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년 12월 26일 금요일
[책 소개] 소설가의 일
김연수, 소설가의 일, 문학동네(2014)
사실 이책을 소개하는 글을 보기 전까지 "김연수"라는 소설가를 알지 못했습니다. 이름만 들었다면 여성이라고 착각했을 이름을 가진 70년 개띠라는 이 소설가의 소설도 물론 한번도 읽어본 적이 없었지요.
제가 "소설가의 일"이라는 책을 집게 된 것은 전적으로 이 책을 올해 읽을만한 책 베스트5로 뽑은 "문유석" 부장님의 추천글(페이스북 링크) 때문입니다. 같은 법조인이라는 점에서 기본적인 신뢰가 있기도 하지만(지난 주말 현재 반디앤루니스 고속터미널점 정치사회 부분 1위를 달리고 있는 판사유감(저의 책소개는 [책소개] 판사유감) 참조)의 저자이십니다) , 굳이 전공과 관련없는 것에 취미를 가지고 있으시다는 점, 영화를 고를 때에도 너무 많은 인기를 끄는 영화는 한템포 늦춰서 보는 반골기질이 있으시다는 점 등 의외로 저와도 비슷한 점이 있어서 더욱 호감이 가는 분이기도 합니다. 특히 저는 페이스북 친구는 offline에서 인연이 있는 경우에 한하여 신청(또는 수락)하는 원칙을 가지고 있는데, 그 원칙을 깨고 온라인상에서 제가 먼저 친구신청을 한 몇 안되는 분들 중 한분이기도 합니다(이 자리를 빌어 친구수락 감사드립니다). 제가 친구신청을 할 수 밖에 없었던 글도 소개합니다. - 죽은글쓰기 책을 고르는데 젬병이라 베스트셀러 위주로 읽는 습관을 가진 제게는 양서를 골라주시는 분이 생겨서 너무 기쁘다는 생각입니다.
어쨌든 문부장님이 재밌으셨다면 당연히 믿을만 하겠지 하며, 크리스마스 기념으로 책쇼핑을 하면서 추천하신 책중 네권의 책을 샀습니다(그중 파블로 네루다 자서전은 대형서점에도 재고가 없어서 사지 못하였네요). 그리고 어제 저녁과 오늘 아침까지 김연수의 "소설가의 일"이라는 책을 다 읽어 버렸습니다. 손에 잡으면 책장이 술술 넘어가는 소위 "page-turner"입니다. 무엇보다 옆에서 이야기해주듯이 ㅋㅋ ㅜㅠ 곁들이며 쓴 글들에 키득키득하면서 즐거웠다고 고백하지 않을 수 없네요. 짬이 나면 소설가 김연수의 소설책들을 한권씩 사서 보는 것도 좋을 것 같습니다. 무라카미 하루키같이 어떤 문장, 또는 어떤 문단이 맘에 들어 인용해 보고 싶다고 생각이 드는 한국작가를 발견해서 기쁜 마음 그지 없고, 문부장님께 다시 한번 감사드립니다.
제가 이 산문집에서 좋았던 부분은 이 부분입니다. 실제로 서가를 마련해서 "김연수식"으로 책을 꽂아보는 것도 해보고 싶어지고 그랬습니다.
내 서가는 크게 세 부분으로 나뉘어진다. 한 부분은 읽은 소설, 또 한 부분은 읽은 비소설, 나머지는 읽지 않은 책들이다. 읽은 책들은 내가 보기에 좋은 순서대로 꽂는다. 그러니까 제일 좋은 책이 맨 앞에 있고, 뒤를 이어서 그다음 좋은 순서대로 책들이 쭉 꽂힌다. 물론 판단은 주관적이다. 그렇게 해서 평생에 걸쳐서 소설 365권과 비소설 365권을 선정한 뒤 일흔 살이 지나면 매일 한권의 소설과 한권의 비소설을 읽으면서 지내고 싶다. 그러니 내 노후대책이라면 내가 너무나 좋아하는 730권의 책을 마련하는 것이랄까.
아직 나는 730권의 절반도 책꽂이에 꽂지 못했다. 신간을 보면 베스트 365에 들지 못하는 책이 태반이다. 펼쳤는데 베스트 365에 들지 못할 것 같은 예감이 든다면 어떻게 해야만 할까? 그냥 조용히 책장을 덮는 수밖에. 저자와 출판사에는 미안하지만 어쩔 수 없는 일이다. "아, 이 소설은 꽤 좋구나!" 그런 감탄이 드는 책을 읽고 나서도 막상 서가에 꽂으려고 보면, 앞쪽에는 정말이지 내가 너무나 좋아하는 책들이 꽂혀 있어서 꽂을 자리가 없다. 고심 끝에 꽂아보면 대개 100위권 바깥이다. 내 소설을 과연 어디쯤 꽂힐까? 생각하면 가슴이 덜컹 내려앉는다.
그러니 단숨에 10위권 안으로 진입하는 책을 만나기란 한국노래가 빌보드차트 정상에 오르는 일만큼 드물다. 그러니 새롭게 1위 자리를 차지하는 책은 이제 읽을 수 없다고 봐야 할 것이다.
- 김연수, 소설가의 일, 문학동네(2014), 168면.
이외에도 인상 깊었던 부분.
말이란 늘 캐릭터의 욕망을 배반하는 원치 않은 부산물이다. 그건 소설에서뿐만 아니라 실생활에서도 마찬가지다. 우리가 대화를 나눌 때 자주 서로를 오해하는데, 그건 대화를 통해 우리가 진짜 욕망이 아니라 가짜 욕망을 서로 교환하기 때문이다.
- 김연수, 소설가의 일, 문학동네(2014), 128면.
마찬가지로 오직 살인하고 죽이기만 하는 소설을 우리가 싫어하는 까닭은 심성이 착해빠졌거나 그게 인간의 추잡한 일면을 반영하기 때문이 아니라 서사적으로 완벽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세살배기라도 악을 저지를 수 있듯이 한 번도 제대로 글을 안써본 사람이라도 살인하고 죽이기만 하는 소설은 쓸 수 있다. 서사적으로 보았을 때, 그런 이야기는 단순한 구조라 쓰기 쉽다.
- 김연수, 소설가의 일, 문학동네(2014), 158면.
현대 일본어의 '감사하다'라는 형용사는 '아리가타이, 즉 어원적으로 '(상대방의 호의 등이)있기 어렵다'라는 뜻이라고 한다. 그러니까 흔치 않다는 뜻에서 고맙다는 뜻으로 발전한 단어다. 해서 일본어로 "감사합니다"라고 말하는 건 "흔치 않은 일이 일어났습니다"라고 말하는 셈이다.
- 김연수, 소설가의 일, 문학동네(2014), 167면.
흔한 인생을 살았다더라도 흔치 않은 사람이 되자. 미문을 쓰겠다면 먼저 미문의 인생을 살자. 이 말은 평범함 일상에 늘 감사하는 사람이 되자는 말이기도 하다. 그게 바로 미문의 인생이다. 소설 속의 인생 역시 마찬가지다. 추잡한 문장은 주인공을, 자신이 가장 사랑하는 사람을, 자기 인생을 뻔한 것으로 묘사할 때 나온다. 사랑하지 않으면 뻔해지고, 뻔해지면 추잡해진다.
- 김연수, 소설가의 일, 문학동네(2014), 174면.
우리의 마음은 언어로는 직접 전달되지 않는다는 것을 기억하세요. 우리가 언어로 전달할 수 있는 건 오직 감각적인 것들 뿐이에요. 이 사실이 이해된다면, 앞으로 봄이 되면 무조건 시간을 내어 좋아하는 사람과 특정한 꽃을 보러 다니고, 잊지 못할 음식을 먹고, 그날의 날씨와 눈에 띈 일들을 일기장에 적어놓으세요. 우리 인생은 그런 것들로 구성돼 있습니다. 그렇다면 소설도 마찬가지에요.
-김연수, 소설가의 일, 문학동네(2014), 218면.
'왜 어떤 사람들은 죽을 줄을 뻔히 알면서도 그 길을 걸어가는가? 그 이유는 그 길이 죽음의 길이기 때문이다.'
나를 소설가로 만든 건 그 문장이라고 생각한다. 그건 나보다 먼저 살았고, 나보다 먼저 소설을 썼던 소설가들이 그들의 소설에 무수히 남겨놓은 바로 그 문장이었으니까. 살기 위해서가 아니라 죽는다는 것을 알면서도 죽음의 길을 갈 때, 이기기 위해서가 아니라 진다는 것을 알면서도 지는 쪽을 택할 때, 꿈을 이루기 위해서가 아니라 꿈이 좌절되었다는 것을 깨달았으면서도 꿈에 대해 한번 더 말할 때, 우는 얼굴로 어둠 속에 서서 뭔가 다른 좋은 생각을 하며 억지로 미소를 지을 때, 바로 그때 우주가 달라진다는 말, 그러니까 도스토옙스키가 "카라마조프 씨네 형제들"의 맨 앞장에 인용한 요한복음 12장 24절의 그 말.
정말 잘 들어두어라. 밀알 하나가 땅에 떨어져 죽지 않으면 한 알 그대로 남아 있고 죽으면 많은 열매를 맺는다.
-김연수, 소설가의 일, 문학동네(2014), 256-257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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