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년 8월 14일 화요일
[책 소개] 재판으로 본 세계사
박형남, 재판으로 본 세계사, 휴머니스트(2018)
이 책의 저자는 현재 서울고등법원 부장판사님이시고, 제 사법연수원 시절 지도교수님이십니다. 그래서 이번 책 소개는 투명하게 편파적으로 사심이 들어간 책 소개입니다. 하지만 굳이 편파적일 필요가 없을 정도로 책에 담긴 내용은 법원, 재판, 역사에 관심이 있는 사람이라면 누구에게나 추천할 만 합니다. 소크라테스에거슬러올라가 중세 유럽을 거쳐 현대 미국에 이르기까지 법원의 판결은 당시에는 알 수 없었던 인간사의 도도한 흐름을 때로는 거스르기도 하고, 때로는 주도해 나가기도 한다는 것을 잘 보여주고 있습니다.
특히 어떠한 사안에 대한 간략한 주요사건의 나열과 쟁점의 정리는 수십년간 판결문을 써오신 내공이 유감없이 드러납니다. 일반적인 저자였다면 여기저기 핵심을 비껴가는 사건을 설명하면서 벗어날 논점을 꼭꼭 찝어내고 있으신 것이 인상적이었네요.
특히 큰 관심이 없었던 역사적인 사건들에 대해서 문제된 재판들에 대해서 읽는 과정은 일반 역사책들에게서 무언가 빠진 듯하게 느껴졌던 갈증을 해소해 주기도 했고, 저도 모르고 있었던 해방정국의 민법 제14조 관련 대법원 판결을 보면서 사람은 배워도 배워도 끝이 없다는 사실을 새삼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단점이라면 위와 같은 장점을 취하기 위해서는 흥미를 유발하는 문장을 쓸 수 없기 때문에 약간의 교과서를 읽는 듯한 느낌을 감수해야 합니다. 그리고 워낙 엄청난 정보를 짧은 글에 응축시켰기 때문에 사전에 역사적 사건이나, 해당 판결에 대한 지식이 있는 사람이 아니라면 책을 읽는데 시간이 꽤 걸릴 수 있습니다.
하지만 읽으면 읽을 수록 교수님의 담담히 이야기해주시듯 설명하는 문장에, 다음 사건에 대해서는 어떻게 설명을 해 주실까 기대하게 만드는 매력이 있습니다. 법원이나 법조에 대한 관심이 있다면, 또 색다른 측면에서 역사를 바라보는 작업에 흥미가 있는 분이라면 꼭 읽어보셔야 할 것입니다.
다음은 제게 인상깊었던 구절들입니다.
평범한 사람들의 어중이떠중이 의견이 아니라 덕 있는 사람들의 지혜로움으로 정치가 운영되어야 한다는 생각은 아테네 민주주의에 반대하고 시민들의 권력을 무시하는 것으로서 시대의 흐름에 반했다.
-박형남, 재판으로본 세계사, 휴머니스트(2018), 36면.
존경하는 재판관 여러분, 내가 이토록 중대한 재판을 받으면서 국왕과 국왕의 고귀한 자문관들을 다 제쳐놓고 리치 경처럼 진실성이 없다고 소문난 자를 믿고 국왕의 수장권에 대한 내 속마음을 털어놓는다는 일이 있을 수 있겠습니까? 바로 그 점이 나를 잡으려고 오랫동안 노려온 쟁점 아닙니까? 여러분이 판단하기에 이게 사실일 수 있겠습니까?
-박형남, 재판으로 본 세계사, 휴머니스트(2018), 82면.
수평파는 모든 성인 남성에게 참정권을 주고 인구수에 기초해 선거구를 결정하자고 주장했다. 하지만 고급장교들은 재산을 가진 사람에게만 투표권을 부여해야 한다며 반대했다. 양쪽의 주장을 차례로 들어보자.
가장 가난한 사람이라고 해도 가장 위대한 사람들과 동일한 생명을 가지고 있다. 어느 정부의 통치를 받는 사람들은 그 정부의 지배를 받겠다고 스스로 동의할 수 있어야 한다. 가장 가난한 사람이라 하더라도 자기의 목소리를 전달하지 못한 정부의 결정에 구속당할 이유가 없다.
재산을 가진 사람들만이 실제로 잃을 것이 있기 때문에 왕국 일에 관여할 이유가 있다. 이들만이 영구적으로 고정된 이해관계가 있다. (재산이 없는 사람은) 영국에 살 자연권은 있어도 투표할 자연권은 없다. 재산이 없는 사람들이 권력을 쥐게 되면 재산이 있는 사람들의 부를 빼앗기 위해 투표하게 될 것이다.
-박형남, 재판으로 본 세계사, 휴머니스트(2018), 149면.
1990년 결정에서 간통죄가 위헌이라고 강력하게 주장했던 김양균 재판관은 한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했다.
첫 사건에서 혼자 전면 위헌 의견을 쓰면서 30-50년 안에는 내 의견대로 될 것이라고 했다. 그리고 19년이 지나 지난 4기 재판관 5명이 위헌의견을 냈다. 검사 생활을 통해 간통조항이 상습적인 사람이 아닌 우발적인 사람들에게 주로 적용되는 걸 알았다. 이 조항 때문에 얼마나 많은 가정과 개인이 파탄나는지 알게 된 것이 위헌 의견을 내는 데 토대가 되었다. 간통 조항은 위헌이고 반헌법적이며 촌스럽다.
-박형남, 재판으로 본 세계사, 휴머니스트(2018), 192면.
단호히 말하건대, 어떤 것이 법인가를 선언할 수 있는 권한은 사법부의 영역이자 본분이다. 특정 사건에 규칙을 적용하는 사람은 필연적으로 그 규칙을 설명하고 해석해야 한다. 만약 두 법률이 상충한다면 법원은 반드시 각 법률의 시행 여부를 결정해야 한다. 만약 어떤 법률이 헌법에 대립하고 그 법률과 헌법이 특정 사건에 적용된다면, 법원은 헌법을 무시하고 법률에 맞게 사건을 결정하거나 법률을 무시하고 헌법에 맞게 사건을 결정해야 한다. 법원은 상충하는 규칙 중 어떤 규칙이 사건을 좌우하는지 결정해야 한다. 이것이 바로 사법부가 지닌 책무의 본질이다.
-박형남, 재판으로 본 세계사, 휴머니스트(2018), 204면.
드레드 스콧 판결은 미국 역사에서 어떻게 평가받을까? 소수 의견이 지적했듯이, 판결은 법 규정과 이론에 근거하지 않았으며 흑인은 선천적으로 열등하다는 편견으로 인종차별에 동조한 판사 개인의 가치관을 적나라하게 드러냈다. 흑인 노혜 문제는 도적적, 사회적, 경제적으로 여러 원인이 얽히고설켜 해법이 어려웠는데도 사법부의 권위에 의존해 단번에 해결하려고 한 것은 태니 대법원장의 만용이었다. 의회가 1820년의 미주리 타협으로 지역 간 대립을 간신히 봉합했는데, 대법원이 이를 무시하고 전적으로 남부에 유리하게 결정해서 정치적, 사회적으로 엄청난 혼란을 일으켰다.
-박형남, 재판으로 본 세계사, 휴머니스트(2018), 232면.
시간이 지난 후에는 명백하게 보이지만, 태풍이 지나가는 한가운데에서 판사는 길을 잃어버리거나 방향을 거스르는 잘못을 저지를 수 있는 운명적 존재다. 드레드 스콧 판결이 있은지 약 100년 후 워런 대법원장은 공립학교에서 흑인과 백인을 분리하는 것은 부당하다고 판결했으며, 약 150년 후 아버지가 흑인인 버락 오바마가 미국 대통령으로 당선되었다.
-박형남, 재판으로 본 세계사, 휴머니스트(2018), 235면.
1945년 일제의 지배에서 벗어났으나 일제가 만든 민사법이 여전히 적용되었는데, 거기에 "처가 소송을 제기하려면 부의 허가를 얻어야 한다"라고 규정되어 있다. 1947년 미군정시기에 대법원은 아내가 남편의 허가를 받지 않고 제기한 가옥 인도 소송에서 이 조항을 적용하지 않기로 결정했다.
처에 대하여는 민법 제14조 제1항에 의하여 그에 해당한 행위에는 부의 허가를 수함을 요하여 그 능력을 제한한바, 이는 부부간의 화합을 위한 이유도 없지 않으나 주로 부에 대하여 우월적 지배권을 부여한 취지라고 인정치 않을 수 없다. 그런데 서기 1945년 8월 15일로 아방은 일반의 기반으로부터 해방되었고, 우리는 민주주의를 기초삼아 국가를 건설할 것이고, 법률, 정치 , 경제, 문화 등 모든 제도를 민주주의 이념으로 건설할 것은 현하의 국시라 할 것이다. 그러므로 만민은 모름지기 평등할 것이고 성의 구별로 인하여 생한 차별적 제도는 이미 민주주의 추세에 적응한 변화를 본 바로서, 현하 여성에 대하여 선거권과 피선거권을 인정하고 기타 관공리에 임명되는 자격도 남성과 구별이 무하여 남자와 동등한 공권을 향유함에 이른 바인즉, 여성의 사권에 대하여도 또한 동연할 것이매 남녀평등을 부인하던 구제도로서 그 차별을 가장 현저히 한 민법 제14조는 우리 사회 상태에 적합하지 아니하므로 그 적용에 있어서 변경을 가할 것은 자연의 사세이다. 자에 본원은 사회의 진전과 법률의 해석을 조정함에 의하여 비로소 심판의 타당을 기할 수 있음에 감하여 동조에 의한 처의 능력 제한을 인정하지 아니하는 바이다(대법원 1947. 9. 2. 선고 1947민상88).
-박형남, 재판으로 본 세계사, 휴머니스트(2018), 291-292면.
2017년 2월 17일 금요일
A.I.가 판사를 대체할 수 있는가
알파고가 이세돌을 격파한 이후, 심심찮게 많은 직역이 AI(인공지능)에 의하여 대체되어 사라질 것이라는 이야기가 나옵니다. 특히 인공지능 변호사가 나왔다는 외국의 예를 들며, 얼마 안되어 판사도 인공지능으로 대체될 수 있다는 것을 전제로 글을 쓰는 분들도 있는 것 같습니다.
오늘 본 이 칼럼([노트북을 열며] 인공지능 판사가 재판하는 날, 중앙일보 2017. 2. 17.자)도 비슷합니다. 그러나 저는 인공지능이 판사를 대체할 것이라는 예측은 사법제도 , 법률 및 재판에 대한 너무나 간단한 전제 및 이해에 서 있기 때문에 실현될 수 없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위와 같은 칼럼이 이해하고 있는 사법제도, 법률 및 재판에 대한 이해는 이런 것입니다.
1. 국회가 정한 법률을 구체적인 사안에 대하여 적용하는 것이 재판이고 그 결과가 판례이다.
2. 추상적인 법률과 구체적인 판례를 모두 인공지능으로 하여금 수집하고 그에 따라 판단하게 되면 어떤 인간보다 정확한(정의로운/공평한) 판단을 하게 된다.
3. 인공지능은 판사와 달리 매수나 회유가 되지 않기 때문에 공평무사하다.
첫번째나 세번째 전제는 당연하다고 할 수 있습니다. 문제는 두번째 전제에 있습니다. 법률이나 판례의 중요한 기준이 되는 자유, 평등, 정의와 같은 가치는 정해져 있는 것이 아니라 사회의 변화나 발전에 의하여 변해가게 됩니다(매우 천천히 그리고 이해가 충돌하는 영역을 중심으로). 그리고 사법제도는 이렇게 변해가는 자유관념, 평등관념, 정의관념에 적응하기 위하여 고안해낸 것입니다. 즉, 수많은 판사들이 사회의 변화에 적응해서 변화된 가치관에 따라 새로운 판결을 하고, 기존의 보수적인 입장에 의하여 다시 반동이 일어났다가, 다시 뒤집어지는 과정이 지금도 사법제도 안에서 계속되고 있는 것입니다. 다만, 이러한 과정은 수년에서 수십년에 걸쳐서 일어나는 것이고, 현재에 있어서의 가치관은 특정해 놓아야 가부간 판단을 할 수 있기 때문에 최종적으로 판례(현대의 대부분의 판사의 가치관)가 어떤 입장이라고 정해 놓은 것 뿐입니다. 그러나 현재의 자유/평등/정의관에 맞는 법률/판례라고 하여 미래에도 항상 그럴 것이라는 보장이 없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법률을 개정하고, 위헌법률심판에 의하여 법률이나 처분을 위헌으로 만들기도 하며, 판례의 입장이 종종 뒤집히는 것을 쉽게 볼 수 있습니다.
알기 쉬운 예로, 현재까지의 판례는 양심적 병역거부에 대하여 병역법위반으로 의율하고, 실형을 선고하고 있습니다. 현재 상태에서 인공지능에게 이에 대한 재판을 맡겼을 때 인공지능은 양심적 병역거부에 대하여 무죄를 선고할 수 있을까요? 인공지능에게 주어진 데이터가 유죄뿐이기 때문에 인공지능에 의한 판례변경은 불가능합니다. 그러나 우리 하급법원은 1년새 9번째 양심적 병역거부는 무죄라는 판단을 내렸고('양심적 병역 거부' 인정할 때 됐나... 법원 또 무죄판결, 연합뉴스 2016. 8. 12.자 기사), 이에 대하여 헌법재판소에 병역법에 대한 위헌법률심판이 계속되고 있는 상태입니다. 사회의 가치관 변화에 가장 늦게 반응하기는 하지만 법원의 판단은 변화가능성이 있고, 이것은 판사가 사람이기에 가능한 것입니다. 사회의 가치관 변화와 이에 대한 사법제도의 수용이 법률개정, 판례변경, 위헌법률심판의 형태로 나타나는 것이고 이것이 사법제도가 사회의 끊임없는 변화에 적절하게 대응하는 방식입니다.
인공지능은 이러한 사법제도의 중요한 부분을 대체할 수가 없습니다. (적어도 현재의) 인공지능에게 기존 데이터의 집적과 그에 대한 빠른 연산을 통한 결과도출 외의 창조적인 기능을 기대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인공지능은 최종적인 판단을 위한 자료수집 및 분석에 대한 최고의 도구가 될 수 있을 지언정, 최종적인 판단을 내리는 주체가 될 수 없을 것입니다. 변호사는 판사와 마찬가지로 오히려 판사보다 더 자주, 더 민감하게 변화하는 사회상이나 의뢰인의 이익을 위하여 창조적인 주장이나 논리를 개발하는 사람입니다. 물론 기존의 판례는 중요한 논리의 틀이지만 항상 그것에 구애받는 것이 아니라 "한번 바꿔보자"라고 달려드는 경우도 분명 존재합니다. 데이터에 기반한 인공지능에 그러한 것을 기대할 수 없는 이상, 변호사 나아가 법조인을 인공지능으로 대체할 수는 없을 것이라고 감히 생각해 봅니다.
2016년 11월 4일 금요일
형사재판의 피고인은 재판중 출국할 수 없는가
*가장 최근 출국금지 기사의 주인공이었던 안종범 전 청와대수석 사진입니다.
종종 형사재판을 받고 있는 동안 출국이 당연히 금지되는 것인지를 묻는 질문을 받곤 합니다. 출국금지는 형사재판과 관련없이 법무부장관이 내리는 행정처분인데, 중대한 범죄의 피의자나 피고인의 경우에는 수사나 재판단계에서 출국금지조치가 내려지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러나 원칙적으로 불구속수사/재판을 받고 있는 피의자/피고인에게 출국금지 조치가 취해져 있지 않은 경우 당연히 출국이 금지되는 것은 아닙니다. 따라서 출국금지가 되어 있지 않다면, 재판일정에 영향을 주지 않는다면 외국 출장을 다녀오면 됩니다. 그러나 출국을 이유로 재판에 불출석하려 하는 경우, 검사에 의하여 바로 출국금지조치가 내려질 수 있으니 주의하여야 할 것입니다. 형사재판을 받는 피고인의 경우, 출입국관리법에 따라 재판을 받고 있다는 이유만으로 출국금지하는 것이 가능하기 때문입니다(출입국관리법 제4조 제1항 제1호). 출입국관리법의 이 조항에 대하여 헌법재판소는 이 조항이 헌법에 위반되지 않는다는 "합헌결정"을 내린 바 있습니다(2015. 9. 24. 선고 2012헌바302 결정).
자신이 형사재판을 받고 있는 경우 출국금지가 되었는지는 출입국관리사무소에서 직접 조회를 해 보면 알 수 있습니다. 조세체납 등을 이유로 출국금지되는 경우 본인에게 통보가 되지만, 검사에 의하여 출국금지되는 경우 본인에게 알려주지 않는 경우도 많은 것 같습니다.
종종 형사재판을 받고 있는 동안 출국이 당연히 금지되는 것인지를 묻는 질문을 받곤 합니다. 출국금지는 형사재판과 관련없이 법무부장관이 내리는 행정처분인데, 중대한 범죄의 피의자나 피고인의 경우에는 수사나 재판단계에서 출국금지조치가 내려지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러나 원칙적으로 불구속수사/재판을 받고 있는 피의자/피고인에게 출국금지 조치가 취해져 있지 않은 경우 당연히 출국이 금지되는 것은 아닙니다. 따라서 출국금지가 되어 있지 않다면, 재판일정에 영향을 주지 않는다면 외국 출장을 다녀오면 됩니다. 그러나 출국을 이유로 재판에 불출석하려 하는 경우, 검사에 의하여 바로 출국금지조치가 내려질 수 있으니 주의하여야 할 것입니다. 형사재판을 받는 피고인의 경우, 출입국관리법에 따라 재판을 받고 있다는 이유만으로 출국금지하는 것이 가능하기 때문입니다(출입국관리법 제4조 제1항 제1호). 출입국관리법의 이 조항에 대하여 헌법재판소는 이 조항이 헌법에 위반되지 않는다는 "합헌결정"을 내린 바 있습니다(2015. 9. 24. 선고 2012헌바302 결정).
① 법무부장관은 다음 각 호의 어느 하나에 해당하는 국민에 대하여는 6개월 이내의 기간을 정하여 출국을 금지할 수 있다. <개정 2011.7.18.>
1. 형사재판에 계속(係屬) 중인 사람
2. 징역형이나 금고형의 집행이 끝나지 아니한 사람
3. 대통령령으로 정하는 금액 이상의 벌금이나 추징금을 내지 아니한 사람
4. 대통령령으로 정하는 금액 이상의 국세·관세 또는 지방세를 정당한 사유 없이 그 납부기한까지 내지 아니한 사람
5. 그 밖에 제1호부터 제4호까지의 규정에 준하는 사람으로서 대한민국의 이익이나 공공의 안전 또는 경제질서를 해칠 우려가 있어 그 출국이 적당하지 아니하다고 법무부령으로 정하는 사람
자신이 형사재판을 받고 있는 경우 출국금지가 되었는지는 출입국관리사무소에서 직접 조회를 해 보면 알 수 있습니다. 조세체납 등을 이유로 출국금지되는 경우 본인에게 통보가 되지만, 검사에 의하여 출국금지되는 경우 본인에게 알려주지 않는 경우도 많은 것 같습니다.
2015년 3월 18일 수요일
선고와 구형
일반인이 흔히 혼동하는 법률용어로 "선고"와 "구형"이 있습니다(피의자와 피고인의 구별도 비슷합니다). 평생 자신이나 주위 사람이 경찰/검찰의 수사, 형사재판에 연루되는 것을 한두번 보는 사람이 이것을 구별하고 잘 알고 있는 것이 더 이상한 일일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신문을 유심히 보면 기사에서 선고와 구형은 확실히 구별되어 사용되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하지만 가끔씩 일반인 같은 기자도 종종 있는 것 같습니다. 다음 기사를 보면 기자가 선고와 구형을 혼동하여 검사의 구형을 선고라고 표현하고 있습니다.
송대관 200억 빚지고 부동산 사기로 결국엔..., 한국경제, 2014. 9. 3.자 기사
이에 반해 연합뉴스는 제대로 구형이라고 용어를 사용하고 있지요.
검찰, '투자 사기' 가수 송대관씨에 징역 1년6월 구형, 연합뉴스, 2014. 9. 2.자 기사
형사재판 관련 기사를 볼 때 구형은 검찰, 선고는 법원 이라고 생각하고 있으면 혼동을 방지할 수 있을 것입니다.
선고와 구형은 모두 형사재판에서 사용되는 용어입니다. 형사재판은 검사가 법원에 대하여 피고인에 대한 형을 내려달라고 법원에 청구하는 데에서 시작합니다. 검사의 이러한 청구를 "공소"라고 하고 검사가 공소를 구하는 행위를 "공소제기"라고 합니다. 그리고 형사재판의 진행에 따라 검사는 판사(법원)에게 공소제기된 피고인에 대하여 어떠한 형(징역형 또는 벌금형 등)이 적당하니 이 정도의 형을 내려달라고 자신의 의견을 제시하게 됩니다. 바로 이것을 "구형"이라고 합니다. 그리고 판사(법원)가 형사재판의 최종결론으로서 피고인에게 형을 내리는 것을 바로 "선고"라고 합니다. 판사(법원)은 검사의 구형에 구속되지 않고 판단할 수 있으며, 검사는 판사의 선고형량보다 중하게 구형을 하는 것이 일반적입니다(예외적으로 검사가 경하게 구형하였으나 판사가 중하게 선고를 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따라서 피고인에게 적대적인 언론은 검찰의 구형을 대서특필하여 피고인이 엄청나게 잘못하였다는 취지로 기사를 작성할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일반인들은 선고와 구형을 혼동하여 검찰의 구형이 중하면 피고인에게 (이미) 중한 형벌이 선고된 인상을 받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구형을 강조하였던 피고인에게 예상외의 경한 형이 선고되었더라도 피고인에게 적대적인 언론들은 경한 형의 선고를 구형과 같이 큰 제목으로 뽑지 않고 단신 비슷하게 처리합니다. 그러면 신문을 열심히 읽는 일반인이라고 하더라도 당해 피고인에 대해서 중한 형의 구형만 기억에 남고 경한 형의 선고는 기억에 남지 않게 되기 때문이죠. 그러므로 구형과 선고 라는 용어만 구별할 수 있어도 언론의 입맛에 맞는 보도에 휘둘리지 않게 될 수 있는 것입니다(물론 언론은 송대관씨에게 적대적이었다기 보다는 송대관씨에게 관심이 있었던 것 뿐이기 때문에 송대관씨 관련 기사는 구형과 선고 모두 비슷한 분량과 비중으로 보도되었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2014년 8월 13일 수요일
선고기일 법정출석의무
대표적인 보수논객(으로 불리는) 변희재씨에 대한 법원의 구속영장 발부를 놓고 기사들이 쏟아지고 있습니다.
법원, 변희재 구속영장 발부... 변대표 해명 들어보니, 동아일보 2014. 8. 12.자 기사
민사소송의 경우 원고나 피고의 법정출석여부는 원칙적으로 자유입니다. 보통의 경우에는 자신의 입장을 재판부에 전달할 기회가 박탈되는 것이므로 민사소송의 당사자에게 굳이 법정출석을 강제할 필요는 없습니다. 특히 선고기일에는 재판결과가 궁금한 것이 아니라면 특별히 원피고가 참석하지 않는 경우도 많습니다. 재판부는 지방에서 올라와야 하는 사정이 있는 당사자들에게 판결문을 보내주므로 굳이 선고기일이 출석할 필요가 없다고 친절히 안내하는 경우도 허다합니다(물론 피고가 답변서도 제출하지 않고 기일에 출석하지 아니하여 무변론 패소판결을 당하거나 원고가 2회 이상 불출석하여 소취하의 효과가 발생하는 예외적인 경우가 있긴 합니다).
하지만 형사소송의 피고인의 경우에는 원칙적으로 선고기일을 포함한 모든 공판기일에 출석할 의무가 있습니다. 형사소송법 제277조에서 피고인이 예외적으로 불출석할 수 있는 경우를 정해 놓았기 때문입니다.
다음 각 호의 어느 하나에 해당하는 사건에 관하여는 피고인의 출석을 요하지 아니한다. 이 경우 피고인은 대리인을 출석하게 할 수 있다.
1. 다액 500만원 이하의 벌금 또는 과료에 해당하는 사건
2. 공소기각 또는 면소의 재판을 할 것이 명백한 사건3. 장기 3년 이하의 징역 또는 금고, 다액 500만원을 초과하는 벌금 또는 구류에 해당하는 사건에서 피고인의 불출석허가신청이 있고 법원이 피고인의 불출석이 그의 권리를 보호함에 지장이 없다고 인정하여 이를 허가한 사건. 다만, 제284조에 따른 절차를 진행하거나 판결을 선고하는 공판기일에는 출석하여야 한다.
4. 제453조제1항에 따라 피고인만이 정식재판의 청구를 하여 판결을 선고하는 사건
변희재씨가 밝힌 바에 따르면 변희재씨는 자신의 사건이 형사소송법 제277조 제4호에 해당하는 것으로 생각하고 선고기일에 출석하지 않아도 무방한 것으로 착각한 것으로 보입니다.
애초에 변희재씨의 명예훼손 혐의에 대해서는 검사가 벌금형의 약식명령을 내려달라고 법원에 요청하였는데, 통상적인 경우 법원은 검사의 구약식청구에 따라서 약식명령을 내리게 됩니다. 이 약식사건에 불복하여 정식재판을 청구하는 경우가 바로 형사소송법 제453조 제1항에 따라 피고인이 정식재판의 청구를 한 사건에 해당하게 됩니다. 이 때 사건번호는 "서울서부지방법원 2014고정00000 정보통신망 이용촉진 및 정보보호 등에 관한 법률(명예훼손)" 이런 으로 붙게 됩니다. 이 경우에는 선고기일에 피고인이 불출석하더라도 판결을 선고할 수 있고(일정한 요건이 갖춰지는 경우 공판기일에 피고인이 불출석한 상태에서 궐석재판이 이루어질 수도 있습니다), 피고인이 지방에 거주하는 등의 사정이 있는 경우, 판사가 선고기일에 나올 필요가 없으며 재판결과를 그 다음 날 정도 확인하라는 취지의 안내를 하기도 합니다.
하지만 법원은 검사의 구약식청구에 대하여 변희재씨 사건은 약식명령-정식재판청구-정식재판의 형식으로 재판하기에 적당하지 않은(한마디로 "벌금형과 같은 경한 형으로 다스려서는 안되는 중한 범죄에 관한") 사건으로 판단하고 통상재판에 회부(이를 줄여 '부통상'이라고 합니다)하였습니다. 이 경우 사건번호는 "서울서부지방법원 2014고단00000 정보통신망 이용촉진 및 정보보호 등에 관한 법률(명예훼손)" 이런 식으로 부여됩니다. 변희재씨의 사건은 피고인의 불출석 상태에서 재판할 수 있는 경미한 사건이 아니므로 피고인은 모든 공판기일(선고기일 포함)에 출석할 의무가 있고, 피고인의 출석권(형사소송법 제276조)이 인정되므로 피고인의 출석 없이는 개정 자체가 이루어지지 않는 것입니다.
따라서 서울서부지방법원의 변희재씨 사건 담당 판사는 2회의 선고기일에 변희재씨가 출석하지 않자, 더 이상 피고인의 불출석으로 기일을 공전시킬 수 없으므로 구속영장을 발부하여 변희재씨의 선고기일의 출석을 강제하게 된 것이라고 하겠습니다. 명예훼손으로 실형이 선고되는 경우는 많지 않으나, 법원이 이 사건을 통상재판에 회부한 것은 수사과정에서 밝혀진 사실 이외에 특별히 피고인에게 유리한 사정이 없는 한, 약식명령과 유사한 수준의 벌금형을 선고하는 선에서 사건을 종결하지는 않을 것이라고 보는 것이 타당한 전망일 것입니다. 그렇다고 명예훼손죄로 실형 선고하는 것도 이례적이라고 할 수 있으므로 아마도 재판부는 1년 미만의 징역형에 집행유예 정도를 선고하지 않을까 조심스럽게 예상해 봅니다.
확인되지 않은 사실을 근거로 비방하거나, 자극적인 언사로 특정 인사들에 대한 공격을 한 결과는 본인이 고소를 하고 민사소송을 제기하는 입장에서는 통쾌할지 몰라도, 당하는 입장이 되면 어떨지 심사숙고해야할 필요성을 온몸으로 보여주시느라 고생하신다는 말씀 덧붙여드리고 싶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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