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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년 2월 17일 금요일

A.I.가 판사를 대체할 수 있는가


알파고가 이세돌을 격파한 이후, 심심찮게 많은 직역이 AI(인공지능)에 의하여 대체되어 사라질 것이라는 이야기가 나옵니다. 특히 인공지능 변호사가 나왔다는 외국의 예를 들며, 얼마 안되어 판사도 인공지능으로 대체될 수 있다는 것을 전제로 글을 쓰는 분들도 있는 것 같습니다.
오늘 본 이 칼럼([노트북을 열며] 인공지능 판사가 재판하는 날, 중앙일보 2017. 2. 17.자)도 비슷합니다. 그러나 저는 인공지능이 판사를 대체할 것이라는 예측은 사법제도 , 법률 및 재판에 대한 너무나 간단한 전제 및 이해에 서 있기 때문에 실현될 수 없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위와 같은 칼럼이 이해하고 있는 사법제도, 법률 및 재판에 대한 이해는 이런 것입니다.
1. 국회가 정한 법률을 구체적인 사안에 대하여 적용하는 것이 재판이고 그 결과가 판례이다.
2. 추상적인 법률과 구체적인 판례를 모두 인공지능으로 하여금 수집하고 그에 따라 판단하게 되면 어떤 인간보다 정확한(정의로운/공평한) 판단을 하게 된다.
3. 인공지능은 판사와 달리 매수나 회유가 되지 않기 때문에 공평무사하다.

첫번째나 세번째 전제는 당연하다고 할 수 있습니다. 문제는 두번째 전제에 있습니다. 법률이나 판례의 중요한 기준이 되는 자유, 평등, 정의와 같은 가치는 정해져 있는 것이 아니라 사회의 변화나 발전에 의하여 변해가게 됩니다(매우 천천히 그리고 이해가 충돌하는 영역을 중심으로). 그리고 사법제도는 이렇게 변해가는 자유관념, 평등관념, 정의관념에 적응하기 위하여 고안해낸 것입니다. 즉, 수많은 판사들이 사회의 변화에 적응해서 변화된 가치관에 따라 새로운 판결을 하고, 기존의 보수적인 입장에 의하여 다시 반동이 일어났다가, 다시 뒤집어지는 과정이 지금도 사법제도 안에서 계속되고 있는 것입니다. 다만, 이러한 과정은 수년에서 수십년에 걸쳐서 일어나는 것이고, 현재에 있어서의 가치관은 특정해 놓아야 가부간 판단을 할 수 있기 때문에 최종적으로 판례(현대의 대부분의 판사의 가치관)가 어떤 입장이라고 정해 놓은 것 뿐입니다. 그러나 현재의 자유/평등/정의관에 맞는 법률/판례라고 하여 미래에도 항상 그럴 것이라는 보장이 없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법률을 개정하고, 위헌법률심판에 의하여 법률이나 처분을 위헌으로 만들기도 하며, 판례의 입장이 종종 뒤집히는 것을 쉽게 볼 수 있습니다.

알기 쉬운 예로, 현재까지의 판례는 양심적 병역거부에 대하여 병역법위반으로 의율하고, 실형을 선고하고 있습니다. 현재 상태에서 인공지능에게 이에 대한 재판을 맡겼을 때 인공지능은 양심적 병역거부에 대하여 무죄를 선고할 수 있을까요? 인공지능에게 주어진 데이터가 유죄뿐이기 때문에 인공지능에 의한 판례변경은 불가능합니다. 그러나 우리 하급법원은 1년새 9번째 양심적 병역거부는 무죄라는 판단을 내렸고('양심적 병역 거부' 인정할 때 됐나... 법원 또 무죄판결, 연합뉴스 2016. 8. 12.자 기사), 이에 대하여 헌법재판소에 병역법에 대한 위헌법률심판이 계속되고 있는 상태입니다. 사회의 가치관 변화에 가장 늦게 반응하기는 하지만 법원의 판단은 변화가능성이 있고, 이것은 판사가 사람이기에 가능한 것입니다. 사회의 가치관 변화와 이에 대한 사법제도의 수용이 법률개정, 판례변경, 위헌법률심판의 형태로 나타나는 것이고 이것이 사법제도가 사회의 끊임없는 변화에 적절하게 대응하는 방식입니다.

인공지능은 이러한 사법제도의 중요한 부분을 대체할 수가 없습니다. (적어도 현재의) 인공지능에게 기존 데이터의 집적과 그에 대한 빠른 연산을 통한 결과도출 외의 창조적인 기능을 기대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인공지능은 최종적인 판단을 위한 자료수집 및 분석에 대한 최고의 도구가 될 수 있을 지언정, 최종적인 판단을 내리는 주체가 될 수 없을 것입니다. 변호사는 판사와 마찬가지로 오히려 판사보다 더 자주, 더 민감하게 변화하는 사회상이나 의뢰인의 이익을 위하여 창조적인 주장이나 논리를 개발하는 사람입니다. 물론 기존의 판례는 중요한 논리의 틀이지만 항상 그것에 구애받는 것이 아니라 "한번 바꿔보자"라고 달려드는 경우도 분명 존재합니다. 데이터에 기반한 인공지능에 그러한 것을 기대할 수 없는 이상, 변호사 나아가 법조인을 인공지능으로 대체할 수는 없을 것이라고 감히 생각해 봅니다.

2014년 12월 30일 화요일

[책소개] 행복의 기원


서은국, 행복의 기원, 21세기북스(2014)

심리학자 입장에서 행복(=쾌감)이 무엇인지 규명하고자 하는 책입니다. 아리스토텔레스식 관념론적 행복론보다는 다윈의 진화론적 행복론이 더 타당하다고 당당히 주장하고 있습니다. 인간이라는 존재를 매우 단순화시키면 타당한 결론이 될 수도 있겠다 또는 일면의 진실이라고는 충분히 말할 수 있겠다는 생각입니다. 글도 쉽게 쓰면서 비유도 적당해서 술술 읽히는 편입니다. 발상의 전환만으로도 충분히 의미있는 학문적 성과가 나올 수 있다는 희망을 주는 책으로서 추천합니다. 다음은 제게 인상적이었던 구절들입니다.

동물의 모든 특성은 생존과 번식이라는 뚜렷한 목적을 달성하기 위한 도구다.
- 서은국, 행복의 기원, 21세기북스(2014), 55면

골프를 치기 위해서는 학습과 노력이 필요하다. 골프는 뇌가 디자인된 원래 목적과 거리가 멀기 때문이다.
- 서은국, 행복의 기원, 21세기북스(2014), 86면.

첫째, 행복은 객관적인 삶의 조건들에 의해 크게 좌우되지 않는다. 둘째, 행복의 개인차를 결정적으로 좌우하는 것은 그가 물려받은 유전적 특성, 조금 더 구체적으로는 외향성이라는 성격 특질이다.
- 서은국, 행복의 기원, 21세기북스(2014), 98면.

지금 언급하고 싶은 것은, 빈곤을 벗어난 사회에서 돈은 더 이상 행복의 키워드가 아니라는 점이다. 
- 서은국, 행복의 기원, 21세기북스(2014), 108면.

객관적으로 얼마나 많이 가졌느냐보다 이미 가진 것을 얼마나 좋아하느냐가 행복과 더 깊은 관련이 있다.
- 서은국, 행복의 기원, 21세기북스(2014), 114면.

행복은 복권 같은 큰 사건으로 얻게 되는 것이 아니라 초콜릿 같은 소소한 즐거움의 가랑비에 젖는 것이다.
- 서은국, 행복의 기원, 21세기북스(2014), 111-113면.

불행의 감소와 행복의 증가는 서로 다른 별개의 현상이라는 것이다.
- 서은국, 행복의 기원, 21세기북스(2014), 116면.

쾌락은 생존을 위해 설계된 경험이고, 그것이 제 기능을 하기 위해서는 본래 값으로 되돌아가는 초기화가 반드시 필요하다. 이것이 적응이라는 현상이 일어나는 생물학적 이유다. 
- 서은국, 행복의 기원, 21세기북스(2014), 123면.

외향적인 사람이든 내향적인 사람이든 오르고 싶어하는 산은 똑같다. 사람들이 즐겁게 모여있는 정상. 이 둘의 차이는 얼마나 무거운 짐을 등에 지고 오르냐다. 외향적인 사람의 가방은 가볍지만, 내향적인 사람의 가방은 어색함, 스트레스, 두려움 등으로 무겁다.
- 서은국, 행복의 기원, 21세기북스(2014), 144면.

To be happy, we must not be too concerned of others.
- 서은국, 행복의 기원, 21세기북스(2014), 169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