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년 5월 19일 월요일

CBS 성명서


*사진은 강남좌파의 아이콘 조국 서울대 교수님입니다.

대학생 때까지만 해도 저는 제가 매우 진보적인 사람이라고 생각하고 있었고, 졸업하고 몇년간까지도 그랬습니다. 하지만 돈을 벌고 거기서 떼어져 나가는 세금을 보면서 그리고 노무현 대통령의 삽질을 욕하면서, 그리고 법을 전공한 사람의 특성상(정의와 법적 안정성의 균형점에서 서서히 법적 안정성 쪽의 편향이 되기가 쉽습니다) 여느 정치사회적 쟁점들에 대해서 상당 부분 보수적인 스탠스를 취하게 되었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아직도 제가 속한 계층의 이해를 대변(한다고 주장)하는 정당은 맘에 들지 않고(심지어 그에 대항하는 정당의 무능함에는 포기하고 있는 정도입니다), 정권을 잡은 정치인들의 행동은 갈수록 가관이라고 생각하고 있어서, 저를 지켜보는 주위 사람들은 서울의 시골 출신 점빵 운영 변호사를 "강남좌파"로 오해하고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도 가끔씩 하곤 합니다. 그리고 그 기우에도 걸맞게도 지난 13일 청와대 측에서 박근혜 대통령의 분향소 조문 연출 의혹을 보도한 CBS 노컷뉴스에 대하여 명예훼손 등을 이유로 한 손해배상청구소송을 제기한 것에 대하여 CBS 노조 측의 성명이 있었는데, 그 성명의 발랄함이 맘에 들어 제맘대로 소개하고자 합니다.  "우리가 남이가"라는 발언이 세간에 공개되었을 때, 삼성의 법조로비 사실이 국회의원 노회찬에 의하여 폭로되었을 때, 지역을 대표하는 정치인이 지역감정을 유발시키는 파렴치한 인식을 가지고 있다는 사실에 주목하지 않고, 그 발언이 적당하지 않은 방법(도청)에 의하여 공개되었다는 사정으로 이를 덮어버리고, 삼성의 부적절한 로비사실에 주목하지 않고, 국회의원 노회찬이 인터넷에 이를 폭로한 것이 법위반이라는 사정을 가지고 이를 덮어버렸던 것을 보면서, 진실을 보도하는 언론의 사명에 충실한 언론은 어디에 있는지 혼자서 난감해 했던 기억들을 과연 CBS는 해소해 줄 수 있을까요. 너무 큰 기대를 할 필요는 없겠지만, 응원해 봅니다. 다음은 그 전문입니다. 


CBS에 대한 청와대의 소송을 적극 환영한다. 

청와대가 CBS를 상대로 손해배상 소송을 제기했다. CBS의 보도로 김기춘 비서실장과 박준우 정무수석 등의 명예가 훼손됐다는 이유로, 8천만 원을 내놓으라고 한다. 그리고는 언론중재위원회에도 정정보도를 청구했다. 박근혜 대통령의 조문 연출 의혹과 관련한 "'조문연출' 논란 할머니, 청와대가 섭외"라는 CBS의 보도를 문제삼은 것이다. 

정부에 대한 울분으로 가득한 분향소를 태연히 방문한 대통령, 그런 대통령에게 아무 제지도 받지 않고 다가가는 정체불명의 할머니, 그 할머니를 따뜻이 위로하는 대통령의 모습, 이에 대한 유족들의 의문에 따라 언론은 응당 그 사실관계를 밝혀야 할 책무가 있었다. 이후의 취재과정에서 핵심 취재원으로부터 "청와대 측이 당일 합동분향소에서 눈에 띈 해당 노인에게 '부탁'을 한 것은 사실"이라는 말을 들어 기사를 썼음은 물론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기사에 이름 한자 등장하지도 않으면서 명예가 훼손당했다는 김기춘 실장과 박준우 수석의 주장을 공들여 논박하지는 않겠다. 어차피 법의 사유화를 지향하는 정권인 까닭에, '공직자의 공직 수행이 충분히 의심을 받을 만할 때 언론보도로 인해 공직자 개인의 사회적 평가가 저하될 수 있다 해서 명예훼손이라 할 수는 없다'는 대법원 판례 역시 떠올려봐야 의미 없다. 

이 모두를 차치하고, 청와대가 CBS를 '받아쓰기' 언론이 아니라고 공식 인정해주어 그저 반갑다. 거의 모든 기존 언론이 대중들로부터 뭇매를 맞는 가운데, 유독 CBS는 정부와 한통속이 아니었다고 청와대가 나서서 증명해주니 감읍할 뿐이다. 

또한 정정보도를 청구한 것은 CBS의 보도기능을 인정한 것으로 해석된다. 앞서 CBS의 뉴스와 시사프로그램에 대해 '유사보도' 딱지를 붙였던 정부가 늦게나마 이를 스스로 거둬들이는 것 같아 더욱 반갑다. 

나아가 잊혀질 만하면 CBS를 때려줌으로써, 권력과 언론의 긴장관계가 늘 유지될 수 있도록 해주는 청와대의 세심함에 찬사를 보내지 않을 수 없다. 

CBS의 모든 구성원은 늘 그래왔듯 이번 싸움에도 한치 물러섬 없이 임할 것이다. 퇴행하는 대한민국에서 언론의 의미를 곱씹고 또 곱씹으며 당당하게 걸어나갈 것이다. 그리고 단련하면 단련할수록 더욱 강해지는 강철의 진리를 보여줄 것이다. 

마지막으로, 소송 당사자에서 김기춘 비서실장의 이름만큼은 지워줬으면 하는 바람을 피력해 본다. 유신정권의 주역이자, 초원복집 사건의 주인공이자, 노무현 대통령 탄핵의 선봉장이자, 유신회귀의 실세인 김기춘 실장이다. 60년 역사 동안 부러질지언정 휘지 않았던 CBS가 그런 김기춘 실장과 소송에서 마주하기에는 자존심이 상한다. 

그는 "우리가 남이가?" 하고 싶을지 몰라도 우리는 남이다. 

2014년 5월 15일 
전국언론노동조합 CBS지부  

* 참고로 세번째 단락의 대법원 판례는 PD 수첩의 광우병 보도와 관련한 대법원 2011. 9. 2. 선고 2010도17237 판결을 말하는 것으로 보입니다. 이 판결에서 대법원은 "정부 또는 국가기관은 형법상 명예훼손죄의 피해자가 될 수 없으므로, 정부 또는 국가기관의 정책결정 또는 업무수행과 관련된 사항을 주된 내용으로 하는 언론보도로 인하여 그 정책결정이나 업무수행에 관여한 공직자에 대한 사회적 평가가 다소 저하될 수 있다고 하더라도, 그 보도의 내용이 공직자 개인에 대한 악의적이거나 심히 경솔한 공격으로서 현저히 상당성을 잃은 것으로 평가되지 않는 한, 그 보도로 인하여 곧바로 공직자 개인에 대한 명예훼손이 된다고 할 수 없다."와 같이 판시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청와대는 이 판결에 반하여 정부 또는 국가기관 명의로 소송을 제기하지 않고, 김기춘 비서실장 등이 개인 자격에서 소송을 제기한 것으로 보입니다. 하지만 원고 김기춘 등의 청구가 인용되려면, 원고들은 CBS의 보도가 "공직자 개인에 대한 악의적이거나 심히 경솔한 공격으로서 현저히 상당성을 잃은 것"임을 입증해야 할 것인데, 개인적으로는 그것이 가능할 것인지 의문스럽습니다. 지금까지 드러난 바로 CBS 는 박근혜 대통령의 분향소 조문 연출 의혹과 관련하여 청와대 관계자가 확인해 준 사실(또는 그로부터 상당한 개연성을 가지고 유추할 수 있는 사실)을 보도한 것으로 보이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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