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년 3월 23일 월요일

[책 소개] 관촌수필


이문구, 관촌수필, 문학과지성사(1996, 3판)

전형적으로 토속적인 문장의 예로 고등학교 문학시간에 짤막한 한토막을 읽어본 적이 있을 망정 전체를 읽어본 적이 없었던 "관촌수필"을 읽어 보았습니다. 가까이 지내는 처형 댁에 가서 서재를 보다가 집어들었는데, 처음에는 한문이 많이 섞인 고어체에 사투리에다 연음을 그대로 표현하는 것이 (예컨대 "내일"을 "니열"이라고 한다든지..) 쉽사리 익숙해지지 않았고, 농경을 주로 하는 시골에서 쓰는 단어들이 너무도 생경했었는데, 읽다보니 결국 사람사는 이야기를 술술 풀어내는 것이었고, 중간중간 내 일이 아님에도 눈시울이 붉혀지기도 했습니다.

이 소설은 작가가 자신의 고향인 관촌을 돌아보면서 어렸을 때부터의 기억남는 일화들을 8개의 이야기로 쓴 것인데 각 이야기마다 제목이 붙어 있습니다. 그리고 각 이야기에는 주된 회상의 대상과 그 대상에 얽힌 일화들이 소개됩니다.

일락서산 - 할아버지
화무십일 - 윤영감네
행운유수 - 옹점이
녹수청산 - 대복이네
공산토월 - 석공(신현석)
관산추정 - 유서방(유천만)
여요주서 - 신용모
월곡후야 - 김희찬

감동적인 부분은 아니지만 경찰조사를 받을라치면 경찰이 하는 전형적인 말이 나와 있어 옮겨봅니다. 수사를 시작하는 경찰의 권한은 최종적으로 판단을 하는 판사의 권한보다 훨씬 제한적이겠지만 제일 먼저 사실관계의 방향을 정한다는 점에서는 가장 강력한 것입니다.

"신용모씨, 피차 일을 쉽게 합시다. 무슨 말인지 알겠소? 죄가 있다 없다, 벌을 주고 안주고는 차차 재판장이 할 일이고, 나는 조사만 하면 되는 사람이오. 변통머리 없이 나헌테 잘 뵐라고 헐 필요도 없구, 그렇다구 나잇값 없이 의젓잖이 그짓말할 필요도 없는 게요, 또 그짓말해봤자 통허지두 않어. 당신 말에 속을 사람 같소? 나두 처자식이 있는 사람이라 사정이 있을 수 있구 인정두 없을 수 없는 사람인디, 다시 말허면 당신이 신사적으루 나올 적에는 나두 생각허는 바가 있을 것이다 -- 이겁니다. 왜냐. 나두 사람이더라 이것이여. 무슨 말인고 허니, 나는 죄가 있다 없다, 벌을 준다 안준다 헐 자격은 없지만서두, 죄가 커질 것을 적게 만들구 벌이 무겁게 내릴 것두 어느 정도 가볍게 내려질수 있도록 헐 수는 있는 사람이다-- 이런 말입니다. 신용모씨, 무슨 말인지 알아듣겄소?"

- 이문구, 관촌수필, 문학과지성사(1996, 3판), 335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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