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년 2월 6일 화요일

소설가에게 부러운 점(feat. 2009년 이상문학상 작품집)


지난번 알라딘 중고서점 강남점에서 득템한 2009년 이상문학상 작품집(대상, 김연수, 산책하는 이들의 다섯가지 즐거움)을 읽으면서는, 소설가가 그리는 세상에 대해서 배우거나 나도 몰랐던 세상사에 대해서 알게 되었다기 보다는, 소설가로서 다른 사람의 인생, 또 하나의 세계를 구축하는 일을 하고 있는 김연수라는 소설가가 어떻게 해서 소설가가 되었는지를 담담하게 보여주는 김연수의 문학적 자서전(이 세상 그 누구도 대신 써주지 않는 15매)이 눈에 들어왔습니다.

자신이 쓴 글 중에서 가장 좋아하는 구절을 자신있게 보여줄 수 있다는 점이 이 김연수라는 소설가/작가에게 부러웠던 점이었달까요. 소설가 김연수([책소개] 소설가의 일 도 참조)가 2009년 현재 지금까지 자신이 쓴 글 중에서 가장 좋아하는 구절은 다음과 같습니다.

"어둠 속에 머물다가 단 한 번뿐이라고 하더라도 빛에 노출되어 본 경험이 있는 사람이라면 한평생 그 빛을 잊지 못하리라. 그런 순간에 그들은 자기 자신이 아닌 다른 존재가 됐으므로, 그 기억만으로 그들은 빛을 향한, 평생에 걸친 여행을 시작한다. 과거는 끊임없이 다시 찾아오면서 그들을 습격하고 복수하지만, 그리하여 때로 그들은 사기꾼이나 협잡꾼으로 죽어가지만 그들이 죽어가는 세계는 전과는 다른 세계다. 우리가 빠른 걸음으로 길모퉁이를 돌아갈 때, 침대에서 연인과 사랑을 나눈 뒤 식어가는 몸으로 누웠을 때, 눈을 감고 먼저 죽은 사람들을 생각하다가 다시 눈을 떴을 때, 몇 개의 문장으로 자신의 일생을 요약한 글을 다 썼을 때, 그럴 때마다 우리가 알고 있던 과거는 몇 번씩 그 모습을 바꾸었고, 그 결과 지금과 같은 모습의 세계가 탄생했다. 실망한 사람들은 새로운 시대, 거대한 변혁의 시대에 대해서는 아무것도 모르는 척 살아갈 뿐이다. 그들은 그렇게 살아가도록 내버려두자! 그들에게는 그들의 세계가 있고, 우리에게는 우리의 세계가 있다. 이 세계는 그렇게 여러 겹의 세계이며, 동시에 그 모든 세계는 단 하나뿐이라는 사실을 믿자! 설사 그 일이 온기를 한없이 그리워하게 만드는 사기꾼이자 협잡꾼으로 우리를 만든다고 하더라도, 그 세계가 바로 우리에게 남은 열망이므로."

변호사라서 남기는 것은 무죄판결에 변호인으로 나와 있는 제 이름 정도일까요. 그래도 제 직업은 어딘가에 제 이름이 남아있을 수 있는 직업이기는 하다는게 조금의 위안이 되는 것 같습니다. 그래도 자서전을 쓸 수 있는 이상문학상 수상 작가는 부럽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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