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년 2월 24일 수요일

소액사건에서 소송대리


지인과 대화를 하다가 소액사건으로 소송을 하려고 하신다고 하기에, 민사소송의 당사자와 소송대리에 대해서 알려드렸습니다. 단독사건에서 법원의 허가를 얻어서 친족, 고용인 등이 소송대리인이 될 수 있다는 것에 대해서는 숙지하고 있었는데, 소액사건에서 특례가 있었다는 것까지 자세히 설명이 안된 것 같아 찾아보고 정리했습니다(소액사건 특례-이전포스팅도 있네요. 이때만해도 소액사건이 2,000만원까지가 소액사건이었네요).

원칙적으로 민사소송에서 소송의 당사자 본인이 직접 소를 제기하거나 소송수행을 할 수 있고, 소제기나 소송수행을 소송대린에게 위임하여 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변호사가 아니면 소송대리인이 될 수 없습니다(민사소송법 제87조).

하지만 단독판사가 심리재판하는 사건 가운데 소가가 일정금액 이하인 사건(소가 1억원)에서는 법원이 허가를 하는 경우, 당사자와 밀접한 생활관계를 맺고 친족관계에 있는 사람 또는 당사자와 고용계약 등으로 사무를 처리보조하는 사람이 소송대리인이 될 수 있습니다(민사소송법 제88조 제1항)

여기서 한걸음 더 나아가 소액사건(소가 3,000만원 이하)에서는 당자사의 배우자, 직계혈족 또는 형제자매는 법원의 허가 없이도 소송대리인이 될 수 있습니다(소액사건심판법 제8조 제1항). 소송대리인은 당사자와의 신분관계 및 수권관계를 서면으로 증명해야 합니다. 이를 위해서 위임장에 가족관계증명서를 첨부하여 제출하면 됩니다.

여기까지는 일반인도 쉽게 찾아볼 수 있는 단계이지만, 이 다음 단계에 대해서는 알고 있는 사람이 드뭅니다. 위 소송대리인에 대한 특례는 1심 에서만 적용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1심에서 친족이나 고용인이 소송대리인으로 절차를 진행한 사건도, 1심 판결이 선고된 이후 당사자 중 일방 또는 쌍방이 항소하여 2심에 들어서게 되면 1심의 소송대리인이 소송진행을 할 수 없게 됩니다. 이 때에는 원칙으로 돌아가 당사자 본인이 소송을 진행하거나, 변호사를 소송대리인으로 선임해야 합니다. 

혹시나 본인소송을 진행하려고 하시는 분들은 참고하시면 좋을 것입니다.

2021년 2월 5일 금요일

대법원장은 물러나야 한다


지난 며칠동안 사법부의 신뢰에 치명적인 손상을 입힌 사건이 발생했습니다. 삼권분립의 한축인 대법원장이 '양심에 따라 재판'하는 판사들의 독립이 아니라, 국회의원들 탄핵이나 걱정하는 시다바리에 불과했음이 만천하에 드러났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사건이 알려지게 된 경위 또한 한치앞을 내다보지 못하고 거짓말을 일삼다가 하루만에 인정하고 말뒤집기 하는 추태와 함께라서 충격이 더했습니다.

변호사로서 일해오는 동안 법원의 판결은 특히나 상고심까지 3번이나 다투었는데도 결론이 바뀌지 않는 사건들에 대해 의뢰인에게 법원에 대한 신뢰를 가질 수 있다고 이야기해 왔습니다. 판사들의 사건에 대한 파악정도나 법리에 대한 해박함이 다를 수는 있다고 해도, 적어도 사건에 대해서 중립적인 입장에서 가장 타당한 결론을 내리는 바탕에는 판사들에게 일반인에게 없는 높은 도덕성과 성실함은 갖추어져 있다고 믿었기 때문입니다. 특히나 주변에 판사직을 수행하는 친구/지인분들을 가까이에서 볼 때 대부분이 저의 기대를 뛰어넘는 훌륭한 분들이었기 때문에 자신있게 의뢰인들에게 법원은 신뢰할 수 있다, 판사는 신뢰할 수 있다. 판결에 억울함이 있다면 항소/상고를 통해서 재판부에게 우리의 주장하는 바를 이해시키자고 말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그런데 이 훌륭한 판사님들의 정점에 서 있는 대법원장 이라는 사람의 행태를 보고 있자니, 도대체 우리나라는 이런 사람을 대법원장으로 가져야만 하는 수준인지 자괴감이 들 수 밖에 없었습니다. 국회에서 우격다짐으로 사법농단이라고 주장하면서 결국 기소가 된 판사가 1심에서 무죄를 받고, 옷을 벗고자 사표를 제출했더니, 그 사람에게 "국회에서 탄핵주장할 수가 없게 되어 자신이 곤란하다"고 사표를 받지 않았다니요. 기본적으로 대법원장이면 판사가 그러한 정치적 외압에 의해서 좌우되지 못하게 사법부의 독립을 최우선으로 생각해야 한다는 기본도 없는 사람 아니라는 생각 밖에는 들지 않습니다.

미국의 로버츠 대법원장은 2018년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이민정책 반대 판결을 내린 순회법원 판사를 비난하면서 자신을 겨냥해 "당신은 오바마 판사들을 두고 있다"고 공격하자 "미국에는 '오바마판사'나 '클린턴판사'는 없다. 오직 모든 이들에게 공평하도록 최선을 다하는 헌신적 판사만 있을 뿐이다."고 받아쳤다고 합니다(매일경제, 2021. 2. 5.자 기사). 우리에게 이 정도 기개가 있는 대법원장을 바라는게 일개 변호사의 욕심일 뿐인지 안타깝기만 합니다.

게다가 대법원장에 대한 녹취록이 공개된 경위도 어처구니 없습니다. 애초에 임부장판사측에서 헌정사상 초유의 법관탄핵이 발의되자, 탄핵문제로 대법원장이 사표를 수리할 수 없다고 했다고 주장했고, 대법원에서 "탄핵문제로 사표를 수리할 수 없다는 취지로 말한 사실이 없다"고 발표를 해서, 임부장판사를 거짓말을 한 것으로 몰아가려고 했습니다. 임부장판사는 녹취를 공개할 의사가 없었는데(사실 자신이 되려 거짓말을 한 것으로 몰릴 상황이 아니라면 녹취한 것이 떳떳한 것도 아니고 공개하지 않았겠죠), 대법원장이 되려 거짓말을 하고 있어서 부득이 공개한 것이라고 보는 게 합리적입니다. 녹취를 공개하지 않았다면 상황이 어떻게 흘러갔을지 뻔합니다. 대법원의 발표는 대서특필되고, 임부장판사의 주장은 소리소문없이 묻혔겠죠. 애초에 임부장판사가 왜 대화를 녹취할 생각을 하게 되었는지도 짐작하게 하는 대목입니다. 대법원장이 앞에서는 이렇게 말하고 뒤에서 딴말을 하는 것이 여러번이었는데, 증거가 없으니 대법원장 주장대로 상황이 흘러가는 일이 많았기 때문에 고위법관씩이나 되는 사람이 녹음을 한 것입니다. 임부장판사에 대한 동아일보 기사 막판이 더 충격적입니다.

"입만 열면 거짓말을 한다. 앞에서 이 말하고, 뒤에서 딴말하고, 나한테 말한 그 정도 말을 기억 못한다면 대법원장을 하면 되겠나."

이 정도로 사법부에 대한 신뢰를 땅바닥에 팽개쳤다면, 이 사람이 대법원장이 자리에 눌러 앉아 있는 것 자체가 법원과 판결에 대한 무한불신을 일으키기에 충분합니다. 이제 의뢰인에게 저 따위 사람이 대법원장으로 앉아 있는 법원의 판결에 무슨 권위와 설득력이 있냐고 반박을 들어도 어떻게 그렇지 않다고 이야기하겠습니까.

우리나라의 사법부가 항상 권력에 독립하여 판단하고 재판하지 못한 역사도 있었습니다. 그러나 적어도 권력의 비위에 단죄를 내릴 도덕성과 정당성이 법원이 지켜야 할 최후의 보루라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현재 사법부의 수장은 자신을 임명해준 권력에 눈치를 볼 생각 밖에는 없는 사람이라는 것을 부인할 수 없을 것입니다. 법원 전체 나아가 법조계에 대한 국민의 신뢰를 더 이상 해치기 전에 김명수 대법원장은 그 직을 내려 놓아야 한다고 생각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