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년 5월 30일 금요일

물권법 제8판 출간



우연히 곽윤직 저 물권법 제8판이 12년만에 출간된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더이상 새로운 곽서는 못보나 하였지만 김재형 교수님이 곽윤직-김재형 저로 출간을 하셨네요. 제 관심분야인 만큼 사 놓아야 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물권법 교과서 초판은 1963. 3. 30., 전정판 1975. 5. 20., 전정증보판 1980. 9. 20., 재전정판 1985. 6.15., 신정판 1992. 4. 20., 신정수정판 1999. 8. 10., 제7판 2002. 11. 15., 제8판 2014. 4. 15. 출간이니 제가 사서 공부하였던 것은 1992. 4. 20. 출간된 신정판이었겠네요.

김재형 교수님의 머리말을 옮겨봅니다. 50년을 이어온 교과서가 앞으로도 계속해서 출간되기를 바라마지 않습니다.

『물권법』 교과서 초판이 출간된 것은 1963년이다. 『민법강의』 시리즈 가운데 맨 처음 나온 책이다. 이 책은 그 어떤 책보다도 선생님의 학문적 열정이 오롯이 담겨있다고 할 수 있는데, 민법학계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교과서가 되었다. 특히 물권변동론은 학계와 실무계에 지대한 영향을 끼쳤다. 
이번에 내는 제8판(전면개정)에서는 12년 전 제7판이 나올 무렵부터 쌓여 있던 학설과 판례를 반영하고 그 동안 제·개정된 법률에 따라 내용을 수정하였다. 또한 새로운 세대의 학생들도 쉽게 읽을 수 있도록 한자를 모두 한글로 바꾸었으며 표현을 간결하고 이해하기 쉽게 하려고 노력하였다.
이 개정판을 내는 작업은 민법총칙 교과서와 동일한 방식으로 하였다. 그런데 물권법에는 수정해야 할 내용이 많았다. 그 이유는 무엇보다도 물권법에 관한 민사특별법이 크게 바뀌었기 때문이다. 부동산등기법이 전면적으로 개정되었고, 집합건물의 소유 및 관리에 관한 법률, 가등기담보 등에 관한 법률, 공장 및 광업재단 저당법, 자동차 등 특정동산 저당법 등 여러 법률이 개정되었다. 2010년에는 동산·채권 등의 담보에 관한 법률이 제정되어 동산담보권과 채권담보권이 새로운 물권으로 인정되었으며 담보등기제도가 새롭게 도입되었다. 1997년 금융위기를 겪은 이후 금융거래를 뒷받침하는 담보법에 관한 관심이 높아졌는데, 이것이 지난 10여 년 동안 담보법에 관한 각종 법률의 제·개정으로 이어졌다고 볼 수 있다. 그리고 전원합의체 판결이 가장 많이 나온 것도 물권법 분야이다. 그 밖에 물권법에 관한 중요한 판례가 많이 나왔다. 그리하여 이번 판에서는 제·개정된 법률과 새로운 판례를 대폭 보완해야 했다.
이제 독자의 몫이다. 이 책이 법을 이해하고 법적 사고를 명료하게 하는 데 조금이나마 도움이 된다면 더할 나위 없는 기쁨이 될 것이다. 미흡한 부분에 관해서는 다음 개정 작업을 기약하고자 한다. 

2014년 4월
김 재 형

2014년 5월 29일 목요일

변호사단체

기본적으로 법에 따라 변호사 자격증을 발급하고 모든 변호사가 의무적으로 가입하여야 하는 변호사단체로 대한변호사협회(대한변호사협회 홈페이지)가 있습니다. 현재 역삼동 823 풍림빌딩 18층에 주소를 두고 있고, 회장은 위철환 변호사입니다. 대한변협신문을 발행하고 있습니다.

대한변호사협회와 별도로 각 지역 변호사들의 지역변호사회가 있습니다. 예컨대 서울지역의 변호사들은 서울지방변호사회(서울지방변호사회 홈페이지)에 경기지역 변호사들은 경기북부지방변호사회 또는 경기남부지방변호사회 등에 소속되는 것입니다. 지방변호사회도 법에 의해 당연가입되며, 개업지역을 옮기는 경우에는 각 지역 변호사회로 소속을 옮기게 됩니다. 현재 서울지방변호사회 회장은 나승철 변호사입니다. 서울지방변호사회보를 발행하고 있습니다.

의무가입 단체 외에 가장 유명한 변호사단체로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이 있습니다(민변 홈페이지). 주소는 서울시 서초구 반포대로 30길34(서초동, 신정빌딩) 5층입니다. 진보성향을 가지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으며, 시국사건의 변론, 각종 인권 관련 이슈가 있을 때 피해자들을 대리하거나 변호하는 등의 활동을 합니다. 1988년 "권위주의에 저항하는 사람들을 보호하고 인권 상황을 개선하는 것을 목표"로 하여 설립되었습니다.민주사회를 위한 변론 이라는 간행물을 발행하고 있습니다. 현재 회장은 한택근 변호사입니다.

시민과 함께하는 변호사들(시변 홈페이지) 이라는 단체도 있는데요. 2005년 이석연 변호사가 150명의 회원으로 창립하였는데, 뉴라이트계열으로 분류됩니다. 민변에 대척점에 있다고 할 수 있겠습니다. MB 정부시절 정부를 대변하는 의견을 피력하고 소송을 하는 등 정권의 대리인 역할을 하고 있다는 비판을 받았습니다.

헌법을 생각하는 변호사 모임 이라는 단체가 있으며 1998년 보수 성향의 변호사들이 모여 설립하였습니다. "헌법정신의 수호를 기치로 삼아 민주적 기본질서를 지키기 위한 연구, 저술활동 및 사회운동"을 하고 있으며 200여명 정도의 변호사가 참여하고 있습니다. 주요 회원으로 김기춘, 홍준표 등이 있습니다.

최근 고등학교 동문 선배님이신 변호사님께서 민변회장으로 선출되셨다는 뉴스를 전해듣고 나서 변호사단체에 대해서 찾아보았습니다. 임의가입 변호사단체 중에는 민변이 가장 오래되었고, 인권 관련한 활동이 활발하다고 볼 수 있겠습니다. 한택근 변호사님의 회장 취임을 축하드립니다.


2014년 5월 27일 화요일

진로의 날 특강


*사진은 2000년대 초반 "프로는 아름답다"는 말을 사회 전반으로 유행시키신 이영애 님이십니다.

큰놈 학교에서 가정통신문이 와서 읽어보니 진로의 날 직업인을 초대한다고 참석의향이 있으면 답신을 해달라고 하여, 큰놈 반에 가서 일일교사 해주면 되는 것이겠거니 하고 가정통신문에 싸인을 해서 보낸 것이 지난달의 일입니다. 이번달 초에 강의시 주의할 체크리스트와 함께 메일이 와서 간단히  직업소개용 10페이지짜리 텍스트 only ppt 하나 만들어 보내고, 지난주 금요일에 가서 일일교사를 하고 왔습니다. 그런데 대상이 2-3학년이라서 아들놈한테 강의하는 일은 벌어지지 않았네요.

10페이지 정도 밖에 안되는 내용이어서 넉넉히 끝낼 줄 알았는데... 준비해 간걸 이야기하고 나니 수업시간이 다 되어서 학생들이 뭐 저런 일일교사가 있는지 의아해 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수업은 변호사가 무슨 일을 하는가, 변호사가 되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 변호사의 일상은 어떠한가, 변호사가 되려는 학생에게 어떠한 조언을 해주고자 하는가 등등의 기본적인 내용들이었습니다. 그 중에 변호사가 "프로페셔널" 소위 전문직 이라는 것이 있었는데요. 프로페셔널의 유래에 대해서 한 판사출신 변호사님이 쓰신 글(프로페셔널과 빌어먹기)에서 나온 내용을 간단히 소개하였는데, 여기에도 잠깐 인용하도록 하겠습니다.

"그 벌이 중에 다소 특이한 것이 있다. 일컬어 프로페셔널인데, 이것은 본래 서양이 밟아온 역사의 산물이다. 신사가 할 공부가 네 개인데, 신학, 철학, 법학, 의학이며, 신사가 할 직업이 네 개인데 성직, 교수, 법률가, 의사라는 것이다. 프로페셔널은 이를테면 이런 자리다. 공부 못하는 학생이 선생을 나무라거나 원망하지 않는다는 것, 다시 말해서 교육 서비스의 수요자가 되어 돈을 내는 학생이 그 공급자가 되어 돈을 받는 선생에게 외려 자기가 공부 못한다며 죄송하다고 생각하는 것, 이런 짜임새가 바로 프로페셔널의 특권이다. 성직자나 교수나 법률가나 의사는, 그 역무의 소비자에게서 야단을 맞지 않는다. 외려 신도나 학생이나 의뢰인이나 환자를 야단치는 일이 많다. 내게 밥을 먹여주는 사람들과 부딪히면서도 더러운 꼴일랑 보지 않아도 되는 것이다."

프로페셔널은 서비스를 공급자이면서도 여타 서비스의 공급자와 달리 서비스의 수요자로부터 존경을 받는 직업이라는 것입니다. 이러한 직업에 종사하게 된 것을 기쁘게 생각하고, 다른 사람을 도울 수 있는 직업이므로 감사하게 생각할 일이고, 다른 서비스 공급자에 대하여 우월의식을 갖는 것을 경계하자는 것이 위 글의 취지였던 것 같습니다.

글쎄요. 김명민같이 깔쌈한 변호사가 아닌 뚱땡이 점빵 변호사의 어눌한 말을 듣고 변호사가 되고 싶은 친구가 생겼을지 궁금하네요. ㅎㅎ

2014년 5월 26일 월요일

[소개] 네스프레소


조지클루니의 작업보다 혼자 커피를 맛보는 시간이 소중하다는 취지의 네스프레소 광고입니다. 사무실 개업하면서 다른 것은 별로 신경쓰지 않았는데 두가지는 꼭 내맘대로 해야겠다고 생각했던 것이 있었습니다. 그중 하나가 아이맥을 사무실 컴으로 쓰는 것이었고 다른 하나가 사무실에서 네스프레소 캡슐커피를 먹겠다는 것이었습니다.

물론 제 커피입맛도 믹스커피를 벗어난 것이 10년이 될까말까한 정도이고, 요새도 스트레스 받으면 커피든 뭐든 단거로 해결하는 나쁜 버릇이 있긴 하지만 출근하고 나서 네스프레소 캡슐커피 한잔은 잔잔한 일상이 된 것 같습니다.

사실 네스프레소보다 약간 더 싼 기계가격과 약간 더 싼 캡슐의 "네스카페 돌체구스토"도 먹어본 적이 있었습니다. 네스카페 돌체구스토는 카페라떼를 만들기 위해서 별도의 우유거품 만드는 기계(?)를 사야 하는 네스프레소보다 우유캡슐을 한번 더 넣어주면 되는 좋은 장점이 있긴 한데 "네스프레소"와 같이 준명품급 포지셔닝을 하는 데에는 실패한 게 아닌가 생각이 듭니다.

사무실에는 네스프레소 픽시 라는 모델을 쓰고 있으며, 개업선물로 받은 캡슐은 6개월정도 만에 다 먹고 다시 한번 주문해서 먹고 있는데 나름 만족스럽습니다. 덕분에 왠만해서는 커피숍에 가서 5000-6000원 하는 커피를 마시는 일이 현저히 줄었기 때문에 초기비용은 뽑은 게 아닌가 혼자 위안을 삼고 있습니다. 요새는 캡슐을 대량으로 독일 같은 곳에서 직구하는 게 더 싸다고도 하는데 아직 직구까지는 하지 않고 있네요. 원두커피를 매일 먹고 싶지만, 갈아서 내려먹는 귀찮음은 견딜 수 없는 분들께 추천합니다. 뭐 네스프레소로부터 받은 것은 아무것도 없지 말입니다 ㅎㅎㅎ

P.S. 여름에 에스프레소 샷만 얼음넣은 컵에 넣고 차가운 물 부어 아이스 아메리카노 만들어 마시는 맛도 괜찮네요. 여러 모로 만족입니다.



2014년 5월 23일 금요일

로펌의 파트너 변호사는 근로자인가


*사진은 드라마에서 변호사로 출연중인 배우 김명민으로 아래 내용과 직접 관련은 없습니다.

로펌, 법무법인은 변호사들이 모여서 만든 회사입니다. 로펌은 주식회사의 형태로 만들 수 없고, 변호사인 조합원들의 조합과 유사한 형태로 만들게 되는데, 로펌의 지분을 갖는 변호사를 통상 "파트너",  "파트너 변호사"라고 합니다. 그리고 이 파트너에 대응하여 로펌으로부터 급여를 받고, 파트너 변호사의 지시를 받아 업무를 수행하는 변호사는 "어쏘시에이트", "어쏘 변호사" 또는 "고용변호사"라고 합니다. 대형 로펌의 경우에는 파트너들을 세분화하여 "에쿼티 파트너(Equity Partner)" 또는 "지분파트너"와 "인컴 파트너(Income Partner)"로 나누기도 합니다. 지분파트너는 회사로부터 배당을 받고, 인컴 파트너는 급여를 받는 점이 가장 큰 차이점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인컴 파트너는 특별이 지분이 없다는 점에서 지분파트너와 다르고, 파트너로서 사건수임과 업무지시 측면에서 관리감독을 받지 않는 점에서 고용변호사와 다르게 됩니다. 쉽게 말해 지분파트너와 고용변호사의 중간정도의 지위를 갖는 변호사라고 볼 수 있겠습니다.

변호사는 연차가 낮은 고용변호사라고 하더라도 대외적으로 의뢰인을 단독으로 대리하여 업무를 처리하며, 업무시간의 사용에 큰 재량을 가지고 있어서, 과연 로펌에 고용된 변호사라고 하더라도 근로기준법상 보호를 받는 "근로자"라고 할 수 있는지 문제가 되어 왔습니다. 사실 근로자의 날이라고 하더라도 관행상 변호사는 쉬지 않고 근무를 하며(법원, 검찰이 일을 하므로 변호사도 당연히 일을 하는 것이 자연스럽습니다), 근태감독 등의 측면에서 살펴볼 때 고용 변호사라고 하더라도 근로자로 볼 수 있는지에 대해서는 달리 볼 여지가 없었던 것은 아닙니다. 그러나 우리 법원은 로펌에서 퇴직한 고용 변호사가 퇴직금을 청구한 소송에서 고용 변호사의 "근로자성"을 인정한 바 있습니다(대법원 2012. 12.  13. 선고, 2012다77006 판결).

그렇다면 파트너의 경우에는 근로자성이 인정될 수 있을까요. 부정하는 것이 우리 법원의 입장으로 보입니다. 최근 국내 유수의 로펌에서 파트너로 근무하던 변호사가 퇴직 후에 로펌에 퇴직금을 청구하는 소송에 대한 항소심 판결이 있었는데 항소심법원은 "파트너 변호사는 로펌 운영에 직접 관여하지 않더라도 사건 수임과 근무시간에 있어 로펌의 관리감독을 받지 않고 수입도 로펌 수익에서 분배받기 때문에 일반 변호사와 같이 임금을 목적으로 종속적인 관계에서 근로를 제공하는 근로자로 볼 수 없다"는 취지로 패소 판결을 하였습니다(서울고등법원 2014. 5. 9. 선고 2013나2012615 판결). 위 변호사가 근무하던 로펌에서는 운영위원회를 두고 지분파트너 중 등기된 구성원변호사나 운영위원인 변호사만 로펌운영에 관여하였는데,  소송을 제기한 변호사는 등기된 구성원변호사나 운영위원이 아니었기 때문에 근로자에 해당한다고 주장하였던 것으로 보입니다(대개 등기한 변호사를 에쿼티 파트너/지분파트너 라고 하는데, 위 로펌의 경우에는 등기하지 않은 경우에도 파트너 승진을 하면 지분파트너라고 하는 모양입니다). 지인인 변호사가 우연한 기회에 위 소송의 당사자였던 변호사분의 말씀을 들어보니 "해당 법무법인에는 지분을 가진 파트너가 없고 모두 일을 해야 돈을 받는 노무 파트너일 뿐이며, 정해진 기본급+인센티브(수임액에 따라 정해진 연공서열로 가중감경할당받는)를 받고 있어서 어쏘랑 다를 바가 없고, 인센티브를 운영위원회가 결정하므로 실질적으로 운영위원이 아닌 파트너는 근로자에 불과하다"고 하셨다고 합니다. 위 변호사님의 주장에 따르면 자신은 지분등기를 하지 않은 소위 인컴파트너의 지위에 있을 뿐이어서 고용변호사와 다를 바 없다는 것으로 보이는데, 법원은 이러한 주장을 인정치 않고 "수임사건 처리의 독자성, 고용변호사에 대한 업무위임가능성" 등을 고려하여 위 변호사를 지분파트너로서 동업자에 해당하는 것으로 보고 근로자성을 부정한 것으로 보입니다.

그런데  the lawyers 에 실린 기사(Clydes to face whistle-blowing claim after Supreme Court holds LLP members are protected)를 보니,영국 대법원이 "로펌의 지분파트너라고 하더라도 내부고발법상 내부고발을 한 근로자에 대한 보호를 받는 근로자로서 인정할 수 있다"는 취지로 판시하였음을 알 수 있네요. 퇴직금 등 임금 청구소송에서 근로자성을 인정하는 것과 동일시할 수는 없어 보이지만 사안에 따라서 로펌의 지분파트너의 근로자성이 항상 부정되는 것만은 아니라고 볼 근거가 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2014년 5월 22일 목요일

에네르겐


동아오츠카에서 나오는 에네르겐 이라는 스포츠음료입니다.
거의 광고를 하지 않는데,  단골 골프연습장의 2층, 3층 자판기(1층 자판기에는 없습니다)에 있는 걸 먹다가 나름 괜찮아서 요즘은 연습장에 가면 꼭 먹고 있습니다. 자판기에서는 1,000원인데, 24캔짜리를 인터넷에서 구매하면 하나에 600원꼴이네요(배송료 포함).

맛은 게토레이보다 약간 진한듯한 맛이고, 무엇보다 가격대비 용량이 만족스럽습니다. 콜라를 먹기에는 탄산이 부담스럽고, 게토레이나 파워에이드를 찾을만큼 미친듯이 목마른 경우가 아닌 경우에 먹을만한 음료로 추천해 봅니다. 참고로 레드불이나 핫식스같은 각성효과는 없는 것 같습니다.

2014년 5월 21일 수요일

드라마 '별그대' 표절시비 억대 소송으로 비화



드라마 '별그대' 표절시비 억대 소송으로 비화 법률신문 2014. 5. 20.자 기사


만화 '설희'의 작가 강경옥씨가 서울중앙지방법원에 지난 2월 종용한 드라마 '별에서 온 그대' 작가 박지은씨와 HB엔터테인먼트를 상대로 3억원의 지급을 구하는 손해배상청구소송을 제기했습니다. 소송을 제기한 당일 제기한 사실이 보도된 것으로 보아 아마도 강경옥씨측에서 소송제기사실을 언론에 알린 것으로 보입니다. 강경옥씨측은 만화 '설희'와 드라마 '별그대'가 줄거리, 주인공의 신체적 특징, 등장인물 사이의 관계, 사건 전개과정 등의 측면에서 매우 유사하여, 작가 박지은씨 등이 강경옥 작가의 지적재산권을 침해하였다고 주장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강경옥씨는 이미 20년도 전부터 유명한 만화가였습니다. 순정만화를 그리 즐기지 않는 저조차 신일숙 작가의 '아르미안의 네딸들'과 강경옥 작가의 '별빛속에'는 다 보았을 정도이니 강경옥 작가를 우리나라 순정만화계의 대표적인 작가라고 해도 될 것 같습니다. 강경옥 작가로서는 드라마 '별그대'를 자신이 발굴해서 작품화해낸 설정에 약간씩만 변형을 가하여 "동일한 작품의 드라마화"라고 할 수는 없지만, 어쨌든 자신의 저작물이 표절된 것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을 것 같습니다.

위 소송에서 중요한 이슈가 될 것으로 보이는 것이 '아이디어/표현 이분법'(idea expression dichotomy) 입니다. 하나의 저작물을 구성하는 요소를 아이디어와 표현으로 나누어, 그 중 저작권의 보호는 표현에만 미치고 소재가 되는 아이디어에는 미치지 아니한다는 원칙으로, 미국의 법원에서 저작권침해 소송의 판례를 통하여 발전해 온 법리이며, 우리나라에서도 저작물의 보호범위를 정하는 기본 원리로서의 역할을 하고 있습니다.

아이디어는 보호하지 아니하고 표현만을 보호한다는 명제는 외관상 명쾌하기는 하지만 실제로 구체적인 사건에서 아이디어와 표현을 구분하는 것은 쉽지 않습니다. 대부분의 저작물에서 아이디어는 표현과 분리되어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표현에 내재되어 있거나 혼합되어 녹아 있기 때문입니다. 저작물의 어느 부분이 아이디어인지 표현인지를 구분하는 것은 법원의 역할인데, 우리 법원은 이 두가지를 구별함에 있어 법리적으로 판단하기 보다는 정책적으로 저작권의 보호를 줌으로써 창작의욕을 고취하여야 할 것으로 판단되는 부분은 표현이라고 하고, 만인 공유의 영역에 두어 누구라도 그것을 자유롭게 사용할 수 있도록 판단되는 부분에는 이를 아이디어라고 하여 저작권의 보호를 부인하는 것이 실무적 관행입니다.

구체적으로 개념(concept), 문제의 해법(solution), 창작의 도구(building blocks) 등을 포함한 저작자의 사상이나 감정을 아이디어라고 하고, 아이디어를 작품 속에서 구체화하고자 하는 저작자의 노력이 저작권의 보호를 받는 표현이라는 형태로 발현된다고 할 수 있는 것입니다. 그 구별은 사안에 따라 다르지만(케바케 ㅡㅡ), 추상성과 구체성, 독창성과 비독창성, 유일성과 다양성, 소재성과 비소재성 등이 일응의 구별기준이 됩니다.

아이디어와 표현에 관하여 대법원은 "저작권의 보호대상은 학문과 예술에 관하여 사람의 정신적 노력에 이하여 얻어진 사상 또는 감정을 말, 문자, 음, 색 등에 의하여 구체적으로 외부에 표현한 창작적 표현형식이고, 표현되어 있는 내용, 즉 아이디어나 이론 등의 사상 및 감정 그 자체는 설사 그것이 독창성, 신규성이 있다고 하더라도 원칙적으로 저작권의 보호대상이 되지 않는 것이므로, 저작권의 침해여부를 가리기 위하여 두 저작물 사이에 실질적인 유사성이 있는가 여부를 판단함에 있어서도 창작적인 표현형식에 해당하는 것만을 가지고 대비하여야 할 것이며, 소설 등에 있어서 추상적인 인물의 유형 혹은 어떤 주제를 다루는 데 있어 전형적으로 수반되는 사건이나 배경 등은 아이디어의 영역에 속하는 것으로서 저작권법에 의한 보호를 받을 수 없다"고 판시하고 있습니다(대법원 2000. 10. 24. 선고 99다10813 판결, 일명 '까레이스키 사건'). 지난 번 [책소개] 비명을 찾아서 포스팅에서 잠깐 언급했었는데, 복거일 작가가  2009로스트메모리즈라는 영화의 제작사에게 저작권침해를 이유로 소송을 제기했지만 법원은 영화가 따온 것은 '비명을 찾아서'라는 소설의 아이디어이지 표현이 아니라는 이유로 기각한 것도 이러한 입장의 연장선상에 있는 것이 아닌가 합니다.

저는 '설희'라는 작품도 심지어 '별그대'도 드라마 전체를 다 본 것이 아니라서 섣불리 판단을 내리기 어려울 것 같기는 하나, 강경옥 작가측이 드라마 별그대의 작가가 자신의 작품에서 가져다 쓴 것이라는 점, 그리고 그것이 아이디어가 아니라 구체적인 표현이라는 점을 입증하는 것이 이 소송 승패의 관건이 될 것으로 보입니다. 귀추가 주목되는 사건입니다.

* 참고 : 오승종, 저작권법 3판, 박영사(2013), 73-84면(이 글의 네번째 단락부터 여섯번째 단락까지는 위 책 중 주요부분을 발췌/수정인용하는 방식으로 작성되었습니다).


2014년 5월 20일 화요일

기존채무의 지급과 관련하여 어음이 수수된 경우

어음법을 공부하면서 교과서에는 잘 정리되어 있지 않은데,  요약서/참고서에서 일목요연하게 정리한 것이 훨씬 잘 정리된 것으로 느껴졌던 것 중에 "기존채무의 지급과 관련하여 어음이 수수된 경우"에 관련한 설명이 있었습니다. 오랜만에 찾아본 김에 정리해 봅니다.

어음채무의 당사자 사이에서 기존채무의 지급과 관련하여 어음이 수수된 경우, 어음관계가 원인관계에 어떠한 영향을 미치는지 문제됨

어음수수가 어떠한 의미를 갖는지는 당사자의 의사에 따라 결정되어야 할 문제이나, 당사자의 의사가 불분명한 때에는 다음과 같이 추정됨

- 자기앞수표와 같이 현금의 대용물로 평가되는 것은 "지급에 갈음하여"로 추정
- 당좌수표나 제3자방지급어음, 어음채무자가 어음발행인이 아니어서 복수의 어음채무자가 존재하는 경우 "지급을 위하여"로 추정
- 기타의 경우 "지급을 담보하기 위하여"로 추정

지급에 갈음하여 - 한마디로 어음으로 대물변제가 일어난 것이어서 기존채무는 소멸하고 어음이나 수표채무만 남음

지급을 위하여 - 기존채무와 어음채무는 병존
어음채권은 그 자체의 소멸원인에 의해서만 소멸하며 원인채권의 소멸에 의하여 영향을 받지 아니하나, 원인채권은 어음채권이 이행되게 되면 함께 소멸함
권리행사시 어음채권자는 어음채권을 먼저 행사하여야 하고, 채권자가 원인채권을 먼저 행사할 경우 채무자는 채권자의 청구를 거절하면서 어음상 권리를 먼저행사하든지 어음상 권리를 포기하여 어음을 반환할 것을 구할 권리(거절권)가 있음

지급을 담보하기 위하여 - 어음채무와 기존채무는 병존한다는 점에서 지급을 위하여와 동일. 다만, 권리의 행사에 관하여 "지급을 위하여"와 차이가 발생함
채권자는 자신의 의사대로 양 채권을 임의로 행사할 수 있으나, 채무자는 채권자에게 어음을 반환하여 주도록 요청할 수 있고 어음의 상환과 동시이행으로만 원인채무의 이행을 하겠다고 동시이행항변을 할 수 있음

"지급을 위하여"와 "지급을 담보하기 위하여" 어음이 수수된 경우의 다른 점으로 중요한 것은 지급을 위하여 수수된 경우 원인채권의 이행기가 도래하여도  채권자가 어음채권을 먼저 행사하지 아니하여 원인채권의 이행을 거부한 채무자는 지체책임을 지지 않는 반면, 지급을 담보하기 위하여 어음이 수수된 경우 원인채권의 이행기가 도래하면 채권자가 어음채권을 먼저 행사하지 않더라도 원인채권의 이행기가 도래한 경우 채무자로서는 이행제공을 하지 않으면 꼼짝없이 지체책임을 지게 된다는 점

참고 : 임재철, 상법요론, 도서출판 에덴(1999)

2014년 5월 19일 월요일

CBS 성명서


*사진은 강남좌파의 아이콘 조국 서울대 교수님입니다.

대학생 때까지만 해도 저는 제가 매우 진보적인 사람이라고 생각하고 있었고, 졸업하고 몇년간까지도 그랬습니다. 하지만 돈을 벌고 거기서 떼어져 나가는 세금을 보면서 그리고 노무현 대통령의 삽질을 욕하면서, 그리고 법을 전공한 사람의 특성상(정의와 법적 안정성의 균형점에서 서서히 법적 안정성 쪽의 편향이 되기가 쉽습니다) 여느 정치사회적 쟁점들에 대해서 상당 부분 보수적인 스탠스를 취하게 되었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아직도 제가 속한 계층의 이해를 대변(한다고 주장)하는 정당은 맘에 들지 않고(심지어 그에 대항하는 정당의 무능함에는 포기하고 있는 정도입니다), 정권을 잡은 정치인들의 행동은 갈수록 가관이라고 생각하고 있어서, 저를 지켜보는 주위 사람들은 서울의 시골 출신 점빵 운영 변호사를 "강남좌파"로 오해하고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도 가끔씩 하곤 합니다. 그리고 그 기우에도 걸맞게도 지난 13일 청와대 측에서 박근혜 대통령의 분향소 조문 연출 의혹을 보도한 CBS 노컷뉴스에 대하여 명예훼손 등을 이유로 한 손해배상청구소송을 제기한 것에 대하여 CBS 노조 측의 성명이 있었는데, 그 성명의 발랄함이 맘에 들어 제맘대로 소개하고자 합니다.  "우리가 남이가"라는 발언이 세간에 공개되었을 때, 삼성의 법조로비 사실이 국회의원 노회찬에 의하여 폭로되었을 때, 지역을 대표하는 정치인이 지역감정을 유발시키는 파렴치한 인식을 가지고 있다는 사실에 주목하지 않고, 그 발언이 적당하지 않은 방법(도청)에 의하여 공개되었다는 사정으로 이를 덮어버리고, 삼성의 부적절한 로비사실에 주목하지 않고, 국회의원 노회찬이 인터넷에 이를 폭로한 것이 법위반이라는 사정을 가지고 이를 덮어버렸던 것을 보면서, 진실을 보도하는 언론의 사명에 충실한 언론은 어디에 있는지 혼자서 난감해 했던 기억들을 과연 CBS는 해소해 줄 수 있을까요. 너무 큰 기대를 할 필요는 없겠지만, 응원해 봅니다. 다음은 그 전문입니다. 


CBS에 대한 청와대의 소송을 적극 환영한다. 

청와대가 CBS를 상대로 손해배상 소송을 제기했다. CBS의 보도로 김기춘 비서실장과 박준우 정무수석 등의 명예가 훼손됐다는 이유로, 8천만 원을 내놓으라고 한다. 그리고는 언론중재위원회에도 정정보도를 청구했다. 박근혜 대통령의 조문 연출 의혹과 관련한 "'조문연출' 논란 할머니, 청와대가 섭외"라는 CBS의 보도를 문제삼은 것이다. 

정부에 대한 울분으로 가득한 분향소를 태연히 방문한 대통령, 그런 대통령에게 아무 제지도 받지 않고 다가가는 정체불명의 할머니, 그 할머니를 따뜻이 위로하는 대통령의 모습, 이에 대한 유족들의 의문에 따라 언론은 응당 그 사실관계를 밝혀야 할 책무가 있었다. 이후의 취재과정에서 핵심 취재원으로부터 "청와대 측이 당일 합동분향소에서 눈에 띈 해당 노인에게 '부탁'을 한 것은 사실"이라는 말을 들어 기사를 썼음은 물론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기사에 이름 한자 등장하지도 않으면서 명예가 훼손당했다는 김기춘 실장과 박준우 수석의 주장을 공들여 논박하지는 않겠다. 어차피 법의 사유화를 지향하는 정권인 까닭에, '공직자의 공직 수행이 충분히 의심을 받을 만할 때 언론보도로 인해 공직자 개인의 사회적 평가가 저하될 수 있다 해서 명예훼손이라 할 수는 없다'는 대법원 판례 역시 떠올려봐야 의미 없다. 

이 모두를 차치하고, 청와대가 CBS를 '받아쓰기' 언론이 아니라고 공식 인정해주어 그저 반갑다. 거의 모든 기존 언론이 대중들로부터 뭇매를 맞는 가운데, 유독 CBS는 정부와 한통속이 아니었다고 청와대가 나서서 증명해주니 감읍할 뿐이다. 

또한 정정보도를 청구한 것은 CBS의 보도기능을 인정한 것으로 해석된다. 앞서 CBS의 뉴스와 시사프로그램에 대해 '유사보도' 딱지를 붙였던 정부가 늦게나마 이를 스스로 거둬들이는 것 같아 더욱 반갑다. 

나아가 잊혀질 만하면 CBS를 때려줌으로써, 권력과 언론의 긴장관계가 늘 유지될 수 있도록 해주는 청와대의 세심함에 찬사를 보내지 않을 수 없다. 

CBS의 모든 구성원은 늘 그래왔듯 이번 싸움에도 한치 물러섬 없이 임할 것이다. 퇴행하는 대한민국에서 언론의 의미를 곱씹고 또 곱씹으며 당당하게 걸어나갈 것이다. 그리고 단련하면 단련할수록 더욱 강해지는 강철의 진리를 보여줄 것이다. 

마지막으로, 소송 당사자에서 김기춘 비서실장의 이름만큼은 지워줬으면 하는 바람을 피력해 본다. 유신정권의 주역이자, 초원복집 사건의 주인공이자, 노무현 대통령 탄핵의 선봉장이자, 유신회귀의 실세인 김기춘 실장이다. 60년 역사 동안 부러질지언정 휘지 않았던 CBS가 그런 김기춘 실장과 소송에서 마주하기에는 자존심이 상한다. 

그는 "우리가 남이가?" 하고 싶을지 몰라도 우리는 남이다. 

2014년 5월 15일 
전국언론노동조합 CBS지부  

* 참고로 세번째 단락의 대법원 판례는 PD 수첩의 광우병 보도와 관련한 대법원 2011. 9. 2. 선고 2010도17237 판결을 말하는 것으로 보입니다. 이 판결에서 대법원은 "정부 또는 국가기관은 형법상 명예훼손죄의 피해자가 될 수 없으므로, 정부 또는 국가기관의 정책결정 또는 업무수행과 관련된 사항을 주된 내용으로 하는 언론보도로 인하여 그 정책결정이나 업무수행에 관여한 공직자에 대한 사회적 평가가 다소 저하될 수 있다고 하더라도, 그 보도의 내용이 공직자 개인에 대한 악의적이거나 심히 경솔한 공격으로서 현저히 상당성을 잃은 것으로 평가되지 않는 한, 그 보도로 인하여 곧바로 공직자 개인에 대한 명예훼손이 된다고 할 수 없다."와 같이 판시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청와대는 이 판결에 반하여 정부 또는 국가기관 명의로 소송을 제기하지 않고, 김기춘 비서실장 등이 개인 자격에서 소송을 제기한 것으로 보입니다. 하지만 원고 김기춘 등의 청구가 인용되려면, 원고들은 CBS의 보도가 "공직자 개인에 대한 악의적이거나 심히 경솔한 공격으로서 현저히 상당성을 잃은 것"임을 입증해야 할 것인데, 개인적으로는 그것이 가능할 것인지 의문스럽습니다. 지금까지 드러난 바로 CBS 는 박근혜 대통령의 분향소 조문 연출 의혹과 관련하여 청와대 관계자가 확인해 준 사실(또는 그로부터 상당한 개연성을 가지고 유추할 수 있는 사실)을 보도한 것으로 보이기 때문입니다.

2014년 5월 16일 금요일

Godzilla와 불사조

* 아래 글은 영화 GODZILLA의 스포일러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Godzilla(2014)

전세계 최초로 2014. 5. 14. 한국에서 고질라가 개봉했습니다. 어렸을 때부터 성 때문에 "고질라"가 저를 놀리는 말로도 많이 들어와서 고질라에 그닥 좋은 감정을 가지고 있는 것은 아니었지만 일본판을 그대로 번역해 출판되었던 괴수대백과에서 본 고질라는 어쨌든 임팩트 있는 볼거리였던 것은 틀림없었습니다.

비단 그 발상지라고 할 수 있는 일본에서 뿐 아니라 할리우드에서 괴수가 주인공급으로 나오는 영화도 심심찮게 나오고 있는 가운데(덕중의 제일은 양덕이란 말이 있듯 양놈들이 일본 괴수물에 미치면 어떤 결과물이 나오는지 "퍼시픽림"이 잘 보여주고 있죠 ㅎㅎ) 이번에 개봉한 고질라는 마치 실제와 같이 재현된 괴수들을 보는 즐거움, 전형적이지만 지루할 틈을 주지 않는 줄거리 등 장점이 많은 영화입니다. 물론 가족을 소중히 여기는 마음이 흩어졌던 가족을 모아주는 너무도 뻔한 결말에 오글거릴 수도 있지만, 어쨌거나 주인공은 고질라고 인간은 구경꾼에 불과하므로 가뿐히 무시할 수 있어 보입니다.

고질라 개봉 바로 다음날, 아침에 있던 재판일정을 잘 마친 후, 오후에는 서면을  빨리 마무리하고 간단한 상담을 마치자 5시.. 일찍 퇴근할 수 있겠다 싶어 IMAX관이 있는 CGV 왕십리에 좌석이 있는지 찾아본 결과 5:50 IMAX 3D로 구석탱이 K-4 정도가 남아있는 걸 확인하고 이게 어디냐 폭풍 예매후 부랴부랴 보러 갔습니다. '점심을 거하게 먹었으므로 저녁은 굶고 그걸로 영화를 보는거다'라고 혼자 위안을 하면서 ㅎㅎㅎㅎ

세월호가 침몰한지 이제 거의 한달, 뭐 저랑 직접적인 관련도 없는 일이고, 많은 사람들이 가슴아파 하는데 내가 거기에 뭐하나 더 던진들 달라질건 뭐겠느냐고 쿨한척하자고 지내...는 것은 개뿔.. 정말 창피한 이야기지만 어제는 고질라 영화를 보다가 울어버렸습니다.

고질라와 괴수의 싸움은 신났고, 막판에 고질라가 브레~~~쓰 하는게 통쾌하기도 하고, 건물 부서지는 것도 박력있고, EMP Shock를 쏘는 괴수도 신선하고 도대체 울 장면이 없었는데 왜 슬픈 기분이 들었던 걸까요.


그건 이 장면 후에 나온 부분과 관련있는 것 같습니다. 주인공의 처는 간호사인데 괴수가 샌프란시스코에 내습하자 아이를 직장에 데려와서 같이 있다가 더 안전한 곳으로 대피시킵니다. 대피수단으 로 아이들을 우선적으로 스쿨버스에 태워서 먼저 시 외곽의 대피지역으로 보내는 것이죠. 위 장면은 주인공의 처가 아이를 스쿨버스를 태우려는 장면입니다. 아이들이 탄 스쿨버스는 금문교에서 길이 막혀 있는데 고질라가 나타나서 군인들이 교전하는 바람에 다리 끊어지고 난리가 나죠. 그러자 스쿨버스 기사는 있는 악셀 없는 악셀 다 밟아서 위험을 피해 나갑니다.

어쨌든 고질라가 방사능을 먹고사는 괴수 콤보를 물리쳐서 지구에는 다시 평화가 찾아오는 오글스토리가 끝났는데, 전 갑자기 영화에서의 미국애들 대피시스템이 갑자기 부러워져서 우리는 뭐지? 하면서 너무 슬퍼진 겁니다. 영화에서는 도시가 위험하니까 외곽의 대피시설로 "아이들을 스쿨버스에 태워서 우선적으로 대피"  이 원칙이 지켜집니다.  영화니까 지켜진 걸테고 주인공 가족이니까 당연히 막판에 해후해서 기뻐하는데 저는 도대체 이게 왜 이렇게 슬퍼졌는지 곰곰히 생각해 봤습니다.


그제께 본 이 사진이 생각났기 때문입니다. 세월호 관련 보도만 보다간 홧병날까 싶어서 별로 관심 안둔다 안둔다 하면서도, 이 사진 보고 울컥 했었는데, 고질라 보다가 이 사진이 생각난 겁니다. 박철순 선수의 배번 21번. 박철순 선수의 별명 불사조 같이 살아돌아오라는 염원을 담아서 두산팬인 실종자 가족과 실종자를 위해서 두산선수들이 보내준 옷을 걸어놓은 게 너무 가슴아파서요. '그래도 박원순 시장이 학습능력은 있구나. 유가족과 이야기할 때도 무릎꿇고 예의를 지켜주는 구나. 같이 울어주는 구나. 그나마 고맙다.' 이런 생각을 하면서요. 그래서 영화가 끝나고 크레딧이 올라가는 한 5분 정도 훌쩍이다가 영화관을 나왔습니다.

어디서부터 잘못되었는지, 무엇부터 고쳐야 할지, 일개 개인사업자에 불과한 점빵 변호사가 뭘 할 수 있는지, 세월호 사건이 우리에게 준 트라우마는 어떻게 고쳐질 수 있을 것인지, 사실 명쾌한 지름길, 현명하고 확실한 답을 찾는 것은 쉽지 않을 것입니다. 하지만 제게 주어진 사건들에서 의뢰인을, 피고인을, 성심껏 변호하는 것이 사회를 제대로 돌아가게 하는 제 사명일 것이니 저는 이것을 충실히 하겠습니다.

그리고 기대할 것입니다. 국민의 녹을 받아서 일하는 공무원들이 긍지를 가지고 일할 수 있도록 제대로 지원하는 시스템을. 위급한 상황이 닥치더라도 약자가 나의 도움을 기다리고 있다면 자신의 안전이나 보신을 위해서 몸을 사리지 않게 만드는 그런 분위기를. 우리 아이들을 우리 사회에서 안전하게 자랄 수 있도록 만드는데 세금이 더 필요하다면, 약간의 불편이 필요하다면 기꺼이 감수하겠다는 의식을. 무엇보다도 이 모든 것들을 운용함에 있어 생명이 금전보다 소중하다는 기본전제를 지킬 수 있기를. 마지막으로, 주위 사람들의 아픔과 슬픔에 공감할 수 있기를.

너무 늦었지만, 세월호 사태의 사망자가족분들께 애도를 표하고, 실종자분들의 무사생환을 기원합니다.

2014년 5월 15일 목요일

[책 소개] 료마가 간다




시바 료타로, 료마가 간다 1-8, 동서문화사(박재희 역)

[번역과 일본의 근대]라는 책을 보면서 느꼈던 것은 적어도 일본은 개화기에 신식문물을 직접 맞대고 자신의 것으로 소화하느라 정말 고생을 했고, 그 결과 지금까지도 한국과 중국의 용어나 학문 전반에 엄청난 영향을 미치고 있다는 것이었습니다. 하지만, 일본 역사나 인물들 중에 아는 사람이라고는 오다 노부나가, 도꾸가와 이에야스, 아베 정도가 전부인 상식으로는 제대로 이해할 수 있는 것이 없어서 아쉬웠습니다. 또, 복거일 선생님의 비명을 찾아서를 읽다 보면 일본 역사에 대해서도 어느 정도 아는 것이 필요하다고 생각이 들기도 하여, 예전에 읽다가 중단한 이 소설을  최근에야 거의 다 읽었습니다.

일본 사람들도 자신의 역사를 그대로 놓고 본다면 이해하기 힘들고 재미없을 것입니다. 그래서 일본에는 국민작가가 도쿠가와 이에야스를 중심에 놓고 소설을 써서 엄청나게 히트를 시키는데(대망), 역사적 사실과 극적인 요소를 섞어 놓아서 일반인들로서는 그것을 역사로 인식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삼국지연의가 소설임에도 불구하고 정사 삼국지보다 일반에게 잘 알려져 있는 것과 유사한 이치겠지요. 그리고 대망과 같은 정도는 아니지만 일본에서 유명한 인물이 또 있습니다.

일본에서 봉건제를 확립하여 그 치세가 수백년을 이어왔던 도쿠가와 이에야스의 막부정권이 개화기 외국의 개항요구에 따른 위기상황 등을 타개하기 위해 폐번치현을 단행하는 메이지유신에 이르는 1800년대 중반이 "료마가 간다"의 배경입니다. 엄격한 신분제 사회에서 신분에 얽매이지 않는 자유로운 사상을 기반으로, 일본의 큰 번들인 조슈, 사쓰마, 도사 등을 연합하여 막부시대에 종언을 고하고 천황을 중심으로 하는 근대국가를 탄생시킨 주역이라고 할 수 있는 사람이 바로 "사카모토 료마(1835~1867)"이고, 료마가 간다는 일본의 국민작가라고 불리는 시바 료타로가 그에 관하여  쓴 소설입니다.

료마의 실제 모습은 첫번째 사진에 나와 있듯 그닥 미남도 아니고 임팩트도 없어 보이는데, 시바 료타로는 매력이 들끓는 듯이 묘사(그에 걸맞게 수명의 여인이 그를 따릅니다)하고 있고, 그에 영향을 받아 료마를 다루는 게임에서는 두번째 그림과 같이 료마를 호남으로 묘사합니다. 그리고 드디어 2010년인가요 TV에서 료마전을 방영하면서 료마로 캐스팅한 것은 일본의 정우성+장동건이라는 사진 3의 후쿠야마 마사하루 입니다. 일본의 어려운 상황과 맞물려 사람들에게 희망을 주는 역할로 매우 인기를 끌었다고 하네요(일본의 장동건 + 정우성 NHK ‘료마전’의 료마 역 후쿠야마 마사하루, 중앙일보 2010. 5. 22. 기사 ).

그러나 개인적으로 이 책을 읽어보시라고 추천하고 싶지는 않습니다. 전지적 작가가 툭툭 튀어 나와서 옛날 이야기 하듯 이얘기 저얘기로 뛰어다니는 것도 마음에 쏙 들지는 않고, 일본어에 능통치 못한 제가 번역된 일본소설을 보는 것에는 아름다운 한국어구사가 되는 우리 작가들의 글을 읽을 때의 유려한 문장을 읽는 기쁨이 빠져 있는 것 같은 느낌이라서입니다. 하지만 "바람의 검심" 같은 만화에서 신선조 무사들이 막부편을 드는 이유 같은 것이 전혀 이해되지 않아 그닥 재미 없었던 것이  지금 읽으면 일본 개화기 시대 역사를 뒤틀거나 끼어드는 맛이 있어서 더 재미있을 것 같은 생각이 드네요.

결론적으로 외국을 직접 온몸으로 부딪혀서 경험하고, 외국문물을 받아들이고, 자신들의 정체를 그에 맞추어서 변경해 나가려고 노력해서 마침내 이루어냈다는 점에서, 개화기에 그런 경험이 없었던 우리나라로서는 부러운 인물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다음은 제가 이 책을 읽으면서 좋았던 구절들입니다.

소인배 하나를 물러나게 하는 것쯤은 쉽습니다. 그러나 그 자리에 누가 앉든 몸과 마음을 바쳐 국가를 이끌어 나갈 인물이 없습니다. 결국 막부의 지금 형편으로는 바로잡으려는 사람이 쓰러지게 되어 있습니다. 그러므로 손을 댈 엄두들을 내지 못하고 있지요.

시바 료타로, 료마가 간다 5, 동서문화사, 134면. 

선상팔책
제1책, 천하의 정권을 조정에 봉환케 하고 모든 정령은 조정을 통해서 내리게 할 것,
제2책, 상하 의정국을 설치하고 의원을 두어 천황의 정무를 참찬케 하며, 정무는 반드시 의논하여 결의할 것,
제3책, 유능한 공경, 제후 및 천하의 인재들을 고문으로 두고 관작을 내리며, 종래의 유명무실한 관작을 철패할 것,
제4책, 외국과의 관계에 대해서는 널리 공론을 참작하여 새로이 타당한 규약(새 조약)을 만들 것, 
제5책, 고래의 법령을 절충하여 새로이 무궁한 대법을 제정할 것,
제6책, 해군을 확장할 것,
제7책, 친병을 두어 수도를 지키게 할 것, 
제8책, 금은 물가는 반드시 외국과의 평형을 유지토록 하는 법을 제정할 것

시바 료타로, 료마가 간다 7, 동서문화사, 303-304면.

일이란 그 전부를 해서는 안 되는 거다. 8할까지면 족하다. 거기까지가 어려운 고비니까. 나머지 2할은 누구나 할 수 있다. 그 2할은 남이 맡아 하도록 하여 완성의 공은 양보하는 거다. 그렇지 않고서는 큰일을 해낼 수 없다."

시바 료타로, 료마가 간다 8. 동서문화사, 246면.


2014년 5월 14일 수요일

애플 '앱스토어' 명칭 독점 못한다

법원 "애플, '앱스토어' 명칭 독점 못한다" 법률신문, 2014. 5. 12.자 기사

이제 안드로이드 스토어도 앱스토어로 이름을 바꾸는 것일까요... 뉴발란스의 N 자에도 상표로서의 식별력을 인정하는 우리 법원(대법원 "뉴발란스 'N' 로고 식별력 인정된다")이 "앱스토어" 를 상표로 인정하는 데 인색한 것은 뭔가 언발란스하다고 생각되는데요. 이것은 제가 애플빠이기 때문에 드는 저 혼자만의 생각이겠지요.


2014년 5월 13일 화요일

불량노인구락부

요즈음 들어 하는 생각과 비슷한 생각을 하는 사람을 소개한 기사가 있어 소개합니다. 제가 이전에 올린 박카스유감 과도 상통하는 면이 있는 것 같습니다. 일본의 불량노인구락부 라는 단체(?)를 소개한 기사인데요.

일본의 불량노인 운동 - "왜 남의 눈치 보며 사나요?" 이코노미스트 1237호, 2014. 5. 19.자 기사

질풍노도의 시기를 지난 사람의 정신연령은 그대로인데, 공자가 괜히 이립, 불혹, 지천명, 이순 이런 말들 만들어서 사람이 변한다고 세뇌시킨게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듭니다.

젊게 사는게 남는 거 아닐까요.


2014년 5월 12일 월요일

교묘한 사실왜곡 보도

오래전 부터 "조중동"이라고 하는 언론을, 정치적으로 우파로 분류되며(이 분류가 우리나라의 정치지형 때문에 외국에서와는 다른 의미로 쓰이는 것도 문제이나 여기서는 문제삼지 않기로 합니다) 때때로 자신들에게 유리하다고 판단하는 경우 오보를 내는 방법으로 여론을 호도하는 나쁜 버릇을 가지고 있다고 비판적으로 생각해 왔습니다. 하지만 이들의 나쁜 버릇을 비판하려면 정치적으로 좌파로 분류되는 언론은 그러한 행위를 철저히 배격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저는 이번 경향신문의 기사(세월호 사고 빗댄 이상한 시험문제)도 소위 조중동이 하던 행위와 크게 다를 바 없이 여론을 호도하는 행위를 한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문제를 한번 읽어보기만 하여도 출제자의 의도가 소위 "일베"류 네티즌이 인터넷에서 부적절하게 행동하는 것을 가려내는 것이 목적이라는 것을 알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단지  세월호 사고를 예시로 들었다고 하여 출제교사가 "일베"라도 되는 것인양 기사제목을 써 놓은 것입니다. 세월호 사고에 대해서 "일베"류 네티즌이 이러한 댓글들을 다는 것은 현상이고 그에 대해서 비판적인 시각을 갖는 것이 바람직하다는 것에 대하여 이론이 없음에도 불구하고 저런 기사를 썼어야만 했는지 의문입니다. 한마디로 클릭수 늘려보자는 것인데 이건 좌우가 없는 것 같습니다.

시험문제 전문을 읽어 보면 누구라도 쉽게 출제자에게 위 기사에서 말하는 "일베"스런 의도가 없었다는 것을 알 수 있을 것입니다. 기자가 기레기가 되는 것은 순식간입니다. 그러한 실수는 비단 조중동에 국한되지 않는다는 것을 쉽게 깨달을 수 있습니다. 이 문제가 졸업한지 20년된 제 모교에서 출제된 문제라서 그러는 건 절대 맞습니다.

[19~20] 다음을 읽고 물음에 답하시오.
19. 아래는 최근에 일어난 세월호 침몰 사건에 대한 인터넷 댓글이다. 이를 통해 디지털 통신 매체 사용자들이 취해야 할 자세로 가장 적절한 것을 전체적 맥락 속에서 찾으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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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ge_****
전라도 홍어들이 고향 용궁으로 돌아가겠다는데 왜 막냐... schu****
간만에 전라도 에서 흐뭇한 소식이네 .. 염전 조심해라 ? 점심 신나게 홍어
탕 먹어야지 ,,, yas0****
역시 또.. 설마 했더니 전라국이네요.. 아무리 대한민국서 제일 가깝고 가기
쉬운 해외라해도 전라국으로 여행가는건 아니라고 들었어요..
joru****
사고소식을 들으니 안타깝군요.... 부디 무사하길 바라며 선박사고와 전라도
섬노예가 없는 평화로운 세상이 오기를 두손모아 간절히 기원합니다...
tcp0****
아니 잘 가던 배가 왜 하필 전라도에서 좌초됐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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① 확인되지 않은 사실은 검증하고 타당성을 확인한다.
② 광고성 정보 등을 무비판적으로 수용하지 않도록 한다.
③ 선정적 정보의 유통으로 인한 진지함의 결핍 등에 주의한다.
④ 매체가 항상 올바른 정보만을 전달하는 것은 아니라는 것을 인식한다.
⑤ 수동적 수용으로 세계와 자신의 인식 세계가 왜곡될 수 있음을 경계한다.

2014년 5월 9일 금요일

[책 소개] 파운데이션




아이작 아시모프, 파운데이션, 황금가지(2013)

작년(2013년) 한해동안 읽었던 책 중에 가장 감명깊었던 책을 꼽으라면, 저는 파운데이션 7부작을 꼽고 싶습니다. 그동안 수차례에 걸쳐 번역되어 있었던 것을 모아서 다시 번역하여 나왔기에 SF 소설을 나름 좋아한다고 했지만 들춰보기에는 너무 유명한 작품이었던 파운데이션 씨리즈를 독파해 보기로 마음먹었는데, 생각보다 훨씬 감명깊은 책이었습니다.

무엇보다 제가 20대 초반일 당시 이영도 작가가 "드래곤라자"라는 소설로 우리나라 판타지 소설의 서막을 열었을 때, 그가 이 소설을 참조했구나 하는 것을 거의 20년이 지나서나마  깨달을 수 있어서 너무 좋았죠. 소설의 각 장을 "---사전"에서 인용하는 형식을 드래곤라자에서 처음 보았고 매우 맘에 들었었는데, 이런 형식은 이미 1960-1970년대 아이작 아시모프의 소설에서 쓰이고 있었던 것입니다.

어떠한 세계 자체를 통째로 창조해 내는 것, 창조해낸 세계가 우리가 살고 있는 시대의 발전상을 어떤 식으로든 반영하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되는 것, 이를 통해서 우리가 살 미래는 어떨 수 있겠다고 예측해 보는 것(그리고 작가가 창조해 낸 것과 비교하는 것) 모두 이 책을 읽을 때 느낄 수 있는 감흥들입니다.

6부의 아래 부분을 읽을 때는 소름이 돋았는데, 자세한 내용을 설명하는 것은 스포일러가 될테니 자제하겠습니다. SF 거장의 수십년에 걸친 창작의 결과물은 충분히 시간을 투자할 가치가 있습니다.

셀던은 두 팔을 벌려 그녀를 포옹했다. 그리고 천천히 얼굴을 그녀에게 가까지 가져갔다. 그녀가 외면할 수 있는 시간을 주려는 듯했다. 그러면서도 그는 그녀를 더 가까이 끌어당기고 있었다. 
도스는 꼼짝도 하지 않았다. 그는 그녀에게 키스를 했다. 천천히. 부드럽게. 그러다가 아주 정렬적으로. 그러자 그녀의 팔이 갑자기 그를 꽉 끌어안았다.
그가 입술을 떼자 그녀는 미소를 머금은 눈빛으로 그를 바라보았다. 그리고 말했다.
"한 번 더 해주세요. 해리."

아이작 아시모프, 파운데이션의 서막(파운데이션 시리즈 6권), 633면

2014년 5월 8일 목요일

[책 소개] 비명을 찾아서


복거일, 비명을 찾아서(경성, 쇼우와 62년), 문학과 지성사

어린이날, 부처님 오신날이 낀 연휴였는데, 특별히 준비성이 뛰어나지 않은 턱에 연휴에 놀러갈 계획을 잡아놓지 않아서 나들이 없이 집에서 대부분의 시간을 보냈습니다. 그러면서 골라잡은 책은 고종석 선생님이 스승이라고 하시는 복거일 씨의 초기 소설이었습니다. 원체 들어본 적은 많았으나, 그 제목이 우울해 보인다는 이유로, 폭망한 2009로스트메모리즈 라는 영화(장동건 주연)의 원작 소설이라는 것은 알고 있어서 '영화가 망했는데 소설이라고 다르겠어?'라는 생각에, 1987년에 나온 소설을 굳이 볼 생각을 하지 않았었습니다.

하지만 장편소설 치고는 그닥 두껍지 않은 분량, 고종석 선생님에게 영향을 미쳤고 영어공용화론으로 일대 센세이션을 일으켰던 복거일이라는 분에 대한 뒤늦은 호기심으로 연휴 내내 오랜만에 책읽는 즐거움과 함께 할 수 있었습니다.

제 감상평은 꽤나 괜찮은 소설이구나 하는 것입니다. 이미 20년도 넘은 소설의 내용이 지금 읽어도 별로 오래된 것 같지 않은 것 같은 느낌이라는 점이 매우 놀랍습니다. 그 아이디어를 따서 시나리오를 만들었다는 2009로스트메모리즈(복거일씨는 당시 이 영화사를 상대로 아이디어에 대한 저작권을 주장하며 소송을 제기하였지만 법원은 이를 인정하지 않았습니다)를 보지는 않았지만 영화 장르로 보아 "비명을 찾아서"라는 소설도 액션이 포함되었을 것으로 기대하였는데, 그와 달리 주인공은 약간 비범한 정도의 알루미늄 생산회사 유부남 과장으로 직속 후배에게 연정을 품지만 끝내 고백조차 하지 못하는 머릿속으로 생각이 엄청 많은 시인에 불과합니다. 안중근이 이토 히로부미 암살에 실패하여 일본이 조선을 병합하고 중국 일부까지 차지하면서 둘로 쪼개진 중국과 접경하고 있는 상황에서 우리 말글을 잃어버린지 40년이 지난 시점을 배경으로, 우연한 기회에 자신의 조선인으로서의 정체성을 각성하는 주인공이 상해 임시정부를 찾아 모험을 떠나려는 찰라에 소설이 끝나고 말죠.

개인적으로 이 소설에서 인상적이었던 것은 주인공이 정부로부터 합작투자 인허가를 받아내는 과정입니다. 로펌에 다닐 때 제가 했던 업무 중 외국환거래법상 기재부나 한국은행으로부터 인허가를 받는 것과 80년대와 2000년대의 차이에도 불구하고 매우 비슷했기 때문입니다. 아마도 복거일씨가 소설가로 데뷔하기 전의 직업상 정부 부처 공무원들에게 인허가를 받는 일이 꽤 있었던 것이 아닐까 추측해 봅니다. 또한 일제에 병합된 조선을 이야기하면서도 내지에서 쿠데타가 벌어지는 상황을 묘사하는 것은 1980년대 전두환 정권이 들어설 때의 우리나라의 상황을 경험한 작가가 이를 비틀어 묘사한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들었구요.

하지만 작가가 가장 중심적으로 다루었던 것은 우리 말글이 없어진 상태, 일제가 도서관에서 한글로 된 사전과 역사서도 모두 없애 버려 자료도 거의 찾을 수 없는 상황에서 우리 말글의 맥을 다시 찾는 것이 얼마나 지난한 일이 될 것인지 였습니다. 역사와 언어, 특히 일어와 우리 말에(업무의 내용상 다루어야 하는 영어까지) 상당한 지식과 경험이 없으면 나올 수 없는 소설이었을 것이라고 생각됩니다.

이 소설은 각 장을 가상의 소설이나 법령을 인용하는 방식으로 시작하고 있는데, 거기에 맘에 드는 몇 구절을 옮겨 봅니다. 그 아이디어의 참신성을 비롯해 꽤나 흥미로운 점이 많은 소설로, 아직 안 읽으셨다면 한번 읽어보실 것을 권합니다.

관료계급은 자신을 집권 계급에 없어서는 안될 존재로 만듦으로서 연명한다. 그래서 그들은 정치적으로 모호하며, 집권자가 누구인가 따지지 않는다. 심지어 그들은 적국에 정복되면, 새 주인을 옛 주인을 섬겼던 것과 같은 충성심으로 섬긴다. 그들은 통치권력을 충성스럽게 섬김으로써 인민들 위에 군림하는 자신의 권력을 유지하고 확장한다.
-복거일, 비명을 찾아서 경성, 쇼우와 62년(상), 문학과 지성사, 296-297면.

군사독재정권이 국내의 모든 반대자들을 힘으로 쉽사리 누를 수 있기 때문에 영속하리라고 생각하는 것은 그 정권 아래서 이득을 보는 자들의 기원에 지나지 않는다. 독재정권을 안정시키는 경직된 사회구조는 예기치 못한 상황에 유연하게 대처할 수 없다는 결정적 약점을 안고 있다. 내부적으로 강력하고 안정된 듯이 보이는 정권들이 외부의 압력에 허망하도록 쉽사리 굴복하는 것은 이 때문이다. 서양 열국의 개국요구 앞에 허둥대다가 무너진 도꾸가와 막부 정권이 그 좋은 예다.
복거일, 비명을 찾아서(상), 문학과 지성사, 322면.

정당하게 성립되지 않은 정권의 가장 큰 문제점은 그 정권의 존재 자체가 사회의 도적적 질서를 근본적으로 파괴한다는 점이다. 정치, 즉 권력의 배분행위는 어느 사회에서든지 가장 근본적인 일이다. 이러한 근본적인 차원에서 정의가 실현되지 않는데, 어떻게 다른 차원에서 도덕적 질서가 이루어지길 바라겠는가?
-복거일, 비명을 찾아서(상), 문학과지성사, 329면.

국가라는 배가 위기를 만나면, 국민들은 굳은 손길로 키를 잡을 사람을 찾는다. 그러나 배가 가야 할 목적지나 항로에 대해 생각하는 사람은 드물다. 국민들은 전제적 통제가 분분한 논란들을 종식시키고 그럭저럭 배를 조종해서 험한 물결을 해져나가기를 기원한다. 그러나 옳은 항로를 발견하는 일은 굳은 손길을 가진 사람을 발견하는 일보다 훨씬 어렵다는 것을 역사는 우리에게 보여준다.
-복거일, 비명을 찾아서(하), 문학과지성사, 100면.


2014년 5월 7일 수요일

중복제소의 금지

민사소송법 공부한 지도 오래 되어서 교과서에 나온 내용도 다시 확인하는게 필요하네요.

당사자는 이미 법원에 계속 중인 소송과 동일한 사건에 대하여 다시 소를 제기하지 못합니다(민사소송법 제259조). 이를 중복제소 금지라고 하며 소송제도의 남용금지, 소송경제 위배, 판결의 모순저촉 우려 등이 그 취지입니다.

1심 판결이 중복제소 여부에 대하여 판결하지 아니하여 전소(먼저 소송계속이 된 소송) 1심 계속 중에 후소(나중에 소송계속이 된 소송)에 대해서 판결이 내려진 경우, 즉 후소에 대해서는 판결이 있고, 전소에 대해서는 판결이 없는 경우, 전소와 후소 증 중복제소 금지에 저촉되는 소송은 어느 소송일까요?

판결이 확정되기 전에는 후소에 대하여 먼저 판결이 선고되었더라고 하더라도 선고여부와 관계없이 항상 후소가 중복제소 금지에 저촉됩니다. 따라서 중복소송임을 법원이 간과하고 후소에 대하여 판결을 선고한 경우 당사자는 상소로 다툴 수 있게 됩니다. 그렇다면 후소가 먼저 확정된 경우에는 어떻게 되는 것일까요(판결의 확정이란 법원이 한 종국판결에 대하여 당사자가 일정한 기간 내에 불복신청을 하지 아니하거나 상소로 취소할 수 없게 되는 것을 말합니다). 중복제소 금지 위반은 재심사유가 아니기 때문에 전후 양소의 판결이 모두 확정되었으나 서로 모순저촉되는 때에는 어느 것이 먼저 제소되었는가와 관계 없이 시간적으로 뒤에 확정된 확정판결에 재심사유가 있게 될 뿐입니다(민사소송법 제451조 제1항 제10호). 하지만 재심판결에 의하여 취소되기 전까지는 뒤에 확정된 판결이 새로운 것이기 때문에 존중되어야 합니다.

참고: 이시윤, 민사소송법, 박영사(1997)
호문혁, 민사소송법, 법문사(2000)

2014년 5월 2일 금요일

된장남 놀이









요새 같은 사무실 변호사님께 뚱땡이, 럭셔리, 골프중독이라는 놀림을 받습니다. 아무래도 로펌변호사 하면서 무의식중에 밴 생활습관이 점빵 차리고 나서도 바로 변하지는 않고 있고, 작년부터 제대로 시작한 골프는 연습장 가서 공이 날아가는 걸 보면 스트레스가 풀려서 시간 되면 꼭 가버릇해서가 아닌가 생각합니다. 아직 남아 있는 악습(?) 중에 된장남은 아니지만 가끔 미친척하고 된장남인척 하는 된장남 놀이가 있습니다. 일년에 한두번쯤 기분전환하는데 꽤 괜찮습니다. 물론 돈이 듭니다. OTL

밤 12시 임박하거나 넘은 시간에 저녁을 놓쳐서 배는 고픈데 갈 곳은 마땅치 않고, 술집이나 포장마차 같은 곳에서 안주로 요기를 하자니 그것도 마땅치 않고, 물론 24시간 문을 여는 맥도날드, 버거킹과 같은 해결책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중고등학생 버글대는 곳에서 스타벅스나 커피빈 같이 된장남인척 할 수 없어 별로 내키지 않을 때, 여름에 둘이 먹어도 다 먹지 못할만큼 큰 망고빙수가 먹고 싶을 때...

물론 진정 된장남은 친구들과 얘기하면서 대화의 반은 "What's wrong with you man blur blur~~"해주어야 하지만,  된장남 놀이를 하러 간 것 뿐이어서 애꿎은 식전빵(야식도 식사기 때문에 식전빵을 준다능)만 한번 더 시켜먹고 옵니다. ㅎㅎㅎ

요샌 현대카드 레드도 전월실적 일정액 이상이 되어야 무료발레가 되는 등 진입장벽이 높아졌지만, 어쨌든 그럴 때(1년에 1-2번?) 가끔 갑니다.  궁금하신 분들은 태그 참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