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형남, 법정에서 못다한 이야기, 휴머니스트(2021)
박형남 서울고등법원 부장판사님은 사법연수원 당시 지도교수님이셨습니다. 책에 나오는 "민사재판에서 사람을 흥부로 보는가, 놀부로 보는가?"라고 묻곤 하셨을 때, 놀부라고 답하면서 얼굴을 붉힌 마음씨 착한 제자들 후보군 중에 제가 있을지도 모릅니다(그런데 그런 질문을 받은 기억이 없는 것은 너무 오래 되었기 때문일까요...). 2018년 [책소개] 재판으로 본 세계사 에 이어 일반 시민의 눈높이에서 판사라는 직업과 그와 관련된 오해를 풀기 위한 의미있는 시도라고 생각합니다. 판사라는 직업을 선망하거나 더 알고 싶은 분들에게 일독을 추천하고 싶네요. 2022년 국립중앙도서관 사서추천도서 로 선정될 만큼 술술 읽히는 분량이 매력적입니다.
다음은 제가 인상깊게 보았던 구절들입니다.
-법조문상 처벌대상은 넓지만 실제 처벌은 선별적으로 집행되면서, 시민의 준법정신은 약화되고 법의 실효성은 의심받으며 범죄 예방과 억제기능은 사라진다(27면).
- 법리적으로 무죄를 선고하면 '국가형벌권을 동원할 사안이 아님'을 선언한 것이지만, 사람들은 '아무런 문제가 없음'으로 받아들이고 문제 해결을 위한 추가적인 노력을 하지 않는다(27면).
- 법조계에서 흔히 하는 말대로, 사실관계에 대해서는 사건 당사자가 제일 많이 알고, 그 다음은 변호사이며, 가장 사건을 모르는 판사가 결론을 내린다(42면).
- 따라서 실체적 진실은 적법절차라는 틀 속에서 검사와 피고인이 주장하고 반박하며 판사가 판단하는 과정에서, 진실에 가깝게 재구성될 뿐이라고 생각하는 것이 온당하다(43면).
-형사재판에서 유무죄는 판사에게 익숙한 사실인정과 법리의 영역이지만, 양형은 판사가 잘 알지 못하거나 꺼리는 감정과 윤리의 영역이다(54면).
- 법리와 판례를 판사의 고유영역이라며 도외시하는 태도는 사법에 대한 민주적 통제를 포기한 것이다(86-87면).
- 다시 말해 법치주의는 권력자가 시민에게 법을 지키라고 가르치는 것이 아니라, 주권자인 시민이 권력자에게 법에 따라 권력을 행사하라고 요구하는 것이다(147면).
- 법률가는분쟁을 만나면 그에 맞는 공구를 꺼내 처리한다. 이런 점에서 요건사실은 법률가까리 통용되는 프로토콜(protocol)'이고, 법률가와 시민 사이에 가로놓은 진입장벽이다(166면).
- 전관을 선임했다고 해서 이길 사건이 지고 질 사건이 이기지는 않지만, 재판받는 사람이 절차적으로 전관이 배려받는다고 느끼는 경우는 있을 것이다(192면).
- 드라마를 보면 판사가 사무실에서 검사나 변호사와 전화하거나 함께 식사하며 유무죄나 형량에 대해 이야기하는데 그런 일은 현실에서 결코 없다(197면).
- 변호사는 의뢰인의 이익을 위해서라면 언제라도 생각과 주장을 바꿀 수 있고 바뀌어야 하는 '카멜레온'이다(198-199면).
- 개인과 집단이 나름대로 가치를 추구하는 것은 바람직하지만, 사회 전체적으로 가치를 일원화하고 법으로 굳혀버리는 모습은 민주주의의 다양성에 반합니다(220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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