적으로 매장하는 정도의 중한 조치가 취해져야 한다고 서슴없이 말할 수 있는 것인지 의문을 가져보아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어떠한 기업이 원전을 운영하다가 운영상 잘못으로 인해 인근 주민들이 다수 사망하는 사고가 발생했다든지, 공직자로서 수백억에 달하는 뇌물을 받고 이를 자신의 축재의 수단으로 삼았다던지, 게임회사의 게임개발에 참여하면서 게임의 버그 등을 발견하고 고치는 것을 업으로 하는 사람이, 게임 출시 후 1달간 수많은 버그를 고치지 않아 게임사용자로부터 너무나 많은 클레임을 받았다던지 등 이러한 것들이 바로 회사의 문을 닫는다거나 공직자나 게임에 참여한 사람을 해고, 해임, 파면하는데 상당한 사유들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만큼 사회나 국가나 회사에 실질적인 손해와 해악을 끼친 것이라고 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냉정히 생각할 때 "개인정보 유출"이, "휘하 검사에 대한 폭언"이, (듣는 개돼지 입장에서는 매우 기분이 나쁘지만 소위) "막말"이, "일정한 의미를 지닌 문구가 인쇄된 티셔츠를 SNS에 인증하는 것"이 과연 회사나 개인의 사회적/경제적 파멸을 가져올 처분을 받을 만한 상당성이 있는 것일까요. 이러한 상당성은 물론 우리 사회를 구성하는 구성원들의 대체적인 찬성을 받는 경우 획득되는 것이라고 할 것이지만, 적어도 건강한 사회라면 잘못의 정도에 합당한 책임을 물을 것이지, 극단적인 해결책만을 고집하지는 않을 것이라는 것이 제 생각입니다. 그리고 그것이 헌법상 과잉금지 원칙 내지 비례원칙이 규정되어 있는 취지가 아닐까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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