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년 12월 23일 월요일

[책소개] 2019 제43회 이상문학상 작품집

윤이형외, 2019 제43회 이상문학상 작품집, 문학사상(2019)

새삼 소설의 주제나 글감도 여성작가의 약진이 느껴지는 한해였던 것 같습니다. 무언가를 가르치는 식이 아니라 담담히 하는 이야기를 듣도록 만드는 소설의 힘은 어떤 논문이나 연설보다 더 강력한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드네요. 수상작들의 전반적인 특징이 우리 사회의 한 단면 같이 느껴지기도 합니다.

"심사위원들이 대상 후복작의 전반적인 특징을 놓고 토론하는 과정에서 언급했던 소설적 경향들은 다음의 네가지 정도로 요약된다. 첫째, 기존 소설에서 서사적 갈등의 핵심이 되었던 정치적/사상적 이념성이 대부분 제거되고 있다는 점, 둘째, 고통스러우며 견디기 힘든 각박한 현실과 삶의 조건을 문제삼고 있는 작품이 많은 점, 셋째, 개인의 주관성에 갇혀 있는 주체의 내적 고뇌를 통해 자기 존재를 확인하고자 하는 경향이 강하다는 점, 넷째, 한국 사회의 변화 가운데 주목되는 다문화사회의 특징을 흥미로운 관점에서 접근하고 있는 작품이 많은 점 등이다."
-2019 43회 이상문학상 작품집, 문학사상(2019), 343면.


소설 중 인상적인 부분입니다.

희은은 그 죽음을 객관화할 수 없었다. 그런 죽음이 실은 지상의 모든 생명에게 평등하게 일어나고, 특별할 것이 없으며, 타인의 애도는 언제나 충분하지 않고, 따라서 아무리 부족하다 한들 그 하나하나의 위로를 겸손하고 감사하게 받아들여야 한다는 당연한 이치를 떠올릴 수 없었다.
-윤이형, 그들의 첫번째와 두번째 고양이, 2019 43회 이상문학상 작품집, 문학사상(2019), 32면

정민은 그 옛날의 건너편 건물 사건과 비슷한 피해의 경험이 모든 여성에게 있다는 사실은 알았으나 그것이 그저 간단한 말 한마디, 표현 하나로도 헤집어져 심하게 뒤흔들릴 수 있다는 사실은 몰랐다. 자신이 원하던 곳에 있게 된 뒤에야, 삶이 한없이 버겁기만 하다는 감정에서 한발짝 벗어난 뒤에야 그 문제를 다르게 바라볼 수 있었다.
-윤이형, 그들의 첫번째와 두번째 고양이, 2019 43회 이상문학상 작품집, 문학사상(2019), 76면

아이 혼자키우기는 젊은 시절 이미 한 번 넘어본 산이었다. 그러나 그때는 젊음 특유의 회복력과 반드시 더 나은 날이 오리라는 대책없이 질기고 바보같은 기대, 그리고 어찌 됐든 이건 내가 선택한 길이라는 쇳덩어리 같은 각오들이 하루의 틈마다 빼곡히 들어차 있어 앞이 안 보이는 전쟁통에도 넘어지지 않을 수 있었다는 걸 나는 뒤늦게 깨달았다.
-윤이형, 대니, 2019 43회 이상문학상 작품집, 문학사상(2019), 103면

나는 과잉된 비장함을 장착한 전형적인 90년대 키드였다. 사랑이 세상과 싸우는 가장 적극적이고 정치적인 방식이라고 믿었다. 내게 시간과 공간은 대중문화의 필터를 통해서만 감각되고 기억되었다. 내용을 다 이해할 수 없었지만<키노>를 사랑해서 들고 다녔고, 시네필은 아니었으나 영화 한 편 때문에 며칠 동안 잠을 못 자기도 했다. 언론고시를 준비하고 있었지만, 졸업하면 영화 관련 일을 하고 싶다고 몰래 생각하고 있었다.
-윤이형, 나의 문학적 자서전, 2019 43회 이상문학상 작품집, 문학사항(2019), 139면

신뢰할 만한 작가의 젠더인식으로 소설은 결혼제도가 야기하는 억압을 문제삼지만, 그 문제제기가 성별 대결 구도에 갇히는 오류를 피하는 데에서 제도의 억압 자체에 대한 메타적 시야를 확보하는 데에로 나아간다. 소설은 성별과 젠더의 대결로 환원되지 않는 위태롭고도 좁은 틈을 비집고 결혼이 아니라 결혼제도를 서사적으로 문제삼는데 성공한다.
-소영현, 더 나은 세계를 위한 사유(그들의 첫 번째와 두 번째 고양이와 윤이형의 작품세계), 2019 43회 이상문학상 작품집, 문학사항(2019), 162-163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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