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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년 9월 16일 월요일

[책 소개] 반일종족주의



이영훈 외, 반일종족주의, 미래사(2019)

블로그에서 소개하는 책 중에서 인용부분에 커멘트를 붙인 거의 유일한 책인 것 같습니다. 제목짓기에서 내용이 선정적일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생각과 다르지 않았습니다. 일본에 대한 식민지배가 있었기 때문에 발생한 것으로 보이는 과민한 대한민국 국민의 경향을 "종족주의"라고 비판할 측면이 있다는 것까지는 수긍할 수 있다고 하더라도, 이영훈 교수 역시 "자유민주주의", "이승만"에 대한 종교적인 긍정에 함몰되어 있는 부분도 어쩔 수 없이 비판받아야 할 지점이라고 생각합니다. 아래 comment에서 지적해 놓았긴 했지만, 일본/북한을 같은 선상에 놓고 대우하기 어려운 측면을 전혀 고려하지 않았고, 자신의 논리로 자신의 주장이 반박당할 수 있는 허점이 있는 것도 이 책을 엄밀한 이론서로 볼수는 없다고 생각합니다. 어쨌든 일본에 대한 한국인의 태도에 대해서 비판적으로 돌아볼 계기를 마련했다는 점에서 의미는 있지만, 2만원의 가격이 아깝지 않을 정도의 책이라고 하기 어렵기 때문에 추천까지는 하지 않습니다.  하지만 읽고 싶으시면 얼마든지 빌려드릴 의향이 있습니다.

이하는 제가 모르고 있었던 부분을 이 책을 통해 알게 된 부분과 comment를 남길 수 밖에 없었던 부분을 인용했습니다.

1967년 어느 교과서는 전국 토지의 40%가 총독부의 소유지로 수탈되었다고 했습니다. ... 그런데 어느 연구자도 이 40%라는 수치를 증명한 적이 없습니다.
이영훈 외, 반일종족주의, 미래사(2019), 24면
comment : 토지조사사업에서 "국"이 소유자가 된 국유토지가 40% 정도 되었기 때문에 수탈되었다고 하는 것 같은데, 아마도 연구자는 토지조사사업 당시 국유토지 비율로 계산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듦.

그 상태에서 신용하는 토지조사사업에 관해 어릴 적부터 가지고 있는 선입견을 학술의 형식으로 포장하였을 뿐입니다.
이영훈 외, 반일종족주의, 미래사(2019), 38면
comment : 신용하 교수의 논문의 어느 부분이 어떻게 포장했는지 이영훈 교수도 제대로 지적 못하는 것 같은데...

교과서가 '수탈'이나 '반출'이라는 표현을 포기하지 못하는 것은, '수출'이라는 표현으로 바꾸자마자 자신의 일제 비판의 논리가 혼란에 빠진다는 점으 잘 알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이영훈 외, 반일종족주의, 미래사(2019), 53면

만약 '수탈'이 일상화되고 '차별'이 공식화되어 있는 체제라고 한다면, 조선인의 반발로 식민지 통치 자체가 불가능했을 것입니다. 나아가 조선을 일본의 한 지방으로 영구히 편입하고자 했던 식민지 지배의 목표를 거스르는 일이 되었을 것입니다.
이영훈 외, 반일종족주의, 미래사(2019), 65면

김영삼과 문민정부가 선동한 구 조선총독부 건물의 철거 논리 속에는 '민족정기 회복'은 겉포장을 위한 상징조작이었을 뿐, 진짜 목적은 '정통성 없는 역대 정부의 청산'이었습니다.
이영훈 외, 반일종족주의, 미래사(2019), 190면
comment : 뭐 둘다 청산할 부분이 있었고, 청산의 상징으로 총독부 건물 정도면 싸게 먹힌 것 같은데...

도대체 한 나라의 국왕이 국가의 안위는 내평개쳐 놓고 자기만 살자고 일관파천, 미관파천, 아관파천, 영관파천을 시도한 사실을 보면 "이 사람이 과연 국왕 맞나?"하는 회의감이 엄습합니다.
이영훈 외, 반일종족주의, 미래사(2019), 202면

그래서 제헌국회는 고위급과 거물급으로 책임이 중하거나 악질적인 반민족행위자만 처벌하려 했습니다. 단지 일본군 장교였거나, 무기를 몇 차례 헌납했거나, 대동아공영권을 찬양하는 시를 쓴 정도는 처벌 대상으로 삼지 않았습니다. 그게 당시의 국민적 합의였습니다. 친일 협력 행위의 실상을 소상히 아는 당시 사람들이 내린 판단이 그들의 판단이 옳겠죠.
이영훈 외, 반일종족주의, 미래사(2019), 222면
comment : 시간이 지날수록 친일파의 범위가 넓어지는 것이 문제라는 생각은 듦

625 전쟁으로 남한에서만 100만 명이 죽고 100만명이 부상을 입게 한 북한에 대해 단 1원이라도 배상, 보상을 요구했습니까? 일본에 대해선 끝까지 배상을 요구하면서. 훨씬 더 큰 피해를 준 북한에 대해선 아무 소리도 못하는 게 정상입니까?
이영훈 외, 반일종족주의, 미래사(2019), 236면
comment : 북한에 대한 대응과 확실히 비교되기는 하는데, 북한은 헌법상 대한민국 영토를 불법점유하고 있는 반국가단체일 뿐 국가가 아니기 때문에 배상, 보상요구의 상대방이 될 수 없다는 점에 비추어보면 타당한 주장이라고 보기 어려움

북한은 1998년 헌법을 개정하여 "위대한 수령 김일성동지는 민족의 태양이시며 조국통일의 구성이시다"라고 선포하였습니다. 이후 북한에서 민족은 김일성민족으로 바뀌었습니다.
이영훈 외, 반일종족주의, 미래사(2019), 250면
comment : NL계열이 "백투혈통"이라고 북한을 칭송하는 것을 대한민국 일반 대중도 받아들일 수는 없을 것임

1951년의 어느 시기로 추측됩니다. 국군은 장병에게 성적 위안을 제공하는 특수위안대를 설립하였습니다. 1956년 육군본부가 편찬한 [625사변후방전사(인사편)]에 의하면 특수위안대는 장병들의 사기를 양양하고 성적 욕구를 장기간 해소하지 못함에 따른 부작용을 예방할 목적으로 설립되었습니다. 서울에 3개 소대가 있었고, 강릉, 춘천, 원주, 속초에 1개 중대씩이 있었습니다.
이영훈 외, 반일종족주의, 미래사(2019), 259면
comment : 일본군 위안부에 격렬하게 반응하는 것에 비해, 미국군 위안부, 한국군 위안부, 매춘여성 등에게 반응하는 대중의 태도가 부조리한 것은 맞는 것 같음

1453년의 일입니다. 세종은 함경도 회령과 경성 등을 지칭하면서 "북쪽 변방에 근무하는 군사들이 집을 멀리 떠나서 추위와 더위에 고생이 많고 또한 일용의 잡다한 일도 어렵다. 이에 기녀를 두어 사졸을 접대하게 함이 이치에 적합한 일이다."라고 하면서 군사를 접대할 기녀를 설치하라고 명하였습니다.
이영훈 외, 반일종족주의, 미래사(2019), 275면
comment : 허허 세종대왕님...

호주제 가족이 생겨나는 것은 1909년의 민적법, 1911년의 호적법, 1912년의 민법을 통해서였습니다. 그 과정에서 일본식의 가족제도가 이식되었으니 곧 호주제 가족입니다. 호주는 가족 성원을 양육하고 보호할 권리를 국가로부터 부여받은 일종의 권력자로서 가부장입니다.
이영훈 외, 반일종족주의, 미래사(2019), 288면

그들이 진정 인도주의자라면, 그들이 진정 여성주의자이라면, 그들은 해방 후의 한국군 위안부, 민간 위안부, 미국군 위안부에 대해서도 그들이 성노예였음을 주장하면서 한국 남성이나 국가나 미국군의 책임을 물어야 했습니다. 그렇지만 그들은 그렇게 하지 않았습니다. 그들은 빈곤계층의 여인들에 강요된 매춘의 긴 역사 가운데 1937-1945년의 일본군 위안부제만 도려낸 가운데 일본 국가의 책임을 추궁하였습니다. 그들은 인도주의자도 여성주의자도 아니었습니다. 민족주의자였습니다. 아니 난폭한 종족주의자였습니다.
이영훈 외, 반일종족주의, 미래사(2019), 334면

딸을 팔아먹은 것도, 가난한 집 딸을 꾀어 위안부로 넘긴 것도, 또 그 딸이 이 땅에 돌아오지 못하게 한 것도, 설령 돌아왔더라도 사회적 천시 속에서 숨죽여 살도록 한게 우리 한국인 아니었습니까? 근 50년간 지독하게 무관심하지 않았나요.
이영훈 외, 반일종족주의, 미래사(2019), 374면
comment : 일본에게 죄를 뒤집어 씌운다고 이런 문제가 해결되지는 않는다는 점에서 들어봐야할 의견이라고 생각

이완용 등 5명의 매국노 때문에 나라가 망했다고 하지 않습니까. 1905년 당시의 한국인들이 그 같은 소리를 했습니다. 그 소리를 114년이 지난 지금도 되풀이하고 있는 겁니다.
이영훈 외, 반일종족주의, 미래사(2019), 384면
comment : 이 부분 이영훈 교수의 주장은 위안부 관련 같은 책의 내용으로 반박이 가능함
(351면- 1970년대까지 위안부의 실상을 잘 아는 사람들이 많이 살아 있을 때에는 위안부 문제가 제기되지 않았는데, 시간이 40년도 지나 이제 그런 사람들이 없어지고 그 기억이 희미해지자 가공의 새 기억이 만들어지면서 위안부 문제가 등장한 겁니다) 위안부 문제에 대해서 동시대 사람들이 잘 알면서 침묵했으므로 문제삼지 말자고 하는 논리라면, 이완용 등에 대한 1905년 동시대 한국인들의 평가에 대해서도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이고 문제삼지 말자고 해야 할 것임.



2017년 2월 17일 금요일

A.I.가 판사를 대체할 수 있는가


알파고가 이세돌을 격파한 이후, 심심찮게 많은 직역이 AI(인공지능)에 의하여 대체되어 사라질 것이라는 이야기가 나옵니다. 특히 인공지능 변호사가 나왔다는 외국의 예를 들며, 얼마 안되어 판사도 인공지능으로 대체될 수 있다는 것을 전제로 글을 쓰는 분들도 있는 것 같습니다.
오늘 본 이 칼럼([노트북을 열며] 인공지능 판사가 재판하는 날, 중앙일보 2017. 2. 17.자)도 비슷합니다. 그러나 저는 인공지능이 판사를 대체할 것이라는 예측은 사법제도 , 법률 및 재판에 대한 너무나 간단한 전제 및 이해에 서 있기 때문에 실현될 수 없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위와 같은 칼럼이 이해하고 있는 사법제도, 법률 및 재판에 대한 이해는 이런 것입니다.
1. 국회가 정한 법률을 구체적인 사안에 대하여 적용하는 것이 재판이고 그 결과가 판례이다.
2. 추상적인 법률과 구체적인 판례를 모두 인공지능으로 하여금 수집하고 그에 따라 판단하게 되면 어떤 인간보다 정확한(정의로운/공평한) 판단을 하게 된다.
3. 인공지능은 판사와 달리 매수나 회유가 되지 않기 때문에 공평무사하다.

첫번째나 세번째 전제는 당연하다고 할 수 있습니다. 문제는 두번째 전제에 있습니다. 법률이나 판례의 중요한 기준이 되는 자유, 평등, 정의와 같은 가치는 정해져 있는 것이 아니라 사회의 변화나 발전에 의하여 변해가게 됩니다(매우 천천히 그리고 이해가 충돌하는 영역을 중심으로). 그리고 사법제도는 이렇게 변해가는 자유관념, 평등관념, 정의관념에 적응하기 위하여 고안해낸 것입니다. 즉, 수많은 판사들이 사회의 변화에 적응해서 변화된 가치관에 따라 새로운 판결을 하고, 기존의 보수적인 입장에 의하여 다시 반동이 일어났다가, 다시 뒤집어지는 과정이 지금도 사법제도 안에서 계속되고 있는 것입니다. 다만, 이러한 과정은 수년에서 수십년에 걸쳐서 일어나는 것이고, 현재에 있어서의 가치관은 특정해 놓아야 가부간 판단을 할 수 있기 때문에 최종적으로 판례(현대의 대부분의 판사의 가치관)가 어떤 입장이라고 정해 놓은 것 뿐입니다. 그러나 현재의 자유/평등/정의관에 맞는 법률/판례라고 하여 미래에도 항상 그럴 것이라는 보장이 없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법률을 개정하고, 위헌법률심판에 의하여 법률이나 처분을 위헌으로 만들기도 하며, 판례의 입장이 종종 뒤집히는 것을 쉽게 볼 수 있습니다.

알기 쉬운 예로, 현재까지의 판례는 양심적 병역거부에 대하여 병역법위반으로 의율하고, 실형을 선고하고 있습니다. 현재 상태에서 인공지능에게 이에 대한 재판을 맡겼을 때 인공지능은 양심적 병역거부에 대하여 무죄를 선고할 수 있을까요? 인공지능에게 주어진 데이터가 유죄뿐이기 때문에 인공지능에 의한 판례변경은 불가능합니다. 그러나 우리 하급법원은 1년새 9번째 양심적 병역거부는 무죄라는 판단을 내렸고('양심적 병역 거부' 인정할 때 됐나... 법원 또 무죄판결, 연합뉴스 2016. 8. 12.자 기사), 이에 대하여 헌법재판소에 병역법에 대한 위헌법률심판이 계속되고 있는 상태입니다. 사회의 가치관 변화에 가장 늦게 반응하기는 하지만 법원의 판단은 변화가능성이 있고, 이것은 판사가 사람이기에 가능한 것입니다. 사회의 가치관 변화와 이에 대한 사법제도의 수용이 법률개정, 판례변경, 위헌법률심판의 형태로 나타나는 것이고 이것이 사법제도가 사회의 끊임없는 변화에 적절하게 대응하는 방식입니다.

인공지능은 이러한 사법제도의 중요한 부분을 대체할 수가 없습니다. (적어도 현재의) 인공지능에게 기존 데이터의 집적과 그에 대한 빠른 연산을 통한 결과도출 외의 창조적인 기능을 기대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인공지능은 최종적인 판단을 위한 자료수집 및 분석에 대한 최고의 도구가 될 수 있을 지언정, 최종적인 판단을 내리는 주체가 될 수 없을 것입니다. 변호사는 판사와 마찬가지로 오히려 판사보다 더 자주, 더 민감하게 변화하는 사회상이나 의뢰인의 이익을 위하여 창조적인 주장이나 논리를 개발하는 사람입니다. 물론 기존의 판례는 중요한 논리의 틀이지만 항상 그것에 구애받는 것이 아니라 "한번 바꿔보자"라고 달려드는 경우도 분명 존재합니다. 데이터에 기반한 인공지능에 그러한 것을 기대할 수 없는 이상, 변호사 나아가 법조인을 인공지능으로 대체할 수는 없을 것이라고 감히 생각해 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