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년 11월 11일 금요일

진보주의의 모순


좌파나 진보주의자연 하는 사람들의 언동을 볼 때 "왜 저렇게 교조주의적이지?"하는 생각이 드는 경우가 종종 있습니다. 그런 사람들로부터는 자신과 의견을 달리 하는 사람, 특히 우파나 보수주의자들은 뭔가 모르기 때문에 나와 생각이 다른 것이고, 자신이 먼저 알고 있는 "진실/정보/이념"을 알게 된다면 당연히 나와 같은 생각을 할 수 밖에 없다는 확신을 읽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좌파나 진보주의자가 주장하는 사상의 근본만 생각해 보아도 그들의 교조주의적인 태도는 이율배반적이라는 지적을 받게 되는 경우가 허다합니다.

이번 미국 대선의 결과가 당연히 진보주의적 가치를 선점하고 있던 "힐러리"가 아니라 또라이에 성추행범 혐의까지 안좋은 이미지는 죄다 가지고 있던 부동산재벌 "트럼프"의 승리로 끝난 이유 중 하나가 저는 이러한 좌파의 교조주의적 태도에서도 기인하지 않는지 자문해볼 필요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던 와중에 다음 칼럼을 읽었습니다(진보주의자들의 흔한 착각: "나는 다양성을 존중한다"). 뉴욕타임즈에 2016. 5.경에 게재되었던 글인데 일독을 권합니다.

좌파나 진보주의자가 되는 것은 쉽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자신이 옳다고 믿는 가치를 자신의 삶에 체화해야 다른 사람을 점진적으로 설득하고 사회를 바꿔나갈 수 있는데, 그러한 가치는 오롯이 타인을 위한 것이기에 자신과 가족의 삶의 행복 증진에는 1/n(여기서 n은 작게는 지역공동체, 넓게는 나라/세계 전체가 되어버립니다)정도의 미미한 영향력 밖에 줄 수 없어서 자신의 신념과 행동으로 타인과 사회를 바꾼다는 사명감 없이는 유지하기도 쉽지 않기 때문입니다. 트럼프의 엉망진창인 망나니짓보다 소수자의 보호를 외치는 힐러리가 퍼스트레이디 경력을 가지고 수년동안 강연료로 천문학적인 수입을 올린 것에 대한 반감 내지 배신감을 느낀 미국인이 많았다는 이번 미국 대선 결과를 "민중/서민의 승리"와 같은 것으로 포장하여 정신승리하고 있다면 진보주의자가 세상을 바꾸는 일은 점점 더 어려워질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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