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년 7월 19일 금요일
당연한 것은 없다
올초에 맡았던, 어떻게 보면 흔한 임대차보증금반환청구소송의 항소심에서 피고를 대리해서 승소했습니다. 보증금가액이 크기는 했지만, 1심에서도 승소한 사건이었고, 임차인이었던 원고가 떼를 쓰는 수준의 사건이었기 때문에 큰 어려움이 없이 '당연히' 이길 사건이라고 생각했었습니다.
그런데... 세상사 모르는 일이라고 상대방이 선임한 소송대리인이 '김앤장'에다가 임대차기간이 만료되어가는 것을 이용해서 기일을 가능한 한 최대한 연장하고, 서면을 제출한 것을 보니, 세상에 당연한 것은 없는 것이더군요.
어처구니 없는 사실관계와 그에 기반한 주장을 하나하나 근거를 대어서 반박하고, 공제주장할 때에는 숫자 틀리지 않게 표를 만들어서 계산-검산 쉽게 만들어 서면을 제출하고, 상대방 마지막 준비서면에 대한 참고서면까지 제출하였지만, 그래도 선고기일에 일말의 불안함도 없었다고 말하기는 어렵습니다.
결국 처음 생각한 것과 같은-추가된 예비적 청구에 대한 기각과 더불어- 결론으로 항소심 판결이 선고되었습니다. 당연하다고 생각되는 것을 방어하는 데에도 어느 한군데 부족할까 노심초사하시는 의뢰인을 보면서 배우는 점도 많은 소송이었습니다.
사자가 토끼 한마리를 잡을 때에도 최선을 다하듯이, 어떤 소송이든 우리가 이기는 것이 "당연한 것"이 아닐 수 있으므로, 겸손하게 판단을 내리는 재판관을 최선을 다해 설득하는 것. 그것이 변호사의 임무라는 것을 느낄 수 있었던 사건이었습니다.
2014년 5월 23일 금요일
로펌의 파트너 변호사는 근로자인가
*사진은 드라마에서 변호사로 출연중인 배우 김명민으로 아래 내용과 직접 관련은 없습니다.
로펌, 법무법인은 변호사들이 모여서 만든 회사입니다. 로펌은 주식회사의 형태로 만들 수 없고, 변호사인 조합원들의 조합과 유사한 형태로 만들게 되는데, 로펌의 지분을 갖는 변호사를 통상 "파트너", "파트너 변호사"라고 합니다. 그리고 이 파트너에 대응하여 로펌으로부터 급여를 받고, 파트너 변호사의 지시를 받아 업무를 수행하는 변호사는 "어쏘시에이트", "어쏘 변호사" 또는 "고용변호사"라고 합니다. 대형 로펌의 경우에는 파트너들을 세분화하여 "에쿼티 파트너(Equity Partner)" 또는 "지분파트너"와 "인컴 파트너(Income Partner)"로 나누기도 합니다. 지분파트너는 회사로부터 배당을 받고, 인컴 파트너는 급여를 받는 점이 가장 큰 차이점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인컴 파트너는 특별이 지분이 없다는 점에서 지분파트너와 다르고, 파트너로서 사건수임과 업무지시 측면에서 관리감독을 받지 않는 점에서 고용변호사와 다르게 됩니다. 쉽게 말해 지분파트너와 고용변호사의 중간정도의 지위를 갖는 변호사라고 볼 수 있겠습니다.
변호사는 연차가 낮은 고용변호사라고 하더라도 대외적으로 의뢰인을 단독으로 대리하여 업무를 처리하며, 업무시간의 사용에 큰 재량을 가지고 있어서, 과연 로펌에 고용된 변호사라고 하더라도 근로기준법상 보호를 받는 "근로자"라고 할 수 있는지 문제가 되어 왔습니다. 사실 근로자의 날이라고 하더라도 관행상 변호사는 쉬지 않고 근무를 하며(법원, 검찰이 일을 하므로 변호사도 당연히 일을 하는 것이 자연스럽습니다), 근태감독 등의 측면에서 살펴볼 때 고용 변호사라고 하더라도 근로자로 볼 수 있는지에 대해서는 달리 볼 여지가 없었던 것은 아닙니다. 그러나 우리 법원은 로펌에서 퇴직한 고용 변호사가 퇴직금을 청구한 소송에서 고용 변호사의 "근로자성"을 인정한 바 있습니다(대법원 2012. 12. 13. 선고, 2012다77006 판결).
그렇다면 파트너의 경우에는 근로자성이 인정될 수 있을까요. 부정하는 것이 우리 법원의 입장으로 보입니다. 최근 국내 유수의 로펌에서 파트너로 근무하던 변호사가 퇴직 후에 로펌에 퇴직금을 청구하는 소송에 대한 항소심 판결이 있었는데 항소심법원은 "파트너 변호사는 로펌 운영에 직접 관여하지 않더라도 사건 수임과 근무시간에 있어 로펌의 관리감독을 받지 않고 수입도 로펌 수익에서 분배받기 때문에 일반 변호사와 같이 임금을 목적으로 종속적인 관계에서 근로를 제공하는 근로자로 볼 수 없다"는 취지로 패소 판결을 하였습니다(서울고등법원 2014. 5. 9. 선고 2013나2012615 판결). 위 변호사가 근무하던 로펌에서는 운영위원회를 두고 지분파트너 중 등기된 구성원변호사나 운영위원인 변호사만 로펌운영에 관여하였는데, 소송을 제기한 변호사는 등기된 구성원변호사나 운영위원이 아니었기 때문에 근로자에 해당한다고 주장하였던 것으로 보입니다(대개 등기한 변호사를 에쿼티 파트너/지분파트너 라고 하는데, 위 로펌의 경우에는 등기하지 않은 경우에도 파트너 승진을 하면 지분파트너라고 하는 모양입니다). 지인인 변호사가 우연한 기회에 위 소송의 당사자였던 변호사분의 말씀을 들어보니 "해당 법무법인에는 지분을 가진 파트너가 없고 모두 일을 해야 돈을 받는 노무 파트너일 뿐이며, 정해진 기본급+인센티브(수임액에 따라 정해진 연공서열로 가중감경할당받는)를 받고 있어서 어쏘랑 다를 바가 없고, 인센티브를 운영위원회가 결정하므로 실질적으로 운영위원이 아닌 파트너는 근로자에 불과하다"고 하셨다고 합니다. 위 변호사님의 주장에 따르면 자신은 지분등기를 하지 않은 소위 인컴파트너의 지위에 있을 뿐이어서 고용변호사와 다를 바 없다는 것으로 보이는데, 법원은 이러한 주장을 인정치 않고 "수임사건 처리의 독자성, 고용변호사에 대한 업무위임가능성" 등을 고려하여 위 변호사를 지분파트너로서 동업자에 해당하는 것으로 보고 근로자성을 부정한 것으로 보입니다.
그런데 the lawyers 에 실린 기사(Clydes to face whistle-blowing claim after Supreme Court holds LLP members are protected)를 보니,영국 대법원이 "로펌의 지분파트너라고 하더라도 내부고발법상 내부고발을 한 근로자에 대한 보호를 받는 근로자로서 인정할 수 있다"는 취지로 판시하였음을 알 수 있네요. 퇴직금 등 임금 청구소송에서 근로자성을 인정하는 것과 동일시할 수는 없어 보이지만 사안에 따라서 로펌의 지분파트너의 근로자성이 항상 부정되는 것만은 아니라고 볼 근거가 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2014년 3월 27일 목요일
[책 소개] 로펌 스캐든
로펌 스캐든, 링컨 캐플런, 황남석 역, 삼우반(2011)
최근 초대형 글로벌 로펌인 스캐든 압스가 국내에 상륙한다는 기사가 법률신문에 실렸습니다.
(초대형 글로벌 로펌 '스캐든 압스' 국내 상륙, 법률신문 2014. 3. 24.자 기사) 법률시장이 개방되면서 외국 로펌의 국내진출이 본격화되는 분위기네요. 스캐든 압스가 어떤 회사인지에 대해서 2011년에 "로펌 스캐든"이라는 책이 번역되었는데 1993년판입니다. 20년 정도의 시간이 흘렀지만 스캐든 압스는 적어도 인수합병 분야에서 독보적인 지위를 차지하고 있는 것으로 보입니다.
우리나라도 로펌이라는 체제를 미국에서 수입한 만큼, 미국의 대표적인 로펌이 어떻게 만들어져서 발전해 왔는지는 현재 대형 로펌들의 운영방식에도 많이 도입되어 있고, 도입하려고 하는 부분이라는 점에서 많은 시사점을 줍니다. 2000년대 초반 우리나라의 로펌들에 대해서도 기자분이 비슷한 책을 낸 적이 있었지만 여러 로펌의 설립 관련 비화 등을 소개하는 수준에 그친 것이었고, 부동의 1위 법률회사인 김앤장 법률사무소에 대해서 비판적인 내용의 책이 나왔었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우리나라 로펌들의 순위는 대체로 규모로 평가하는 것 같습니다. 한경매거진에서 기업법무담당자를 대상으로 한 조사를 기초로 순위를 매겨서 발표하는데(대한민국 로펌랭킹 종합순위, 한국경제매거진, 2013년 12월 기사), 이 순위는 직접 로펌에 사건을 의뢰하는 당사자들이 매기는 순위인 만큼 꽤 믿을 만 합니다. 다만, 이 순위는 평가항목이 기업법무 부분에 몰려 있어서 전통적으로 송무가 업무의 많은 부분을 차지하는 "화우"나 "바른" 같은 로펌이 저평가되는 경향이 있습니다. "율촌"이 규모면에서는 6위권의 로펌인데, 기업법무부문의 우세를 바탕으로 종합순위에서 세종과 화우, 바른을 제치고 4위에 랭크되어 있는 점이 특징이며, 이외에 한경매거진의 로펌순위도 한국변호사수로 표시되는 규모 기준 순위와 대략 일치합니다.
로펌 스캐든 이라는 책은 로펌이 어떤 식으로 운영되는지 알고 싶은 사람에게 좋은 책입니다. 제가 느낀 인상은 평범한데 "인사가 만사"라는 것입니다. 변호사라는 직업의 특성상 사실 로펌의 가장 큰 자원은 "인재"이고, 좋은 인재를 지속적으로 영입하고, 그 인재를 활용하여 사건을 끌어와 해결하고, 해결된 사건이 명성이 되어 또 좋은 인재를 영입하는 선순환이 이루어지면 로펌이 성공하는 것입니다. 그 과정에서 인재에게 어떻게 수익을 배분할 것인지, 적절한 승진은 어떻게 이루어져야 하는지, 인재들이 일에 집중하기 위하여 어떠한 지원이 제공되어야 하는지가 묘사되는데, 전성기인 80-90년대의 이야기가 지금 생기는 일이라고 해도 수긍이 될 정도입니다.
제가 읽으면서 인상깊었던 부분을 소개합니다. 로펌이 어떤 곳인지 궁금한 분들께 일독을 권합니다.
"우리는 역사상 아무리 큰 조직이었더라도 영원하지는 않았음을 기억하여야 합니다. 영원성은 당신이 조직으로부터 무엇을 이끌어내는가 혹은 조직 자체가 스스로로부터 무엇을 이끌어내는가에 달려 있을 뿐입니다. 조직이 공룡이 되면, 결국 사라질 것입니다." -32면.
"절대로 '노코멘트' 혹은 '할 말이 없습니다'라고 말하지 말 것. '저희 사무실의 다른 변호사가 전화를 하도록 하겠습니다.'라고 대답하고, 그렇게 되도록 처리할 것." -136면.
"변호사들은 범죄를 행하거나 의뢰인이 범죄를 계획하는 것을 도와서는 안된다. 변호사들은 규정에 분명하게 제시되어 있는 윤리적인 지시만을 따라야 하고, 애매한 기준은 무시하여야 한다. 마지막으로 그들은 노골적으로 판사를 속여서는 안되고, 증거를 조작하여서는 안된다. 그 밖에는 의뢰인의 이익에 부합한다면, 허점, 애매함, 전문적 사항, 공백을 이용하거나, 법률 또는 사실에 대한 너무나 터무니없지 않은 해석을 할 수 있고, 경우에 따라서는 하여야 한다." -214-215면.
하지만 변호사가 일단 사건을 수임하면, 기업 의뢰인을 감동시키기 위한 욕망과 필요, 나중에 과오소송에 대한 책임을 묻는 소송이 제기되지 않도록 스스로를 지키고자 하는 본능, 승리하고자 하는 욕구가 결합하여 맹목적인 공격성을 드러내게 된다. -220면.
2014년 2월 26일 수요일
국제변호사?
신문기사에 법조인이 되려는 분들 중 자신의 꿈이 "국제변호사"가 되는 것이라고 밝히는 것을 종종 보게 됩니다. 국제변호사 라는 타이틀이 실제로 존재하는 것인지 고개를 갸웃하게 될 수 밖에 없는데요. 추측건대, 국제변호사는 한국변호사 또는 외국변호사로서 국제통상 등이 문제가 되는 분쟁에서 국가를 대리하여 협상하고 교섭하는 역할을 하는 사람을 의미하는 것으로 쓰인 것으로 보입니다.
하지만 실제 우리나라에서 "국제변호사"라는 타이틀로 활동하는 사람은 존재하지 않습니다. 굳이 나누자면 한국에서 변호사 자격을 취득한 한국변호사와 미국 등 외국에서 변호사 자격을 취득한 "외국변호사"가 있다고 할 수 있을 뿐입니다. 한국에 투자하려는 외국인에게 한국 법제에 대하여 외국어로 설명하거나 외국에 투자하려는 한국인이 외국에서의 인허가나 계약 협상 등을 진행하려할 때 의사소통이 되는 외국변호사가 있으면 매우 업무처리의 효율이 좋아지므로 외국변호사에 대한 수요는 꾸준히 존재해 왔고, 실제로 대형로펌에는 한국변호사수의 1/5 정도 되는 숫자의 외국변호사가 고용되어 일하고 있습니다.
외국변호사는 그 변호사 자격을 부여한 외국에서는 변호사로서 활동할 수 있지만 한국 내에서는 한국변호사 자격이 없는 이상 변호사로서 활동할 수 없습니다. 한국에서는 "외국법자문사"로 등록을 한 외국변호사만이 당해 외국의 법률문제에 대해서 자문할 수 있도록 하는 외국법자문사법이 2009년부터 시행되고 있으며, 이에 따르면 외국에서 변호사로 3년 이상 실무를 담당한 경력이 있는 외국변호사만이 한국에서 외국법자문사로 등록할 수 있습니다.
대형 국내로펌들에 고용되어 업무를 수행하는 외국변호사들은 3년 이상의 실무경력이 있는 경우도 있지만 외국에서 로스쿨을 나와서 변호사시험에 합격한 후 바로 국내로펌에 채용되는 경우가 대부분이고, 외국법자문사로 등록하는 경우도 많지 않은 것으로 보입니다. 하지만 엄밀히 말하자면 외국법자문사 등록을 하지 않은 외국변호사는 원칙적으로 실제 고객에게 자문을 제공하는 업무를 수행해서는 안되고 한국변호사의 자문업무를 보조하는 역할을 하여야만 외국법자문사법에 저촉되지 않는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와 관련하여 국내로펌 중 외국법자문사로 등록하지 않은 외국변호사가 업무를 수행하게 한 로펌에 대하여 진정이 들어가서 징계절차까지 이르게 된 것 같습니다. 외국변호사들도 힘들겠네요.
참조: 법률신문, 로펌 소속 '외국변호사' 업무 관련 첫 진정, 2014. 2. 24.자
하지만 실제 우리나라에서 "국제변호사"라는 타이틀로 활동하는 사람은 존재하지 않습니다. 굳이 나누자면 한국에서 변호사 자격을 취득한 한국변호사와 미국 등 외국에서 변호사 자격을 취득한 "외국변호사"가 있다고 할 수 있을 뿐입니다. 한국에 투자하려는 외국인에게 한국 법제에 대하여 외국어로 설명하거나 외국에 투자하려는 한국인이 외국에서의 인허가나 계약 협상 등을 진행하려할 때 의사소통이 되는 외국변호사가 있으면 매우 업무처리의 효율이 좋아지므로 외국변호사에 대한 수요는 꾸준히 존재해 왔고, 실제로 대형로펌에는 한국변호사수의 1/5 정도 되는 숫자의 외국변호사가 고용되어 일하고 있습니다.
외국변호사는 그 변호사 자격을 부여한 외국에서는 변호사로서 활동할 수 있지만 한국 내에서는 한국변호사 자격이 없는 이상 변호사로서 활동할 수 없습니다. 한국에서는 "외국법자문사"로 등록을 한 외국변호사만이 당해 외국의 법률문제에 대해서 자문할 수 있도록 하는 외국법자문사법이 2009년부터 시행되고 있으며, 이에 따르면 외국에서 변호사로 3년 이상 실무를 담당한 경력이 있는 외국변호사만이 한국에서 외국법자문사로 등록할 수 있습니다.
대형 국내로펌들에 고용되어 업무를 수행하는 외국변호사들은 3년 이상의 실무경력이 있는 경우도 있지만 외국에서 로스쿨을 나와서 변호사시험에 합격한 후 바로 국내로펌에 채용되는 경우가 대부분이고, 외국법자문사로 등록하는 경우도 많지 않은 것으로 보입니다. 하지만 엄밀히 말하자면 외국법자문사 등록을 하지 않은 외국변호사는 원칙적으로 실제 고객에게 자문을 제공하는 업무를 수행해서는 안되고 한국변호사의 자문업무를 보조하는 역할을 하여야만 외국법자문사법에 저촉되지 않는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와 관련하여 국내로펌 중 외국법자문사로 등록하지 않은 외국변호사가 업무를 수행하게 한 로펌에 대하여 진정이 들어가서 징계절차까지 이르게 된 것 같습니다. 외국변호사들도 힘들겠네요.
참조: 법률신문, 로펌 소속 '외국변호사' 업무 관련 첫 진정, 2014. 2. 24.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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