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년 12월 27일 금요일

[책소개] 일의 기쁨과 슬픔


장류진 소설집, 일의 기쁨과 슬픔, 창비(2019)

이 소설집을 주문한 것은 약간의 충동 때문이었습니다. 중앙일보의 한해를 결산하는 책들을 소개하는 기사 한켠에 젊은 여류 작가의 소설집에 대한 평이 맘에 들었기 때문이었던 것으로 기억되네요. 그리고 성탄절 전에 주문해서 성탄절 직후에 도착한 책은 술술 잘 읽혔습니다. 현학적이지 않고 단도직입적으로 딱딱 하고 싶은 말을 하는.. 아마도 저보다 10-20살 어린 친구들의 삶과 생활태도가 이런 것이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특히 당근마켓 인 것으로 보이는 중고거래마켓 시스템이 소설에 나와서 깜짝 놀랐네요.

아무래도 이상문학상 수상 소설들과 비교하지 않을 수 없는데, 소설집에 대한 평론가 인아영의 평이 인상적이어서 인용해 봅니다.

어쩌면 그간 한국문학은 사회의 구조적인 모순이나 내면의 거대한 심연을 드러내는 개인에게 유난한 값어치를 부여해왔는지도 모른다. 외부 세계와의 불화를 기꺼이 감당하면서 무언가를 추구하는 개인에게 소설의 본질적인 기능과 역할을 기대해오면서 말이다. 그러나 장류진의 소설에 등장하는 산뜻하고 담백한 인물들은 자본주의 시스템 안에서 살아가야 하는 개인들의 작고 평범한 기쁨을 포착해낸다. 그렇다면 장류진의 소설과 더불어 우리는 이제 한국문학의 개인에 대해 이렇게 사유해 볼 수 있겠다. 이 사회에서 을이자 약자인 여성, 청년, 노동자들이 특유의 생존감각으로 시스템을 체화하고 탄력적으로 구부려, 가장 빠르게 정확하게 앞으로 나아가고 있다고 말이다.
-인아영, 센스의 혁명, 장류진 소설집, 일의 기쁨과 슬픔, 창비(2019), 230-231면.

가볍게 읽을 수 있지만 그 안에 담긴 고민과 삶의 깊이에 대해 한번더 생각해 보게 만드는 소설로 추천합니다.

2019년 12월 23일 월요일

[책소개] 2019 제43회 이상문학상 작품집

윤이형외, 2019 제43회 이상문학상 작품집, 문학사상(2019)

새삼 소설의 주제나 글감도 여성작가의 약진이 느껴지는 한해였던 것 같습니다. 무언가를 가르치는 식이 아니라 담담히 하는 이야기를 듣도록 만드는 소설의 힘은 어떤 논문이나 연설보다 더 강력한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드네요. 수상작들의 전반적인 특징이 우리 사회의 한 단면 같이 느껴지기도 합니다.

"심사위원들이 대상 후복작의 전반적인 특징을 놓고 토론하는 과정에서 언급했던 소설적 경향들은 다음의 네가지 정도로 요약된다. 첫째, 기존 소설에서 서사적 갈등의 핵심이 되었던 정치적/사상적 이념성이 대부분 제거되고 있다는 점, 둘째, 고통스러우며 견디기 힘든 각박한 현실과 삶의 조건을 문제삼고 있는 작품이 많은 점, 셋째, 개인의 주관성에 갇혀 있는 주체의 내적 고뇌를 통해 자기 존재를 확인하고자 하는 경향이 강하다는 점, 넷째, 한국 사회의 변화 가운데 주목되는 다문화사회의 특징을 흥미로운 관점에서 접근하고 있는 작품이 많은 점 등이다."
-2019 43회 이상문학상 작품집, 문학사상(2019), 343면.


소설 중 인상적인 부분입니다.

희은은 그 죽음을 객관화할 수 없었다. 그런 죽음이 실은 지상의 모든 생명에게 평등하게 일어나고, 특별할 것이 없으며, 타인의 애도는 언제나 충분하지 않고, 따라서 아무리 부족하다 한들 그 하나하나의 위로를 겸손하고 감사하게 받아들여야 한다는 당연한 이치를 떠올릴 수 없었다.
-윤이형, 그들의 첫번째와 두번째 고양이, 2019 43회 이상문학상 작품집, 문학사상(2019), 32면

정민은 그 옛날의 건너편 건물 사건과 비슷한 피해의 경험이 모든 여성에게 있다는 사실은 알았으나 그것이 그저 간단한 말 한마디, 표현 하나로도 헤집어져 심하게 뒤흔들릴 수 있다는 사실은 몰랐다. 자신이 원하던 곳에 있게 된 뒤에야, 삶이 한없이 버겁기만 하다는 감정에서 한발짝 벗어난 뒤에야 그 문제를 다르게 바라볼 수 있었다.
-윤이형, 그들의 첫번째와 두번째 고양이, 2019 43회 이상문학상 작품집, 문학사상(2019), 76면

아이 혼자키우기는 젊은 시절 이미 한 번 넘어본 산이었다. 그러나 그때는 젊음 특유의 회복력과 반드시 더 나은 날이 오리라는 대책없이 질기고 바보같은 기대, 그리고 어찌 됐든 이건 내가 선택한 길이라는 쇳덩어리 같은 각오들이 하루의 틈마다 빼곡히 들어차 있어 앞이 안 보이는 전쟁통에도 넘어지지 않을 수 있었다는 걸 나는 뒤늦게 깨달았다.
-윤이형, 대니, 2019 43회 이상문학상 작품집, 문학사상(2019), 103면

나는 과잉된 비장함을 장착한 전형적인 90년대 키드였다. 사랑이 세상과 싸우는 가장 적극적이고 정치적인 방식이라고 믿었다. 내게 시간과 공간은 대중문화의 필터를 통해서만 감각되고 기억되었다. 내용을 다 이해할 수 없었지만<키노>를 사랑해서 들고 다녔고, 시네필은 아니었으나 영화 한 편 때문에 며칠 동안 잠을 못 자기도 했다. 언론고시를 준비하고 있었지만, 졸업하면 영화 관련 일을 하고 싶다고 몰래 생각하고 있었다.
-윤이형, 나의 문학적 자서전, 2019 43회 이상문학상 작품집, 문학사항(2019), 139면

신뢰할 만한 작가의 젠더인식으로 소설은 결혼제도가 야기하는 억압을 문제삼지만, 그 문제제기가 성별 대결 구도에 갇히는 오류를 피하는 데에서 제도의 억압 자체에 대한 메타적 시야를 확보하는 데에로 나아간다. 소설은 성별과 젠더의 대결로 환원되지 않는 위태롭고도 좁은 틈을 비집고 결혼이 아니라 결혼제도를 서사적으로 문제삼는데 성공한다.
-소영현, 더 나은 세계를 위한 사유(그들의 첫 번째와 두 번째 고양이와 윤이형의 작품세계), 2019 43회 이상문학상 작품집, 문학사항(2019), 162-163면




2019년 12월 20일 금요일

2019 내맘대로 무비 베스트 어워즈

2014년부터 계속되고 있는 역사와 전통의 "내맘대로 무비 베스트 어워즈" 입니다.

2014년 1위 : 엑스맨: 데이즈 오브 퓨처패스트
2015년 1위 : 스타워즈 : 깨어난 포스
2016년 1위 : 캡틴아메리카: 시빌워
2017년 1위 : 토르 라그나로크
2018년 1위 : 레디플레이어원

2019년에 관람한 개봉영화(넷플릭스 포함)중 "왓차" 앱에 기록한 평점에 따라 후보작과 짧은 평입니다

폴라(요나스 오케르룬드) 3.5/오 잔잔하게 잔인해
극한직업(이병헌) 5.0/1,000만 이상 충분하다
캡틴마블(애너 보든) 3.5/고양이가 웃음지뢰
트리플 프런티어(CJ 챈더) 4.0/헛 의외의 깔끔함
샤잠(데이비드 F 샌드버그) 3.5/오 클래식 틴 무비!!
어벤져스 : 엔드게임(루소 형제) 5.0/모건이 짱 귀여워!!!
존윅3: 파라벨룸(채드 스타헬스키) 3.5/개는 죽이지 마란 말이야
스파이더맨: 파프롬홈(존 왓츠) 3.5/불쌍한 맛으로 보는 스파이더맨
엑시트(이상근) 4.0 /와 야나두가 이걸!?!?!!! 성공시켰어
조커(토드 필립스) 4.5/병원에서 담배피면 이렇게 된다
날씨의 아이(신카이 마코토) 3.5/신해성Universe
신의 한수: 귀수편(리건) 4.0/바둑 잘두려면 일단 싸움을 잘해야 한다
포드v페라리(제임스 맨돌드) 4.0/배트맨형하고 맨손격투 잘하는 형 연기도 졸라 잘해
겨울왕국2(크리스 벅) 4.0/ Just do the next right thing!
6언더그라운드(마이클 베이) 4.0/어쩐지 폭발시키는 게 장인의 솜씨였어 베이형

역시 생각없이 봐도 재미있는 영화들 중심인 특징이 있습니다. 베스트 5를 뽑아보자면

5위 "6언더그라운드" 입니다.

며칠 전 주말에 넷플릭스에 올라와서 기대 없이 본 영화인데... 줄거리-개연성 뭐 이런가 다 개무시하고 카체이싱-총격-폭발 이것만으로도 충분히 팝콘무비의 최고봉을 찍을 만하다고 생각합니다. 역시 마이클베이형!!! 엄지척!! -아무 생각 없어야 함 주의-

4위 "엑시트" 입니다.

역시나 아무런 기대없이 본 영화였는데, 조정석과 윤아의 암벽등반솜씨가 의외로 사실적이고, 결국엔 살아남겠지만 그동안의 고군분투가 느껴졌을 뿐 아니라, 재난영화를 한국에서 상당히 말되게 만드는 솜씨를 확인할 수 있어서 좋았습니다. 물론 끝으로 갈수록 뭉텅이로 개연성을 상실한 것은 아쉬웠지만, 초반의 임팩트가 그만큼 상당했습니다. 에스오에스가 모르스부호로 따따따(S) 따-따-따-(O) 따따따(S) 인 것을 온국민에게 알린 것은 덤!!

3위 극한직업

관람을 마치고 나오면서 "이 영화는 천만간다" 바로 예언을 했던 바로 그 영화!!! 코미디 영화의 정석과 같이 5분에 한번씩 빵빵 터져줄 뿐 아니라, 말되는듯안되는 줄거리에 흔치 않은 반전까지 흠잡을 데가 없었습니다. 제가 외화를 방화보다 좋아하기 때문에 3위로 밀린 비운의 명작!!

2위 어벤져스 엔드게임

근 10년에 걸친 마블 시네마틱 유니버스의 대단원을 마블답게 마무리한 수작이라고 생각합니다. 영화를 TV 드라마 시리즈처럼 예습복습하면서 보도록 만든 영화마케팅의 최고봉이라고 할 수도 있겠고, 그 때문에 단일 영화가 아니라 그 이전의 영화들과의 연계가 팬심을 자극할 수 있어서 감동도 배가될 수 있었다고 생각합니다. 1세대 어벤져스에게 명예로운 퇴장을 그리고 2세대 어벤져스에 대한 숨은 떡밥을 심는 것도 잊지 않은 점도 마블다웠습니다.

1위 포드v페라리

이전의 시리즈물과의 연계를 떼어놓고, 영화 하나로 승부한다면, 크리스찬 베일과 맷 데이먼의 연기대결이 눈부시면서도, 카레이싱과 인생을 버무린 깔끔한 줄거리의 담백한 드라마 포드v페라리 가 올해 최고의 영화였던 것 같습니다. 보았을 때의 흥분같은 것은 오히려 엔드게임 쪽에 손을 들어줄 수 있을지 몰라도 뭔가 더 성숙한 이야기는 이쪽이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드는 건... 점점더 나이를 먹어가기 때문인 것 같네요.

11월에서 12월에 걸쳐 개봉한 겨울왕국2 도 재미있게 봤지만... 열광할 만한 이야기는 아니었고, 스타워즈 라이즈 오브 스카이 워커의 개봉이 예정되어 있지만, 만약 감동한다면 2020년 NMBA 로 바통을 넘겨야 겠습니다.

2019년도 저물어갑니다. 한해 무탈하게 마무리하시고, 2020년 새해를 맞이하시기를 기원합니다.



2019년 12월 17일 화요일

음주운전과 긴급피난


중앙일보에 "대리기사가 주차장 출구 차 세워 2m 음주운전했다면 무죄, 중앙일보 2019. 12. 16.자 기사" 라는 기사가 나서 살펴보았습니다.

대부분 이런 짧은 운전은 대리운전 기사와 시비가 붙은 다음 대리기사가 앙심을 품고 직접 운전할 수 밖에 없는 곳에 차를 세우기 때문에, 부득이 짧은거리 운전을 했다가 숨어서 보고 있던 대리기사가 신고해서 문제가 되는데, 이건도 대리기사가 신고했더군요. 1심이긴 하지만 어쨌든 위법성조각사유인 긴급피난이 인정되는 사안이라서 스크랩해 두었습니다.

이 기사를 찾으려다가 음주운전을 했지만 긴급피난이 인정된 다른 사례도 확인할 수 있었는데 약 1년 정도 전 기사입니다. "교통사고 위험 피하려 300m 음주운전한 건 '무죄', 중앙일보 2018. 5. 13.자 기사" 새벽에 제한속도 시속 70km의 편도 2차선 도로 중간에 세워진 차량을 300m 떨어진 주유소까지 몰고가서 112에 자신이 신고한 사안입니다.

반면에 대리기사가 새벽에 남의 가게 앞에 주차를 해 놓고 가버려서 가게에 영업방해가 될까 난감해진 차주가 30cm 운전하여 주차를 한 사안에서는 긴급피난이 인정되지 않은 사례도 있었던 것으로 보아서, 쉽사리 긴급피난을 주장할 수 있다고 생각하고 짧은 거리라도 운전하는 것은 현명한 선택은 아닌 것 같습니다.


2019년 12월 3일 화요일

심신미약 관련 형법개정


형법의 심신미약 관련조항이 개정되어서 2018. 12. 18.경 공포되면서 바로 시행되었네요. 근 1년 동안이나 이 부분을 모르고 있었다가, 국선변호인으로 지정된 상고심사건 1심 판결문에서 관련내용을 알게 되었습니다.

개정 전에는 심신미약 감경 조항 때문에 심신미약이 인정되면 필요적으로 감경을 해야 해서, 심신미약 취지의 주장을 하면 재판장이 "양형에 반영해 달라는 취지인지", "(필요적 감경을 해야 하는) 심신미약임을 주장하는 것인지"를 확인하곤 했는데요. 후자라면 판사는 판결문에 배척하는 이유를 적시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소액 벌금에 대한 불복을 하면서 심신미약 주장을 하는 경우가 많지 않기도 하지만, 많은 경우 심신미약의 주장을 통해서 감경을 받으나, 양형에 참작하는 것을 통해서 벌금을 낮추나 결과는 비슷한데, 판사의 판결문 작성 부담을 줄이기 위해서 정식재판 같은 경우 심신미약 주장을 하기보다는 양형에 반영해 달라는 취지라고 정리되는 경우가 많기는 합니다.

어쨌든 형법개정으로 심신미약은 필요적 감경사유가 아니라 임의적 감경사유에 불과하게 되었으므로, 심신미약상태의 범행에 대해서 법원이 감경을 인정하지 않아도 위법은 아니게 됩니다. 관련 형법조항입니다.

형법 제10조 제2항
②심신장애로 인하여 전항의 능력이 미약한 자의 행위는 형을 감경할 수 있다.  <개정 2018. 12. 1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