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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년 12월 19일 토요일

[책소개] 진보는 어떻게 몰락하는가

 


진중권, 진보는 어떻게 몰락하는가, 천년의 상상(2020)

논객 진중권이 민주당정권의 출범이후 논객으로의 활동을 접었다가, 다시 논객-지식인 의 역할을 하기로 하면서 "한국일보"에 게재했던 칼럽들을 모아서 낸 책입니다. 저로서도 철이 든 이후 20년 이상 우리나라에서 진보의 가치가 무엇인지를 보면서 자라왔기 때문에 현재 집권당인 민주당이, 노무현 정신을 이어받았다는 바로 그 당이, 176개의 거수기가 되어버렸는지 쉽게 이해할 수 없었기 때문에, 이 책을 집어드는데 전혀 거리낌이 없었습니다. 

그리고 토요일 저녁 4시간만에 다 읽어버리고 난 소감은, 감시자-관찰자-비판자 로서의 지식인이 "갑자기" 사라진 시대에, 고군분투하고 있는 진중권이 대단하다는 생각입니다. 역사로부터 그것도 얼마 지나지 않은 우리시대 현대사에 비추어보아도 현재 우리 사회의 상황은 너무나 극적입니다. 심지어 바로 전 정권의 부도덕성을 탄핵하면서 탄생한 정부가 고스란히 똑같은 행동을(오히려 더 심하게) 하고 있는 모습이 안타까운 것은 마찬가지입니다. 

인상깊은 구절입니다.

-문제는 이 낡은 운동권 하위문화가 어느덧 주류가 된 586을 통해 정부와 공당의 운영원리까지 왜곡하고 있는 점이다. 그러나보지 자유주의 정권의 커뮤니케이션이 전체주의적 특성을 보이는 해괴한 사태까지 벌어지는 것이다. "민주당에는 민주주의가 없다" 홍세화 선생의 지적이다. 20년전 그가 '톨레랑스'의 정신을 외쳤을 때 그 표적은 한국의 극우세력이었다. 그런데 지금의 그의 외침은 자유주의를 표방하는 정권을 향한다. 민주당, 도대체 어디로 가는가.(171면)

-법이 작은 원이라면, 윤리는 그것을 포함한 큰 원이라 할 수 있다. 큰 원에서 작은 원을 뺀 여집합이 법적 판단과 별도로 존재하는 윤리적 판단의 영역이다. 바로 거기가 지도자의 도덕 역량이 발휘되는 영역이며, 거기서 우리는 대통령의 통치철학을 엿본다. 하지만 '법=윤리'라는 야쿠자 등식은 그 영역을 증발시킨다. 설 곳을 잃은 통치철학은 이제 지지율의 정치공학으로 대체된다.(225-226면)

-문제는 그동안 대통령이 회피해온 '대통령직의 윤리적 기능'이다. 언제부턴가 이 나라에 정의와 상식이 무너졌다. 국가가 아노미에 빠졌을 때 '기준'을 세워 국가의 품격을 살린 것은 철학을 가진 지도자의 말. 그 말을, 이미 있는 기준마저 허무는 이 나라 대통령에서 들을 수 없기에 딴 나라 지도자의 말을 인용한다.

지금 우리가 당면한 것은 (...) 무엇보다 도덕적 이슈다. 이는 세세한 정책의 문제가 아니라 사회정의의 근본원리와 우리나라의 성격이 걸린 문제다(버락 오바마)

인위로 연출된 싸구려 감동에 물린 백성은 감동마저 이렇게 외국에서 빌어먹어야 한다.(229면)

-집권 3년이 안 됐건만 보이는 풍경이 벌써 낯익다. 언젠가 본 것 같지 않은가. 그렇다. 드루킹의 매크로는 그 전엔 십알단의 댓글이었다. 김태우의 처벌은 이석수의 파면이었고, 조국의 감찰무마는 우병우의 직권남용이었다. 운석열의 수난의 채동욱의 수모였고, 윤 총장을 노린 <한겨레>의 저격은 채 총장을 날린 <조선일보>의 폭로였다. 청와대의 선거개입은 국정원의 대선공작이었고, 황운하의 충성은 김용판의 충정이었다. 조민의 표창장은 정유라의 금메달이었고, 고대생들의 항의는 그 전엔 이대생들의 시위였다.(252면)

-자칭 '진보'가 권력의 비리를 덮으려 검찰 음모론이나 유포하며 한 패거리가 되어 검찰총장 제거할 궁리나 하고 있을 때, '우익'을 자처하는 소설가 김훈은 혼자서 산업재해로 숨진 노동자들에 대한 관심을 호소하는 글을 써왔다. 원래 지식인의 '앙가주망'은 이런 것이었다. 이 최후의 지식인에게 고마움과 미안함, 그리고 무엇보다 수치심을 느낀다. 저 징그러운 진보의 무덤에 이보다 더 고상하고 우아하게 침을 밷을 수는 없을 것이다.(283면)



2016년 11월 8일 화요일

법과 정치


[중앙시평] 이 분노의 기원에 대하여, 2016. 11. 7.자 중앙일보

종종 박원호 서울대 정치학과 교수님의 칼럼을 읽으면서 생각에 깊이가 있고 글을 잘 쓰는 분이라는 인상을 받아왔습니다. 이 분의 글을 읽으면서 소위 '실용학문'이라는 법학의 한계를 절감하게 됩니다.  현재의 정치적 위기상황을 많은 사람의 이익이 되도록 해결하는 방법이 법에 정해진 방법인지에 대해서 상당한 의구심이 들고 있는 시점에서는 더욱 그러합니다. 물론 국가의 체제와 이념을 성문화한 헌법이 제정되어 있고, 헌법에 대한 분쟁을 다루는 헌법재판소/대법원이 존재하고 있기는 해도 사법소극주의라는 한계 때문에 헌법/법률이 정한 권한을 넘어서는 중요한 결정을 하기는 어렵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정치학이라는 학문분야가 실제 국민들이 자신의 의사를 어떠한 방식으로 결정하여야 하는지에 대한 철학적, 논리적 토양이 되어줄 수 있는 것일지도 모릅니다. 소시적 국가의 중대사를 헌법적/행정법적 체계 안에서 해결할 수 있고, 해결해야 한다고 생각했었던 때가 떠오르네요. 여러 모로 사상적/철학적 깊이가 부러워지는 요즈음입니다.

2015년 8월 19일 수요일

성년후견제도


고령화사회가 되어감에 따라 기존의 법제도도 그 명칭부터 작용까지 모습을 바꾸어가고 있습니다. 가장 대표적으로 변화된 것 중 하나가 한정치산 및 금치산제도가 폐지되고 "성년후견"제도가 도입된 것이라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사실 변호사업무를 하면서 한번도 한정치산 및 금치산 관련된 사건을 본 적이 없어서 한정치산 및 금치산은 사법시험 공부를 하면서 민총에서 읽었던 것이 아는 지식의 전부였기 때문에, 2013년 민법개정으로 한정치산 및 금치산제도가 폐지되고 성년후견제도가 이를 대체하여 도입되었다는 것을 최근에야 알게 되었습니다. 사진에 나와 있는 책이 성년후견제도에 대한 최초의 해설서(소개는 성인을 위한 후견인제 안내…이현곤 변호사, '성년후견제도의 이해와 활용' 펴내, 이투데이 2015. 8. 12.자 기사 참조) 표지로 저자는 가정법원 판사 출신 이현곤 변호사님입니다.

오늘자 신문기사(돈 많은 아버지 치매 … 새엄마·아들 ‘내가 법적 대리인’ 전쟁, 중앙일보 2015. 8. 19.자 기사)를 보니 치매노인 등의 재산관리를 위하여 필요성이 대두되었고 관련 분쟁이 늘어가는 모양이네요. 같이 일하시는 변호사님께서 이현곤 변호사님과 친분이 있으셔서 저자가 직접 증정한 책이 있으니 시간있을 때 한번 살펴봐야 겠습니다.

법과 제도가, 그리고 그 밑에 흐르고 있는 사회인식이, 그리고 이러한 사회인식을 반영하는 판례도 서서히 그러나 때로는 급격하게 변화하고 있으므로 항상 공부하고 이를 따라가야 하는 것은 법조인의 숙명일 것입니다. 하지만, 직업으로 항상 변화에 민감하고 업데이트 되어 있으려고 하는 덕에 좀더 천천히 늙을 수 있는 건 아닐까-그렇지만 태생적으로 보수적일 수 밖에 없는 것은 함정- 생각해 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