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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년 4월 7일 금요일

[책소개] 나는 대한민국의 검사였다(누가 노무현을 죽였나)

 


이인규, 나는 대한민국의 검사였다(누가 노무현을 죽였나), 조갑제닷컴(2023)

거의 일년동안 특별히 책을 구입할 생각을 하지 못하고 유튜브+넷플릭스에 매몰되어 있다고 느끼던 중 이러면 안되겠다는 생각이 들어 구입한 책입니다. 이미 십년도 전에 노무현 전 대통령이 자살한 사건이 발생하면서 노무현 전 대통령에 대한 검찰수사에 대한 오랜 기간에 걸친 비판, 비난, 매도가 있었지만, 그 반대편에 있었던 검찰의 입장은 전무하다시피했기 때문에 사건에 대한 제대로 된 판단을 하기 위해서는 당시 검찰측의 주장과 그에 대한 근거를 살펴볼 필요가 있다고 생각되었습니다.

책 내용 중 절반은 이인규 검사 자신이 맡아서 진행했던 굵직굵직한 사건들에 대한 처리과정 그리고 나머지 절반은 노무현 전 대통령 사건에 대한 수사 전후 및 그 경과에 대한 설명을 하고 있습니다. 노무현 전 대통령 사건 하나만 하더라도 책 한권은 충분할 것 같은데, 그 앞에 1990년대 후반과 2000년대 초반의 주요한 사건들에 대해 설명을 하는 것은, 그 주요한 사건들이 노무현 전 대통령 수사와 직간접적으로 연관되기 때문입니다. 특히나 이인규 검사는 노무현이 대통령으로 당선되기 이전에 여야 가릴 것 없는 대선자금수사를 진두지휘한 실무자이면서 대선자금 주고받은 기업인, 정치인들을 상당수 감옥에 넣은 장본인이었습니다. 그 많은 정치적 사건들을 처리한 것들을 읽고 있자니... 거의 격동의 현대사의 산증인 같은 느낌이 들더군요.

부제에서 알 수 있듯 이인규 전 검사가 하고 싶은 말은 검찰 수사가 아니라 당시 노무현의 등을 떠미는 진보언론이 노무현을 자살로 몰아간 것이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의 죽음으로 사실관계 자체가 묻혀버리면서 노무현이 살아서 재판을 받고 진보진영의 도덕성에 치명적인 흠집이 생기는 것은 막을 수 있었지만, 노무현의 자살로 진보진영이 기사회생한 경험은 정말 나쁜 선례가 되었다고 생각합니다.

그 이후 진보진영은 자신의 모순된 행태를 고치려고 하는 것이 아니라 모순된 행태가 드러난 정치인이 자살하거나(노회찬, 박원순), 모순된 행태가 드러나도 아예 사실은 함구/부정하고 선전선동하는 것을 우선하게 되었고(조국사태), 급기야 자신들의 범죄행위등을 감추고 처벌을 받지 않기 위해 국가기관의 힘을 빼고(형사수사권조정) 법제도를 뜯어고치는(검수완박) 형태로 흉물스럽게 변해버렸습니다.

물론 이인규 검사의 수사가 완벽히 불편부당한 것은 아니라는 것은 이 책에서도 많이 드러납니다. 기업의 대선자금 수사를 하면서, 대선자금 뿐 아니라 당해 기업의 분식회계 등에서 드러난 약점을 물고 늘어져서 자백을 강요하는 방법을 사용한 것은 엄밀히 말해 별건수사를 통해 공소권을 남용한 것이 아닌지 논란의 소지가 있을 수도 있어 보이기도 했습니다. 또 노무현 전 대통령에게 치명적인 타격이 된 "논두렁시계" 사건이 검찰쪽에서는 공개할 생각이 없었으나 검찰의 정보에 접근할 수 있는 청와대쪽을 타고 국정원이 일부 조작한 정보로 선정적인 보도가 되어서 그 점에 대해서 이후로도 자료를 수집해서 확인하려는 노력을 하였더군요.

마지막으로 노무현 전대통령 사건에 대한 개요 및 주요 증거에 대해서 부록으로 정리까지 해놓았고, 수사기록은 영구보존시켜 놓았다고 하므로 이인규 검사는 자신이 주장하는 내용이 잘못되었다면 검증해 봐라 하고 작심하고 책을 낸 것으로 보입니다. 

여기에 대한 진보진영의 대응은 사자명예훼손죄로 이인규 검사를 고소할 생각은 하지도 못하고, 한다는 말이 "어디 함부로 고인을 입에 놀리느냐"(이재명) "파렴치한 행태 불순한 의도와 배경 궁금"(전해철) 등의 반응입니다. 사실관계를 다툰다고 하는 순간 아예 노무현 전 대통령의 범죄사실이 수면위로 올라오기 때문에(논두렁 시계는 빙산의 일각입니다 ㅡㅡ) 별 언급하지 않고 묻으려는 의도에 더 가깝다고 생각합니다. 그때나 지금이나 상대방의 구체적인 주장과 근거에 대해서 반증을 들거나 사실관계를 다투어서 확인하자는 말은 전혀 없고 상대방에 대해서 도덕적(인 것으로 보이는) 비난만 하고 있는 것을 보니 나아진 것이 전혀 없어 보입니다.

이인규 검사의 억울함에 대한 토로를 감안하더라도, 상당히 컴팩트하게 굵직굵직한 사건들을 처리한 특수통 검사가 정리한 우리 현대사의 중요한 사건에 대한 사료로서도 충분히 가치있다고 생각하고, 논두렁 시계사건에 대해서 제대로 된 설명을 보고싶다면 추천할만한 책이라고 생각합니다.



2020년 12월 19일 토요일

[책소개] 진보는 어떻게 몰락하는가

 


진중권, 진보는 어떻게 몰락하는가, 천년의 상상(2020)

논객 진중권이 민주당정권의 출범이후 논객으로의 활동을 접었다가, 다시 논객-지식인 의 역할을 하기로 하면서 "한국일보"에 게재했던 칼럽들을 모아서 낸 책입니다. 저로서도 철이 든 이후 20년 이상 우리나라에서 진보의 가치가 무엇인지를 보면서 자라왔기 때문에 현재 집권당인 민주당이, 노무현 정신을 이어받았다는 바로 그 당이, 176개의 거수기가 되어버렸는지 쉽게 이해할 수 없었기 때문에, 이 책을 집어드는데 전혀 거리낌이 없었습니다. 

그리고 토요일 저녁 4시간만에 다 읽어버리고 난 소감은, 감시자-관찰자-비판자 로서의 지식인이 "갑자기" 사라진 시대에, 고군분투하고 있는 진중권이 대단하다는 생각입니다. 역사로부터 그것도 얼마 지나지 않은 우리시대 현대사에 비추어보아도 현재 우리 사회의 상황은 너무나 극적입니다. 심지어 바로 전 정권의 부도덕성을 탄핵하면서 탄생한 정부가 고스란히 똑같은 행동을(오히려 더 심하게) 하고 있는 모습이 안타까운 것은 마찬가지입니다. 

인상깊은 구절입니다.

-문제는 이 낡은 운동권 하위문화가 어느덧 주류가 된 586을 통해 정부와 공당의 운영원리까지 왜곡하고 있는 점이다. 그러나보지 자유주의 정권의 커뮤니케이션이 전체주의적 특성을 보이는 해괴한 사태까지 벌어지는 것이다. "민주당에는 민주주의가 없다" 홍세화 선생의 지적이다. 20년전 그가 '톨레랑스'의 정신을 외쳤을 때 그 표적은 한국의 극우세력이었다. 그런데 지금의 그의 외침은 자유주의를 표방하는 정권을 향한다. 민주당, 도대체 어디로 가는가.(171면)

-법이 작은 원이라면, 윤리는 그것을 포함한 큰 원이라 할 수 있다. 큰 원에서 작은 원을 뺀 여집합이 법적 판단과 별도로 존재하는 윤리적 판단의 영역이다. 바로 거기가 지도자의 도덕 역량이 발휘되는 영역이며, 거기서 우리는 대통령의 통치철학을 엿본다. 하지만 '법=윤리'라는 야쿠자 등식은 그 영역을 증발시킨다. 설 곳을 잃은 통치철학은 이제 지지율의 정치공학으로 대체된다.(225-226면)

-문제는 그동안 대통령이 회피해온 '대통령직의 윤리적 기능'이다. 언제부턴가 이 나라에 정의와 상식이 무너졌다. 국가가 아노미에 빠졌을 때 '기준'을 세워 국가의 품격을 살린 것은 철학을 가진 지도자의 말. 그 말을, 이미 있는 기준마저 허무는 이 나라 대통령에서 들을 수 없기에 딴 나라 지도자의 말을 인용한다.

지금 우리가 당면한 것은 (...) 무엇보다 도덕적 이슈다. 이는 세세한 정책의 문제가 아니라 사회정의의 근본원리와 우리나라의 성격이 걸린 문제다(버락 오바마)

인위로 연출된 싸구려 감동에 물린 백성은 감동마저 이렇게 외국에서 빌어먹어야 한다.(229면)

-집권 3년이 안 됐건만 보이는 풍경이 벌써 낯익다. 언젠가 본 것 같지 않은가. 그렇다. 드루킹의 매크로는 그 전엔 십알단의 댓글이었다. 김태우의 처벌은 이석수의 파면이었고, 조국의 감찰무마는 우병우의 직권남용이었다. 운석열의 수난의 채동욱의 수모였고, 윤 총장을 노린 <한겨레>의 저격은 채 총장을 날린 <조선일보>의 폭로였다. 청와대의 선거개입은 국정원의 대선공작이었고, 황운하의 충성은 김용판의 충정이었다. 조민의 표창장은 정유라의 금메달이었고, 고대생들의 항의는 그 전엔 이대생들의 시위였다.(252면)

-자칭 '진보'가 권력의 비리를 덮으려 검찰 음모론이나 유포하며 한 패거리가 되어 검찰총장 제거할 궁리나 하고 있을 때, '우익'을 자처하는 소설가 김훈은 혼자서 산업재해로 숨진 노동자들에 대한 관심을 호소하는 글을 써왔다. 원래 지식인의 '앙가주망'은 이런 것이었다. 이 최후의 지식인에게 고마움과 미안함, 그리고 무엇보다 수치심을 느낀다. 저 징그러운 진보의 무덤에 이보다 더 고상하고 우아하게 침을 밷을 수는 없을 것이다.(283면)



2020년 12월 18일 금요일

[책소개] 한번도 경험해보지 못한 나라

 

강양구외 4, 한번도 경험해보지 못한 나라, 천년의 상상(2020)

소위 조국흑서 라고 불리는 책입니다. 8월경에 출간되었을 때 서점에 가서 사보려고 했었는데, 수량이 없다고 해서 미루고 미룬 것이 연말이 다 되어서야 읽어볼 수 있게 되었네요. 사실 내용들은 이분들이 평소 페이스북이나 칼럼에 쓰고 계신 내용을 보면 미뤄 짐작할 수 있는 내용이긴 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김영삼-김대중-노무현-이명박-박근혜-문재인 의 재임기간동안 정치와 사회상을 관찰하고, 때로 참여하고, 때로 비판했던 분들의 현재 상황에 대한 총체적인 분석을 볼 수 있어서 좋았습니다. 조국흑서 라고는 하지만, 조국 사건은 실제로는 그 도화선과 이상(?)현상의 극단적 발현이라는 측면에 불과하고, 진보진영 이라고 불리웠던 인적 집단이 집권을 하면서 그들이 비판하는 기존 정치집단의 폐해를 극복하지 못하게 된 이유, 사회를 발전시키기보다 권력추수에만 집중하게 된 현상과 원인 등을 설명해 주는 것에 의의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무엇보다 "좋다/싫다"는 판단이 "옳다/그르다"의 판단을 대체하고 있고, 심지어 늬편/내편에 따라 참.거짓의 판단을 달리하는 진영논리가 횡행하는데 그것을 지적하는 목소리에 귀기울이지 않는 현상/사람들이 현재 우리 사회의 문제가 아닐까 하네요. 일독을 추천합니다.

다음은 인상깊었던 구절들입니다.

"강양구 의견이 같을 수도 다를 수도 있잖아요. 그것을 못 견디는 상황이에요. 사안을 판단할 때 '좋고 싫음'으로 나누다 보니까, 흰색/검은색이 아닌 회색의 가능성, 맥락에 따라서는 전혀 다른 식으로 해석될 가능성에 대한 여지가 없어져 버린 것 같다는 느낌입니다."(41면)

"강양구 제가 말했듯이 지난 9년동안 핍박받고 박해받은 것에 대한 보상심리로 '이 정부와 우리는 함께 가야하고, 정권 재창출하지 않으면 우리는 또다시 문제가 될 수 있겠구나'하는 아주 강한 위기의식을 느끼는 것 같아요. 이런 이해관계가 지금 진보언론 구성원들에게 아주 강력하게 작용하고 있습니다."(64면)

"진중권 1930년대 서구의 당파적 저널리즘으로 돌아가는 겁니다. 그런 언론 탄압을 겪었으면 앞으로 그런 일을 겪지 않게 언론이 권력으로부터 독립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드는 데 주력해야 되는데, 그냥 "고로 무슨 일이 있어도 정권을 뺏기지 말아야겠다" 이렇게 판단해버린 측면이 있는 거 같아요"(65면)

"진중권 제 경우 지금의 위험을 처음 봤던 것은, 진보진영의 가치 기준이 무너진 최초의 사건, 바로 곽노현 교육감 때였어요. 결정적이었어요. 나쁜 짓을 했거든. 그럼 정리를 해야 하는데 "그가 우리 편이니까 무조건 지켜 줘야 된다"면서 앞으로 전진. 그때 이미 진보의 가치는 무너지기 시작한 것이고, 그 일이 조국 사태에서 더 큰 스케일로 반복된 것 뿐입니다."(87면)

"강양구... 지식인이라는 정체성을 가지고 있는 사람은 때로는 대중과도 싸울 수 있어야 하고, 그들이 원하는 방향을 놓고서도 "노(NO)"라고 할 수 있어야 합니다. 이것이 저널리스트, 지식인이 해야 할 중요한 역할이 아닐까요. 그 뒤로는 모든 사람이 열광하고, 한 쪽 방향을 바라볼 때 '꼭 저 방향이 아닐 수도 있지 않을까' 한번 쯤 회의를 해 봅니다"(91면)

"강양구 삼성 광고 때문에 삼성 눈치를 보느라 삼성에 대해 비판의 날을 세우지 못하는 것처럼, 구독취소가 무서워서 구독자들의 상당부분을 차지하고 있는 이른바 '빠'들의 눈치를 볼 수밖에 없는 상황이 지금 한국 언론의 현실입니다."(94면)

"서민 ... 팬덤이 대통령을 지키겠다고 나서는 순간, 그 팬덤은 나치 때 게슈타포가 그랬던 것처럼, 정권에 대한 건설적 비판마저 봉쇄하는 친위대로 전락할 위험이 있습니다. 지금 소위 문팬이라 불리는 문대통령의 팬덤이 보이는 모습이 바로 그렇습니다."(114면)

"서민 그런데 우리나라의 경우 시민단체의 정계진출은 곧 그 단체의 정체성이 흔들리는 결과로 끝나더군요. 참여연대 보세요. 정치인들의 비리가 있을 때마다 쓴 소리를 하곤 했는데, 그 단체에 있던 사람들이 정치권에 우르르 들어가고 나니까 그 다음부터 진보인사의 비리에 침묵하잖아요. 조국 사태가 대표적이죠... 여성단체도 마찬가지에요. 여성단체가 그 동안 권력형 성범죄에 얼마나 민감하게 반응했습니까? 그런데 민주당 소속의 오거돈 시장이 성범죄를 저지르니 그냥 침묵하더라고요 ..."(271-272면)


2014년 9월 16일 화요일

말바꾸기


요새 정치인들은 상황에 따라 말실수를 하는 바람에 궁지에 몰리는 경우가 종종 있습니다. 어쩌면 그것은 너무 말을 많이 하기 때문에 발생하는 일인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합니다. 언론에서 그렇게 집요하게 물어뜯었던 노무현 전 대통령도 현재 박근혜 대통령과 같이 말을 아꼈다면, 그리고 본인이 앞장서지 않고 여러 각료에게 중대사의 발표를 맡겼다면 좋았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최고통수권자가 전면에 나서서 너무 많은 말을 하다보니 정적들에게 너무도 많은 꼬투리를 잡힌 꼴이 되어버리지 않는가 하는 것이지요.

이러한 상황을 보고 있으니 삼선개헌을 하지 않겠다고 공언을 하고도 삼선개헌에 성공한 박정희 대통령이 생각나는 것입니다. 소설 그해 오월에서 삼선개헌과 관련하여 박대통령과 그 측근들이 어떻게 말을 바꿔가는지 그와 관련된 부분을 발췌해 봅니다.

이렇게 결정해 놓고 대외적인 발언은 1968년 말까진
"3선 개헌 생각한 적이 없다."
는 것이었고,
1969년 정초엔
"아직은 3선 개헌을 생각하지 않고 있다."
는 묘한 표현이 되더니
4월에 들어선
"될 수 있는 한 헌법을 개정하지 않는 것이 좋은데 만일 개정해야 할 경우엔 합법적 절차를 취해 국민의 의사를 물어서 해야 할 것"
이라고 했다.
...
다음 단계의 발언자는 윤치영씨였다.
5월 7일 윤치영씨는
"정치적 안정과 경제발전을 위해서는 박 대통령의 지도력이 필요하다."
고 천명했다.
이어 10일 민주공화당 당론으로
"국방과 건설을 동시에 진행해야 하는 우리나라의 실정에 비추어 박대통령에 의한 지도력의 강화가 필요하다. 합법적으로 추진하는 개헌은 야당이라고 할지라도 무책임하게 반대해선 안된다."
는 성명을 발표했다.
6월 14일 H 신문은
"이번의 헌법 개정엔 비상대권을 포함한 대통령의 권한 강화도 포함될 것이다."라고 보도했다.

이병주, 그해오월6, 한길사(2006, 이병주전집), 39-40면.

2014년 5월 19일 월요일

CBS 성명서


*사진은 강남좌파의 아이콘 조국 서울대 교수님입니다.

대학생 때까지만 해도 저는 제가 매우 진보적인 사람이라고 생각하고 있었고, 졸업하고 몇년간까지도 그랬습니다. 하지만 돈을 벌고 거기서 떼어져 나가는 세금을 보면서 그리고 노무현 대통령의 삽질을 욕하면서, 그리고 법을 전공한 사람의 특성상(정의와 법적 안정성의 균형점에서 서서히 법적 안정성 쪽의 편향이 되기가 쉽습니다) 여느 정치사회적 쟁점들에 대해서 상당 부분 보수적인 스탠스를 취하게 되었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아직도 제가 속한 계층의 이해를 대변(한다고 주장)하는 정당은 맘에 들지 않고(심지어 그에 대항하는 정당의 무능함에는 포기하고 있는 정도입니다), 정권을 잡은 정치인들의 행동은 갈수록 가관이라고 생각하고 있어서, 저를 지켜보는 주위 사람들은 서울의 시골 출신 점빵 운영 변호사를 "강남좌파"로 오해하고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도 가끔씩 하곤 합니다. 그리고 그 기우에도 걸맞게도 지난 13일 청와대 측에서 박근혜 대통령의 분향소 조문 연출 의혹을 보도한 CBS 노컷뉴스에 대하여 명예훼손 등을 이유로 한 손해배상청구소송을 제기한 것에 대하여 CBS 노조 측의 성명이 있었는데, 그 성명의 발랄함이 맘에 들어 제맘대로 소개하고자 합니다.  "우리가 남이가"라는 발언이 세간에 공개되었을 때, 삼성의 법조로비 사실이 국회의원 노회찬에 의하여 폭로되었을 때, 지역을 대표하는 정치인이 지역감정을 유발시키는 파렴치한 인식을 가지고 있다는 사실에 주목하지 않고, 그 발언이 적당하지 않은 방법(도청)에 의하여 공개되었다는 사정으로 이를 덮어버리고, 삼성의 부적절한 로비사실에 주목하지 않고, 국회의원 노회찬이 인터넷에 이를 폭로한 것이 법위반이라는 사정을 가지고 이를 덮어버렸던 것을 보면서, 진실을 보도하는 언론의 사명에 충실한 언론은 어디에 있는지 혼자서 난감해 했던 기억들을 과연 CBS는 해소해 줄 수 있을까요. 너무 큰 기대를 할 필요는 없겠지만, 응원해 봅니다. 다음은 그 전문입니다. 


CBS에 대한 청와대의 소송을 적극 환영한다. 

청와대가 CBS를 상대로 손해배상 소송을 제기했다. CBS의 보도로 김기춘 비서실장과 박준우 정무수석 등의 명예가 훼손됐다는 이유로, 8천만 원을 내놓으라고 한다. 그리고는 언론중재위원회에도 정정보도를 청구했다. 박근혜 대통령의 조문 연출 의혹과 관련한 "'조문연출' 논란 할머니, 청와대가 섭외"라는 CBS의 보도를 문제삼은 것이다. 

정부에 대한 울분으로 가득한 분향소를 태연히 방문한 대통령, 그런 대통령에게 아무 제지도 받지 않고 다가가는 정체불명의 할머니, 그 할머니를 따뜻이 위로하는 대통령의 모습, 이에 대한 유족들의 의문에 따라 언론은 응당 그 사실관계를 밝혀야 할 책무가 있었다. 이후의 취재과정에서 핵심 취재원으로부터 "청와대 측이 당일 합동분향소에서 눈에 띈 해당 노인에게 '부탁'을 한 것은 사실"이라는 말을 들어 기사를 썼음은 물론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기사에 이름 한자 등장하지도 않으면서 명예가 훼손당했다는 김기춘 실장과 박준우 수석의 주장을 공들여 논박하지는 않겠다. 어차피 법의 사유화를 지향하는 정권인 까닭에, '공직자의 공직 수행이 충분히 의심을 받을 만할 때 언론보도로 인해 공직자 개인의 사회적 평가가 저하될 수 있다 해서 명예훼손이라 할 수는 없다'는 대법원 판례 역시 떠올려봐야 의미 없다. 

이 모두를 차치하고, 청와대가 CBS를 '받아쓰기' 언론이 아니라고 공식 인정해주어 그저 반갑다. 거의 모든 기존 언론이 대중들로부터 뭇매를 맞는 가운데, 유독 CBS는 정부와 한통속이 아니었다고 청와대가 나서서 증명해주니 감읍할 뿐이다. 

또한 정정보도를 청구한 것은 CBS의 보도기능을 인정한 것으로 해석된다. 앞서 CBS의 뉴스와 시사프로그램에 대해 '유사보도' 딱지를 붙였던 정부가 늦게나마 이를 스스로 거둬들이는 것 같아 더욱 반갑다. 

나아가 잊혀질 만하면 CBS를 때려줌으로써, 권력과 언론의 긴장관계가 늘 유지될 수 있도록 해주는 청와대의 세심함에 찬사를 보내지 않을 수 없다. 

CBS의 모든 구성원은 늘 그래왔듯 이번 싸움에도 한치 물러섬 없이 임할 것이다. 퇴행하는 대한민국에서 언론의 의미를 곱씹고 또 곱씹으며 당당하게 걸어나갈 것이다. 그리고 단련하면 단련할수록 더욱 강해지는 강철의 진리를 보여줄 것이다. 

마지막으로, 소송 당사자에서 김기춘 비서실장의 이름만큼은 지워줬으면 하는 바람을 피력해 본다. 유신정권의 주역이자, 초원복집 사건의 주인공이자, 노무현 대통령 탄핵의 선봉장이자, 유신회귀의 실세인 김기춘 실장이다. 60년 역사 동안 부러질지언정 휘지 않았던 CBS가 그런 김기춘 실장과 소송에서 마주하기에는 자존심이 상한다. 

그는 "우리가 남이가?" 하고 싶을지 몰라도 우리는 남이다. 

2014년 5월 15일 
전국언론노동조합 CBS지부  

* 참고로 세번째 단락의 대법원 판례는 PD 수첩의 광우병 보도와 관련한 대법원 2011. 9. 2. 선고 2010도17237 판결을 말하는 것으로 보입니다. 이 판결에서 대법원은 "정부 또는 국가기관은 형법상 명예훼손죄의 피해자가 될 수 없으므로, 정부 또는 국가기관의 정책결정 또는 업무수행과 관련된 사항을 주된 내용으로 하는 언론보도로 인하여 그 정책결정이나 업무수행에 관여한 공직자에 대한 사회적 평가가 다소 저하될 수 있다고 하더라도, 그 보도의 내용이 공직자 개인에 대한 악의적이거나 심히 경솔한 공격으로서 현저히 상당성을 잃은 것으로 평가되지 않는 한, 그 보도로 인하여 곧바로 공직자 개인에 대한 명예훼손이 된다고 할 수 없다."와 같이 판시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청와대는 이 판결에 반하여 정부 또는 국가기관 명의로 소송을 제기하지 않고, 김기춘 비서실장 등이 개인 자격에서 소송을 제기한 것으로 보입니다. 하지만 원고 김기춘 등의 청구가 인용되려면, 원고들은 CBS의 보도가 "공직자 개인에 대한 악의적이거나 심히 경솔한 공격으로서 현저히 상당성을 잃은 것"임을 입증해야 할 것인데, 개인적으로는 그것이 가능할 것인지 의문스럽습니다. 지금까지 드러난 바로 CBS 는 박근혜 대통령의 분향소 조문 연출 의혹과 관련하여 청와대 관계자가 확인해 준 사실(또는 그로부터 상당한 개연성을 가지고 유추할 수 있는 사실)을 보도한 것으로 보이기 때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