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년 8월 30일 수요일

가을


너 이렇게 훅 들어오기 있기 없기?

2017년 8월 25일 금요일

[만화] 열혈강호


전극진/양재현, 열혈강호 73, 대원씨아이(2017)

찾아봤더니 열혈강호가 처음 영챔프(아 영챔프는 만화잡지였는데 온라인으로 옮겨 2013년에 문을 닫고, 현재 코믹 챔프라는 잡지에서 연재중이라고 합니다)에 연재되기 시작한 것이1994년입니다. 무려 23년동안 연재되고 있는 대한민국 최장수 연재만화가 되었네요.

제가 대학 입학하기도 전에 나온 이 무협만화의 주인공 한비광은 아직도 모험중입니다(신지에서 빠져 나와서 어떻게 결말이 날지 궁금하네요). 어제 저녁먹으러 갔다가 들린 서점에서 무심코 가격이 4,500원 밖에 하지 않아 집어들었는데... 아씨 72권도 아직 안본 것 같습니다.

처음 연재되고 "붉은매"나 "용비불패" 등과 자웅을 겨루다가 경쟁작이 나가 떨어지는 동안, 너무나 느린 진행이 장수의 비결이 되어 버린 듯 하네요. "용비불패"의 작가는 네이버 웹툰 별점 최상위권을 기록하고 있는 "고수"를 최근 연재하면서 다시 인기몰이하고 있기도 합니다.

우리 사무실의 대리님께 이 만화를 아시냐 물어보았더니, 이 만화 너무 오래된 데다가 권수도 엄청나게 많아서 시작할 엄두가 안나셨다고 ㅎㅎㅎㅎㅎ

어쨌든
1) 주인공의 엄청난 잠재력과 성장
2) 기연을 통한 무공습득
3) 정파와 사파의 대립구도라는 (무협으로서) 클래식한 세계관
4) 구운몽을 방불케하는 주인공의 여자관계(물론 담화린 쪽으로 정리중이긴 하네요)
5) 주인공 뿐 아니라 사연 있는 악역들 또는 선악구분이 어려운 인물들의 매력

등 매력포인트가 넘쳐나는 만화입니다[아재의 취향인가 (먼산)]
20년 넘은 아재취향이 두렵지 않다면 시도해 보시길!!
 


2017년 8월 19일 토요일

[책 소개] 대법원, 이의 있습니다



권석천, 대법원, 이의 있습니다, 창비(2017)

이용훈 대법원장 재임기간 있었던 대법원 판결들과 그에 얽힌 뒷이야기들. 그래도 이슈가 되었던 대법원 판결들은 대부분 알고 있다고 자부하고 있었는데도, 이 책에서 요지를 처음 접하는 대법원 판결이 있을 정도로 많은 대법원 판결들이 내용으로 들어가 있습니다. 김영란 대법관님께서 집필하셨던 판결을 다시 생각한다 와 겹치는 판결들이 많지만, 아무래도 이용훈 대법원장과의 인터뷰를 기초로 하여 씌어진 책이니만큼 사건 수에서도, 그 뒷이야기도 더 많은 편입니다.

저자는 오랜기간 중앙일보-JTBC의 법조/사회 담당에 있었기 때문에 대법원의 구성변화와 대법원 판결의 변화를 생생히 전달합니다. 아무래도 소수의견을 대변하는 박시환 대법관과 노무현 대통령이 임명했기 때문에 적어도 진보적인 입장표명에 대해 관대했던 이용훈 대법원장의 시각을 반영하고 있다고 할 수 밖에 없지만, 대법원 다수의견의 입장은 그 자체로 규범력이 있어서 소홀히 다루어질 수 없기 때문에 대법원 다수의견에 동조하는 의견을 가진 사람이라고 하더라도 이 책을 읽을 만한 가치는 충분하다고 생각합니다.

일반인에게는 관심도 없고 생소한 대법원의 구성이나 임명절차, 그리고 그에 얽힌 법원 고위 판사들 사이 또는 그들과 청와대, 검찰과의 줄다리기가 대법원장/대법관 입장에서 그려지고 있는 것은 쉽게 접할 수 있는 형태나 내용이 아닙니다. 아마도 이 정도로 자세히 그려낸 것은 이 책이 처음이 아닐까 합니다(신동아나 월간조선에 분석기사로 실리는 글들 정도에 단편적으로 나타난 적이 있었을까요).

어쨌든 기본적인 법조 관련 경험과 지식이 있다면 "헉 이런 내용까지" 하면서 읽을 만한 내용임에는 틀림없습니다. 법사회학적으로 대법관들의 경향이나 판결내용을 하나하나 분석하는 책이나 기사가 미국 등에 비해 너무 부족한 우리 법조에 기념비적인 저작이 되지 않을까 싶습니다(물론 그럼에도 내용 때문에 선풍적인 인기는 어려울 것 같습니다 ^^). 하지만 이용훈 대법원장 시대에 우리 대법원의 주요 판례를 모르고 있었던 변호사/법조인은 꼭 읽어야 하지 않을까 합니다. 박시환/전수안 대법관이 대법원장 물망에 오르고 있는 지금 시점에서는 특히 그렇습니다.

다음은 인상깊었던 부분입니다.

양승태는 지방자치단체장의 위법행위에 대한 국가/상급 지방자치단체의 감독원 행사에 대해 "국법질서를 유지할 책임이 있는 국가 등의 당연한 의무"라고 강조했다. 그는 보충의견을 마무리하면서 "'나는' 이러한 사건에서 국가의 부당하 ㄴ간섭을 걱정하는 것보다는 오히려 지방자치단체장의 재량권 일탈/남용을 방지하는 것을 훨씬 더 걱정하여야 할 것으로 본다"고 못박았다. 이처럼 양승태의 법논리가 국법질서와 국가(중앙정부) 우위의 관점에 서 있다는 점은 이용훈 코트의 뒤를 잇는 양승태 코트의 방향성을 보여준다.

권석천, 대법원, 이의 있습니다, 창비(2017), 153면.

판사 출신의 한 변호사는 말한다. "요즘 법정에서 논리를 제시하면 '대법원 판례가 이렇다'고 제지하는 판사들이 있다. 대법원 판례만 따라간다면 전국에 그 많은 판사들이 왜 필요한가." 판사가 사건에 대한 열정과 고민 없이 대법원 판례를 기계적으로 적용하는 것만큼 위험한 일은 없다.

권석천, 대법원, 이의 있습니다, 창비(2017), 173면.


2007년 12월 2년만에 법원조직법을 재개정해서 다시 대법관이 법원행정처장을 겸임하도록 했다. 대법관회의 의결권이 없는 법원행정처장이 사법행정을 주도하기 힘들다는 지적도 있었지만, 그보다 대국회 창구가 비대법관출신 법원행정처장으로 바뀐 뒤 국회의원들의 불만이 계속됐다는 것이 상당한 영향을 미쳤다.

권석천, 대법원, 이의 있습니다, 창비(2017), 186면.


대법원의 공소장 일본주의 판결은 이후 재판에서 폭넓게 활용되지 않았다. 일부 재벌사건이나 정치인 사건에서 주장됐을 뿐이다. 변호사들도 공소장일본주의 위반 문제를 적극적으로 제기하지 앟았고, 판사들도 큰 관심을 두지 않았다. 대법원에서 획기적인 판례가 나오더라도 현장의 법조인들이 경각심을 갖고 분발하지 않는다면 '종이 호랑이'에 불과함을 다시 확인시켜주고 있다.

권석천, 대법원, 이의 있습니다, 창비(2017), 181면.


젊은 판사들의 장래 희망이 '공보담당판사 -> 법원행정처 심의관 -> 고등법원 부장판사 -> 법원행정처 차장 ->대법관' 이라는 말이 나오는 건 정상이 아니다. 법원행정처, 대법관을 목표로 재판하는 판사에게 자신의 운명을 맡기고 싶은 사람이 있을까. 중앙집권적인 관료사법을 수술하는 것을 검찰개혁과 함께 할 또 하나의 과제다.

권석천, 대법원, 이의 있습니다, 창비(2017), 191면.


이용훈은 강일원에 대해 "생각은 조금 보수적이지만 민주주의 원리나 법치주의, 법관의 품성에 있어 깊이를 가진 판사"라고 평가했다. "듣기 싫은 소리를 기분 나쁘지 않게 하는 사람"이라고 말하기도 했다. 강일원은 이광범-김종훈 팀이 사라진 이용훈 코트 후반기 사법행정을 이끌었다.

권석천, 대법원, 이의 있습니다, 창비(2017), 246면.


긴급조치 판결이 '박정희 시대'의 대표적 과오에 대한 것이라면 조봉암 재심 판결은 '이승만 시대'의 대표적 과오에 대한 것이다. 지체된 정의의 해악은 정의가 아니라는 데 그치지 않는다. 지체된 정의는 악을 조장하고 방치한다. 그 악을 바로잡는 데 몇 배, 몇십 배의 에너지가 소모된다.

권석천, 대법원, 이의 있습니다, 창비(2017), 276-277면.


"신영철은 자신 사퇴할 것"이라고 말했던 이들도 자신들의 말을 더이상 입에 올리지 않았다. 어떤 이는 그게 큰 일이냐고 했고, 어떤 이는 불가피한 선택이었다고 했다. 어떤 이는 속았다고 했다. 잘잘못을 가리고 책임을 묻는 일을 하는 법원과 판사들이 정작 자신들에게는 책임을 묻지 않았다. 모두가 부끄러워야 했지만 아무도 부끄러워하지 않았다.

권석천, 대법원, 이의 있습니다, 창비(2017), 315면.


법무법인 바른은 이명박 정부 출범 후 정동기 청와대 민정수석, 강훈 법무비서관 등 소속 변호사들이 정부에 들어가면서 각광을 받았다. '노무현 정부는 법무법인 화우, 이명박 정부는 법무법인 바른'이란 말이 나올 정도였다. 하지만 급성장의 배경을 이명박 정부의 출범에서만 찾는 것은 무리가 있다. 최종영 전 대법원장, 박재윤 전 대법관, 김동건 전 서울고법원장, 명로승 전 법무차관, 문성우 전 대검차장, 이인규 전 대검 중수부장 등 법원/검찰의 고위 전관들이 대거 영입돼 '송무로펌'으로 자리를 잡았다.

권석천, 대법원, 이의 있습니다, 창비(2017), 325면.


정의는 법논리와 법 감정, 머리와 가슴 사이에 있다. 맥락을 끊어낸 법리는 누구를 위한 것인가. 사법이 형식논리의 포로가 된다면 기득권의 편법과 탈법, 불법을 눈감아주는 결과를 낳는 것 아닌가. 재벌 사건에서 대형 로펌 변호사들이 벌이는 화려한 법 논리의 향연은 돈 없고 힘없는 시민들의 박탈감만 더할 뿐이다. 집행유예로 빠져나가는 재벌 회장들의 휠체어만큼 사법 신뢰를 위협하는 것은 없다.

권석천, 대법원, 이의 있습니다, 창비(2017), 355면.


그러나 이길 수 없었다고 해서 패배한 것은 아니다. 철수했다고 해서 포기한 것은 아니다. 시민들이 다시 세운 나라다. 패배할 수도, 포기할 수도 없다. 정의를 위해 스스로와의 싸움을 멈추지 않는 순간 우리는 정의롭다. 정의는 명사가 아니다. 살아 움직이는 동사다.

권석천, 대법원, 이의 있습니다, 창비(2017), 476면.













[책 소개] 학교에서 가르쳐주지 않는 일본사



신상목, 학교에서 가르쳐주지 않는 일본사, 뿌리와이파리(2017)

외교관출신 우동집(강남역 부근에 위치한 '기리야마본진') 사장님이 열심히 장사하시는 틈틈이 집필하신 일본 에도시대 역사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같은 사무실의 황규경 변호사님의 페이스북 친구로 처음 알게 되었는데, 일본에 대한 타성에 젖은 비판에 대해 한번더 생각해 볼만한 글들을 페이스북에서 보고 저 또한 그분의 글에 즐겨 좋아요를 누르는 사람 중의 하나가 되었습니다.

지지난 주말엔가 고속터미널의 반디앤루니스에서 이 책을 구입하려고 보았더니 재고가 없어서 돌아섰었는데, 황변호사님께서 페이스북에서 좋은 글을 읽은 값을 해야 한다시며(이분 낭만적 자본주의자) 이 책을 20권 구입후 사무실에 나눠주셔서 다 읽었습니다. 제 돈내고 사 볼만한(두번 사볼만한) 책이라고 생각합니다.

실상으로는 일본의 거의 모든 제도를 베껴 왔으면서도, 겉으로는 일본을 무시하고 배격하는 태도를 취하는 이중적인 한국의 태도를 정면으로 비판하는 태도는, 일본의 실력을 직접 일본에서 경험하고 일본에 대해서 많이 공부한 사람이기 때문에 가질 수 있는 것이 아닌가 합니다. 책에서 소개하고 있는 내용 자체도 모르고 있던 것이 태반이고, "양체", "부도", "악화가 양화를 구축한다"와 같이 그 말 자체와 의미는 알고 있지만 그 유래에 관심이 없었던 말들에 대해서 더 잘 알게 된 것만으로도 이 책의 가치는 충분합니다. 게다가 에필로그에 한방 빵 터 트려주시는데, 사실 그 대목 쓰시기 위해서 이 책을 집필하시지 않았나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합니다. 일본은 유독 한국에서는 제대로 평가받지 못하는 나라이기 때문입니다. 다음은 인상깊은 대목입니다.

서세동점의 시기에 근대국가 수립이라는 시험대 앞에서 일본은 최우등생, 중국은 열등생, 조선은 낙제생이었다. 무엇이 그러한 차이를 만들었을까?

신상목, 학교에서 가르쳐주지 않는 일본사, 뿌리와이파리(2017), 13면.

한국인들의 일본 역사에 대한 관심은 [대망]으로 대표되는 일본 센고쿠 시대의 영웅군담 스토리, 막말 지사들의 네이션 빌딩 스토리, 러일전쟁에서 태평양전쟁 시기에 이르는 전쟁 스토리에 집중된다. 그나마 개인적 관심이 있는 사람들에 한해서 그렇다.

신상목, 학교에서 가르쳐주지 않는 일본사, 뿌리와이파리(2017), 14면.


(단재 신채호의 말이라고 잘못 알려져 있지만) 한국인들은 "역사를 잊은 민족에게 미래는 없다"는 말을 좋아한다.

신상목, 학교에서 가르쳐주지 않는 일본사, 뿌리와이파리(2017), 16면.


이 책은 일본에 나라를 빼앗긴 뼈아픈 역사를 갖고 있는 한국인들이 가장 주목해야 할 역사이지만 가장 '주목받지 못하는 역사'인 일본 근세에 대한 한국 내의 관심과 이해를 돕기 위한 목적으로 쓰였다.

신상목, 학교에서 가르쳐주지 않는 일본사, 뿌리와이파리(2017), 17면.


외교관의 세계에는 "유능한 외교관은 모든 분야에 대해 조금씩은 알아야 하고, 한 분야에 대해서는 모든 것을 알아야 한다"는 말이 있다.

신상목, 학교에서 가르쳐주지 않는 일본사, 뿌리와이파리(2017), 18면.


한국의 근대화에는 일본의 근대화가 투영되어 있다. 현대 한국 사회의 많은 부분은 조선의 근세가 아니라 일본 근세의 연속 또는 연장이다. 따라서 일본 근세에 대한 이해를 높이는 것은 한국 근대화의 부리를 찾는 과정으로서의 의미가 있다. 한국 근대화의 뿌리를 찾기 위해서라도 일본 근세를 진지하게 조망할 필요가 있다는 것이 이 책의 주장이다.

신상목, 학교에서 가르쳐주지 않는 일본사, 뿌리와이파리(2017), 21면.


참고로, 최초의 영한사전은 언더우드가 집필한 한영/영한자전이다. 조선에는 마땅한 인쇄시설이 없어 1890년 요코하마에서 발행되었다. 언더우드는 서문에서 영어에 대한 한국어사전에 없다는 것이 편찬의 동기가 되었다고 하면서, 한국에 온지 수개월 후부터 5년동안 단어를 수집하였으며, 한영사전은 게일의 도움으로, 영한사전은 헐버트의 도움으로 완성하였다고 편찬과정을 적고 있다.

신상목, 학교에서 가르쳐주지 않는 일본사, 뿌리와이파리(2017), 166-167면.


에도시대는 도시화의 시대였다. 심지어 수도도 하나가 아니었다. 막부 소재지 에도, 물산 집산지 오사카, 문화의 고도 교토가 모두 수도의 성격을 갖고 있었다. 이를 삼도라 한다.

신상목, 학교에서 가르쳐주지 않는 일본사, 뿌리와이파리(2017), 175면.


일본인들은 '이키'라는 말을 들으면 '심플함 속에서 풍겨져 나오는 세련됨', '내면의 절제와 태도의 여유', '모자람이나 과함이 없는 자연스러움' 등을 연상한다고 한다. 즉 드러내 보이는 화려함보다 소박하고 단아하지만 내면의 여유를 느낄 수 있는 멋이라는 것이다.

신상목, 학교에서 가르쳐주지 않는 일본사, 뿌리와이파리(2017), 188면.


일본 정부는 1873년 오스트리아 빈 만국박람회를 공식 대뷔 무대로 삼는다. 일본 정부는 1300평의 부지에 일본식 신사와 정원을 조성하고 일본 각지에서 엄선된 공예품과 물산을 전시하였다.

신상목, 학교에서 가르쳐주지 않는 일본사, 뿌리와이파리(2017), 204면.


에도 시대 일본 사회는 도시화, 자본화, 시장화의 진전으로 기존의 지식/사상으로는 더 이상 대응하기 어려운 한계상황에 직면하였고, 이러한 한계상황을 맞아 지식인들이 시대적 소명의식을 갖고 끊임없이 고민하는 과정에서 다양하고 견고한 지적 토대가 구축되었다.

신상목, 학교에서 가르쳐주지 않는 일본사, 뿌리와이파리(2017), 235면.


은화와 금화를 교환하는 서비스를 '료가에(兩替)', 그를 담당하는 상인들을 '료가에쇼'라고 한다.

신상목, 학교에서 가르쳐주지 않는 일본사, 뿌리와이파리(2017), 235면.


이를테면, 영국의 헨리 8세는 사치스런 생활과 프랑스, 스코틀랜드의 전쟁 등으로 왕실재정이 악화되자 1544년 순도를 대폭 낮춘 품위저하 금화와 은화를 비밀리에 주조하여 기존의 화폐와 섞어서 유통시킨다. 상인들에 의해 저질 주화가 유통되고 있다는 것이 곧 발각되자, 기존의 고품위 화폐는 시장에서 퇴출되고 저질 주화만 유통되는 결과가 초래된다. 이 때의 화폐개주를 'The Great Debasement'라고 하는데, '악화가 양화를 구축한다'는 그레셤의 법칙이 탄생하게 된 배경이다.

신상목, 학교에서 가르쳐주지 않는 일본사, 뿌리와이파리(2017), 247면.


후리데가카가 제시되었을 때 발행인의 잔고가 부족하면 료가에쇼가 '돈을 건네줄 수 없다'는 의미의 '후와타리(不渡/부도)' 처리를 한다. 이것이 '부도'의 유래이다.

신상목, 학교에서 가르쳐주지 않는 일본사, 뿌리와이파리(2017), 252면.


일본의 지방자치제는 민주주의적 자치의 원리도 중요하지만, 지역 사정에 맞는 자체적인 재정 운용을 이념의 기초로 하고 있다. 일본의 지자체가 고도의 재정자치 역량을 갖출 수 있었던 데에는 과거 직접 화폐를 발행하며 국고를 운용한 역사적 경험이 바탕에 있다.

신상목, 학교에서 가르쳐주지 않는 일본사, 뿌리와이파리(2017), 263면.


한국인들이 일상적으로 쓰는 '억울'이라는 말은 한자어로 '抑鬱'이라고 쓴다. 일본에도 같은 단어가 있다. 한국어와의 차이점은 일본어의 '억울'은 정신병리학상의 용어로 심하게 기분이 침체되어 있는 'deep-depression'의 심리상태를 말한다. 한일사전을 검색하면 '억울하다'의 대응어로 '구야시이'가 가장 많이 제시된다. 그러나 엄밀히 말하면 두 단어는 맥락과 뉘앙스가 다르다. 한국어의 '억울하다'는 '자신의 잘못이 아닌 남의 잘못으로 자신이 안 좋은 일을 당하거나 나쁜 처지에 빠져 화가 나거나 상심하는 것'을 의미하는 데 반해, 일본어의 '구야시이'는 '자신이 마음먹은 대로 일이 이루어지지 않거나, 남과의 경쟁에서 패하거나, 남이 자신에게 해코지를 하여 분하거나 유감의 심정이 되는 것'을 의미한다.
비슷한 것 아니냐고 반문하는 사람이 있을지 모르지만, 개인적으로는 많은 차이가 있다고 생각한다. '억울하다'고 느끼는 사람은 남을 원망하는 마음에 이르게 되지만, '구야시이'하다고 느끼는 사람은 자신을 책망하는 마음에 이르게 된다. 그래서 억울하다고 느끼는 사람은 남이 바뀌어야 한다고 생각하지만, 구야시이하다고 느끼는 사람은 자신을 바꿔야 한다고 생각한다. 억울함은 '한'으로 이어진다. 한국인에게 '한'은 복수심을 의미하기도 하지만 많은 경우 어쩔수 없음을 스스로 삭혀야 하는 속절없는 원망과 체념의 심정을 내포한다. 일본의 규야시이도 '한'으로 연결되지만, 이는 '통한'의 의미로서 자신을 바꿔 자신을 분하게 만든 상대에게 설욕하겠다는 '절치부심'의 결의를 내포한다. 그래서 한국의 '억울하다'에 비해서 일본의 '구야시이'가 더 강렬한 심리적 에너지장을 형성하고 현실의 변화를 수반할 가능성이 높은 심리이다. 지나친 단순화이지만, 한국과 일본 간에는 그러한 심리와 성향의 차이가 있고, 그것이 언어에 반영되어 있다고 생각한다.

신상목, 학교에서 가르쳐주지 않는 일본사, 뿌리와이파리(2017), 269-270면.


일본도 한국과 마찬가지로 구미 열강 세력에 당한 불평등에 대해 분개하고 분노한다. 그러나 일본의 역사 교육은 거기서 머무르지 않는다.
'유럽으로부터 불평등 조항을 강요당한 것은 일본의 사법제도가 그들로부터 인정받지 못한 탓이다. 그들로부터 인정을 받을 수 있는 사법제도를 구축하고 불평등을 해소해야 한다.' 당시 일본 위정자들은 그렇게 생각했다. ... 이러한 노력의 결과, 1880년 형법과 형사소송법 제정을 필두로 1889년 헌법, 1896년 민법 등 소위 '법전'이라 불리는 6법 체계가 완성되었다. 유럽의 법제를 철저히 연구하여 제정한 법률들이다. 유럽국들이 더 이상 법체계의 이질성, 미성숙성을 이유로 불평등을 강요할 수 없도록 준비를 단단히 한 일본은 당당하게 기존의 불평등조항의 파기와 개정을 요구한다.
일본 정부는 1892년 포르투갈의 영사재판권을 포기시키고, 1894년 청일전쟁의 승리를 기화로 영국을 강하게 몰아붙여 기존의 불평등조약을 개정한 '일영통상항해조약'을 체결하고 사법주권을 회복하였다. ... 불평등조약을 강요당한 분함을 계기로 대등한 관계를 인정받겠다는 집념이 기어코 불평등조항의 폐기를 이끌어냈고, 그러한 굴욕이 오히려 조기 근대화의 자극제로 작용한 것이다. 이러한 집단지성 축적의 스토리와 그 기틀을 닦은 지식인들의 고뇌와 성취의 에피소드가 후세에 전해져 일본인의 역사관과 세계관을 형성하였다.
일본인들은 그렇게 역사를 바라보고, 가르치고, 배운다. 그리고 그것이 가장 깨끗한 설욕이라고 생각한다. 스스로 강요당한 불평등을 조선에 다시 강요한 일본을 부도덕하고 악한 나라라고 비판하는 것은 자유이다. 그러나 일본은 스스로 주권을 회복하였고 조선은 회복하지 못하였다. 그 역사로부터 배워야 할 것은 없는가? 이것이 한국의 역사관이 답을 찾아야 할 올바른 질문이라고 생각한다.

신상목, 학교에서 가르쳐주지 않는 일본사, 뿌리와이파이(2017), 271-273면.



2017년 8월 10일 목요일

[술꾼음료] 쿠퍼스



요새는 술을 잘 안마시다 보니, 술마시기 전후로 가 끔 먹곤 했던 컨디션, 여명808 같은 걸 본지도 꽤 된 것 같습니다. 그러다가 오늘 해장 전문 음료 쿠퍼스 헛개를 알게 되었습니다. 겉으로 보기에는 뚜껑이 좀 크다 정도의 인상인데, 특이한 건 뚜껑을 열어보면(자세히 보면 뚜껑 가운데의 투명한 부분으로도 확인할 수 있음) 음료가 나오는 입구가 특이하게 생겼고, 그 위에 2개의 환약(?)이 들어 있습니다.


2개의 환약의 성분이 아마도 헛개가 아닌가 생각되는데 씹어먹어보면 씁니다. 그리고 먹는 방법이 획기적인데, 알약을 따로 먹는게 아니라 보이는 저대로 입에 넣으면 알약 뒤로 요구르트가 쏟아져 나옵니다. 알약이 담겨있지만 옆에 보이는 틈새로 요구르트도 먹을 수 있게 만든 것이죠. 아이디어 상품이라고 생각했는데, 사무실 대장님 황변호사님께서는 이미 나온지 오래 된 거라고 하시네요. 어쨌든 저한테는 오늘의 신기한 상품이었습니다. 길가에 보이는 야쿠르트 아줌마가 팔고 계시니 해장용으로 궁금하신 분은 시도해 보시길.

2017년 8월 4일 금요일

상가건물임대차보호법에 따른 권리금의 보호



상가건물임대차보호법으로 종전까지 법적 보호의 바깥에 있었던 "권리금"을 법적으로 보호하기 시작하였는데 그 범위와 관련하여 의미가 있는 판결과 그에 대한 평석을 읽었습니다. <[판례해설] 상가건물임대차보호법에 따른 권리금의 보호, 강희주 변호사(법무법인 광장)/법률신문 2017. 6. 27.>

권리금 보호를 위하여 개정된 상가건물임대차보호법  제10조의4 제1항 제4호, 제3항에 따르면 임차인이 새로운 임차인과의 임대차계약을 주선하였음에도 임대인이 정당한 사유없이 이를 거절하는 경우 권리금 상당의 손해배상을 구할 수 있습니다.

 ① 임대인은 임대차기간이 끝나기 3개월 전부터 임대차 종료 시까지 다음 각 호의 어느 하나에 해당하는 행위를 함으로써 권리금 계약에 따라 임차인이 주선한 신규임차인이 되려는 자로부터 권리금을 지급받는 것을 방해하여서는 아니 된다. 다만, 제10조제1항 각 호의 어느 하나에 해당하는 사유가 있는 경우에는 그러하지 아니하다.
1. 임차인이 주선한 신규임차인이 되려는 자에게 권리금을 요구하거나 임차인이 주선한 신규임차인이 되려는 자로부터 권리금을 수수하는 행위
2. 임차인이 주선한 신규임차인이 되려는 자로 하여금 임차인에게 권리금을 지급하지 못하게 하는 행위
3. 임차인이 주선한 신규임차인이 되려는 자에게 상가건물에 관한 조세, 공과금, 주변 상가건물의 차임 및 보증금, 그 밖의 부담에 따른 금액에 비추어 현저히 고액의 차임과 보증금을 요구하는 행위
4. 그 밖에 정당한 사유 없이 임대인이 임차인이 주선한 신규임차인이 되려는 자와 임대차계약의 체결을 거절하는 행위
② 다음 각 호의 어느 하나에 해당하는 경우에는 제1항제4호의 정당한 사유가 있는 것으로 본다.
1. 임차인이 주선한 신규임차인이 되려는 자가 보증금 또는 차임을 지급할 자력이 없는 경우
2. 임차인이 주선한 신규임차인이 되려는 자가 임차인으로서의 의무를 위반할 우려가 있거나 그 밖에 임대차를 유지하기 어려운 상당한 사유가 있는 경우
3. 임대차 목적물인 상가건물을 1년 6개월 이상 영리목적으로 사용하지 아니한 경우
4. 임대인이 선택한 신규임차인이 임차인과 권리금 계약을 체결하고 그 권리금을 지급한 경우
③ 임대인이 제1항을 위반하여 임차인에게 손해를 발생하게 한 때에는 그 손해를 배상할 책임이 있다. 이 경우 그 손해배상액은 신규임차인이 임차인에게 지급하기로 한 권리금과 임대차 종료 당시의 권리금 중 낮은 금액을 넘지 못한다.

가장 큰 쟁점은 상가건물임대차보호법 제10조 제2항의 계약갱신요구권의 시적 제한(5년)이 상가건물임대차보호법 제10조의4 제1항 제4호, 제3항의 권리금 상당의 손해배상에도 유추적용되는지 여부라고 할 것입니다.

 
② 임차인의 계약갱신요구권은 최초의 임대차기간을 포함한 전체 임대차기간이 5년을 초과하지 아니하는 범위에서만 행사할 수 있다.

한마디로 임대차기간이 5년이 되지 않은 임차인만 권리금 상당의 손해배상을 구할 수 있는지, 임대차기간과 관계없이 임차인은 권리금 상당의 손해배상을 구할 수 있는 것인지에 대한 것입니다. 판례평석의 대상판결의 1심에서는 유추적용을 긍정하여 권리금반환청구 취지의  반소를 기각하였지만, 2심에서는 유추적용을 부정하여 권리금반환청구 중 일부를 인용하였습니다.

현재 대법원에서 이에 대해서 명확한 판시를 하지 않는 상태인 것으로 보이나, 조만간 결론이 확실해지지 않을까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