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년 7월 19일 금요일
당연한 것은 없다
올초에 맡았던, 어떻게 보면 흔한 임대차보증금반환청구소송의 항소심에서 피고를 대리해서 승소했습니다. 보증금가액이 크기는 했지만, 1심에서도 승소한 사건이었고, 임차인이었던 원고가 떼를 쓰는 수준의 사건이었기 때문에 큰 어려움이 없이 '당연히' 이길 사건이라고 생각했었습니다.
그런데... 세상사 모르는 일이라고 상대방이 선임한 소송대리인이 '김앤장'에다가 임대차기간이 만료되어가는 것을 이용해서 기일을 가능한 한 최대한 연장하고, 서면을 제출한 것을 보니, 세상에 당연한 것은 없는 것이더군요.
어처구니 없는 사실관계와 그에 기반한 주장을 하나하나 근거를 대어서 반박하고, 공제주장할 때에는 숫자 틀리지 않게 표를 만들어서 계산-검산 쉽게 만들어 서면을 제출하고, 상대방 마지막 준비서면에 대한 참고서면까지 제출하였지만, 그래도 선고기일에 일말의 불안함도 없었다고 말하기는 어렵습니다.
결국 처음 생각한 것과 같은-추가된 예비적 청구에 대한 기각과 더불어- 결론으로 항소심 판결이 선고되었습니다. 당연하다고 생각되는 것을 방어하는 데에도 어느 한군데 부족할까 노심초사하시는 의뢰인을 보면서 배우는 점도 많은 소송이었습니다.
사자가 토끼 한마리를 잡을 때에도 최선을 다하듯이, 어떤 소송이든 우리가 이기는 것이 "당연한 것"이 아닐 수 있으므로, 겸손하게 판단을 내리는 재판관을 최선을 다해 설득하는 것. 그것이 변호사의 임무라는 것을 느낄 수 있었던 사건이었습니다.
2017년 11월 1일 수요일
아침을 여는 무죄판결
어제 선고였던 국선변호 사건이 있었습니다. 대부분 선고기일에는 선고결과가 궁금한 피고인 본인이 가시고, 사무실과 가까운 중앙지방법원인 경우 직원분께 듣고 오십사 하는데, 동부지방법원 사건이라 사무실에 일이 있으면 사무실에서는 당일 선고를 듣고오지 못해서 결과를 알 수 없게 됩니다. 선고 당일에는 재판부에 전화를 해도 재판중이시라 전화를 받지 않으시기 때문에 이런 경우 다음 날 재판부에 전화를 해서 선고결과를 알아보게 됩니다.
마침 피고인도 선고기일에 일이 있으셔서 참석을 못하시고 제게 전화하셔서 선고결과를 물어보시기에 다음 날(오늘) 오전에 알려드리겠다고 하고 오늘 재판부에 선고결과를 확인하였습니다. 무죄가 선고되었다네요. 부동산 중개업자에게 계약해지/취소 요구를 하던 공무원이 커피숍에서 한 말을 가지고, 부동산 중개업자측에서 "협박"으로 고소하여 약식명령이 떨어졌던 사건인데, 증거라고는 피고인의 말을 들었다는 부동산 중개업자 2명의 진술 뿐이었습니다. 부동산중개업자 두 사람을 증인으로 불러 증언을 들어보았는데 두 사람의 증언이 중요한 부분에서 달랐다는 점을 지적하면서 탄핵한 것이 주효한 것이 아니었을까 추측해 봅니다. 판결문 확인해 봐야 겠네요. 피고인분에게 잘 되었다는 전화를 드릴 수 있어 덕분에 상콤한 아침입니다.
2014년 8월 13일 수요일
선고기일 법정출석의무
대표적인 보수논객(으로 불리는) 변희재씨에 대한 법원의 구속영장 발부를 놓고 기사들이 쏟아지고 있습니다.
법원, 변희재 구속영장 발부... 변대표 해명 들어보니, 동아일보 2014. 8. 12.자 기사
민사소송의 경우 원고나 피고의 법정출석여부는 원칙적으로 자유입니다. 보통의 경우에는 자신의 입장을 재판부에 전달할 기회가 박탈되는 것이므로 민사소송의 당사자에게 굳이 법정출석을 강제할 필요는 없습니다. 특히 선고기일에는 재판결과가 궁금한 것이 아니라면 특별히 원피고가 참석하지 않는 경우도 많습니다. 재판부는 지방에서 올라와야 하는 사정이 있는 당사자들에게 판결문을 보내주므로 굳이 선고기일이 출석할 필요가 없다고 친절히 안내하는 경우도 허다합니다(물론 피고가 답변서도 제출하지 않고 기일에 출석하지 아니하여 무변론 패소판결을 당하거나 원고가 2회 이상 불출석하여 소취하의 효과가 발생하는 예외적인 경우가 있긴 합니다).
하지만 형사소송의 피고인의 경우에는 원칙적으로 선고기일을 포함한 모든 공판기일에 출석할 의무가 있습니다. 형사소송법 제277조에서 피고인이 예외적으로 불출석할 수 있는 경우를 정해 놓았기 때문입니다.
다음 각 호의 어느 하나에 해당하는 사건에 관하여는 피고인의 출석을 요하지 아니한다. 이 경우 피고인은 대리인을 출석하게 할 수 있다.
1. 다액 500만원 이하의 벌금 또는 과료에 해당하는 사건
2. 공소기각 또는 면소의 재판을 할 것이 명백한 사건3. 장기 3년 이하의 징역 또는 금고, 다액 500만원을 초과하는 벌금 또는 구류에 해당하는 사건에서 피고인의 불출석허가신청이 있고 법원이 피고인의 불출석이 그의 권리를 보호함에 지장이 없다고 인정하여 이를 허가한 사건. 다만, 제284조에 따른 절차를 진행하거나 판결을 선고하는 공판기일에는 출석하여야 한다.
4. 제453조제1항에 따라 피고인만이 정식재판의 청구를 하여 판결을 선고하는 사건
변희재씨가 밝힌 바에 따르면 변희재씨는 자신의 사건이 형사소송법 제277조 제4호에 해당하는 것으로 생각하고 선고기일에 출석하지 않아도 무방한 것으로 착각한 것으로 보입니다.
애초에 변희재씨의 명예훼손 혐의에 대해서는 검사가 벌금형의 약식명령을 내려달라고 법원에 요청하였는데, 통상적인 경우 법원은 검사의 구약식청구에 따라서 약식명령을 내리게 됩니다. 이 약식사건에 불복하여 정식재판을 청구하는 경우가 바로 형사소송법 제453조 제1항에 따라 피고인이 정식재판의 청구를 한 사건에 해당하게 됩니다. 이 때 사건번호는 "서울서부지방법원 2014고정00000 정보통신망 이용촉진 및 정보보호 등에 관한 법률(명예훼손)" 이런 으로 붙게 됩니다. 이 경우에는 선고기일에 피고인이 불출석하더라도 판결을 선고할 수 있고(일정한 요건이 갖춰지는 경우 공판기일에 피고인이 불출석한 상태에서 궐석재판이 이루어질 수도 있습니다), 피고인이 지방에 거주하는 등의 사정이 있는 경우, 판사가 선고기일에 나올 필요가 없으며 재판결과를 그 다음 날 정도 확인하라는 취지의 안내를 하기도 합니다.
하지만 법원은 검사의 구약식청구에 대하여 변희재씨 사건은 약식명령-정식재판청구-정식재판의 형식으로 재판하기에 적당하지 않은(한마디로 "벌금형과 같은 경한 형으로 다스려서는 안되는 중한 범죄에 관한") 사건으로 판단하고 통상재판에 회부(이를 줄여 '부통상'이라고 합니다)하였습니다. 이 경우 사건번호는 "서울서부지방법원 2014고단00000 정보통신망 이용촉진 및 정보보호 등에 관한 법률(명예훼손)" 이런 식으로 부여됩니다. 변희재씨의 사건은 피고인의 불출석 상태에서 재판할 수 있는 경미한 사건이 아니므로 피고인은 모든 공판기일(선고기일 포함)에 출석할 의무가 있고, 피고인의 출석권(형사소송법 제276조)이 인정되므로 피고인의 출석 없이는 개정 자체가 이루어지지 않는 것입니다.
따라서 서울서부지방법원의 변희재씨 사건 담당 판사는 2회의 선고기일에 변희재씨가 출석하지 않자, 더 이상 피고인의 불출석으로 기일을 공전시킬 수 없으므로 구속영장을 발부하여 변희재씨의 선고기일의 출석을 강제하게 된 것이라고 하겠습니다. 명예훼손으로 실형이 선고되는 경우는 많지 않으나, 법원이 이 사건을 통상재판에 회부한 것은 수사과정에서 밝혀진 사실 이외에 특별히 피고인에게 유리한 사정이 없는 한, 약식명령과 유사한 수준의 벌금형을 선고하는 선에서 사건을 종결하지는 않을 것이라고 보는 것이 타당한 전망일 것입니다. 그렇다고 명예훼손죄로 실형 선고하는 것도 이례적이라고 할 수 있으므로 아마도 재판부는 1년 미만의 징역형에 집행유예 정도를 선고하지 않을까 조심스럽게 예상해 봅니다.
확인되지 않은 사실을 근거로 비방하거나, 자극적인 언사로 특정 인사들에 대한 공격을 한 결과는 본인이 고소를 하고 민사소송을 제기하는 입장에서는 통쾌할지 몰라도, 당하는 입장이 되면 어떨지 심사숙고해야할 필요성을 온몸으로 보여주시느라 고생하신다는 말씀 덧붙여드리고 싶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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