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자동차에서 도산사거리에 모터스튜디오를 만들었을 때 저걸 왜 만드는지 의아한 점이 없지 않았습니다. 건너편에 BMW매장이 대각선 건너편에 벤츠와 Ford 매장이 떡하니 자리잡고 있는 곳에 각층마다 자동차를 희안한 방식으로 매달아 놓은 전시관을 만들어 놓으면 현대자동차의 이미지가 달라질 것인가.. 이런 생각이 들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차를 가지고 출근할 때면 종종 눈길을 사로잡았지만 나와는 별 상관없는 곳이겠거니 하는 것이 솔직한 마음이었는데요. 지난 주에 가끔 출근길이나 출장이 있을 때 사용하던 그랜져 TG에서 이상 소음이 발생해서 이를 고치는 과정에서 햇수로 6년 이상이 된 TG의 교체 또는 와이프와 제가 1대씩 자동차를 운행할 필요성이 서서히 구체화되기 시작했습니다.
TG에서 저속운행중 나던 소음은 브레이크 라이닝이 닳아서 나던 소리였기 때문에 브레이크 라이닝 교체로 말끔히 해결되어서 TG의 교체 이야기는 쑥 들어갔지만 지방재판 또는 접견으로 일주일에 한두번씩 저도 자동차가 필요한 상황이 발생하면서 다시 2대의 자동차를 굴려야 할 것인지 진지하게 고민하게 된 것입니다.
제가 자동차를 선택할 때 고려하는 사항이 일반적인 남자 사람과 달리, "디자인"(철저히 주관적), "편의사양"(아이폰이 스무스하게 연결되느냐!!!), "승차감" 등에 쏠려있을 뿐 "연비"나 "조작성"을 크게 신경쓰지 않으므로, 연비와 폭발적인 가속성능이 특징인 BMW520d 나 골프와 같은 독일차에 비해 경쟁력이 떨어지는 현대차도 충분히 고려대상이 되었습니다.
이제 가족 구성원이 4명에서 더 이상 늘어나지 않고, 캠핑이나 야외활동에 취미가 없으므로 SUV나 밴이 선택에서 제외되고 나면 세단급에서 이미 타고 있는 그랜져급보다 하위 모델로 내려가지는 않으므로 현대자동차에서의 선택대상은 아슬란, 제네시스, 에쿠스 정도가 될 수 있습니다. 지금까지 전륜구동을 타봤으니 전륜구동인 아슬란은 제외, 운영하는 회사의 직원이 십수명은 되어야 에쿠스를 탈만하다고 할 것이니 남은 것은 제네시스 뿐이었습니다.
그래서 시승할 방법을 찾다가 현대모터스튜디오 앱을 다운받았는데, 앱으로 시승신청을 하는 것이 아니라 앱에서 전화번호를 알려줘서 유선으로 어제 시승신청을 하고 오늘 현대모터스튜디오에 가서 40분 정도 제네시스 G330 을 시승하고 왔습니다.
현대모터스튜디오에 차를 몰고 가면 발렛파킹 서비스로 차를 주차해 줍니다(2시간 무료, 2시간 이후 주차료 징수). 시승예약시간까지 조금 시간이 남아서 5층 갤러리부터 내려오면서 구경을 하였습니다. 갤러리에는 전시용/시승용 차량이 전시되어 있는데, 운전석에 앉아서 시동을 거는 것을 제외한 나머지 장치를 시험해 볼 수 있습니다.
시승은 간단한 주의사항과 과태료 등 부과시 비용부담, 사고시 보험처리를 위해 일정액의 부담가능성이 있다는 내용이 포함된 서류를 작성하고 운전면허증을 보여주고 나서 직원분이 조수석에 타고 시작되었습니다. 코스는 도산사거리에서 올림픽 대로로 나갔다가 코엑스쪽으로 빠져나와 다시 돌아오는 코스였는데, 일요일 오후였음에도 불구하고 차가 많아서 제대로 속도를 내보지는 못하고 올림픽대로에서 빠져나와 시내운전으로 총 40분 정도 몰아봤습니다.
일단 디자인은 전시되어 있던 브라운(외부)/아이보리(내부) 차량을 자세히 볼 수 있었는데 1세대보다는 훨씬 제 개인적인 취향에 맞았습니다.
편의사양은 이미 2010년형 TG부터 아이폰 블루투스 연결 등에 아무런 문제가 없었고, 이제는 아예 대놓고 시거잭 필요없이 USB케이블로 바로 자동차와 연결해서 충전이 가능하도록 해 놓았으므로 OK, 네비게이션도 업그레이드되었지만 이미 조작하던 네비게이션과 크게 달라지지 않아 불편함은 없어 보였고, HUD도 햇빛이 매우 쎈 상태에서도 시인성이 괜찮았습니다. 재미있었던 것은 주행 조향보조 시스템이었는데 일정 시속 이상에서 차선을 깜박이 없이 벗어나면 핸들에 진동을 주던데요. 우리나라 차선은 너무 좁아서 차선을 종종 밟는 저로서는 움찔하긴 했지만 깜박이 키는 버릇 들이는 데 좋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시승차에도 파노라마선루프가 달려 있어서 주행중 열고 닫아보았습니다. 선루프가 달려 있어도 선글라스 수납함이 있어서 이제 선루프 달아서 안경 넣을 데가 없었던 것은 옛날 이야기가 되었구나 하는 격세지감도 느꼈습니다.
승차감이 가장 문제였는데, 제네시스는 현재 제가 몰고 있는 TG보다 훨씬 무겁다는 느낌이었습니다. 에쿠스와 같은 급인 체어맨을 움직이는 느낌과 유사한 육중한 바디감이 느껴졌는데, NF소나타를 몰다가 TG를 몰았을 때 느꼈던 무게감보다도 더 무거운 듯 합니다. 에쿠스와 같은 차체를 쓰는데다가 독일차들이 알루미늄바디로 경량화/연비절감을 최우선으로 하는 느낌이라면 현대차는 그에 아랑곳없이 무거운 철제 프레임을 사용하기 때문에 차가 무거운 것은 어쩔 수 없을 것이라고 생각했지만 가장 아쉬웠던 점 중 하나입니다. 또 TG와 비교해서 달랐던 점 중 하나는 창문이 생각보다 크지 않다는 것입니다. 뒷좌석에 앉아본 분의 평도 창문이 약간 작아서 대형차(에쿠스, 체어맨)에 비해서는 답답하다고 합니다.
연비는 현대차다웠습니다. 현재 TG의 트립컴퓨터에서 보여주는 평균연비는 시내주행시 리터당 6-8km 입니다. 고속도로 주행을 하고 나면 리터당 15-6km까지 향상되기는 하지만 시내로 들어오면 도로아미타불이지요. 그런데 주행거리 560km 정도였던 제네시스 G330 시승차는 제가 탈 때 리셋을 하지 않아 이전 시승자와 함께 평균연비를 계산하였을 것을 감안하더라도 매우 낮은 연비를 보여주었습니다. 시승 내내 리터당 4.1km - 4.2km 정도였으니까요. 심지어 시승 후반에는 기어의 모드를 노멀모드에서 스포츠모드로 바꾸고 오르막에서 엑셀을 좀 밟아서 속도를 내 주었더니 연비가 향상되는 놀라운 모습을 보여주었습니다. 음 상위등급으로 가더라도 5년전 차와 유사한 연비가 나왔으면 좋겠다는 기대는 살짝쿵 접기로 하였습니다.
제가 판단할 수 있는 조작성이라고 해야 엑셀을 밟는 순간과 차가 치고 나가는 순간의 차이가 미세한 정도로 판단하는 소위 "반응성"이 좋은가 정도가 아닐까 싶습니다. 제 차는 아니지만 BMW528i 의 조수석에 종종 앉을 기회가 생기는데 이 차의 장점이 바로 시내주행의 경우에도 리터당 10km가 넘는 연비와 엑셀을 밟을 때 바로 튀어나가서 조수석에 앉은 사람의 몸을 좌석에 밀착시켜주는 느낌이 뛰어나다는 것입니다. 특히 스포츠모드를 작동시키고 엑셀을 밟으면 약간 무서운 생각마저 들게 해 주거든요. 이건 고속도로에서 풀악셀을 밟을 수 있을 때 시험을 해봐야 할 것 같았는데, 시승은 차가 꽉꽉 막힌 시내에서 밖에 할 수 없어서 풀악셀을 거의 밟을 수 없었습니다. 약간의 오르막길에서 조금 밟아 본 정도로 판단해 보면, 스포츠모드로 설정을 해 놓으면 노멀이나 에코모드보다는 엑셀에 잘 반응하지만, 엑셀밟기가 무섭게 튀어나가는 느낌은 받기 어려웠습니다. 물론 "반응성"좋은 차를 타려면 MINI 나 골프를 타면 될 것이고 그 정도의 반응성을 요구하는 것은 당연히 무리일 것이며, 이정도 크기의 차가 그런 반응성이 있으면 스포츠카라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어쨌든 예상을 뛰어넘는 반응성을 찾을 수는 없었습니다.
전체적인 느낌은 예상했던 대로의 육중한 바디와 깔끔한 디자인 및 편의사양, 역시 예상대로 안습인 연비와 적당한 반응성 정도라고 할 수 있겠네요. 패밀리카+업무상 중장거리 운행이라는 목적을 달성하는 데에 문제는 없어 보입니다.
어쨌든 시승을 하면서 얻어들은 팁은 고속운전 시승을 하고 싶으면 일요일 오전 일찍 또는 오후 늦게 하는 것이 좋다는 것입니다. 현대모터스튜디오는 추석, 설날 등의 휴일을 제외하고는 저녁 9시까지 영업하기 때문에 적당한 시간을 예약하여 시승을 해볼 수 있다고 합니다. 한사람이 하루에 시승할 수 있는 것은 2대까지라고 하니 혹시 현대차를 모터스튜디오에서 시승할 계획이 있으신 분은 참고하시기 바랍니다.
현대차의 최근 라인업을 구경하고, 커피도 마신 후(갤러리의 커피는 무료/2층 폴바셋은 유료), 구경을 마친 후 폴바셋에서 아이스크림 하나 사먹는 것도 주말 오후 반나절을 의미있게 보내는 방법 중 하나일 것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