격년으로 서울중앙지방법원 서울중앙지방법원 조정위원협의회에서 조정과 관련된 글들을 모아 조정마당-열린대화라는 책을 발간합니다. 작년에 조정과 관련한 자유주제로 이 책에 글을 기고해 달라는 요청을 받아서 보낸 글이 있는데, 제 글이 실린 2017년 조정마당-열린대화가 이번에 발간되어 받아보았습니다.
3페이지 밖에는 되지 않지만 실려 있는 모습을 보니 뿌듯하네요. 관심이 있으신 분들은 조정마당-열린대화를 찾아보실 수 있으실 것이지만, 많이 배포되지는 않는 책이라서(저도 조정위원이 되기 전에는 그 존재 자체를 모르던 책이었습니다), 여기 실린 제 글을 여기에도 실어봅니다.
조정단상-진심이 닿을 수 없는 부분을 메운다.
조정위원 고재현
분쟁이 생겼을 때 법원에 분쟁을 가져오면서 사람들이 바라는 것은 칼로 무 자르듯 명쾌한 법리로 시시비비를 가리는 것인 경우도 있지만, 분쟁의 본질이 단순히 경제적 이해관계에 대한 견해차이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인간관계에서 느껴지는 기본적인 예의부족이나 상대방에 대한 서운함으로 인해 촉발되는(또는 그러한 것이 사건의 중심이 되는) 분쟁에 있어서 사건경험이 많은 제3자가 중재함으로써 분쟁 당사자들 쌍방이 물질적으로나 정신적으로 덜 상처받는 방법을 제시해주기를 바라는 경우도 있습니다. 후자의 경우가 조정과 같은 대체적 분쟁해결제도를 우리 법원이 운영하는 이유일 것입니다.
서울중앙지방법원에서 상근조정위원으로 일주일에 한번 조정을 하기 시작한지도 벌써 1년이 넘었습니다. 하지만 아직도 제가 조정당사자들에게 쌍방에게 이익이 되는 조정안을 찾아 흔쾌히 조정에 응하게 만드는 조정위원인가를 자문해 봐도 자신 있는 대답이 나오지 않습니다. 어쩌면 10년이 지나도 그렇다고 흔쾌히 대답할 수 있는 자신감이 생길지는 모르겠습니다. 기록을 보면 적당한 조정안이 떠오르고 당사자를 설득할 수 있겠다고 생각한 사건에서는 한 치의 양보도 없이 “법원에서 불렀기 때문에 나왔을 뿐”이라는 당사자들에게 불성립 결정을 할 수 밖에 없는 경우가 허다하고, 판결로 가게 되면 원고가 승소할 것이 뻔한 사건이기 때문에 원고가 양보할 이유가 없어 보이는 사건에서 피고의 재활의지를 확인한 원고가 말도 안되는 장기간의 상환조건의-심지어 조정위원이 그런 조건으로 합의하는 원고를 본적이 없다고 하는데도- 조정안에 합의해서 조정이 이루어지는 것을 보다보면, 조정을 성립시키는 것은 조정위원의 능력에 달린 것이 아니라는 확증편향만 굳어지기 때문입니다.
조정에 임하다보면 기본적으로 분쟁 당사자들이 사건에 대해서 가장 많이 이야기하는 부분 중 하나는 (이러이러한 잘못을 하고도) 상대방은 “나에게 제대로 연락을 하(받)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연락이 잘 안 된 데에는 나아지지 않은 상황을 설명해야 하는 계면쩍음, 미안함, 어떻게든 도피하고 싶은 현실 등 많은 이유가 있겠지만 적어도 현재 상황을 정확히 상대방에게 알리지 않고 상대방이 법적 조치를 취하지 않는 요행이 있으면 어쨌든 상황을 모면하겠다는 태도가 사건을 법원으로 가져오게 되는 가장 큰 이유일 것입니다. 법원에 제소하기 전에는 연락도 잘 되지 않던 상대방이 조정기일이라는 기회에 앞에 있으니 당사자들로서는 상대방의 잘못을 낱낱이 까발리고 싶은 생각도 드는 것 같습니다. 잘못한 당사자도 상대방으로부터 대놓고 지적받는 것에 대해서 유쾌하게 받아들이는 경우는 거의 없습니다. 그래서 조정기일에 당사자들 쌍방이 서로에게 말을 하도록 하게 되면 말싸움이 되어 버리는 경우도 많습니다. 저 같은 경우 당사자들께서 원칙적으로 제게 말씀을 하시고 당사자 사이에서 서로 말씀을 삼가 달라고 부탁드리곤 합니다(그래도 사이사이 상대방에게 잽 날리듯 치고 빠지는 것까지 막기는 어렵더군요). 그래서 상대방에 대한 날선 감정이 배제되고 제3자인 조정위원을 통해서 사건에 대해서 이야기하다보면 사실관계나, 상대방에게 요구하는 내용의 한계가 정리되면서 쌍방이 어느 정도 양보하는 조정안에 가까이 갈 가능성이 높아집니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핵심은 조정 초기에 제가 생각하고 있었던 ”얼마나 균형 잡힌 조정안을 만들어 내느냐“라고 할 수 있지만, ”얼마나 쌍방에게 상대방을 이해시키느냐“가 그에 못지않게 중요하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우리는 어렸을 적부터 속담으로 “말 한마디로 천 냥 빚 갚는다”, “아 다르고 어 다르다”란 말을 많이 듣고 자랐지만, 법 없이도 살아왔다는 표현이 걸 맞는 대부분의 사람들에게 남에게 부탁할 일이나 아쉬운 소리를 하게 되는 경우는 흔치 않습니다. 그래서 이 속담의 의미를 사전적으로만 이해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조정위원으로 일해보기 전까지 저도 그리 다르지 않은 사람이었습니다. 하지만 당사자들의 이해관계가 첨예하게 대립될 때 사람의 마음을 조금의 양보로 이끄는 것은 냉철한 이성이 아니라 “상대방이 얼마나 나를 배려하고 있는가”, “상대방이 얼마나 진심으로 말하고 있는가”, “상대방이 자신의 잘못에 대해서 얼마나 진정성 있는 태도를 보이고 있는가”에 대한 감정인 것 같다는 조심스러운 결론을 내리게 되었습니다. 같은 취지의 말이라고 퉁치고 있는 많은 말들 속에서 적어도 상대방의 기분을 배려하는 말과 태도로 조정에 응하는 경우와 그렇지 않은 경우, 결과를 예측하기는 어렵지 않습니다. 어쩌다 인터넷서핑을 하다가 발견한 인용구도 그런 뜻인 것 같습니다. “people will forget what you said, people will forget what you did, but people will never forget how you made them feel.” (사람들은 당신이 한 말과 행동을 잊을 것이지만, 결코 당신이 그들에게 느끼게 한 감정은 결코 잊지 않을 것이다) 그래서 길지 않은 기간 조정위원으로 일하면서 조정 시에 당사자들의 말을 가능한 성의 있는 태도로 듣고 이해하는 것을 우선으로 하는 태도를 갖기 위해 노력하게 되었습니다. 물론 소장이나 서면에 기재되어 있는 말의 반복일 수도 있고, 피고에 대한 불만의 토로일 뿐일 수도 있고, 의미 있는 증거에 대한 것이 아닌 경우도 많습니다. 하지만 재판에 나가 “소장 진술”하고 “준비서면 진술”함으로써 알게 되는 것보다 더 풍부한 이야기를 듣고, 당사자들의 처지를 이해하는 것이 쌍방이 수긍할 수 있는 조정에 다가가는 첫걸음이라고 생각합니다.
요약해 보자면 조정위원의 역할은 당사자들 사이에 “진심이 닿을 수 없는 부분을 메우”는 것이 아닐까 합니다. 앞으로 얼마나 더 이 결론이 더 수정되거나 바뀔지는 모르겠지만 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