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년 4월 30일 수요일

[소개] Fitbit - 디지털만보계

핏빗(Fitbit)은 손목시계처럼 손에 차고 다니는 디지털 만보계입니다. 일반적인 만보계는 걸음수를 액정에 표시해 주지만, 사진에 나와 있는 Fitbit Flex 는 하루 목표치 달성 정도에 따라서 램프로 표시해줄 뿐입니다. 대신 스마트폰이나 컴퓨터와 연동해서 정확한 수치를 알 수 있습니다. 스마트폰 앱에는 걸음수 뿐 아니라, 이동한거리, 활동적인 시간, 소모한 칼로리를 알려주고 친구와 경쟁할 수도 있어서 많이 걸어서 차츰 다이어트를 하려는 사람들에게 인기를 끌고 있습니다. 손목시계처럼 시간도 나오는 제품도 나오는데 Fitbit Force 입니다. 하지만 고무러버 부분이 피부에 부작용을 일으켜서 리콜사태가 나기도 했고, 손목시계처럼 두꺼운 건 cool하지 않아 보여서인지 인기가 있는 것은 Fitbit Flex 입니다(자세한 사항은 http://www.fitbit.com/kr/flex 를 참조하시면 됩니다). 아이폰과 안드로이트폰을 모두 지원하는데, 갤럭시S2는 최신 블루투스 기능을 지원하지 않아서 갤럭시S2에서는 사용할 수 없다고 하네요. 이것과 유사한 기능을 가진 것들로 나이키의 퓨얼밴드(나이키가 퓨얼밴드 관련 사업을 접었다는 소식이 전해지기도 했는데, 아마도 애플에서 진행하는 헬스케어 사업과 중복되기 때문이 아닐까 생각합니다)와 조본업 등이 있으므로 취향에 맞는 것을 선택하면 될 것입니다.

여기에서 영감(?)을 얻은 삼성은 발빠르게 갤럭시 씨리즈와 연동되는 Gear-Fit(기어핏)을 출시합니다.



Fitbit Flex와 같은 고무재질에 램프 대신 아몰레드 가로액정을 달아서 기능상으로는 Fitbit Force와 더 유사한 면이 있고, 디자인도 삼성답지 않게 깔쌈하게 나온 것 같습니다. 추가적으로 심박수도 체크할 수 있는 기능도 있다고 합니다. 문제는 가격과 호환성인 것 같은데요. Fitbit Flex를 국내에서 13만원대에 구매할 수 있는 반면 Gear-Fit은 24만-25만원대입니다. 또한 Gear-Fit은 아이폰에서는 쓸 수 없고 안드로이드 계열 스마트폰에서만 사용할 수 있다고 하네요.

Fitbit을 한달 넘게 사용하고 있긴 한데, 사용하는 것만으로 살이 빠지는 마법의 도구는 아닌 것이 확실합니다. 물론 다른 때 같으면 생각없이 지하철역에서 택시타고 오는 일이 잦았을 터인데 만보 채워보겠다고 지하철역에서 집까지 걷는 수고를 감수하는 일이 몇번 늘어난 것이 수확이라면 수확이랄 수 있을 것입니다. 하루에 만보 걷는 것도 쉽지 않다는 것을 확인하고 싶은 분들께 디지털만보계를 추천합니다.

2014년 4월 29일 화요일

법의 날



[법의 날 특집]‘법의 날’에 대해 제대로 알고 계시는지요
대한변협신문 4월 21일자

우리나라의 법의 날은 4월 25일입니다. 이번에 세월호 참사로 법무부는 법의 날 기념식 자체를 취소하였네요([세월호참사] 법무부, 법의 날 기념식 취소, 매일경제, 2014. 4. 25. 기사).

원래 법의 날은 5월 1일이었는데 노동절과 겹치자 2003년에 정부는 법의 날을 우리나라 최초의 법률인 재판소구성법이 시행된 날인 4월 25일로 변경하였습니다. 법의 날을 만든 숨은 의도가 냉전시대의 대립구도하에서 공산주의국가의 노동절에 대항하기 위한 것이었는데, 노무현 정부하에서는 노동절과 굳이 대립각을 세우는 모양새의 법의 날 행사를 하는 것이 필요하지 않았을 것이라고 생각됩니다.

위 기사에서 우리나라 최초 법률인 재판소구성법이 시행된 날이 1985년 4월 25일이라고 하고 있는데 "1885년 4월 25일"의 오기로 보입니다. 노동절에 기업은 대부분 휴무이지만 법원과 검찰청 등 공무원 그에 따라 변호사 사무실도 쉬지 않습니다. 법원은 노동절에 기일을 잡기도 하니까요. 법의 날을 5월 1일로 그대로 두고, 법원, 검찰청 및 법조계 종사자도 휴무를 하는 것으로 하였다면 좋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도 드네요.

2014년 4월 28일 월요일

[소개] oh-life: 이메일로 일기쓰기/foursquare : 위치기반 기록 애플리케이션

이번에 소개하고자 하는 것은 이메일로 매일 일기를 쓸 수 있도록 해주는 서비스인 oh-life입니다. 특별히 컴퓨터에 프로그램을 설치할 필요없이 매일 일정한 시간에 oh-life에서 보낸 이메일에 답장형식으로 일기를 쓰기만 하면, oh-life 홈페이지( ohlife.com)에서 지금까지 쓴 일기를 확인할 수 있습니다. 첨부파일 형식으로 사진을 첨부하거나, 나중에 그 날짜 일기에 사진을 첨부하는 것도 가능합니다. 전 2011년 정도부터 사용하면서 매일 저녁 8시 정도에 이메일이 날아오도록 설정해 놓았습니다. 당일 답장을 하지 않아서 일기가 밀려도 메일은 각 날짜별로 하나씩 매일 날아오므로 각 매일에 답장을 하면 그대로 그 날짜의 일기가 되어서 빼먹는다고 부담이 생기지 않는 것도 좋습니다.

기본적으로 무료서비스이지만, 24불하는 프리미엄 서비스를 결제하면, 사진을 여러장 첨부하고, 검색기능을 강화하는 등의 추가적인 기능을 사용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무료서비스로서 이 정도 기능도 고맙다는 생각입니다. 

이 서비스의 가장 좋았던 점은 얼마 전에 한 무슨 일이 기억나지 않을 때 그것을 떠올릴 수 있는 실마리를 마련해 주는 것입니다. 2년전에 가족여행을 갔었는데 정확히 언제인지, 어디로 갔었는지 확실히 기억이 나지 않는데 어머니께서 다시 가고 싶다고 장소랑 연락처랑 알아서 다시 예약해 달라고 하셨을 때, 몇년전 일기장을 꺼내듯 사이트에 가서 검색을 하면 날짜와 장소를 알아낼 수 있고, 그것을 기초로 또 인터넷에서 검색을 하는 식입니다. 

이것과 비슷한 서비스로 포스퀘어(홈페이지: 포스퀘어)라는 앱이 있습니다. 일기는 아니고, 매일매일 자신이 들렀던 장소를 표시("체크인"이라고 합니다)하면 뱃지를 주고, 친구가 어디에서 체크인 하였는지 알려주고, 각 장소에 가장 많이 체크인한 사람을 그 장소의 메이어로 지정해 주는 등의 기능을 가지고 있는 앱입니다. 각 장소의 위치를 기반하는 서비스이므로 스마트폰이 필수적으로 필요합니다. 각 장소에 자유롭게 그 장소 관련 사진을 올려놓으므로 유명한 명소에는 수백장의 사진이 올려져 있으니 이것을 구경하는 재미도 쏠쏠합니다. 여행가거나 낯선 곳에서 유명한 음식점이나 명소를 검색하는 용도로도 사용할 수 있지요. 각 나라마다 유명한 명소에 체크인하면 고유의 배지를 주기도 해서, 외국여행가서도 열심히 체크인을 하였었더랬습니다. 덕분에 저는 아래와 같은 배지도 모으면서 재미있어 했었습니다. 이 앱은 제가 아이폰을 사용하기 시작하던 2010년경부터 쓰기 시작했었는데, 지인들에게 해보라고 권해도 몇번 체크인을 한 후에는 더이상 사용하지 않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하지만 자신의 삶을 기록해서 나중에 되돌아볼 일이 있을 때 그 기억의 실마리가 될 수 있다면 장소를 옮길 때마다 체크인하는 수고를 들일 가치는 있다고 생각합니다.


관심있으신 분들은 한번 사용해 보실 것을 추천합니다.

2014년 4월 25일 금요일

미 연방대법원의 소수집단 우대정책 관련 판결


미 대법원, 미시간 주의 소수집단 우대정책 철폐조치를 인정하다 News Peppermint 2014. 4. 23. 기사

위 기사들을 훑어보면 이번 판결의 파장과 전망을 대강 정리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영문으로 읽고 싶으시면 네번째 블로그를 추천합니다, 말미에 당해 판결의 주심, 찬성/반대한 연방대법관들을 사진으로 표시한 것이 인상적이네요.). 간단하게는 "소수집단 우대정책을 철폐하는 주헌법의 개정은 위헌이라고 할 수 없다. -주헌법의 소수집단 우대정책을 철폐 여부는 (적법한 절차를 따른 이상) 주정부가 결정할 문제이지 연방대법원이 개입할 문제는 아니다-"란 취지입니다. 소토마이어 연방대법관이 판결문의 절반 정도 분량의 반대의견을 내고 있는 것이 특징입니다. 그 자신이 미국사회에서 연방대법관이 될 수 있었던 이유가 된 제도가 소수집단 우대정책이었으므로 당연한 것으로 보이기도 합니다.

사소한 것이지만 기사들 사이에 일치하지 않는 부분이 있어 보여 정리해 보았습니다.
첫번째 뉴스페퍼민트의 기사에서는 "소수집단 우대정책은 1965년의 존슨 미 대통령의 행정명령으로부터 시작되었다"고 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세번째 중앙일보 기사에서는 "AA는 인권운동이 활발하게 전개되고 있던 지난 1961년 케네디 대통령이 '동등고용기회위원회'를 설립하면서 처음 정부 정책에 도입"되었다고 하고 있네요. 두 기사의 내용이 일치하지 않는 것 같아 무엇이 맞는 말인지 찾아 보았는데 각 기사가 자신이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부분만 인용하여 생긴 일인 것 같습니다. 클린턴 정부의 1995년 자료("Affirmative Action: History and Rationale". Clinton Administration's Affirmative Action Review: Report to the President. 19 July 1995.)에 따르면 케네디 대통령은 1961년에 동등고용기회위원회를 설립하고 행정명령 10925를 발령하였는데, 이 행정명령에서 차별금지를 달성하기 위한 목적으로 고안된 조치들을 지칭하는 용어로서 "AA"가 (처음) 사용되었고, 1965년 린든 존슨 대통령이 인종, 종교 그리고 출신지와 관계없이 고용기회의 평등을 확보하기 위한 AA를 연방 계약자들에게 의무화한 행정명령 11246호를 발령(함으로써 처음 정부정책으로 도입)하였다고 보는 것이 정확한 것 같습니다. 원문 해당부분은 아래와 같습니다. 

In response to the civil rights movement, President John F. Kennedy created a Committee on Equal Employment Opportunity in 1961 and issued Executive Order 10925, which used the term "affirmative action" to refer to measures designed to achieve non-discrimination. In 1965, President Johnson issued Executive Order 11246 requiring federal contractors to take affirmative action to ensure equality of employment opportunity without regard to race, religion and national origin.

하나 더 지적하자면 affirmative action("AA")의 해석에도 약간 혼선의 여지가 있는 같습니다. 물론 이번 미 대법원 판결에서 AA를 "소수집단 우대정책"으로 해석하여도 무리가 없습니다. 소수집단 우대정책이 AA의 가장 대표적인 예이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엄밀히 말해서 AA는 "적극적 평등실현조치"라고 해석하는 것이 맞고, 소수집단 우대정책은 "Preferential treatment of minorities"의 번역이라고 이해하는 것이 맞는 게 아닌가 합니다. 



2014년 4월 24일 목요일

적성검사 통지 못받았어도 운전자 책임



적성검사 통지 못 받았어도 운전자 책임
법률신문, 2014. 4. 21.자 기사

운전면허증에는 정기적성검사를 받지 않으면 면허 취소 등 불이익을 받을 수 있다는 점이 명시되어 있습니다. 이러한 기재에도 불구하고 운전면허시험관리공단에서는 정기적성검사를 받으라는 통지를 2회 정도 주소지로 보내줍니다. 그런데 운전면허 보유자가 이러한 통지를 받지 못하여 정기적성검사를 받지 않은 경우에 처벌할 수 있는가가 이 사건의 쟁점입니다.

1심 유죄와 2심 무죄로 결론이 갈렸지만, 대법원은 운전면허시험관리공단의 안내통지는 국민의 편의를 위한 사전 안내에 불과하고, 운전면허증 소지자가 면허증만 꺼내 봐도 쉽게 확인할 수 있는 정도의 노력조차 기울이지 않은 것은 적성검사기간 내에 적성검사를 받지 못하게 되는 결과에 대한 방임이나 용인의 의사가 존재하는 것으로 보고 원심을 파기하였습니다.

적성검사를 받지 않은 상고인은 5만원의 벌금을 내야 겠네요(현행 도로교통법 제160조 제2항 6호는 정기적성검사를 받지 않으면 20만원의 과태료를 부과하도록 되어 있고, 이 사건은 개정전 도로교통법에 따라 벌금이 부과된 경우입니다). 운전면허증 확인하시고 적성검사 기간 내에 검사를 받았는지 확인해 봐야 겠습니다. 통지를 못받았다는 이유는 이제 들어주지 않게 되었습니다.

2014년 4월 23일 수요일

[Favorite] 우화로서의 SF영화

*이퀼리브리엄, 헝거게임, 다이버전트 모두 스포일러 주의!

제가 좋아하는 영화를 소개하고자 하는데, 최근에 "다이버전트"라는 영화를 보고, 전에 본 영화들이 떠올라 끄적끄적대 봅니다. 제 영화취향은 "매우" 대중적이며, 액션, 로맨틱코미디를 특히 좋아라 하고, 공포물은 싫어하는 편입니다. 



이퀼리브리엄(2002)
감독: 커트 위머
주연: 크리스천 베일

3차 세계대전 이후 전세계사람들이 프로지움이라는 약물로 감정을 엄격히 통제받는 사회에서 약물투입을 거부하고 감정을 느끼며 살아가려 하는 반역자들의 색출하는 최고 요원인 "존 프레스턴"이 동료의 자살, 아내의 숙청 등의 사건을 괴로운 감정을 갖게 되고, 투약을 중단하면서 감정의 세계에 눈을 뜨면서 자유를 위해 싸우게 되는 이야기입니다. 미래사회를 종교사회로 그리면서 신정일치 사회가 어떤 위험성을 갖게 되는지 보여주는 동시에, 가공의 무술인 건카터를 멋있게 묘사해낸 것도 이 영화를 높이 평가할 부분입니다. 크리스천 베일의 액션배우로서의 가능성이 증명해냈다고 할 수 있는 영화라고 하겠습니다. 뭐 다른 부분은 다 차치하고 건카터 액션 만으로도 고등학교 남학생 정도인 제 안목을 충분히 만족시킨 영화입니다.




헝거게임 :판엠의 불꽃(2012)
헝거게임 :캣칭파이어(2013)
감독 : 게리로스
주연 : 제니퍼 로렌스

독재국가 판엠에서 12개 구역에서 2명씩 선발된 남녀로 하여금 주어진 무기로 1인이 살아남을 때까지 생존경쟁을 벌이도록 하는 '헝거게임'에 동생 대신해 지원하여 출전하게 된 '캣니스'가 전 구역으로 생중계되는 게임현장에서 살아남고, 그와 동시에 판엠 독재 체제에 대한 봉기의 중심으로 나서게 되는 과정을 그린 영화입니다. 원작소설 3부작 중 2부작까지 영화화된 상태이므로 1편을 보지 않고 2편을 보게 되면 약간 이해가 어려운 측면이 있을 수 있습니다. 주인공은 독재국가의 중심부의 귀족 비슷한 계층과 12구역에서 착취당하며 거주이전이 불가능한 상태로 통제당하는 대다수 대중의 대립구도에서 대중의 희망으로 체제를 전복하는 역할을 하게 됩니다. 이퀼리브리엄에서 존 프레스턴이 건 카터의 달인이라면, 헝거 게임에서 캣니스는 활의 달인입니다. 제니퍼 로렌스의 출세작이라고 할 수 있겠죠. 액션 및 숨가쁜 스토리 전개를 원하는 사람에게는 혹평도 많이 받는 것 같습니다.



다이버전트(2014)
감독 : 닐 버거
주연 : 쉐일린 우들리, 테오제임스

근미래의 시카고가 배경인데, 잦은 전쟁과 자연재해로 폐허가 된 도시에서 인류는 다섯개의 분파로 나뉘어 자신의 분파의 행동규범을 철저히 따라야 하는 통제된 사회에서 살게 됩니다. 이 사회에서 16살이 되면 어느 분파에 속하게 될 것인지 결정하기 위한 테스트를 거치게 되는데, 테스트과정에서 원래 부모님의 분파가 이타주의적인 "애브니게이션(ABNEGATION)"인 주인공 트리스는 어느 분파에도 속하지 않는 강한 의지를 가진 "다이버전트"라는 것을 알게 되고 자신의 분파로 군대/경찰을 담당하는 분파인 "돈트리스(DAUNTLESS)"를 선택하여 훈련을 받게 됩니다. 트리스는 훈련과정에서 과학자집단 분파인 "에러다이트(ERUDITE)"가 돈트리스 수뇌부와 결탁하고, 실질적으로 행정을 담당하는 애브니게이션을 축출하기 위해서 돈트리스의 의식을 조종하여 애브니게이션 학살작전에 이용하려는 것을 알게 됩니다. 트리스와 그에게 물심양면으로 도움을 주던(물론 티격태격하다가 로맨스에 빠지는 건 기본) 훈련교관 포는 "다이버전트"였기 때문에 의식조종이 이루어지지 않습니다. 학살작전에서 애브니게이션의 지도자급인 트리스의 부모님을 찾던 트리스와 포는 다이버전트라는 사실이 밝혀져 돈트리스 수뇌부에게 붙잡히는데, 트리스는 (아마도 다이버전트였던) 어머니의 희생으로 달아나서 에러다이트와 돈트리스 수뇌부의 만행을 저지한다는 내용입니다. 주연배우들은 유명하지 않으나, 애슐리 저드, 케이트윈슬렛 등 반가운 얼굴들을 만날 수 있습니다. 제 팝콘취향의 귀에 달달한 OST도 마음에 들더군요.

세 영화들은 모두 일종의 우화입니다. 개인의 자유를 필요 이상으로 억압하는 독재나 신정일치 사회, 분파라는 시스템에 대항하는 개인이 우연한 기회에 자유의 중요성을 자각하고 체제를 전복하는 이야기이자 영웅담이라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리스로마 신화 이래 영웅이야기의 오랜 전통은 SF 영화에도 남아있는 것일 테지요. 누구든 사회의 시스템으로 개인의 자유를 억압하는 것이 필요하다는 생각이 들 때, 혹시 자신이 그러한 시스템을 강제하려고 할 때(우리 헌법은 그 한계를 제37조 제2항에서 애매모호하게 표현하고 있다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이런 영화들이 무의식중에 자유의 소중함을 일깨워줄 수 있을지도 모릅니다. 물론, 그 자체로 재미있는 볼거리라는 점은 부정할 수 없을 것입니다.

2014년 4월 22일 화요일

수학여행을 없애는 게 대책인가


[이훈범의 세상탐사] 이참에 없애자, 수학여행
중앙선데이, 2014. 4. 20.자

세월호 참사로 인하여 언론의 오보 등으로 말이 많은 가운데, 수학여행 가다가 사고가 난 것을 탓하며 수학여행을 폐지하자는 분들을 종종 보게 됩니다. 위에 인용한 칼럼도 그런 취지입니다. 내용을 살펴보면 인터넷시대에 수학여행과 수련회, 신입생 오리엔테이션 같은 집체교육은 전체주의의 시대착오적 산물이요 고질적 지연 학연주의의 증폭기일 뿐이므로 없애자는 취지입니다.

세월호 참사로 인해 수학여행 가던 학생들이 사고를 당한 것은 가슴아픈 일이고, 그러한 일이 다시는 일어나지 않도록 선박 점검절차를 재검토하고 미흡한 점이 무엇이었는지 확인하고 개선하고, 선박탑승시 비상상황에 대한 교육은 필수적으로 하도록 강제하고, 정부의 대응이 미흡했다면 관련 책임자에게 책임을 물으면서 정부대응 매뉴얼을 상세히 마련하고, 언론의 보도에 문제가 많았다면 그 역시 책임자에게 책임을 물으면서 언론보도 지침이나 매뉴얼을 상세히 마련하는 등의 조치를 취해야 합니다. 그렇지만 수학여행 폐지라니 이건 방향을 잘못잡아도 한참 잘못 잡은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이런 생각이 왜 잘못되었는지는 다음과 같은 예에 대해서 저 의견을 가진 사람이 반론을 할 수 있는지만 보아도 쉽게 알 수 있습니다. "만약 효도관광을 가던 버스가 대관령에서 전복되어 낭떠러지로 떨어지는 사고가 나서 버스에 갖혀 수십명의 할아버지 할머니가 돌아가는 사고가 났다" 그렇다면 우리는 효도관광을 없애 버려야 한다는 결론이 납니다. 이 예에서 사고의 문제가 효도관광이 아니듯, 세월호참사에서도 사고의 문제는 수학여행이 아닙니다. 경주 마우나 오션 리조트 사건 또한 단체 오리엔테이션이 문제가 아닙니다. 폭설을 예측치 못하고 강당 지붕을 약하게 지은 리조트 공사업자, 관련 감독기관의 안전조치 미이행이 그 사고의 문제이고, 우리가 앞으로 고쳐나가야 할 부분은 그 부분입니다.

집체교육이 전체주의의 시대착오적 산물이라거나 지연학연주의의 증폭기라는 말도 그닥 설득력있는 의견도 아닙니다. 수학여행이나 오리엔테이션에 간다고 해서 우리 사회에 전체주의가 만연한 것인가요? 대학교 오리엔테이션은 교수나 학교에서는 후원만 하고 학생회/동아리 주도로 이루어지는 경우가 많아서 상명하복식의 제도권 교육이 아니라 학생자치 및 동아리문화에 익숙해지는 데 도움이 되는 면이 있습니다. 수학여행이나 오리엔테이션할 때 안전요원을 붙이는 제도를 만드는 것과 같은 보완책을 제시하는 것은 별론, 수학여행이나 오리엔테이션 그 자체를 폐지 운운할 것이 아닙니다. 우리 사회에 만연한 전체주의 문화를 꼬집으려면 근본적으로 징병제로 인해서 모든 성인 남자가 군대에서 전체주의 교육을 받은 영향이 크므로 수학여행이 아니라 징병제를 문제삼는 것이 더 타당한 문제제기일 것입니다. 또 지연학연이 수학여행 같이 가서 오리엔테이션을 같이 가서 생기는 것이라고 단정할 수도 없는 터에 여기에 지연학연주의의 증폭기라는 딱지를 붙이는 것이 과연 합리적인 사고라고 할 수 있을까요.

학창시절 같이 소풍가고 같이 수학여행 갔던 친구들과의 추억이 나이 사십이 넘어가면서 희미해지기도 하였고 중간중간 왜 하는지 모르는 것들이 끼어들어가 있을지 몰라도 친구들과 함께 하던 여행이 즐거웠던 것만은 기억납니다. 학창시절 친구들과 같이 밥먹고 자는 몇박 몇일의 경험이 학생들에게 그렇게 쓸모 없는 것인지 그렇게 매도될 수 있는 것인지 의문입니다. 저 칼럼니스트는 집체교육이라는 이유로 수학여행, 수련회, 소풍 다 없애고 학교에서 아이들에게 수업만 시키고 싶은 걸까요? 그렇다면 학교가 지식만을 위해서 수업만 듣기 위해 가는 학원과 다른 게 무엇일까요. 학교는 여러가지 상황에서 다른 사람들과 부딪히는 경험을 쌓게 해주는 작은 사회입니다. 이런 작은 사회에서 이미 수십년동안 이루어졌던 프로그램에는 나름의 존재의의가 있다는 사실을 굳이 설명할 필요가 없을 것입니다. 수학여행이 수학여행비를 마련해 올 수 있는지 여부에 따라 빈부격차가 있는 아이들에게 상대적 박탈감을 줄 수 있다는 의견에도 솔직히 저는 반대입니다. 그래서 수학여행을 없애면 수학여행이 아니었다면 지방여행은 꿈도 못 꾸었을 아이들에게 지방여행의 기회는 더 이상 제공되지 못할 거라는 생각은 못하나요. 그나마 수학여행이니까, 가족여행 가는 것보다 경비가 덜 들어서 아이들에게 그 경험을 해보라고 수학여행에 아이들을 보내는 가정이 있다는 생각은 못하는 걸까요. 

수학여행이 무슨 죄며, 오리엔테이션이 무슨 죄입니까. 대책이 필요하다면, 교육이 필요하다면. 개선이 필요하다면, 정말 필요한 것에 집중해야 합니다. 이런 것에 집중하지 않고 수학여행을 폐지해야 한다는 식으로 문제해결을 바라다가는 정말 대형 사고가 일어나더라도  "인명 피해는 없었다"는 행복한 소식이 들려올 날은 요원할 것입니다. 

추신 : 저 칼럼에 있는 쓸데 없는 말보다 이 분의 글을 읽는게 훨씬 생산적입니다. 살아계신 분들에게도 관심을 기울이고 죄책감에 시달리지 않도록 지원해야 할 것입니다.


   

2014년 4월 21일 월요일

[맛집 소개] 수유리 우동집






수유리우동집
주메뉴: 우동, 김밥
주소 : 서울시 강북구 미아3동 159-53 (본점)
02-980-9630
주차: 주말을 제외하고는 불법인 도로주차를 해야 함

가성비 최고의 분식점을 꼽으라고 한다면, 저는 주저없이 수유리 우동집을 꼽을 것입니다. 10년 전에도 어머니께서 김밥이나 우동을 사시러 종종 가곤 하셨지만 맛집이라는 칭호를 붙여줄 정도는 아니었다고 생각했는데, 어느 순간 값싸고 맛있는 집으로 변신해 있었다고나 할까요. 지금은 꽤 많은 분점을 내고 있어서 저도 본가에 갈 때를 제외하고는 방학직영점이나 상계역점을 이용하곤 합니다만 가격과 맛은 큰 차이가 없습니다. 몇년전만 하더라도 인테리어가 매우 저렴했었는데, 요새는 깔끔하게 인테리어를 다시 하고 종업원들의 복장도 통일해서 뭔가 있어 보이게 만들었습니다.

메뉴는 김밥, 우동, 짜장, 쫄면으로 시작했는데 지금은 비빔국수, 열무국수, 잔치국수, 잔치우동까지 나오고 있습니다. 예전에 수유리우동집의 특징은 손님이 직접 계산하는 것이었습니다. 돈 놓는 계산대가 손님을 향하고 있고, 종업원은 돈이 많이 쌓이면 가져가기만 할 뿐 손님이 식사를 한 후에 돈을 내고 거스름돈을 가져가는 시스템이었죠. 손님이 많아지고, 카드를 쓰려는 손님이 늘어서인지 인테리어를 현대식으로 개조한 이후에는 카드도 받고, 현금계산도 종업원이 하는 것으로 바뀌었습니다.

새벽까지 영업을 하므로 출출할 때 밤참으로도 괜찮은 선택입니다. 그러나 맛집탐방으로 올 필요까지는 없는 그런 집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일요일은 휴무이니 참고하시고, 근처에 오실 일 있으면 저렴하고 푸짐한 선택으로 추천합니다.

2014년 4월 18일 금요일

농지취득자격증명 발급신청이 강제집행을 위한 채권자대위권의 대상이 되는 지 여부



채무자 명의 등기에 필요 농지취득자격증명 발급신청은
법률신문 2014. 4. 18.자 기사

이 기사를 읽기 전에 필요한 사전지식이 있습니다. 우리나라는 토지소유의 자유가 있는 나라니까 누구나 농지를 사서 농사를 짓고 싶으면 농지를 살 수 있는 것일텐데 농지취득자격증명이라는 것이 왜 필요한 것인가를 알아야 하기 때문입니다.

원칙적으로 지목이 전, 답 등인 농지는 상속 등 예외적인 경우를 제외하고는 농지법에 따라 농사를 짓는 사람만 소유할 수 있습니다(농지법 제6조 제1항). 이에 따라 농지법은 농지를 취득하려 하는 사람이 농사를 짓는 사람인지 확인할 수 있는 서류로서 농지취득자격증명이라는 것을 발급받아야 농지를 취득할 수 있다고 규정하고 있습니다(농지법 제8조 제1항). 그래서 농지를 취득하기 위해서는 농지취득자격증명이 필요한 것입니다.

채무자가 부동산에 대해서 매매계약을 체결하여 놓은 경우, 그 채무자의 채권자는 일정한 요건을 갖추면 채무자를 대위하여(대신하여) 매매계약에 기하여 채무자 앞으로 소유권이전등기를 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채무자 앞으로 소유권이 돌아오면 그 부동산을 강제집행 절차에서 경매 등으로 처분하여 자신의 채권에 대한 변제에 충당하게 됩니다. 이렇게 채권자가 채무자를 대신해서 채무자의 권리를 행사할 수 있는 권리를 채권자대위권이라고 합니다. 그런데 농지의 경우에는 매매계약만으로는 농지의 소유권이전등기를 할 수가 없습니다. 위에서 살펴본 농지법 때문입니다. 채무자가 채권자에게 순순히 협조해서 자신의 명의로 농지취득자격증명을 발급받아준다면 문제가 없겠지만 채무자로서는 협조해 봐야 당해 농지는 채권자의 강제집행절차에서 경매 등 처분될 것이므로 협조를 할리 만무한 경우입니다. 채권자는 강제집행을 위해 채무자를 대위하여 채무자 명의로 농지취득자격증명발급신청을 하였는데, 면사무소는 "농지취득자격증명은 농지를 취득하고자 하는 자(채무자)가 신청해야 하며 .... 대위신청은 받아들일 수 없다"는 이유로 반려하게 됩니다. 이에 채권자는 농지취득자격증명 반려처분 취소소송을 제기하였고, 1심은 행정청의 손을 들어주어 원고의 청구를 기각하였는데, 항소심에서는 1심을 취소하고 원고승소 판결을 하였네요(서울고등법원 2014. 4. 11. 선고 2013누47803 판결).

재판부는 "농지취득자격증명 발급신청권은 해당 토지의 지분을 매수한 채무자가 소유권이전등기를 위해 자신에게 자격증명을 발급해 줄 것을 구하는 재산권의 일종일 뿐, 그 행사여부가 채무자의 자유로운 의사결정에 전적으로 맡겨진 행사상 일신전속권이라고 볼 수 없으므로 채권자대위권의 대상이 된다"고 하면서 "시구읍면의 장은 채무자의 농업경영계획서가 존재하지 않더라도 채무자에게 농업경영의 의사가 있는지 여부를 다른 자료에 의해 심사해 농지취득자격증명 발급 여부를 결정해야 하며, 단순히 채무자 작성의 농업경영계획서가 없다는 이유로 채권자의 농지취득자격증명 발급신청을 반려해서는 안된다"고 판시하였습니다.

위 판결에 따르면 채권자 입장에서 농업경영계획서에 준하는 다른 자료를 제출하면 이를 심사해서 (채무자 명의의) 농지취득자격증명을 발급해 주어야 한다는 것인데, 위 판결과 관련된 민사소송에서 채무자가 이미 자경의사가 있지만 채권자에게 협조하고 싶지 않아 농지취득자격증명발급신청을 하지 않았다고 증언하는 등의 특별한 사정이 있었기 때문에 반려처분취소에 이를 수 있었던 것으로 보입니다. 위 판결이 확정된다고 하여도 채권자가 채무자의 농지취득자격증명 없이 채무자를 대위하여 농지취득자격증명을 받을 수 있다고 일반화시키기는 어려울 것 같습니다. 적어도 채무자의 자경의사가 확실하거나 확정판결 및 증언 등 이를 농업경영계획서에 준하는 자료가 구비되어야 할 것입니다. 그렇지만, 농지취득자격증명신청이 채권자대위권의 대상이 된다는 점을 확인하였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는 판결입니다.

관련조항은 다음과 같습니다.

 ① 농지는 자기의 농업경영에 이용하거나 이용할 자가 아니면 소유하지 못한다.
②다음 각 호의 어느 하나에 해당하는 경우에는 제1항에도 불구하고 자기의 농업경영에 이용하지 아니할지라도 농지를 소유할 수 있다.

                3. 주말·체험영농(농업인이 아닌 개인이 주말 등을 이용하여 취미생활이나 여가활동으로 농작물을 경작하거나 다년생식물을 재배하는 것을 말한다. 이하 같다)을 하려고 농지를 소유하는 경우
4. 상속[상속인에게 한 유증(遺贈)을 포함한다. 이하 같다]으로 농지를 취득하여 소유하는 경우


 ① 농지를 취득하려는 자는 농지 소재지를 관할하는 시장(구를 두지 아니한 시의 시장을 말하며, 도농 복합 형태의 시는 농지소재지가 동지역인 경우만을 말한다), 구청장(도농 복합 형태의 시의 구에서는 농지 소재지가 동지역인 경우만을 말한다), 읍장 또는 면장(이하 "시·구·읍·면의 장"이라 한다)에게서 농지취득자격증명을 발급받아야 한다. 다만, 다음 각 호의 어느 하나에 해당하면 농지취득자격증명을 발급받지 아니하고 농지를 취득할 수 있다.  <개정 2009.5.27>
1. 제6조제2항제1호·제4호·제6호·제8호 또는 제10호(같은 호 바목은 제외한다)에 따라 농지를 취득하는 경우
2. 농업법인의 합병으로 농지를 취득하는 경우
3. 공유 농지의 분할이나 그 밖에 대통령령으로 정하는 원인으로 농지를 취득하는 경우
②제1항에 따른 농지취득자격증명을 발급받으려는 자는 다음 각 호의 사항이 모두 포함된 농업경영계획서를 작성하여 농지 소재지를 관할하는 시·구·읍·면의 장에게 발급신청을 하여야 한다. 다만, 제6조제2항제2호·제3호·제7호·제9호·제9호의2 또는 제10호바목에 따라 농지를 취득하는 자는 농업경영계획서를 작성하지 아니하고 발급신청을 할 수 있다.  <개정 2009.5.27>
1. 취득 대상 농지의 면적
2. 취득 대상 농지에서 농업경영을 하는 데에 필요한 노동력 및 농업 기계·장비·시설의 확보 방안
3. 소유 농지의 이용 실태(농지 소유자에게만 해당한다)
③제1항 본문과 제2항에 따른 신청 및 발급 절차 등에 필요한 사항은 대통령령으로 정한다.
④제1항 본문과 제2항에 따라 농지취득자격증명을 발급받아 농지를 취득하는 자가 그 소유권에 관한 등기를 신청할 때에는 농지취득자격증명을 첨부하여야 한다.


2014년 4월 17일 목요일

헌법재판소 연필과 대학원 첫 수업


와이프가 근무하는 고등학교에 각종 직업소개를 하는 프로그램이 있는 모양인데, 헌법재판소 를 소개하면서 헌법재판소 소개 팸플릿, 헌법, 헌법재판소 로고가 그려진 연필이 사은품으로 배포되었던 것 같습니다. 저 연필은 은근히 고급스러움이 느껴져서 저도 가지고 싶네요.

헌법재판소 연필을 보니 제 대학원 첫 수업이 떠올라 끄적여 봅니다. 헌법은 기본 삼법 중에 학부 재학시절 제가 가장 좋아하던 과목이었습니다. 일단 헌법이 나라의 근본이 되는 기본적인 사항을 정하고 있는 법이고, 어떠한 법률이 헌법에 위반되는 경우에는 헌법재판소가 당해 법률의 위헌여부를 심사하여 무효화할 수 있으므로 최상위법인 헌법을 깊이 공부해 보는 것도 재미있을 것 같았습니다. 대학교 4학년 당시 다른 친구들은 졸업학점을 채우지 않는 방법으로 졸업을 미루고 1년 정도 학교를 더 다니면서 사법시험을 준비하는 경우가 많았는데, 재수를 하여 무작정 졸업을 미룰 수 없었던 저는 졸업학점을 꼬박 채워 수업을 들으면서, 사법시험 공부를 병행해야 했습니다. 게다가 졸업을 하게 되면 바로 영장이 나오게 되므로 졸업 후를 안배하기 위하여 대학원에 입학해야 했기 때문에 대학원 입시를 위한 공부도 해야 했습니다. 법대 대학원 입학은 두가지 전형 특차/정시로 나뉘어 있었습니다. 특차는 졸업시 학점이 좋은 친구들이 지도교수님의 추천으로 대학원에 입학하는 것으로, 전공당 1-2명씩 할당되어 있어서 이미 지원 당시에 전공이 정해지는 전형이고, 정시는 전공을 정하지 않고 시험을 보는 전형이었습니다. 특별히 성적이 좋지도 않았을 뿐더러 전공을 정하고 지도교수님께 추천받는 것은 생각할 처지가 아니었으므로 저는 당연히 정시 전형을 준비하였는데 덕분에 4학년 1학기는 졸업학점을 채우느라 빡빡한 수업일정과 사법시험 준비를 위한 기본서를 읽는 데에, 여름방학기간에는 새벽부터 오전에 이르는 1차시험 모의고사반과 대학원 입시를 위한 준비로, 4학년 2학기는 역시 졸업학점을 채우기 위한 수업일정과 얼마 안남은 1차 시험 준비로 다 가버렸습니다. 재수를 한 1994년과 대학원입시 및 사법시험 1차 준비를 한 1998년이 아마도 제 인생 중 가장 빡빡했던 기간이었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대학원 입시는 외국어와 법학 두 부문으로 이루어져 있었습니다. 외국어는 기본적으로 영어 과목을 통과해야 하고, 독어/불어/일어 등 제2외국어 과목을 하나 더 통과해야 했습니다. 영어는 고등학교 때까지 웬만큼 했다고 생각했으므로 특별히 준비하지는 않고, 토플책을 하나 사서 보았는데 1/4도 안보고 시험장에 갔었고, 독일어는 사법시험 1차 과목으로 준비를 했으므로 그걸로 준비를 대신했습니다. 외국어는 두 과목 다 일정 점수를 넘겨야 합격이 되는데 그 일정 점수가 그리 높지 않아서 큰 실수를 하지 않으면 대부분 합격을 하는 분위기였습니다. 법학 과목은 기출문제가 족보로 돌아다니고 있었고, 교수님들께서는 기출문제 중에서 돌아가면서 문제를 내신다는 소문이었는데, 역시나 기출문제에서 문제가 출제되어 꾸역꾸역 답안지를 채워 4학년 졸업, 이듬해 대학원 입학을 할 수 있었습니다.

어쨌든 학부 때 가장 좋아했던 과목이 헌법이었으므로 대학원에서 원래는 헌법을 전공으로 택하려 했었습니다. 그래서 99년 1학기에 개설된 대학원 헌법과목을 수강하려고 하였죠. 특차가 아니었기 때문에 특별히 급하게 전공을 정할 것도 아니었고 일단 대학원 헌법수업은 뭐가 다를까 하고 첫 수업에 들어갔습니다. 당시 서울대 법대에는 헌법교수님이 권영성, 김철수(김철수 교수님은 98. 8.에 퇴임하셨지만 명예교수 자격으로 강의는 개설하고 계셨습니다), 최대권 이렇게 세 분이 계셨습니다. 그런데 권영성 교수님은 99. 8.에 퇴임을 앞두신 때문인지 강의가 개설되지 않았었고, 최대권 교수님만 강의를 개설하셨기 때문에 최대권 교수님 수업에 대한 수강신청을 할 수 밖에 없었습니다.  물론 헌법에 관심이 있었지만 첫시간이므로 분위기가 어떤지 탐색하려는 목적이 강했습니다. 그런데 이게 오산이었던 것이 강의 첫시간부터 분위기가 예상과 달리 흘러갔습니다. 강의 중 관련 주제를 할당하면서 자기소개를 하는 시간이 있었는데, 제가 이 과목을 수강신청한 것은 일단 분위기를 보기 위한 것이고 수강이 확정된 것은 아니라고 말씀드리니 최대권 교수님께서 노발대발하신 것입니다. 교수님께서 본인의 수업을 들으려고 작정하고 온 사람이 아니면 이 수업은 들을 수 없다고 하시며 "나가라"고 하시는 바람에 나누어주신 프린트물을 들고 나가려고 하였는데, 교수님께서 또 그걸 보시고는 프린트물은 놓고 나가라고 또 엄청 화를 내셨죠. 덕분에 전 대학원 첫학기 헌법수업에서 쫓겨나게 됩니다.

그래서 저는 그 다음시간에 있었던 "행정법" 수업에 들어가게 됩니다. 제가 수강신청했던 행정법 과목의 교수님은 학교에 부임하신지 2년 정도 밖에 안 되신 박정훈 교수님이셨는데, 최대권 교수님과는 너무나 다른 화기애애한 분위기와 전공/비전공자 관계없이 환영하신다는 말씀, 결정적으로 "나누어주신 프린트물은 이 과목을 수강하는지 여부와 관계없이 가져가라"는 말씀은 제 대학원 전공을 "행정법"으로 정하는 데 지대한 영향을 미치게 됩니다. 인생에는 우연이 참 많이 개입한다는 생각이 드는게, 대학원 첫 수업에서 쫓겨나지 않았다면 어쩌면 저는 헌법으로 먹고사는 사람이 되었을 수도 있었을 지도 모르는 일이니까요. 이상 헌법재판소 연필때문에 떠올린 제 대학원 첫 수업에 대한 이야기였습니다.



2014년 4월 16일 수요일

[맛집 소개] 스시아메










스시아메
주메뉴 : 스시, 사시미
주소: 서울시 용산구 한남동 72-1 금호리첸시아 110호
전화 : 02-796-8540
주차가능

점심에 제육볶음으로 과식을 한 탓에 저녁은 부담없는 양에 맛있는 것이 먹고 싶어서 예전에 트위터에서 맛집이라고 보고 메모를 해 두었던 스시아메를 찾아가 보기로 했습니다. 요새 핫한 음식점들이 대부분 그러하듯 당일 예약은 불가능할 것이라고 생각하긴 했는데, 저녁 먹으러 나선 것이 늦기도 하였거니와 유명한 식당이라도 8시 넘은 시간에는 당일이라고 어찌어찌 자리를 빼는게 가능한 경우가 있어서 한번 전화를 걸어본 것이었는데, 8시 넘어서 언제든 가능한지 확인을 하더니 다시 전화를 주신다고 한 후 십분 정도 후에 가능하다고 해서 룰루랄라 찾아가게 된 것이지요.

사실 스시는 제 반평생동안 한번도 입에 대본적이 없었던 음식입니다. 대학교 1학년 겨울 때 동문 법조선배님들께서 법조동문회라는 걸 서초동 "태평양 일식"에서 하신다셔서 가본 것이 제 생애 첫번째 회/초밥 경험이었으니까요. 그나마 날 생선은 먹은 적이 없어서 젓가락도 몇번 뜨지 않다가 남은 생선으로 매운탕을 해준다길래 그걸로 밥을 비웠던 기억이 납니다.

그리고 나서 스시 라는 음식에 별 관심을 기울이지 않았었는데, 연수원 때 친하게 지내던 형님께서 어느날 스시를 잘하는 집이 있으니 같이 가자고 하셔서-물론 그 형님께서 사셨기 때문에- 최고급 스시집에 가보게 되었습니다. 그날 이후 저는 스시가 정말 "맛있는" 음식이라는 걸 알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어떤 음식이든 정말 맛있다고 소문난 음식을 먹어보지 않고 함부로 "나는 그 음식에 맞지 않아"라고 말하는 것은 정말 경솔한 행동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 이전에 저는 항상 "스시는 저한테 맞지 않는 음식입니다. 맛이 없어요."라고 하였었거든요. 그래서 그 형님께서 저를 그 음식점에 데리고 가셨던 것 같습니다. 그 음식점이 바로 신라호텔 일식당 "아리아께"입니다. 뒤이어 청담동에 본점이 위치한 "스시효"에도 그 형님 따라 가 보았죠. 만약 "돈은 얼마가 들던지 관계없다. 우리나라에서 가장 맛있는 스시가 먹고 싶다"면, 저는 주저없이 저 두 식당을 추천하겠습니다. 두 식당 모두 미식가 블로거 팻투바하 가 인정한 곳입니다. 팻투바하의 소개 포스팅을 참고하시면 되겠습니다([신라호텔] 아리아께  [청담동] 스시효).

그러나 저런 식당은 일년에 한번 가도 비용부담이 있으므로, 우리는 최고의 맛은 아닐 지라도 가격대비 만족도가 높은 식당을 찾게 되지요(사실 몇년 전 기념일에 마눌님을 데리고 청담동 스시효에 간 적이 있었는데, 제가 처음 스시효에서 스시를 먹었을 때 정말 맛있어 했던 것과 대조적으로 시큰둥해서 속으로 실망했던 기억이 납니다). 그런 식당으로 추천할 만한 스시집이 두군데 정도 됩니다. 하나는 동부이촌동의 "기꾸"이고, 하나는 광화문 세종문화회관 뒷편의 "오가와"입니다. 이 식당들은 최고급 스시집은 아니지만 비교적 저렴한 가격에(그러나 결코 절대적으로 저렴한 가격은 아닙니다) 양질의 스시를 맛볼 수 있는 식당으로 유명하지요. 2-3일 전에 하지 않으면 예약도 쉽지 않습니다. 다만 당일이라도 갑자기 예약손님이 안 오는 경우(no show)가 종종 있고, 8시 이후 마감 전까지의 시간 동안이라도 괜찮다면 당일 예약해서 바로 식사를 할 수 있기도 합니다(오가와의 경우 저녁에 6시 타임과 8시 타임 두 타임으로 예약을 받더군요).

스시아메는 "기꾸"의 주방장이 독립하여 한남동에 비슷한 규모로 낸 스시집이라고 하며, 역시 비슷한 이유로 인기가 있는 것 같습니다. 막입에 평가할 만한 안목도 없지만, 기꾸가 조금 더 낫지 않나 하는 생각입니다. ^^; 오가와는 생물보다는 조리 및 소스를 뿌린 스시를 주로 내놓는데 그런 이유로 기꾸가 더 높은 평가를 받고 있는 것 같고, 스시아메는 기꾸 정도의 가격대와 퀄리티를 찾는 사람에게 인기를 얻고 있는 것 같습니다.

팻투바하가 포스팅에서 스시를 먹기 전에 시원한 맥주(나미 비루 라고 하던가요 ㅎㅎ) 하길래 우리도 시원한 산토리 맥주를 시켜서 먹어 보았습니다. 더워서 가기 꺼려지기 전에 좋은 날로 예약하고 한번 가보실 만한 식당으로 추천합니다.

2014년 4월 15일 화요일

법조인 수난시대



너무 제목이 거창하긴 한데, 요즈음 들어 판검사들이 예전이었으면 전혀 문제가 되지 않았을 사안들로 형사처벌 내지 징계를 받는 경우가 많아진 것 같습니다. 바로 생각나는 사건들만 해도 박인비 아버지 사건, 에이미 검사 사건, 이정렬 전 판사 변호사 입회 거부 사건, 부장판사 술집난동 사건, 영장 찢은 검사 사건 등이 있습니다.

박인비 아버지 사건(박인비 아버지, 구속 영장 기각…"체육 훈장 받은 딸 얼굴 먹칠")은 박인비의 아버지가 폭행 등의 혐의로  입건이 되어 경찰이 검찰에게 구속영장을 청구하자, 담당 검사가 구속영장 신청을 기각한 건입니다. 그런데 어제 대검에서 박인비 아버지에 대한 구속영장을 기각한 검사를 감찰하겠다고 하였네요(대검, 박인비 아버지 구속영장 신청 기각한 검사 감찰). 공무원에 대한 범죄에 대한 엄정대처방침에 반한다는 이유로 검찰총장이 직접 지시하였다고 하는데, 개인적으로는 총수가 개별 사안에 대해서 일일이 지시하는 것은 조직 전체에 이롭지 못할 가능성이 크다는 생각입니다. 총수는 굵직굵직한 방침이나 방향을 보여주고, 구체적인 실행과정에서의 재량은 아래쪽으로 위임되어야 합니다. 대신 실행과정에서의 잘못은 실행하느라 고생한 실무자가 아니라 위쪽의 지시자가 책임을 져야죠. "권한은 밑으로, 책임은 위로" 이러한 원칙이 지켜질 때 그 조직이 단단해지고 조직원들의 자부심도 강해집니다. 검찰이 이런 모습을 잃어가고 있는 것 같아 안타까운 심정입니다.

에이미 검사 사건은 너무도 유명해서 잘 아시겠죠. 프로포폴 투약 혐의로 에이미를 피의자로 수사하던 검사가 에이미와 연인관계로 발전하여, 에이미와 성형수술 후유증 등으로 갈등관계에 있었던 병원 원장을 업무상 지위를 이용하여 협박한 사건([디브리핑] '막장 끝판왕' 에이미 '해결사 검사' 사건의 전말)입니다. 현직검사가 이례적으로 구속되어 재판을 받는 상황이 되어 버렸습니다.

이정렬 판사는 SNS에서 "가카새끼 짬뽕"이라는 사진을 올려 유명세를 탄 분인데, 이미 그 이전에도 "양심적 병역거부자에 대한 무죄 판결" 등으로 진보적 판사로서 어느 정도 유명한 분이었습니다. 그런데 이정렬 판사는 창원지법 부장으로 근무할 당시 두 가지 불미스러운 사건에 휘말리게 됩니다. 하나가 법원조직법상 외부로의 공개가 금지되어 있는 판사들 사이의 합의내용을 공표한 것이고, 두번째는 이웃과의 다툼으로 인해 이웃의 차를 손괴한 혐의로 벌금형을 선고받은 것입니다. 합의내용의 공표로 인하여 이정렬 판사는 법원으로부터 징계처분을 받았습니다. 이후 이정렬 판사는 서울에서 변호사개업을 하기 위해 서울지방변호사회를 거쳐 대한변호사협회에 변호사 등록신청을 하였는데, 서울지방변호사회는 위 두 사건에 대하여 상세히 소명할 것을 요청하였고, 이정렬 판사 측에서 이에 충실히 응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이정렬 판사의 입회를 거부하였습니다(서울지방변호사회, ‘가카새끼 짬뽕’ 이정렬 변호사 등록 거부). 하지만 변호사 등록여부 결정의 최종권한은 대한변호사협회에 있고 서울지방변호사회는 대한변호사협회에 의견을 제출할 수 있을 뿐입니다. 따라서 대한변호사협회가 이정렬 판사의 변호사 등록을 받아들이는 경우(아직 대한변협은 이에 대한 결론을 내리지 않은 상태입니다), 서울지방변호사회가 이정렬 판사의 입회를 거부할 수 있는지는 아직 확실치 않은 상태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부장판사 술집난동 사건('술값 시비 난동' 부장판사, 창원지법 전보 발령)은 술값이 시비되어 술집에서 다툼을 하던 수도권 현직 부장판사가 경찰관을 때려 공무집행방해 혐의로 입건되었고, 그에 대한 판결 결과가 나오기 전에 창원 지방법원으로 전보된 사건입니다.

영장 찢은 검사 사건은 경찰관이 지휘를 받기 위해서 의정부지검 검사에게 구속영장을 가져 왔는데, 검사는 영장이 자신이 지시한 것과 다르다는 이유로 경찰관이 가져온 영장을 찢어버린 사건입니다. 이것이 언론이 보도되면서 대검은 결국 해당 검사를 공용서류 손상죄로 약식기소하기로 하고, 이에 더하여 검사는 징계를 받게 되었습니다(대검, 구속영장 찢은 검사 약식기소키로). 종전에는 검사들은 아무리 젊어도 영감님으로 불리면서, 경찰들 기합을 주기도 하였다는 말도 전해졌었는데, 이젠 경찰을 지휘하면서 잘못 화를 냈다간 본인이 화를 입는 지경이 되었네요.

그러다 보니 오늘자 세계일보에서는 "율사망국론" 이라는 제목으로 법조 전체가 부패했다는 취지의 칼럼이 실리기도 했습니다. 내용을 보면 칼럼을 쓴 사람 자신이 직접 사건을 취재한 결과도 아니고(문화평론가 라고 하는 사람이 법조에 대해서 얼마나 정통한 사람인지도 의문이긴 합니다), "이러저러한 소문이 있으니 율사 때문에 나라 망한다"는 논리의 전개도 허술해서 정색하고 반박하기도 뭣합니다만, 제목이 선정적이어서 클릭수는 많아지겠다는 생각은 듭니다.

판검사 중에도 일탈행위를 저지르는 사람이 있는 것은 사실이고, 사소한 일탈행위라도 판검사가 사회에서 차지하는 위치, 그 업무의 중요성에 비추어 더 엄격히 처벌되어야 할 것입니다. 종전에 관행상 문제삼지 않았던 일들이 문제되는 것은 우리 사회가 더 투명하고 수평적으로 변해가는 표지라고 할 수 있으므로 일면 환영할 일이기도 합니다. 그렇지만, 일탈행위를 저지른 판검사의 행태를 전체 판검사 나아가 법조 전체에 일반화시키는 것은 당연히 잘못된 결론입니다. 다음 재판을 준비하기 위해 야근이 생활화된 판사친구와 월말미제에 노심초사하는 검사친구에게 얼토당도 않은 말이니까요. "성급한 일반화의 오류"는 이런 때 쓰는 말이 아닐까 합니다.


2014년 4월 14일 월요일

횡령죄의 불가벌적 사후행위

횡령죄는 다른 사람의 재물을 보관하는 사람이 그 재물을 처분하거나 반환을 거부하는 경우에 성립하는 범죄입니다. 불가분적 사후행위라 함은 범죄에 의하여 획득한 위법한 이익을 확보하거나 사용 처분하는 사후행위가 이미 주된 범죄에 의하여 완전히 평가된 것이기 때문에 별도의 죄를 구성하지 않는 경우를 말합니다. 예컨대, 도둑이 핸드폰을 훔친 다음, 훔친 핸드폰을 부숴버린 경우, 첫번째 행위는 절도죄를 구성하고 두번째 행위는 손괴죄를 구성하지만, 핸드폰을 훔치는 행위에 의하여 소유자(또는 점유자)의 소유권에 대한 침해가 이루어진 것이어서, 이를 부수는 행위로 인한 소유권에 대한 침해는 주된 범죄인 절도죄에 의하여 완전히 평가되는 것이므로, 핸드폰을 부수는 행위는 절도행위의 불가벌적 사후행위가 되는 것입니다. 따라서 이 도둑의 행위는 절도죄를 구성할 뿐이며, 손괴죄 부분은 불가벌적 사후행위로서 범죄를 구성하지 않습니다.

횡령죄에 있어서 특히 명의신탁을 받아 부동산을 보관하는 수탁자가 자신의 개인적 채무의 담보조로 부동산에 근저당권을 설정함으로써 횡령죄가 성립한 다음, 그 수탁자가 별도의 채무의 담보조로 당해 부동산에 다른 근저당권을 설정하거나, 당해 부동산을 다른 사람에게 매각하여 버린 경우 등과 관련하여 종래 우리 대법원은 두번째 근저당권 설정행위나 매각행위는 앞에서 살펴본 불가벌적 사후행위로서 처벌되지 않는다는 입장이었습니다(대법원 1999. 4. 27. 선고 99도5 판결, 대법원 1996. 11. 29. 선고 96도1755 판결, 대법원 2000. 3. 24. 선고 2000도310 판결 등). 그런데 대법원은 2013. 2. 21. 선고 2010도10500 판결로서, 불가벌적 사후행위라는 이유로 횡령죄의 성립을 부정하였던 종전 판례 8개를 폐기하고, 일단 첫번째 근저당권 설정행위로 횡령죄가 성립한 뒤에도 두번째 근저당권 설정행위나 매매행위에 대하여 횡령죄의 성립을 인정하는 것으로 입장을 변경하였습니다.

불가벌적 사후행위라고 하는 것이 주된 범죄와 보호법익을 같이하고 침해의 양을 초과하지 않아야 하는 것인데[이재상, 형법총론, 박영사(2008), 526면], 근저당권 설정행위 후에 다른 근저당권을 설정하는 것이나 매각하는 것은 적어도 침해의 양을 초과하는 것이므로 이를 사후행위로 보기 어렵다는 점을 판례로 확인하여 준 의미가 있는 것이라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작년 중요 판례들을 보면서 위 판례를 발견하였는데, 횡령죄의 불가벌적 사후행위와 관련하여 종전의 대법원 입장도 확실히 알고 있지 못했던 것을 반성하는 의미로 기록해 둡니다.

참고 :
이재상, 형법총론, 박영사(2008)
신동운, 판례평석 : 횡령 후의 횡령죄 성립 여부 -2013. 2. 21. 2010도10500 전원합의체 판결, 판례공보 2013상, 599-, 서울대학교 법학, 54권 4호(2013)

2014년 4월 11일 금요일

교통정리가 행하여지지 않는 교차로에 진입하려는 차량의 도로 폭보다 교차하는 도로 폭이 넓은 경우, 그 차량의 교차로 통행 방법

교통정리가 행해지지 않는 교차로에 진입하려는 차량의 도로 폭보다 교차하는 도로 폭이 넓은 경우, 한마디로 "신호등이 없는 교차로에서 좁은 도로에 있던 차량이 넓은 도로로 나가는 경우"에 좁은 도로에서 나오는 차량과 넓은 도로에서 진행하는 차량 중 누구에게 통행우선권이 있는가? 운전면허시험에도 나올 법한 이 문제에 대한 답은 대부분의 일반인도 대답할 수 있을 것입니다. 넓은 도로에서 진행하는 차량에게 통행우선권이 있습니다. 이에 대해서는 도로교통법 제26조가 규정하고 있습니다.

  ① 교통정리를 하고 있지 아니하는 교차로에 들어가려고 하는 차의 운전자는 이미 교차로에 들어가 있는 다른 차가 있을 때에는 그 차에 진로를 양보하여야 한다.
② 교통정리를 하고 있지 아니하는 교차로에 들어가려고 하는 차의 운전자는 그 차가 통행하고 있는 도로의 폭보다 교차하는 도로의 폭이 넓은 경우에는 서행하여야 하며, 폭이 넓은 도로로부터 교차로에 들어가려고 하는 다른 차가 있을 때에는 그 차에 진로를 양보하여야 한다.

통행우선권이 없는 좁은 도로 진행차량(이하 "A")이 교차로에서 통행우선권이 있는 넓은 도로 진행차량(이하 "B")에게 받히는 접촉사고가 난 경우, 그렇다면 통행우선권이 없는 A는 먼저 교차로에 진입하였음에도 불구하고 B와 비교하여 과실비율을 높게 산정하여야 하는 것일까요?

관련된 판례로 대법원 1999. 8. 24. 선고 99다21264 판결이 있습니다. 이 판례에서 대법원은

"A(좁은 도로 운전자)는 교통정리가 행하여지지 않는 위 교차로를 통과함에 있어 서행하지 않고, 제한속도가 60km인데도 이를 15km나 초과하여 시속 75km로 운행하였을 뿐만 아니라, 통행우선권이 없으면서도 이 사건 택시가 위 교차로를 통화하기 위하여 진행하여 오는 것을 발견하고도 먼저 위 교차로를 통과하려고 한 잘못이 있는 반면,
B는 교통정리가 행하여지지 않는 위 교차로를 통과함에 있어 서행하지 않고, 제동조치나 방향전환의 조치를 제대로 취하지 못하여 위 교차로에 순간적으로 먼저 진입한 위 트럭과의 충돌을 회피하지 못한 잘못이 있으므로, 
위와 같은 사정하에서라면 A의 과실은 B의 과실보다 훨씬 크다고 봄이 상당하다. 따라서 원심이 A의 과실을 40%, B의 과실을 60%로 인정한 것은 현저히 불합리하다고 하지 않을 수 없다." 
와 같이 판시하였고, 파기환송심법원(광주고등법원 2000. 3. 17. 선고 99나5674 판결)은 A와 B의 과실비율을 반대로 뒤집어 6:4 로 확정하였습니다.

위 판례는 좁은 도로 진행차량(A)에게  서행의무 위반, 제한속도 위반, 통행우선권이 없으면서도 넓은 도로 진행차량(B)보다 먼저 진행하려 했던 잘못이 있어서, 넓은 도로 진행차량에게 인정되는 서행의무 위반, 제동이나 방향전환 등 조치를 취하지 아니한 잘못보다 과실이 훨씬 크게 인정된 사안입니다. 하지만, A에게 제한속도 위반의 과실이 없고, 두 차량 모두 서행 중이었다고 한다면 위 판례에 따라서 A가  B보다 더 과실이 크다고 인정될 것이라고 단정하기는 어려울 것입니다. 기본적으로 A의 과실이 높을 가능성이 있지만, 그것은 B의 과실 여하에 따라서 달라질 수 있는 문제이기 때문입니다. 


2014년 4월 10일 목요일

특별검사의 임명 등에 관한 법률 시행(2014. 6. 10.)

2014. 6. 10.부터 특별검사의 임명 등에 관한 법률(이하 "특별검사법"이라고 합니다)이 시행된다고 합니다. 제정이유는 "미리 특별검사제도의 발동 경로와 수사대상, 임명 절차 등을 법률로 제정해 두고 문제가 된 사건이나 발생되면 곧바로 특별검사를 임명하여 최대한 공정하고 효율적으로 수사할 수 있도록, 상설특별검사제도의 도입 근거를 마련"하는 데 있다고 합니다. 지금까지는 특별검사로 하여금 수사를 하도록 하려면 국회에서 도입여부, 수사대상, 추천권자를 둘러싸고 소모적인 정치공방이 벌어졌으므로, 이제 국회는 도입여부를 결정하고, 후보자추천위원회의 추천에 의하여 대통령이 임명하는 방식이 법으로 정해진 것입니다. 특별검사법의 도입의 계기가 된 사건이 현직 대통령이었던 이명박 대통령의 내곡동 사저의혹에 대한 특검 도입이 문제가 되었기 때문이었던 것을 생각해 보면, 특별검사의 임명권자를 대통령으로 정하는 것이 타당한지 의문이 들기도 하지만, 문제가 있다면 차차 고칠 수 있을 것이라고 위안을 삼을 수 있을 것 같기도 합니다.

특별검사법에 따른 특별검사는 "국회가 정치적 중립성과 공정성 등을 이유로 특별검사의 수사가 필요하다고 본회의에서 의결한 사건, 법무부장관이 이해충돌이나 공정성 등을 이유로 특별검사의 수사가 필요하다고 판단한 사건"을 수사의 대상으로 하게 됩니다. 법무부장관이 특별검사의 수사가 필요하다고 판단할 때에는 검찰총장의 의견을 들어야 합니다(특별검사법 제2조)

특별검사의 대우에 관한 내용이 눈길을 끄는데, 특별검사의 보수는 고등검사장의 예에 준하고, 특별검사보의 보수와 대우는 검사장의 예에 의하도록 하고 있습니다(특별검사법 제13조 제1항, 제2항). 아무래도 중요한 사건에 대한 수사를 담당할 것이므로 일반 수사검사와 동일한 대우를 하지는 않을 것이라고 생각은 했습니다만 꽤 높은 대우네요.

구체적인 법령내용은 국가법령정보센터, 특별검사의 임명 등에 관한 법률 을 참고할 수 있을 것입니다. 상설특검제도가 자리를 잡을 것인지 지켜봐야 겠습니다.


2014년 4월 9일 수요일

[맛집 소개] 황주집

황주집
주메뉴 : 대창, 곱창
주소 : 서울시 강북구 번동 463-45
전화 : 02-903-6275
대중교통 : 지하철 4호선 수유역 1번 출구로 나와 강북구청 사거리를 건넌 후 직진하다 보면 오른쪽에 보임/따로 주차장은 없는 것 같음

특별히 제가 미식가라고는 할 수 없습니다만(대식가라고 하는 편이 어울립니다), 맛난 음식 찾아서 먹는 것은 좋아라 하는 편입니다. 한국 최고의 맛을 위해서 돈은 전혀 아깝지 않다는 마음가짐으로 찾아가는 식당들도 많이 있을 것이지만, 그런 곳은 팻투바하(미식가 블로거 팻투바하)와 같은 전문 블로거의 포스팅을 참조하시면 될 것이고, 제가 맛집 소개라고 하는 포스팅은 주변에서 찾기 쉬운 비교적 가성비(가격대비성능비?) 좋은 식당에 대한 것이라고 생각하시면 될 것입니다.

사실 양창, 대창을 고급스럽게 먹기 위해서라면 이미 꽤 유명한 프랜차이즈가 된 "오발탄", "연타발"과 같은 음식점을 찾으면 됩니다. 김대중 대통령이 즐겨 가셨다는 "양미옥"도 양대창으로 매우 유명한 곳입니다. 이런 식당들을 찾는다면 비싼 가격을 제외하면 거의 단점이 없는 양질의 양대창 요리를 음미하는 것이 가능합니다. 하지만 언제나 문제는 우리의 얇은 주머니이고, 싼 가격에 푸짐하게 배를 채울 수 있는 것이 가능하다면 이 또한 좋은 식당이라고 아니할 수 없을 것입니다.

오발탄, 연타발, 양미옥과 같은 음식점은 모두 시내 중심가 내지 강남에 그 지점들이 대부분 위치하고 있습니다. 양질의 재료를 쓰기도 하겠지만, 임대료 등 부대비용도 많이 비싸겠지요. 반면에 강북에 위치한 식당들은 상대적으로 싼 원가로 유사한 음식과 서비스를 제공하는 것이 가능합니다.

제가 30년 넘는 기간동안 살았고, 지금도 그곳에서 멀지 않은 곳에 살고 있는, 강북구는 강남구와 다른 점이 많은 곳입니다. 이미 20년전부터 강북구를 포함한 1학군은 강남 8학군과 비교하여 진학률 등에서 비교가 안되는 곳이었지요. 한마디로 "서울의 시골" 비슷한 곳입니다. 그래서 1학군 출신을 대학교나 사회에서 만나면 설사 같은 고등학교 출신이 아니라도 같은 고등학교를 나온 동문인 것 같은 느낌을 공유하곤 했고(그런 학교가 서울에 있다고 들어본 일이 많이 없으시겠지만 "경동고, 경신고, 동성고, 상계고, 신일고, 서라벌고, 용문고"와 같은 학교들이 1학군에 위치한 고등학교들입니다), 그 결과 대원외고, 대일외고, 명덕외고, 한영외고, 서울고, 휘문고, 경기고, 중동고, 현대고, 구정고(현재 압구정고로 명칭이 바뀌었습니다), 상문고 등과 같은 명문 고등학교를 모교로 가진 친구들이 진정 서울소재 고등학교 출신이라면, 1학군 소재 고등학교를 모교를 가진 저는 오히려 지방 소재 고등학교 출신에 더 가까운 소속감(?)을 갖고 대학생활을 한게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듭니다.

강북과 강남의 차이에 대해 말하려다 돌아왔는데, 강북과 강남은 땅값이 차이가 나는 만큼 물가도 차이가 납니다. 물론 시청을 중심으로 한 4대문 안을 강북이라고 하기도 하지만 여기서 강북이라고 함은 강북구, 도봉구, 노원구 등 4대문 밖의 구들을 말합니다. 웬만한 한끼 식사의 가격이 1,000원에서 2,000원이상 차이가 나기도 하는 것 같습니다.

이 포스팅에서 소개하고 있는 황주집도 강북구 번동에 위치하고 있는 만큼 가격이 매우 저렴한 편입니다. 물론 식당 자체가 오래 되어 허름하고 위생상 깨끗하다는 느낌을 받을 수 없습니다. 얼마 전까지 흡연이 가능한 식당이었다고 하는데 오늘 가니 더이상 식당 내에서 흡연은 불가능하다더군요. 그러나 그런 점에 개의하지 않는다면, 또한 양, 대창, 곱창에 대해서 평소 거부감이 없이 즐기시는 분이라면 만족스럽게 찾을 수 있을 것입니다. 근처 북한산, 도봉산에 등산을 갔다가 하산하여 저녁으로 찾기에 가까운 곳에 위치하고 있는 점도 장점이라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비주얼 자체는 별다를 것도 없으며, 익는데 시간이 꽤 걸리고, 대창이나 곱창의 특성상 조리하면 쫄아드는 것도 유사한 특징입니다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꽤나 괜찮은 맛입니다. 곱창 좋아하는 분들이 성지순례할 만하다고 생각합니다. 양, 대창, 곱창을 다 드신 후에 볶음밥은 춘천닭갈비를 먹은 후의 볶음밥을 생각나게 하는 맛입니다. 근처에 오실 일 있으면 한번 들러서 맛보시길.

가격과 분위기는 아래 사진들을 참조해 주세요.






2014년 4월 8일 화요일

겨울연가? 가을동화



다니엘 튜더, 노정태 역, 기적을 이룬 나라 기쁨을 잃은 나라, 문학동네(2013)
Daniel Tudor, Korea : The Impossible Country, Tuttle Publishing Ltd., 2013

박노자의 글을 읽을 때도 느꼈었던 것인데 한국화된(?) 외국인의 시선은 우리를 참으로 객관적으로 돌아보게 만드는 힘이 있는 것 같습니다. 다니엘 튜더의 이 책은 너무도 당연해서 그에 대해 생각을 하거나 정리할 필요성을 느끼지 못했지만 활자화된 결과물을 보았을 때 그 기술의 대상인 자신도 놀라운 그런 책입니다. 굳이 이 책의 내용을 소개할 필요성을 느끼지 않지만 굳이 외국인이 아닌 한국인 자신이 읽어도 남는 것이 많을 그런 책입니다.

이 책을 소개하기 위한 많은 카피들이 이 책의 훌륭함을 대변합니다.

"다니엘 튜더의 글은 한국인들에겐 너무나 익숙한 것들을 한 발짝 떨어져서 다시 살펴보게 만든다. 좁은 시야로 눈앞의 이익, 오랜 관행에 사로잡혀 사는 우리들에게 지금 가장 필요한 시선." - 정재승(카이스트 바이오 및 뇌공학과 교수)

그리고 이 책을 한국어로 옮긴 노정태씨의 말도 귀담아 들을 만 합니다.

"바로 그렇기 때문에 [기적을 이룬 나라 기쁨을 잃은 나라]를 읽는 것은 일차적으로 한국인인 독자에게 신선한 자기객관화의 기회를 제공한다. 한국인인 우리가 이미 다 알고 있다고 생각하는 스스로에 대한 이야기를 전혀 새로운 각도에서 조명하는 그의 시야와 통찰은 실로 놀랍다. 너무도 익숙해서 이제는 아무렇지 않게 여기는 우리의 모습이, 사랑으로 한국을 바라보고 이해하려 했던 다이엘 튜더에게는 결코 당연하지만은 않았다.
....
그리하여 [기적을 이룬 나라 기쁨을 잃은 나라]는 '우리'가 바라본 '우리' 스스로에 대한 이야기가 되었다. 드디어 우리는, 10여 년 전 한국 땅을 처음 밟은 한 벽안의 청년을 통해, '우리'를 바라볼 수 있는 거울 하나를 마련하게 된 것이다." -453-454면(옮긴이의 말)

책 내용은 굳이 또 소개할 필요는 없을 것 같고, 저자가 한류열풍의 주역으로 "겨울연가"에 대한 소개를 하는 것을 읽으며 다른 생각이 떠올라 적어 봅니다.

"최초로 성공을 거둔 한류드라마는 <겨울연가>(2002)로, 드라마에서 욘사마는 최지우와 주연을 맡았다. <겨울연가>는 큰 인기를 끌어 일본  NHK에서는 겨울연가를 두차례나 방영했다.이에 부응해 제작진은 일본 관객을 대상으로 책, DVD 등의 상품을 판매해 발빠르게 자금을 회수했다. 드라마 원작 소설의 일본어판 역시 백만부 이상 팔렸다." -247면.

사실 겨울연가는 윤석호 PD가 "가을동화"의 흥행에 힘입어 연작 비슷한 성격으로 제작한 작품 중의 하나로 속편필패의 원칙을 답습한 그저 그런 드라마일 뿐이었습니다. 적어도 가을동화에 비해서 한국인의 정서를 뒤흔드는 한방이 없었던 것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가을동화"야 말로, 아역이었던 문근영을 스타로 만들었고, 원빈의 "얼마면 돼" 명대사와 신파의 정수인 불치병 마무리로 기억되는 (송승헌의 숯댕이 눈썹은 덤) 멜로 드라마의 전형이 될만한 작품이었죠. 그러나 일본시장의 힘은 놀랍게도 한국에서 망한 드라마를 살려 역수입하는 기적을 일으킵니다. 그 이유로 겨울연가가 가을동화보다 더 유명해졌다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하지만, 단언컨대 2000년 가을 문근영을 국민여동생을 만든 가을동화는 겨울연가보다 더 한국적인 것이 아니었을까 라고 생각합니다. 윤석호 PD는 가을동화를 시작으로, 겨울연가, 여름향기, 봄의 왈츠 등 계절 4부작을 만들지만 (적어도 한국에서) 가을동화만큼의 인기를 끈 작품은 없었습니다.

이 책은 한국의 정치, 역사, 문화, 음악, 대중문화에 대하여 친절히 소개하는 역할에 있어서 웬만한 지식을 가진 한국사람보다 훨씬 낫습니다. 심지어 상당부분 정확하기까지 합니다. 읽을 만한 가치가 있습니다.


2014년 4월 7일 월요일

인터넷 신조어

요새는 일을 하면서 항시 인터넷에 접속하고 있고, 유명하다는 게임은 웬만큼 접해 봤으므로 젊은 이들에 비해서 인터넷 신조어에 나름 익숙하다고 생각하고 있었지만 고등학교를 졸업한지 20년이 넘어 버린 나이를 가끔 인식하게 되는 경우가 있습니다.

며칠 전인가요. 사무실의 여직원분이 저녁약속이 있는데, 제가 퇴근 시간에 임박하여 정리해 달라고 보낸 서면을 막 정리하고 계셨죠. 그래서 약속장소가 어딘지 물어보았습니다. 그런데 여직원분 대답이 "고터요"

한 5초간 내가 들은 단어가 무엇인가 생각하였지만 아무리 생각해도 "고터"란 단어에 맞는 장소를 찾아낼 수 없었습니다. "대치역 근처의 "한티"역 처럼 "고터"란 한글로 이름을 붙인 새로운 지하철역이 생겨서 요새는 젊은 사람들은 거기서 약속을 하는 것인가?"란 생각마저 스쳐지나간 다음 여직원분께 되물을 수 밖에 없었죠. "고터가 뭐에요?"

그러자 여직원분이 황당하다는 표정으로 말씀해 주셨죠. "고속터미널이요" 나름 인터넷과 가까이 지낸다는 제가 줄임말에 이렇게 당황하는데, 각종 게시판 댓글을 보는 저보다 나이 있으신 분들은 더하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버카충"에 이어 다시 겪는 문화충격이랄까요 ㅎㅎ 혹시 아직도 버카충을 모르시진 않겠죠? (버스카드충전의 줄임말입니다)

요새 소유-정기고의 "썸"이라는 노래가 소녀시대와 투애니원의 신곡발표에도 불구하고 한달 넘는 기간 인기가요 정상을 지켰다는 것이 기사거리가 되기도 했는데요. "썸"같은 것도 알아두면 좋은 인터넷 신조어입니다. 이렇게 설명되네요.


  •  : 「형용사」 : 영어 'Something'에서 유래된 언어. 연인 관계는 아니나, 연인 관계로 발전 가능성이 있으며, 좋은 관계를 유지하고 있는 상태를 뜻하며, 원래는 썸씽이라는 단어로 쓰였으나, 영어 발음과 비슷한 바람에 현재의 단어에 오게 되었고, '썸 탄다' 등의 단어로 쓰인다. 썸을 타는 남자는 썸남, 썸을 타는 여자는 썸녀라고 불린다.

이외에 요즈음 인터넷에서 접하고 알게 된 말도 몇개 소개해 봅니다. 2007년에 "ㅇㅇㅋ굳ㅋ"와 같은 용어가 유행할 때 느꼈던 당혹감은 아니지만, 기상천외한 맥락에서 발화된 말들이 신조어로 자리잡는 것을 보면 신기합니다. 제가 유래를 몰랐던 말들 중심입니다. 잉여라는 말은 손창섭의 소설 "잉여인간"에서 나온 것이라는 설명을 덧붙이는 것이 적절할 것 같네요.

  • 관광 : 대결 또는 시합에서 압도적인 격차로 이긴 것을 뜻한다. 디시인사이드 스타크래프트 갤러리에서 유래되었다. 외국에서는 압도적으로 패배한 시합이나 대결을 일방적인 싸움에 비유하여, RAPED(강간당하다)라는 말이 쓰였고, 이를 본따 사용해,  강간당했습니다. 등의 표현이 퍼지게 되었다. 강간의 부정적인 의미 때문에 발음이 비슷한 관광으로 변하게 되었고, 현재까지 오게 되었다. 근원되는 어원이 강간이므로, 왠만하면 쓰지 않는 것을 추천한다. 실제로 외국에서도 Raped라는 단어를 이러한 용법으로 공적인 자리에서 쓰게 되면, 크게 욕을 먹거나, 생각이 없는 사람 취급을 받는다고 한다. 반대말로 역관광이 있다.
 
  • 잉여 : 「명사」: 원래 경제 용어 중에 '잉여 생산물'에서 쓰이던 언어. 보통 '사회에서 크게 필요로 하지 않는 존재'를 표현할 때 사용한다. 인간 쓰레기라는 의미로도 쓰이며, 말죽거리 잔혹사 라는 영화에서는 이 단어를 응용하여, 현수의 아버지가 주인공인 현수에게 "잉여인간이야 잉여인간, 인간쓰레기!" 라고 욕하는 대사가 있었다.
 

  • ㅇㅅㅇ, ㅇㅂㅇ, ㅇㅁㅇ : "ㅇㅇ"이라는 단어를 대체하기 위해, 상대방의 의견을 들을 때 나오는 단어. 보통 ㅇㅅㅇ은 얘기를 들어주거나 응답을 할 때(ㅇㅅㅇ... 그렇구나), ㅇㅂㅇ은 ㅇㅂㅇ?으로 보통 의문(ㅇㅂㅇ? 그래서?)을 가질 때 쓰이며 ㅇㅁㅇ은 이해했다 등의 의미(ㅇㅁㅇ! 아항!)로 쓰인다. 보통 이런 용도로 쓰이나, 경우에 따라서 달라지기도 한다.
 
  • 주작: 「명사」'조작'의 의미로 사용된다. '프로게이머 승부조작'으로 유명해진 마재윤의 아프리카 방송에서 시청자들이 채팅창에 '조작'이라는 단어를 자주 쓰자 마재윤이 이를 금지어로 걸었고 이에 유저들이 조작과 단어가 비슷한 '주작'을 쓰기 시작하면서 자주 쓰이게 되었다.
 
  • 호옹이: 「의성어」'으아아아'를 반시계 방향으로 90도 돌렸을 때 마치 '호옹이'를 세로쓰기한 것처럼 보여서 그대로 읽은 단어. 비명소리로 사용한다.
 
  • 팀킬(Team Kill): 「동사」 같은 팀을 공격한다는 의미로 쓰인다.

 
  • 캐리 : 「명사」: 리그오브레전드라고 흔히알고있지만 도타에서 빠져나온언어로 팀을 승리로 이끈사람을 뜻한다
 
 


2014년 4월 4일 금요일

무엇일까요?

뉴질랜드 1893년
오스트레일리아 1902년
핀란드 1906년
노르웨이 1913년
미국 1920년
영국 1928년
프랑스 1945년
벨기에 1946년
스위스 1971년
쿠웨이트 2006년





















나라별로 여성에게 참정권이 부여된 연대랍니다.

출처 : 리처드 도킨스, 만들어진 신, 김영사(2007), 401면.

2014년 4월 3일 목요일

[책 소개] 감염된 언어



고종석, 감염된 언어, 개마고원(2007)

요즈음 부쩍 고종석 선생님의 책을 읽게 되었는데 글들 중 많은 부분이 1990년대 후반에 씌어진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90년대 후반은 제 학부 3-4학년 때였는데 그 당 시에 저 는  사법시험 공부를 시작하고 정신없을 시기이기도 하였으려니와 그 때 위 책에 실려 있던 글들을 탐독하기에는 아직 생각이 여물지 않았을 것이어서 차라리 지금 저 책을 접한게 다행일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한글, 한국어, 한자, 일본어, 번역과 같은 우리 말글을 제대로 이해하는데 필수적인 개념의 뭉치들을 이처럼 쉽게 풀어놓을 수 있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을 것입니다. 저자가 한국어, 한자, 일본어, 프랑스어와 같은 언어를 상당히 능란하게 사용해본 경험이 있고, 그 언어들의 차이에 대하여 깊이 생각을 해보지 않았다면 결코 이런 글들을 설득력있게 쓸 수 없었을 것이구요. 아울러 2000년대 초반 조선일보에서 소개되었던 복거일의 영어공용화론에 대해서 당시 저는 복거일씨에게는 죄송하게도 "저런 생각을 무려 공개적으로 이야기하다니 *** 아니야?"라고 생각했었는데, 시간이 한참 흐르고 난 뒤에 우리 사회에서 정보습득의 도구로서 영어가 차지하는 위치를 몸으로 접해보고 나서야 새삼 그 의견에 대해서 다시 이해하게 되었다는 점을 고백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70-80년대를 지나쳐 왔던 사람에게 내면화되어 있던 반공주의, 자유주의, 개인주 에 대해서 젊은 시절부터 느꼈던 수치심으로부터의 해방이 고종석의 한국사회에서의 이데올로기적 위치를 결정했다는 사실을 알게 된 것은 개인적으로 제게 이 책의 가장 큰 수확입니다. 더불어 고종석 선생님이 스승으로 생각하시는 저에게는 로스트메모리스라는 폭망한 한국영화의 원작인 "묘비를 찾아서"의 원작자로 더 기억되는 복거일의 저작들을 한번 살펴보아야 겠다는 결심을 하게 했다는 점을 부기해 두고자 합니다.

다음은 이 책을 읽으면서 인상적이었던 구절들 입니다.

언어순결주의, 즉 외국어의 그림자와 메아리에 대한 두려움에서 외국인 노동자에 대한 박해, 혼혈인 혐오, 북벌, 정왜의 망상, 장애인 멸시까지는 그리 먼 걸음이 아니다. 우리가 잊지 말아야 할 것은 '순화'의 충동이란 흔히 '죽임'의 충동이란 사실이다. -30면.

그러나 자신을 객관화할 수 있을 만큼 성숙한 한국인이라면 제 언어를 가리킬 때도 (국어가 아니라) 한국어라고 부를 것이다. -79면.

일반적으로 한 언어와 한 문자체계의 결합이 필연적인 경우는 없다. 터키어는 오래도록 아랍문자로 적다가 제1차 세계대전 이후 터키에 공화제가 들어서면서 로마문자로 적기 시작했고, 오래도록 한자로 적었던 베트남어 역시 지금은 로마문자로 적고 있다. -82-83면.

한국어 텍스트가 오로지 한글로 표기된다고 하더라도, 그 한글의 외피 상당수 안에는 한자의 속옷이 있고, 이 속옷의 질감을 느끼지 못하는 한 한국어는 제대로 이해되지 않는다. -88면.

자유주의자를 자처하는 지식인들은 우리 사회에 수두록하지만, 그들 가운데 민중주의나 파시즘에 감염되지 않은 사람들은 아주 드물다. 그 드문 사람들 가운데서도, 자유주의라는 주제를 본격적으로 천착한 것은 복거일이 거의 처음이 아닌가 한다. 그렇게 된 사정은 우리 사회의 이념적 분위기가 아주 억압적이었다는 데 그 이유가 있겠지만, 바로 그 점이 복거일의 지적 독립성을 돋보이게 한다. -108면.

내가 이해하는 자유주의자는 만인이 파시즘을 옹호하고, 만인이 볼셰비즘을 지지해도 이를 수락하지 않는 정신의 이름이다. 그 자유주의자는 비판을 통해서, 그리고 그것만으로 충분치 않을 때는 폭력에 호소해서라도 전체주의를 분쇄할 각오가 돼 있는 사람이다. 그는 사상의 자유시장을 옹호하지만, 그 사상의 자유시장을 근본적으로 부정하는 사상에 대해서만은 너그러울 수 없는 사람이다. 그런 점에서 자유주의자는 때때로 반민주주의자다. 나는 복거일의 글에서 이따금씩 보이는 민주주의의 과잉이 곤혹스럽다. -110-111면.

일본인들의 위대함은 유럽문화의 전지구화를 마무리했다는 데에 있는 것이 아니라, 그 문화를 게걸스럽게 흡수하면서도 한자라는 동아시아 문명의 공통 유산 속에 완전히 녹여버렸다는 데에 있다. -125면.

공용어로서의 영어를 반대한다는 뜻은, 지식과 정보를 특정집단이 독점하는 걸 허락하겠다는 뜻이다. 라틴어와 한문을 읽고 쓸 수 있었던 중세의 엘리트들이 지식을 독점했듯이 말이다. 지식과 정보는 곧 권력이다. 영어가 공용어가 되든 안되든, 우리 사회의 지배계층은 자기 자식들에게 영어를 가르칠 것이다. 그리고 영어에 익숙해진 그들의 자식들은 영어에 익숙하지 못해 지식과 정보에서 소외된 일반 대중의 자식들 위에 다시 군림할 것이다. -206면.

복거일은 어느 자리에서 "자신이 틀릴 가능성을 아예 배제함으로써 자신이 태어난 세상의 철학적 틀 속에 갇히는 것이 모든 종교적 지식체계의 운명"이라고 말했다. -208면.

그렇다면 우리는 당연히 오오사카를 오오사카로 부르고, 타나카를 타나카로 불러야 한다. 타나카를 '전중'으로 불러야 한다면, 철학자 화이트헤드를 우리는 '백두'라고 불러야 할 것이다. -235면.

60년대에 박정희 정권의 중앙정보부가 유럽의 한국인 학자예술가들을 간첩으로 몰아 조작한 사건을 사람들은 '동베를린 사건'으로보다 '동백림 사건'으로 더 기억하고 있다.-255면.

2014년 4월 2일 수요일

군복착용은 처벌가능한가

가끔 신문이나 방송에 보수단체 회원이라고 하면서 군복을 입은 사람이 집회에 참가하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특히 가스통에 불을 붙인다고 위협을 하는 행동을 하는 사람이 군복을 입고 있는 경우도 있었던 것 같은데, 민간인이 군복을 입으면 처벌대상이 되는 것은 아닌가 하는 의문이 들어서 찾아보았습니다.

민간인은 원칙적으로 군복이나 유사군복을 착용하면 안됩니다.
군복 및 군용장구의 단속에 관한 법률(이하 "군복단속법"이라고 합니다)이 이에 대해서 규정하고 있는데, 이에 따르면

군복은 군인사법 제47의3의 규정에 따른 군모, 제목, 군화, 계급장, 표지장  및 특수군복을 말하고, 유사군복은 군복과 형태, 색상 및 구조 등이 유사하여 외관상으로는 식별이 극히 곤란한 것을 말합니다(군복단속법 제2조 제1호, 제3호).

군인이 아닌 자는 군복을 착용하거나 군용장구를 사용 또는 휴대하여서는 아니되고 누구든지 유사군복을 착용하여 군인과 식별이 곤란하도록 하여서는 안됩니다(군복단속법 제9조 제1항, 제2항). 다만 위 조항이 적용되지 않는 경우가 있는데 문화예술활동 또는 국방부령이 정하는 의식행사를 하는 경우, 다른 법령에 따라 착용, 사용 또는 휴대가 허용되는 경우, 국가기관 또는 지방자치단체의 시책에 따른 활동 등 공익을 위한 활동으로 국방부령이 정하는 경우가 그것입니다(군복단속법 제9조 제3항, 제8조 제2항 각호).

국방부령이 정한 의식행사는 각종 기념일 등에 관한 규정 제2조 제1항에 따라 국방부 또는 국가보훈처가 주관이 되는 기념일과 제대군인지원에 관한 법률 제2조 제1항 제1호의 제대군인을 초청하거나 제대군인과 합동으로 실시하는 군부대의 행사를 말하고(군복단속법 시행규칙 제9조), 국방부령이 정한 공익활동으로는 국방부장관이 인정하는 경우로서 자원봉사활동, 재해재난예방활동, 안전문화 교육홍보, 재난구조 등의 재해재난 극복활동, 안보 및 호국의식 함양을 위한 강연회 개최 및 교육활동, 국외 자원봉사 의료구호활동 등 국제교류협력활동, 그 밖에 국가 또는 지방자치단체의 시책에 대하여 보완상승효과를 가지는 활동이 있습니다(군복단속법 시행규칙 제10조)

위 규정을 위반한 자는 10만원 이하의 벌금이나 구류 또는 과료에 처하도록 규정되어 있습니다(군복단속법 제13조 제2항, 제9조)

보수단체의 집회가 "안보 및 호국의식 함양을 위한 강연회 개최 및 교육활동"에 해당될 수 있다면 군복 또는 유사군복을 입고 위 집회에 참가한 사람을 군복단속법에 의거하여 처벌하기는 어려울 것 같습니다. 하지만 강연회 개최 및 교육활동에 해당하지 않는 집회라면 처벌이 가능할 것 같네요.

2014년 4월 1일 화요일

계약금 중 일부만 지급받았을 경우 해약금은?

부동산 매매계약 취소 당시 계약금 일부만 받았어도 위약금은 전체 계약금 기준 산정해야
법률신문 2014. 3. 28.자 기사

우선 위 기사의 제목 부분에 틀린 점이 있어서 지적해야 할 것 같습니다. 기사에서 소개하고 있는 판결(서울중앙지법 2014. 3. 12. 선고 2013가합528346 판결)을 요약하는 과정에서 기자가 실수를 한 것으로 보이는데, 부동산 매매계약 "취소"가 아니라 부동산 매매계약 "해제" 당시 라고 해야 합니다.

법률행위의 취소는 법률행위에 취소사유가 있는 경우, 대표적으로 착오, 사기나 강박, 미성년자의 행위 등을 들 수 있는데, 취소권자가 법률행위를 취소하게 되면 그 법률행위는 소급하여 무효가 되는 것을 말합니다.  이에 반해 계약의 해제는 계약이 적법하게 성립한 이후에 일방 당사자가 계약의 효과를 소멸시켜 당초부터 계약이 체결되지 않았던 것과 같은 상태로 복귀시키는 것을 말합니다. 위 사건에서는 계약이 적법하게 성립하였고, 계약체결과정에 취소사유가 개입된 경우가 아니었으므로 매매계약 취소라고 할 수 없음에도 해제와 취소가 유사한 법률효과를 가지고 있어서 기자가 혼동을 한 것으로 생각됩니다.

위 판결에서 특이한 부분은 해약금과 관련된 부분입니다. 일반적으로 매매계약을 체결하면서 계약금-중도금-잔금으로 나누어 매매대금을 지급하는데, 계약금을 정하는 가장 큰 이유 중 하나는 계약금을 해약금으로 하여 매수인은 자신이 지급한 계약금을 포기하고, 매도인은 자신이 받은 계약금의 2배를 상환하는 조건으로 계약을 해제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 입니다. 대부분의 매매계약서에 이러한 조건은 부동문자로 들어가 있는 것이 일반적이고, 이 부분 약정을 해약금약정이라고 합니다.

그런데 당사자들이 부동산매매계약을 체결하면서 계약서에 명시된 계약금의 일부만을 주고받았을 경우에, 매도인은 자신이 실제로 지급받은 계약금의 일부의 2배계약서에 계약금으로 정해진 계약금의 2배 중에 어떤 금액을 지급해야 해약금약정에 따라 계약을 해제할 수 있는 것인지가 위 판결에서 문제되고 있는 것입니다.

재판부는 "부동산 주인에게는 계약금의 일부만 받은 상태에서는 매매계약을 해제할 권리가 발생하지 않는다", "주씨(매도인이 주씨였던 모양입니다)는 계약금으로 정한 1억 1천만원을 다 받고 나서야 금액의 배액을 돌려주며 계약해제를 주장할 수 있는 것이지 계약금의 일부인 1000만원만 받은 상태에서 하루만에 매매계약을 무르기로 결심하고 2000만원을 돌려주며 계약해제를 주장할 수는 없다"고 판결하였습니다. 매도인은 자신이 실제로 지급받은 계약금의 일부의 2배를 지급하더라도 해제권이 생기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당사자들이 정한 계약금인 1억 1천만원의 일부인 1000만원만을 수수한 취지가 계약해제를 더 쉽게 하려는 것이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도 드는데, 법원은 계약금의 일부만을 수령한 경우에는 계약금 전부를 수령할 때까지 계약해제도 할 수 없다고 본 것이라 약간 의문이 있기도 합니다.

어쨌든 매도인이 계약해제를 하고 계약이행에 협조하지 않았기 때문에 매매계약에 따라 소유권을 취득할 수 없었던 매수인의 손해배상청구에 대하여, 법원은 매수인이 청구한 1억 1천만원의 위약금 중 30%인 3,300만원만을 위약금으로 인정하였습니다. 사실 계약금 1000만원 밖에 내지 않은 매수인에게 1억 1천만원의 위약금을 인정하는 것도 공정한 판결이라고 보기는 어려울 수 있으므로 나름 매도인과 매수인의 이익을 공평하게 고려한 결론이라고 생각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