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년여전 정도부터, 일반 형사사건의 국선변호인 외에, 수사단계에서 영장청구가 되는 구속위험이 발생한 형사피의자에 대한 국선변호제도가 생겨서 실행되고 있습니다. 일반 형사사건의 국선변호인이 하는 것이 피고인에 대한 변호라고 한다면, 기소 전의 피의자에 대한 국선변호라고 해서 '피의자국선' 이라고 합니다.
피의자국선은 피의자에 대한 구속영장이 청구되면 역시 법원에서 지정하는데, 제일 먼저 하는 일이 영장실질심사 전에 피의자를 접견하고, 영장실질심사단계에서 피의자의 도주, 증거인멸우려 없음을 소명하는 역할을 합니다. 대부분 구속영장실질심사일 전날 팩스로 국선변호인선임을 통지해 주고, 당일 영장실질심사 30분에서 1시간 정도 전에 피의자와 접견한 후 영장실질심사에 바로 출석하게 됩니다.
대부분의 피의자국선사건의 경우 범죄가 상당히 중하거나, 주거가 부정하거나, 도주나 증거인멸의 우려가 있다고 판단되면, 구속영장이 발부되는 경우가 많고, 제가 담당한 사건들 중에서도 80% 이상은 영장이 발부되는 것 같습니다. 영장이 발부되면 피의자 국선변호인으로 지정된 변호사는 구속된 피의자의 1심 재판 종료시까지 당해 피의자의 변호인으로 변호활동을 하게 됩니다.
영장이 기각되면 피의자는 바로 석방되고, 피의자 국선변호인의 역할도 종료되고 국선변호인 선임이 취소됩니다. 이 경우, 영장이 기각되었다고 하여 석방된 피의자에 대한 형사사건이 끝나는 것이 아니라 이 피의자는 불구속상태에서 수사-기소-재판을 받게 됩니다. 하지만 피의자 국선변호인의 선임이 취소되기 때문에 이후의 수사-기소-재판 은 석방된 피의자 본인이 알아서 대응해야 합니다.
영장이 발부되어 구속되는 경우에도, 구속이 적당한 것인지 한번더 살펴봐 달라고 신청을 할 수 있는데, 이것을 구속적부심사청구(구속적부심)라고 합니다. 구속적부심사는 구속된 피의자 본인이 신청할 수도 있고, 피의자의 변호인을 포함해서 피의자와 일정한 관계에 있는 사람이 신청을 할 수 있는데, 특별히 영장실질심사에서와 다른 사정이 있는 경우가 아니라면 구속적부심이 인용되어 피의자가 석방되는 경우는 드뭅니다. 구속적부심사에서 피의자의 출석을 보증하는 보증금을 붙여 피의자를 석방시키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이를 기소전보석 이라고 부르기도 합니다.
지난주 초에 피의자국선변호인으로 선정되어 2명의 피의자에 대한 영장실질심사에 변호인으로 출석했는데, 그 중 한명의 사건이 특이했습니다. 피해자가 남편이고, 사건 전후로 이미 우울증, 조현병으로 치료를 받는 정황이 있는 피의자의 사건이었는데, 피해자인 남편이 처벌을 원하는 사건이 아닌데 경찰이 사건이 중대하다고 판단해서 구속영장을 청구했고, 법원도 영장실질심사를 마치고 구속영장을 발부했습니다.
하지만 피의자의 가족(=피해자 및 피해자의 가족이기도 합니다)는 피의자의 범행이 정신병증으로 인한 것이기 때문에 처벌을 원치 않고 치료를 받아야 한다고 생각하고 있다는 것을 확인하고, 피해자와 가족들의 탄원서를 받아서 법원에 제출하면서 바로 제가 구속적부심사를 청구했습니다.
원래 피의자가 구속적부심을 청구하려고 하는 경우에는, 영장발부당시와 특별히 다른 사정이 있는 것이 아니면 구속적부심사청구의 실익이 없다고 설명을 해주는 편인데, 피해자인 남편분이 병원치료를 받으시는 와중에도 구속적부심기일에 출석하셔서 의견을 밝히고 싶다고 하셔서, 주말에 잡힌 구속적부심사기일에 피해자분과 함께 나갔습니다.
피해자인 남편분이 자신이 피해자임에도 피의자를 잘 보살펴야 하는데 그렇게 못해서 이런 일이 일어났다며 본인이 죄송하다고 하시고, 법정에서 피의자와 피해자가 서로 미안하다며 울어버리시더군요. 두분을 떼어놓고 구속적부심이 끝나고, 그날 밤 보증금과 함께 석방취지의 인용결정이 났습니다.
신문에서도 대부분 구속적부심 기각 뉴스가 뜨는게 대부분이고, 인용 결정은 상당히 드문데, 영장실질심사를 담당한 판사의 구속결정을 뒤집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렇기에 영장발부와 다른 사정을 충분히 소명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어야 구속적부심의 인용가능성이 생긴다고 할 수 있는데, 이 사건은 피해자가 직접 출석해서 다행히 그런 사정을 소명할 수 있었습니다.
이제 피의자가 석방되었기 때문에 일응 제 피의자국선 선임결정은 취소되고 더이상 저는 국선변호인이 아니어서 기록에 남겨봅니다. 변호사 생활 20여년 만에 처음 받아본 구속적부심 인용결정 후기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