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년 2월 27일 목요일

조상땅찾기운동

우리나라는 1912년 일제가 도입한 등기제도를 시작으로 근대적 토지소유공시제도를 가지게 되었습니다. 1912년 3월 일제는 조선민사령을 공포하고, 동시에 조선부동산등기령을 공포합니다. 그러나 당시에는 지적이나 대장제도가 없었으므로 일제는 1912년 8월 토지조사령을 공포하고 전국적으로 전, 답, 대지 및 일부의 임야에 관한 토지조사사업을 실시합니다. 그래서 사실상 우리나라에서 등기제도가 실시된 시기는 1918년 7월 1일부터입니다. 또한 임야 중 나머지에 대하여는 1918년 5월 조선임야조사령이 공포되고 1935년에 이르러 임야에 관한 조사가 완결됩니다.


그런데 1950년 625 전쟁으로 전국적으로 등기부가 멸실된 곳도 있었고 지적공부도 대부분 멸실되고 말았습니다. 그 후 대법원은 등기부가 멸실된 지역에 대하여 1952년부터 한시적으로 멸실회복등기를 할 수 있도록 하였으나 증거서류의 멸실 또는 분실, 부동산등기제도에 대한 이해부족 등으로 완전히 복구되지는 않았습니다. 또한 세무당국도 1952년부터 과세목적을 위한 지적복구의 필요성 때문에 토지조사부를 설치하여 토지조사서, 임야조사서를 근거로 하여 지적을 직권으로 복구하였으나 법적인 근거 없이 과세목적의 행정편의상 토지의 표시에 관한 사항 외에 소유자에 관한 사항까지 복구하여 많은 문제점을 남겼습니다. 이에 대법원은 1975. 12. 31. 지적법 개정 전에 복구된 토지대장은 아무런 법적 근거 없이 과세의 편의상 임의로 복구한 것에 불과하여, 소유자란에 이름이 기재되어 있다 하더라도 그 기재에 권리추정력을 인정할 수 없다고 합니다(대법원 1995. 12. 26. 선고 95다28601, 28618 판결).


지적공부의 소관청이 세무당국에서 일반행정청으로 이관된 후 1975년 12월 31일 지적법 및 동법시행령을 전면 개정하여 소유자에 관한 사항은 부동산등기부나 확정판결이 아니고서는 복구등록을 할 수 없도록 하고, 세무당국에서 소유자란을 복구한 토지도 소유자 미복구토지로 처리하였습니다.


그런데 과거 일제시대 이후 부동산을 매입 또는 상속하여 오랜기간 실소유자로 있었으나 부동산등기에 대한 인식부족으로 매입당시 소유권이전등기를 하지 아니하고, 그동안 소유자가 사망하였거나 그 직계자손들이 다수이고 전국에 산재하여 있음으로 인하여 정상적인 절차로는 이전등기를 하기 어려운 경우가 많아서 이를 구제하기 위하여 간편한 절차로서 실질적인 소유자에게 소유권의 이전등기를 할 수 있도록 하는 부동산등기 특별조치법을 수차례에 걸쳐 제정하게 됩니다.


그래서 일제강점기에 토지조사령, 조선임야조사령 등에 의하여 토지(임야)를 사정받았음을 이유로 (사정인의 후손이) 하여, 국가를 상대로 소유권확인이나, 소유권보존등기의 말소를 구하거나, 일반 개인을 상대로 소유권보존등기의 말소 및 전득자들의 소유권이전등기의 말소를 구하는 사건들이 종종 발생합니다. 이를 '토지사정 관련사건'이라고 하고 근래에 들어서는 조상땅찾기운동이라는 명목으로 정부기관에서 일반인에게 도움을 주려고 노력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사건들은 후손들이 자신의 선조가 땅을 가지고 있었던 사실을 잊어버리고 있다가 뒤늦게 알고 보니 그 땅이 국가 또는 타인의 소유가 되어 있다는 것을 발견하고 소송을 제기함으로써 문제가 되는 것이 일반적입니다.


토지사정 관련사건에서는 원고가 토지조사부에 기재된 토지와 현재 토지의 동일성, 토지조사부에 기재된 사정명의인과 자신의 선조의 동일성, 자신의 선조와 후손들의 상속관계를 입증하면, 피고는 사정명의인의 매매 등 처분, 특별조치법에 의한 보존등기(이 경우 원고는 다시 특별조치법상 신청인의 확인서와 보증인의 보증서가 허위임을 입증해야 합니다), 점유취득시효, 구 농지개혁법에 따른 분배농지 확정절차 등으로 인하여 소유권이 적법하게 이전되었음을 주장하여 다투게 됩니다.


참고 :  배병일, 각종 부동산등기 특별조치법상 보증서 및 확인서의 허위성, 영남법학(1997)
이준희, 토지(임야)사정 관련사건에 관한 몇 가지 쟁점에 대하여, 부동산소송, 의정부지방법원, 도서출판 유로(2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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