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년 5월 1일 금요일

형사변호사의 보람


근로자의 날을 며칠 앞둔 수요일 퇴근을 준비할 무렵 긴급체포되어 구속영장이 다음 날 청구될 예정인 피의자를 변호할 수 있겠느냐는 의뢰를 받게 되었습니다. 다음날 다른 건으로 접견을 갈 예정이었지만 급한 것은 아니었기 때문에 그 다음날로 접견을 미루면 되겠다 싶어(덕분에 근로자가 아닌 개인사업자라 근로자의 날에 쉬어야 할 이유가 있는 것은 아니지만 많은 근로자들의 휴일에 동참하고자 하였던 제 계획은 물거품이 되고 근로자의 날인 오늘 접견 후 사무실에 출근하여 이 글을 쓰고 있기도 합니다), 할 수 있겠다고 의뢰를 수락하였습니다.

사건은 자산운용사 펀드매니저와 증권회사 브로커 사이의 채권거래시 관행이었던 "파킹"거래를 문제삼은 것이었는데, 이미 금융감독원이 작년부터 조사하여 징계까지 마친 사안이었던 터라 인터넷을 검색하여 관련 보도내용 등을 검색하고, 담당 검사실에 전화해서 변호인 선임계를 제출하겠다고 하고 물어보니, 영장은 밤 9시 반에 청구될 예정이라고 하더군요. 이미 직원분도 퇴근한 상황이라 법원에 갈 사람은 저 밖에 없어서 영장이 청구된 걸 확인하고 남부지방법원 당직실에 가서 구속영장신청서를 받아 사무실로 들어오니 11시가 넘었습니다. 사무실로 들어오는 길에 금융거래 전문가분께 전화를 걸어 "파킹"이란 무엇인지에 대해서 열심히 설명을 듣고 나니 약간 감이 잡히더군요.

사무실에 앉아서 12장짜리 구속영장신청서의 범죄사실과 구속사유를 보고, 의견서를 쓰기 시작했는데 다 쓰고 보니 새벽 4시반.. 저녁도 생각 없어 걸렀던 터라 집에 들어가기 전에 맥도날드에 들러 저녁겸 아침으로 맥모닝세트를 먹고 집에 들어가니 6시.. 어차피 7시에 나가야 10시 반 시작인 영장실질심사 시간에 맞출 수 있기 때문에 침대에 누워 웹서핑을 하다가 간단히 세면후 사무실로 나왔습니다.

8시 반경 사무실에 나와 형사전문이신 동료변호사님께 사안에 대해 말씀을 나누면서(이 변호사님께서는 소위 "스캘퍼 사건"을 맡으셔서 자본시장법 부분 무죄를 받아내신 베테랑 변호사님이시죠 ㅎㅎㅎ) 생각도 정리하고 의견서도 약간 수정해서 법원에 10시가 좀 넘어 도착했습니다.

의뢰인이신 피의자의 배우자분과 부모님을 뵙고, 영장실질심사시간 전에 피의자와 접견을 시작했습니다. 다행히 영장실질심사시간이 앞 사건 등으로 1시간 정도 미뤄져서 피의자로부터 수사받은 내용에 대해서 듣고, 변론방향 등에 대해 설명하고 나서 영장실질심사에 들어갔습니다.

영장실질심사는 검사의 구속영장청구가 있는 경우 판사가 실제로 구속대상 피의자를 대면하는 기회를 가진 다음 구속여부를 결정하기 위해서 피의자를 심문하는 절차입니다.  먼저 판사님께서 피의자에게 사건과 관련한 사항을 질문하고, 검사-변호인에게 의견을 진술할 기회를 부여합니다.

판사님이 몇가지에 대해 질문을 마치신 다음 수사검사에게 의견진술을 요청하자 수사검사가 별도로 의견서를 제출하면서 의견을 진술하더군요. 마지막으로 변호인에게 의견진술기회가 부여되어 밤새 작성한 의견서를 제출하면서 요지를 진술했습니다. 피의자의 최후 진술이 끝나고 나니 12시가 좀 넘은 시각이 되었습니다.

피의자는 영장발부여부가 결정될 때까지 원래 경찰서 유치장에 인치되어 있는 것이 일반적인데, 이 사건은 검사 인지사건이라서 그런지 구치소에 인치되어 있었습니다. 영장발부 여부는 당일 오후에나 결정나게 되니 가족분들께 집에 가서 기다리라 말씀드리고, 결과를 알게 되면 알려드리겠다고 말씀드린 후 사무실로 복귀하였는데 업무시간 종료시까지 결과가 나오지 않았습니다.

직원분이 업무시간 후에 검찰청에 전화하니 "영장기각"이라는 결과가 나왔더군요. 법원이나 검찰에서는 영장기각 결정을 달리 피의자의 가족이나 변호인에게 통지하지 않는 모양이라(구속되는 경우에는 알려주는데 석방소식은 특별히 알려줘야 한다는 규정같은 건 없는 것 같습니다. 하긴 석방된 피의자 본인이 알고 사족한테 바로 연락할테니 굳이 가족이나 변호인에게 알리지 않는 것이겠죠), 변호인측에서 전화로 수시로 확인해야 했습니다. 어직 석방된 피의자의 연락을 받지 못한 의뢰인께 기쁜 소식을 알려드리고 나니 긴 하루가 끝났습니다.

개업이래 거의 3년만에 처음 밤새서 근무한 것이 억울하였는데(ㅎㅎㅎ 개업변호사의 웰빙라이프가 꿈이었던 것입니다) 보람이 있어서 다행이었습니다.  영장기각 소식을 의뢰인에게 알렸을 때 제게 연신 고맙다고 말씀하시는데 갑자기 남편분이 체포되어 가셔서 많이 불안해 하셨던 걸 알고 있던 터라 저도 너무 기뻤습니다. 형사변호사의 가장 큰 보람이 이런 데에 있는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만 이틀만에 하나의 사건이 시작되어 종결되기 때문에 보수가 짧은 시간에 지급되는 것은 덤이라고 하겠네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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