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년 8월 19일 토요일

[책 소개] 학교에서 가르쳐주지 않는 일본사



신상목, 학교에서 가르쳐주지 않는 일본사, 뿌리와이파리(2017)

외교관출신 우동집(강남역 부근에 위치한 '기리야마본진') 사장님이 열심히 장사하시는 틈틈이 집필하신 일본 에도시대 역사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같은 사무실의 황규경 변호사님의 페이스북 친구로 처음 알게 되었는데, 일본에 대한 타성에 젖은 비판에 대해 한번더 생각해 볼만한 글들을 페이스북에서 보고 저 또한 그분의 글에 즐겨 좋아요를 누르는 사람 중의 하나가 되었습니다.

지지난 주말엔가 고속터미널의 반디앤루니스에서 이 책을 구입하려고 보았더니 재고가 없어서 돌아섰었는데, 황변호사님께서 페이스북에서 좋은 글을 읽은 값을 해야 한다시며(이분 낭만적 자본주의자) 이 책을 20권 구입후 사무실에 나눠주셔서 다 읽었습니다. 제 돈내고 사 볼만한(두번 사볼만한) 책이라고 생각합니다.

실상으로는 일본의 거의 모든 제도를 베껴 왔으면서도, 겉으로는 일본을 무시하고 배격하는 태도를 취하는 이중적인 한국의 태도를 정면으로 비판하는 태도는, 일본의 실력을 직접 일본에서 경험하고 일본에 대해서 많이 공부한 사람이기 때문에 가질 수 있는 것이 아닌가 합니다. 책에서 소개하고 있는 내용 자체도 모르고 있던 것이 태반이고, "양체", "부도", "악화가 양화를 구축한다"와 같이 그 말 자체와 의미는 알고 있지만 그 유래에 관심이 없었던 말들에 대해서 더 잘 알게 된 것만으로도 이 책의 가치는 충분합니다. 게다가 에필로그에 한방 빵 터 트려주시는데, 사실 그 대목 쓰시기 위해서 이 책을 집필하시지 않았나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합니다. 일본은 유독 한국에서는 제대로 평가받지 못하는 나라이기 때문입니다. 다음은 인상깊은 대목입니다.

서세동점의 시기에 근대국가 수립이라는 시험대 앞에서 일본은 최우등생, 중국은 열등생, 조선은 낙제생이었다. 무엇이 그러한 차이를 만들었을까?

신상목, 학교에서 가르쳐주지 않는 일본사, 뿌리와이파리(2017), 13면.

한국인들의 일본 역사에 대한 관심은 [대망]으로 대표되는 일본 센고쿠 시대의 영웅군담 스토리, 막말 지사들의 네이션 빌딩 스토리, 러일전쟁에서 태평양전쟁 시기에 이르는 전쟁 스토리에 집중된다. 그나마 개인적 관심이 있는 사람들에 한해서 그렇다.

신상목, 학교에서 가르쳐주지 않는 일본사, 뿌리와이파리(2017), 14면.


(단재 신채호의 말이라고 잘못 알려져 있지만) 한국인들은 "역사를 잊은 민족에게 미래는 없다"는 말을 좋아한다.

신상목, 학교에서 가르쳐주지 않는 일본사, 뿌리와이파리(2017), 16면.


이 책은 일본에 나라를 빼앗긴 뼈아픈 역사를 갖고 있는 한국인들이 가장 주목해야 할 역사이지만 가장 '주목받지 못하는 역사'인 일본 근세에 대한 한국 내의 관심과 이해를 돕기 위한 목적으로 쓰였다.

신상목, 학교에서 가르쳐주지 않는 일본사, 뿌리와이파리(2017), 17면.


외교관의 세계에는 "유능한 외교관은 모든 분야에 대해 조금씩은 알아야 하고, 한 분야에 대해서는 모든 것을 알아야 한다"는 말이 있다.

신상목, 학교에서 가르쳐주지 않는 일본사, 뿌리와이파리(2017), 18면.


한국의 근대화에는 일본의 근대화가 투영되어 있다. 현대 한국 사회의 많은 부분은 조선의 근세가 아니라 일본 근세의 연속 또는 연장이다. 따라서 일본 근세에 대한 이해를 높이는 것은 한국 근대화의 부리를 찾는 과정으로서의 의미가 있다. 한국 근대화의 뿌리를 찾기 위해서라도 일본 근세를 진지하게 조망할 필요가 있다는 것이 이 책의 주장이다.

신상목, 학교에서 가르쳐주지 않는 일본사, 뿌리와이파리(2017), 21면.


참고로, 최초의 영한사전은 언더우드가 집필한 한영/영한자전이다. 조선에는 마땅한 인쇄시설이 없어 1890년 요코하마에서 발행되었다. 언더우드는 서문에서 영어에 대한 한국어사전에 없다는 것이 편찬의 동기가 되었다고 하면서, 한국에 온지 수개월 후부터 5년동안 단어를 수집하였으며, 한영사전은 게일의 도움으로, 영한사전은 헐버트의 도움으로 완성하였다고 편찬과정을 적고 있다.

신상목, 학교에서 가르쳐주지 않는 일본사, 뿌리와이파리(2017), 166-167면.


에도시대는 도시화의 시대였다. 심지어 수도도 하나가 아니었다. 막부 소재지 에도, 물산 집산지 오사카, 문화의 고도 교토가 모두 수도의 성격을 갖고 있었다. 이를 삼도라 한다.

신상목, 학교에서 가르쳐주지 않는 일본사, 뿌리와이파리(2017), 175면.


일본인들은 '이키'라는 말을 들으면 '심플함 속에서 풍겨져 나오는 세련됨', '내면의 절제와 태도의 여유', '모자람이나 과함이 없는 자연스러움' 등을 연상한다고 한다. 즉 드러내 보이는 화려함보다 소박하고 단아하지만 내면의 여유를 느낄 수 있는 멋이라는 것이다.

신상목, 학교에서 가르쳐주지 않는 일본사, 뿌리와이파리(2017), 188면.


일본 정부는 1873년 오스트리아 빈 만국박람회를 공식 대뷔 무대로 삼는다. 일본 정부는 1300평의 부지에 일본식 신사와 정원을 조성하고 일본 각지에서 엄선된 공예품과 물산을 전시하였다.

신상목, 학교에서 가르쳐주지 않는 일본사, 뿌리와이파리(2017), 204면.


에도 시대 일본 사회는 도시화, 자본화, 시장화의 진전으로 기존의 지식/사상으로는 더 이상 대응하기 어려운 한계상황에 직면하였고, 이러한 한계상황을 맞아 지식인들이 시대적 소명의식을 갖고 끊임없이 고민하는 과정에서 다양하고 견고한 지적 토대가 구축되었다.

신상목, 학교에서 가르쳐주지 않는 일본사, 뿌리와이파리(2017), 235면.


은화와 금화를 교환하는 서비스를 '료가에(兩替)', 그를 담당하는 상인들을 '료가에쇼'라고 한다.

신상목, 학교에서 가르쳐주지 않는 일본사, 뿌리와이파리(2017), 235면.


이를테면, 영국의 헨리 8세는 사치스런 생활과 프랑스, 스코틀랜드의 전쟁 등으로 왕실재정이 악화되자 1544년 순도를 대폭 낮춘 품위저하 금화와 은화를 비밀리에 주조하여 기존의 화폐와 섞어서 유통시킨다. 상인들에 의해 저질 주화가 유통되고 있다는 것이 곧 발각되자, 기존의 고품위 화폐는 시장에서 퇴출되고 저질 주화만 유통되는 결과가 초래된다. 이 때의 화폐개주를 'The Great Debasement'라고 하는데, '악화가 양화를 구축한다'는 그레셤의 법칙이 탄생하게 된 배경이다.

신상목, 학교에서 가르쳐주지 않는 일본사, 뿌리와이파리(2017), 247면.


후리데가카가 제시되었을 때 발행인의 잔고가 부족하면 료가에쇼가 '돈을 건네줄 수 없다'는 의미의 '후와타리(不渡/부도)' 처리를 한다. 이것이 '부도'의 유래이다.

신상목, 학교에서 가르쳐주지 않는 일본사, 뿌리와이파리(2017), 252면.


일본의 지방자치제는 민주주의적 자치의 원리도 중요하지만, 지역 사정에 맞는 자체적인 재정 운용을 이념의 기초로 하고 있다. 일본의 지자체가 고도의 재정자치 역량을 갖출 수 있었던 데에는 과거 직접 화폐를 발행하며 국고를 운용한 역사적 경험이 바탕에 있다.

신상목, 학교에서 가르쳐주지 않는 일본사, 뿌리와이파리(2017), 263면.


한국인들이 일상적으로 쓰는 '억울'이라는 말은 한자어로 '抑鬱'이라고 쓴다. 일본에도 같은 단어가 있다. 한국어와의 차이점은 일본어의 '억울'은 정신병리학상의 용어로 심하게 기분이 침체되어 있는 'deep-depression'의 심리상태를 말한다. 한일사전을 검색하면 '억울하다'의 대응어로 '구야시이'가 가장 많이 제시된다. 그러나 엄밀히 말하면 두 단어는 맥락과 뉘앙스가 다르다. 한국어의 '억울하다'는 '자신의 잘못이 아닌 남의 잘못으로 자신이 안 좋은 일을 당하거나 나쁜 처지에 빠져 화가 나거나 상심하는 것'을 의미하는 데 반해, 일본어의 '구야시이'는 '자신이 마음먹은 대로 일이 이루어지지 않거나, 남과의 경쟁에서 패하거나, 남이 자신에게 해코지를 하여 분하거나 유감의 심정이 되는 것'을 의미한다.
비슷한 것 아니냐고 반문하는 사람이 있을지 모르지만, 개인적으로는 많은 차이가 있다고 생각한다. '억울하다'고 느끼는 사람은 남을 원망하는 마음에 이르게 되지만, '구야시이'하다고 느끼는 사람은 자신을 책망하는 마음에 이르게 된다. 그래서 억울하다고 느끼는 사람은 남이 바뀌어야 한다고 생각하지만, 구야시이하다고 느끼는 사람은 자신을 바꿔야 한다고 생각한다. 억울함은 '한'으로 이어진다. 한국인에게 '한'은 복수심을 의미하기도 하지만 많은 경우 어쩔수 없음을 스스로 삭혀야 하는 속절없는 원망과 체념의 심정을 내포한다. 일본의 규야시이도 '한'으로 연결되지만, 이는 '통한'의 의미로서 자신을 바꿔 자신을 분하게 만든 상대에게 설욕하겠다는 '절치부심'의 결의를 내포한다. 그래서 한국의 '억울하다'에 비해서 일본의 '구야시이'가 더 강렬한 심리적 에너지장을 형성하고 현실의 변화를 수반할 가능성이 높은 심리이다. 지나친 단순화이지만, 한국과 일본 간에는 그러한 심리와 성향의 차이가 있고, 그것이 언어에 반영되어 있다고 생각한다.

신상목, 학교에서 가르쳐주지 않는 일본사, 뿌리와이파리(2017), 269-270면.


일본도 한국과 마찬가지로 구미 열강 세력에 당한 불평등에 대해 분개하고 분노한다. 그러나 일본의 역사 교육은 거기서 머무르지 않는다.
'유럽으로부터 불평등 조항을 강요당한 것은 일본의 사법제도가 그들로부터 인정받지 못한 탓이다. 그들로부터 인정을 받을 수 있는 사법제도를 구축하고 불평등을 해소해야 한다.' 당시 일본 위정자들은 그렇게 생각했다. ... 이러한 노력의 결과, 1880년 형법과 형사소송법 제정을 필두로 1889년 헌법, 1896년 민법 등 소위 '법전'이라 불리는 6법 체계가 완성되었다. 유럽의 법제를 철저히 연구하여 제정한 법률들이다. 유럽국들이 더 이상 법체계의 이질성, 미성숙성을 이유로 불평등을 강요할 수 없도록 준비를 단단히 한 일본은 당당하게 기존의 불평등조항의 파기와 개정을 요구한다.
일본 정부는 1892년 포르투갈의 영사재판권을 포기시키고, 1894년 청일전쟁의 승리를 기화로 영국을 강하게 몰아붙여 기존의 불평등조약을 개정한 '일영통상항해조약'을 체결하고 사법주권을 회복하였다. ... 불평등조약을 강요당한 분함을 계기로 대등한 관계를 인정받겠다는 집념이 기어코 불평등조항의 폐기를 이끌어냈고, 그러한 굴욕이 오히려 조기 근대화의 자극제로 작용한 것이다. 이러한 집단지성 축적의 스토리와 그 기틀을 닦은 지식인들의 고뇌와 성취의 에피소드가 후세에 전해져 일본인의 역사관과 세계관을 형성하였다.
일본인들은 그렇게 역사를 바라보고, 가르치고, 배운다. 그리고 그것이 가장 깨끗한 설욕이라고 생각한다. 스스로 강요당한 불평등을 조선에 다시 강요한 일본을 부도덕하고 악한 나라라고 비판하는 것은 자유이다. 그러나 일본은 스스로 주권을 회복하였고 조선은 회복하지 못하였다. 그 역사로부터 배워야 할 것은 없는가? 이것이 한국의 역사관이 답을 찾아야 할 올바른 질문이라고 생각한다.

신상목, 학교에서 가르쳐주지 않는 일본사, 뿌리와이파이(2017), 271-273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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