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년 8월 26일 화요일

연도와 예배


*사진은 천주교 신자였던 김대중 전 대통령님의 장례식에서 연도를 하시는 분들을 촬영한 사진입니다.

최근 일주일여동안 블로그 업데이트가 되지 않았던 가장 큰 이유는 2주 정도 전에 장인어른께서 소천하셨고 그 이후로 여러 일들을 처리하기에 바빴기 때문입니다. 장인어른께서는 특별히 종교가 있는 것은 아니셨는데, 응급실에서 상태가 급박하게 나빠지자, 독실한 천주교인인 큰따님께서 대세(위급상황에서 간략한 절차를 통해 하는 세례)를 요청하셔서 장인어른은 돌아가시기 하루 전에 세례명을 받으시고 천주교인으로서 돌아가셨습니다. 이에 장례가 천주교식으로 행해졌습니다.

몇년 전 할머니께서 돌아가셨을 때에는 기독교식 장례를 처음부터 끝까지 경험해 봤는데, 이번 장인어른께서 돌아가시자 천주교식 장례를 처음부터 끝까지 경험해 보았다고 할 수 있겠네요.

천주교와 기독교 모두 예수 그리스도를 섬기지만 꽤 큰 차이가 있습니다. 가장 큰 차이 중에 하나가 바로 "성인"을 인정하는지 여부라고 할 것입니다. 천주교에서는 성인을 인정하고 세례를 받으면 세례명으로 "성인의 이름"을 자신의 이름으로 삼습니다. 그러나 기독교에서는 성인을 인정하지 않기 때문에 세례를 받더라도 특별히 세례명을 받지 않습니다. 이 정도는 이번 장인어른의 장례를 치르기 전부터도 알고 있었던 것이지만, 이번 장례를 치르면서 천주교에 대해 새로이 알게 된 것이 있습니다.

바로 연도(위령기도)라는 것인데요(연도는 기도가 토착화된 것으로 우리 나라에만 있다고 합니다. 연도는 우리나라에만 있나요?, 2013. 11. 11. 카톨릭뉴스). 천주교식으로 장례를 치르는 장례식장을 가보면 심심찮게, 몇몇 천주교 신자들이 빈소에 자리를 잡고 타령인지 노래인지 모를 문구를 읖조리는 것을 목격할 수 있습니다. 물론 기독교식 장례식장의 빈소에서도 종종 유족이 출석하는 교인이 조문을 와서 예배를 드리는 것을 목격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천주교식의 연도와 기독교식의 예배는 큰 차이가 하나 있고, 이것은 조문을 드리러 가서도 알고 있으면 편리하므로 여기서 소개하고자 합니다.

연도와 예배의 가장 큰 차이는 외부인의 조문이 도중에 가능한지 여부에 있습니다. 연도의 경우에는 연도가 계속되는 동안 외부인이 고인에게 조문을 할 수 있습니다. 연도는 천주교인들과 유족들만 있으면 이루어지는데, 유족들은 "유족들의 기도" 부분만 참여하면 되고 나머지 부분은 연도를 하러 온 천주교인들이 담당하므로, 유족들의 기도 부분을 제외한 부분에서는 조문객들이 고인에게 인사하고, 유족들과 인사하는 것이 허용되더군요. 그러나 기독교의 예배의 경우에는 예배 도중 조문을 하는 것이 예의가 아니고, 따라서 예배 자체도 약식으로 짧게 이루어지는 것이 보통입니다. 저는 천주교식 장례식을 처음부터 끝까지 본적이 별로 없었는데, 유족 중 독실한 분이 있는 경우에는 신자분들이 연도를 하러 1시간 간격으로 오셔서 과장 조금 보태면 장례기간 동안 연도소리가 끊이지 않게 되는 것입니다.

또한 천주교와 기독교의 가장 큰 차이 중의 하나는 망자에게 절을 하는 것을 "우상숭배"로 취급하는지 여부입니다. 천주교는 매우 관대한 종교 중의 하나로 망자에게 절을 하거나, 유교식으로 제사를 지내는 것을 "우상숭배"로 취급하거나 자신의 신을 모독하는 것으로 여기지 않습니다. 그러나 기독교는 유일신 개념을 매우 중시하는 종교로서, "자신 이외의 다른 신을 섬기지 말라"는 십계명을 근거로 제사는 물론 망자에게 절을 하는 것도 교리로써 금하며, 장례식장이나 빈소에서 망자에게 절을 하지 말 것을 요청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망인을 아는 분들이 모두 기독교도가 아닌 바에야 망자에게 절을 하지 말 것을 요청하기는 어려울 것이므로, 기독교식 장례의 경우에도 손님의 의사에 따라 망자에게 절을 하는 것을 제지하지 않는 것이 보통입니다.

따라서 만약 기독교식 장례식에 간 경우, 독실한 유족의 의사를 존중하고 싶으시다면 굳이 망자에게 2배반의 절을 할 것이 아니라 헌화를 하고, 무릎을 꿇거나 선 자세에서 묵념/기도를 한 후, 상주와 인사(기독교의 경우 산 사람들끼리의 절은 인사로 취급하기 때문에 맞절을 신앙에 비추어 거부하지는 않으나, 요새는 상주들을 위한다는 명목으로 맞절하지 않는 경우도 많은 것 같습니다)하는 것이 좋습니다. 그러나 자신의 신앙에 따라 절을 하는 식으로도, 묵념이나 기도를 하는 식으로도, 향을 피우거나 헌화를 하는 방식에 따르더라도 망인에 대한 예의가 크게 어긋하지는 않을 것이고, 상주의 입장에서도 손님의 신앙에 따른 조문방식에 이래라 저래라 하지는 않는 것으로 보입니다.

사람들이 종교를 갖는 큰 이유 중의 하나는 사망이라는 인간으로는 피할 수 없는 상황이 필연적으로 닥칠 때, 자신을 지켜봐주고 도와주는 같은 신앙을 가진 사람들로부터 도움을 받을 수 있는 것에 있지 않은가 합니다.

이번 장인어른의 장례식에 와주시고 슬픔에 공감하여 주신 모든 분들께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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