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년 4월 17일 수요일
선고유예 받기의 어려움
작년 여름엔가 갑자기 토렌트로 받은 파일이 문제가 있다며 집에 압수수색 들어와서 음란동영상을 가져가고 나서는 경찰에서 조사받으러 나오라는데 어떻게 해야 하냐는 질문과 함께 시작된 사건이 있었습니다.
야동이 판치는 시대, 인터넷으로 음란동영상을 접하는 게 너무나도 쉬워진 시대에 음란동영상을 가지고 있는 것만으로 문제가 될 수 있느냐고 생각할 수 있지만, 음란동영상 중에서도 특별취급 받는 음란동영상이 있습니다. 아동청소년의 성보호에 관한 법률상 "아동청소년 이용 음란물"의 경우에는 이를 소지하는 것만으로도 처벌이 가능합니다. 사실 아동청소년 이용 음란물이 문제가 되는 경우는 다른 범죄로 핸드폰 압수되었다가 뒤져보니 나오는 경우가 대부분인데, 이 경우에는 대상 동영상이 뉴스란을 한동안 시끄럽게 했던 "기숙사몰카"였기 때문이었습니다. 경기남부경찰청에서 당해 동영상의 토렌트주소를 하나하나 확인해서 토렌트를 통해 다운로드받은 사람의 주소지를 확인하고 전국적으로 압수수색을 해서 소지하고 있었던 사람들을 찾아냈던 것입니다.
경찰조사에 입회하고, 검찰에 기소의견으로 넘어가서, 검찰에 피고인의 사정을 살명하고 선도조건부 기소유예 정도의 처분을 요청하는 의견서를 제출했지만, 검사님은 자신에게 재량이 없다며 약식기소를 하였습니다. 검사가 이러한 종류의 사건에 기소유예를 하는 경우는 피해자와 합의가 필수적인데, 이 건은 몰카 피해자들을 찾아가 합의를 하는 것이 불가능(알아내어 피해자를 찾는 것으로 피해자에게 또 다른 피해를 가하게 되기 때문입니다)한 사건인데도, 피해자와의 합의가 없으니 기소유예는 안된다는 것이었습니다.
약식기소가 되자, 의뢰인은 벌금형의 약식명령이면 받아들여야 할지 고민하고 있었는데, 법원에서 약식명령 담당 판사님이 이 사건을 어떻게 본 것인지 직권으로 공판회부하여 재판을 받게 되었습니다.
의뢰인에게는 사건에 대한 반성 및 피해자에 대한 합의를 대체하는 의미로 여성단체에 대한 일시/정기 기부, 온오프라인 성폭력 및 양성평등 강의 수강을 성실히 해서 그 자료를 제출하자고 하였더니, 의뢰인은 기소 후 1심 첫 기일까지 2-3개월의 기간동안 수십개의 강의를 들었고, 전 강의 수강 영수증을 받은 다음 각 강의에 대해서 독후감도 써오라고 했습니다. 그래서 기부영수증, 강의수강증, 강의자료, 독후감, 주변인들의 탄원서를 묶어 참고자료를 제출하고, 기일에 출석해서 피고인에게 선고유예의 선처를 해달라고 요청드렸죠.
그리고 1달 후 선고기일에 정말 "벌금 100만원의 선고유예" 판결을 받았습니다. 생각대로 안되는게 재판이다보니, 최선을 다하지만 결과는 장담할 수 없다고만 말씀드리는데, 이번에는 그래도 의뢰인의 진심을 판사님께 전달할 수 있어서 다행이었던 것 같습니다.
오늘 판결문을 받아보았는데, 아청법은 정말 무서운 법이더군요. 선고유예가 아니었다면, 기본적으로 아청법위반은 다음과 같은 부수처분을 같이 받게 됩니다.
- 이수명령(아청법 제21조 제2항)
- 신상정보의 등록 및 제출의무(성폭력범죄의 처벌에 관한 특례법 제42조 제1항)
- 공개명령 및 고지명령(아청법 제49조 제1항 제1호, 제50조 제1항 제1호)
- 취업제한명령(아청법 제56조 제1항)
다행히 선고유예를 받은 경우 이수명령 면제가 가능하고, 소지죄의 경우에는 신상정보 등록이나 공개, 취업제한의 대상이 아니기 때문에 의뢰인은 이러한 부수처분 없이 선고유예기간이 지나게 되면 형의 선고를 받지 않은 것과 같은 상태로 되돌아갈 수 있게 되었습니다.
거의 1년 동안 노심초사하던 의뢰인만큼은 아니지만, 좋은 결과를 얻을 수 있어서 다행이었습니다. 다른 사람 사건 볼 때는 "당연히 선고유예할 만한 사건 아니야" 하던 사건이 제 사건이 되어보니까 꼭 그렇지 않았습니다. 세상에 쉬운 사건은 없는 것 같습니다. 너그러운 판단을 내려주신 재판부에게 감사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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