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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년 5월 26일 수요일

사람에게 침뱉는 것은 폭행죄의 폭행인가 (feat. 무죄판결)

 


사람을 폭행하면 형법상 폭행죄로 처벌될 수 있습니다. 일반적으로 폭행 이라고 하면 상당히 심한 정도로 고통을 주는 신체접촉행위가 있어야 한다고 이해하는 것이 일반적입니다. 하지만 형법상 폭행의 범위는 생각한 것보다 상당히 넓습니다. 

기본적으로 폭행은 형법에서만 해도 4가지 정도의 의미로 사용되고 있습니다. 따라서 어떤 죄의 폭행이냐에 따라서 달리 이해해야 합니다.

1) 최광의의 폭행 : 대상 불문 유형력의 행사- 소요죄, 다중불해산죄의 폭행

2) 광의의 폭행 : 사람에 대한 직간접적인 유형력의 행사-공무집행방해죄, 특수도주죄, 강요죄의 폭행

3) 협의의 폭행 : 사람의 신체에 대한 유형력의 행사-폭행죄, 특수공무원폭행죄의 폭행

4) 최협의의 폭행 : 상대방의 반항을 불가능하게 하거나 현저히 곤란하게 할 정도의 유형력의 행사-강도죄, 강간죄의 폭행

폭행죄의 폭행의 경우 사람의 신체에 대한 유형력의 행사하는 방법은 상당히 여러가지가 있습니다. 형법교과서에서 열거되는 대표적인 폭행의 방법으로 이러한 것이 열거되고 있습니다.

-사람에게 돌을 던지는 것

-뺨을 때리는 것

-침을 뱉는 것

-손이나 옷을 잡아당기거나 미는 것

-안수기도를 하면서 가슴과 배를 누르는 것

-모발이나 수염을 자르는 것

국선변호를 하는 사건 중에 실제로 차량을 몰고 가다가 끼어들기로 인해서 말다툼을 하던 중 차량의 열린 창문을 통해 피고인이 침을 뱉어 운전자가 자신의 팔에 침이 뭍었다는 이유로 신고를 해서 폭행죄로 기소된 사건이 있었습니다.

교과서적으로 본다면 침을 뱉는 것 또한 폭행에 해당하기도 하고, 실제로 물컵에 든 물을 사람에게 뿌리면 폭행죄가 성립한다는 사례부터 인분을 대문 앞에 뿌린 경우에도 거주자에 대한 폭행이 성립된 사례까지도 있으므로 사람에게 침을 뱉은 이상 폭행죄로 처벌될 가능성이 전혀 없는 사건은 아니었는데요.

일단 이 사건은 피고인이 운전자를 향해 침을 뱉은 것은 인정하는 사안이었지만, 침이 운전자의 팔에 뭍었는지 여부가 불분명한 사안이었습니다. 운전자는 침이 뭍었다고 주장하고 있었지만, 피고인의 침이 차창에 뭍은 사진이 증거로 제출되어 있었던 반면, 자신의 팔에 뭍었던 침은 바로 닦아버렸기 때문에 사진조차 찍어두지 않았다고 증언하고 있어 객관적으로 침이 신체에 뭍었다는 증거 자체는 없었기 때문입니다. 또한 차창에 뭍은 침이 조수석을 넘어 운전석까지 튀어 갔다는 것이 차창의 각도로 볼 때 가능성이 높지 않고, 피고인은 차창을 올렸다 내렸다 하는 운전자에게 화가 나서 자신의 차에서 수차례 탔다 내렸다를 반복하다가 차에다 침을 뱉은 사정이 있었기 때문에, 종합적인 사정을 고려할 때 피고인의 폭행의 고의를 인정할 수 없어 무죄판결이 선고되었습니다.

법리적으로 사람에게 침뱉는 것이 폭행에 해당하는 것인가 라는 질문에 대한 대답은 폭행이라고 할 수 있지만, 사실관계에 따라서 실제로 침이 뭍었는가, 침뱉은 사람이 폭행의 고의로 침을 뱉은 것인가 등에 따라 실제 사안에서는 폭행죄의 성립 여부가 바뀔 수 있게 되는 것이니, 참고하시면 될 것 같습니다.

2020년 10월 28일 수요일

무죄 두 건

 


같은 날 선고된 2건의 국선변호 사건에서 모두 무죄가 나왔습니다. 기쁜 일이기도 하고, 두건이 함께 무죄가 나온 경우는 많이 없기도 해서 기록으로 남겨봅니다.

한 사건은 절도죄로 기소된 사건이었습니다.

피해자가 웨이크보드를 오피스텔 우편함 옆 우편물 쓰레기 버리는 통에 세워두고 잠깐 편의점에 볼일 보러간 사이 피고인이 술을 먹고 귀가하던 중 웨이크보드를 재활용 쓰레기로 버리는 다리미판 이라고 생각하고 가지고 자신의 집(같은 오피스텔 거주)으로 가지고 올라갔는데,  피해자가 웨이크보드가 없어진 것을 보고 경비실에 CCTV를 돌려 피고인이 가져간 것을 알고, 돌려달라고 하여 당일 돌려받았습니다. 그런데 피해자가 웨이크보드에 흠집이 난 것이 아닌지 트집을 잡아서 피고인과 피해자 사이에 말다툼이 있었는데, 피해자가 앙심을 품고 피고인을 절도죄로 고소해서, 수사기관은 피고인이 절도한 것이라고 벌금을 구형했습니다.

피고인 말씀을 들어보니, 웨이크보드가 다리미판이 아니라는 것도 몰랐고, 놓였던 장소가 선풍기 등 재활용품을 놓아두는 장소이기도 했던 점, 당시 늦은 시간이라 피고인이 경비실에 재활용품인지 확인하기 어려운 상황이었던 점, 경비실의 연락을 받고 바로 돌려준 점 등을 근거로 절도의 고의 내지 불법영득의사가 없다고 다투었는데, 이것이 인정되어 무죄가 선고되었네요.

다음 사건은 근로기준법 사건이었는데,

피고인이 고소인을 고용해서 한동안 일을 하였다가, 고소인이 독립해서 부산으로 내려가서 피고인과 동일한 업종으로 사업자등록을 하고 사업을 하는 상황에서, 전국 각지에 일이 있었던 피고인이 고소인과 함께 작업을 하면서 고소인에게 일당 형식으로 작업의 대가를 지급하는 관계에 있었는데, 피고인이 고소인에게 약속한 일당을 일부 지급하지 못하게 되자, 고소인이 근로감독관에게 피고인이 고소인을 계속해서 고용해서 일을 시키면서 "임금"을 지급하지 않은 것이라고 주장하면서 근로기준법위반 으로 진정했고, 근로감독관과 검사는 그 주장을 받아들여 피고인을 근로기준법위반 혐의로 벌금형을 구형했습니다.

그런데 고소인이 피고인으로부터 독립한 이후 거의 10여년간 피고인과 고소인은 독립된 사업자로서 거래를 하거나, 프리랜서 형식으로 일을 도와주는 관계였다는 것이 피고인과 고소인 사이에 주고받은 카카오톡에 나타나고, 특히 고소인이 돈을 주면 자신의 사업자 명의로 세금계산서를 끊어주기로 하였다는 정황이 보였습니다. 이것을 주된 근거로 해서 피고인과 고소인의 관계는 동업 내지 프리랜서 로서 건별로 계약하고 일을 하는 관계이지 고용관계가 아니었다는 점을 주장했고, 고소인을 증인으로 불러서 이러한 점을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그래서 고소인과 피고인 사이의 관계의 법적 성격이 "고용"이 아니었다는 점이 인정되어 무죄가 선고되었습니다.

법원에 온 피고인들 중 억울하지 않은 분들은 거의 없지만, 피고인이억울하다고 생각하시는 부분을 재판장님께 설득해서 무죄를 받아내는 것이 형사재판의 큰 보람 중 하나입니다. 올해에도 이런 억울한 사람을 줄이는데 일조할 수 있어서 마음 뿌듯하네요.


2020년 8월 13일 목요일

"검찰 기소가 직권남용" ... '사법농단' 연루 전 법원장의 최후진술

 


"검찰기소가 직권남용" ... '사법농단' 연루 전 법원장의 최후진술, 2020. 8. 13. KBS뉴스

판사 자신이 피고인이 되었을 때 재판부에 대한 존경을 잃지 않으면서도 할말을 다 하는 최후진술은 이런 것이라는 걸 보여줍니다. 최후진술 전문을 옮겨봅니다.

[목 가다듬은 뒤] 존경하는 재판장님, 그리고 두 분 판사님.

그동안 피고인의 주장을 경청해주시고 충실하게 심리해주신 데 대해서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오랜 시간, 이 법정에서 증인신문과 서증조사가 충실히 이루어졌습니다. 이 법정에서 드러난 바에 의하면 사실관계는 비교적 명확하게 판단하실 수 있으리라고 생각합니다. 서부지법에서 당시 집행관실의 비리 상황을 접하고 얼마나 충실하게 감사하여 좋은 결과를 이끌어냈고, 그 과정에서 담당자들이 얼마나 최선의 노력을 기울였는지 알 수 있습니다.

저는 공직자의 직분이 단순한 월급쟁이가 아니라 국가기관의 일원으로서 문제가 생기면 국민과 사법부를 위하는 마음으로 발 벗고 나서야 한다고 평소 생각해왔습니다.

제가 서부법원장으로 있을 때 집행관실 비리 문제가 터졌습니다. 해당 업무담당자에게 맡기고 보고만 받을 수도 있었지만 저는 그렇게 하지 않았습니다. 이것은 사법부에 대한 신뢰뿐만 아니라 국가 법 집행 기능을 저해하는 반드시 고쳐야 할 본질적 비리라고 생각해서 이번 기회에 제대로 감사해 비리가 있으면 책임을 묻고 제도 개선점이 있으면 고쳐나가기로 했습니다.

대법에서 발간한 ‘법원 사람들’ 중에 제가 한 인터뷰에도 나와 있지만, 누군가 힘들더라도 열심히 해서 잘해놓으면 다른 많은 사람들이 혜택을 받을 수 있다는 평소 제 소신에 따라 행동했습니다. 그 결과 단순히 책임 있는 집행관들에 대한 징계에 그친 것이 아니라, 법원행정처에 제도개선책을 건의해서 서부지법 의견대로 관련 예규가 개정되어 집행관실 비리 구조를 원천적으로 차단시킬 수 있게 되었습니다.

이른바 ‘사법행정권 남용’에 관한 수사가 시작되고 압수된 임종헌 차장의 USB에서 나상훈 판사가 보낸 보고서 파일 5개가 발견되었습니다. 그 보고서 파일은 사법행정권 남용 수사와 아무런 관련이 없었지만, 마침 담당 검사가 2016년 서부집행관실 비리 사건 담당 검사여서 이 부분을 샅샅이 파헤치기 시작했습니다.

국민의 인권과 자유를 보호하기 위해서 우리 헌법과 법률은 검사 제도를 두어 검사에게 준사법기관으로서의 지위를 부여하고 공익의 대변자로서 객관 의무를 지우고 있습니다. 그런데 검찰은 이 사건 수사 절차에서 객관의무에 위배해서 2016년 당시 서부지법에 근무한 법관이나 직원들을 조사하면서 앞서 변호인이 말씀하신 바와 같이 사소한 흠을 잡아 겁을 주기도 하고 회유하기도 하며, 위축되고 겁에 질린 그들로부터 원하는 진술을 얻어낸 것으로 보입니다.

저와 같이 서부지법에 근무하면서 지극히 정상적으로 업무를 처리했음에도 검찰에 불려가 고초를 당한 우리 직원들이나 법관들을 제가 지켜주지 못해서 참담한 마음입니다. 그들이 검찰 조사 시 받았을 두려움, 모멸감, 수치심 등을 생각하면 법조 선배로서 당시 기관장으로서 깊은 책임감을 느낍니다.

수사 절차뿐만 아니라 공소 사실 구성에 있어서도 검찰은 무리수를 두었습니다. 이 사건 공판절차에서는 압수수색 영장의 밀행성을 그토록 강조하는 검찰이, 이 사건 수사 당시에는 압수수색 영장 집행 사실과 혐의 사실을 거의 실시간 언론에 흘려 마치 그 혐의가 사실인 양 중계되도록 하고 심지어 영장이 기각된 사실까지 언론에 제공하여 여론몰이로 법원의 영장 발부를 압박하였습니다.

검찰은 검찰 조직 내부도 아닌 언론에까지 정보를 흘리면서 나상훈 판사가 임종헌 차장의 요청으로 압수수색 사실을 조직 내부에 있는 법원행정처에 보고하는 것이 무슨 큰 문제인 양 주장하고 있습니다.

서부지법에서 집행관실 비리를 감사하면서 작성된 문답서에 당시 진행되던 검찰에서의 진술 내용이 불가피하게 파악된 걸 보고서는, 역으로 검찰에서의 진술 내용 파악을 위해 감사했다고 뒤집어씌웠습니다.

검찰은 이처럼 법과 상식에 위반해 특정한 목적을 가지고 일정 방향으로 수사를 이끌어갔고 마침내 피고인이 법원장 직책에 있었단 이유만으로 무리하게 기소하였습니다. 행위책임을 묻는 것이 아니라 직위책임을 묻고 있는 것입니다.


하지만 이 법정에서 재판 진행한 결과, 검찰 주장을 뒷받침할 만한 근거는 전부 탄핵되었고 정상적으로 진행된 감사절차와 그 결과만이 나타났을 뿐입니다.

이 사건 수사와 기소라는 검찰권 행사가 제대로 된 것이라고는 도저히 생각할 수 없고 이것이야말로 검찰권과 공소권을 남용한 직권남용에 해당한다고 생각합니다.

이제 모든 증거조사와 법률적 공방이 마무리되고 진실의 순간을 눈앞에 두고 있습니다. 어둡고 길었던 터널이 끝나는 순간입니다. 검찰이 아무리 특정한 의도를 가지고 몰고 간다 하더라도 없는 사실을 만들어낼 수는 없고, 진실을 감출 수도 없을 것입니다.

현명하신 재판부께서 잘 판단해 주시리라고 믿습니다. 어떠한 결과가 나오더라도 담담히 받아들이겠습니다. 바라던 결론이 나온다면 30년 넘게 일선 법원에서 누구보다 치열하게 재판해 온 한 법관의 훼손되고 침해된 명예나 자긍심이 조금이나마, 아주 조금이나마 회복될 것입니다.

피고인의 말을 경청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2019년 7월 26일 금요일

[책 소개] 어떤 양형 이유



박주영, 어떤 양형 이유, 박영사(2019)

변호사 생활을 하고 있지만 역시나 하는 일이 같지는 않기 때문에 판사, 검사가 어떻게 생각을 하는지는 궁금한 영역 중의 하나입니다. 그래서 제목을 보자마자 YES24에 주문을 했더니 당일배송되어서 바로 다음날 다 읽어버렸네요. 여름휴가기간에 진득히 보아도 괜찮았을 것 같지만, 아무래도 고뇌가 배어나오는 내용을 오래 붙잡고 있으면 전염되기 때문에 빨리 떼어버린 측면도 있습니다. 형사재판을 하면서 세상에 이런 일이에 나올 사람들을 매번 보는 판사님들께는 이런 이야기거리가 많겠구나 하면서 읽었습니다. 돌고 돌아 인간을 사랑해야 할 수 있는 사제같은 직업에 종사하는 판사님들의 노고에 감사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다음은 제가 메모해 놓은 부분들입니다.


재판기록은 일정 기간이 지나면 파쇄하지만 판결문은 영구 보존되므로, 판결문에 사건의 내용과 양형이유를 상세하게 기재해 그 사안을 항구적으로 알 수 있게 하려는 의도도 있다.

- 박주영, 어떤 양형 이유, 박영사(2019), 6면

매에 장사 없고, 가랑비에 옷 젖고, 잔 펀치에 나가 떨어진다는 사실을 그땐 몰랐다.

- 박주영, 어떤 양형 이유, 박영사(2019), 9면

개별 사건 판결문이 당사자와 상급심을 상대로 결론의 정당성과 추론의 합리성을 설득하는 과정이라면, 이 책은 과연 나 같은 자들에게 정의를 맡겨도 될지를 판단하기 위한 일종의 참고자료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 박주영, 어떤 양형 이유, 박영사(2019), 10면

법정은 모든 아름다운 구축물을 해제하는 곳이다. 사랑은 맨 먼저 해체되고, 결국 가정도 해체된다. 형사사건에서는 한 인간의 자유를 지지해준 법적 근거마저 해체시킨다.

- 박주영, 어떤 양형 이유, 박영사(2019), 23면

실제 형사법정에 있다 보면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용서와 합의를 무수히 목격한다. 수년간 며느리를 강간한 시아버지를 며느리와 아들이 용서하고, 자신의 어린 딸으 강간한 친구와 합의하고, 친딸을 강간해 임신까지 시킨 계부의 선처를 구하는 어머니조차 그리 드물지 않다.

- 박주영, 어떤 양형 이유, 박영사(2019), 24-25면

가정은 사적 영역이므로 공권력 개입은 가급적 자제되어야 하고 신중해야 한다는 명제는, 그 가정이 가정으로서 최소한의 기능을 유지하고 있을 때에만 성립될 수 있는 것이다.

- 박주영, 어떤 양형 이유, 박영사(2019), 28면

자백은 범행을 진지하게 참회하므로 특별히 양형에 참작하는 면도 있지만, 증인신문 등 증거조사를 생략해 불필요한 공판을 줄여서 판사에게 유무죄 판단의 고통을 줄여주기 때문에라도 유리한 정상이 된다.

- 박주영, 어떤 양형 이유, 박영사(2019), 32면

성범죄에서 가장 중요한 증거인 피해자 진술은 시종일관 면밀히 검토된다. 고소에 이르게 된 경위, 고소의 시점, 최초진술 및 그 이후 여러 진술들과 최종 법정진술 사이에 차이가 있는지, 그 차이가 시간의 경과에 따른 자연스러운 것인지, 아니면 진술내용이 너무 흔들림이 없어 오히려 작위적인 것은 아닌지, 피고인의 진술과는 어떤 차이가 있는지, 스스로 경험하지 않으면 알기 어려운 내용이 포함되어 있는지 등 피해자 진술 자체의 일관성과 구체성을 먼저 따진다.

- 박주영, 어떤 양형 이유, 박영사(2019), 34면

피고인이 범인인든 아니든, 그는 자신의 행위를 변명하고(설사 거짓말이라고 할지라도) 방어할 권리가 있다는 점을 명심하고 가급적 흥분하지 않아야 한다.

- 박주영, 어떤 양형 이유, 박영사(2019), 39면

누군가 나를 지하철 성추행범으로 지목한다면 결백함을 입증할 수 있을까 상상해 보지만, 나조차도 쉽게 빠져나올 수 없을 것 같다.

- 박주영, 어떤 양형 이유, 박영사(2019), 42면

처벌의 필요성을 강조해 기습추행이나 성적으로 민감하지 않은 부위에 대한 신체접촉 등의 경우에까지 형법상 강제추행으로 포섭하는 것은, 법률해석의 한계를 넘는 것으로 형법의 대원칙인 죄형법정주의에 반하며 이는 입법으로 해결해야 할 문제라는 비판이 있다.

- 박주영, 어떤 양형 이유, 박영사(2019), 47면

백무산 시인의 표현을 빌리자면, 우리는, 놀이동산 대기줄을 길게 하고 급행 티켓을 팔아먹고, 포경을 금지하고 고래고기를 팔아먹고, 유전무죄를 만들어놓고 전관예우를 팔아먹고, 전관예우를 만들어놓고 현직을 팔아먹고, 법을 만들어놓고 탈법을 팔아먹는, 무한 탐욕의 시대에 살고 있다(<주인님이 다녀가셨다>, <<그 모든 가장자리>>, 창비, 2012

- 박주영, 어떤 양형 이유, 박영사(2019), 54면

판사들이 배석판사가 부장에게 판결 초고를 건네는 것을 '납품한다'고 하고, 재판기일을 '장날'이라고 부르는 데는 이유가 있다.

- 박주영, 어떤 양형 이유, 박영사(2019), 87면

다른 판사에 비해 능력이 떨어진다는 지적이 들리는 순간 머리만 믿고 자존심 하나로 버텨온 인생에 치명상을 입는다.

- 박주영, 어떤 양형 이유, 박영사(2019), 87면

두꺼운 팔뚝이, 빠른 머리회전이, 성실함이, 튼실한 다리가, 온갖 모멸을 견디는 뚝심만이, 그의 소박한 자본이다.

- 박주영, 어떤 양형 이유, 박영사(2019), 90면

소수자에 대한 법적 보호를 시혜라고 보면, 그 시선은 언제나 철회해도 무방한 것이 된다.

- 박주영, 어떤 양형 이유, 박영사(2019), 107면

형사처벌을 받을 수 있는 만 14세 이상 청소년의 경우 검찰이나 법원의 재량에 따라 형사재판을 받을 수도 있고 보호처분을 받을 수도 있는데, 현행 법령은 청소년들의 범죄는 형사처벌보다 보호처분을 통한 교화에 중점을 두고 있다.

- 박주영, 어떤 양형 이유, 박영사(2019), 128면

소년사건은 최종 결정을 변경하는 일이 잦고, 판사가 집행기관의 도움을 받아 보호처분 집행에 깊이 개입한다는 점에서도 차이가 크다.

- 박주영, 어떤 양형 이유, 박영사(2019), 129면

증인석을 붙들고 허공에서 버둥거리는 아이의 두 다리를 볼 떄, 유치감으로 들어가려는 아이를 돌려세우곤, 와락 껴안았다 왈칵 등 떠미는 엄마를 볼 떄, 나는 늘 돌아앉았다.

- 박주영, 어떤 양형 이유, 박영사(2019), 157면

알츠하이머가 특히 두렵고 고통스러운 것은 사랑하는 이의 스러짐 때문만은 아니다. 그이의 기억에 존재하는 나와 우리의 사멸을 함께 천천히 지켜봐야 하기 때문이다.

- 박주영, 어떤 양형 이유, 박영사(2019), 173면

어떤 법관은 법적 안정성이 정의의 영역이라면, 구체적 타당성은 사랑의 영역이라고 말하기도 했다.

- 박주영, 어떤 양형 이유, 박영사(2019), 195면

칼 포퍼의 지적처럼, 반증가능성 없는 과학은 사이비이고 닫힌 사회가 곧 전체주의듯, 화석화된 판사는 그 자체로 해악이다.

- 박주영, 어떤 양형 이유, 박영사(2019), 196면

"아들이 곧 군대를 가는데 몸이 불편한 어머니가 걱정됩니다. 조금 선처해주시기 바랍니다."라고 적혀 있었다. 담백하고 건조한, 짧은 의견서였다. '조금'이라는 말이 가시처럼 눈에 걸렸다. 많이도 아니고, 최대한도 아니고, 법이 허용하는 한도 아니고, 조금 선처해달라니. 뻔뻔스럽기보다는 삶을 달관한 듯한 말에서 여느 피고인처럼 느껴지지 않았다.

- 박주영, 어떤 양형 이유, 박영사(2019), 202면

공식적 사법절차로부터 이타해 사회 내 처우 프로그램에 위탁하는 절차를 다이버전이라 부른다.

- 박주영, 어떤 양형 이유, 박영사(2019), 209면

법원에 대한 비난은 언제 들어도 아프지만 그중에서도 과거 간첩조작 등 시국사건에서, 고문당했다는 피고인과 변호인의 주장을 듣고도 재판부가 "바짓가랑이 한번 걷어보라고 하지 않았다"(한홍구, <<사법부>>, 돌베개, 2016)는 글을 읽고 받은 충격을 잊을 수 없다. 이 글은 그 어떤 비난보다 아픈 회초리였다.

- 박주영, 어떤 양형 이유, 박영사(2019), 229면

판사들 사이에서 주취감경은 앞서 말한 것과 같은 사례, 즉 법정형이 대단히 무거운 사례에서 부당한 양형을 해야 하는 경우에만 아주 제한적으로 사용을 검토해야 한다고 묵계처럼 통용되어 왔다.

- 박주영, 어떤 양형 이유, 박영사(2019), 249면



2019년 1월 23일 수요일

[문영호의 법의 길, 사람의 길] 판사와 검사, 왜 함께 가야 하나


일반적인 이야기지만 형사절차에 대한 이해 없이는 쓸 수 없는 글.
문영호 변호사님은 검사장 출신 태평양의 고문변호사이시군요.

[문영호의 법의 길, 사람의 길] 판사와 검사, 왜 함께 가야 하나, 중앙일보 2019. 1. 23.자 칼럼

"판사의 우위에 눌려 지낼 것 같은 검사에게도 숨통이 트여 있다. 그게 없다면 누가 검사의 길을 택하겠는가. 정제된 진실이 아닌 생생한 진실에 더 가까이 갈 수 있는 것은 검사의 특권이다. 사건 발생 이후 많은 시간이 지나 법대 위에서 접하는 진실은 신선도가 떨어질 수밖에 없다. 조사 도중 짜장면을 함께 먹으며 범죄자의 인생 역정을 듣고 눈물을 닦아주는 것도 검사만이 가능하다."



2018년 1월 28일 일요일

당신이 판사입니다


대법원 양형위원회에서 양형체험프로그램  "당신이 판사입니다"라는 사이트를 만들어서 누구나 재판 사례를 가지고 판결을 내려보고, 자신의 양형과 실제 재판에서 내려진 선고형을 비교해 볼 수 있도록 했습니다. PC와 모바일 어디서나 가능하고, 실제 사안을 배우들의 실감나는 연기를 통해 동영상으로 접하고(형사님 설명 ㅎㅎㅎ), 검사의 구형, 변호인의 변론, 피고인의 최후변론까지 재판절차에서 판사가 접하게 되는 내용을 모두 시청한 다음 자신이 생각하는 판결을 내리는 구조로 되어 있습니다. 공을 많이 들인 티가 납니다.

두가지 사건에 대해서 판결을 해 볼 수 있는데 술취해서 어머니에게 행패 부리는 아들을 말리던 아버지가 목졸라 죽인 "살인" 사건에 대해 체험을 해 보았습니다. 변호사 아니랄까봐 판사님보다 더 너그러운 형을 결정하더군요.

신문기사만 보고 판사의 판결결과를 오늘은 칭송하고, 내일은 비판하는 세태에 대해서 판사들이 어떠한 기준을 가지고 어떻게 판결을 내리는지 보여주는 것은 멀리 보았을 때 필요한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혹시 국민참여재판의 배심원으로 뽑혔을 때 도움이 될 수도 있으니 관심 있으신 분은 필히 체험해 보시기 바랍니다.



2016년 11월 4일 금요일

형사재판의 피고인은 재판중 출국할 수 없는가

*가장 최근 출국금지 기사의 주인공이었던 안종범 전 청와대수석 사진입니다.

종종 형사재판을 받고 있는 동안 출국이 당연히 금지되는 것인지를 묻는 질문을 받곤 합니다. 출국금지는 형사재판과 관련없이 법무부장관이 내리는 행정처분인데, 중대한 범죄의 피의자나 피고인의 경우에는 수사나 재판단계에서 출국금지조치가 내려지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러나 원칙적으로 불구속수사/재판을 받고 있는 피의자/피고인에게 출국금지 조치가 취해져 있지 않은 경우 당연히 출국이 금지되는 것은 아닙니다. 따라서 출국금지가 되어 있지 않다면, 재판일정에 영향을 주지 않는다면 외국 출장을 다녀오면 됩니다. 그러나 출국을 이유로 재판에 불출석하려 하는 경우, 검사에 의하여 바로 출국금지조치가 내려질 수 있으니 주의하여야 할 것입니다. 형사재판을 받는 피고인의 경우, 출입국관리법에 따라 재판을 받고 있다는 이유만으로 출국금지하는 것이 가능하기 때문입니다(출입국관리법 제4조 제1항 제1호). 출입국관리법의 이 조항에 대하여 헌법재판소는 이 조항이 헌법에 위반되지 않는다는 "합헌결정"을 내린 바 있습니다(2015. 9. 24. 선고 2012헌바302 결정).

 ① 법무부장관은 다음 각 호의 어느 하나에 해당하는 국민에 대하여는 6개월 이내의 기간을 정하여 출국을 금지할 수 있다.  <개정 2011.7.18.>
1. 형사재판에 계속(係屬) 중인 사람
2. 징역형이나 금고형의 집행이 끝나지 아니한 사람
3. 대통령령으로 정하는 금액 이상의 벌금이나 추징금을 내지 아니한 사람
4. 대통령령으로 정하는 금액 이상의 국세·관세 또는 지방세를 정당한 사유 없이 그 납부기한까지 내지 아니한 사람
5. 그 밖에 제1호부터 제4호까지의 규정에 준하는 사람으로서 대한민국의 이익이나 공공의 안전 또는 경제질서를 해칠 우려가 있어 그 출국이 적당하지 아니하다고 법무부령으로 정하는 사람

자신이 형사재판을 받고 있는 경우 출국금지가 되었는지는 출입국관리사무소에서 직접 조회를 해 보면 알 수 있습니다. 조세체납 등을 이유로 출국금지되는 경우 본인에게 통보가 되지만, 검사에 의하여 출국금지되는 경우 본인에게 알려주지 않는 경우도 많은 것 같습니다.

2015년 2월 27일 금요일

형사공탁시 피해자 인적사항 몰라도 공탁

성폭행 피해자 인적사항 몰라도 공탁할 수 있게, 법률신문 2015. 2. 26.자 기사

대법원이 공탁규칙을 개정하면서 '형사공탁'과 관련 조항(제80조 형사공탁)을 신설하였는데, 지금까지는 공탁의 경우 예외없이 피공탁자의 성명, 주소, 주민등록번호 등을 기재하도록 하고 있었으나(공탁규칙 제20조 제2항 제5호) 형사공탁의 경우에는 공탁서 기재사항의 예외를 인정해서, 피공탁자의 인적사항 대신 해당 형사사건이 계속중인 법원과 사건번호, 공소장에 기재돼 있는 피해자를 특정할 수 있는 명칭을 기재할 수 있도록 하였으며, 공탁원인사실은 피해발생시점과 채무의 성질만을 특정해 기재하게 하고, 피공탁자의 주소를 소명하는 첨부서면은 형사재판이 계속중임을 증명하는 서면과 공소장 사본으로 대신할 수 있게 됩니다. 입법예고된 공탁규칙 개정안의 해당 부분은 다음과 같습니다. 공탁관이 형사공탁을 받게 되면 법원에 피해자의 성명, 주소, 주민등록번호를 요청하여 받는 절차를 거치게 되는 것이네요. 형사공탁이 계속중인 형사재판의 경우에만 이용할 수 있으므로 형사재판 이전의 수사단계에서는 이러한 특례를 이용하지는 못할 것으로 보입니다.

대법원은 개정 공탁규칙에 대하여 3월 27일까지 의견수렴뒤 대법관회의의 규칙개정을 거쳐 7월 6일경부터 시행할 예정이라고 합니다(입법예고안은 다음 링크 참조).

공탁규칙 개정안

제80조(용어의 정의) “형사공탁”이란 소송계속 중인 형사재판의 피고인 또는 그 대리인이 피해자의 성명·주소·주민등록번호 등 인적사항이 공개되지 않아 이를 과실 없이 알지 못하는 경우에 피공탁자의 인 적사항을 구체적으로 특정하지 않고 피해자를 피공탁자로 하여 공탁하는 것을 말한다.

제81조(공탁서의 특례)
① 형사공탁의 공탁서에는 제20조제2항제5호의 피공탁자 인적사항 기재를 대신하여 해당 형사사건이 계속 중인 법 원과 사건번호, 공소장에 기재된 피해자를 특정할 수 있는 명칭을 기재할 수 있다.
➁ 형사공탁의 공탁원인사실은 피해 발생시점과 채무의 성질만을 특정하여 간략하게 기재할 수 있다.
➂ 공탁금의 회수에 조건을 붙이거나 이를 제한하는 경우에는 공탁 서에 그 내용을 구체적으로 기재하여야 한다.
➃ 형사공탁의 공탁서는 해당 형사사건이 계속 중인 법원 소재지의 공탁관에게 제출할 수 있다.

제82조(첨부서면의 특례) 형사공탁의 경우 제21조제3항의 피공탁자의 주소를 소명하는 첨부서면은 형사재판이 계속 중임을 소명하는 서 면과 공소장 사본을 첨부하는 것으로 대신할 수 있다.

제83조(피해자정보 제공의 요청 등)
➀ 공탁관은 형사공탁의 공탁서를 접수한 경우 지체없이 형사재판이 계속 중인 법원에 공탁서 부본을 첨부하여 피해자의 성명·주소·주민등록번호(이하 “피해자 정보”라 한다 )를 요청하여야 한다.
➁ 공탁관은 형사재판이 계속 중인 법원으로부터 피해자 정보를 제 공받은 경우 그 내용을 전산등록한 후 공탁절차를 진행한다.
➂ 제2항의 경우 피해자의 주소가 관할구역 안에 없는 때에는 공탁 자에게 그 사실과 관할법원을 통지하고, 대법원 예규로 정하는 바에 따라 공탁기록을 관할공탁소로 송부하여 처리한다. 다만, 공탁자가 관할공탁소 송부에 동의하지 않는 경우에는 그러하지 아니하다.



2014년 12월 22일 월요일

MC몽과 통진당 해산


헌법재판소의 통진당 해산과 관련해서 신문에서도 페이스북에서도 시끌시끌합니다. 진보적인 시각을 가진 분들 입장에서는 "사상의 자유와 표현의 자유를 억압하게 된다"는 우려가 가장 큰 것 같고, 보수적인 시각을 가진 분들은 "남북한 대치의 특수상황하에서는 정당해산까지도 가능한 것"이라는 입장인 것 같습니다. 어느 쪽의 견해가 더 타당한 것인지 판단할 능력까지는 없지만서도 오늘 페이스북에서 본 포스팅(MC몽과 통진당)에 대해서는 한마디 해야 할 것 같아서 주절주절대 보겠습니다.

우선 위 포스팅이 논리는

MC몽 고의발치-병역기피 사실은 심증은 가나 명백한 증거가 없으니 무죄가 난 것을 보면,
친북성향/이석기 삽질로 인하여 통진당=반민주적 정당이라는 사실 또한 심증은 가나 명백한 증거가 없으니 정당해산까지 되어서는 안된다는 것입니다.

하지만 위 논리는 큰 문제점을 가지고 있습니다. MC몽의 사건은 형사사건입니다. 형사재판은 개인의 인신을 구속하는 매우 강력한 국가적 제재가 부과되는 재판이기 때문에 "무죄추정의 원칙"이라는 것이 적용됩니다. 법관에게 유죄의 심증이 들더라도 검사에 의하여 피고인의 유죄가 입증되지 않는다면 피고인에게는 무죄를 선고할 수 밖에 없다는 것이 바로 "무죄추정의 원칙"의 결론입니다. MC몽 사건에서는 무죄추정의 원칙에 따라 엄격한 유죄의 증명이 이루어지지 못했으므로 무죄가 선고되었을 것이라고 이해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형사재판이 아닌 재판에는 무죄추정의 원칙이 적용되지 않습니다. 통진당 사건에 대한 정당해산심판 사건은 형사재판이 아닙니다. 헌법재판소법은 그 심판절차에 관하여 특별한 규정이 있는 경우를 제외하고는 헌법재판의 성질에 반하지 아니하는 한도에서 민사소송에 관한 법령을 준용합니다(헌법재판소법 제40조 제1항 제1문). 예외가 있는데 바로 탄핵심판 사건의 경우에는 형사소송에 관한 법령이 준용됩니다(헌법재판소법 제40조 제1항 제2문). 즉, 헌법재판 중 무죄추정원칙이 적용된다고 할만한 간접적인 근거가 있는 것은 탄핵심판일 뿐이며, 나머지 헌법재판에 대해서 무죄추정의 원칙은 원칙적으로 적용되지 않는다고 보아야 합니다.

특히 정당해산심판이 정당에게 형사벌을 과하는 절차가 아니기 때문에(물론, 정당이 해산되고  정당재산이 몰수되는 등 그 효과가 유사하긴 하나 적어도 이를 형사벌이라고 할 수는 없다고 보아야 할 것입니다), 정당해산심판하는데 정당이 민주적 정당이라고 추정하면서, 반민주적 정당이라고 주장하는 법무부에게 입증책임을 형사재판에서보다 더 가혹하게 요구할 근거가 없습니다. 따라서 정당해산심판을 하는 헌법재판관들은 제출된 증거에 의하여 통진당이 반민주적 정당임이 입증되었다고 판단한다면 적어도 형식적으로는 정당해산을 선고할 수 있다고 보아야 합니다.

물론 헌법재판소의 판결문의 논리가 비약이라는 비판을 할 수 있을 것이고 무엇보다도 정당이 반민주적이라고 할 때 "민주주의"의 의미에 대해서는 헌법재판소가 어떻게 확정을 하고 통진당이 그에 반하는 정당이라고 판단했는지에 대해서 엄청난 논의가 있을 수 있는데 단기간에 그것을 끝냈다는 것도 말이 안된다는 비판도 일리가 있습니다. 그러나 MC몽에게는 무죄를 선고하는 법원에 비추어 헌법재판소가 통진당을 해산한 것은 잘못된 재판을 한 것이라는 취지의 위 포스팅의 결론은 그닥 설득력이 없습니다. 솔직히 MC몽 사건의 경우 법원이 유죄를 선고했다고 하더라도 그것이 무죄추정원칙에 어긋난다고 판단할 수 있을지 저부터도 회의적입니다. 그런 마당에 MC몽 사건의 결론을 가져와서 통진당 실드를 치려고 하는 것(또는 헌법재판소를 비판하려 하는 것)은 한숨만 나오는 일입니다.

하나 덧붙이자면 헌법재판소는 우리 헌법이 일반 법원보다 훨씬 더 정치적인 판단을 하라고 만들어 놓은 기관입니다. 헌법과 관련된 재판들은 성질상 기본적으로 일반적인 사인간 또는 사인과 정부간 분쟁보다 정치적인/정책적인 고려가 들어갈 수 밖에 없는 사건들입니다. 그래서 헌법재판관의 정치적 입장 등이 그 결론에 투영될 수 밖에 없습니다(미국에서도 사실상 헌법재판을 하는 연방대법관들의 이념적 성향에 따라 결론이 달라지는 것이 당연히 받아들여지고 있습니다). 헌법재판소가 주로 다루는 위헌법률심판이나 헌법소원재판들이 "바로 국회의원이 국회에서 정한 법" 등이 "헌법"에 위반되는지 판단하는 것입니다. 헌법의 추상적인 조항들이 어떤 의미인지 확정하는데 "정치적", "정책적" 고려를 하지 않는다는 것 자체가 말이 안됩니다. 하물며 정당해산심판에는 당연히 정치적, 정책적 판단이 그 고려요소가 되는 것이 당연합니다. 그렇기에 헌법재판소=법원 이라는 공식을 가져다가 일반화한 결론을 들이대는 것은 무리한 일이 될 가능성이 매우 크게 됩니다.

보수화된 헌법재판소를 바라보면서 진보적인 판결을 기대하고, 보수적인 결론을 내린 것에 대해서 민주주의가 사망했다고 탄식하는 분들이 꽤 많습니다. 글쎄요. 소수의견을 존중하는 것이 민주주의이기는 하지만 존중하는 데에도 헌법에 선을 그어놓았고, 그 선을 판단하는 권한을 헌법재판소에 주었습니다. 그리고 헌법재판소를 그 권한을 행사하였을 뿐입니다. 그것이 민주주의의 사망이라고 단정할 수 있을지 모르겠습니다. 한 10년전 쯤에도 대통령 탄핵이라는 초유의 사태가 있었습니다. 국회의석을 믿고 한나라당이 탄핵발의를 하고, 그에 동조하는 민주당 때문에 실제로 헌법재판소에 탄핵심판청구가 이루어졌습니다. 당시 탄핵사유가 될 수 없는 사소한 법률위반으로 탄핵을 강행하는 것을 보면서 엄청 흥분했었던 기억이 납니다. 하지만 지금 생각해 보면 탄핵발의한 국회의원들도 자신들에게 부여된 권한을 행사하였을 뿐인 것이고, 그 덕분에 탄핵역풍으로 국회의 의석분포가 정반대로 바뀌게 되었습니다.

마찬가지로 만약 국민들이 헌재의 판결 결과를 마뜩치 않게 생각한다면, 다음 정권을 바꿔서 헌재의 구성에 진보적인 인사를 넣으면 될 것입니다. 그러나 현재 여론조사결과 등을 보면 통진당 해산에 찬성하는 비율이 64%입니다(국민 10명 중 6명, '통진당 해산은 올바른 결정' ). 통진당은 보수파 뿐 아니라 중도파 국민들이 생각하는 "역린"을 건드렸다고 생각합니다(물론, 통진당측에서는 조작이고 사실이 아니라고 주장하고 있는데, 적어도 제가 접한 언론에서의 보도내용만으로는 그 모임과 모임에서 나왔던 발언전체를 부정할 수 있는 수준은 아닌 것 같습니다). 분단을 직접 겪은 세대가 살아남아 있는 나라에서 공당의 국회의원이 "전쟁시 무기를 들고 시설을 점거하는 방식으로 체제전복하자는 논의"를 하였는데, 그 국회의원이 속한 당이 그 모임에 대해서 제대로 조사해서 문제가 된 국회의원을 제명/축출하는 것이 아니라 감싸고 돈다면 그 당도 믿을 수 없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더 많다는 것입니다. 이러한 상황을 타개하는 것이 바로 우리나라의 진보들의 과제가 아닐까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