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년 5월 16일 금요일

Godzilla와 불사조

* 아래 글은 영화 GODZILLA의 스포일러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Godzilla(2014)

전세계 최초로 2014. 5. 14. 한국에서 고질라가 개봉했습니다. 어렸을 때부터 성 때문에 "고질라"가 저를 놀리는 말로도 많이 들어와서 고질라에 그닥 좋은 감정을 가지고 있는 것은 아니었지만 일본판을 그대로 번역해 출판되었던 괴수대백과에서 본 고질라는 어쨌든 임팩트 있는 볼거리였던 것은 틀림없었습니다.

비단 그 발상지라고 할 수 있는 일본에서 뿐 아니라 할리우드에서 괴수가 주인공급으로 나오는 영화도 심심찮게 나오고 있는 가운데(덕중의 제일은 양덕이란 말이 있듯 양놈들이 일본 괴수물에 미치면 어떤 결과물이 나오는지 "퍼시픽림"이 잘 보여주고 있죠 ㅎㅎ) 이번에 개봉한 고질라는 마치 실제와 같이 재현된 괴수들을 보는 즐거움, 전형적이지만 지루할 틈을 주지 않는 줄거리 등 장점이 많은 영화입니다. 물론 가족을 소중히 여기는 마음이 흩어졌던 가족을 모아주는 너무도 뻔한 결말에 오글거릴 수도 있지만, 어쨌거나 주인공은 고질라고 인간은 구경꾼에 불과하므로 가뿐히 무시할 수 있어 보입니다.

고질라 개봉 바로 다음날, 아침에 있던 재판일정을 잘 마친 후, 오후에는 서면을  빨리 마무리하고 간단한 상담을 마치자 5시.. 일찍 퇴근할 수 있겠다 싶어 IMAX관이 있는 CGV 왕십리에 좌석이 있는지 찾아본 결과 5:50 IMAX 3D로 구석탱이 K-4 정도가 남아있는 걸 확인하고 이게 어디냐 폭풍 예매후 부랴부랴 보러 갔습니다. '점심을 거하게 먹었으므로 저녁은 굶고 그걸로 영화를 보는거다'라고 혼자 위안을 하면서 ㅎㅎㅎㅎ

세월호가 침몰한지 이제 거의 한달, 뭐 저랑 직접적인 관련도 없는 일이고, 많은 사람들이 가슴아파 하는데 내가 거기에 뭐하나 더 던진들 달라질건 뭐겠느냐고 쿨한척하자고 지내...는 것은 개뿔.. 정말 창피한 이야기지만 어제는 고질라 영화를 보다가 울어버렸습니다.

고질라와 괴수의 싸움은 신났고, 막판에 고질라가 브레~~~쓰 하는게 통쾌하기도 하고, 건물 부서지는 것도 박력있고, EMP Shock를 쏘는 괴수도 신선하고 도대체 울 장면이 없었는데 왜 슬픈 기분이 들었던 걸까요.


그건 이 장면 후에 나온 부분과 관련있는 것 같습니다. 주인공의 처는 간호사인데 괴수가 샌프란시스코에 내습하자 아이를 직장에 데려와서 같이 있다가 더 안전한 곳으로 대피시킵니다. 대피수단으 로 아이들을 우선적으로 스쿨버스에 태워서 먼저 시 외곽의 대피지역으로 보내는 것이죠. 위 장면은 주인공의 처가 아이를 스쿨버스를 태우려는 장면입니다. 아이들이 탄 스쿨버스는 금문교에서 길이 막혀 있는데 고질라가 나타나서 군인들이 교전하는 바람에 다리 끊어지고 난리가 나죠. 그러자 스쿨버스 기사는 있는 악셀 없는 악셀 다 밟아서 위험을 피해 나갑니다.

어쨌든 고질라가 방사능을 먹고사는 괴수 콤보를 물리쳐서 지구에는 다시 평화가 찾아오는 오글스토리가 끝났는데, 전 갑자기 영화에서의 미국애들 대피시스템이 갑자기 부러워져서 우리는 뭐지? 하면서 너무 슬퍼진 겁니다. 영화에서는 도시가 위험하니까 외곽의 대피시설로 "아이들을 스쿨버스에 태워서 우선적으로 대피"  이 원칙이 지켜집니다.  영화니까 지켜진 걸테고 주인공 가족이니까 당연히 막판에 해후해서 기뻐하는데 저는 도대체 이게 왜 이렇게 슬퍼졌는지 곰곰히 생각해 봤습니다.


그제께 본 이 사진이 생각났기 때문입니다. 세월호 관련 보도만 보다간 홧병날까 싶어서 별로 관심 안둔다 안둔다 하면서도, 이 사진 보고 울컥 했었는데, 고질라 보다가 이 사진이 생각난 겁니다. 박철순 선수의 배번 21번. 박철순 선수의 별명 불사조 같이 살아돌아오라는 염원을 담아서 두산팬인 실종자 가족과 실종자를 위해서 두산선수들이 보내준 옷을 걸어놓은 게 너무 가슴아파서요. '그래도 박원순 시장이 학습능력은 있구나. 유가족과 이야기할 때도 무릎꿇고 예의를 지켜주는 구나. 같이 울어주는 구나. 그나마 고맙다.' 이런 생각을 하면서요. 그래서 영화가 끝나고 크레딧이 올라가는 한 5분 정도 훌쩍이다가 영화관을 나왔습니다.

어디서부터 잘못되었는지, 무엇부터 고쳐야 할지, 일개 개인사업자에 불과한 점빵 변호사가 뭘 할 수 있는지, 세월호 사건이 우리에게 준 트라우마는 어떻게 고쳐질 수 있을 것인지, 사실 명쾌한 지름길, 현명하고 확실한 답을 찾는 것은 쉽지 않을 것입니다. 하지만 제게 주어진 사건들에서 의뢰인을, 피고인을, 성심껏 변호하는 것이 사회를 제대로 돌아가게 하는 제 사명일 것이니 저는 이것을 충실히 하겠습니다.

그리고 기대할 것입니다. 국민의 녹을 받아서 일하는 공무원들이 긍지를 가지고 일할 수 있도록 제대로 지원하는 시스템을. 위급한 상황이 닥치더라도 약자가 나의 도움을 기다리고 있다면 자신의 안전이나 보신을 위해서 몸을 사리지 않게 만드는 그런 분위기를. 우리 아이들을 우리 사회에서 안전하게 자랄 수 있도록 만드는데 세금이 더 필요하다면, 약간의 불편이 필요하다면 기꺼이 감수하겠다는 의식을. 무엇보다도 이 모든 것들을 운용함에 있어 생명이 금전보다 소중하다는 기본전제를 지킬 수 있기를. 마지막으로, 주위 사람들의 아픔과 슬픔에 공감할 수 있기를.

너무 늦었지만, 세월호 사태의 사망자가족분들께 애도를 표하고, 실종자분들의 무사생환을 기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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